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시간만 있다면 물론이지.”유진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잘됐어요!”조홍연은 순간 함박웃음을 지었다.경기를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유진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그녀도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다음날 아침.유진우와 일행은 무맹분타로 향했다.무맹분타는 교외에 자리 잡고 있고 독채의 빌딩이 하나 있는데 그걸 기지로 삼았고 내부 설비 관리는 모두 현대화에 치우쳐 있다.무맹은 크게 두 가지 이익이 있는데, 하나는 제자를 모집해 고액의 수업료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현상금을 지급하는 작업을 통해 공제금을 뽑는 것이다.이 세상에는 부자든 고위 관리든 항상 무력으로 엄호해야 한다.그리고 무맹에 고수가 많아서 이 고위 관리와 부자들의 선택이 되었다.상금이 후한 까닭에 많은 무사들이 그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물론 완성하면 무맹은 일정한 수수료를 뽑아 윈윈하는 형식이다.사실 많은 일반 무사들은 무맹이 제공하는 현상금 임무에 의존해 살아간다.한 번 큰일을 하면 몇 년 동안 멋지게 살 수 있다.예전에 조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군수는 무맹을 통해 많은 무사들이 정원을지키도록 했다.물론 악한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마구 뒤섞여 있어 무맹은 관리 측면에서 여전히 몇 가지 폐단이 있다.차량이 한 시간 정도 달려 유진우 몇 명은 마침내 무맹분타의 기지에 도착했다.“진우 씨, 왔어요?”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황보걸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왔다.“아침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제가 안배할까요?”“감사해요, 도련님. 우린 이미 먹었어요.”유진우가 미소로 화답했다.“알겠어요. 먼저 들어가요.”황보걸은 한 손으로 안내하여 유진우를 무맹기지로 데려갔다.야외 연무장에 들어서자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멀리 바라보니 사방이 온통 사람들로 북적북적해 시장보다 더 시끌벅적했다.“진우 씨, 오늘 신청하면 총 5가지 심사가 있는데, 전부 통과하면 거의 문제없을 거예요.”“5가지 심사요
“저기요, 교양이라곤 없어요? 무슨 근거로 여기서 새치기를 하는 거죠?”밀쳐진 한 젊은 무사가 불만을 터뜨리며 항의했다.모처럼 줄을 섰는데 이들이 오자마자 새치기를 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무슨 근거로?”뚱뚱한 여자가 냉소하다가 젊은 무사의 뺨을 후려갈겼다.“내가 이 근거로 그런다!”그 오만방자한 몰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너... 감히 나를 때리다니?”젊은 무사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쌍년, 내 주먹을 받아라!”그러더니 주먹을 날렸다.그런데 뚱뚱한 여자한테 닿기도 전에 우람한 근육질의 남자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았다.쿵!젊은 무사의 주먹이 근육질 남자의 가슴을 단단하게 때렸으나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젊은 무사가 뒷걸음질을 쳤고 팔이 저렸다.방금 그 주먹은 마치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현철을 때린 것 같았다.“그까짓 실력으로 감히 내 후배에게 덤비다니, 정말 주제넘네.”근육질의 남자가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입가에 경멸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그 눈빛은 마치 개미 한 마리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오늘 너 죽고 나 죽자!”젊은 무사는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려들어 근육질 사내의 머리를 발로 찼다.근육질의 남자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이내 똑바로 섰다.발차기를 하던 젊은 무사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다 넘어질 뻔했다.얼굴의 분노는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방금 그 한 발에 그는 이미 전력을 다했지만, 상대방을 다치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리를 절게 했다.막강한 방어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흥! 우리 다섯째 선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 감히 우리에게 덤벼? 그야말로 굴욕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다.”뚱뚱한 여자는 턱을 치켜들고 거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너... 너희들은 정말 사람을 너무 업신여긴다!”젊은 무사는 분한 기색이었다.“너희들이 실력이 좀 있다고 해서 여기서 횡포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여기는 무맹이지, 너희들이 함부로
