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콩이와 제인의 웃음소리가 건물 전체에 들렸다.이는 조용한 경원에 많은 생기를 더했다.경원에 이사 온 뒤로 어머니는 부엌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었고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때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우리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바쁜 일을 끝냈네.”어머니는 줄곧 내 얼굴을 주시하며 자세히 살폈다.“배고프죠? 다음에는 저희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드셔도 돼요. 바쁘다 보면 조금 늦을 수 있어요. 모두 지금까지 굶었잖아요.”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앞으로 저희가 늦게 돌아오면 미리 전화할게요!”마침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오시는 걸 보니 그도 이제 막 일을 끝낸 모양이다.담당 주방장이 공손히 다가와 배현우에게 말했다.“선생님, 지금 식사해도 될까요?”배현우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네! 당장 밥부터 먹어요!"그리고 아버지를 보고 말했다.“아버님도 이제 일 끝나셨어요?”아버지는 호탕한 미소를 지으셨다.“응, 여기 너무 좋아. 여기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참! 나 좀 도와줄 수 있어?”배현우는 아버지를 모시고 주방으로 걸어가며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말씀하세요.”아버지는 그를 보고 웃으시며 물으셨다“그런 원예 방면의 책을 몇 권 얻어줄 수 있어?”“있어요,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바로 가져오라고 할게요.”“아니야. 번거롭게 가져오게 하지 말고 퇴근길에 가져다줘. 원예에 관해서 연구해 보고 싶어.”그의 말은 나를 웃게 했다. “아버지, 아예 원예 선생님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일할 때 친구가 있잖아요.”배현우도 웃으며 넉살 좋게 말했다.“지아 씨 말이 맞아요. 그러면 되겠어요.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할게요. 앞으로 정원 가꾸는 일은 아버님이 수고해 주세요.”노인네가 흥분하여 쾌활하게 웃으시니 보기에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였다.이전에 늘 위축되어 있던 모습보다 훨씬 강해져서 마음이 매우 기뻤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또 다른 아빠가 떠올랐는데 나
나는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배현우에게 사람을 잡았다고 보고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알았어! 그럼 그녀가 잘 반성하게 해!”배현우는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나는 흥분된 표정으로 배현우를 봤다. “강숙자를 잡은 거죠?”“역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네요.”배현우는 감탄했다.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잡혔어요. 훔친 물건도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모두 있는데 아마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것 같아요.”“그녀는 아무나 다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네요. 신연아가 자기 엄마가 이런 사람인 걸 알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나는 코웃음쳤다.“정말 모전여전이네요.”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배현우를 쳐다봤다. 배현우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일어나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배현우는 바인더를 꺼내어 내 앞에 놓고는 나에게 눈짓했다. 책상 위의 물건을 보며 나는 어안이 벙벙했는데 배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봐봐요. 당신이 궁금했던 것일 거예요.”나는 손을 뻗어 바인더를 천천히 열었는데 안에는 이재승의 개인 자료가 들어있었다. 제일 위의 이력서에는 그의 증명사진이 있었는데 사진 속의 사람은 외모가 훤칠하고 눈빛이 예리했다. 나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구나! 확실히 미간 혹은 표정이 그와 조금 닮았어.’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며 마음속으로 묵묵히 '아빠'라고 불렀다!배현우는 돌아서서 한 캐비닛에서 두툼한 앨범을 꺼냈다.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받아 들고 지체 없이 열었다. 이 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나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싶은 학생처럼 내 어린 시절에 관한 모든 것을 내 머릿속에 보충하여 부족한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배현우는 조급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손으로 이것들을 감쌌다. “내가 천천히 볼게요. 가져가지 말아요. 이것들 다 볼 거예요.”배현우는 마지못해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나를 일으
