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고민하던 대머리 남자가 불쑥 한마디 했다.“허튼소리 하지 마. 밖에 넘어야 할 관문이 가득하고 고수도 수두룩해. 우리 같은 사람은 날개가 있어도 도망치지 못해.”여윈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동안의 수련을 대부분 잃은 지금은 물론이고 최정상일 때도 탈옥은 불가능했다.“어르신, 어차피 죽을 거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대머리 남자가 이를 꽉 깨물었다.“제가 생각해봤는데 관리인을 인질로 삼으면 살 희망이 조금은 있어요.”“맞아요, 맞아요. 인질이 우리 손에 있다면 도망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뭇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만약 일반 옥졸이라면 당연히 안 되지만 이 관리인은 교도소 소장의 처남이라 꽤 쓸모가 있을 것이다. 관리인은 그들의 가장 큰 희망이었다.“지금까지 블랙 프리즌에서 탈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 탈옥하다가 실패하면 그 결과가 어떨지 너희들도 잘 알 거야. 그러니 그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아.”여윈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그럼 어떡해요? 이대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나요?”대머리 남자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우린 그래도 아직 돌이킬 여지가 있는데 이 젊은이는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벽에 기대어있는 유진우를 쳐다보는 여윈 노인의 두 눈에 동정이 어렸다.“저 미친놈은 들어오자마자 큰 사고를 치고도 저렇게 침착하다니,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요.”대머리 남자는 감탄하는 동시에 단검 하나를 꺼내 유진우의 발 옆에 휙 던졌다.“이봐, 너의 용기는 인정이야. 이 단검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해두지.”“고맙지만 전 필요 없어요.”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챙겨둬. 곧 쓸 일이 생길 테니까.”대머리 남자가 진지하게 말했다.“이따가 살지 못할 것 같으면 이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러면 적어도 육체적인 고통은 덜 받을 거야.”유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호신용으로 사용하라고 주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자결용이었다. 이보다 더 친절한 사람은 없을
쿵!로스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순간 사람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자리에 굳어버렸다.화려한 복장의 뚱보, 여윈 노인, 대머리 남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수감자들 모두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거 정말이야? 눈앞의 이분은 블랙 프리즌의 소장인데?’엄청난 실력을 지닌 무도 마스터이자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고 수감자들의 생사를 손에 쥐고 흔드는 무서운 존재이다. 이 블랙 프리즌에서 소장이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누구든지 그를 보면 허리 굽혀 깍듯하게 인사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도 높은 자리에 있고 안하무인인 신이 한낱 수감자에게 무릎을 꿇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매... 매형, 왜 무릎을 꿇어요? 얼른 일어나요...”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화려한 복장의 뚱보는 재빨리 로스 앞으로 다가가 부축하려 했다.“저리 썩 꺼져!”로스는 뚱보의 따귀를 후려갈기며 호통쳤다.“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네?”바닥에 주저앉은 뚱보의 표정이 잿빛이 되었다.‘뭐야? 설마 내가 엄청난 거물이라도 건드린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매형이 갑자기 가차 없이 선을 그을 리가 없는데?’“로스? 블랙 프리즌의 소장이라고요?”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진우도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내가 당신을 알아요?”“어르신은 절 모르시지만 전 오래전부터 어르신의 존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일은 오해로 인해 비롯된 것이니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로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유씨 가문의 천재가 블랙 프리즌에 갇혔다는 소문이 위왕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위왕의 성격에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난 어르신이 아니에요. 사람 잘못 봤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상대가 유씨 가문의 권력을 두려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네네, 제가 실수했습니다. 어르신이 아니라 도련님
“당연히 문제없죠. 도련님의 친구분들이라면 분명 정의가 넘치고 의로운 일을 하시는 분들이겠죠.”로스는 한마디 아첨한 후 손을 흔들었다.“풀어줘!”철컹! 철컹!잠겨있던 쇠사슬이 하나둘 전부 풀렸다. 사람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여생을 블랙 프리즌에서 보낼 줄 알았는데 오늘 다시 바깥의 해를 볼 수 있다니, 정말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고맙습니다, 소장님.”여윈 노인 일행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감사 인사는 도련님께 해.”로스는 참으로 눈치가 빨랐다.“고맙습니다, 도련님.”사람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눈에 비친 유진우는 그야말로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어쨌거나 나도 악당파의 일원인데 당신들이 이곳에서 고생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죠. 함께 나갑시다.”유진우는 씩 웃어 보이고는 감옥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비록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지만 본성이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고 죽여야 할 사람을 죽였다는 걸 유진우는 알고 있었다. 하여 직접 나서서 그들을 구한 것이었다.블랙 프리즌의 감옥은 지하에 있었다. 유진우가 로스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해가 저물고 있었다.하늘 끝 붉은 석양이 천천히 지고 있었다. 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심호흡을 한 후 철문을 나섰다.그런데 그가 몇 걸음 옮기자마자 누군가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은발과 빨간 무사 도복 차림에 삼척 청봉검을 메고 있었고 얼굴은 차가우면서도 미인의 기개가 넘쳤다.유진우는 순간 멍해졌고 예전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쳤다.“저 여자분은 누구셔? 참 예쁘게도 생겼네.”“목소리 낮춰. 어깨의 배지를 보니까 장군이야.”“아니야, 장군이 아니라 전쟁 여제 배지야.”“뭐? 전쟁 여제라고? 우리 용국에 저런 분이 계셨어?”“세상에나! 설마 저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홍연 전쟁 여제란 말이야?”그 소리에 현장이 순식간에
