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혜선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것을 나무랐다. 도혜선은 덤덤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사실 갑자기 떠나기로 한 거야.”도혜선은 환하게 웃었다.“그래서 정말 생각나는 대로 떠난 거야. 지아에게도 알려줬어! 전혀 계획이 없었고 갑자기 밖에 나가서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래서 모두에게 알리지 않은 거지!”도혜선은 쉽게 말했지만 사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지금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나는 그때 도혜선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떠났다는 걸 더 확신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히 돌아왔다.이미연은 6개월 동안 위험한 일이 없었는지 도혜선에게 물었다.도혜선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여행을 떠난 사람이 어찌 아무 고생도 하지 않았겠어. 많은 모험의 순간들이 있었지. 길도 잃었었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어. 무인 구역에도 갔었고 전쟁도 만났었어. 하지만 별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두려움도 사라지더라고...”서강민은 잠자코 듣기만 하며 가끔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좀처럼 입에 넣지 않았다.도혜선도 매우 협조적으로 매번 사양하지 않고 고맙다고 말하며 다 먹었다.겉으로는 여전히 호흡이 잘 맞고 화기애애하게 느껴졌다.그러나 나는 그들 사이에 함께 있을 때 느꼈던 온정이 없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바로 정과 사랑을 오가는 이런 감정인 것 같았다. 가까이 앉아 있지만, 마음은 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도혜선의 말 속에는 둘만의 시각이 아니라 그녀 혼자만의 깨달음과 계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이미연은 일부러 서강민에게 맞서는 듯 거침없이 도혜선에게 물었다.“혜선 언니,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돌아왔는데 다른 생각이 없어?”서강민은 긴장한 듯 고개를 들어 도혜선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도혜선은 빙그레 웃으며 휴지를 한 장 뽑고 입가를 닦은 뒤 나를 바라보았다.“지아야, 네가 전에 한 말을 지킬 거지?”나는 도혜
이미연은 배현우의 계시를 받고 말했다.“배현우 씨의 말씀을 들으니 떠오르네. 나도 너에게 기회를 줄 수 있어. 비록 우리의 홍보부와 홍보 사례가 천우 그룹과 좀 다르겠지만. 우리는 갑작스러운 사회 혼란에 더 무게를 두고 있거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연 말이 맞아!”“게다가 우리 홍보팀이 다루는 범위가 좀 더 넓을 수도 있어. 참... 마스터 몇 명 더 있는 게 나쁜 건 아니야. 사람마다 장점이 다른데 배현우 씨가 비즈니스적이라면 우리는 좀 더 사회적이야. 하하... 네가 만약 다 배운다면 반드시 잘나가는 마케팅 매니저가 될 거야.”도혜선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잘나가는 홍보 매니저든 아니든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나는 서강민을 몰래 바라보았다. 도혜선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뺨을 후려치는 것 못지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도혜선은 정말 너무 비천하고 억울하게 살았다.이 점에 대해 나는 서강민이 좀 미웠다. 이럴 땐 도혜선이 솔직히 말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서강민은 확실히 도혜선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우리는 매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배현우와 장영식, 그리고 서강민 세 남자는 작은 거실로 가서 계속 술을 마셨다.우리 세 여자는 다정하게 계속 수다를 떨었다.서강민은 윤씨 아주머니가 야식을 다 차려놓고서야 도혜선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는데 도혜선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마치 아이 같았다.도혜선은 그를 쳐다보고는 나에게 담담하게 말했다.“나 서강민 씨를 바래다주고 올게, 좀 있다 계속 얘기해.”말을 마친 도혜선은 온화한 표정으로 서강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데려다줄게요.”서강민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우리는 도혜선이 일어나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바꿔 신는 걸 바라보았다.서강민도 얼른 일어나 어르신들과 인사하고 도혜선과 함께 나갔다.이미연은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며 물었다.“휴, 두 사
새집에 돌아온 도혜선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 넓고 화려한 새집을 보고 도혜선은 뒤돌아 우리 둘을 껴안고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고마워! 드디어 내 집이 생겼어!”그 말에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나 등을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편히 지내. 앞으로 여기가 언니 세상이니 굴복할 필요 없어. 언니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 둘 다 널 지지해!”그날 밤 나와 이미연은 모두 도혜선 곁에 남았다. 이런 편안한 환경, 분위기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여서 우리 셋은 날이 밝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아침에 나는 두 사람이 편안하고 달콤하게 자는 것을 확인했다. 한숨을 쉬고 병원에 가서 남미주를 만나기 위해 조용히 떠났다. 남미주를 봤을 때 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녀는 며칠 만에 살이 빠져 앙상했고 눈이 매우 큰 것이 놀라울 정도로 다른 사람 같았다.화장을 하지 않은 그녀는 의외로 예뻤다. 그녀의 진짜 모습은 더욱 청초하고 우아하여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나는 오히려 눈앞의 여자아이가 좋았다. 그녀는 내가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태연했는데 내가 오히려 난처했다. 나는 수프를 들었다.“마실래요? 당신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어요. 몸은 괜찮아요?”말을 마치고 나는 그녀의 침대로 다가갔다. 병실에는 간병인 한 명만이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기태 씨는요?”“처리할 일이 있어서요.”남미주는 담담하게 대답을 하면서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도혜선은 오랫동안 출국했다가 어제 돌아와서 저녁에 보러 오지 못했어요. 미안해요.”어쨌든 오지 않은 이유를 전달하고 싶어 나는 해명했다. “내가 죽지 않아서 실망했어요?”남미주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양심 없네요!”나는 얼른 말했다.“죽기를 원했으면 당신을 구하지 않았을 거예요.”그녀가 갑자기 웃자 여리여리함이 더해졌다. 평소 매서운 남미주와는 정말 다른 모습이었다. 아픈 그녀는 더욱 진실하고 마음을 끌어당
