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무렵, 대리상을 확보한 유진우는 평안 의원으로 돌아왔다.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사람 한 명이 더 있는 걸 발견했고,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소녀였다.포니테일을 한 채 수수한 옷차림의 소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의원을 정리하고 있었다.주정뱅이 영감은 의자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었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담요가 덮어져 있었다.“유 선생님, 돌아오셨네요?”유진우를 발견한 소녀는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누구시죠?”유진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저는 임윤아라고 합니다. 선미 씨가 할아버지 돌보라고 보내셨어요.”소녀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성인이에요?”조선미가 40, 50대의 도우미 아줌마를 보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린 소녀의 모습에 유진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성인이에요! 열여덟 살!”임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윤아야, 내가 보기엔 넌 아직 너무 어려. 그 나이 때는 학교를 다녀야지.”유진우는 고개를 저었다.별다른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임윤아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유 선생님! 제발 절 내쫓지 마세요. 빨래, 밥, 청소 전부 다 잘할 수 있고 더러운 일이나 힘든 일도 저한테 맡겨 주세요. 보기엔 연약해 보여도 생각보다 힘도 세고 밥도 적게 먹을 테니까 절대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응?”갑작스럽게 무릎 꿇은 임윤아의 행동에 유진우는 어리둥절했다.“유 선생님, 제발요! 잘못한 일 있으면 욕하고 때려도 돼요. 전부 다 참아낼 수 있으니까 제발 내쫓지 마세요!”임윤아는 말을 하면서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찍었고 순식간에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너 뭐 하는 거야?”깜짝 놀란 유진우는 재빨리 다가가 임윤아를 부축하며 달랬다.“내쫓을 생각 없었어. 난 네가 너무 고생하니까...”“하나도 안 힘들어요...”임윤아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글썽였다.“유 선생님과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이에요. 전혀 힘들지 않으니까 마음껏 시켜만 주세요
그는 임윤아가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처해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못 하게 말리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지지했다.“따르릉...”마침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유 선생님 맞나요? 전 이번에 새로 부임한 수사팀의 경장 장염입니다.”“장 경장님이 저한테는 무슨 일로?”유진우는 깜짝 놀랐다.“다름 아니라 이번에 단소홍이라는 범인을 잡았는데, 조사에 따르면 유 선생님의 처제이자 이번 비연단 절도 사건과도 연관되어 이렇게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이분한테 책임을 물으시겠습니까?”장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됐어요. 그 일과 전혀 연관 없는 사람이에요.”비록 단소홍이 눈에 거슬렸지만, 사적인 원한으로 감옥에 집어넣을 정도는 아니었다.“잘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통화를 마친 유진우는 옛 서적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부터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유진우! 너 당장 나와!”갑자기 밖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장경화가 이현과 함께 건달 몇 명을 거느리고 살기를 뿜으며 들어왔다.“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유진우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이 파렴치한 인간아! 소홍이가 도대체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애한테 누명을 씌운 거니?”장경화는 들어오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야, 넌 양심 밥 말아 먹었냐? 성격도 거지 같은 게 고마운 줄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네. 짐승만도 못한 놈!”“엄마, 이렇게 많은 욕은 어디서 배웠어?”옆에서 듣고 있던 이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중학교도 졸업 못 한 사람이 욕을 술술 내뱉으니 너무 놀라웠다.“지금 그게 중요해?”장경화는 고개를 돌려 이현을 노려보더니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유진우를 바라봤다.“내가 정곡 찔러서 할 말이 없나 봐? 아니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건가?”“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소홍이가 체포된 건 저랑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원망하고 싶으면 거지 같은 친구를 사귄 단소홍
“이현, 3초 줄 테니 당장 윤아한테 사과해!”유진우는 굳은 얼굴로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사과? 웃기고 있네. 네가 사과하라고 하면 할 것 같아? 그리고 쟤는 그냥 천한 계집일 뿐인데 때리면 어때서? 더 참견했다가는 너도 맞을 줄 알아!”이현이 사나운 얼굴로 노려보았다.“어리석은 놈!”유진우는 콧방귀를 뀌며 이현의 복부를 발로 찼다.이현은 비명을 지르며 몇 미터 뒤로 날아갔고, 몸은 새우처럼 움츠리며 고통스럽게 뒹굴었다.“너, 감히 내 아들을 때려? 이 짐승 같은 놈! 어디 한번 혼나봐야지!”장경화는 분노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저리 비켜요!”유진우가 몸을 슬쩍 흔들자 무형의 힘이 장경화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장경화는 물러나며 발을 헛딛는 바람에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문에 머리를 부딪혔다.“너 너 너... 감히 날 때려?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지, 너 같은 배은망덕한 놈이 어떻게 우리 집안에 들어왔었지?”장경화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쳤다.“너희들 뭐해 당장 저놈 족쳐!”어머니가 쓰러진 것을 본 이현은 곧바로 화를 내며 명령했다.몇 명의 건달들이 이현의 명령에 쇠 파이프를 꺼내 들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의원 밖으로 튕겨나갔다.“젠장! 쓸모없는 것들!”이현은 유진우를 혼내주려고 데리고 온 건달들이 이 정도로 쓸모없을 줄을 생각도 못 했다.“윤아야, 아까 뺨 한대 맞았지? 이리 와서 두 대 쳐.”유진우가 갑자기 말했다.“감히!”이현의 표정이 사나웠다.임윤아는 겁을 먹고 움츠리며 두려워서 앞으로 가지도 못했다.어렸을 때부터 맞기만 했지, 누구를 때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럼 내가 할게!”유진우는 두말하지 않고 이현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어지러울 정도로 맞은 이현의 뺨은 빨갛게 부어올랐다.“이 개자식! 짐승 보다 못한 놈아! 거지 하나 때문에 옛 처남을 때려? 인간성이 조금도 없는 놈! 우리 가족은 너한테 은혜를 베풀었는데 보답은커녕 은혜를 원수로 갚아?