“야, 너 정말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구나.”뚱뚱한 여자는 눈을 부릅뜨고 악랄하게 말했다.“선배, 이놈이 호의를 모르니 본때를 보여 주세요.”“좋아.”근육질의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곧장 앞으로 나와 젊은 무사를 덥석 집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놔!”젊은 무사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우람한 근육질의 남자 앞에서 그는 병아리처럼 약했고 반격할 힘이 전혀 없었다.“불복? 그럼 내가 인정할 때까지 때려줄게.”근육질의 남자는 젊은 무사를 두 손으로 잡고 공중을 두 바퀴 돈 뒤 땅바닥에 내리쳤다.이번에 확실하게 죽거나 불구가 된다.“망했어!”동정 어린 시선이 적지 않았다.젊은 무사가 곧 끝장이 날 때 한 손이 불쑥 나타나 가볍게 잡아당겨 떨어지는 걸 교묘하게 막았다.손을 내민 사람은 다름아닌 유진우였다.“응?”모두들 표정이 멍해져서 매우 놀랐다.이 시점에서 누가 감히 구하러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인마, 담이 작지 않구나. 감히 내 일에 참견하다니?”근육남의 눈빛이 좀 좋지 않았다.“분명히 당신들이 도리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여기서 사람을 다치게 했어. 현무문 제자들은 모두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날뛰고 횡포를 부려?”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뭔데? 여기서 우리 현무문을 비난할 자격이 있어?”뚱뚱한 여자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내 눈에 거슬리니 당연히 신경 써야지. 나는 너희 현무문이 항상 싫었어.”유진우가 거침없이 말했다.“인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근육질의 남자가 주먹을 쥐고 손가락을 꺾으며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나는 현무문의 망나니들이 너무 싫어.”유진우가 한마디 덧붙였다.“건방지다!”“선배, 이 날뛰는 자식을 혼내 줘요.”한 무리의 현무문 고수들이 분분히 노했다. 아무도 감히 그들 앞에서 현무문을 모욕한 적이 없다.“와, 이 사람 누구야? 간이 부어서 감히 현무문에 도전하다니?”“어디서 나타난 덜렁쇠가 곧 재수가 없을 모양이야.”유진우
“으악!”장검이 날아오자 근육질의 남자는 절망했고 수치스러운 비명까지 질렀다.그는 이 절세의 미인이 이렇게 악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한마디도 안 맞으면 바로 죽이려 하고 현무문은 안중에도 없었다.“그만해!”“안 돼요!”갑작스러운 광경에 현무문 고수들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그러나 그들이 막으려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홍연아, 사람을 죽이지 마.”유진우가 제때에 소리 내어 말리자 조홍연의 삼척 청봉검이 근육질의 남자 목과 1cm거리에서 멈췄다.살갗을 베고 선혈이 넘쳐흐르는 무서운 칼날.유진우가 조금만 늦게 외쳤다면 근육질의 남자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꿀꺽.근육질의 남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안색이 창백해지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눈 속의 공포는 억제하기 어려웠다.하마터면 그는 죽을 뻔했다.‘어디서 온 미친 여자지? 살기가 이렇게 세다니?’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서로 무슨 원한이 있는 줄 알만큼 무서웠다.“또 함부로 굴면 네 목숨 조심해.”조홍연은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섬뜩한 한기가 감돌았다.근육질의 남자는 괜히 몸서리치더니 두피가 저렸다.그는 상대방이 방금 정말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감히 내 후배를 기습하다니? 너 정말 담이 크구나.”잠시 멍해지다가 반응이 돌아온 현무문의 고수들이 소란을 피웠다.그들이 보기에 방금 조홍연이 습격하지 않았더라면 근육질의 남자는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둘째 선배, 셋째 선배, 넷째 선배... 저 사람들과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모두 잡아 죽이죠.”뚱뚱한 여자가 소리쳤다.현무문의 4대 타주는 모두 사상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맹승지 쪽은 소양타라고 한다.오늘 소양타의 제자들이 거의 다 기지에 도착했고 이것이 바로 그녀가 날뛰는 배짱의원인이다.“때리자!”소양타 둘째 선배가 고함을 지르자 즉시 한 무리의 제자들이 유진우와 조홍연을 에워쌌다.“그만!”그러자 갑자기 황보걸이 나서서 외쳤다.“나는 황보 가문의 직계 황보걸이다.
