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때, 경주의 손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낯선 번호였다. 오늘 한무와 방영이 사적으로 얘기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인 번호를 알려주었었다. 이 번호에 낯선 전화가 들어오지 않을 거다. 그러니 방영일 수밖에 없다.경주는 더욱 불안해져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장님, 구아람 씨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우리, 아!”비명과 함께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경주는 숨을 죽이고 꺼진 화면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아람아, 아람아!’이마는 땀범벅이 되었고 앞으로 뛰어가며 한무에게 전화했다.“사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 당장 사람을 보내. 지원이 필요해!”...어둠 속에서 치열한 전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임수해는 그들과 치열하게 싸웠고, 찢어지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몸이 민첩했지만 상대가 너무 많고, 게다고 무기까지 들어 수십 라운드 끝에 이 사나운 사람들에게 제압당했다. 임수해의 왼팔과 오른쪽 다리는 베여 피가 뚝뚝 떨어지고 뼈까지 보였다. 깨끗하고 단정했던 슈트는 상처로 긁혀 비참하고 고통스러웠고, 하얀 셔츠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아람을 지키겠다는 강한 신념에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고,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참, 집착이네.”왕 비서는 점점 인내심이 없어 칼로 임수해의 왼쪽 어깨에 쫒은 다음 악의적으로 돌렸다.“아!”임수해는 칼을 잡은 손을 잡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비명을 지르게 했다. 뼈와 살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았고 팔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한 명을 더 죽이면 처리할 일이 더 많아지잖아. 더 귀찮아져.”왕 비서는 임수해의 귀에 가까이 다가갔다.“아니면 이 칼을 뱃속에 찔려 오장육부를 망가뜨려야 했어.”그리고 왕 비서는 돌려차기를 하며 임수해를 몇 미터 멀리 걷어차 쓰러졌다.“수해야!”아람은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악당 중 한 명의 팔을 비틀었다.“아가씨...”임수해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람을 바라보는 눈에는 자책의 눈물이 담겨있었다.임수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
“구아람 씨!”방영은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하고 눈을 감았다. 아람은 순간적으로 큰 두려움에 휩싸여 눈을 부릅떴다. 순간 모든 감각이 닫히고 수많은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모든 장면은 경주와 관한 것이다. 13년 전의 설레는 첫 만남, L 국의 전장에서 나란히 싸우는 모습, 결혼, 이혼하는 장면, 산사태 속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람을 숨을 죽이고 눈물을 흘렸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마주하는 자아가 가장 진실된 것이라고 했다. 이 순간 경주가 떠오르는 건 감정이 있어서 그런지 원망스러워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탕-이때 거친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며 고막을 흔들었다. 하지만 죽음은 오지 않았다. 왕 비서는 잠시 멍해졌다. 순간 손목에 통증을 느꼈고, 들고 있던 무기가 발로 차서 물에 떨어졌다. 이때 아람은 눈을 번쩍 떴다. 경주의 차가운 얼굴이 신처럼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자 폐허와 같았던 눈빛이 반짝였고 가슴도 두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신경주가 왔어, 정말 왔어.’경주는 숨을 죽이고 아람을 깊이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여자의 팔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자 순간 화가 나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죽였던 왕 비서는 순간 남자의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아니다. 왕 비서는 경주가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경주는 눈을 내리깔고 왕 비서를 노려보았다. 훤칠하고 듬직한 몸이 아람의 앞을 막았다. 마치 싸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빙산처럼 아람을 지켰다.“낯이 익네. 혹시 진주의 사람이야?”아람은 깜짝 놀랐고 바닥에 쓰러진 임수해도 눈을 부릅떴다. ‘날 죽이려는 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진주의 악독한 속셈으로 볼 때, 오랫동안 평화로웠는데, 왜 갑자기 미친 듯이 날 죽이고 싶은 거지? 이렇게 서둘러 움직이는 건 정체를 드러내려는 거야? 아니면 방영을 처리하려는 김에 나까지 죽이려는 건가? 왜 방영을 노려? 무슨 비밀을 알았나?’남은 악당 세 명은 경주가
