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제가 배 씨에 심어놓은 사람의 보고에 의하면 배유정이 몇 년 동안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천우 그룹을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요.”나는 배현우를 보고 마음속으로 깨달았다.“그게 당신이 그녀와 외부 유착을 의심한 결과에요?”“맞아요.”배현우는 나를 보며 감탄하듯 웃었다. “하지만 배유정도 허씨 가문이 그녀를 제재한 후 천우 그룹이 그녀 손에 있다고 해도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어?”나는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당신의 아버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그는 허씨 가문에서 자랐으니까!”배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는 이미 준비를 하셨고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진행됐어요. 다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허씨 가문은 아버지의 비상 계획을 가동했어요.”“우리는 많은 프로젝트와 사업이 애초에 천우 그룹의 구조에 있지 않았고 원래 있던 것들도 점점 축소되어 페이퍼컴퍼니였어요. 진짜 천우 그룹은 내가 15살 때 허씨 가문에서 내 손에 넘겨주었어요. 그녀는 속수무책이었죠.”배현우는 이 말을 할 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서 나를 쳐다보았다.“특히 당신을 찾은 후, 더 이상 아무런 구속도, 고려해야 할 것도 없었어요. 당신이 살아서 내 곁에 있으니 잡념 없이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상대할 수 있었어요. 이건 하늘의 뜻이죠.”“허씨 가문이 정말 당신을 아끼는 것 같아요. 당신 아버지도 정말 안목이 뛰어나고요. 만약 살아계셨다면 이십 년 동안 당신 부자는...”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아버지의 상업 안목이 예로부터 정확했어요. 일찍이 한국의 발전을 내다봤기 때문에 중점을 한국에, 황금도시 서울에 두었어요. 하지만 내가 서울에 오기로 결심한 중요한 원인은...”여기까지 말한 그는 나를 보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는 이 원인이 반드시 나를 찾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그들이 단서를 찾았는데, 당신을 대신해서 죽은 설이는 호주
나는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거리며 불쾌하게 중얼거렸다.“늙은 여우! 속셈이 너무 많아요.”배현우가 박장대소하자 새하얀 치아가 눈부시게 빛났다.“그건 속셈이 많은 게 아니에요. 반드시 전면적으로 확인했어야 했어요. 게다가 그때는 천우 그룹의 운영권을 회수하려고 하는 중요한 시기였어요. 비록 빈 껍데기일지라도 부모님이 남겨주신 것이니 반드시 되찾아서 그녀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성장시켜야 했어요. 이것이야말로 그녀에게 가장 큰 타격이니깐요.”나는 일어나서 물을 가지고 와서 차 한 주전자를 끓여 배현우에게 한 잔 따라 주었다.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나를 다시 자기 품으로 끌고 가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말을 계속했다.“그 후 당신의 자료를 철저히 조사한 뒤 사람을 시켜 주시했어요. 공항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당신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나는 깜짝 놀라 턱이 빠질 뻔했다.“공항이 우연이 아니라고요?”배현우는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물론 아니죠!”“의도적으로 당신을 접촉했어요. 그때 당신이 담이 아팠을 때 병원에 데려가서 혈액을 철저히 검사했는데 혈액 샘플의 DNA가 완전히 일치했어요. 상처의 위치와 조사 결과도 완전히 일치했는데 무슨 의문이 있겠어요?”배현우의 눈동자에는 따뜻하고 편안한 웃음이 가득하며 약간의 득의양양함도 있었다.“오랫동안 계획을 세웠군요?”나는 좀 믿기지 않았다.“그때 당신은 이미 알았어요?”“네! 그래서 당신이 빨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만 했어요. 신호연을 조사해 봤는데 선의를 베풀어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배현우가 분개했다.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에게 기대어 그때 일을 회상했다. 어쩐지 천우 그룹이 그렇게 힘써 주더라니,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이 남자의 손바닥 안에 있었군.모든 것이 나를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어떤 힘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예감이 있었는데 이제야 이것이 어떤 힘인지 깨달았다.갑자기 전화벨이 우리 둘 사이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나의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 듯 다급하게 물었다.“지아야, 어디야? 왜 아직도 안 들어와?”