“그럼 누구부터 할래요?”“제가 할게요.”뚱뚱한 여자가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서 주먹 테스트기 앞으로 걸어갔다.이 주먹 테스트기는 전부 금속으로 특수 제작한 것이다. 맨 가운데 위치에 주먹으로 가격하는 탄력 과녁이 있다. 주먹으로 내려치면 주먹 테스트기 화면에 힘의 수치가 자동으로 뜨게 된다.“선배님들, 제가 먼저 테스트해보겠습니다.”뚱뚱한 여자는 심호흡한 후 주먹을 크게 휘둘러서 과녁을 가격했다.펑!굉음과 함께 과녁이 뒤로 넘어가면서 테스트기에 부딪혔다. 동시에 화면에 빨간 숫자가 빠른 속도로 치솟았고 결국 1250에 머물렀다.“말도 안 돼. 여자가 1250근이나 때렸다고? 나보다 더 강한데?”“내공을 쓰지 않고 오직 힘으로만 이 정도 때렸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열일곱, 열여덟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단 일격에 이런 성적을 거두었다는 건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봤어? 이게 내 힘이야.”뚱뚱한 여자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유진우 등 몇 명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표정에 자랑과 경멸이 한데 섞여 있었다.“고작 그 정도 힘 가지고 나대는 거야? 창피한 줄도 모르고.”공요가 불쑥 한마디 했다.“뭐라고?”뚱뚱한 여자의 표정이 확 싸늘해졌다.“인정 못 하겠으면 나와서 겨뤄보자.”“너처럼 약해빠진 실력이라면 너무 시시해. 관심 없어.”공요가 팔짱을 끼고 하찮은 표정을 드러냈다.“너!”뚱뚱한 여자는 순간 발끈했다. 상대의 오만한 태도에 엄청난 모욕을 당하고 말았다.“우리 후배가 힘이 약하다고? 그럼... 오늘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게.”그때 소양타의 둘째 제자가 갑자기 걸어 나왔다. 그는 몸을 살짝 풀더니 테스트기 앞에 서서 주먹을 천천히 들어 올린 후 힘을 끝까지 끌어모아 과녁을 내리쳤다.쾅!둔탁한 소리와 함께 과녁이 뒤로 넘어지면서 화면의 빨간 숫자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5267점에 도달했다.그 광경에 현장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뭐야?
눈에 확 뜨이는 빨간 숫자를 보며 사람들은 놀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고 그 대신 경악이 자리했다.유진우가 만근을 기록할 만한 엄청난 힘을 지녔을 줄은 정말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뭐야? 저 자식 정체가 뭔데 저렇게 대단해?”“5천근이 한계라고 생각했었는데 저 자식은 만근을 넘겼어.”“젠장! 괴물이 따로 없어!”유진우의 놀라운 활약에 무사들은 의견이 분분했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특히 현무문 소양타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째 제자가 온 힘을 다해 겨우 5천 근을 때렸는데 눈앞의 이 녀석은 아주 손쉽게 만근을 돌파했다. 압도적인 실력이었고 체면이 제대로 구겨졌다.“말도 안 돼. 저렇게 말라비틀어진 놈에게 이런 엄청난 힘이 있었다고? 설마 내공을 쓴 건 아니겠지?”뚱뚱한 여자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내공을 썼다면 테스트기에 무효 성적이라고 떠. 그러니까 방금 그 주먹은 확실히 저 사람의 힘이 맞아.”옆에 있던 누군가가 설명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상대의 실력이 엄청난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뛰어났다.“10001근이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는 거죠?”충격에 빠진 사람들과 달리 유진우의 표정은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한 듯 평온하기 그지없었다.“네? 아, 네네... 바로 다음 라운드로 직행입니다.”잠깐 멈칫하던 무도 연맹 직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유진우를 쳐다보는 눈빛마저 사뭇 달라졌다.전에는 경멸이었다면 이제는 경외심이 가득했다. 본인의 힘만으로 만근을 기록했는데 내공까지 썼다면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이봐, 봤어? 이게 바로 힘이라는 거야. 너와 네 선배의 힘은 힘도 아니라고.”공요가 팔짱을 낀 채 입꼬리를 올리며 경멸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도발에 뚱뚱한 여자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힘이 실력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 테스트에서 상대
