소원은 이렇게 병실로 옮겨졌다.육경한은 병원의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캐주얼한 회색 정장 차림에 안에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손목에는 실버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유난히 젊고 잘생겨 보였다.소종은 손에 든 기밀 서류를 육경한에게 공손히 바치고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찰칵 소리와 함께 문은 잠겨졌다.소원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서울에서 육경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소원은 땅을 파고 들어가 숨어 지낸다고 해도 모두 그의 손바닥 안이기 때문이었다.육경한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티셔츠는 둘레가 매우 낮아 쇠골이 다 드러나서 섹시하면서도 눈 밑에는 위험한 색욕이 번졌다.“어제저녁에는 어디로 갔어?”소원이가 대답하지 않자, 육경한은 또 한 발짝 가까이하면서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어?”“말 안 하면...”육경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기다란 손가락을 내밀었다.“내가 확인해 보지.”소원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를 피하지 못했다.육경한은 소원의 허리를 움켜쥐고 서 있는 채로...소원은 화를 참지 못했다.“육경한, 이 미친놈아. 비켜!”남자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손을 도로 거두면서 반쯤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네.”그렇지 않으면, 육경한은 아마 참지 못하고 바로 소원과 몇 번 해서 외딴 남자의 냄새를 그녀의 몸에서 없앴을 것이었다.소원은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서 발로 남자의 종아리를 세게 걷어차고는 뒤로 물러서며 격하게 욕했다.“꺼져!”육경한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 사람처럼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소원아, 너 대단하더라.”육경한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귀가 먹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말은 절대 칭찬이 아니라는 걸 알아들을 수 있었다.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육경한의 말을 계속 들었다.“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아쉽지 않아?”소원은 피식 냉소를 지었다.“알면서 뭘 물
소원의 이런 속셈을 육경한은 손금 보듯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우스운 것은, 육경한이 아무리 소원한테 잘해주면서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까 생각할 때 그녀는 어떻게 육경한을 가장 아프고 치명적이게 뒤통수 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육경한은 눈을 반쯤 드리우며 피식 웃었다.“나를 감방에 보내려고 당신도 참 애를 썼어.”육경한의 눈에는 어두운 빛이 드리웠는데 유난히 압도적이었다.마치 그와 눈길을 한 번만 마주치면 상대방 눈 안의 빛을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소원은 육경한의 눈빛에 놀라지 않고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피차일반이잖아요. 대표님도 저랑 연기하느라 힘드셨겠네요.”지금에 와서 소원도 알아차렸다. 육경한도 마찬가지로 소원과 연기하고 있었다는 것을.그렇지 않고서 육경한은 소원이가 서류를 훔쳤다는 일에 대해 그렇게 잘 알 수 없었다.예상대로라면, 육경한은 소원과 방민기가 만나서 서류를 교환할 때 등장해서 현장을 잡아야 했다.그러나 육경한은 자기가 욕조에서 질식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해 안타깝게도 소원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었다.지금 육경한은 모든 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해 한껏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소원은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이 사람 곧 자신의 자부 때문에 대가를 치를 거야!’소원은 손을 뻗어 옷의 먼지를 털어주듯 육경한의 정장을 매만지면서 비꼬는 말투로 얘기했다.“대표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연기하시는데, 저도 당연히 신경을 많이 써드려야죠. 그럴 가치가 충분해요.”육경한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지만,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순간 홱 거두었다.그는 주객전도하면서 팔을 길게 뻗어 소원의 턱을 부드럽게 비비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소원아,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거야. 네가 이제 더 이상 다른 남자랑 엮이지 않고 내 옆에 남아 있겠다고 말하기만 하면...”육경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치 큰 희생을 치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까지 힘을 주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소원은 웃으면서 말했다.“당신은 정말 내가 멍청하게 제 발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을 거라 생각해?”소원은 서류를 집에 놓고 나간 후에 퀵 서비스를 불러 서류를 경찰서에 보냈다.그리고 소원은 미리 바꿔치기한 기밀 서류를 들고 있다가 소종에게 붙잡혔던 것이었다.이 말을 듣자마자 소종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봉투를 찢어 확인해 보았는데 역시나 봉투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소종은 화가 잔뜩 나서 한걸음에 소원 쪽으로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등 뒤로 하고 그녀를 땅바닥에 눌렀다.“나쁜 년, 감히 날 갖고 놀다니!”그는 난폭하게 무릎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소종은 원래부터 수단과 무력으로 육경한의 밑에서 몇 년 동안 일해 왔던 것이었다.요 근년, 소종은 양복 차림으로 갈아입으면서 자신의 본성을 억제해 왔다.그러나 본질을 따지고 보면 소종은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그는 무릎에 힘을 가하면서 소원의 기도를 눌러 격노하며 말했다,“간이 부었나 봐요. 