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매니저는 가슴을 내리치며 약속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랑 유 선생님은 절친한 사이예요. 서로 목숨까지 내어줄 만한 우정을 갖고 있죠. 어젯밤도 같이 밥 먹고 여자들이랑 놀았어요. 제가 입을 열면 친구로서 체면을 세워줄 게 분명해요!”그 말을 들은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강 매니저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어이! 당신 왜 웃어요?”강 매니저는 불쾌한 듯 시선을 돌렸다.“오빠, 저런 쓸모없는 인간은 신경 쓰지 마세요.”단소홍은 눈을 뒤집으며 그를 째려봤다.“대리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일이 성사된 후에 큰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여호준은 장담하며 말했다.“하하... 어려운 일 아니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강 매니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그럼, 강 매니저님만 믿고 가겠습니다.”비연단의 인기에 힘입어 대리권까지 얻게 된다면 무조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여호준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그때가 되면 가문을 일으켜 세울 날이 머지않았다!“호준 씨, 대리권 외에 다른 사업도 하나 있는데 관심 있으세요?”강 매니저는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네? 무슨 사업이죠?”여호준은 흥미가 생긴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강 매니저는 주위를 살피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회사가 비연단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아서 일부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에 대해서는 폐기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대로 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래서 담당자들이 불량품을 따로 보관해뒀고, 나중에 일괄 판매할 계획인데 원하시면 싼값에 드릴게요.”“불량품이요? 그게 약효가 있나요?”단소홍은 답답한 듯 물었다.“소홍아, 넌 이해 안 되지? 불량품들이 약효가 조금 떨어지는 건 맞는데 그걸 누가 알아보겠어? 진짜 비연단과 섞이면 아무도 구분 못 해!”강 매니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정말요?”그의 말에 단소홍은 두 눈이 반짝였다.“오빠가 설마 널 속이겠어? 원한다면 내가 5분의 1 가격으로 싼값에 팔게. 나
“네가 감히... 날 때려?”강 매니저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 쥐고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조씨 가문의 사람으로 살면서 그동안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이렇게 뺨을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왜요? 때리면 안 되나요? 불량품을 훔친 것도 모자라 그걸 되팔아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당신 같은 비열한 인간은 맞아도 싸!”말을 마친 유진우는 또다시 그의 뺨을 때렸고 어느새 강 매니저는 정신을 잃은 채 피를 흘렸다.소란스러운 분위기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미친! 저 사람 누구야? 감히 강 매니저님을 때리다니!”“조씨 가문의 구역에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정말 대단하네!”“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 모르잖아. 곧 큰일 나겠네!”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유진우! 너 미쳤어? 그만해!”깜짝 놀란 단소홍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진우 씨! 당신 지금 얼마나 큰 사고쳤는지 모르죠? 강 매니저님을 때리다니,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기는 글렀네요!”여호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유진우는 아무 반응도 없이 계속하여 강 매니저를 사정없이 때렸다.“사람 불러와! 얼른!”강 매니저의 외침에 곧바로 사방에서 경호원들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유진우는 포위당했다.“유진우! 네가 감히 강 매니저님을 때리다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경호원들이 도착하자 단소홍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옆에서 비웃었다.“주제도 모르고 남 일에 참견하더니, 오늘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네요!”여호준은 지금껏 유진우가 눈에 거슬렸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손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누군가가 대신해서 혼내주니 잘됐다 싶어 통쾌한 듯 옆에서 상황을 지켜봤다.“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이 새끼 손발 하나도 빠짐없이 부러뜨려! 문제 생기면 내가 책임질게!”강 매니저는 유진우를 가리키며 울부짖었다.“무슨 일이야?!”경호원들이 손을 쓰려던 찰나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잘생긴 얼굴의 한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여러 사람
“들었어요? 사람들이 전부 당신이 훔쳤다고 하잖아요.”자신의 돈줄을 가로막으려는 유진우를 보며 방민은 그저 비웃었다.“방 대표님은 저 사람 감싸려고 이미 마음을 먹으신 것 같네요?”상황을 지켜보던 유진우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강 매니저가 이런 인간인데 방민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부하 직원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핑계 대며 남한테 뒤집어씌우려는 이런 파렴치한 짓은 정말 역겨웠다.“감싸겠다면요? 당신이 뭔데 이곳에서 난리를 피우는 거죠?”방민은 가소로운 듯 말을 이었다.“마지막 기회를 드릴게요. 잘못 인정하고 지금 당장 강 매니저한테 무릎 꿇고 용서를 비세요. 안 그러면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게 될 거예요.”“정말로 그렇게 하실 건가요?”유진우가 되물었다.“제가 지금 장난하는 거로 보여요? 개를 때리고 싶어도 주인이 누군지 보면서 손을 써야지, 당신이 뭔데 내 구역에서 행패를 부리는 거죠?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잘못을 인정해요!”방민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들었지? 당장 무릎 끓어!”