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신은지가 육지한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육지한은 담담하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 사이, 신은지는 휴대폰에 찍힌 전화번호를 보게 되었지만 그 번호는 신은지의 것이 아니었다."죄송합니다,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육지한이 두어 걸음 떨어진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죠?"신은지는 여전히 연결음만 들려오는 휴대폰을 잡고 기다리다 결국 자동적으로 끊길 때까지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다."어디 가요?"육지한이 통화를 끝내고 그녀에게 다가왔다."집에 갈 거예요."나연그룹에는 매일 갈 필요가 없었다. 방안도 결정 났고 이제 남은 건 세부적인 것뿐이었다. 이런 것은 집에서도 할 수 있었기에 마지막 결정을 하기 전, 가면 그만이었다.……신은지의 발은 반달이 지나고 나서야 나았다. 하지만 여전히 오랫동안 걸을 수 없었다. 근육을 다친 탓에 천천히 요양해야 했다.주말이 되어 진유라는 신은지와 함께 쇼핑을 하자고 했다. 쇼핑이라고 했지만 그저 카페에 앉아있으려던 것이었다."이따 뭐 먹어?"그 말을 들은 진유라가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었다."나 요즘 밥 너무 많이 먹어서 토할 것 같아. 나 좀 놔줘. 우리 엄마 하루에 남자 6명을 안배해서 선 보게 해.. 하루에 6끼를 먹어야 한다고, 요즘 남자랑 밥만 보면 토 나와."신은지는 선을 본 경험이 없었다. 일찍 결혼한 탓에 그 누구도 이런 걱정을 한 적도, 안내해 준 적도 없었다.하지만 하루에 6명은…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너희 어머니 너 배탈 날까 봐 걱정도 안 된다니.""그건 상관없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데리고 가면 돼. 저번에는 두 사람 동시에 만난 적도 있잖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지."상황이 조금 난감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건 신은지에게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진유라는 여자 바람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끼리끼리 모여 논다더니, 밥을 먹으면서도 남의 걸 탐내고 있네요."그때, 한 여자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를 들은 신은
신은지에게 다가간 진선호는 걷어 올린 그녀의 소매를 다시 내렸다.“에어컨을 온도를 너무 낮춘거 같은데 춥지 않아요?”오늘은 화창한 날씨이였지만 4월 말이어서 그늘진 곳은 공기가 찼다. 쇼핑몰은 사람들로 붐볐고 에어컨을 빵빵 틀고 있었다.신은지: “어떻게 온 거예요?”진선호는 진유라를 힐끔 보고 말했다.“누군가가 저에게 문자를 보냈고 마침 제가 이 동네에 있어서 왔죠.”사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들은 최유리와 한 쌍으로 묶으려 했고, 그는 어머니의 회유로 이곳에 왔다. 근처에 막 도착했을 때 진유라의 문자를 받은 것이다.최유리는 아직 바닥에 앉아 신은지의 소매를 내려주는 진선호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그는 신은지에게 다가가면서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오빠!”진선호는 고개를 돌렸다.“바닥에 앉아 뭐 하는 거야? 안 차가워?”최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치가 없는 것이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그는 상대의 소매를 내리는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사랑꾼 같은 모습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그녀는 더욱 불만을 품었다.“조심하지 않아, 그만 넘어졌어.”다른 남자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다른 마음이 없더라도 손잡아 줄 테지만 항상 훈련받거나 다른 사람을 훈련시키고 있었던 진선호는 실수로 넘어졌어도, 심지어 허들에서 굴러떨어진다고 해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는 태도였다.하여 그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넘어지면 일어나. 별일도 아니잖아.”최유리: “...”“다른 사람들 방해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최유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은 가슴을 아리게 했지만, 이 남자의 얼굴에는 조금의 동정심도 없었다. 그저 귀찮아하는 모습이었다.신은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치스러움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얼굴을 가리고 카페를 뛰쳐나갔다.진유라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그러다 평생 혼자 살 수도 있어요.”진선호는 신은지의 옆자리에 앉으며 휴대
