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우리는 처음으로 이런 둘만의 시간을 가졌고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얘기를 나눴던지라 잊고 있던 연애의 감정이 다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파도가 해안선을 따라 부서지는 소리에 맞춰 그의 뜨거운 키스까지 들어오니 나는 이 분위기에 도취한 채 모든 불쾌함을 잊어버렸다.그때 도혜선의 전화가 걸려왔고, 미연에게 큰일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은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했던가, 미연이에게서 가장 걱정하고 있던 일이 결국 터져버렸다.나는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허겁지겁 배현우를 찾으러 뛰어갔고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해달라고 부탁했다.배현우는 사고에 대해 듣더니 나를 위로하고는 아빠와 의논하러 들어갔다. 결국, 콩이가 납치당한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엄마 아빠는 콩이를 데리고 잠시 제주도에 머물기로 했고 배현우가 사람을 시켜 그들의 생활을 돌보도록 부탁했다.나와 배현우는 그 길로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 났다.비행기에 오르기 전 나는 동철에게 연락해 미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조사하도록 부탁했다. 도혜선도 통화에서 그냥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했을 뿐 사건의 경과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사건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했다.비행기에서도 배현우는 다시 나를 위로해주며 우연에게도 조사를 맡겼다고 알려줬다.서울에 도착하자 이미 밤 7시가 된 시각이었고 나는 서둘러 도혜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혜선은 경공관에서 우리를 기다리겠다고 했다.배현우의 기사가 우리를 데리러 나왔고 최대한 외부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차량은 바로 활주로에 서 있었다. 올 때와 똑같이 모든 것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차에 오르자 배현우는 우연에게 연락했고 우연은 이미 사람을 시켜 자세한 조사를 진행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소식이 있을 거라고 전해줬다.경공관에 도착하니 도혜선은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를 보자마자 큰 짐을 내려놓은 듯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말했다.“지아야, 드디어 돌아왔구나!”“도
나는 배현우더러 이곳에서 우연이나 동철의 전화를 기다리라고 하고는 도혜선과 경공관을 떠나 골드 빌리지로 직행했다.가는 길에 도혜선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드디어 돌아왔네. 아니면 나 혼자 진짜 방법이 없을뻔했어. 아, 맞다. 콩이는 어때?”“콩이는 이제 괜찮아졌어. 배현우가 콩이의 트라우마가 걱정된다 해서 엄마 아빠랑 그곳에서 좀 더 머물도록 마련해줬어.”“나도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너희들한테 연락한 거야. 괜히 방해받았겠다.”도혜선이 운전하며 나를 힐끔 쳐다봤다.“한번 나가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휴...”“그렇게 생각하지 마. 미연이가 이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내가 어떻게 안 돌아와. 사실 진즉 돌아왔어야 했어. 현우 씨도 바빠죽겠는데 계속 있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콩이는 현우 씨를 지나치게 따라서 떠날 때도 언제 돌아오냐고 계속 묻더라.”도혜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특하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나도 보이더라, 현우 씨가 콩이를 정말 아낀다는 걸. 제 친애비보다 백배는 나아!”“허! 신호연 마음속에서 이미 딸이라는 존재는 잊은 지 오랠걸! 오히려 콩이 할머니가 사고 당일 날 아침에 콩이를 보러 왔었지.”“맞다, 콩이 사건은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너무 다급하게 떠나버려서 자세히 묻지도 못했잖아! 그렇게 큰일이 있었는데도 뉴스가 싹 다 막혀버렸더라고. 배현우 작품이겠거니 했어.”“짧게 말하긴 힘들어. 하나의 사건만이 아니거든. 미연이부터 찾고 나면 그때 자세히 말해줄게.”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내 머릿속은 남미주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만 불안해졌다.“미연이 남미주 손에 들어간 거라면 쉽지 않을 텐데.”“사실 나도 쭉 그런 예감이 들었었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연락이 안 되자마자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혜선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덧붙였다.골드 빌리지에 도착하고 나는 바
