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조사팀이 HT그룹에 투입되어 일주일간의 조사 활동을 시작했다.전 직원들이 대기 상태에 들어갔고, 모두 팽팽한 긴장 속에서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일주일 후, 조사팀이 증거 수집을 완료하고 나서야 초대받은 나운석이 두 시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운석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진 것은 심각하고 억압된 분위기였다. 그를 맞이한 사람은 처음 보는 직원이었다. “한 대표님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운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때 성공을 자랑하던 이 고층 빌딩은 이제 위태롭게 보였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표실로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와.” 한서준의 목소리는 쉰 듯하고 피곤했다.서준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턱에는 푸른 수염이 자랐으며, 눈은 깊게 꺼져 얼굴빛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 분명 지난 일주일 동안 비상한 조사를 견뎌낸 흔적이었다.운석은 서준 앞에 서서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버텨낸 걸 보니, HT그룹에 큰 문제는 없나 보군. 네가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거겠지.”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예전처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지 않았고, 운석의 말투는 진지하고 엄숙해졌다.서준은 운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난 네가 우리 회사가 무너지는 걸 바랐을 거라고 예상했어.”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겠어?”“하선유한테 문제가 생기고, HL산업은행이 위기에 빠졌을 때, 네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는 도와주지 않았잖아.” 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무력한 표정을 지었다. “난 네가 그 후에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겨우 수습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나를 원망했을 거야. 오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널 외면한 거니까.”“잘 아네.” 운석은 비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방 안을 한 바퀴 돌며 말했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네 사무실에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네가 최하연의 전남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너를 형제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2년이라는 시간이
“말도 안 돼.” 운석은 다시 한번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탈세와 조세 회피 금액이 몇천 억대에 달했다. “최하연은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어! 최하연 집안은 돈이 부족하지 않고, 본인도 역시 마찬가지잖아.”“운석아, 아직도 모르겠어? 중요한 건 돈이 아니야, 감정이야!” 서준이 깊은 목소리가 말했다.그는 여전히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하연이 우리 집안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해 봐. 최하연은 나를 미워하고, 우리 집안을 미워해! 이건 최하연이 미리 계획해 둔 덫일 가능성이 커.”운석은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너도 봤잖아. 이혼 후 최하연이 사업에서 보여준 능력을. 이런 일을 하는 게 이 여자에게는 쉬운 일이었을 거야.”운석은 여전히 의심스러워했다. 오래된 친구인 서준과 그가 알던 최하연 중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 금액을 채울 수는 있어?”“가능해.” 서준은 담배 한 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 돈만 메우면 HT그룹은 문제없어. 최하연도 무사할 거고. 하지만 HT그룹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뭐?”“놀이공원 사업 말이야.”운석도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 “그건 이미 해결된 줄 알았는데? HT그룹은 손해를 보고, 놀이공원은 운영을 중단했잖아.”“원래는 문제가 없었지. 그런데 연초에 한명창이 갑자기 B시에 나타나서, 30여 개의 기업을 조사했어. 죄목을 덧씌우려는 듯 오래된 사건을 다시 들춰내서 본보기를 세우려 하고 있어.”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B시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이 사건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운석은 서준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 듣긴 했지만, HT그룹도 연루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부상혁이야.”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운석은 그 충격에 손가락을 꽉 쥐었다. “그 사람?”“그래, 부상혁이 최하연을 위해서 날 완전히 파멸시키려 하고 있어.”이 사건이 조사되면 관련된