어디 감히 우리 대표님을 건드려요? 당장 당신을 죽일 거예요!”소원은 소종한테 눌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이런 사람한테 용서를 빌 생각이 없었다.소종은 육경과 한통속이었다.“풀어줘.”육경한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소종은 원망을 늘어놓았다.“대표님, 이 여자가 대표님을 몇 번이고 다치게 했어요. 이 정 없는 여자한테 더 이상 마음 약해지지 말아요!”소종은 드디어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그 5년 동안 육경한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방식으로 속죄하면서 사람 같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소종은 소원이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차차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뜻밖에도 이 여자는 육경한의 목숨을 노리러 왔던 것이었다.심지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소종은 진심으로 소원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육경한이 명령만 내린다면 소종은 절대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소원을 죽일 수 있었다.“놓아주라
문 앞에서 소종과 헤매던 서현재는 분노가 가득 찬 눈길로 소리쳤다.“누나 놓아줘요. 이 미친놈!”육경한은 성에 찰 때까지 키스한 후에야 소원을 놓아주었다.그는 소원의 얼굴을 받들고 눈시울을 붉히더니 웃으며 말했다.“소원아, 넌 날 못 이겨.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육경한의 말투는 차갑고 쌀쌀했는데 마치 주문을 외우는 듯하여 소원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이때 출동했던 경찰은 이미 병실 문 앞에 도착하여 상황을 물었다.“혹시 육경한 씨 계시나요?”육경한은 소원을 놓아주고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접니다.”경찰은 자신의 경찰 증서를 보이고 나서 상황을 설명했다.“저희는 육경한 씨가 금융 사기 및 불법 거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셔서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네.”육경한은 군말하지 않고 매우 침착했다.그저 소종 앞을 지날 때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소원이를 잘 보살펴 줘.”‘보살피라고?’소종은 이 재앙 같은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녀가 미웠다.그러나 소종은 육경한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육경한은 고개를 돌려 소원을 바라보더니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소원은 육경한이 무엇 때문에 웃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온몸에 한기가 솟았다.조금도 낭패하지 않은 육경한의 발걸음을 보면서 소원은 마음속의 불안감이 더 커졌다.이 순간 소원은 광기가 넘치고 매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약점이 없는 육경한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이런 생각이 들자, 소원은 갑자기 등에 천근 무게가 떨어진 것처럼 느껴져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서현재는 바로 다가와 그녀를 부추기면서 잘생긴 얼굴에 안쓰러움이 가득했다.“누나, 왜 그래요?”소원은 힘이 없어 두 손으로 서현재의 팔을 꽉 잡았다.소원은 모든 것이 믿겨 지지 않았다.서현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원을 위로했다.“누나,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먼저 돌아가 있
소원은 소종의 의아한 표정을 보면서 웃었다.“당신 대표님이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이 지금 온라인으로 전부 생중계되고 있었어요. 지금부터 당신네 유민 그룹 주식은 폭락할 거고 유민 그룹에서 책임지고 있는 프로젝트나 사업은 모두 큰 타격을 입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의 대표님이 이번에 아무리 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죄를 벗을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될 것 같아요?”소종의 얼굴색이 안 좋아질수록 소원은 더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가장 부드러운 말투로 가장 험한 말을 했다.“당신의 대표님이 조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유민 그룹은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을 거예요. 당신들이 지금까지 쏟아부은 노력은 조금씩 수포가 될 거예요. 당신 입으로 말했던 우리의 하찮은 꼼수가 어떻게 유민 그룹을 망가뜨리는지 잘 두고 봐요!”소원은 이 일을 벌이기 전에 이미 수백수천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았다.그중에는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고려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래서 소원은 여러 매체를 통해 육경한이 조사받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육경한은 원수가 워낙 많아서 유민 그룹이 서서히 몰락하기만 하면 그는 순식간에 모든 걸 잃을 게 분명했다.소원은 그저 수수방관하기만 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그녀 대신 육경한을 처리하게 되어있다.게다가 금융 사건의 형기는 길어봤자 십몇 년이지 극형을 선고받을 리가 없었다.소원은 자신의 아버지가 분명히 육경한의 압박 때문에 죽었다는 걸 알지만, 육경한이 직접 손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를 법으로 제재할 수 없었다.그래서 그녀가 원하는 건 결코 육경한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육경한이 두 눈으로 자신이 힘들게 일궈낸 가문과 사업이 무너지는 걸 보게 할 생각이었다.그리고 그가 개처럼 다른 사람의 발밑에 밟혀 굴욕을 당하면서 죽는 것만 못 하게 살게 만들려 했다.이것이야말로 소원이 바라던 진정한 복수였다.소종은 소원이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을 줄 몰랐다. 소종의 얼굴에 떠 있던 조롱은 순간 살의로 변해
