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후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유심히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그녀의 얼굴은 순간 창백해졌지만 이내 핏기가 돌아왔다. 그러고는 여전히 실실 웃으며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운전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죠.”전희는 오만방자하고 눈에 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 전 그 짧은 순간의 미묘한 표정 변화 하나만으로도 많은 걸 설명할 수 있었다.나는 눈을 실처럼 가늘게 뜨고 담담하게 받아쳤다. “충고해 줘서 아주 고마워요. 그런데 어쩌죠? 저 고양이 띠라서.” 그러고는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가 바로 차에 올라타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줬다.“회사로 가주세요.”내가 다친 이후로 배현우는 내가 운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대신 운전기사를 한 명 안배했다.차에서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전희가 병원에 도대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그러다 잠시 생각을 중단하고 휴대폰을 꺼내 이동철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전희가 병원에 뭔 일로 왔는지 좀 알아봐 줘요.”전화를 끊기도 전에 또 다른 전화가 내 휴대폰으로 걸려 왔다. 남미주였다.“지금 어디야? ”“회사로 돌아가는 중이야.”“급한 일이라도 있어?”“응, 지시할 일이 좀 있어.” 나는 남미주에게 숨기지 않았고 그녀는 내가 다친 일을 전부 알고 있었다.“무슨 일 있어?”“아니야. 그럼 네가 볼 일 다 보고 나에게 전화해.” 그녀는 별다른 얘기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는 회사로 돌아와 먼저 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신예 건축에 관한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구 변호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만 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은 지금 저더러 이 사건을 담당하라는 뜻인가요?”“이 사건은 반드시 구 변호사님이 맡아야 해요. 나는 딴 사람을 믿을 수 없거니와 설령 그 사람에게 맡긴다 해도 승소할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어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 둘 사이의 소통은 점점 단도직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일 년 동안의 소통을 통
“그 어미에 그 딸이라고 엄마라고 생긴 사람이 그 따위 인간인데 딸이 어떻게 정상일 수 있겠어요?”나는 담담하게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 작은 아기가 나중에 과연 어떤 사람으로 변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인품이 좋은 사람이 교육하면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비뚤게 성장해 타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아이는 이런 내 맘을 알기나 하는지 작은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한 줌 잡아 입에 넣었다.“지아 언니, 나중에 신호연도 이 아이를 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가 너무 가엽잖아요. 아무래도 제 집에 며칠 맡겨둬야 할 것 같아요. 요 며칠 동안 나도 이 아이에게 감정이 생겼어요. 아무리 어린아이라 해도 필경 살아있는 생명이잖아요.”심은정은 나를 바라보며 걱정이 가득 찬 목소리로 우려를 토로했다.“도리는 저도 다 알아요. 근데 저는...”사실 나는 심은정이 뭘 말하려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아무리 감정이 있다고 해서 아이를 계속 곁에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의 출신에 관련된 정보가 아직 오리무중인 상태니까 말이다.“너무 무리해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요 며칠만 수고해 줘요. 내가 경찰에 문의해서 이 아이의 진짜 아빠를 빨리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 볼게요. 아이의 진짜 핏줄을 알아내는 게 아이에게 제일 좋은 결말이니까요.”나는 품속에 안겨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에게 나는 하나도 낯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나는 한쪽 손을 다쳐 움직이기 불편해 오른손으로만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는 붕대를 싼 내 왼손이 궁금해서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내 왼손을 만지작거렸다.“아이를 보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아요. 저는 단지 이 어린 것이 엄마를 잘못 만나 가슴 아플 따름이에요. 아이의 운명이 참...”심은정은 더 말하려다 주저하고 말을 아꼈지만 나는 그녀가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를 수 없었다.이때 내 가방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심은정은 아이를 떠받아 안았고 나는