온 사무실은 만보롱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운석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실 문이 열렸다. 그곳에 서 있던 이는 다름 아닌 이방규였다. 그는 두 손을 교차하며 물었다. “그 사람, 믿을 수 있어요?”“나씨 가문 상회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투자은행의 부사장 중 하나예요. 그 정도면 이 대표나 부상혁의 분야에서 충분하죠.”서준은 술장 앞으로 다가가 술 한 병과 두 개의 잔을 꺼냈다.“그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한 대표도 도와주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한 대표를 도와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죠?”진한 붉은 술이 잔을 따라 흘러내렸다. 서준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내 친구를 모를 리 없죠. 나운석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HT그룹을 나서던 운석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아까 거울 앞에서 서준이 운석에게 다가와 USB를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찾던 걸 구해왔어. DS그룹 송년회 때 계단에서 사라진 CCTV 기록이야. 이걸로 하선유는 이방규를 고소할 수 있을 거야.”가장 중요한 증거가 서준의 손에 있었다니.“이걸 어떻게 구했지?”“잊었어? 서영이가 이방규와 사귀고 있잖아. 서영이가 나에게 증거를 넘긴 거였어.” ...“내가 없던 일주일 동안, 밖은 어땠죠?”이 말을 듣자 이방규는 짜증을 참지 못하며 대답했다. “부상혁이 계속 움직이고 있어요. 내가 사람을 보내서 부상혁을 도청했는데, 어떤 귀찮은 놈이 알아채 버렸어요.”“누가 알아챘죠?” 서준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무심하게 물었다.이방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대답했다. “소울 칵테일의 주인 말이에요.”서준의 모든 동작이 순간 멈췄다. “손이현이요?”“한 대표도 그 사람을 알아요?”서준의 전신이 경계로 굳어졌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손이현은 절대로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된 것도 손이현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죠.”“그 사람이 누구길래 한 대표까지 그렇게 경계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손님, 뭐 좀 드시겠습니까?”이현은 아무렇게나 커피 두 잔을 선택한 후, 직원에게 떠나라는 신호를 보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연한 색상의 숄을 두른 우아한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오랜 시간 관리를 잘한 덕분에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고, 친절하면서도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그녀는 곧바로 하모란의 앞에 앉았다.“성과가 있었나?”“이수애는 굉장히 신중해요. 며칠 만에 마음을 털어놓진 않겠지만 저는 이수애에게 꽤 많은 돈을 건넸고, 조금씩 절 신뢰하고 있어요. 내가 일부러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부추겼는데, 이수애는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고요.”하모란의 과장된 설명에 앉아 있던 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네 목적은 아니잖아.”“아이고, 알아요. 진숙 언니, 언니가 B시에 돌아오는 건 드문 일인데, 날 도와달라고 한 거니 당연히 최선을 다하고 있죠.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에요.” 하모란은 조진숙을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언니가 왜 직접 나서지 않았는지 이제 알겠어. 이수애와 며칠 동안 지내다 보니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조진숙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수애의 일정 좀 확인해 볼까?”하모란은 종이를 꺼내며 말하는 동시에 적기 시작했고, 이현도 그녀의 말을 따라 종이에 메모했다.하모란이 말을 마치자, 조진숙은 잠시 말이 없었고, 단지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결론이 나왔네.”“결론? 무슨 결론이요?” 하모란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고마워, 난 먼저 가볼게.” 조진숙은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나며 말하면서 서둘러 카페를 나섰다.부하가 첫 모금을 마시자마자 쓴맛에 얼굴을 찌푸리며 불평하려던 찰나, 이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커피, 비싸게 주고 샀는데 안 드시게요?”이현은 황급히 밖으로 나갔지만, 조진숙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좌우를 살피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찾고 있었나요?”이현은 순간 굳
최근 DS그룹에서는 새로운 분기 업무가 시작되었고, 하연은 대략적인 방향을 확정한 후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이사회에서는 투표율이 높지 않았다. 대부분은 관망 중이었다.“신재생 에너지 분야는 초기에 진입한 사람들이 이미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갔습니다. 이제 들어가 봤자 이득을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인력과 자원을 낭비할 겁니다.”하연은 여성용 정장을 입고 주석 자리에 앉아 최근의 산업 정책을 인내심 있게 분석했다. “국내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앞으로 신재생 에너지가 주류를 차지할 겁니다. 우리가 이 분야를 주력으로 삼는 건 아니지만, 지금 들어가도 늦지 않을 겁니다.”한 이사가 반박했다. “신재생 에너지가 물론 매력적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로봇, 인터넷, 그리고 문화 콘텐츠라는 세 개의 신흥 시장을 잡고 있습니다.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겁니까?”하연이 반문했다. “그 세 개의 시장은 누가 결정한 거였죠?”이사회의 이사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최 사장님이죠.”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DS그룹은 한 사람의 독단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을 설득할 수 있는 데이터와 계획을 제시하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실행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하연은 이사들의 불안을 이해했다. 이 사업을 위해 며칠간 고군분투한 탓에 그녀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상혁은 그녀가 제대로 식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특별히 요리사를 시켜 음식을 준비해 직접 가져왔다....“신재생 에너지 중에서도 태양광 발전은 한때 HT그룹도 손을 댔었어. 하지만 비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실패했지. 하지만 한서준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몰라.”상혁은 하연이 무심하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의견을 꺼냈다.“태양광 발전이라... 알죠, 그때 한서준이 나한테 사과할 때, 그 얘기를 꺼냈었어요