잠깐의 침묵 후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다들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화면에 나타난 숫자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유진우의 만근이라는 기록도 충분히 대단하여 다음 라운드로 바로 직행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엄청난 괴물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만4천 근이라는 기록으로 전의 역사 기록을 깨버렸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하하... 선배 정말 대단하십니다.”뚱뚱한 여자는 흥분하며 환호를 질렀다.“타고 난 힘은 역시 다르다니까요.”다른 제자들도 기쁨에 겨워했다. 근육남이 좋은 기록을 세우면 그들도 체면이 선다.“당신 정말 대단한데요? 단 일격에 기록을 깼어요.”무도 연맹 직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진심으로 탄복하는 눈치였다.“흥... 이게 뭐라고요. 아까는 그저 몸풀기였을 뿐이에요. 이제부터 제대로 보여줄 겁니다.”근육남은 주먹을 쥐고 목을 움직이더니 사람들에게 물러서라고 했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과녁을 향해 주먹을 힘껏 날렸다.쾅!또 한 번의 굉음과 함께 테스트기가 진동했다. 화면의 빨간 숫자도 빠른 속도로 치솟다가 결국 15464에 멈췄다. 이번에는 만5천 근을 기록했다.“X발, 또 기록을 깼어. 족히 천근이나 더 높아졌다고.”“주먹 한 방에 만5천 근이라니. 저 사람을 이길 사람이 있겠어?”“다 같은 인간인데 왜 차이가 이렇게 클까?”근육남의 두 번째 주먹은 다시 한번 사람들의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세운 기록을 스스로 깨버렸다.“인마, 어때? 인제 굴복해?”근육남은 유진우를 돌아보며 경멸 섞인 미소를 지었다.‘만근이 뭐 대수라고. 난 만5천 근을 기록했어!’“이봐, 이젠 우리 다섯째 선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 주먹을 대충 휘둘러도 기록을 깰 수 있어. 그런데 넌? 어이, 말 좀 해봐. 왜 찍소리도 안 해? 겁먹은 거야? 계속 나대보지 그래?”뚱뚱한 여자는 끊임없이 도발했고 표정도 오만하기 그지없었다.“인마, 재간 없으면 나대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앞으로 날 보면 알아서 피해.
십여 미터 날아간 주먹 테스트기를 보며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저마다 제자리에 굳은 채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을 쩍 벌렸다.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주먹 한 방에 테스트기를 박살 내고 말았다. 이게 진짜 인간이란 말인가?“내...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테스트기가 날아갔어?”“세상에나! 대체 어디서 나타난 괴물이야?”“역사상 이런 전례가 없었어. 없었다고!”잠깐의 침묵 후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유진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마치 귀신을 보는 듯했고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높은 기록을 세웠더라면 그대로 억지로 받아들였겠지만 주먹 한 방에 테스트기가 폭발해버렸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말... 말도 안 돼. 절대 이럴 리가 없어. 어떻게 다섯째 선배보다도 더 강할 수가 있지?”뚱뚱한 여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않았다.타고 난 힘을 지닌 다섯째 제자조차도 만오천 밖에 기록하지 못했는데 삐쩍 마른 상대가 이렇게나 엄청나다고?“방금... 기계가 폭발했어?”둘째 제자 일행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잘못 본 게 아니라면 조금 전 테스트기가 튕겨 나간 후 화면의 수치가 순식간에 10만까지 돌파했다가 마구 번쩍이면서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조금 전 유진우의 그 주먹은 10만 근을 돌파했다는 것을 뜻했다.그 생각에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했다. 인간이 저런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는 게 말이 되는가?“방금 제 주먹이 기록을 깬 거 맞죠?”유진우는 남들이 놀라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무도 연맹 직원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네? 네! 맞아요... 당연히 깬 거죠!”무도 연맹 직원은 넋이 나간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 주먹을 맞았더라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기계를 망가뜨렸는데 배상해야 하나요?”유진우가 또 물었다.“아... 아니요.”무도