바로 그때 김우연과 동철이 함께 노크하고 들어왔고 기태희가 준비해준 음식도 서빙됐다.배현우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두 사람을 향해 눈짓했고 우연이 바로 입을 뗐다.“미연 씨는 그제 밤, 천수각에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흩어진 시각은 10시 45분쯤으로 CCTV에 미연 씨 차가 천수각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찍힌 시간은 10시 57분이었습니다.”도혜선은 실눈을 뜨더니 한마디 덧붙였다.“맞아요, 내가 전화했을 때가 10시 20분 정도였으니까! 그때 확실히 시끄러웠어요.”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11시 20분쯤, 이촌로를 지날 때 차가 길가에 5분 정도 멈춰있었습니다. 미연 씨의 통화기록을 조회하자 마침 그때 전화 하나가 걸려왔더라고요. 명의 없는 휴대전화였는데 그 뒤로는 꺼져있었습니다. 아마 임시 개통한 전화카드인 것 같습니다.”“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마침 강남구가 10분 정도 정전됐을 때라 CCTV도 10분 정도 끊겼습니다. 그리고는 더는 미연 씨의 차를 추적하지 못했고요. 현재 사람을 시켜 차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우연이 배현우를 쳐다봤다.“정전의 원인은요?”배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고 얼굴은 차갑게 굳어있었다.“전력공사에서 내놓은 답변은 단계별 점검 및 테스트 기간이라고 합니다. 이번 달 17일부터 테스트가 시작되어서 한 구 한 구씩 진행했다네요, 그날이 바로 강남구 점검일이었고요.”우연이 배현우의 질문에 대답했다.“이미 조사한 결과 테스트 공지는 사전에 나갔다고 합니다.”“너무 우연의 일치인데요!” 나는 의심이 들었다.동철이도 입을 열었다.“남미주의 출국 기록은 확실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3일 전 오후 4시 27분 비행기로 M 국으로 출국했습니다.”“그럼 거꾸로 조사해줘요. 인접국에 입국기록이 있는지. 특히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육지 길로 입국이 가능하니까요.” 배현우의 부탁에 동철이 대답했다. “이미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소식은 없지만요.”도혜선은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이미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지만 서울은 여전히 불빛으로 반짝였다. 대도시의 밤은 지금이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다.하지만 경공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남미주가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는 미연이 아직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매분 매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바로 그때 배현우의 전화가 울렸고 나와 도혜선이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그를 쳐다봤다.배현우는 전화를 받더니 미간이 살짝 풀어지며 말했다.“문기태의 사람들밖에 없나요?”추측건대 문기태가 움직인 것 같았다.배현우는 전화를 끊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당신과 혜선 씨는 이곳에 남아있어요, 난 잠시 나갔다 올게요.”“어디 가는데요?” 나는 급박하게 물었다.아무리 봐도 배현우가 확실한 소식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확실한 소식이 있나요?”배현우가 나를 바라보더니 인내심 있게 대답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 확실한 상황이 아니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여기서 내 소식만 기다리고 있어요.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가장 먼저 알려줄게요.”“뭐가 또 가장 먼저예요, 지금이 가장 먼저 아닌가요? 난 가장 먼저 미연이 소식을 알고 싶다고요!”나는 고집스럽게 배현우의 얼굴을 쳐다봤고 추호의 물러섬도 없었다.“지아 씨, 말 들어요. 알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 이번엔...”“그래서 나도 꼭 가야겠어요. 지금 가장 위험한 건 미연이에요. 난 내 안위만 생각할 수가 없어요.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미연이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고요!”나는 살짝 분노가 치밀었다.도혜선이 그런 내 상황을 보더니 서둘러 다가와 내 팔을 잡고는 배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배 대표님, 우리도 함께 가게 해주시죠! 미연이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특히 지아한테는 더욱 더요.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배현우는 절대 물러섬 없는 내 표정을 보더니 그가 가지 못하게 막아선들 경공관을 나서자마자 나도