하연은 손을 멈추고 상혁의 변함없는 표정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만 계속 말하고 있잖아요, 오빠는 왜 일에 대해서 한 번도 나한테 말하지 않아요?”상혁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업무 기밀을 너한테 어떻게 말하겠어?”그건 하연이 예전에 했던 말이었다. 하연은 화가 나서 말했다. “누가 오빠 회사의 기밀을 알고 싶대요? 그냥 간단하게 말해봐요. 무슨 일 없었어요?”상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나 있긴 한데, 좀 이상한 일이야. 얘기해 줄까?” 하연이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상혁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며칠 전에 내 메일로 익명의 이메일이 하나 왔어. WA그룹의 사업에 결함이 있다는 내용이었지. 그리고 서태진이 비밀리에 사설 금융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더군. 경고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상혁이 이 말을 하는 동안 하연의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었다. 겉으로는 침착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친절하게 오빠한테 알려줬을까요? IP 주소는 추적했어요?”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암호화돼서 풀 수 없었어. 황 비서한테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라고 했는데, 서태진이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지른 게 맞더군.”하연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혁의 팀이 아무리 뛰어나도 최하경의 암호화는 아무나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발신자가 정말로 오빠를 도우려는 마음에서 보낸 것 같아요. 미리 알게 된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상혁은 생각에 잠긴 듯 몸을 뒤로 젖히며 하연을 응시했다. “누가 보냈을까? 그리고, 왜 익명으로 보냈을까?”하연은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가 말했다. “찾을 수도 없는데, 그냥 좋은 사람이 선행을 베푼 거라고 생각하면 되죠.”상혁이 이메일을 받았고 이미 조치를 취한 걸 알게 되니, 하연은 완전히 안심했다. 이제 부남준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든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좋은 사람이 선행을 베푼
하연은 조진숙의 과거를 몰랐기에, 상혁을 끌어당기며 속닥거렸다. “오빠, 이모랑 오빠의 선생님이 깊은 인연이 있으셨던 거예요?”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있었고, 하연의 머리카락 끝이 상혁의 단단하고 새하얀 팔 위로 떨어져 있었다.상혁의 앞에는 여전히 켜져 있는 노트북이 있었고, 그는 주식 시장의 그래프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교 시절에 만난 교수님이야. 원래는 내가 듣는 과목을 담당하지 않으셨는데, 내 신분을 알고 나서 직접 맡겠다고 나서셨지.”“이모를 위해서요?”“응.” 상혁은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는 원래 자유롭고 대담한 성격이야. 젊었을 때 집안을 떠나 해외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우연히 교수님과 알게 됐어. 하지만 교수님이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친구로 지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난 거야.” 조진숙은 성격상 친구 관계에서 연애로 발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하연이 놀라며 물었다. “왜 고백을 못 했을까요?”“교수님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고, 큰 꿈을 품고 있었지. 결국 국내에서 경력을 쌓아야 했으니, 우리 엄마의 배경과는 맞지 않았어.” 상혁은 차분히 설명하며 팔을 내밀어 하연이 기대도록 했다. “사실 조씨 가문은 부씨 가문처럼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았어. 계층을 넘어선 사랑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 문제는 우리 엄마가 교수님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야.”“엄마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빠와 마주쳤고,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어. 아빠는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했지. 진솔하고 솔직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열렬하게 구애했고, 석 달도 안 돼 두 분은 결혼을 결정했어.”조진숙과 부동건은 정태산과의 관계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러운 발전이었다.“그때의 우리 부모님은 성격도 잘 맞았고, 집안 배경도 비슷했으니 두 사람의 관계는 두 가문 모두에게 완벽한 스토리였지. 전국적으로도 큰 화제가 됐었어.”상혁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기억했다. 비록 나중에 이혼했지만, 상혁은 자신이