조홍연과 유진우의 스스럼없는 모습에 사람들은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방금 출소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홍연의 부장인 공요와 유란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지금까지 그들이 봐왔던 전쟁 여제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인정사정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를 만나든 차갑고 도도한 표정이었고 화를 내면 더욱 무서웠다.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는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이치대로라면 남자가 그녀 몸에 손만 대도 손발이 부러질 텐데 유진우가 머리를 만지는데도 화내기는커녕 되레 활짝 웃고 있었다.이 광경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전쟁 여제에게 이런 다정한 면이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정말로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우러러볼 수조차 없던 전쟁 여제란 말인가?“장혁 오빠, 그동안 잘 지냈어요?”그의 익숙한 얼굴을 보고 있는 조홍연은 마음이 복잡미묘했다.한때 이름을 떨치고 천하를 압도했던 천재의 날카로움은 10년 못 본 사이 전부 다 사라졌다. 소년의 건방짐과 날카롭던 눈빛, 그리고 남다른 분위기도 사라졌고 그 대신 눈에 띄게 점잖아졌다.하지만 어떻게 변해도 그는 여전히 유장혁 오빠였고 그녀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난 잘 지내고 있어. 맨날 자유롭게 다니니까 너무 좋아. 받는 스트레스도 없고 싸울 일도 없고.”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어릴 적 코를 흘리며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애가 10년 사이 어엿한 여인이 되었고 용국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전쟁 여제가 되었다.“장혁 오빠, 그동안 왜 한 번도 연락 안 했어요? 조무진도 오빠의 소식을 알고 있던데 나만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에요?”조홍연이 원망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아닌데? 무진이더러 너에게 연락하라고 했었어. 설마 걔가 여태껏 말 안 했던 거야?”유진우는 놀란 척했다. 그의 말에 조홍연의 표정이 급변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살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등에 메고 있던 삼척 청봉검마저도 윙윙거리며 진동
“긴장해 하지 말아요. 당신과 상관이 없다는 거 아니까. 하지만 당신의 부하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유진우가 귀띔했다.“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조사해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로스는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은 화려한 복장의 뚱보를 유진우 앞에 데려왔다.“도련님, 바로 이놈이었어요. 죽이든 어찌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손이 더러워지는 게 싫으시면 제가 대신 처리해드리겠습니다.”“도련님, 살려주세요.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돈을 주면서 도련님을 잡아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뚱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렸다. 머리를 땅에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흘러내렸다.“지시한 사람이 누구야?”유진우가 캐물었다.“강씨 가문의 도련님 강백준입니다.”뚱보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역시 그 사람이었군.”유진우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의심이었지만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소장님, 차 한 대 좀 빌립시다.”유진우가 말했다.“당연히 문제없죠. 어디로 가실 건가요?”로스가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로얄호텔이요.”유진우가 솔직하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로스가 손을 흔들자 부하가 군용 지프차 한 대를 가져왔다.“아 참, 영감님.”유진우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여윈 노인을 보며 말했다.“갈 곳이 없으면 강린파에 가서 홍길수를 찾으세요. 걔가 알아서 머물 곳을 마련해줄 겁니다.”“고맙습니다, 도련님.”사람들은 바로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말 없이 곧장 차를 타고 떠났다. 강백준이 먼저 그에게 손을 썼으니 당연히 갚아줘야지....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짙게 깔렸다.그 시각 로얄호텔 연회장.직위가 높고 명성과 위세가 대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술을 들고 즐거움을 나누고 있었다.연회장 2
