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의 말에 법로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법로는 알고 있었다. 인명진이 진심으로 온지유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설령 온지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온지유가 행복한 모습을 보기 위해 그는 자신의 피를 뽑아주면서라도 온지유에게 소중한 사람을 구해주고 싶어 했다.하지만.온지유는 이미 인명진을 그저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이것 또한 법로가 알고 있는 것이다. 온지유는 어릴 때 푸른 구슬로 만들어진 팔찌를 인명진에게 주었다.그것은 온지유 어머니의 유물이었다.만약 인명진을 희생해서 별이를 살린다면 온지유는 분명 슬퍼할 것이다.법로는 자신의 유일한 딸이 슬퍼하는 모습을 원치 않았다.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널 봤을 땐 확실히 널 이용하려고만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넌 율이의 친구가 아니니. 진심으로 율이를 걱정하고 잘되길 바라니 난 절대 널 희생할 수 없단다. 하지만 이 아이를 치료할 때 네가 옆에서 보조로 도와주렴.”“네.”인명진은 두말하지 않았다.법로는 별이의 구체적인 상태를 알아야 했기에 피를 뽑아 자세히 검사해 봐야 했다.온지유는 이번에 별이에게 피를 뽑아야 한다고 말을 했었던지라 별이는 얌전히 있었다.법로는 빠르게 검사를 진행했다.혈액 검사 결과와 종합 검진 결과를 보았을 때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별이는... 천식뿐만 아니라 심장병도 있었다.심지어 혈소판 응고 수치도...인명진은 검사 결과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법로를 보며 뭔가를 깨달았다. 그가 검사 결과를 직접 보았을 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아이의 몸에는 성분을 알 수 없는 약물도 발견되었다.백혈병이 의심되기도 했다.아니,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었다.하지만 이런 결과를 온지유에게 알려준다면 온지유는 분명 충격받을 것이었다. 애당초 홍혜주는 아이가 살아있다는 말로 온지유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다.백혈병은 골수가 일치해야 했다. 비록 법로와 여이현, 그리고 신무열이 다 가능성
“아니면 아버지가 여이현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는 거야?”신무열이 한 말은 한마디씩 전부 온지유의 가슴에 콕콕 박혔다. 그녀는 법로가 여이현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여하간에 지금 상황에서 법로는 여이현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신무열은 그런 온지유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너도 아버지가 여이현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걸 알고 있는데 뭘 그렇게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일단 푹 쉬어. 어차피 우린 널 속일 생각도 없어. 너는 우리한테 유일한 존재고 우리가 그간 못 해준 것도 전부 보상해줘야 하는 존재야. 널 해칠 생각은 하나도 없다고.”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신무열이 한 말을 전부 새겨들었다. 신무열은 그저 말뿐인 사람이 아니었다. 행동으로도 보여주었기에 그녀는 진심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한편 여이현은 인명진과 함께 법로의 실험실로 왔다. 인명진은 안내를 마친 후 바로 나왔다.별이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고 오른팔엔 링거를 맞고 있었다.법로는 검사 결과를 전부 여이현에게 건넸다.“별이는 조산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라 질병이 많더구나. 심지어 백혈병도 있더구나. 네가 아이를 안고 네 아버지를 찾아가 해독제를 달라고 거래를 했을 때 네 아버지는 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한 것이냐?”이 말을 하면서도 법로는 다소 후회했다.여이현의 서늘한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온지유가 독에 중독된 것은 흉터남과 홍혜주, 그리고 노석명 탓이었으니까.노석명이 살아있었던 건 그가 노석명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배신자일 리가 절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결국은 모든 게 그의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엄청난 죄책감과 후회를 느꼈다.“일단 너와 별이의 골수 검사를 해보자꾸나. 만약 일치하면 좋겠다만, 아니라면 내가 다른 사람으로 알아보마. 하지만 난 이 검사 결과를 지유한테는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대신 얼버무려줘. 그리고 나에 대한 좋