다음 날.하연이 DS그룹에 도착하자마자, 정태훈이 다가와 보고했다. “최신 소식입니다. 서태진의 사설 금융 조직이 강제 시정 조치에 들어갔고, 폭력적인 추심 문제도 확인했습니다.”상혁이 그 익명의 이메일을 제대로 보고 행동을 취한 것임이 분명했다.이제 부남준도 더 이상 발을 들일 여지가 없어 보였다.하연은 안도했지만, 동시에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 문제 때문이라면, 서태진이 그렇게 큰 손해를 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그 생각을 더 깊이 할 틈도 없이 부하가 문을 두드리며 업무 보고를 하러 왔다. 하연은 잡념을 접고 말했다. “들어와요.”한편, FL 그룹에서는...황연지가 서태진과 관련된 소식을 들고 상혁의 사무실에 들어갔다.“알겠어.” 상혁은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연지의 시선이 책상 위의 아직 식지 않은 차에 머물렀다. “손님이 계셨던 건가요?”상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할 말 있어?”연지는 자신이 실례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말했다. “오늘 대표님의 어머님께서 소울 칵테일에 가셔서 정태산과 만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변에 경호를 배치해 사진이 찍히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상혁은 그제야 고개를 들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왜 하필 소울 칵테일이지?”최근에 그곳을 자주 갔던 탓에, 연지는 한동안 그 이유를 생각하지 못했으나, 이내 깨달았다. ‘맞아, 왜 굳이 소울 칵테일일까?’“아마도 지난번에 대표님께서 거기서 정태산 교수님과 만났기 때문에, 신뢰감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상혁도 그 외에는 딱히 이유를 찾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요즘 어떻게 지내지?”“여전히 송혜선과 함께 계십니다. 만약 부 회장님이 이 일을 알게 되신다면...”연지가 말을 끝내기 전에, 상혁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혼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참견한단 말이야?”“저는 지금 DL그룹 내에서의 대표님의 입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말요?” 다영은 남준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자신이 남준을 믿고 기다린 게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녀가 모든 걸 걸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남준 씨, 난 그냥...” “그냥 뭐요?” 다영은 고개를 저으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전에 떠돌던 소문들 때문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던 것뿐이에요.”“그런 쓸데없는 소문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남준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기쁨에 젖어 있는 다영은 남준의 말 속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남자의 팔을 꼭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언제나 남준 씨의 편이에요. 당신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부르면 돼요. 항상 곁에 있을 거니까요.”‘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내가 도와서 얻게 해줄 거야. 그게 DL그룹이라 해도...’ 그녀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굳은 결심을 다졌다....새해를 맞이하는 밤.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고, 도시는 환희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모두가 기쁨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던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하연은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 안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으로부터 들어온 아침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어났어?” 상혁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연은 기지개를 켜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 시예요?” 상혁이 곧바로 답했다. “아직 일러. 11시밖에 안 됐어.” “11시?” 하연은 예상외로 늦은 시간에 살짝 놀랐다. 그 순간 상혁이 침대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눈을 맞췄다. 그의 눈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조금 더 자도 돼.”그러나 상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연의 배에서 신호가 왔다
“남준 씨, 지금 당신 날 피한 거예요?” 다영은 손에 쥔 라이터를 꽉 쥐었다가 조용히 주머니에 넣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고, 남준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상황 역시 그녀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이, 이제는 마치 남이 된 것 같은 이 분위기가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남준은 정면만을 응시한 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타요.” 다영의 눈에 순간적으로 희미한 빛이 스쳤다. 망설임 없이 그녀는 차 뒤쪽을 돌아 조수석 문 앞에 섰고, 문을 열어 차에 탔다.차에 올라탄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놓인 정교한 포장 상자로 향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영은 상자를 들고서 물었다. “남준 씨, 이거... 내 선물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손은 이미 멈추지 않고 상자를 열고 있었다.남준은 살짝 찌푸린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상자를 열어보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볼 뿐이었다.다영이 상자를 열자, 안에는 섬세하게 디자인된 고급스러운 목걸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중앙에 놓인 독특한 디자인의 목걸이는 푸른빛의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조명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말 예쁘네요...” 다영은 감탄하며 목걸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환한 미소로 남준을 바라보았다. “이거 나한테 걸어줄 수 있어요?”남준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목걸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깊어졌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목걸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남아공에서 천연으로 채굴된 최고급 보석입니다. 순도와 투명도가 모두 최상급이고, 무엇보다도 희소성이 높아 전 세계에 단 하나뿐입니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하기에 가장 적합한 아이템이죠.’ 그때 들렸던 매장의 직원 설명이 귀에 맴돌았다.