이튿날 아침.도혜선의 전화가 내 잠을 깨웠다. 어젯밤에 배현우에게 시달려 녹초가 되었다. 잠을 더 자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이 녀석이 일찍 전화가 왔다!잠결에 전화를 가져와 보지도 않고 받았다. 전화기 너머 도혜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나는 잠이 덜 깬 채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어젯밤에 늦게 잤어!”“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너무 안일해. 약간 본분을 망각한 것 같아.”도혜선이 나를 조롱하며 놀렸다. “언니는 정말 철이 안 들었구나. 이런 말도 할 수 있다니.”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반박했다. “언니야말로 한가해!”도혜선은 반대편에서 깔깔 웃었다. 이렇게 나는 잠을 다 깼다. “어서 일어나. 이미연의 회사가 오늘 안산에 시찰하러 간다고 하던데 안산에서 특집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해. 안산이 중점 개발의 전형이잖아? 이미연이 우리 프로젝트에 좋은 기회라고 했어. 마침 그들이 다큐멘터리를 찍는데...”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 안 들이고 홍보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세한 보도도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내가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바로 일어날게. 언제 출발해?”나는 재빨리 일어나 침대를 기어 내려갔다. “급할 것 없어. 우리는 그들과 동행할 필요 없이 점심 전에 도착하면 돼. 이미연의 뜻은 점심에 함께 간단히 식사하고 우리는 천천히 운전해서 가라고 했어. 오늘은 어차피 토요일이라 가는 길에 차가 많지는 않을 거야. 이참에 휴식도 하고.” “그래.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차 씨 노부인이 경원에 오신다고 했어. 만나 뵙고 갈게.”나는 도혜선에게 말했다. “그럼 알았어! 준비되면 전화 줘. 내가 그쪽으로 가서 합류할게.”도혜선은 흔쾌히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나는 얼른 씻고 커튼을 열어봤다. 밖에 날씨가 매우 흐린 걸 보니 비가 올 것 같다.다이닝룸에서도 배현우를 못 봤는데 이렇게 일찍 어디 간 건지 궁금했다. 내가 아침을 다 먹기도 전에 집사 용씨 아저씨가 와서 차 씨 노부인께서 도
도혜선과 만난 후 그녀의 차를 타고 우리는 한차로 갔다. 출발할 때 하늘은 더욱 흐려져 시커먼 냄비 바닥 같았다. 하늘가에 하얀 틈만 조금 보였는데 답답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었다.“이 빌어먹을 날씨, 비가 올 것 같아. 우리는 정말 운이 없어. 왜 하필 이런 날을 선택했는지.:도혜선은 차를 몰면서 음산하고 무서운 하늘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어.”나는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어렸을 때, 나는 이런 날씨가 제일 무서웠어! 꿈에서도 항상 이런 검은 하늘이 보였는데, 하늘 끝의 그 빛만이 마치 갈라진 틈처럼 빛나고 있었어. 매번 내가 놀라서 깨면 어머니는 나를 안아 줬어.”도혜선은 내 말을 듣고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왜 그래?”도혜선은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어렸을 때?”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그런데 대답한 나조차도 조금 놀랐다. ‘어렸을 때?’난 어렸을 때 기억이 없는데?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아주 먼 기억,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하려고 했는데 머리가 욱신욱신 아팠다.나는 서둘러 눈을 뜨고 앞을 보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는데 마음이 당황스러웠다. 혹시 내가 무슨 생각이 떠오른 건가?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다.도혜선이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런 날씨는 제가 겪어본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둬.”도혜선은 내 손을 툭툭 치며 나를 위로했다.“그만 말하자. 어제 신연아의 우리를 보러 간다고 했잖아. 갔어?”“아니. 오늘 가려고 했었어. 신호연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그 아이를 서강훈 집에 계속 맡길 수도 없고, 나도 지금으로서는 더 좋은 방법이 없어.”도혜선은 성공적으로 화제를 돌렸고, 나는 그 아이를 생각했다.“이 신연아, 정말 대단해. 말끝마다 신호연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의 애를 임신하다니.