박태준: “내 번호를 차단한 거야?”회사에서 신은지에게 여러 번 연속 전화를 건 박태준은 그제야 자신이 차단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신은지는 지문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박태준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는 요즘 그녀를 돌봐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그녀의 공간에 입주했다.비록 소파에서만 잘 수 있었지만 적어도 집안으로는 들어갈 수 있었으니 꽤 성공적이었다.거실을 점령했으니 언젠가 침실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 그가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신은지가 말했다.“내 발은 이미 괜찮아져서 더 이상 돌봐 주지 않아도 돼.”“발을 다쳤을 때는 그림자도 안 보이던 자식이 다 나으니 나타나서 얼마 되지도 않는 식사로 그렇게 기뻤던 거야? 이렇게 오랜 시간 옆에서 돌 본 나한텐 왜 미소 한번 지어주지 않아?”방금 미소를 머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신은지가 그를 발견하고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마치 그녀가 그를 만나기 싫어하는 것을 남들이 모를까 두려운 사람처럼 말이다.“얼마 되지 않은 식사지만 기분이 좋아. 당신은 이렇게 하찮은 것도 해주지 않잖아?”과거의 일이 떠오른 탓인지, 신은지의 말투는 공격적이었다. 아주 강렬한 감정이 실려있었다.“옷장에 있는 옷과 장신구, 여기저기 쌓여있는 가방들까지 모두 내가 사준 거잖아. 돈으로 따지면 그딴 생선, 평생 먹을 수 있을 정도야.”참아왔던 화가 폭발했다.마주 서고 있어 그녀의 붉은 입술이 시야에 들어왔다.분명 생선을 싫어하는 그녀가 그 자식을 위해 억지로 행한 행동이 떠오르자, 분노가 일었다.“아줌마가 당신이 생선을 싫어한다고 했어. 그런데 그 자식이 발라주는 건 기꺼이 먹더군.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상대가 누구냐가 중요한 거였지?”“그런 말은 잘도 기억하면서 왜 내가 열이 39.5까지 올라 전화했을 때에는 오지 않은 건데?”“그땐 해외 출장 중이었어.”그는 언제 열이 났는지 묻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때 그는 진영웅에게 비
다음날.신은지는 한산 별장으로 갔고 육지한이 그녀와 동행했다.그들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몇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불과했다. 얼굴 없는 그 남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무는 육지한때문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2층으로 갈 수 없는 육지한은 엘리베이터 문 앞까지만 동행했다.예전에는 곧장 올라갔지만, 오늘은 난간을 잡고 그녀가 물었다.“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아요?”그림은 이미 복구되어서 오늘 그분과 만나기로 했다.육지한: “호기심은 종종 나쁜 결과를 불러오죠.”웃고 있던 신은지는 그를 흘겼다.“너무 재미없네요.”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그녀는 요즘 그림을 복구하고 있어서 서재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밝고 통풍이 잘되는 곳을 선호했기에 그녀를 싫어하는 이안나지만 그녀를 위해 커튼과 창문을 열어주었다.하지만 오늘밤은 달랐다.그분이 있었기 때문이다.노크하고 응답을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안은 어두웠다.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자 거튼 옆에 서 있는 사람을 겨우 볼 수 있었다.“오늘 밤에 조금만 더 복구하면 완성될 것 같아요. 나가실 건가요? 제가 불을 켜드릴까요?”어둠 속에 괴물이 숨어있을 거 같은 느낌에 견딜 수가 없었다.“나가도 돼요.”남자는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도 하고 있었다. 손에 장갑까지 낀 채 온몸을 단단히 가렸고 피부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신은지는 그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고 확신했다.그녀는 작업 책상을 가리켰다. 그녀는 아직 물건을 챙기지 않아 모두 그대로 남아있었다.“이렇게 많아서 옮기는 시간이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과장된 말이었다.그녀의 손짓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던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발걸음을 옮겨 문 쪽으로 향했다.“속도를 올려요. 그림을 너무 오래 끌었어요.”신은지: “알았어요. 제가 더 급해요.”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다 발을 삐끗해 그만 남자와 부딪히려 했다.상대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그녀를 부축했다.신은지는 그의