“나... 나 술 안 취했어.” 남준은 말끝이 흐려졌고, 아까의 당당한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하연은 남준의 이상한 태도를 감지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거기에는 상혁이 어느새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혼자 있는 남자의 긴 그림자가 조명 아래 길게 드리워졌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오빠...” 하연은 입을 열어 무언가 설명하려 했으나, 상혁은 모든 상황을 이미 이해한 듯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편안한 눈빛을 주었다. 단 한 번의 눈맞춤으로 하연은 마음속에 있던 불안함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두 사람 사이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신뢰가 있었다.상혁은 그녀에게 다가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어깨에 걸쳐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바람이 차니까 빨리 들어가자.”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응, 알았어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서로 맞물리고,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서로에게 느껴졌다.그러나 이 장면은 남준의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남준은 표정만큼은 최대한 담담하게 유지하며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DS그룹 연말 행사가 있다고 해서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들렸어, 마침 형도 여기 있었네.”상혁은 하연의 손을 살며시 감싼 채 고개를 들고 남준을 바라보았다. 상혁의 눈빛은 깊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왜 이젠 DS그룹 일에도 신경이 쓰여? 모르는 사람은 보면 네가 DL그룹 버리고 DS그룹으로 옮기려는 줄 알겠어.” 남준은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상혁의 말에는 은근한 경계와 조롱이 담겨 있었다. 남준은 불리한 상황임을 깨닫고 억지로 웃으며 변명했다. “형,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분위기나 좀 보려고 들른 거야.”상혁은 남준의 속내를 이미 간파하고
“시간 없어.” 하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메시지를 확인했고, 내용을 본 후 손에 힘이 들어갔다. 10분 후.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남준의 눈에 띄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비상등을 켠 채 호텔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번화한 호텔 입구에서 유독 도드라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잠시 후, 차 문이 열리고 남준이 내렸다. 그는 오늘 블랙 패딩을 걸친 채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유롭게 하연을 바라보았다. “역시 올 줄 알았어.”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찬바람이 부는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하연의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하연은 몇 걸음 옮긴 뒤 걸음을 멈췄고, 남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손을 들어 흩날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말해. 문자에 적힌 상혁 씨하고 관련해서 중요한 일이 뭔데?”남준은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형이 걱정돼?”“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하연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남준은 그녀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더니, 불과 반걸음 거리에 멈춰서 몸을 약간 숙였다. “너의 그 관심 나 한테도 좀 나눠 주면 안 돼?”그가 가까이 다가오며 내뱉은 말에 은은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술 마셨어?”남준은 입가를 비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혹시 나 걱정하는 거야?”“착각하지 마.”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부남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여기서 시간 끌 여유 없어.”남준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어딘가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너 갈수록 성격이 우리 형이랑 닮아가네. 역시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하연
