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우가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에 들어갔다. 핸드폰을 손에 올려놓고는 잔인했던 옛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봐요. 이 사람이 진짜 임윤아에요.”나는 사진 속의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아름다웠고 흑색의 두 눈동자는 생기 넘쳤고 웃는 모습은 찬란했다.“어머니가 떠난 그날 밤, 저와 지아 씨는 그 텅 빈 방에 기대어 있었어요. 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해요. 그때의 외로움, 무력감, 그리고 두려움을.”그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고통스러운 눈빛이었다.“나도 무서웠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어머니는 나에게 내가 사내니까 당신을 꼭 돌봐줘야 한다고 당부했었거든요. 그곳은 시끌벅적하고 화목했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 둘만 적막 속에 남겨지게 되었어요. 그 정적이 너무 조용해서 특히 소름 끼쳤었어요.”배현우의 입꼬리가 떨려왔다. 표정에 처연함과 쓸쓸함이 가득했다.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다시 생각해도 무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때의 당신은 그저 제 품에서 울기만 했죠.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어요. 잠을 잘 수는 더더욱 없었죠. 어머니가 임종할 때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서 맴돌았어요. 그때 저는 날이 밝으면 당신을 데리고 외할머니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그런데 날이 밝으면 우리가 갈라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죠. 배유정이 왔을 때, 그녀는 집을 보러 온 것이었어요. 배유정은 집에 들어온 이후 우리를 보고는 하인들에게 호통을 쳤어요. ‘우리가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냐고.’ 그는 하인에게 보내버리라고 지시했어요.”“저는 그 말이 당신을 보내라는 말인 줄은 몰랐어요. 저는 한사코 당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죠. 데리고 외할머니집에 갈 것이라고 애원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두 눈 뜨고 당신이 그 차에 태워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어요. 당신은 손을 뻗으며 나를 간절하게 불렀죠. ‘가고 싶지 않아. 현우 오빠... 살려줘! 갈라지고 싶지 않아!’”이야기를 하던 배현우가 나를 꼭 껴안았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창백했고 검
나는 배현우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배유정의 악랄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에게 원한으로 가득 찬 아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배천석까지도 건드리는 사람이 어떻게 자그마한 아이의 협박을 두려워하고 참을 수 있겠는가.“정말 어렸네요. 그런걸 어떻게 말해요?”나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나를 바라보았다. 짙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얼굴에는 담담하지만 쓴웃음을 짓고 있다.“그때 나는 당신을 찾지 못해서 마음이 급했어요. 그 어떤 법도 규칙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어요. 저는 당신만 찾으면 됐으니까요.”배현우의 말투는 따뜻했다.나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때 그와 갈라진 이후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머리를 쿵쿵 치며 슬픔에 잠겨 말했다.“저는 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까요? 조금이라도 났으면 얼마나 좋을까.”나의 돌발행동에 그가 깜짝 놀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세림아. 네 잘못 아니야. 내가 널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서 다치게 한 거야. 그래서 기억을 잃고 이렇게 오랫동안 잃은 거야. 이건 다 하늘이 나에 대한 벌이야...”나는 여전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그럼 얼른 알려줘요. 내가 왜 이세림이 된 건지! 아니, 전 한지아지 이세림이 아니에요!”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는 이세림이 나에게 남긴 나쁜 기억들에 화가 났다.“그 가짜 이세림이 이미 이세림이라는 이름을 먹칠했다고요! 전 이세림이 싫다고요!”“좋아요. 그럼 앞으로 한지아인 거예요!... 지아 씨, 절대 자신 탓을 하지 말아요. 탓할 거면 저를 탓해요. 제가 잘 돌보지 못한 거예요.”배현우 역시 감정이 북받쳐 가슴 아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계속해 줘요. 다 알고 싶으니까.”내가 기대하며 그를 바라보았다.“무엇이 더 궁금한데요? 물어봐요. 최대한 머리는 적게 쓰고. 지아 씨, 제가 지아 씨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원인도 이것 때문이에요. 가끔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그가 의미심장하