연회장 입구.블랙 드레스를 입은 이청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아름다운 얼굴에 늘씬한 몸매가 더해져 우아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단연코 눈에 띄었다.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녀에게 쏠렸다. 놀란 사람, 기뻐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부러워하는 사람, 그리고 욕망이 샘솟는 사람도 있었다.“언니,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오지 않는 건데. 내가 공을 들여 꾸며도 사람들은 다 언니만 쳐다보잖아요. 내 존재감은 하나도 없어요.”이청아와 동행한 단소홍이 낮은 목소리로 원망하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오늘 강 장군의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리에 직위가 높고 명성과 위세가 대단한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단소홍은 공을 들여 꾸몄다. 드레스 한 벌이 수천만 원에 달했고 몸에 지닌 액세서리 가격만 해도 수억 원이 훌쩍 넘었다. 정말 큰마음 먹고 돈을 확 질렀는데 결과는 어떠한가?이청아의 옆에 서 있으니 그저 들러리일 뿐이었고 눈길 한번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못생긴 게 아니라 이청아가 워낙에 미모가 빼어났기 때문이다. 그 누구든 이청아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서울 전체에서 이청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은 아마 조선미밖에 없을 것이다.“청아 씨, 왔어요?”그때 인파가 갈라지면서 화이트 정장 차림에 신수가 훤한 강백준이 웃으며 다가왔다.“강 장군님.”이청아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청아 씨 오늘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눈이 다 부셔요.”강백준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과찬이십니다.”이청아가 웃으며 예의 바르게 답했다.“강 장군님, 그럼 저는요? 저는 예쁘지 않나요?”단소홍이 불쑥 한마디 하더니 자신의 섹시한 몸매를 한껏 드러냈다.“예뻐요, 예뻐요. 두 분 다 예뻐요.”강백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하하... 고맙습니다.”단소홍은 일부러 쑥스러운 척했다.그들이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한 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오만한 태도의 남자와 요염한
이청아가 미간을 찌푸렸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안 되겠어. 진우 씨를 구하러 가야겠어.”그러더니 곧장 자리를 떠나려 했다.“언니.”단소홍이 그녀를 덥석 잡고 설득했다.“언니가 간다고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블랙 프리즌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곳이에요. 이건 변하지 않는 철칙이라고요. 함부로 움직였다가 괜히 불똥이 튈 수 있어요.”“그럼 어떡해? 그렇다고 진우 씨가 힘들어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잖아.”이청아가 조급해했다. 블랙 프리즌은 아주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생도 더 많이 하게 된다.“언니, 일단 진정해요. 여기 강 장군님이 계시잖아요.”단소홍의 시선이 옆에 있는 강백준에게 향했다.“강 장군님처럼 지위도 높고 못 하는 게 없는 분이라면 블랙 프리즌에서 사람 하나 빼내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예요.”“강 장군님?”강백준을 쳐다보는 이청아의 두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블랙 프리즌은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군부대 사람이라고 해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어요.”강백준이 턱을 어루만지며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장군님께서 도와주신다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든 상관없어요.”이청아가 진지하게 말했다.“청아 씨가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겠어요.”강백준은 잠깐 망설이는 척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한번 해볼 수는 있지만 장담은 못 해요. 청아 씨도 알다시피 블랙 프리즌은 일반 감옥이 아니잖아요. 거기서 사람을 빼낸다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예요.”“되든 안 되든 강 장군님의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이청아는 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워했다.“별말씀을요. 친구끼리 도와주는 건 당연하죠.”강백준은 씩 웃더니 부하를 불러 귓가에 대고 뭐라 속삭였다. 부하는 대답한 후 바로 나가버렸다.“우리 애들이 블랙 프리즌의 소장에게 연락할 거예요. 혹시 빼내지 못한다고 해도 내 체면을 봐서 그리 고생하지는 않을 겁니다.”강백준이 자신만만하
“뭐야? 저 자식 벌써 나왔어?”갑자기 나타난 유진우를 보자 이원기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강백준이 그저 도와주는 척만 할 줄 알았는데 진짜로 부하에게 빼내라고 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리고 문제는 강백준이 관계를 동원하여 유진우를 잡아넣었는데 또다시 빼내고 말았다.이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괜히 힘만 뺀 격이 돼버렸다.아무리 여자의 마음을 얻고 싶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일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이상하네. 저 자식 어떻게 나왔지?”눈살을 찌푸린 강백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부하더러 블랙 프리즌의 소장에게 연락하라고 한 적이 아예 없었다. 게다가 시간도 맞지 않았다.그렇다면 유진우가 진작 나왔다는 말인데...블랙 프리즌은 한번 들어가면 영영 나오지 못하는 곳이다. 한낱 보잘것없는 녀석이 무슨 재주로 그곳에서 나왔단 말인가?설마 다른 거물이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건가?“강 장군님이 이렇게나 대단한 분인 줄은 몰랐어요. 전화 한 통에 유진우를 빼내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단소홍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존경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블랙 프리즌에 수감된 사람을 쉽게 빼내려면 그 권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맙습니다, 장군님.”이청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아... 아니에요. 나에게는 별것도 아닌데요, 뭐.”강백준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진우 씨, 블랙 프리즌에 잡혀 들어갔었다면서? 괜찮아? 다친 데 없어?”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이청아는 유진우에게 다가갔다.“청아 씨도 다 알고 있었구나.”유진우의 표정이 무뚝뚝하여 기쁜지 슬픈지 알 수가 없었다.“나도 방금 들었어. 강 장군님이 나서주신 덕에 당신이 풀려난 거야. 안 그러면 아직도 갇혀있었을 거야.”이청아는 한시름을 놓은 표정이었다.“강백준이 도와줬다고?”유진우가 코웃음을 쳤다.‘날 블랙 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