서씨 가문은 서현재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게다가 온몸의 상처도 서씨 가문이 준 것이었고 말이다.“그래.”서현재의 눈빛은 맑고 깨끗했다.“소원 누나, 앞으로는 다 잘될 거예요.”정말 그럴까?설령 육경한의 일이 해결되었더라도 소원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특히 육경한이 떠날 때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다시는 널 놓지 않겠어!”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저주처럼 느껴졌다....윤혜인은 병원에서 3일 동안 이준혁 곁을 지켰지만 그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그동안 그는 간헐적으로 고열이 계속됐다.의사는 그녀에게 부러진 갈비뼈 하나가 중요한 장기를 찔러 상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수술은 제때였지만 수술 후 감염 상태가 좋지 않았다.가장 중요한 건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밤에도 열이 나면 ICU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윤혜인은 밤새 정성스럽게 간호하며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아침이 되자 아름이가 엄마와 대디가 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왔다.아픈 마음을 참고 윤혜인은 아름이를 달랬다.전화를 끊고 나서 윤혜인은 다시 병상으로 돌아와 이준혁의 체온을 재봤다.37.1도.드디어 열이 내려가자 그녀는 아주 기뻐했고 밤새 긴장했던 마음도 조금 풀렸다.윤혜인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게 말했다.“이준혁 씨, 어서 깨어나 줘요. 제발 깨어나서 우리 함께 잘 지내요...”그러나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고 윤혜인의 마음속 슬픔이 조금씩 커져갔다.윤혜인은 이준혁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자신의 얼굴에 대어 그의 맥박을 느꼈다.심장이 뛰는 느낌이 그녀에게 안정을 줬으니 말이다.그때,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고 뒤이어 병실 문이 누군가에 의해 세게 밀려 열렸다.“내 아들 내가 보러 왔다는데 왜 막아요? 더 막으면 해고할 거예요.”문현미의 목소리가 들렸다.윤혜인은 깜짝 놀라 이준혁의 손을 놓고 서둘러 일어섰다.곧이어 문현미는 그녀를 보자 발걸음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였
“아주머니, 저 준혁 씨가 깨어나기 전까지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저랑 평화롭게 지내시든지 아니면 아주머니가 나가세요.”문현미는 이 말을 듣고 더 화가 났다.“네가 뭔데! 넌 내 아들이 필요 없다고 해서 쫓겨난 애잖아, 네가 뭔데 나를 쫓아내?”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윤혜인의 가슴을 찔렀다.어쨌든 윤혜인에게 문현미는 한때 자신을 좋아해 주고 또한 모성애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줬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이준혁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윤혜인은 문현미와 병실에서 다투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주훈에게 말했다.“주 비서님, 아주머니께서 좀 진정하시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요.”그러자 주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현미를 타이르기 시작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잠시 돌아가셔서 쉬시는 게 어떠신가요? 대표님께서 깨어나시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왜 내가 가야 하죠?”문현미는 피식 냉소했다.“나가야 할 사람은 외부인인 저 사람이지. 난 준혁이의 엄마라고요.”주훈은 차분하게 말했다.“하지만 대표님께서 혜인 씨가 곁에 있길 원하셨어요. 사모님,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표님께서 깨어나셔서 사모님께서 혜인 씨에게 이렇게 대하셨다는 것을 아시면 기분이 상해하실 거예요.”주훈이 이준혁을 언급하자 문현미는 약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그도 그럴 것이 몇 년간 두 모자 사이의 관계는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하지만 문현미는 한 대사의 예언을 떠올리고 마음이 불안해졌다.“난 안 나가요. 나가야 할 사람은 우리 집에 해로운 저 여자입니다.”곧이어 그녀는 윤혜인을 밀치며 큰소리로 외쳤다.“내 아들 건드리지 마, 더 이상 가까이 가지도 마!”윤혜인은 예상치 못한 힘에 밀려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테이블 모서리를 잡고 넘어지지 않았다.주훈은 서둘러 윤혜인을 부축하려 했다.그때, 밖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들어오며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여기 정말
텔레비전 속 여자 앵커가 보도하고 있었다.“서울의 선도 기업 이선그룹의 이천수 회장이 오늘 아침 8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씨 가문에서 새롭게 찾은 막내아들 이구운을 대외무역부서 총괄 매니저로 임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소식에 따르면 그의 막내아들은...”“쾅!”문현미가 찻주전자를 집어 들어 TV를 향해 던지며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쳤다.“이천수 그 늙은이가 무슨 권리로 내 동의 없이 이런 짓을 해! 무슨 권리로!”문현미가 점점 더 격해질수록 한구운의 표정은 더욱 차분하고 온화해졌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 또 무슨 그런 웃긴 소리를 하세요.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지분으로는 아버지가 어떤 결정을 하든 어머니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죠.”문현미는 화가 나서 몸을 떨며 손을 들어 그를 때리려 했지만 한구운이 손목을 잡아 막았다.그리고 그의 눈에 잠깐 화색이 스쳤다.“뭐 하려고요? 저 사람에게 했던 방식으로 저한테도 하려는 건가요?”한구운이 이렇게 말할 때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뺨은 한껏 빨개져서 보기 안쓰러웠다.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문현미의 손목을 꽉 잡았다.“이거 놔, 이 망할 놈아! 놔!”그러나 한구운은 문현미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즐기며 부드럽게 말했다.“어머니, 어머니는 그래도 이씨 가문의 사모님이니 말과 행동에 신경을 쓰셔야죠. 만약 이런 모습이 언론에 찍히기라도 하면 대형 사건으로 번질 수 있어요. 그럼 형님께도 좋지 않잖아요?”말은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위협의 의미가 가득했다.문현미는 고통에 말을 잇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손목을 잡히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주훈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급히 나섰다.“한구운 씨, 그 손 놓아주시죠.”그러자 한구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내 어머니와 대화 중이야. 네가 뭔데 끼어들어?”주훈은 직접 손을 뻗어 한구운을 막으려 했지만 병실 밖에서 두 명의 경호원이 들어와 주훈을 제지했다.곧이어 한구운이 지시했다.“주 비서님한테 차