하연은 밝게 웃으며 상혁이 건넨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갓 짠 오렌지 주스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부 대표님이 직접 짠 오렌지 주스라 그런가, 확실히 맛이 다르네요. 정말 맛있어요.”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맛있으면 자주 짜줄게.” 하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감사히 잘 마실게요, 부 대표님!” “아니, 한참을 찾았는데 여기서 둘이서만 꽁냥거리고 있었네?” 문 앞에 기대어 서 있던 하성이 두 팔을 교차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혁, 너 요즘 이 녀석을 너무 애지중지하더라. 그러다 버릇 나빠지겠어.” “오빠!!” 하연은 볼이 부풀어올라 약간 투덜거렸지만, 옆에 있던 상혁은 태연하게 그녀를 감싸며 말했다. “애지중지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하성은 두 손을 들며 장난스레 투항했다. “알았어, 알았어. 난 그냥 너희 둘이 잘 지내는 거 보니 마음이 놓여서 하는 소리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계속 이렇게 잘 지내줘, 아주 보기 좋아!”그때 하연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부남준’이라는 이름이 뜨자 그녀는 잠시 긴장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오빠들, 먼저 얘기하고 있어요. 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하연이 자리를 비우고 복도로 나가자, 하성은 방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요즘 너희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더라. 동건 삼촌 쪽에서 뭔가 일이 있는 것 같던데?” 상혁은 하연이 마시다 남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시선을 복도 쪽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말했다. “첩이 ‘본처’의 자리를 노리는 거야. 흔한 일이잖아.” 하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동건 삼촌이 그 여자를 꽤 오랫동안 봐줬던 모양이던데. 이제는 꽤 많은 걸 쌓아둔 듯하고, 한번 크게 판을 벌일
“뭐 하는 거야? 빨리 이 주스를 연회장으로 가져가!” 홀 매니저가 다가와 살짝 꾸짖었다. 여자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질투로 번들거리던 눈빛을 감추고는 얌전히 대답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다영은 태어나서 가사일 한 번 손댄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트레이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매니저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너 신입이야?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다영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 속에서 송혜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고향 친척 중 하나가 DS그룹에서 일하고 있어. 오늘 밤엔 그 사람 신분을 쓰는 게 편할 거야.” 침착함을 되찾은 다영은 고개를 들어 냉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고객지원부의 진미입니다. 연회 인력이 부족해서 임시로 지원 나온 거예요.” 매니저는 그녀의 명찰을 한 번 흘깃 본 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를 건네받았다. “신입이라면 전면에 나가면 실수하기 쉬워. 내실에서 돕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떠난 뒤, 다영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연회장을 바라봤을 때, 앞줄에 앉아 있던 하연과 상혁은 이미 모습을 감췄다. 2층 휴게실 안. 원신명은 한 손에 신선한 오렌지 한 봉지를, 다른 손에 포장을 뜯지 않은 녹즙기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주문하신 오렌지와 녹즙기입니다.” 원신명은 궁금한 듯 물었다. “대표님, 직접 오렌지 주스를 만드시는 건가요?” 상혁은 짧게 대답했다. “원 비서, 거기 두고 가면 돼.” 원신명은 얼른 다가가 도움을 자청했다. “대표님, 이런 건 제가 할게요.” “와이프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다는데,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와이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마치 그 단어를 그의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원신명은 곧 깨달았다. ‘아, 대표님이 직접 최하연 씨를 위해 주스를 준비하시고 싶은 거구나!’ “원 비서, 연말인데도
최하성은 오늘 검정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와 단정한 모습은 단번에 모든 직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최 대표님!”하성을 마주친 직원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성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시선을 주지 않고 빠르게 행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저녁 만찬은 매우 풍성했다. 동서양의 요리가 조화를 이루며 대부분 직원들의 입맛과 식습관을 세심하게 고려한 모습이었다. 준비에 꽤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반응도 좋았다. 연말 만찬이 시작되기 전, 하성은 DS그룹의 대표이사로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하성은 차분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며, 그의 존재감은 단번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가 화려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단 몇 마디 간결한 말로도,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연말 행사는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하성이 등장하자마자 팬들과 네티즌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시청자 수가 십만 명을 돌파했다. [최하성 씨,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연예계에 최하성이 없으니 허전한 기분이에요. 최하성 씨, 돌아와 주세요!][다들 동감!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 거죠?][복귀 요청 99%!!][...] 