나는 그녀의 대답에 약간 의아했다. 그래서 의혹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따지듯이 물었다.“나에...대한 일이라고?”“맞아.” 그녀는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쓱 훑어보며 대답했다.“어떻게 된 일이야?”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남미주를 바라봤다. 그녀의 장난기가 사라지고 사뭇 진지해진 표정은 나에 대한 이 발견이 무게가 있는 중요한 발견이라는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그녀는 나에 대한 시선을 거두며 내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내 어떤 면에 대한 발견이야? 왜 그렇게 뜸 들여? 말하기 어려운 일이야?” 나는 의혹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남미주를 바라보며 숨도 쉬지 않고 연달아 질문 폭탄을 날렸다. 그녀의 표정은 왠지 심각하고 무거워 보였다.“말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이 발견은...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꽤 많아.” 남미주가 이렇게 난처해하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본다. 나와 대화할 때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모습은 나도 참 생소하다.“나를 여기로 부르기 전에 말할지 말지 결정한 거 아니었어?”나는 아까보다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당연히 언니에게 말해야지.”남미주는 나를 힐끗 흘겨보더니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했다.“우리 가문이 어떤 사업을 진행하던 중...이런 걸 발견했어. 한 번 봐봐.”남미주는 말을 마치고 들고 있던 휴대폰을 머뭇거리며 내게 건네줬다. “잘 봐.”나는 서둘러 휴대폰을 받아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화면에는 고화질 사진 한 장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 사진은 화려한 정원에 이국적인 옷을 입은 한 젊은 여자가 의젓하고 부유해 보이는 노부인 뒤에서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총체적으로 조화롭고 따뜻한 분위기의 사진이었다.그런데 그 여자의 얼굴을 본 나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문을 잃고 말았다.내 시선은 그 얼굴에 고정되어 떠날 수 없었다. 딱 봐도 정교한 오관이 잘 어우러진 그 얼굴은 섬세한 아름다움이 물들어 있
나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읽어낸 남미주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이미 감시하도록 지시해 두었으니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알게 될 거야.”“믿을만해?”내가 남미주를 응시하며 물었다.“물론!”남미주가 의심할 여지 없는 단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지금 그 사람의 출처를 찾고 있어. 제일 중요한 거니까.”내가 그녀의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이 사진, 나한테 보내줄 수 있어?”“당연하지!”그녀가 여전히 굳건한 눈빛으로 말했다.“언니, 나한테 방법이 다 있어.”“이 사람 말하는 거야?”내가 고개를 들어 남미주를 바라보며 물었다.“어제 이세림이 나한테 만나자고 연락했었어. 날 포섭하려는 것이 분명해. 이세림 쪽이 이상한 것 같으니까 내가 접근해 보려고. 어때?”남미주가 나를 보며 물었다.남미주가 구체적으로 말하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의심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사진을 전송한 뒤 핸드폰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아직도 내가 안 미더워?”“그건 아니고. 근데 이세림에 대해 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어. 이세림이 똑똑하진 않은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것 같아. 그 내막을 자세히 알고 싶어.”남미주가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이세림이 혹시 꼼수를 쓰면... 흥. 상관없어. 그럼 같이 놀아주지 뭐.”“좋지. 그런데 네 말마따나 꿍꿍이가 있으니까 조심만 하면 돼. 전에 네가 다쳤을 때 그쪽 사람을 건드렸으니까.”내가 남미주에게 언질을 주었다.“배후는 아마 J 국의 그 조직일 거야.”남미주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그럼 이렇게 해. 내가 그 사람 파볼게. 어떤지.”“뭐든 조심해. 그 조직이 얼마나 강한지는 너도 아니까.”내가 남미주에게 신신당부했다.“안전제일!”“이세림 아직 그만한 능력 안 돼. 지난번은 그냥 사고였을 뿐이야.”남미주가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그러나 이때, 나는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대로라면 배현우가 조사 중인 방향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서동로에 도착한 나는 바로 경찰서로 들어갔다. 