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식도에서 시작된 열기가 점점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윤정현의 얼굴에 어느덧 홍조가 일렁였다. 그가 마신 술의 도수는 무려 52도였다. 그 독한 것을 멋모르고 원샷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대표님. 술 잘 드시네요."진영웅이 옆에서 육정현의 술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온갖 칭찬의 말들을 쏟아내며 어떻게든 그가 계속해서 술잔을 들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흔한 수법에 당할 육정현이 아니었다. 워낙 잘난탓에, 웬만한 입바른 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진영웅이 아무리 애를 써도 그는 쉽사리 다시 잔을 들지 않았다. 끄떡없는 육정현의 모습에 진영웅은 필살기를 써보기로 했다."육 대표님, 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고 빠른 시일 내에 소원 성취하시길 바랍니다."진영웅은 이 말을 하는 동시에 신은지와 육정현을 번갈아 봤다. 그 눈짓을 알아차린 육정현은 괜히 울컥하고 화가 치솟아 올랐다.그렇게 창과 방패, 술을 먹이려는 자와 술을 거부하려는 자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육정현도 서서히 술에 취한 듯 눈빛이 풀리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덩달아 진영웅과 육정현의 비서도 함께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유일하게 신은지만 임산부로서 배려받아 술을 안 마신 탓에 멀쩡했다. 신은지는 기사를 불러 진영웅과 육정현의 비서를 호텔로 보낸 뒤, 잘 지켜보라고 당부했다. 그런 다음 다시 육정현을 챙기기 위해 룸으로 돌아왔다. "걸을 수 있겠어요?"육정현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풀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취한 육정현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순하고 순종적이었다. "이제 가요. 가서 쉬셔야죠."신은지가 앞서 나가며 말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뒤를 돌아보니, 육정현이 바닥에 앉은 채 그녀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못 걷겠어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요."신은지가 살짝 짜증을 담아 말했다."다리만
신은지가 답했다."벗으면 뽀뽀해 줄게요."만약 그가 박태준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뽀뽀하고, 아니면 바로 그를 내쫓아버릴 생각이었다. 육정현이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싫어요. 거짓말이잖아요. 뽀뽀 안 해주면, 제 여자 친구 아니에요."윽박지르고 달래도 통하지 않자, 신은지는 방법을 바꿔 애교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진짜 여자 친구 맞는데....""잠깐만요."그런데 이때, 육정현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핸드폰 녹음기를 켰다. "아까 한 말 다시 해봐요."신은지는 할말을 잃었다. 인내심이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었던 그녀는 곧바로 그의 바지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동작이 너무 컸던 탓일까, 바지가 아닌 상의가 위로 젖혀지고 말았다. 신은지의 눈이 충격으로 동그랗게 떠졌다. 그의 몸엔 온통 울퉁불퉁한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그 상처들을 매만지며 물었다. "이 상처들, 어떻게 된 거예요?"얼마나 아팠을지 도저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 상처들이었다. 그의 상체는 온전한 피부가 거의 없을 정도로 흉측한 상처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순간, 신은지는 차라리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박태준이 아니길 바랐다. 박태준이 이런 고통을 당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 육정현이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았어요. 밥도 안 주고, 물도 안 주고, 새카만 방에 가두고 절 때렸어요.""누가요?"상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혔다. 아무리 길게 봐도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난 상처들로 보였다. 해외에 있다가 최근에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온 걸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 상처들은 어떻게 난 것인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육씨 집안 사람들이 이런 거예요?"신은지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육정현이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답했다. "몰라요. 누군지 모르겠어요." "아프지 않아요?"그동안 육정현은 꾸준히 자신이 박태준이 아니라며 주장했기 때
새벽 5시, 습관적으로 깨어났다.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본 육정현은 완전히 낯선 환경에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면서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렸다. 천장에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쳤고 주위가 고요했다. 육정현은 고개를 돌려 침실 쪽을 바라봤지만 방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자는 신은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육정현은 오래 누워 있지 않고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길가에 주차된 낯익은 차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기사는 차 옆에 서서 육정현이 아래층으로 내려온 것을 보며 재빨리 차 문을 열었다. "육 대표님.” 육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여기 있어?” 육정현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었다. 운전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차 안을 들여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운전기사가 무슨 말을 할지 육정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육정현은 차 앞으로 걸어가서 안에 앉아 있는 기민욱을 보았다. 