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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소원의 이런 속셈을 육경한은 손금 보듯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우스운 것은, 육경한이 아무리 소원한테 잘해주면서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까 생각할 때 그녀는 어떻게 육경한을 가장 아프고 치명적이게 뒤통수 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육경한은 눈을 반쯤 드리우며 피식 웃었다.

“나를 감방에 보내려고 당신도 참 애를 썼어.”

육경한의 눈에는 어두운 빛이 드리웠는데 유난히 압도적이었다.

마치 그와 눈길을 한 번만 마주치면 상대방 눈 안의 빛을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원은 육경한의 눈빛에 놀라지 않고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피차일반이잖아요. 대표님도 저랑 연기하느라 힘드셨겠네요.”

지금에 와서 소원도 알아차렸다. 육경한도 마찬가지로 소원과 연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 육경한은 소원이가 서류를 훔쳤다는 일에 대해 그렇게 잘 알 수 없었다.

예상대로라면, 육경한은 소원과 방민기가 만나서 서류를 교환할 때 등장해서 현장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육경한은 자기가 욕조에서 질식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해 안타깝게도 소원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었다.

지금 육경한은 모든 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해 한껏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원은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이 사람 곧 자신의 자부 때문에 대가를 치를 거야!’

소원은 손을 뻗어 옷의 먼지를 털어주듯 육경한의 정장을 매만지면서 비꼬는 말투로 얘기했다.

“대표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연기하시는데, 저도 당연히 신경을 많이 써드려야죠. 그럴 가치가 충분해요.”

육경한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지만,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순간 홱 거두었다.

그는 주객전도하면서 팔을 길게 뻗어 소원의 턱을 부드럽게 비비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소원아,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거야. 네가 이제 더 이상 다른 남자랑 엮이지 않고 내 옆에 남아 있겠다고 말하기만 하면...”

육경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치 큰 희생을 치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까지 힘을 주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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