“제후님께서 도련님이 오실 걸 알고 저더러 미리 나와 기다리라 하셨습니다.”늙은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내가 올 걸 알고 있었다고요?”유천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옆에 있는 유진우를 쳐다봤다.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밀려왔다.은성종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제갈영군이 전화로 알렸거나 유태범의 사자가 먼저 와서 선수를 친 것이다.“도련님, 제후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늙은 집사가 허리를 굽히면서 손짓으로 안내했다.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여기까지 온 이상 중간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고 해도 뚫고 나가야 했다.일행은 늙은 집사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여러 시설을 지난 후 식당에 도착했다.식당 안에 푸짐한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여 식욕을 돋우었다.유천우 일행은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식사할 시간도 없었다. 눈앞에 차려진 푸짐한 음식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고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도련님, 먼 길을 오느라 배고프실 텐데 식사부터 하시죠.”늙은 집사가 공손하게 말했다.“제후님은요?”유천우가 물었다.“곧 오실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늙은 집사가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유천우는 웃으면서 손짓했다.“너희들, 얼른 와서 먹어.”“네.”근위병 몇 명은 대답을 마치자마자 바로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훈련을 잘 받은 근위병들은 3일 밤낮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음식에 독이 든 건 아닌지 유천우 대신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었다.항상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은성종이 음식에 약을 넣었다면 그들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도련님, 아무 문제 없습니다.”모든 음식을 다 맛본 후에야 근위병들은 유천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유천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더
해 질 무렵, 유천우와 유진우 일행은 변경 요새 도시인 태평에 도착했다.태평은 회음 제후 은성종의 영역이었고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낙후한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은성종의 통치 아래 짧은 10여 년 만에 서경에서 5위 안에 드는 도시가 되었다. 군사,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의료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태평이 오늘날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건 은성종의 뛰어난 재능과 지식 덕이었다.만약 제갈영군이 난세의 영웅이라면 은성종은 세상을 다스린 명신이었다.그 시각 회음 제후 저택 밖.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길가에 천천히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유천우 일행이 잇달아 내렸다.“형, 여기가 마지막 목적지예요.”유천우는 저택 간판을 바라보면서 감탄했다.“회음 제후 은성종은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울 뿐만 아니라 마음이 따뜻하고 의협심도 강해요. 게다가 제갈영군의 편지까지 있으니 이번에는 문제없을 겁니다.”“섣불리 판단해선 안 돼.”유진우는 고개를 내저었다.“마지막 순간이 될수록 더욱 긴장을 늦추면 안 돼. 은성종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서 유만수조차도 은성종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했어. 아무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혹시 변수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유천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태범이 이미 제갈영군과 연락했으니까 분명히 은성종과도 접촉했을 거야. 은성종이 유태범한테 설득당해서 유태범의 진영에 합류할까 봐 걱정돼.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지금 저택에 들어가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마찬가지야.”유진우가 분석했다.유태범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표기 대장군까지 오른 사람이라면 지혜와 용맹을 모두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유태범도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유천우 일행이 사방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을 때 절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유태범이 아니었다.전에 제갈영군을 끌어들이려고 도시 두 개를 제시했다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남쪽 4대 제후 중에서 장범규는