순식간에 자신감을 되찾은 강 매니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진우! 이게 바로 네가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한 대가야!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어.”단소홍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보였다.“주제넘게 나대더니 꼴좋네.”여호준은 바보를 쳐다보듯 그를 무시했다.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는 옳고 그름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아무리 억울하다고 주장해도 모든 건 권력을 가진 사람의 뜻대로 흘러가게 된다!“그래요. 당신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쩔 수 없죠. 후회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유진우는 핸드폰을 꺼내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왜요? 사람이라도 부르려고? 하하하...”그의 행동이 우스운 듯 방민은 웃음을 터뜨렸다.“어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나 본데, 여긴 내 구역이고 모든 건 내 뜻대로 진행될 거예요. 누가 영웅처럼 나타나 당신을
“네? 유 선생님?!”방민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비연단의 개발자 유 선생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다는 소식은 미리 접했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아니죠? 그, 그, 저... 저분이 정말 유 선생님이라고요?!”강 매니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방금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헛소리를 내뱉었는데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니! 큰일 났네!’“유 선생? 유진우?!”단소홍은 주위를 살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잘못 들은 건가? 정말 유진우가 유 선생이라고? 비연단을 개발한 그 대단한 사람? 말도 안 돼!’여호준의 놀라움은 금세 질투로 바뀌었다.‘저 자식은 어떻게 비연단의 처방전을 손에 넣게 된 거지?’비연단같은 영약을 개발한 순간,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이런 절호의 기회가 유진우의 손에 넘어갔으니 배가 아팠다!“방 대표님, 다시 한번 물을게요.”조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정말로 유 선생님이 비연단을 훔쳤다고 생각해요?”“그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방민은 눈을 파르르 떨며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오해요?”조선미는 단호했다.“그렇다면 비연단을 훔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거네요?”“그럼요, 유 선생님이 어떻게 자신의 물건을 훔칠 수 있겠습니까?”방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럼 이 불량품은 누가 훔친 건지 방 대표님이 직접 말해봐요.”조선미가 싸늘하게 물었다.“이제 알겠어요!”방민은 뭔가 깨달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강 매니저가 훔친 게 틀림없어요! 그래 놓고 권력을 이용해서 중간에서 이간질하다니... 회사에 도움 안 되는 저런 인간은 지금 당장 해고하겠습니다!”“방 대표님, 전...”“닥쳐!”강 매니저가 입을 열려고 하자, 방민은 시원하게 그의 뺨을 내리치며 단호하게 말했다.“파렴치한 것! 잘못을 저질렀으면 솔직하게 인정해야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제가 다 잘못했어요. 대표님, 한 번만
“지금 절 때리신 거예요?”방민은 얼굴을 가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때릴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내쫓을 거예요. 지금부터 방민 씨는 회사의 부대표가 아닙니다!”조선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조선미 씨! 정말 너무하네요! 제가 회사에 바친 세월만 해도 몇십 년인데 어떻게 저런 자식 때문에 절 해고할 수가 있죠? 그동안 큰 공로는 못 세워도 온갖 궂은 일 해가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직원들의 원성이 두렵지 않은가 봐요?”방민은 분노하며 말했다.“그래서요? 지금 절 협박하는 건가요? 당신이 그럴 자격 있나요?”조선미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솔직하게 말할게요. 해고할 뿐만 아니라 감옥에 처넣을 겁니다! 그동안 당신이 했던 더러운 짓들을 제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거든요. 평생 감옥에서 썩을 만큼 준비했으니 각오하세요!”“조선미 씨! 어딜 감히! 난 당신 사촌오빠 조준서의 사람이라고요!”방민은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조준서? 흠... 그럼 불러와 봐요, 내가 똑같이 대해줄 테니까!”조선미의 패기 넘치는 말에 방금 문을 들어선 조준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조선미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당신이 그러면 안 되지. 난...”“입 닥쳐요!”조선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내리쳤고 방민은 코피를 터뜨렸다.“전 분명히 기회를 드렸고 그걸 발로 차버린 건 당신이니까 후회하지 마세요. 여기! 이 두 사람 묶어서 경찰서로 보내요!”그녀의 명령과 함께 한 무리의 경호원이 다가오더니 단숨에 그들을 제압했다.“조 대표님!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다시는 이런 실수 범하지 않겠습니다!”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당황한 방민은 그대로 무릎을 꿇어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한순간의 욕심이 이런 큰 화를 불러일으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회사에 충성한 그간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방민이 무너지자 더 이상 의지할