남미주가 쌩쌩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이의 장벽이 모두 허물어진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왜냐하면 당신은 거리낌 없이 날 대해요.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익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닌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남미주는 이불속에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하지만 한 가지,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이 칼을 맞은 것 때문에 내 친구가 되려고 하지 말아요. 그럴 거면 차라리 안 할래요.”“처음엔 그랬어요.”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 남미주와는 숨길 게 아니라 솔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 당신이 날 위해 거침없이 칼을 막아줄 줄 몰랐어요. 그것 때문에 너무 미안해요. 가장 슬펐던 것은 전날 밤에 당신에게 우리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무정한 말을 한 거예요.”“확실히 그 말이 마음에 걸려요. 자존심 상했어요!”남미주의 얼굴이 차가워졌다.“그런데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한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줘서 많이 자책하고 죄책감이 들어요. 특히 당신의 생명이 위독할 때 내가 당신과 친구가 너무 되고 싶다고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당신이 한 모든 것은 친구여야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나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무런 고민 없이 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예요. 그래서 지금은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어요.”나를 주시하고 있는 남미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갑자기 내 보온병을 보고 말했다. “수프 먹고 싶어요.”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요. 이 수프는 우리집 왕 아주머니가 오랫동안 끓인 건데 기력 회복에 좋아요.”나는 허둥지둥 그릇에 담아 불어서 식힌 후 그녀의 입에 넣었다.남미주는 눈을 깜박거리며 내 얼굴을 보고는 한참 동안 멈추었다가 입을 열어 수프를 마셨다. 남미주의 눈에는 눈물이 조금 고였다. 내가 주는 대로 남미주가 다 받아먹었는데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그러자 안색도 약간 혈색을 띠는 것 같았다.남미주가 나에게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거절하지 않았다.“주소!”신호연은 내가 이렇게 빨리 승낙할 줄 생각지도 못한 것 같다. 신호연은 흥분해서 바로 주소를 알려줬다.나는 차를 돌려 신호연이 말한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곳은 한 클럽이었다.안전하게 하려고 차에서 서강훈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신호연의 상태를 물었다.어쨌든 안산에 가기 전에 신호연과 전희가 투자 철회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었는데 요 며칠 그들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나는 신호연이 지금 전화를 걸어온 것이 틀림없이 이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역시나 서강훈이 전화로 신호연과 전희의 투자 철회 건은 아무도 양보하지 않아 아직 진척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전희 쪽이랑 한신로얄이 계약을 안 했다고 했다.서강훈은 이미 내가 말한 대로 신호연에게 아이디어를 주었고 지금 신호연이 다른 프로젝트를 안정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서강훈의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좀 놓였다. 이청원의 예측이 맞았나 보네. 전희는 신호연과 조건을 협상하고 싶어서 한신로얄의 계약을 보류한 거야.마음속으로 전희가 신예 건축이 뒤를 봐주지 않으면 이 계약을 성사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나만의 계획이 있는게 아니었으면 이 타이밍에 한신로얄을 가로채 전희가 닭 쫓던 개가 되게 했을 것이다. 이 생각에 나는 즉시 장영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째는 내가 밖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그가 두 가지 계획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전희가 계속 이 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녀를 밀어붙여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뻔하다. 필요하다면 신호연에게 인정을 베풀어야겠다. 장영식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클럽에 도착했을 때 신호연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지아야, 빨리 왔네. 근처에 있었어?”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코웃음쳤다.“응, 병원에서 오는 길