제갈영군의 날카로운 눈빛과 창을 바라보면서도 유천우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제후님, 도시 두 개의 유혹이 매우 큰 건 사실입니다. 저였더라도 거절하지 못했을 거예요. 만약 제후님이 제 목숨으로 도시 두 개를 바꾸고 싶으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유천우는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면서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죽는 게 두렵지 않아?”제갈영군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아니면 내가 감히 널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죽는 건 당연히 두렵습니다. 살 수 있다면 죽음을 택하지 않아요.”유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게다가 제후님은 여러 해 동안 전쟁을 치르시면서 앞길을 막는 자는 전부 다 죽였죠. 그런 분이 저의 목숨 따위 가져가는 건 순간일 것이고 힘을 들일 필요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죽는 게 두렵다면서 왜 이렇게 태연한 거지?”제갈영군은 조금 의아해했다.“죽는 걸 두려워하는 건 한 가지 일이고 죽음을 맞이할 용기가 있는 건 또 다른 일입니다. 저택에 들어온 순간부터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했습니다.”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게다가 제후님이 정말로 저를 죽이려고 한다면 도망갈 수도 없어요.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게 그나마 고통을 덜 수 있다고 생각해요.”“재밌는 녀석이군.”제갈영군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더니 천천히 창을 내려놓았다.“피는 못 속인다더니 오늘 보니까 맞는 말 같군. 유씨 가문에는 쓸모없는 자식이 하나도 없어.”“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후님.”유천우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됐어. 농담 그만할게. 유태범의 부하들이 날 찾아온 건 맞지만 이미 내가 다 죽였어.”제갈영군이 손가락을 튕기자 곧바로 몇 명의 호위병이 시신을 끌고 와 유천우의 발밑에 던졌다.“자, 얘네들이 유태범이 보낸 사람들이야.”제갈영군은 발로 시신을 툭툭 치면서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제후님, 유태범이 주겠다는 도시 두 개를 포기하겠단 겁니까? 전 그렇게 좋은 걸 드릴 수
한바탕 공격이 지나간 후 연무장에는 제갈영군 혼자만 남았다.“실력이 점점 더 형편없어지는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훈련하도록 해. 알았어?”제갈영군이 호위병들에게 호통쳤다.“네.”호위병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됐어. 모두 나가 봐.”제갈영군은 손을 휘둘러 호위병을 전부 내보낸 다음 돌아서서 유천우 일행을 쳐다보았다.“제후님의 창술은 정말 신이 내린 창술입니다. 서경 전체를 통틀어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정말 존경합니다.”유천우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아무 일 없이 여기까지 올 리는 없을 테고.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왔지?”제갈영군은 수건을 들고 땀을 닦기 시작했다.“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실례도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유천우가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했다.“네 아버지 때문에 왔지?”제갈영군은 마치 예상한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제후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유천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서경왕이 암살당한 게 얼마나 큰일인데 내가 모를 수가 있겠어?”제갈영군은 차를 마시면서 혼자 자리에 앉았다.“그럼 북쪽 4대 제후가 반란을 일으킨 것도 알고 계십니까?”유천우가 다시 물었다.“소문은 들었어.”제갈영군이 고개를 끄덕였다.“제후님은 충의로운 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부디 위기에 처한 서경왕부를 도와주십시오.”유천우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만약 네 아버지가 왔다면 난 당연히 도왔을 거야. 왜냐하면 난 그분을 존경하거든. 근데 넌... 아직 자격이 부족해.”제갈영군은 찻잔을 들어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내뱉는 말도 매정하기 그지없었다.유천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그는 제갈영군이 오만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난처함을 겪을 준비를 마쳤다.“제후님, 아버지와 비교하면 전 정말 보잘것없고 제후님께 뭔가를 요구할 자격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유천우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하지만 전 유씨 가문 사람이