폭풍우가 말도 없이 닥쳐왔다. 서울 외곽을 벗어나자마자 큰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비가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헐, 이건 너무 세게 오는데?”도혜선은 조심스럽게 차를 몰며 목을 길게 빼고 앞길을 보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비가 어찌나 많이 오는지 전혀 소용이 없었다. “좀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자. 이런 비는 오래 오지 않을 거야!”나는 도혜선에게 건의하면서 목을 길게 빼고 밖을 내다봤는데 왜인지 눈꺼풀이 자꾸만 뛰어서 짜증 났다. ”지금 우리 위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산사태야. 게다가 얼마나 더 내릴지 누가 알겠어. 날씨가 아직도 이렇게 심각하니 나는 점점 더 거세질까 봐 무서워. 산사태까지 생기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도혜선은 저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언덕을 바라보았다. “안 돼. 계속 가자. 이 산길을 벗어나면 안전할 거야.”도혜선이 이렇게 말하자 나도 걱정되었다. 이 구간에서는 산사태가 자주 발생했다.길에서 다른 차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도혜선이 차를 몰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갑자기 전화가 울려서 주머니에서 꺼냈는데 배현우였다. 보아하니 걱정되어 연락한 것 같다.전화를 받자 배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까지 갔어요? 길은 괜찮아요?”“지금 가는 길인데 서지 못하고 천천히 운전하고 있어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요. 금방 서울대교에 도착해요.”나는 배현우에게 우리 위치를 구체적으로 얘기했다.주위에 오른쪽은 산, 왼쪽은 급경사로 지난번 콩이가 납치된 장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리를 건넌 후 3-4km 정도 가서 삼거리에 이르면 길이 더 나아진다. 이 구간을 벗어나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기도 하다.배현우는 전화로 나에게 말했다. “서두르지 말아요...”'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우리 차가 앞으로 한 번 갑자기 들썩였다. 내 손에 들려있던 전화기가 굴러떨어졌고 도혜선은 비명을 질렀다. 차가 심하게 흔들린 후 계속
내가 도혜선을 붙잡은 순간, 그녀는 힘껏 나를 감쌌다. 내 몸은 걷잡을 수 없이 왼쪽으로 쏠렸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것을 느꼈다. 도혜선은 나를 꽉 껴안았다. 차는 격렬하게 굴렀고 우리 둘의 비명소리는 무시무시한 충돌음에 파묻혔다...마침내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고 어지러움이 느껴졌다.갑자기 차가운 물을 뿌린 듯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팔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혜선 언니!”나는 가냘픈 목소리로 불렀다. 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안겨있었는데 그녀는 내 밑에 깔렸는데도 손을 놓지 않았다.“언니...”내가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콧속에는 희미한 피비린내와 빗물 냄새, 그리고 식물의 쓴 냄새가 진동했다.“혜선 언니, 괜찮아? 언니...”나는 몸을 추스르며 내 밑에 깔린 도혜선을 확인하려고 했다. 나는 갑자기 쥐 죽은 듯한 고요함에 공포를 느꼈다. 내 주변은 온통 빗물이 차를 때리는 찰싹찰싹 소리였는데 도혜선의 대답은 없었다.나는 몸을 조금 움직여 봤는데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차 전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도혜선은 내 아래에 있었다. 나는 손으로 도혜선 쪽의 좌석을 지탱하고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자기 몸을 지탱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갑자기 차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도혜선... 들려?”나는 큰 소리로 외쳤는데 극도의 두려움이 내 마음속에 생겼다. 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녀의 상태를 보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있는 폭이 크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 끼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도혜선, 일어나봐! 대답해!”피비린내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혜선은 꼼짝도 하지 않고 거기에 있었고 몸은 여전히 나를 지탱하고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도와주세요...”“현우 씨, 살려줘요... 빨리 누가 와서 혜선 언니를 구해줘요.”고함소리가 차 안에서 메아리치는 듯하더니 아예 빗