육연주는 다짜고짜 소원의 머리채를 붙잡아 탁자 위로 내리눌렀다.힘껏 눌러대며 외쳤다.“오늘 반드시 내가 그날 느낀 굴욕과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해줄 거야!”하지만 소원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이 정도의 고통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방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약속은 지키셔야죠. 우리가 한 대로 이행해주세요.”방민아는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한 말은 꼭 지킵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이 거론될 일을 피하려고 애써 돌려서 말했다.소원은 방민아가 무슨 꾀를 부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약속만 지켜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렇지 않다면 육연주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었다.육연주는 샴페인과 맥주를 들고 소원의 머리 위로 들이부었다.그러고는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술 좋아한다며? 아니어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잘 마셔 봐!”알코올이 따갑게 소원의 머리와 얼굴을 적셨다.소원은 눈을 꼭 감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육연주는 더욱 흥분하며 소원의 뺨을 두 차례나 세게 때렸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술병을 집어 들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고까지 했다.그 순간, 방민아가 육연주의 손목을 꽉 잡아 멈췄다.“연주야, 내가 뭐라고 했어? 겉으로 티 나는 상처는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너한테도 안 좋아.”그들의 관심은 소원의 안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벌가 자제 이미지가 더러워질까 하는 것이었다.그렇게 육연주는 힘없이 손을 풀었고 술병은 바닥으로 떨어져 몇 번 굴러갔다.방민아는 처음부터 이렇게 경고했다. 목숨을 앗아가선 안 되고 모욕하고 짓밟는 건 가능하지만 눈에 띄는 외상은 절대 안 된다고.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육연주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소원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그날 결혼식에서 소원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는지, 모든 사람들에
“네, 괜찮아질 거예요...”잠시 충전한 덕에 상태가 많이 나아진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언니, 이제 가서 일 봐요. 저도 제 일하러 갈게요.”“응.”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갔다.소원은 방민아가 말한 그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민아가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고 옆에 육연주가 함께 앉아 있었다.소원은 무표정하게 다가가 물었다.“방민아 씨, 제가 뭘 하면 되죠?”방민아는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서 그쪽을 부른 게 아니에요. 연주가 보고 싶다고 해서요.”소원은 육연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갑자기 육연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들어 소원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며칠 못 봤더니 눈이 멀었나 봐? 나 못 봤어?”소원의 얼굴은 한쪽으로 젖혀졌고 귀가 웅웅거릴 정도로 아팠다.이 뺨 한 대를 때리기 위해 육연주는 며칠 동안이나 참아왔던 것이다.지난번 그녀가 결혼식에 난동을 부렸을 때 이미 목이라도 졸라 죽이고 싶었다. 당시 육경한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소원은 이미 서씨 가문 사람들에게 반쯤 죽도록 맞았을 것이다.그런데 육경한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소문에 따르면 그는 소원을 구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고 했다. 북쪽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들은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육연주와 같은 재벌 2세는 그들에게 단지 걸어 다니는 금고와 같았다.그런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 육경한이 앞으로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북쪽 사람들은 원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결혼식 후, 육연주는 소원을 제대로 혼내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소원이 육경한의 사람들에게 데려가져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그녀는 부모도 두렵지 않고 세상 무엇도 겁내지 않았지만 육경한만큼은 무서웠다.육경한은 냉혹하게 행동할 때 진정으로 냉혹했으며 혈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다행히 방민아가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사실 크게 다친 것도 없었고요.”그러나 사실 그녀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육경한만큼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녀도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각한 일을 겪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숙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작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영숙은 소원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여기 왜 온 건지 말해봐.