다음 날 오전, 남운.유진우와 유천우는 밤을 새워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인 남운에 도착했다.남운은 무릉 제후 제갈영군이 지키고 있었고 남쪽 4대 제후 중에서도 병력이 가장 많으며 경제력이 가장 강한 도시였다.하지만 제갈영군은 성격이 괴팍하고 변덕이 심해서 화를 내면 유만수의 체면조차 봐주지 않았다. 하여 유천우는 제갈영군을 설득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형, 무릉 제후 저택에 도착했어요.”차가 멈춘 후 유천우와 유진우 일행이 잇달아 차에서 내렸다.“벌써 둘째 날이야. 네가 제후 저택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이 곧 알려질 테니 서둘러야 해.”유진우가 당부했다.“알고 있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갈영군은 다루기 힘든 사람이지만 또 함부로 배신하는 소인배는 아니에요. 충분한 대가를 제시하고 감정으로 호소하면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그럼 좋고.”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들어가자.”유천우는 옷을 정돈하고 얼굴을 매만져 정신을 차린 후 발걸음을 옮겨 저택 호위병에게 신분을 밝혔다.전과 마찬가지로 일행은 순조롭게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이번에 만난 장소는 저택의 거실이 아니라 제갈영군의 개인 연무장이었다.모두가 알다시피 제갈영군은 무술광이었다. 평소 직접 군대를 이끌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그가 이끄는 장병들 모두 용맹하고 뛰어났다.“도련님, 제후님 지금 안에서 훈련 중이십니다. 들어가 보십시오.”호위병은 그들 일행을 연무장 문 앞까지 안내한 후 가버렸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연무장 가운데서 건장한 체격에 온몸이 근육질인 중년 남자가 수십 명의 정예 호위병과 함께 훈련하고 있었다.중년 남자는 창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양손으로 창을 휘두르자 창이 용이나 뱀처럼 움직였는데 민첩할 뿐만 아니라 파워도 넘쳤다.주변에 칼과 방패를 든 수십 명의 정예 호위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고 공격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이들은 제후 저택의 정예병으로서 혼자서 백 명을 거뜬히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
“여봐라. 가서 펜과 종이를 가져와.”주한휘는 바로 부하에게 펜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하고는 혼약을 맺을 준비를 했다.이런 기회는 좀처럼 얻기 힘든 좋은 기회였다. 딸이 서경왕부에 시집간다면 미래의 왕비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외손자가 차기 서경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이 내기는 어떻게 계산해도 이익밖에 없었다.“도련님, 잠깐만요. 인생의 중대사인데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죠.”유진우가 귀띔했다.“뭐?”주한휘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불만을 드러냈다.‘호위병 주제에 어디서 지적질이야? 버르장머리 없이. 만약 내 부하였더라면 진작 매를 들었어.’“설득할 필요 없어. 난 이미 결정했어.”아직 유진우의 정체를 들켜선 안 되기에 유천우도 호위병을 대하듯 했다. 유천우는 유진우를 돌아보면서 웃었다.“제후님의 따님은 얼굴도 예쁘고 현명해서 그런 여자와 결혼하는 건 내 복이야. 복이 스스로 굴러들어왔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겠어?”“역시 넌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주한휘는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추켜세웠다.“도련님...”유진우가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주한휘가 호통쳤다.“건방진 놈! 감히 주인의 결정에 끼어들어? 버르장머리 없이.”유진우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분노를 터트리려 하자 유천우가 말렸다.“됐어. 난 이미 결정했으니까 더는 뭐라 하지 마.”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혼약서에 사인하고 지장을 찍었다.유진우는 마음 아픈 나머지 한숨을 내쉬었다.‘내 동생 많이 컸구나. 이젠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대국을 생각하고.’이 점은 유진우마저도 따라갈 수 없었다.“제후님, 혼약도 정해졌으니 부디 약속을 지키시길 바랍니다.”유천우가 두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걱정하지 마. 앞으로 우린 한 가족이야. 서경왕부에 무슨 어려움이 있든 발 벗고 도와줄게.”주한휘가 가슴을 툭툭 치면서 장담했다.“감사합니다, 제후님. 전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천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했다.“내가 문 앞까지 배웅해줄게.”