진짜 신분으로 돌아간 육지한은 그녀의 경호원을 볼때보다 더 차가웠다.그녀를 하찮게 보면서 말했다.“우리는 그저 파트너일 뿐이에요. 남포시에서 당신을 구해준 것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죠. 당신에게 투자한 금액이 한두 푼이 아닌데 이대로 날려버릴 수는 없죠.”그는 모자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3층에는 신경 꺼요. 누군가가 있다고 했고 그건 내 사람이고 돈 받고 일하는 부하직원인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어요.”신은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전 어머니에 대해 알고 싶어요. 내가 그 계약에 동의한 이유이기도 하죠.”만약 그들이 그 사진들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막을 알고 있는 듯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육지한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알아내기 전에 남포시에 목숨을 바칠 뻔했어요. 당신의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을 거예요. 배후의 그 분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신은지: “내가 꼭 확인 해야 한다면요?”“...”육지한은 조금 화가 난듯했다.“만약...”그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한번은 구할 수 있어도 매번 구할 수는 없어요. 기어코 멈추지 않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그저 죽기 전에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미리 준비하세요.”신은지: “네.”육지한: “...”이 여자는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건가?지금 설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건가?그림을 마친 신은지는 그것을 윤지한에게 건넸다.“보시고 문제가 없으면 당신에게 넘길게요.”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상급에서 지시한 일을 아직 완성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였다.그러니 그림 따위가 들어올 리 없다.그림도 그저 신은지에게 접근하려는 핑계여서 이미 목적을 달성한 그는 그림이 쓸모가 없어졌다.그는 무심히 훑어보고 한켠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그림에 마음이 아팠지만, 복원
박태준 입을 닫았다.밥 한 끼가 이렇게 조용하고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신은지가 계산하려는데 박태준이 잡았다.“이미 계산 했어.”손을 잡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손을 잡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녀도 원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하지만 이렇게 잡은 순간 더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날씨도 좋은데 걸을까?”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그녀는 어디가 좋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조금 기온이 떨어져 몸에 닿는 바람이 차가웠다.“아니, 난 집에 갈래.”생각이 많기도 했고 피곤한 하루였다.걸을 힘은 더더욱 없었고 돌아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영화를 보며 힐링하고 싶었다.그에게 잡힌 손을 빼려는데 그가 말했다.“남포에서 있은 일을 누가 지시했는지 알아?”깜짝 놀란 신은지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알아냈어?”“응.”박태준은 기회를 잡고 그녀의 손을 다시 잡으며 그녀의 옆으로 갔다.“나랑 걸으면 알려줄게.”상대가 육지한이라고 이미 알려주었다. 단지 그녀를 속이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머뭇거리던 신은지는 박태준의 말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손 놔.”박태준은 아쉬움 가득 그녀의 손을 놔주었다.신은지: “어딜 걸을까?”남자는 사람이 붐비는 곳을 손으로 짚었다. 그의 목적은 걷기가 아니었기에 어디든 상관 없었다.사람이 많아지고 길은 붐볐다. 몇몇 아이들이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있었다. 박태준은 신은지를 잡아끌어 품속에 안았다.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었다.사람이 많이 모인 곳일 수록 음악 소리가 컸다. 라이브를 켜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박태준의 신경은 온통 신은지였다. 혹시라도 다치게 될까 봐 노심초사 중이었다.“진선호, 그 자식이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길거리 음식도 함께 먹을 수 있고 뼈도 발라줄 수 있으니 그 자식은 좋아하지 마. 진씨 가문은 생각보다 안 좋아. 부모들이 너무 까다로워서 네가 힘들어...”“전에 내가 나빴다는 걸 알고 있어. 남편으로서 책임