그리고 근무 중인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한 방으로 안내되었다.방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이미연의 옆에 한 젊은 청년이 앉아있었다. 그 청년은 꽤 수려한 외모였으나 표정은 흙빛이었다.나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청년은 아마 회사의 신입사원일 것이다.그런 이유로 아마 이미연은 책임을 회사에 떠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가 책임지게 된다면 신입사원에게 영향이 갈 것이므로. 이미연은 싹수가 보이는 후배는 절대적으로 보호해 주며 헌신하는 사람이었다.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건방지게 앉은 모양새가 누가 봐도 이 사건의 주동자인듯 했다.“이대로 그냥 가려고? 어림도 없지. 똑바로 들으세요. 오늘 나한테 분명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얼굴 바로 들고 다닐 수 없을 테니까. 제가 영상 인터넷에 뿌려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그 소녀가 안하무인의 태도로 두 눈을 부릅뜬 채 청년을 바라보며 위협했다.방으로 걸어들어가던 내가 험악한 얼굴로 뒤돌아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꺼져! 아직 내 말도 안 끝났는데 어딜 들어와.”나는 어리둥절하며 소녀의 차림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눈에 봐도 ‘부잣집 딸’의 비주얼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몇백은 쉽게 웃도는 가격의 액세서리들을 주렁주렁 걸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가방만 보아도 절대 싸구려는 아니었다.나는 비록 브랜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사치품인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저 아이가 테이블 위에 보란 듯이 세워 놓은 것이다.이러한 그녀의 과시하는 행동들을 보아 절대 고귀한 집안의 딸이 아니라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된 케이스일 것이다.나는 태연하게 그녀를 힐끗 보고는 담담하게 불었다.“저한테 한 말씀이에요?”그 소녀 애가 나를 매섭게 보더니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맞는데요. 왜요? 꺼지시라고요.”“하하. 건방지네요. 그럼 알려주세요. 제가 어떻게 꺼져드릴까요?”나는 그
주기찬은 마치 한 마리의 날쌘 치타처럼 눈 깜빡할 사이에 책상을 ‘휙’ 넘었다.우리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청년은 이미 소녀애의 목을 힘껏 조르고 있었다.“내가 감옥 가는 한이 있어도 넌 오늘 내가 죽인다.”이미연이 소리를 지르며 주기찬을 말렸다.“... 주기찬! 그만해!”나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미연과 함께 필사적으로 주기찬의 손을 아래로 당겼다.이때 경찰관 두 명이 뛰어 들어와 이성을 잃은 주기찬을 떼어내 제압했다.소녀애가 기진맥진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게 숨을 헐떡이며 씩씩대는 청년을 바라보는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또라이 같은 년. 정신이 나갔어. 넌.”주기찬이 욕설을 퍼부으며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걷어차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바로 이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한 중년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뒤로는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뒤따랐다.그는 눈앞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바닥에서 숨을 몰아쉬는 소녀를 보고 놀라며 물었다.“연서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소녀가 구세주를 본 듯 울음을 터뜨렸다.“아빠!...”중년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소녀를 품에 안고는 우리를 뒤돌아보며 분노 서린 눈으로 노려보았다.“누가 그랬어?”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여자애가 되바라진 것이 어른들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더니, 아버지라는 뒷배를 믿고 그랬던 것이구나.그 아이는 기세등등하여 이미연과 주기찬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눈에 조금 전의 공포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듯했다.“이 사람들이요! 이 아줌마 둘이 이 사람 시켜서 저 죽이라고 했어요! 빨리 혼내줘요.”소녀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이미연을 가리키며 말했다.주기찬의 두 손은 여전히 두 경찰관에게 잡혀 있었다. 그러나 소녀의 행동을 보고 이미연이 괜히 일을 당할까, 걱정되어 앞으로 돌진하며 말했다.“제가 한 겁니다! 저한테 따지세요. 당신 딸은 미쳤...”주기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남자가 큰소리를 쳤다.“때려!”