흰색 캐주얼 옷을 입은 기민욱은 잘생긴 얼굴로 천천히 걸어오는 육정현을 보며 고개를 돌려 육정현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 육정현이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형 집으로 찾아갔었는데, 형이 없어서 비서에게 전화했지. 형이 어젯밤에 신은지 씨와 약속이 있었다고 알려줬어." 기민욱은 말을 하며 뒤에 있는 아파트를 한 번 쳐다보았다. "형이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을 선택하고 운에 맡겼는데, 형이 정말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지.” 육정현은 허리를 숙이고 차에 올라타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회사로 가죠.” 기민욱은 환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형, 어젯밤에 잘 잤나 봐.”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메시지에 답장을 하던 육정현은 기민욱의 말에 고개도 들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형, 신은지 씨 좋아하지? 사실 형이 정말 신은지 씨를 좋아한다면 그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내가 아버지한테
기민욱은 휴대전화를 노려보았다. 그는 육정현이 사진을 보고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흐렸던 기민욱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기민욱이 육정현에게 보낸 메시지는 마치 바다에 가라앉은 듯 고요했다. 기민욱은 사진 속 놀란 표정의 신은지를 차가운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싫어.” 얇은 입술과 치켜 올라간 턱, 오만하고 도발적인 모습은 아까 신은지 앞에서 보였던 순둥이 같은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육영 그룹으로 갔다. 육정현의 비서는 기민욱과 육정현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기민욱이 아무렇지 않게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말리지도 못했다. 기민욱은 육정현의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노크를 했다. 기민욱은 당황한 보좌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당신이 새로 발령받은 비서예요?" "네." 그 비서는 사장실 비서팀 사람이 아닌 육정현이 직접 지명한 비서였다. 기민욱은 그를 쳐다보다가 한참 뒤에 말했다. "듬직해 보이네요. 우리 형 안목이 역시 좋네요. 잘 지내봐요. 이전의 방 비서처럼 눈치 없이 굴지 말고요. 멀쩡하게 걷다가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수 있어요.” "……” 새 비서는 기민욱이 자신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들어와." 안에서 육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민욱이 문을 밀고 들어갔지만 육정현은 서류를 들여다볼 뿐 고개를 들지 않았다.”무슨 일이야?” "형, 내가 방금 뭐 하러 갔는지 맞춰봐." 기민욱은 육정현의 뒤로 가서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서류들을 내려다보았다. 기민욱의 낮은 목소리에는 고혹적인 웃음이 가득했다. 육정현이 말했다. "신은지 씨를 찾아갔잖아.” "내가 보낸 사진 봤어?” "응." 기민욱은 육정현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메시지를 봤으면서 왜 답장을 안 해?” 기민욱은 휴대전화를 꺼내 음량을 무음으로 바꾼 뒤, 최신 통화
기민욱의 전화를 받은 후, 신은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오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저 여자의 타고난 직감이었다.진유라는 오후에 신은지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에 자신의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엄마가 얼마 전에 초원으로 여행 가서 소고기와 양고기를 한 트렁크 사 왔어. 최근에 어떤 전문가가 얼린 고기를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엄마가 매일 고기 요리를 하고 있어. 매일 고기만 먹었더니 몸에서 누린내가 나는 것 같아.” 신은지는 진유라가 지금 틀림없이 자신의 몸 냄새 맡기 위해 킁킁 걸이고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곧 겨울인데, 내가 털 있는 옷을 입고 나가면 양이 우리에서 튀어나온 줄 알 것 같아. 그러니까 빨리 와서 나 좀 도와서 고기 좀 먹어.” 신은지가 대답했다. “알았어.” 신은지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진유라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진씨 가문의 집은 습지 공원에 인접한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에 위치해 있었다. 신은지는 차를 다리 위에 세우고 백화점에서 구입한 진유라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들고 걸었다. 최근 섬에 조성된 인공 관광지는 조명 쇼, 음식, 고성, 전통 공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그 도시의 자동차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는 관광지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이제 겨우 6시가 넘었는데 이미 붉은 조명들과 함께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나마 진씨 가문 집은 상업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고급 단지의 별장 단지에 살고 있어 조용한 편이었다. 신은지가 문을 두드리자, 이내 진유라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왔다. 왔어. 잠깐만!” 문이 열리자 신은지가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진유라가 뛰어나와 문을 쾅 닫았다. 진유라 어머니의 꾸짖는 소리가 문안에서 들려왔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천방지축이면 어떻게 해! 빨리 은지를 들어와서 앉게 해. 은지나 되니까 너랑 말 섞어주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어 봐. 당장 너와 관계를 끊을 거야