신은지는 그들과 친하지 않다. 그들 중 한 명과는 딱 한번 만나 본 적이 있다. 당시에 상대의 이목구비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기품 있는 분위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굳이 뽑자면 그들 중 뒤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과 더 익숙하다. 다름 아닌 어제 자신과 잠시 해프닝이 있었던 최유리였기 때문이다. 신은지는 일행을 향해 허리를 꼿꼿이 폈다.“진 이모님.”진선호 모친은 침착한 태도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표정은 한치의 변함없이 기품을 유지했다. 하지만 웃음은 짓지 않았다.“이 근처에 일 처리할 게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마침 신은지 양과 커피라도 할까 했는데 아마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신은지 양과 박 대표는 여전히 사랑하시나 봅니다. 재혼하시게 되면 진 씨 집안이 큰 선물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신은지에게 자신의 아들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가 분명하다. 진선호 모친이 얕은 미소를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보시다시피 제 아들이 사지만 멀쩡하고 머리가 딱히 좋지 않습니다. 아마 신은지 양의 행동이 작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이 고된 모친의 마음을 헤아려 아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을 비하하는 듯한 말에는 오만함이 섞여 있다. 그녀가 자라 온 환경과 위치 덕에 가질 수 있는 베짱이다. 만약 박태준이 자리에 없었다면 더 직설적인 말이 날라 왔을 것이다. 신은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진 이모님, 저는 아드님께 설명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제 어떠한 행동도 실례되는 혹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해를 한 사람은 진선호 씨입니다, 그렇다면..”그녀는 상대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진선호 모친의 뒤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최유리를 바라보았다.“혹시 이모님 뒤에 계신 불여우가 무슨 말이라도 한 걸까요?”최유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몸이 반응했다. 신은지를 노려 보면서 말했다.“누구 보고 불여우 라고 하시는 거예요?”곁에 박태준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진
신은지의 손은 여전히 박태준에게 잡혀 있었다. 위로 올려다보자 그의 동공에 그녀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박태준은 연한 색의 긴 셔츠와 진한 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다. 셔츠 반 쪽은 이미 비 때문에 완전히 젖었고, 머리도 비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품 있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옷이 젖어도 전혀 초라하지 않았다. 박태준이 신은지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만지작거렸다. 일종의 스킨십이지만 변태적인 행동은 아니다. “은지야, 네가 나랑 결혼 했을 때 부터 넌 이미 박 씨 가문 사람이야. 의지해도 돼.” 자신을 도와 준 행동에 감동을 받고 있었는데 그의 한 마디에 감정이 팍하고 식었다. 신은지가 가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기대기 참 좋겠네. 그리고 아무도 내가 박 씨 가문 사람인지 모르겠지.”친한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두 사람이 부부 사이인지 모른다. 박태준은 노기가 서려있는 신은지의 얼굴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너도 남한테 내 와이프라는 사실 말 한적 없잖아.”그렇지 않고서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신은지는 화가 나서 코웃음을 쳤다. 이성과 교양으로는 몸속에서 날뛰는 분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발로 차서 멀리 날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책임을 떠넘기는 데에 선수가 확실하다. “그래서 매일 나한테 차갑게 대하고, 결혼 사실 숨기고 다닌 거야? 네 말대로 라면 내가 목에 간판이라도 걸어서 돌아다녀야 했어야 했겠네?”박태준과의 결혼은 오해로부터 시작된 줄 알았다. 신문사가 일을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결혼이 그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신문사에게 사진도 넘겨주었다.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그는 남편 또는 부부의 의무도 하려 하지 않았다. 이혼하고 서로 모르는 척 지냈으면 했지만 오히려 ‘사랑’ 을 내밀면서 신은지의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진정 자신을 사랑했다면 3년의 결혼 생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