유천우의 말은 강력한 힘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만약 서경이 무너진다면 8대 제후, 각 지역의 고위급 관료, 수천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다들 서경에 뿌리 박고 사는 사람들이라 애국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천우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난 소심하고 겁도 많아서 항상 앞뒤를 생각하거든. 만약 반란을 진압하다가 군대를 다 잃으면 어떡해?”주한휘는 여전히 망설였다.“제후님, 혹시 손해를 보게 된다면 서경왕부에서 두 배로 갚아드리겠습니다.”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주한휘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건 실질적인 이득을 원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어쨌거나 전 재산을 걸어야 하는 작전이기에 혹시라도 실패하면 큰 손실은 면할 수 없으니까.그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천우야, 내가 널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은 말로만 해선 안 돼.”주한휘가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원하는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얘기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최대한 다 들어드리겠습니다.”유천우가 큰소리치며 장담했다. 이 정도면 성의를 충분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했다.“알았어. 천우 네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마음이 놓이네.”주한휘가 웃으면서 말했다.“사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나 보물이 아니야.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게 내 딸인데 올해 25살이 됐는데도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어. 만약 천우 너 같은 남자한테 시집간다면 참 좋을 텐데.”“저요?”유천우는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래.”주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딸 해린이 절세미녀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얼굴도 나름 예쁘고 재능도 뛰어나. 만약 해린이를 아내로 들인다면 내조도 엄청 잘하는 현모양처가 될 거야.”현재 그에게는 돈과 인맥 모두 충분했다. 유일하게 부족한 게 바로 하늘보다 높은 권력이었다.서경왕이 죽은 지금 유천우가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만약 딸이 유천우와 결혼한다면 나중에 서경의 왕비가 될 것이고 주한휘의 신
유천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먼저 예의를 갖춰서 설득하다가 안 되면 무력을 사용하여 제압하는 것이었다.만약 반란을 일으킨 4대 제후가 서경왕부에 굴복한다면 서경왕부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권력도 그대로 유지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진압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때가 되면 서경왕부는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나머지 4대 제후와 서경의 많은 세력과 손을 잡고 반역자들을 몰살할 것이다.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유천우의 말을 들은 장범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오늘날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 덕이야. 반란을 진압하는 건 물론이고 목숨까지 바치라고 해도 기꺼이 바칠 수 있어.”“감사합니다. 제후님의 도움이 있다면 이번 어려움을 꼭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유천우가 말했다.“이건 내 제후령이야. 제후령만 있으면 가진의 병사를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어.”장범규는 갑자기 병부를 꺼내 유천우에게 건넸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로 보여주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이건...”되레 유천우가 망설였다. 장범규가 이토록 통쾌하게 병부를 내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행동은 그의 충성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사양하지 마. 비상시국이잖아. 이 제후령이 있으면 움직이기 훨씬 편할 거야.”장범규는 병부를 유천우의 손에 쥐여주었다.“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제후님!”유천우는 두 손을 맞잡고 인사를 올리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됐어.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시간도 없는데 얼른 가봐.”장범규가 손을 흔들었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천우는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 다음 일행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오늘 밤 첫 번째 목적지는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30분도 채 안 되어 평양 제후 장범규의 지지를 얻었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제후령마저 받았다.만약 이 속도대로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
가진은 서경의 변방 도시이자 평양 제후 장범규의 영역이었다.무장 출신인 장범규는 서경왕 유만수와 함께 수년간 전장을 누볐고 세운 공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나중에 평양 제후가 된 후 서경의 변방을 지켰다.수년 동안 장범규는 성실하게 직무에 임해왔다.그때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갑자기 평양 제후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유천우 등 몇 명이 나란히 내렸다.“형, 여기가 바로 평양 제후 장범규네 저택이에요.”유천우가 간단하게 소개했다.“장범규는 그래도 충성스럽고 용맹한 사람이에요. 가진을 수년 동안 관리하면서 직무와 책임을 다했거든요.”“밖에 누구야?”저택 입구를 지키던 호위병 두 명이 수상한 움직임을 알아채고 큰소리로 호통쳤다.유천우는 그들에게 다가가 신분패를 보여주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서경왕의 둘째 아들 유천우다.”“도련님?”두 호위병은 유천우의 신분패를 보자마자 겁에 질린 나머지 바로 무릎을 꿇었다.“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까 일어나.”유천우가 신분패를 거두어들였다.“지금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평양 제후님을 뵈러 왔어. 들어가서 보고 좀 올려줄래?”“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당장 가서 제후님께 말씀드릴게요.”그중 한 호위병이 대답하고는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화려한 옷차림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중년 남자가 부하들과 함께 부랴부랴 나왔다. 그 사람이 바로 평양 제후 장범규였다.“안녕하세요, 제후님.”유천우가 먼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서경왕의 둘째 아들이긴 해도 눈앞의 장범규는 제후이기에 신분이 그보다 훨씬 높았다.장범규가 직접 마중을 나온 것만 해도 충분히 체면을 세워준 일이었다.“천우야,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왔어?”장범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제후님, 서경왕부에 변고가 생겨서 제후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변고가 생겼다고? 무슨 일인데?”장범규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유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