초조한 그녀의 말투에서 걱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봤다. 알고 보니 이미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다.나는 시간이 너무 빨리지나가 나도 모르게 경탄했다. 나와 배현우가 오후 내내 여기에 있었다니.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많은 것 같았다.나는 얼른 마음을 다잡고 전화기에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편하게 말했다.“엄마, 사무실에서 막 회의를 마쳤는데 마침 현우 씨가 저를 데리러 와서 저희 곧 돌아갈 것 같아요.”“아, 아직도 사무실에 있어? 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어.”그녀의 말투에는 의심이 가득합니다.“에이! 사무실에 있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요. 멀쩡하니 안심해요!”“그럼 됐어. 얼른 들어와.”엄마가 당부했다.“네! 얼른 들어갈게요. 끊을게요!”나는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말을 마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배현우는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내가 감정이 격해지자 안쓰러운 듯 큰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 “괜찮아요. 다 잘될 거예요!”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까요? 그들은 평생 저를 사랑했는데 제가 가짜였으니! 현우 씨, 도대체 왜 이런 거예요? 제가 어쩌다 한씨 가문에 오게 되었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배현우는 가슴이 쓰리고 아파하는 내 모습에 이마에 키스를 하고 눈물을 가볍게 닦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탓이 아니에요.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것들은 당신에게 너무 갑작스러웠어요.”배현우의 큰 손은 나의 아래턱을 들어 올려 나의 눈을 주시했다.“당신의 뜻을 존중할게요. 자신을 강요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도 돼요. 사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한 모든 사람도 몰라요. 당신이 서서히 기억을 회복해야만 완벽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속상해서 말했다.
이 '어머니, 아버지'는 그들에 대한 존중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설이에 대한 일종의 위로이자 배현우의 일종의 박애도 포함되어 있다.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의 눈에 도도하고, 차갑고, 난폭하고, 기세등등한 사람이지만 나에게만 냉혹한 면을 내려놓고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찬란해진다.내 주변 사람에게까지도 그는 공손히 예의를 지킨다.나는 아름답고 쾌활해 보이게 순순히 세안을 했다.그리고 배현우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어 그를 장난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집에 가요.”나의 한마디에 배현우는 매우 감동적인 얼굴로 손을 뻗어 나를 꽉 껴안았다.“지아 씨, 너무 좋아요. 나는 이날을 몇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나는 당신이 밖에서 떠돌아다니지 않게 매일 당신을 집에 데려가고 싶었어요. 아무리 많은 사람과 일이 있어도 나는 안심할 수 있어요.”나는 흐뭇하게 배현우의 품에 기대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었다. 마음속으로 ‘그 아름답고 밝은 미소년이 내 것이었구나’ 생각했다.지금 나는 정말 그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떠올리고 싶었다.배현우는 나를 다정하고 바라보며 패기 넘치게 말했다. “당신만이 세상의 정상을 내 곁에서 볼 자격이 있어요!”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모든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말아요. 내가 바로 한지아예요. 그들이 누구든, 그들의 사랑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했어요. 그들은 나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조마조마하며 나를 애지중지 키웠어요. 이것은 모두 저의 재산이에요. 그들이야말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어요.”“좋아요! 당신 말 들을게요!”배현우는 몸을 숙여 나의 입술에 탐욕스럽게 키스했다.“가요! 집에 가야죠!”길에서 배현우는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찾은 듯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핸드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서강훈이었다. 나는 아마도 신호연의 소식일 거라고 생각했다.나는 배현우에게 화면을 한번 보여주고 전화를 받았다