여이현은 온지유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사람이었다. 그런 여이현이 법로를 도와준다면 모든 가족이 단란하게 모이는 건 시간문제였다.다만 법로도 여이현을 향해 보장했다.“걱정하지 말아라. 난 지유한테 진심으로 용서받고 그간 못 해준 걸 해주고 싶은 것일 뿐이니까. 그리고 별이는 내 손자이니 진심으로 건강해지길 바라고 있단다.”그 말인즉슨 별이를 치료하는 데 여이현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어떻게든 별이를 치료해주겠다는 의미였다.“네, 알겠습니다.”여이현은 나직하게 말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모든 의미를 담은 듯했다.다만 그와 별이의 골수는 일치하지 않았다.온지유 쪽에는...여이현이 말했다.“지유는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절대 지유를 불러 골수 검사하면 안 돼요.”만약 온지유가 알게 된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온지유의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다. 힘들게 찾은 아이와 겨우 행복해지나 했는데 아이에겐 질병이 많았고 상태도 많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나도 알고 있다. 일단 별이와 골수가 맞는 사람부터 찾아야겠구나. 어차피 여긴 사람이 많으니 괜찮을 거다.'백 명 중에도 없다면 그럼 천명, 만 명, 십만 명을... 끌어와 검사해 벌 것이다. 분명 아이와 맞는 골수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별이의 곁으로 다가가 별이의 손을 잡은 후 손등에 뽀뽀를 해주었다.“별아, 이분은 네 외할아버지셔. 엄마와 외할아버지 사이에 오해가 아직 안 풀렸으니까 우리 별이가 도와줘야 해. 외할아버지는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착해지셨거든. 외할아버지는 지금 별이를 치료해주고 있는 거야. 별아, 별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엄마한테 비밀로 해주면 안 될까?”여이현은 느릿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입가에 다정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온지유는.신무열이 줄곧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다. 심지어 누군가 세심하게 과일과 간식
온지유는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싹 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녀는 여이현이 없는 5년을 보내면서 용경호와 홍혜주에게서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올해 연말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고 나민우 쪽은 집안에서 신붓감을 찾아주었다.그녀의 주위에 아직도 솔로인 사람은 성재민이었다. 성재민 쪽 상황은 사실 잘 알지 못했지만 인명진과 신무열에게 짝이 없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김혜연은 비록 그녀와 불쾌한 일이 있긴 했지만 만약 두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너...”신무열은 온지유를 부르려고 했지만 온지유의 걸음은 아주 빨랐다.김혜연은 그의 앞을 가로막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꼭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말이다.“도련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또 일을 망쳤네요. 전...”“넌 지금 너 때문에 지유가 화가 나서 자리를 뜬 게 안 보이니? 계속 쓸데없는 말만 할 거면 그 혓바닥 뽑아버리는 수가 있어. 알아들었어?”만약 김혜연의 아버지가 Y 국을 위해 헌신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온지유와 다툰 순간 이미 그가 처리해 버렸을 것이다.김혜연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네, 알았어요. 그러니 도련님, 제발 화내지 말아 주세요. 제가 얼른 사라질게요. 지유 아가씨가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하면 바로 저를 불러 주...”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신무열은 자리를 옮겨버렸다.김혜연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짐했다. 아무리 신무열이 어려운 상대라고 해도 반드시 유혹하고 말겠다고 말이다....신무열은 온지유를 뒤쫓아 갔다.“어디 가려고. 같이 가.”신무열은 성큼성큼 따라갔고 이에 온지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제가 여기서 안 살아본 것도 아니잖아요. 저도 여기 규칙을 알고 있어요.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안 갈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따라오는 걸 보면 저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죠?”온지유는 갑자기 여이현이