경공관을 나오자 나는 배현우에게 말했다. “나는 혜선 언니랑 같은 차에 탈게요!”배현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차에 올라탔고 나도 도혜선의 차로 이동했다.차에 타자 도혜선이 입을 열었다.“이제 보니, 미연이의 일이 이세림과 연관된 게 분명해.”두 대의 차가 줄지어 경공관으로 떠났다.길에서 동철이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배 대표님의 차를 따라가지 마세요. 남미주가 미행을 붙였어요.”나는 깜짝 놀라 도혜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언니, 현우 씨 차를 따라가지 마, 남미주가 미행을 붙였대!”나는 이 여자의 신중함과 교활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서둘러 배현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낮은 소리로 주소를 알려줬다. 그리고는 먼저 골드 빌리지로 돌아가 미행을 따돌리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배현우가 말한 주소는 용산구의 낡은 건물일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인수된 후 나이트클럽으로 재탄생했고 10층 위로는 호텔이었다. 이름도 상당히 독특한 것이 소울시티라고 불렸다.나는 어쩔 수 없이 배현우가 시키는 대로 도혜선더러 골드 빌리지로 직행하라고 했다.도혜선이 거칠게 한마디 내뱉었다. “이세림이 이번 일과 연관돼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어.”“혜선 언니, 난 이해가 되지 않아. 이 시각에 남미주가 어떻게 이세림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거지? 둘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었다 한 들 지금은 경솔하게 나설 때가 아닐 텐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은연중에 좋은 징조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혹시 저들이 문기태의 행동을 모르는 건 아닐까? 아니면...”나는 더는 생각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도혜선 역시 두 눈 가득 두려움에 질려있었다.“헛된 생각 하지 마! 좋은 일일 수도 있잖아!”도혜선이 계속 뒤쪽을 예의주시하며 말했다.우리가 탄 차는 골드 빌리지로 들어갔고 미행하는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도혜선이 차를 어두운 곳에 대고는 대문을 관찰했고 바로 그때, 동철에게서 전화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나와 배현우는 시선을 맞추고는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위로!” 그리고는 동시에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홀 안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 엘리베이터는 이미 위로 올라가고 있었고 배현우는 다급하게 다른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나와 배현우, 김우연을 포함한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 손에 쥔 전화기가 날카롭게 울려댔다. 전화를 받자 반대편에서 동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남미주가 경공관을 나왔어요, 지금 소울시티 방향으로 운전하고 있어요!”나는 긴장되는 눈빛으로 배현우를 쳐다봤고 그는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당황하지 말고, 사람부터 찾고 얘기해요!”나는 배현우의 손을 꽉 잡은 채 미연이가 위에 있다면 무조건 그녀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하고 우리는 쏜살같이 뛰쳐나갔다.역시 다른 엘리베이터도 같은 층에 멈춰 섰고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배현우가 방향을 판단하더니 나를 끌고 왼쪽으로 뛰었고 순조롭게 비상 탈출구를 찾아냈다. 우리는 순식간에 뛰어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옥상은 꽤 큰 규모였고 건물 꼭대기에 걸려 있는 광고판 불빛 아래 대낮처럼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언뜻거렸다.문기태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을 진행했고 우리도 옥상의 모든 공간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한 바퀴 수색하고 나자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해했다. 옥상은 아직 사용 목적 없이 방치되어 있었기에 드넓게 열려있었고 모든 장비가 한눈에 보였다.모두들 한 바퀴 찾아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이 실망한 표정으로 문기태에게 다가갔다.문기태도 조급해 보였다. 두 쌍의 눈동자가 흰 불빛의 대비 속에서 유난히 깊고 어두워 보였고 마치 두 개의 블랙홀같이 소름 돋는 한기를 뿜고 있어 저도 모르게 오한이 밀려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원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고 온화하고 점잖은 평소의 문기태와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나는 그의 앞으로 뛰어가 물