하지만 호칭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경주는 이미 싸우고 있었다. 주먹으로 격렬하게 싸웠다. 나머지 세 명도 몰려들어 흉측한 칼끝이 경주의 급소를 노렸다. 오늘 밤은 죽음의 문제이고, 돌아갈 길은 없다.“신경주, 뒤를 조심해!”식은땀을 흘리며 포위된 경주를 향해 아람은 쉰 목소리로 외쳤다. 경주의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왕 비서를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세 명까지 더하면 업친데 덮인 격이다. 그리고 왕 비서의 공격은 매우 악랄하여 경주의 급소만 노렸다. 모두 생명을 위협하는 수단이다. 아람의 소리를 듣자 경주는 마치 충전된 듯 돌아서지도 않고 악당의 손목을 잡았다.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어두운 밤을 뚫고 나갔다.아람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해 용감하고 자랑스럽던 강한 군인이 돌아온 것 같았다. 순간 경주가 주저 없이 무자비한 손길로 악당의 복부를 찌르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의사인 아람은 경주가 급소를 찌르지 않고 목숨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수년간 쉬어도 솜씨는 여전하여 쉽게 악당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네가 내 여자에게 상처를 남겼어?”경주는 피투성이가 된 단검을 손에 꼭 쥐었다. 화난 두 눈은 순간 충혈되었다. 왕 비서는 이를 악물며 냉소했다.“몸에 털 하나라도 빠졌어도 네 다리를 비틀어 버릴 건데, 피를 보게 했으니 네 목숨을 가져야겠어.”경주는 아람의 팔에 생긴 상처를 떠올리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 아람을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람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웠다. 아람은 경주의 고백 같지 않은 고백을 듣자 창백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만감이 교차했다.왕 비서는 음흉하게 웃었다. 이제 수습하지 못할 것 같아 허리에서 총을 꺼냈다. 검은 총이 아람의 놀란 얼굴을 조준했다.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총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경주가 갑자기 나타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그래서 제일 간단한 방식으로 속전속결할 수밖에 없다.“안 돼, 아가씨!”상처투성인 임수해
방영의 나약한 몸이 아람의 앞을 막은 채 영혼을 잃은 듯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주와 임수해도 깜짝 놀랐다. 아람은 방영을 품에 안았다. 순간 손바닥이 뜨겁고 젖어 있는 것이 느꼈고, 떨면서 손을 들더니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영아! 너.”“아람 씨, 제 말을 들어요.”방영은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어렵게 입을 열었고 창백한 안색이 거의 투명해졌다.“말하지 마요, 힘을 낭비하지 마세요, 바로 병원에 데려다줄게요!”아람은 울면서 방영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싸움에서 힘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고, 지금 힘을 쓸 수가 없었다.“지혈해 줄게, 지혈해 줄게요!”방영은 고개를 흔들었다.“늦었어요. 제가 진주의 비밀을 알았어요. 진주, 신 사모님을 죽였, 증거, 핸드폰.”아람의 가슴에 칼이 찔린 것 같았고, 가슴에서 터져 나온 고통이 온몸에 퍼졌다. 아람은 눈물을 흘리며 왕 비서 손에서 총을 빼앗은 경주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상황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한 왕 비서는 돌아서서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경주는 연못을 향해 두 발을 쏘았다. 마침 총알이 떨어졌고 왕 비서도 물속으로 사라졌다.“영아, 살려야 해, 영이.”아람은 재킷을 벗고 피가 쏟아지는 방영의 복부를 누르며 눈물을 흘렸다. 마음속으로 무조건 방영을 살리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사로서 아람의 이성은 방영이 곧 죽을 거라고 말했다.“신 사장님! 사모님!”한무는 신씨 그룹의 경호원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바로 뒤에는 아람의 큰오빠 구윤, 넷째 오빠 백신우, 그리고 형사인 일곱째 오빠 구도현이었다.“아람아, 아람아!”아람은 아무것도 안 들렸다. 그저 멍한 얼굴로 점점 창백해지는 방영이 눈을 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모습을 본 구윤은 슬픔이 가득 찼고 십자가를 손에 들었다. 한무는 경주를 부축하고 싶어 달려들었지만 임수해를 지나칠 때 멈춰서 부축해 주었다.“너무 심각하게 다쳤네요. 구급차가 곧 도착해요, 빨리 병원에 가요!”한무는 비록