“됐어요. 지나간 일로 다투지 말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여호준이 입을 열며 상황을 정리했다.“진우 씨, 전 비연단의 대리권에 관심이 많아요. 여기 2억짜리 수표를 드릴 테니 대리상 자리 하나만 넘겨주세요.”“2억이요? 지금 장난해요?”유진우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야! 2억이 적다고? 너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단소홍은 불만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조씨 가문에 처방전 하나 줬다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착각하지 마!”“진우 씨, 차라리 시원하게 금액 불러요. 얼마를 주면 대리권 얻을 수 있을까요?”여호준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돈 필요 없어요. 당신 같은 인품을 가진 사람은 비연단의 대리권을 얻을 자격이 없으니까.”유진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뭐요? 내가 돈주고 산다는데도 지금 거절하는 거예요?”여호준은 믿기지 않은듯 눈을 부릅떴다.“돈도 누구 돈인지 봐야죠. 당신같은 더러운 인간의 돈은 받고 싶지도 않네요.”유진우는 단칼에 거절했다.“유진우 씨! 주제넘게 행동하지 마요!”여호준은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미 당신의 체면도 세워줬고, 전에 있었던 일도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넘어갈 테니까 내 앞길 막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맞아! 호준 오빠가 대리해 준다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감사한 줄도 모르고 뻔뻔스럽긴!”단소홍은 목소리를 높였다.“지금 절 협박하는 거예요?”유진우는 흥미로운 듯 물었다.“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르겠죠. 충고일 수도 있고, 협박일 수도 있고.”여호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충고든 협박이든 내 알 바 아니고, 대리권을 얻는 건 꿈도 꾸지 마세요!”유진우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유진우 씨, 꼭 이렇게 서로 빈정 상하게 일 크게 만들고 싶어요?”여호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고 그 눈빛은 독사처럼 음산했다.“그게 어때서요? 제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아나 봐요?”유진우는 피식 웃었다.“좋아요! 어디 한번 두고 봐요!”여호준은 그를 매섭게 노려본 후
한 시간 후, 이씨 가문의 별장.“엄마! 소홍이한테 지금 큰일 났어!”이현은 재빨리 뛰어오며 말했다.여유롭게 앉아서 해바라기씨를 까고 있던 장경화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호준 형한테 연락 왔는데 소홍이가 지금 감옥에 갇혔대!”이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뭐라고?!”그의 말에 깜짝 놀란 장경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게 무슨 소리야?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왜 잡혀가?!”“호준 형 말로는 소홍이가 오늘 조씨 가문에 비연단 사러 갔대. 그 와중에 유진우랑 다툼이 생겼는데 갑자기 도둑으로 몰려서 잡혀갔다고...”이현은 다급하게 설명했다.“도둑? 말도 안 돼! 소홍이가 성격이 제멋대로인 건 맞는데 절대 뭘 훔칠 그런 애는 아니야!”말을 이어가던 장경화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잠깐만! 소홍이가 유진우랑 다투고 나서 잡혀갔다고 했지? 유진우가 모든 걸 계획한 게 아닐까?”“맞아! 호준 형도 그 생각 했어!”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진우 그 쓸모없는 놈은 줄곧 우리한테 불만을 품고 있었어. 이번에도 원한을 품고 일부러 소홍이를 모함한 게 분명할 거야!”“빌어먹을 놈! 양심이 눈곱만큼도 없네!”화가 난 장경화는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그동안 잘해준 건 까맣게 잊고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 배은망덕한 자식!”“엄마, 우리 이제 어떡해?”이현의 물음에 장경화는 초조한 표정으로 답했다.“일단 사람 찾아서 소홍이부터 빼내야지.”장경화는 하나뿐인 조카를 그 누구보다도 아꼈다.“엄마,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호준 형밖에 없는 것 같아.”이현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던 그때, 여호준이 분노를 내뿜으며 들어왔다.모습을 보아하니 사방을 뛰어다닌 것 같았다.“호준아, 마침 잘 왔네! 소홍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 것 같아.”여호준을 본 장경화는 재빨리 달려가 애원하며 말했다.“휴...”여호준은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주
점심 무렵, 대리상을 확보한 유진우는 평안 의원으로 돌아왔다.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사람 한 명이 더 있는 걸 발견했고,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소녀였다.포니테일을 한 채 수수한 옷차림의 소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의원을 정리하고 있었다.주정뱅이 영감은 의자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었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담요가 덮어져 있었다.“유 선생님, 돌아오셨네요?”유진우를 발견한 소녀는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누구시죠?”유진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저는 임윤아라고 합니다. 선미 씨가 할아버지 돌보라고 보내셨어요.”소녀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성인이에요?”조선미가 40, 50대의 도우미 아줌마를 보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린 소녀의 모습에 유진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성인이에요! 열여덟 살!”임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윤아야, 내가 보기엔 넌 아직 너무 어려. 그 나이 때는 학교를 다녀야지.”유진우는 고개를 저었다.별다른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임윤아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유 선생님! 제발 절 내쫓지 마세요. 빨래, 밥, 청소 전부 다 잘할 수 있고 더러운 일이나 힘든 일도 저한테 맡겨 주세요. 보기엔 연약해 보여도 생각보다 힘도 세고 밥도 적게 먹을 테니까 절대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응?”갑작스럽게 무릎 꿇은 임윤아의 행동에 유진우는 어리둥절했다.“유 선생님, 제발요! 잘못한 일 있으면 욕하고 때려도 돼요. 전부 다 참아낼 수 있으니까 제발 내쫓지 마세요!”임윤아는 말을 하면서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찍었고 순식간에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너 뭐 하는 거야?”깜짝 놀란 유진우는 재빨리 다가가 임윤아를 부축하며 달랬다.“내쫓을 생각 없었어. 난 네가 너무 고생하니까...”“하나도 안 힘들어요...”임윤아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글썽였다.“유 선생님과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이에요. 전혀 힘들지 않으니까 마음껏 시켜만 주세요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