온지유는 별이를 꼭 끌어안으며 곁에 있어 주었다.그러던 그녀는 우연히 법로가 정리해 둔 치료 목록을 발견했다.그중 하나의 약초 이름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칠엽초.이 약초는 그늘을 좋아해 깊은 산 속에서만 자라며 독특한 약효 덕에 주변에 독사가 자주 어슬렁댄다.그러니까 칠엽초는 전문 약초꾼이 아니라면 일반인은 캐기 어려웠다.법로는 칠엽초라고 써놓고 옆에 점을 잔뜩 찍어두었다. 아마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골치 아파했던 것 같았다. 온지유는 입술을 짓이겼다. 약초를 캐러 갈 사람이 없다면 그녀가 직접 갈 생각이다.별이만 살릴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라도 그녀는 전부 할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바로 출발하려 했다.그러자 여이현은 산 쪽으로 가는 그녀를 보며 바로 따라 나왔다.“어디 가려고?”“칠엽초 따러 갈 거야.”온지유는 직설적으로 말하며 한마디 더 보탰다.“나 혼자 가면 되니까 이현 씨는 별이 곁에 있어 줘.”“아니, 안 돼. 나랑 같이 가.”여이현의 태도는 아주 확고했다. 한시라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동행했다.칠엽초가 자라나는 곳은 아주 음습한 곳이었다.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만 볼까 말까 할 수 있는 약초였던지라 산을 오르면서 온지유는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바로 산속 깊은 곳이었으니까.얼마나 걸었을까. 주위의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며 음습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로 추웠다.여이현은 얼른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입혀주며 걱정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넌 이만 돌아가. 내가 어떻게든 꼭 칠엽초 따서 돌아갈 테니까.”“아니야. 난 돌아가지 않을 거야.”이번엔 온지유의 태도가 확고했다. 애초에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다. 설령 그 사람이 남편이어도 말이다.더구나 앞에서 어떤 위험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여이현 혼자 남겨두고 가는 일은 그녀는 할 수
등 뒤로 호랑이와 맹수가 끈질기게 두 사람을 쫓아왔다.온지유는 이렇게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산속에 완전한 밤이 찾아오면 더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나무를 지나칠 때 온지유는 발을 들어 올려 있는 힘껏 나뭇가지를 꺾어 몸을 돌린 후 휙 던졌다. 그녀가 던진 나뭇가지는 마침 독사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독사는 더는 움직일 수 없었고 호랑이는 포효했다. 마치 동료가 죽은 것에 화난 듯했다.“산 절벽 타고 올라가.”여이현이 그녀에게 말하면서 횃불을 호랑이를 향해 던졌다.호랑이는 피하지 않았다. 횃불은 호랑이의 머리를 맞추며 땅에 떨어졌다. 호랑이 머리털 위로 불씨가 생겨나자 호랑이는 당황한 듯 가만히 있었다.온지유는 얼른 다가가 횃불을 주운 뒤 호랑이가 불씨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있는 힘껏 호랑이의 몸에 찔러 넣었다.한 방에 깔끔하게 호랑이를 죽였다.여이현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5년 동안 온지유는 이렇게나 용감하고 강인한 사람이 되어버렸다.“횃불은 이제 없어. 우린 얼른 적당한 곳을 찾아 모닥불을 피워야 해.”온지유는 산속에 절벽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을 했다.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사람의 형태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Y 국에선 여전히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한 Y 국인이 허둥지둥 군영으로 달려들어 오며 보고를 올렸다.“적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쳐들어온 것 같습니다. 저희 쪽 사람, 저희 쪽 사람들은 곧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가서 내 화살 가져와.”신무열은 잔뜩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화살을 그에게 건넸다.“사람 몇은 실험실 앞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전부 나 따라온다.”신무열은 화살을 들고 출발했다. 사실 그와 함께 전장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고작 다섯 명이었다.몇 번의 전쟁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아직 완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도 이 사실을 알고 습격한 것이다.그