팬들의 댓글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하성의 인기는 생중계 플랫폼 순위에서도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무대 아래에서 생중계를 담당하던 진행자는 이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고 하성에게 다가갔다. “최 대표님, 생중계 채팅창에 팬들이 사장님의 새해 계획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어요. 오늘 이 특별한 밤에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성은 미소를 머금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순간, 생중계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선물 아이콘이 화면을 뒤덮었고, 댓글은 끊임없이 새로 고침 되었다. “안녕하세요, 하성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DS그룹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DL 그룹
“어머님, 정말로 부 회장님과 결혼하세요?” 이 얘기는 다영에게 있어 꽤 충격적이었다. 세간에서는 송혜선과 부동건의 관계를 두고 여러 말이 떠돌았고,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은 송혜선이 ‘첩’이라는 점이었다. 한때 정지철 부인도 이 사실을 꽤 꺼려했던 터라, 다영은 송혜선이 이렇게 대놓고 정식으로 자리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 결혼 승낙을 받으신 거예요?” 송혜선은 이미 불룩해진 배를 가볍게 쓸며, 깊은 눈빛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드러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새해도 지나고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날 테니 우리 모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신분을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셨어.” “그러니... 다영아, 우리 남준이를 믿어야 해. 지금은 잠시 밀려난 상황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니?”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더욱 굳게 다졌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는 언제나 남준 씨를 도울 거예요.” 송혜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야지. 남준이도 절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그러다 두 사람이 화제를 돌리며 덧붙였다. “지금 부 회장님이 부상혁을 중시하며 DL그룹의 운영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어. 결국은 부씨 가문의 장손이라는 명분 때문이지.” “하지만, 임신 초기에는 변수가 많아.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잖니?” “만약 그 아이가 사라지면, 부상혁 쪽의 지렛대도 없어진 셈이니 남준이한테 분명 유리한 상황이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 다영은 멍하니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송혜선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조그마한 흰색 약병을 다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약은 무색무취야. 일반인이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지만, 임신한 사람이 먹으면 삼 일 안에 유산이 돼.” 다영의 손이 떨리며 본능적으로 병을 놓치듯 뺐다. “어머님,
“정다영 씨의 상상력은 참 풍부하시네요.” 상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아가씨다운 모습이라 참 순진하긴 한데, 이런 험한 세상에선 지나치게 순진한 건 별로 좋지 않아요.” 더는 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상혁은 뒤돌아 떠났다. 다영은 마치 머릿속이 폭발이라도 한 듯, 귓가에서 찡하는 이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어요, 남준 씨는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이미 수없이 눌렀던 번호를 다급히 눌렀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여전히 차갑고 무미건조한 여성의 자동응답 소리뿐이었다. “안 돼!” 다영은 절망하며 비명을 지르고는 갑작스레 밖으로 뛰쳐나갔다. 깊은 겨울밤,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창밖의 거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이며 울렸다. 병원의 VVIP 병실 안. 다영은 온몸을 떨며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텅 빈 듯했고, 난방이 틀어져 있어도 그녀를 감싼 차가운 공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다영아,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야?” 송혜선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물었고, 전혀 이상한 기색은 비추지 않았다. 실은 송혜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지철이 이제는 구속되고 정씨 가문이 더 이상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다영의 마음에는 여전히 남준의 존재가 얽매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영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낼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송혜선 또한 명확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송혜선은 표정을 가다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자, 물 한 잔 마시고 몸 좀 녹여.” 다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송혜선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발요!” 송혜선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