아람과 임수해는 구씨 가문의 사람에게 데려갔고 경찰은 악당들을 모두 잡았다. 바닥은 피로 뒤덮여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오직 경주만 제자리에 서 있었다. 손에 총을 들고 있었고, 솜씨가 대단한 경주는 식은 죽 먹듯 싸워 머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장에서 싸울 때보다 훨씬 더 힘든 것 같았다.“신 사장님.”구도현은 경찰 두 명과 함께 경주 앞에 다가왔다. 손에 든 총을 보자 나지막하게 말했다.“같이 가서 수사를 협조해요.”“저기요, 무슨 뜻이에요!”한무는 경주 앞을 막으며 얼굴이 빨개졌다.“총은 우리 사장님이 악당한테서 뺏은 거예요, 설마 사장님이 쏜 거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사장님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구아람 씨는 이미...”“그만해, 한무야. 그만 말해.”경주는 한무에게 명령하고 구도현을 마주했다.“네, 같이 갈게요.”“신 사장님, 오해하지 마세요. 용의자 신분으로 데려가는 건 아니에요. 경찰이 사건을 처리할 때 많은 절차가 필요해요. 협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구도현의 눈빛이 반짝이며 경주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동생도 협조를 해야 해요. 그저 지금 정서적으로 너무 안정되지 않고 상처가 있어 병원에 가야 해요. 내일 아람을 찾아서 진술을 녹음할 거예요.”아람을 생각하자 경주의 가슴이 아파났다.“구 형사님, 먼저 아람을 보러 가면 안 돼요? 너무 걱정돼요.”평소라면 구도현은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 경주는 아람을 도와주어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병원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임수해는 이미 수술실에 보내져 상처를 꿰매었다. 왼쪽 어깨 부상이 가장 심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왼팔을 평생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람은 원래 임수해의 수술을 직접 하기 위해 수술실로 달려갔지만 구윤과 백신우의 제지를 받았다. 현재 상태로 수술이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아람아, 걱정하지 마. 성주에서 최고의 외과의사를 찾아왔어. 무슨 대가를 치르든, 수해의 왼팔을 꼭 살려라고 했어!”구윤은 부들
“셋째 오빠, 이번에 내가 친 사고, 내가 진 빚은 평생 갚을 수 없어.”말을 하며 아람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구윤의 품에서 펑펑 울었다. 그들은 아람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람은 많이 울었었다. 외부인 눈에 아람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군이고 자랑스러운 여왕이다. 그러나 형제들 만이 아람이 평범한 소녀이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람의 충격이 컸고 오랫동안 이런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오는 길에 구진과 백진은 이미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임수해는 중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구했고 회복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방영이라는 소녀는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이미 바이탈이 사라지고 있다. 아람은 거의 무릎을 꿇고 의사에게 방영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도 묵묵히 불쌍한 소녀가 이 상황을 이겨내기를 기도했다.“형, 수해도 다쳤다고 들었어. 임씨 가문에 알렸어?”구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구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수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께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어. 부모님이 나이가 있어. 사모님도 몸이 안 좋아. 이 일을 알면 받아들일 수 없어 병이 재발하면 큰일이야.”“하지만 수해의 부상은 몇 달 동안 쉬어야 될 거야. 하루 이틀은 숨겨도 계속 숨길 수는 없어!”“그럼 이렇게 해. 수술을 마치고 상황이 좋아지면 임씨 가문에 알리자. 그땐 더 쉽게 받아드릴 수 있을 거야.”백신우는 정색하며 제안했다.“형들! 왔어?”구도현은 부랴부랴 달려왔다. 형제들이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도련님들이 모였으니 아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빠들이 모두 모여도 아람을 위로할 수 없었다.‘어떻게 위로해야지?’나약한 소녀가 아람을 구하기 위해 총을 맞아 눈앞에서 쓰러졌다. 약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큰 죄책감에 빠질 것이다.“도현아, 경찰서에 진술 받으러 가지 않았어? 왜.