나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배현우는 걱정스러운 듯 나를 끌어안고 꽉 껴안았다.“화내지 마요. 지아 씨... 봐요. 결국 제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당신을 찾아냈잖아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그리고 배유정은 제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가 나와 손깍지를 끼며 약속했다.“배유정이 했던 일들, 다 천백 배로 갚아줄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당했던 피해자들 모두 하늘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할 거예요.”그제야 나는 조금씩 진정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힘찬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전에 없던 안정감을 느꼈다.배현우는 끊임없이 나에게 입을 맞추며 등을 토닥여주었다.“이제 다 지나간 일이에요. 그렇죠?”“현우 씨는 보육원 어떻게 찾아낸 거예요?”나는 마음이 차분해진 뒤에 그에게 물었다.그는 진지하게 나를 응시했다. 차분해진 나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그날 밤 진백이 배유정의 나를 처리하라는 말을 엿들었어요. 그래서 진백은 위험을 무릅쓰고 17살 난 아들을 시켜 저를 데리고 도망가도록 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금서주의 보육원에 보내졌다고 알려주었죠. 그래서 진씨 가문의 형이 절 데리고 집을 나온 거예요.”그의 말에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은 통증을 느꼈고 손은 저도 모르게 그의 앞섶을 꽉 움켜쥐었다.“우리는 줄곧 금서주를 향해 도망갔어요. 형은 저보다 고작 네 살 위였어요. 우리는 며칠 밤낮을 눈도 붙이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 사람들이 쫓아오기 전에 금서주에 도착해서 이세림을 찾아야만 했거든요.”“금서주는 황량하고 면적이 매우 컸어요. 우리는 길가에서 사람들에게 물으며 보육원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그때 뜻밖에 가족을 잃은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어요.”배현우는 이미 기억 속에 빠져든 표정이었다.“가족을 잃었다고요?”나는 의아하게 배현우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배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처음에는 보육원을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몇
배현우가 나의 눈에서 의심을 읽어내고 담담히 말했다.“그건 지아 씨가 들은 버전이죠.”그가 나를 바라보며 문제점을 짚어냈다.“그건 그쪽에서 고의로 당신한테 틀린 정보를 알려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계속 저만 믿으라고 상기시켰던 거예요.”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배현우의 말이 맞았다. 당시 처음 임윤아에 대한 정보를 들은 것도 가짜 이세림으로부터였다.“사실은, 진짜 이세림은 보육원에 보내졌을 때부터 이세림이 아니라 ‘임윤아’로 불렸어요.”배현우가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말했다.나는 문득 무언가 깨달았다.“그 말은 배유정이 이세림을 보낼 때 이세림의 이름을 아예 바꾸었다는 거네요.”“맞아요. 그래서 당시에 저와 진씨 가문의 형이 금서주의 보육원을 모두 뒤져보아도 세림이를 찾지 못했던 거예요.”“그럼 언제 세림이를 찾은 거예요?”나는 이 속의 내막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하늘의 뜻인지도 모르죠. 그 가족을 잃은 아이를 찾았을 때 우리는 보육원도 찾아갔었어요. 형이 보육원에 물으러 갔을 때 이세림이라고 불리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저는 신이 나서 한걸음에 보육원으로 달려갔죠. 그러나 이세림을 보겠다고 해도 보여주지 않았죠. 오히려 저를 계속 붙잡고 상황을 캐물었어요. 뭔가 이상함을 느낀 저는 당장 도망쳤어요.”“보육원에서 지령받았던 거예요?”내가 배현우의 말을 들으며 짐작했다.“그때 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 없이 이세림을 보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우리는 보육원을 한바퀴 돌며 들어갈 방법을 생각했어요. 후에 산비탈의 나무를 타고 창문으로 들어가기로 했고 형은 밖에서 저를 기다리도록 했어요.”“들어간 뒤에 아니나 다를까 당신을 발견했죠. 당신은 무기력하게 아이들 속에 앉아있었어요. 이때 저는 2년 만에 처음으로 당신을 본 것이었어요. 당신은 마르고 연약했고 우울해 보였어요. 하지만 저는 무턱대고 들어가 당신을 찾을 수 없었어요.”“왜냐하면 보육원에 직원들이 지키고 있었거든요. 저는 안달이 나 줄곧