“... 미연아... 미연아...”탱크 꼭대기로 달려가자 아래에서 문기태의 급박한 외침이 들려왔고 그 목소리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나는 머리가 띵하고 울려와 저도 모르게 발이 삐끗해 아래로 떨어지려고 했고 다행히 뒤에서 따라오던 배현우가 나를 덥석 잡아서 일으켜줬다. 마음이 급한 나는 물불 안 가리고 탱크 꼭대기부터 밑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달려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미연! 미연이 괜찮아요?”사실 나는 아래쪽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탱크 밑부분에 은은하게 몇 가닥의 빛이 아른거렸는데 물도 있는 것 같았다. 아래로 갈수록 녹슨 쇠냄새와 고인 물의 비릿한 냄새가 짙어졌고 음침하기 그지없었다. 아래에 있는 문기태 쪽 사람들이 전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탱크 밑부분을 비추고 있자 거대한 탱크 안에서는 반딧불 빛과 같아 보였다. 눈앞에 천이 한층 가린듯 보이지 않았는데 어둠 속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문기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칼!”내 심장이 덜컥했다. 칼을 왜 찾는 거지?굽이 있는 신발을 신어 빨리 달려갈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마음이 초조하고 급한데 느린 발걸음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끊임없이 떨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밑에 도착하자 눈도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졌다. 나는 이미 고인 물에 들어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물속에서 하얗게 퍼진 이미연을 안아 꺼내온 문기태를 봤고 누군가 칼로 그녀의 손발을 묶은 끈을 자르고 있었다. 반딧불 같은 불빛 아래,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이미연은 머리와 몸이 이미 축 늘어져 숨이 간들간들했다. “... 미연아!”문기태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이미연을 불렀다. “미연아, 눈 좀 떠봐. 나왔어.”그는 속수무책인 듯 품속에 금방 손발이 풀린 이미연을 바라봤고 아무런 생명 반응이 없는 모습에 무너질 듯했다. 어슴푸레한 빛 아래서 사람의 그림자가 기이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문기태가 이미연을 부르는 소리와 어우러져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문기태
남미주의 해골같이 검은 눈동자는 음산한 기운을 풍겼고 기세등등하게 문기태를 바라봤다. “문기태, 나 남미주가 하려는 일을 당신은 알고 있죠. 그리고 제 말을 거역한 대가도 보았을 테고.”“그럼 어디 해봐요.”문기태의 말투는 전혀 굽힐 의사가 없이 단호했다. 비록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강단 있는 말투로 말을 마친 그는 망설임 없이 이미연을 안고 출구를 향해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분노를 참지 못한 남미주의 외침에 그녀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단번에 문기태를 에워쌌는데 각자 손에 거무튀튀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고 미칠 듯 화가 났지만 이미연의 상태는 더 이상 지체할수 없었다. 48시간!그녀는 이미 물속에서 48시간 있었다. 탱크 속은 낮에는 숨 막힐 듯 뜨거웠고 저녁은 음산하고 어두웠는데 이미연이 48시간 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남미주!”나는 이미 무섭다는 생각은 안 한 지 오래됐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 남미주에게 소리쳤다. “당신 정말 무법천지군요. 미연이가 죽으면 당신도 살 생각하지 말아요.”도혜선이 얼른 나를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분노에 찬 눈으로 남미주와 눈을 마주쳤다. “비켜!”남미주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더니 포악한 기운이 감도는 목소리로 낮게 소리쳤다.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은 또 처음 보네요.”“그러면 날 상대해 보든지.”나는 겁도 없이 소리쳤다. “지금 당장 꺼져!”남미주가 분노를 안고 날 향해 한 걸음 걸어오자 배현우가 바로 호통쳤다. “어딜 감히!”남미주는 내 옆에 서서 날 보호하는 배현우를 천천히 보더니 진짜 다음 동작을 하지 않았다. “비켜!”문기태는 남미주 부하에게 소리쳤다.그 사람들은 모두 머뭇거리며 남미주를 바라봤고 남미주가 입을 떼기도 전에 문기태가 남미주를 등지고 말했다. “부디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라요. 내가 손을 써서 양측 모두 다치게 강요하지 말아요. 오늘 내가 이미연을 구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