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봐도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같은데?”“오늘은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제가 아는 단골 손님이 요청해서요.”소원이 답했다.“단골 손님?”영숙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누군데?”소원은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그녀의 손님은 대부분 영숙이 직접 배정해준 사람들이었다.때문에 소원이 말하는 ‘단골 손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영숙은 알 수 없었다.영숙의 걱정은 진심이었다.소원은 왜 영숙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영숙이 굳이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하지만 소원은 이번 일의 진실을 영숙에게 말할 수 없었다.방민아가 오늘 밤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밖에 흘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이를 어기면 아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었다.“괜찮아요, 언니. 정말 아는 손님이라니까요.”소원은 모호하게 대답하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그러자 영숙은 ‘그래’라고 짧게 대답하며 비웃듯 말했다.“넌 이제 네 멋대로 하는구나. 내가 상관할 수 없겠네.”소원은 피식 웃었다.“그럴 리가요. 언니가 저를 이 일로 이끌어주셨잖아요. 하루라도 스승이면 영원히 스승인데 제가 언제 영숙 언니 말 안 들은 적 있나요?”이 말을 듣고 영숙은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 이렇게 말재간이 좋은 애인 줄 몰랐네.”“스승이니 뭐니 하지 마. 내 밑에 평생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조금 안정되면 얼른 나가.”사실 영숙은 방민아와 관련된 일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래서 그는 방민아가 나중에 유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유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방민아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그녀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 믿었다.“필요 없어. 임 교수님에게 빨리 수술 일정 잡아달라고 해줘.”육경한이 결혼을 위해 결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속임수에 휘말려 또 다른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그는 다른 사람이 낳지 않은 아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소종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육경한은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는 이미 그의 마음이 완전히 굳었다는 것을 의미했다.육경한이 결정한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었다.다만 소종은 이런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종조차도 대를 이을 아이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별을 떠나 건강한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었다.어쩌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하지만 육경한의 방식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그럼에도 소종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전화를 걸기 위해 소종이 막 나가려다가 육경한이 불러 세웠다.“잠깐.”“무슨 일이세요?”육경한은 말했다.“이 소식을 민아 씨에게 알려.”소종은 잠시 멍해졌다.‘정관 수술 한다는 걸 예비 신부에게 알리라고? 이건 결혼하기 전에 도망가라고 부추기는 일 아닌가?’그러나 육경한의 목적은 방민아를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이전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 말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방민아더러 함께하자고 했다.그러자 방민아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육경한이 방민아에게 난관 수술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건 이것이 신체에 손상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결혼을 약속한 상대라면 충분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스스로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이번에 소종을 통해 이 소식을 흘린 건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고 표정조차 변화가 없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소종이 입을 열었다.“소원 씨가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습니다. 작은 도련님이 간신히 밝아졌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육경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소종의 말을 묵인하는 듯 말이다.이제 됐다 싶어 소종은 긴 숨을 내쉬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육경한이 이번에 얻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친 그가 이제는 소원에 대해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지금과 같이 냉정한 사람은 마음이 다치면 자신을 철저히 닫아버린다.육경한의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이 죽은듯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남자는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소원은 이제 마음도 몸도 여기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붙잡는 건 양쪽 모두를 아프게 할 뿐이었다.