나는 속으로 신호연의 소식이 꽤 빠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호연이 내가 안산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어떤 일은 포기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랑 적합한가 봐야 해. 난 내 발전에 더 적합한 것만 선택할 거야.”신호연은 내 표정을 보며 씁쓸해했다.“지아야, 역시 나랑 만날 때 숨기는 게 있었네.”“무슨 소리야?”나는 일부러 물었다.나는 당연히 내 일이 순풍에 돛 단 듯이 풀리는 것이 내키지 않아 그러는 거라는 것을 이해했다.신호연은 멋쩍게 웃었다.“우리가 만날 때 지금처럼 도와줬더라면 내가 여편네들에게 당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지아야, 난 가끔 이해가 안 돼. 사실 우리 둘은 호흡이 잘 맞잖아. 난 마음속으로 당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우리가 함께 창업할 때 정말...”“신호연, 요건만 말해.”신호연이 추억을 회상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아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애초에? 난 신호연이 과거를 꺼내는 것을 특별히 꺼렸다. 이럴 거면 애당초 그러지 말지!“우리끼리 과거 얘기할 필요 없어. 당신이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날 찾아온 거라면 나 먼저 갈게. 머리 아파서 좀 쉴래.”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나는 정말 머리가 아팠다.“지아야, 진짜 일이 있어. 날 좀 도와줘. 지금 정말 골머리를 앓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널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신호연이 날 잡으려고 손을 뻗자 나는 피했다.“그럼 말해봐.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나는 좀 짜증 났다. “내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마. 여기서 나와 과거를 회상하지도 말고. “신호연이 나를 보며 약간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전희가 투자를 철회하려는 거 알아?”나는 일부러 물었다.“투자 철회? 두 사람 협력 잘 되고있는 거 아니야? 왜 투자를 철회해? 난 남 일에 관심 없어서 몰랐어.”“말하는 것 좀 봐. 이게 남 일이야?”신호연이 뻔뻔스럽게 말했다.나도 신호연을 상대하기 귀찮아 무심하게 말
신호연의 안색은 어두워졌고 얼굴은 고통과 원한으로 가득 찼다.“어쨌든 상대는 전희인데 당신이 그녀가 투자 철회를 제안한 이후에 프로젝트를 뺏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잖아. 당신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또 애당초 한신로얄을 쟁취하기 위해 밑천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한 돈이 지금까지 적지 않잖아? 전희가 왜 투자 철회를 제안했는지 생각해 봤어?”나는 기세 좋게 질문을 퍼부었는데 모두 신호연이 골치 아픈 것이었다. 나는 지금 신호연이 고통을 느낄ㅍ수 있도록 일부러 약점을 노려 공격했다. 더군다나 내가 분석한 전희의 속마음은 이청원의 추측인데 이청원이 누구인가? 바로 전희와 10년 넘게 살아온 남자이고 반드시 전희를 그의 이익 범주 내에서 쫓아내고야 마는데 이청원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신호연을 보고 계속 말했다. “전희가 한신로얄로 당신에게 조건을 제시해 신예 건축을 빼앗으려고 하는 게 분명해. 전희에게 넘어가는 것이 십중팔구 확실한 일인데 당신이 빼앗으려면 얼마나 많은 정력과 돈을 써야겠어. 그리고 설령 손에 넣었다고 해도 아마 당신은 이미 파산 직전일 거야.”신호연은 내 말을 듣고 골머리가 아팠다. “만약 네가 나선다면 내가 그렇게 애를 쓸 필요가 없잖아.”나는 신호연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어떻게 손을 써?”신호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될 대로 되라는 기세로 나를 봤다. “한지아, 더 이상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마. 네 상황에 관심 없는 게 아니야. 줄곧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어. ”하! 무슨 염치로 관심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건지. 조급한 신호연은 계속 말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 차홍기를 찾아가면 말 한마디로 해결할수 있잖아. 모두 그에게 빌붙으려고 하는데 이건 식은 죽 먹기잖아.”나는 신호연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라 벌떡 일어나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신호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나보고
내가 막 입을 열어 신호연에게 반박하려 하는데 그가 또 나를 가로막았다.“그렇게 큰 안산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가 당신의 손에 넘어간 것이 차 씨 가문을 이용해서 얻은 게 아니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을 것 같아?”신호연는 어두운 얼굴을 했다. “이런 행운이 올 수 있는 게 당신이 팔자가 좋아서 그런 것뿐이야.”“난 그저 도움을 조금 달라는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힘들단 말이야?”신호연은 내가 그를 위해 돌격해야 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신호연의 말을 끊었다. “당신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람이네. 그런 얍삽한 마음은 접어.”“나 한지아가 안산 프로젝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실력과 직접 이룬 성과, 정성과 인내력으로 천우 그룹과 손잡고 높인 우리 신흥의 지위, 꼼수를 부리지 않고 뛰어난 품질 덕분이야...”“비열하고 천한 수법을 쓸 가치도 없어…”나는 단숨에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신호연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그처럼 부실하게 일하고 신용이 없지 않다는 사실일 줄은 몰랐다.신호연은 바로 내 말을 가로챘다. “그만 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마. 차 씨 가문의 세력을 쓰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 안산의 이안이 네가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내가 신호연은 얕잡아 본 것 같아 흠칫했다. 뜻밖에도 이 인간은 안산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안산 프로젝트를 얻고 싶을 때 많은 사람이 구경거리를 원했나 보다.내가 안산을 따내러 간 것을 신호연도 알고 있다니. 말끝마다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내가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정말 성공한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구경은 못 하고 화가 나서 도끼병에 걸린 건 정말이다. 신호연은 나를 쳐다보면서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불쾌감을 토로했다. “배현우의 세력을 빌려 유상현에게 빌붙고 유상현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 당신을 빌려서 차씨 가문에게 빌붙은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이 일에 당신이 손을 쓸 필요가 없잖아.”“말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