배현우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저는 이것이 배유정이 던진 미끼라고 생각해요.”“무슨 말이에요?”나는 눈을 비비고는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나중에 허씨 가문에서 저를 구한 이후에야 저는 배유정이 내가 도망갔음을 알아챈 후 빠르게 진백의 아들도 사라졌음을 발견했다는 것을 들었어요. 그러니 진백이 어떻게 됐을지는 불 보듯 뻔하죠. 그렇다면 배유정도 쉽게 저의 행방은 이세림을 찾으러 간 것임을 알았을 거예요. 그러나 배유정이 이세림을 어느 보육원으로 데려갈지는 계획해 놓았던 거니까, 결국 당시 그녀의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설명하죠.”배현우의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이후에 일이 터지자 배유정은 더욱 미친 듯이 저를 찾았어요. 비록 ‘임윤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육원에 갔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까요.”배현우의 말투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자문자답하듯 중얼거렸다.“어쩐지 이세림과 ‘임윤아’가 함께 찍힌 사진이 있더라니. 이동철이 처음이것을 조사할 때부터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세림도 보육원에 있었던 건지.”“지아 씨가 이동철에게 조사하라던 그 사진이 바로 이때 찍은 거예요. 저도 그 사진을 통해 가짜 이세림은 유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배현우가 나를 바라보며 확신했다. 눈동자에는 독기가 서려 있다.“현우 씨도 이 사진을 조사했었던 거예요?”내가 배현우를 보며 물었다.“이동철의 그 사진이 바로 제가 찾은 거예요. 제가 이동철에게 조금씩 유출하라고 한 거예요.”배현우가 용의주도한 계획을 읊는 듯 장엄하게 말했다.그러나 나는 그를 탓 할 이유가 없다. 배현우 역시도 많이 노력한 것이었다.이때의 나는 배현우가 이 몇 년간 왜 그토록 얼음처럼 차가운 모습으로 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타고난 냉담함은 없으니까.“이 사진 때문에 제가 이세림에 대해 샅샅이 파헤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배현우가 나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이것이 바로 나중에 이세
배현우는 마음이 아프고 초조해하는 나를 보며 내 이마에 키스를 했다. “그 자리는 절벽 바로 옆이었는데, 그가 나를 힘껏 밀어내자 그의 차는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폭발했어요. 당신이 내동댕이쳐진 곳은 바다가 아닌 가파른 커브 길이었어요.”“나는 떨어진 후 완전히 정신을 잃어서 어디로 떠내려갔는지도 몰랐는데 깨어났을 때 한 어촌이었어요.”“그들이 나를 구해주었는데 내 다리가 부러져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내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간청해서 사고 난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당신이 없었어요.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어요. 죽더라도 시체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배현우는 씁쓸하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대충 찾았을까 봐 다친 다리를 끌고 직접 찾으러 갔다가 기절했어요. 다시 구조되었을 때 내 다리는 이미 염증이 생겨서 현지인들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했어요.”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배현우를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배현우는 손을 내밀어 가볍게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요.”나는 손을 뻗어 배현우의 다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울먹이며 물었다.“그 후에는요?”“그 후, 허씨 집안 사람이 제때 병원에 찾아왔어요.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찾은 후 바로 허씨 가문에 연락했어요. 그런데 흐지부지 이틀이 지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들이 날 보호하고 또한 사람을 보내 당신의 행방을 찾았어요. 온갖 노력 끝에 어린 여자아이가 머리와 쇄골이 다친 채 병원에 왔는데 금방 누군가 데려가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누가 데려갔는지 찾을 수 없었어요.”“어떻게 못 찾을 수 있죠?”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일부 이민자들은 막 호주에 도착해서 불안정했어요. 그들이 당신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퇴원시킨 것을 볼 때 부유한 집이 아닐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남겨진 자료가 매우 모호하고 찾아보니 그들이 남긴 주소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새 이민자, 혹은 임시로 온 여행자로 추정했어요. 우리는 수많은 추측을