소원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서현재 역시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육경한이 많이 참은 셈이었다.육경한이 물어보지 않았기에 소종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소종이 대신 육경한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여러 번 말을 해봤지만 소원은 전혀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그게 진정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다.소종은 소원이 방민아가 유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유진의 상태를 더 꼼꼼히 살피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방민아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다만 소종은 방민아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잠시 좋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다.오래도록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방민아 씨가 과연 유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대할 수 있을까? 자기 아이를 갖게 되면 유진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진 않을까?’소종이 이런저런 생
소원은 방민아와 이런 복잡한 말싸움을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연기를 하듯 감정을 숨기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방민아 씨, 아주머니를 만나볼 수는 없나요?”“그건... 방금 경한 씨한테 전화했잖아요? 경한 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소원 씨.”방민아는 곤란하고 미안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사실 소원이 대문 앞에서 보인 모든 행동을 방민아는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소원이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끝내 허락받지 못한 모습을 보며 방민아는 확신했다.이제 자신이 육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고.방민아는 속으로 생각했다.‘다행히 연주의 말을 믿고 소원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어. 그냥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처럼 행동했더니 효과가 좋네. 경한 씨도 이제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어. 소원? 이제 별로 두려워할 존재도 아니지.’소원은 한숨을 삼키며 자세를 낮추어 물었다.“그럼... 유진이랑 통화라도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대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방민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소원 씨, 그건 저도 힘들 것 같네요. 경한 씨가 소원 씨가 유진이와 접촉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거절당한 소원은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했다.방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소원 씨, 제가 기회를 드리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오늘 밤 일하러 가세요. 기분이 좋으면 유진이를 만나게 해줄 수도 있죠.”이 말에 놀란 소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정말인가요?”“그럼요.”방민아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결국 경한 씨가 없을 땐 이 육씨 가문내 일이 다 제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소원은 방민아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육경한은 집안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내부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좋아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하지만 유진이를 반드시 만나게 해줘야 해
소원은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렸지만 두 명의 건장한 보안요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보안요원은 그녀를 끌고 가면서 말했다.“저희도 이러고 싶진 않습니다. 저희는 월급 받는 대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누구도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제발 좀 협조해 주세요.”소원은 필사적으로 외쳤다.“제 아이가 위험해요!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 부를 거라고요!”그러자 보안요원은 피식 비웃었다.“지금 농담하세요? 작은 도련님은 매일 베란다에서 뛰어놀 만큼 건강해 보이는데 뭐가 위험하다는 겁니까? 혹시 망상증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에요?”이 말을 듣고 소원은 잠시 안도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보안요원은 이어서 말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찰이 이런 걸 받아주지도 않을 겁니다. 신고해 보세요. 아마 처음에 잡혀갈 사람은 그쪽일 겁니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갈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도련님은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방민아 씨는 정말 좋은 새엄마예요. 얼마나 세심한지 매일 작은 도련님을 돌보러 오신다니까요.”소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방민아는 결혼 전까지는 유진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후라면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지금 아주머니를 건드린 것도 육경한의 반응을 떠보는 일환이라 확신했다.