“손을 쓰면 반드시 잡혀요. 그녀에게 기회를 주어야 해요.”나는 차갑게 말했다.서강훈은 분개하여 말했다.“이 사람은 정말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에요. 사람이 차를 마시기도 전에 차가 식은 격이에요!”서강훈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신예가 내부적으로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회사 내부가 이미 불안정해요?”서강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한 대표님 어디 불안정한 정도겠어요. 처음에 신호연과 함께 의기양양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모두 180도 태도를 바꿔 앞다퉈 신호연을 밟고 있어요.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모두 전희의 꽁무늬를 따라다니며 그녀에게 어떻게 신호연을 괴롭힐지 계획을 세워주고 있어요.”서강훈은 매우 화나고 분노가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그도 신예의 처리를 매우 안타까워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서강훈에게 담담하게 말했다.“자세한 부분까지 파악해서 천천히 그들과 결판 지어요. 안 급해요.”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배현우의 얼굴에 방자하게 웃으며 내 손을 살짝 주물렀다.서강훈이 또 말했다.“지금 그 여편네는 의기양양하게 뽐내고 우쭐대며 사람과 돈을 끌어들이고 있어요. 원래 신호연이 가지고 있던 신구 프로젝트를 모두 집계하여 신호연에게 권력을 넘겨주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전희가 이미 아래의 담당자들을 매수해서 신호연은 이제 도저히 대항할 수 없어요.”나는 침묵했다.“보아하니 신예 내부에 이미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다 신연아때문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횡포를 부리고 밑의 사람들에게 전부 밉보였으니 지금 기회가 왔을 때 당연히 짓밟으려고 하죠.”서강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같이 투자한 몇 명은 모두 전희가 부추겨서 투자를 철회하려고 하고 있어요.”내우외환! 너무 현실적이다.“지금 아무도 신호연을 도와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늦게 발을 뺐을까 봐 겁을 먹고 있어요. 신호연은 이번에 제대로 곤두박질쳐서 회사를 지키지 못할 것 같아요. 돌을 들어 자기 발등을 찍은 격이죠. 현재 모든 계좌가 전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콩이와 제인의 웃음소리가 건물 전체에 들렸다.이는 조용한 경원에 많은 생기를 더했다.경원에 이사 온 뒤로 어머니는 부엌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었고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때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우리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바쁜 일을 끝냈네.”어머니는 줄곧 내 얼굴을 주시하며 자세히 살폈다.“배고프죠? 다음에는 저희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드셔도 돼요. 바쁘다 보면 조금 늦을 수 있어요. 모두 지금까지 굶었잖아요.”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앞으로 저희가 늦게 돌아오면 미리 전화할게요!”마침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오시는 걸 보니 그도 이제 막 일을 끝낸 모양이다.담당 주방장이 공손히 다가와 배현우에게 말했다.“선생님, 지금 식사해도 될까요?”배현우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네! 당장 밥부터 먹어요!"그리고 아버지를 보고 말했다.“아버님도 이제 일 끝나셨어요?”아버지는 호탕한 미소를 지으셨다.“응, 여기 너무 좋아. 여기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참! 나 좀 도와줄 수 있어?”배현우는 아버지를 모시고 주방으로 걸어가며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말씀하세요.”아버지는 그를 보고 웃으시며 물으셨다“그런 원예 방면의 책을 몇 권 얻어줄 수 있어?”“있어요,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바로 가져오라고 할게요.”“아니야. 번거롭게 가져오게 하지 말고 퇴근길에 가져다줘. 원예에 관해서 연구해 보고 싶어.”그의 말은 나를 웃게 했다. “아버지, 아예 원예 선생님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일할 때 친구가 있잖아요.”배현우도 웃으며 넉살 좋게 말했다.“지아 씨 말이 맞아요. 그러면 되겠어요.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할게요. 앞으로 정원 가꾸는 일은 아버님이 수고해 주세요.”노인네가 흥분하여 쾌활하게 웃으시니 보기에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였다.이전에 늘 위축되어 있던 모습보다 훨씬 강해져서 마음이 매우 기뻤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또 다른 아빠가 떠올랐는데 나