신은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어.” "어젯밤에 그를 취하게 만들지 않았어?" 진유라는 어젯밤 그녀에게 곽동건처럼 이상한 핑계를 대며 혼인신고를 하자고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하소연했다.신은지는 그때 육정현과 늦게 밥을 늦게 먹고 있어서, 진유라에게 자주 답장하지 않았다. "술에 취했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새로운 상처도 많았어.” 진유라는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육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학대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거야?” 그냥 신은지가 알아보는 걸 막기 위해 흉터만 제거하면 되지 않을까? 굳이 자신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지금 그의 대외적인 신분은 육씨 가문의 막내아들이다. 육씨 집안이 지난 2년 동안 좀 힘들기는 했지만, 그의 몸에 흉터를 제거할 돈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곽동건이 말했다. "제가 아는 한 육씨 가문사람들 중, 사람 몸을 상처투성로 만들만큼 학대를 즐기는 변태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곽동건은 바둑을 다 두었는지 그녀들 곁으로 왔다. 신은지가 물었다. "곽 변호사님, 육정현이 정말 육씨 가문의 막내아들이에요?” 곽동건은 육정현이 박태준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물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곽동건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육씨 가문에 막내아들이 있기는 했지만 태어날 때 폐가 덜 발달한 미숙아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자라는 환경이 많이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안개, 먼지, 공장에서 배출되는 매연 같은 것들이 병을 일으킬 수 있어 어릴 적부터 시골로 보내 요양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몇 년 동안은 들리는 소식이 없었어요.” 곽동건은 자연스럽게 진유라 옆 자리에 비집고 앉아 멜론 조각을 입에 넣었다. "육정현이 박태준이라고 의심하는 건가요?” 진유라는 남자의 체격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등을 곧게 폈다. 곽동건의 숨결이 진유라에게 닿자 그녀는 자리를 옆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하
식사를 마친 곽동건은 먼저 자리를 떴다. 진유라는 자신의 생각을 읽히지 않기 위해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신은지를 끌고 갔다. ”너 아니었으면 나 오늘 엄마한테 맞아 죽었을 수도 있어.” 신은지는 말했다. "아줌마가 곽 변호사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던데.” "우리 엄마는 내가 시집 못 갈까 봐 아무 남자나 다 마음에 들어 해.” "정말 곽 변호사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 곽동건은 잘생겼고, 키도 크고 직업도 좋고 돈도 많은 데다가, 스캔들도 없다. 독설을 내뱉는 것 이외에 진유라를 포용할 수 있는 완벽한 신랑감이다. 진유라는 차에 시동을 걸며 웃음기 뺀 얼굴로 말했다.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 정신을 쏟아붓고 싶은 생각이 없어.” “곽동건이 오늘 우리 부모님을 만나러 온 것도 자기 이모 때문이야.” 진유라는 신은지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덧붙여 말했다. "우리 엄마의 아는 동생이 곽동건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해서 온 거야. 그리고 어제 나한테 혼인신고 하러 가자고 한 것도 내가 좋아서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해야 하는데 마침 자기가 아는 여자 중에 본인을 귀찮게 하지 않을 사람을 찾아서 이렇게 된 거야.” "어쨌든 로스쿨까지 졸업한 사람이 왜 이렇게 고지식한 거야? 부모님 세대 때처럼 나이가 차면 그냥 결혼하고 평균수명을 넘으면 죽어야 하는 거야?” "……”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진유라의 말은 그래도 일리가 있었다. 진유라의 입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패소해 본 적 없는 곽동건 같이 숙련된 변호사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날 밤, 신은지는 진유라 집에서 묵었다.두 사람은 한밤중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커다란 다크서클과 함께 눈이 탱탱 부어있었다.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아 신은지는 화장을 했다. 박용선이 사람들에게 신은지가 임신했다고 말한 이후로, 그녀는 손이 다 나았지만 화장을 하지 않았다.
육정현과 오시은이 룸에서 나오자마자 강태민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 육정현은 '아버지'라고 불쑥 말할 뻔했지만 이성이 행동보다 앞섰다. 그는 이를 악물고 평소처럼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강태민 어르신.” 강태민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나를 알아요?” "그건 당연하지요. 순천의 강씨 가문의 가주를 상업계에서 누가 모르겠습니까?” "생김새도, 아부하는 솜씨도 닮았어.” "……” 육정현은 말이 없었다. 그런 말은 조용히 속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시은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먼저 가버렸다. 강태민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육 대표님, 이렇게 식사를 방해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부탁이 있는데,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육정현은 옆으로 한발 물러서며 손을 들어 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들어가서 말씀하시죠. 강 어르신께서 너무 예의를 갖추고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어떤 일이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일이 끝나고 신은지가 박태준의 고충을 알게 되더라도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금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이다. 진유라에게는 바랄 것이 없다.진유라는 자신에게 나쁜 점수를 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절대 나서서 화해를 시키지 않을 것이고, 그를 도와 신은지 앞에서 좋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박태준은 이 새로운 장인어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사위를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한다는 말이 있다. 박태준은 조용히 자기 자신을 검사했다. 지금 옷차림도 행동도 단정했으며, 열성적이면서도 비굴한 태도는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도 훌륭한 사위였다. 강태민도 예의를 갖추며 룸으로 들어갔다. 신은지는 이미 강태민에게 사건들을 한차례 말했고, 자신이 의심하고 있는 것들도 말했다. 육정현은 웨이터를 불러 테이블 위의 접시를 모두 치우고, 차를 내오라고 했다. 강태민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