육경한이 아주머니의 병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유진이의 위험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아니, 육경한이 아주머니를 걱정하더라도 방민아의 속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물론 이 모든 것은 소원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사란 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만약의 가능성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갑자기 소원이 크게 외쳤다.“방민아 씨! 나와요! 방민아 씨, 당장 나와요!”보안요원이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소원은 두 보안요원의 손길을 뿌리치며 대문 앞으로 달려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계속 외쳤다.“방민아 씨! 방민아 씨!”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소원은 일부러 유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 유진이가 자극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유진이는 보통 아이들과 달랐고 소원은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해 항상 신중했다.소원은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백씨 아주머니! 백씨 아주머니, 계세요?”몇 번 부르지 않았는데 보안요원이 달려와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이렇게 소리치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주거 지역이에요. 계속 그러시면 강제로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보안요원의 말투는 점점 공손함을 잃어가고 있었다.상대가 까다로운 사람이든 아니든 겁낼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행동을 보니 그녀가 육 대표님과 친분이 깊을 리는 없어 보였다.만약 친분이 있었다면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테고 육경한이 이미 문을 열어줬을 것이다.그러나 소원은 보안요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말했다.“오늘은 반드시 아주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아주머니 이름 부르는 게 싫다면 백해란 아주머니가 여기 계신지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확인만 해 주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보안요원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런 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는 저택 안에 들어가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계속 소리 지르시면 지금 당장 내보낼 겁니다.”보안요원의 태도는 한층 강경해졌고 소원은 이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아주머니와 연락이 끊겼어요. 걱정돼서 왔습니다. 오늘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하면 저는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쪽들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렇게 하죠. 아주머니가 계신지 확인하고 그분이 저에게 전화만 주시면 저는 바로 떠나겠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어때요?”소원의 이 말은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타협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보안요원들은 상황을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건 큰일이 아니었지만 이 여자를 억지로 끌어내렸다가 경찰에 신고라도
소원이 침묵할수록 소종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그에게 소원은 냉혹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입장이 다르니 소종은 당연히 소원의 관점에서 이 일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그는 답답함에 목소리를 높였다.“알겠습니까? 모든 더러운 일은 내가 했습니다. 대표님은 저에게 너무 폭력적이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업 세계는 깊은 수렁 같아서 독하지 않으면 발붙일 수 없어요! 그래서 전 자발적으로 대표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 칼로 저를 찔러도 대표님의 미래를 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갑자기 소종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제가 소원 씨가 대표님을 해치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보리라고 생각합니까?”소원은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소 비서님, 제가 육경한을 찾는 건 유진이 때문이에요.”지금 그녀는 육경한을 무너뜨릴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유진이의 안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종은 이 말을 듣고도 비웃으며 말했다.“소원 씨, 이제 와서 아들을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아들을 위한다면 아이의 친아버지를 그렇게 대했으면 안 됐죠.”“우리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다른 남자였으면 그쪽은 벌써 백번은 죽었을 겁니다.”소원은 다급히 물었다.“소 비서님, 요즘 유진이는 누가 돌보고 있습니까?”그녀는 소종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든 개의치 않았다.소종이 육경한에게 충성하는 만큼 유진이에게 해를 끼치도록 방치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소종은 잠시 찡그리며 대답했다.“방민아 씨가 돌보고 있습니다.”이 말에 소원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저는 유진이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 저 경원 저택 앞에 있습니다. 육경한에게 연락해서 제가 유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유진이가 걱정돼요.”소종은 콧방귀를 뀌었다.“뭐가 걱정된다는 거죠?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어제는 유진이를 데리고 대표님을 보러 오기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