공포에 젖은 거대한 비명과 함께 나는 몸을 순식간에 일으켰고 순간 누군가의 팔이 나를 단번에 감쌌다. “지아 씨, 진정해요...”나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눈앞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하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현우 씨, 나는...방금 어떤 차가 우리를 들이받았고 난 그 충격에 창문 밖으로 날아갔어요...”배현우의 눈길은 나의 얼굴에서 벗어나질 않았다.“지아 씨, 뭔가 기억난 게 맞죠?”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방금 화면들은 실감이 나긴 했지만 분명 꿈이었기 때문이다.“걱정 마세요. 다 지나갔어요. 봐요.” 배현우는 부드러운 말투로 나를 위로했다.나는 멍하니 주위를 쓱 훑어보다가 갑자기 내 몸 밑에 깔려있던 도혜선이 생각나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여 몸 밑의 침대를 봤다. 그러고는 깊은 꿈에서 금방 깨어난 사람처럼 다급하게 물었다. “혜선 언니는요? 우리 혜선 언니는 어디에 있죠?”배현우는 내 등을 도닥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아직 응급 치료 중이에요.”나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며 내 귀를 의심했다.“응급...응급 치료 중이라고요?”순간 나는 평정심을 잃고 배현우를 밀쳐내고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다.“혜선 언니를 보러 가야 해요. 언니 상태가 어떻죠? 왜 응급 치료를 해야 하죠? 언니...언니가 심하게 다친 건가요? 혜선 언니는 나를 구하려고 그렇게 다친 거예요...”나는 갑자기 참고 있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도혜선을 응급 치료하고 있다고?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침대의 가장자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배현우가 나를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지아 씨...”“혜선 언니는 나를 보호하려고 자기 몸으로 나를 감싸안았어요. 그래서 내가 벼랑에 떨어지지 않은 거예요...” 나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범벅이 되어 흐느끼며 가까스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를 언니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요. 언니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요. 언니에게
“배현우 씨, 다행히도 환자는 목숨을 건졌어요. 그런데 환자의 갈비뼈가 골절되고 비장의 일부분이 파열돼 제거 수술을 했어요. 게다가 환자 머리에 뇌진탕이 있어 현재 혼수 상태에 있어요. 앞으로 쭉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이 소식은 나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도혜선이 어떻게 이 정도로 심각하게 다칠 수 있지? 진짜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인 것 같았다.“선생님, 환자가 아주 위독한 상태인가요?” 서강민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간신히 말을 꺼냈다.“잠시 후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내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해 봐야 할 것 같고요. 24시간 이내에 생명 징후와 여러 수치가 정상으로 나타나고 본인 스스로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면 이른 시일 안에 일반 병실로 돌아갈 수 있긴 할 것 같아요.”의사는 우리에게 자세한 설명을 마친 후 돌아서 응급실로 돌아갔다.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거리며 중얼댔다. “이게 다 내 탓이야. 나만 없었다면 혜선 언니가 이렇게 심각하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이에 이미연은 서둘러 나를 위로했다. “지아야, 너도 너무 자책하지 마. 나중에 우리 함께 중환자실에 가서 혜선 언니를 보자.”48시간 후, 도혜선은 마침내 일반 병실로 보내졌다.나는 팔뼈에 금이 가 감히 큰 동작으로 움직일 수 없어서 배현우가 최고의 특수 간호사를 나에게 붙여놨다.서강민은 도혜선이 아직 혼수 상태일 때 별다른 행동이 없이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기만 했다. 그 모습이 왠지 내 눈에는 참 가슴 아파 보였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는 서강민의 마음속에 분명 도혜선이 있다는 걸 대충 눈치챘다. 서강민이 우리 사고 소식을 어떤 경로를 통해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서강민과 도혜선 사이의 일은 우리 외부인이 뭐라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다.불행 중의 다행은 도혜선의 상태가 점점 안정되고 있다는 것이었다.이쪽 상황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김우연 쪽의 상황은 그다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비록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