“오늘 밤, 왜 왔어?”아람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오늘 오후 관해 정원에서 영이를 만났어. 영이가 너희들이 만난다는 일을 알려줬어.”경주는 거침없이 말했다.“걱정되어서 와봤어.”경주의 걱정은 맞았다. 아람이 영이가 의식을 잃기 전에 귀에 속삭였던 충격적인 비밀을 떠올리며 긴장하며 부들부들 떨었다.‘신경주에게 말해야 할까?’아람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는 방영의 망가진 폰이다. 경주는 눈썹을 찌푸렸다. 즉시 재킷을 벗어 아람의 어깨에 걸치고 작은 몸을 꼭 감쌌다. 아람은 거부하지 않았고 멍해 있었다. 그 순간 아람은 영이와 임수해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신경 쓸 기운이 없었다.“그 사람, 잡혔어?”아람은 조용히 물었다.“아직 수사 중이야. 경찰과 내가 보낸 사람들이 성주의 모든 교통, 공항, 고속 열차, 고속도로를 막았어. 날개가 있다고 해도 내가 잡을 수 있어. 절대 도망칠 수 없어.”경주는 심호흡을 하며 눈빛이 이글거렸다.“총기 오용, 악의적 상해, 고의적 살인. 모든 죄를 계산해 보면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어.”총에 맞은 순간이 아람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양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거친 숨을 들이 마셨다. 이건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사실을 경주가 알고 있었다. 바늘에 찔린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팔을 벌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아람을 안았다.“괜찮아, 괜찮아.”경주는 큰 손으로 아람의 등을 토닥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아람 앞에서 경주도 평범한 남자이다. 아프기도 하고 울고 싶었다. 형제들이 이 장면을 보자 마치 팔레트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백진은 눈썹을 찌푸렸다. 다가가려고 하자 구윤과 백신우가 말렸다.“형, 신경주를 싫어하는 거 알아. 나도 별로야.”백신우는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오늘 신경주만 아니었더라면, 우린 다시 아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백진은 눈을 부릅뜨고 깜짝 놀랐다.“두 사람은 3년 동안 부부였어.
다른 사람들도 모여서 한마음으로 의사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총알이 장기를 관통했어요. 환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사실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때 이미 죽어가고 있었어요.”의사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구아람 씨, 죄송하지만, 저희도 최선을 다했어요.”의사로서 아람은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알고 있었다. 구씨 가문 사람들도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백진도 군모를 벗고 방영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알고 있었지만, 이 끔찍한 소리를 직접 들으니 가슴이 여전히 아팠다. 유일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아람이다.“아니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영이는 씩씩한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아람은 의사의 손을 덥석 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 정신을 잃고 쉰 목소리로 질문하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아람아, 침착해, 침착해!”경주는 뒤에서 아람을 깊숙이 안았다. 자신의 피와 살에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영이가 떠날 때 너무 고통스러우면 안 돼.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어. 우리 산 자들이해야 할 일은 죽은 자를 위해 정의를 구하는 거야!”방영은 아람의 가족이 아니다. 심지어 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소녀가 아람을 위해 어린 생명을 희생했다. 이런 후회와 자책을 착한 아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이 죽인 것 같았다.“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야. 내가 영이를 해쳤어.”아람의 눈에서 솟구치는 눈물이 갸름한 턱선을 따라 흘렸다. 손가락으로 가슴을 찌르며 자신의 심장을 찢어내고 싶었다. 경주는 아람의 무너진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팠고 울컥하며 극도로 쓰라린 슬픔을 느꼈다....아람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오빠들 중 절반은 그 여파로 바빴고, 눈앞에는 구진과 백신우가 있었다.“넷째 오빠.”아람은 부드럽게 외쳤다.“나 여기 있어. 아람아.”백신우는 침대 옆에 앉아 아람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