나는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배현우에게 사람을 잡았다고 보고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알았어! 그럼 그녀가 잘 반성하게 해!”배현우는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나는 흥분된 표정으로 배현우를 봤다. “강숙자를 잡은 거죠?”“역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네요.”배현우는 감탄했다.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잡혔어요. 훔친 물건도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모두 있는데 아마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것 같아요.”“그녀는 아무나 다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네요. 신연아가 자기 엄마가 이런 사람인 걸 알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나는 코웃음쳤다.“정말 모전여전이네요.”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배현우를 쳐다봤다. 배현우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일어나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배현우는 바인더를 꺼내어 내 앞에 놓고는 나에게 눈짓했다. 책상 위의 물건을 보며 나는 어안이 벙벙했는데 배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봐봐요. 당신이 궁금했던 것일 거예요.”나는 손을 뻗어 바인더를 천천히 열었는데 안에는 이재승의 개인 자료가 들어있었다. 제일 위의 이력서에는 그의 증명사진이 있었는데 사진 속의 사람은 외모가 훤칠하고 눈빛이 예리했다. 나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구나! 확실히 미간 혹은 표정이 그와 조금 닮았어.’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며 마음속으로 묵묵히 '아빠'라고 불렀다!배현우는 돌아서서 한 캐비닛에서 두툼한 앨범을 꺼냈다.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받아 들고 지체 없이 열었다. 이 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나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싶은 학생처럼 내 어린 시절에 관한 모든 것을 내 머릿속에 보충하여 부족한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배현우는 조급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손으로 이것들을 감쌌다. “내가 천천히 볼게요. 가져가지 말아요. 이것들 다 볼 거예요.”배현우는 마지못해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나를 일으
이튿날 아침.도혜선의 전화가 내 잠을 깨웠다. 어젯밤에 배현우에게 시달려 녹초가 되었다. 잠을 더 자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이 녀석이 일찍 전화가 왔다!잠결에 전화를 가져와 보지도 않고 받았다. 전화기 너머 도혜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나는 잠이 덜 깬 채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어젯밤에 늦게 잤어!”“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너무 안일해. 약간 본분을 망각한 것 같아.”도혜선이 나를 조롱하며 놀렸다. “언니는 정말 철이 안 들었구나. 이런 말도 할 수 있다니.”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반박했다. “언니야말로 한가해!”도혜선은 반대편에서 깔깔 웃었다. 이렇게 나는 잠을 다 깼다. “어서 일어나. 이미연의 회사가 오늘 안산에 시찰하러 간다고 하던데 안산에서 특집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해. 안산이 중점 개발의 전형이잖아? 이미연이 우리 프로젝트에 좋은 기회라고 했어. 마침 그들이 다큐멘터리를 찍는데...”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 안 들이고 홍보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세한 보도도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내가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바로 일어날게. 언제 출발해?”나는 재빨리 일어나 침대를 기어 내려갔다. “급할 것 없어. 우리는 그들과 동행할 필요 없이 점심 전에 도착하면 돼. 이미연의 뜻은 점심에 함께 간단히 식사하고 우리는 천천히 운전해서 가라고 했어. 오늘은 어차피 토요일이라 가는 길에 차가 많지는 않을 거야. 이참에 휴식도 하고.” “그래.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차 씨 노부인이 경원에 오신다고 했어. 만나 뵙고 갈게.”나는 도혜선에게 말했다. “그럼 알았어! 준비되면 전화 줘. 내가 그쪽으로 가서 합류할게.”도혜선은 흔쾌히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나는 얼른 씻고 커튼을 열어봤다. 밖에 날씨가 매우 흐린 걸 보니 비가 올 것 같다.다이닝룸에서도 배현우를 못 봤는데 이렇게 일찍 어디 간 건지 궁금했다. 내가 아침을 다 먹기도 전에 집사 용씨 아저씨가 와서 차 씨 노부인께서 도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