배현우의 말을 듣고 보니, 배현우가 걱정했던 것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현우는 배유정이 나를 건드릴까 봐 한소연을 괴롭혔다.그래서 이세림은 한소연을 이용해 나를 몰아내려고 했지만 배현우가 어디 그녀에게 끌려다닐 사람인가? 게다가 그녀는 손을 쓰자마자 내 총구에 부딪혔다.지난번 쇼핑몰 사건 때, 한소연이 나를 사칭해서 물건을 마구 쓸어갔는데 예상 밖으로 나랑 우연히 부딪혀서 그녀들의 계획이 깨지고 그 물건들을 되찾았다. 이 때문에 가짜 이세림은 음흉하게 또 새로운 수법을 썼다. 한소연에게 손을 써서 그녀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원래 다시 나에게 죄를 씌우려고 했지만 결국 배현우에게 선수를 빼앗겼다.보아하니 이세림이 요즘 줄곧 조용하게 있는 것이 아마도 무슨 큰 계책을 참고 있는 것 같다. 이세림은 내가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일이 처리되는 것을 보고 있을 리가 없다.나는 배현우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보아하니 배유정이 겉으로는 조용히 있지만 암암리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사람을 죽였네요. 그녀는 J 국의 그 악당들의 손을 이용해서 당신을 제거하고 자기는 엮이지 않은척하겠죠. 일단 일이 성공하면 그녀는 아무런 의의도 없이 그녀가 꿈꾸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기죠. 이 방법이 더 악독해요.”배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 표정이 점점 서늘해졌다. 손은 나를 꼭 껴안고 내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한참 후에야 배현우가 입을 열었다.“그녀가 외부 조직과 손을 잡았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어떤 일들은 그녀 뜻대로 되지 않을 거예요.”“무슨 뜻이에요?”나는 여전히 두려워하며 배현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배현우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그때 그들이 저를 공격한 뒤 중상을 입은 저를 차씨 가문이 도와줬듯. 그 후 차씨 가문이 날 온 힘을 다해 도왔는데 모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기초를 다져 놓았기 때문이에요.”“서울에 도착한 후, 어쨌든 차씨 가문의 배경은 그녀가 경거망동할 수
“그리고 제가 배 씨에 심어놓은 사람의 보고에 의하면 배유정이 몇 년 동안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천우 그룹을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요.”나는 배현우를 보고 마음속으로 깨달았다.“그게 당신이 그녀와 외부 유착을 의심한 결과에요?”“맞아요.”배현우는 나를 보며 감탄하듯 웃었다. “하지만 배유정도 허씨 가문이 그녀를 제재한 후 천우 그룹이 그녀 손에 있다고 해도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어?”나는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당신의 아버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그는 허씨 가문에서 자랐으니까!”배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는 이미 준비를 하셨고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진행됐어요. 다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허씨 가문은 아버지의 비상 계획을 가동했어요.”“우리는 많은 프로젝트와 사업이 애초에 천우 그룹의 구조에 있지 않았고 원래 있던 것들도 점점 축소되어 페이퍼컴퍼니였어요. 진짜 천우 그룹은 내가 15살 때 허씨 가문에서 내 손에 넘겨주었어요. 그녀는 속수무책이었죠.”배현우는 이 말을 할 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서 나를 쳐다보았다.“특히 당신을 찾은 후, 더 이상 아무런 구속도, 고려해야 할 것도 없었어요. 당신이 살아서 내 곁에 있으니 잡념 없이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상대할 수 있었어요. 이건 하늘의 뜻이죠.”“허씨 가문이 정말 당신을 아끼는 것 같아요. 당신 아버지도 정말 안목이 뛰어나고요. 만약 살아계셨다면 이십 년 동안 당신 부자는...”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아버지의 상업 안목이 예로부터 정확했어요. 일찍이 한국의 발전을 내다봤기 때문에 중점을 한국에, 황금도시 서울에 두었어요. 하지만 내가 서울에 오기로 결심한 중요한 원인은...”여기까지 말한 그는 나를 보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는 이 원인이 반드시 나를 찾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그들이 단서를 찾았는데, 당신을 대신해서 죽은 설이는 호주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