그 말은 우리가 그녀를 괴롭혔다는 소리였다. 덕분에 부녀는 더 의기양양해져 버렸다. 저 여자가 이곳에서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 같더라니, 정말 빽이 있었던 모양이다.방금 들어온 그 사람은 겉보기엔 차갑고 원칙적인 듯 보였지만 조금 전 그 말은 누가 들어도 한쪽을 겨냥한 말이었다.그의 이런 태도에 부녀는 더 기세가 등등해졌다.“건방지기 짝이 없구나!”오대철이 이 틈을 타 호통을 쳤다.“나 이 오대철이한테 덤비는 놈은 살다 살다 처음이다. 감히 우리 딸을 괴롭혀? 이놈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구나.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우리 연서가 마음에 들어 한 것만으로도 영광인 줄 알아야지. 어디서 감히 손찌검이야!”그는 노발대발하며 걸어와 단숨에 미연의 앞을 막아선 나를 홱 밀쳤다.아무런 대비 없이 밀쳐진 나는 균형을 못 잡은 탓에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이미연이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나는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왼쪽 팔을 감쌌다. 그때, 등 뒤로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지더니 나는 그의 품에 폭 안겼다가 다시 부축을 받고 몸을 일으켰다.나는 놀라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없는 와중에 고개를 돌려 보니 날 붙잡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문기태였다.그는 말없이 날카롭고 서늘한 눈빛으로 오대철을 노려봤다.오대철은 꼿꼿이 서서 문기태의 시선을 받아냈는데 아무래도 그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하긴, 문기태는 워낙에 나서는 걸 싫어하니 아무리 명성을 떨쳤다 해도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드물었다.그러나 그의 서늘한 눈빛만으로도 오대철의 기세를 눌러주기엔 충분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큰소리치던 오대철은 후에 들어왔던 그 중년 경찰을 슬쩍 곁눈질하기 바빴다.하지만 그 사람도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 문기태는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대철 소장님. 참 위엄 있으십니다. 하지만 자기 집안 위엄을 서에서 떨치려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소장?나는 소장이란 말에 잠시 멈칫했다. 어쩐지, 오연서
그의 돌발 행동에 모두 공포에 떨었다. 그가 당장 무슨 짓을 할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오대철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그러나 문기태는 시선을 떨구더니 의자를 끌어와 적당한 위치에 놓은 뒤 이미연을 앉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미연 씨, 다쳤어요?”그러자 이미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저 괜찮아요.”“어디 다쳤어요?”문기태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의 거듭되는 질문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이 움찔했다.이미연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왼쪽 어깨를 꾹 눌렀다. 그녀의 구겨진 표정으로 보아 꽤 심하게 다친 모양이다. 우락부락한 남정네들이 주먹을 쓰니 그 힘이 세지 않을 리가 없었다.그러자 문기태가 조용히 물었다.“누가 그랬어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는데 왜인지 등골이 오싹해났다.범인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뒤로 슬쩍 물러났다.문기태는 그런 그를 장장 5초 동안 집요하게 노려봤다. 그러더니 오대철에게 말했다.“소장님께서 오해라시니 한 번 들어 봐야겠네요. 제가 뭘 어떻게 오해한 건지.”그의 말에 오대철이 어쩔 수 없이 그의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던 그는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이었다.그러자 문기태가 고개를 돌려 주기찬을 한 눈 보고는 물었다.“그럼, 그쪽이 말해보시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말할 기회가 생기자 주기찬은 냉큼 이를 악물며 일어나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말해줬다. 그는 말할수록 점점 감정이 격해지더니 손을 뻗어 오대철을 짚으며 말했다.“저 인간이 사람을 시켜서 우릴 때렸어요. 그리고 저 사람은 그런 그들의 안전장치였고요.”문기태는 주기찬의 진술을 전부 들은 후 오대철을 보며 말했다.“소장님. 여기서 어느 부분이 오해라는 거죠?”“오씨 가문은 공권 남용을 일삼는군요. 집안 사람이 행패를 부리는 것도 방관하고 심지어 합당한 이유도 만들어주시는 소장님 능력 아주 대단하십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딴 권리는 누가 당신들한테 준 거지?”말을 마친 문기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