온지유와 여이현은 겁에 질린 얼굴로 바닥에 앉았다. 한참 지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방금처럼 커다란 독사를 보면 저도 모르게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여이현은 몸을 돌려 온지유를 꼭 끌어안은 뒤 이마에 뽀뽀했다.“괜찮아. 이따가 내가 다시 동굴 안을 살펴볼 거야. 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이현 씨 탓 아니야. 누구라도 동굴에 독사가 있을 줄은 몰랐을 거라고.”온지유는 여이현을 위로해 주었다. 이렇게 습한 곳이니 분명 뱀이 살 것이었다. 어쩌면 이곳이 뱀굴일 수도 있었다.다만 두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 채 동굴로 들어온 것이다. 지금은 뱀을 죽여버리지 않았는가. 결국 그들이 제멋대로 쳐들어와 집주인을 죽인 셈이다.여이현은 다시 모닥불을 피웠다. 동굴 안을 샅샅이 둘러본 뒤 커다란 돌로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런 뒤 그는 뱀을 굽기 시작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몰랐지만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Y 국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보고하러 들어왔던 사람은 다리를 절뚝이며 돌아왔다.“얼른, 얼른 사람을 불러와. 대장님, 대장님께서 다치셨다.”공간 가득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에 바로 사람들이 몰려왔다.김헤원이 물었다.“어디에 있는데요. 많이 다쳤어요?”그녀의 목소리에선 떨림이 느껴졌고 불안에 잔뜩 휩싸인 모습이었다.“산등성이에...”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기절해 버렸다.김혜연은 얼른 그의 무기를 들고 명령을 내렸다.“너희들은 얼른 이 사람을 법로 님께 데리고 가. 남은 사람들은 나와 함께 대장님을 찾으러 가는 거야.”산등성이는 그들의 군영과 거리가 멀지 않았다. 고작 몇십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만약 그들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적이 쳐들어오면서 분명 신무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김혜연은 신무열이 적에게 끌려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신무열이 끌려간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Y 국인들 또한 혼란스러워할 것이다.다행히 신은 Y 국을 버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동굴에서 멀어졌다. 온지유는 고개를 돌려 절벽을 보았다. 무언가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여이현이 그런 그녀를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왜? 저기서 하룻밤 더 보내고 싶어? 그러다 어제 죽인 암컷 뱀의 남편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습하고 독사가 사는 곳이었잖아. 저 안에 칠엽초가 있는 건 아닐까?”온지유는 사실 추측한 것이었다. 여하간에 동굴엔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책에서 본 칠엽초는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습한 곳에서만 자란다고 했으니까.칠엽초는 음습한 곳을 좋아했기에 햇볕을 피해야 했다.꼭 사람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모순이 많은 개체다.여이현은 그녀의 말에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가 말했다.“그럼 여기서 기다려. 내가 얼른 가서 확인하고 올게.”“아니야. 같이 가. 만약 어제 죽인 독사의 남편이라도 돌아오면 혼자서는 무리잖아.”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 농담은 오로지 두 사람만 알아듣는 농담이었다.온지유와 여이현은 서로가 한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정말 칠엽초네.”동굴을 한 바퀴 빙 둘러보니 깊숙한 곳에서 칠엽초를 발견했다.하늘이 두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려는 것인지 동굴 입구에서 또 하나를 발견했다. 햇볕이 들어오는 곳 바로 옆에 자라나 있었다. 빛깔도 좋아 이미 딴 칠엽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마치 칠엽초의 공주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위에 있는 다른 잡초는 평민 같았다.여이현은 흥분한 얼굴로 따려고 했지만 온지유가 그를 잡아당겼다.그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손으로 따면 안 돼. 그러다가 망가지면 어떡해. 우린 반드시 완전한 모습 그대로 가져가야 해. 안 그러면 칠엽초는 우리가 돌아가기도 전에 말라 죽어 버릴 거야.”온지유는 책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말하곤 이내 여이현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