유진우의 오랫동안 쌓였던 분노와 불만은 마침내 뱉어졌다.“너 너 너... 헛소리하지 마!”장경화는 조금도 믿지 않고 더 세게 소리를 질렀다.“네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우릴 도와줘? 우리 가문이 오늘의 성과를 거둔 건 우리 청아 능력 덕분인 거지, 너랑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리고 너도 지금 여자 덕분에 사람 노릇하고 다니는 거잖아! 조선미 대표가 너를 봐주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강씨 집안에 죽임을 당했을 거야! 그러니까 허세 부리지 마. 너 같은 기생오라비는 조선미 대표도 언젠가는 쫓아낼 거야! 그때가 되면 넌 모두한테 쫓기는 물에 빠진 개가 될 거야!”장경화의 말에 유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예상대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소용이 없었고,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이씨 집안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늘 어설프고 평범했다.물론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됐어. 당신들하고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의원에서 당장 나가. 여기는 당신들 환영하지 않아!”유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젠장 기다려!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이현은 고함을 지른 후 장경화와 같이 자리를 떠났다.더 이상 싸울 수 없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윤아야, 괜찮아?”유진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저는 괜찮아요, 폐를 끼쳐 죄송해요.”임윤아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바보야,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으면 멀리 피하고 절대 나서지 마.”유진우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요.”임윤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해 질 무렵, 이씨 별장 안.이청아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이 퉁퉁 부어있는 이현과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호준을 보았다.“누나 왔어? 엄마 오늘 맞았어!”이청아를 보자마자 이현은 고자질을 시작했다.“엄마가 맞았다고? 무슨 일이야?”이청아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얘기하려면 길어. 먼저 방에 가서 엄마를 봐.”이현이 재촉했다.이청아가 얼굴을 찡그리고 방으로 걸어가자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장
핸드폰 속 영상은 유진우가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었다.이현을 발로 차고 이어서 장경화를 밀쳐 바닥에 넘어뜨려 머리를 문에 부딪치게 했으며 이현의 뺨을 두 대 때리는 것으로 영상은 끝났다.영상은 이미지만 있고 소리는 없었다.이청아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믿지 않을 수 없었다.“누나, 봤지? 이게 바로 증거야! 엄마 연세도 많으신데 이렇게 당하고 어떻게 멀쩡하시겠어! 방금 병원에 다녀왔는데 엄마 뇌진탕이 심하셔서 알츠하이머에 걸릴 수도 있대! 그리고 뼈도 몇 군데 부러져서 앞으로는 자기 몸을 돌보는 것조차 어려울 거라고 했어. 누나,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을 그래도 믿을 거야?”이현은 이를 악물고 분노를 토로했다.“왜? 그 사람이 왜 그랬는데?”이청아는 열 손가락을 꽉 움켜쥐더니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두 사람 관계가 이제 막 누그러져서 그녀는 심지어 재결합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진우는 왜 엄마를 때렸을까?유진우가 이 정도로 몰인정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청아야, 그 자식이 나를 때렸을 뿐만 아니라 소홍이를 모함해서 감옥에 넣었어!”장경화가 차갑게 말했다.“뭐라고요? 소홍이가 감옥에 갔다고요?”이청아의 눈이 동그래졌다.“맞아! 오늘 소홍이가 비연단 사러 조씨네 갔다가 유진우랑 충돌이 있었는데 그 자식이 앙심을 품고 소홍이를 도둑놈으로 누명 씌워서 잡아넣었어.”이현은 격동하며 소리쳤다.“나도 현장에 있었어. 증명할 수 있어. 확실해!”여호준도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는 이런 낙정하석 할 수 있는 기회를 당연히 놓칠 수 없었다.“청아야, 들었지? 이제 유진우 그 자식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놈이라는 걸 알겠어? 과거에 우리는 다 그놈한테 속았던 거야. 이게 그 자식의 원래 모습이야. 그런 놈을 아직도 믿고 싶어?”장경화는 말을 마치자마자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중상을 입고 누워있는 장경화의 모습을 보는 이청아는 가슴이 아팠다.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최소한의 희망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분노로 가득 찼다.이청아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유진우
“할 말 없지? 그럴 줄 알았어! 왜?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왜 자꾸만 나의 한계를 도전해? 우리 정말로 원수가 돼야 그만할 거야?”이청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내가 변한 게 아니라 당신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믿지 않는다는 거야. 내 말은 믿지도 않을 거면서 이제 그만하자. 주정뱅이 영감을 살려준 건 언제든지 갚을게.”유진우는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우리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돌아갈 수 없다.이건 어젯밤 그가 그녀에게 한 대답이다.“진우 씨, 무슨 말이야? 이제 인연을 끊겠다는 거야? 당신...”이청아는 다른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졌다.유진우의 냉철한 태도에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그녀는 왜 두 사람이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는지? 왜 서로한테 상처를 주고 괴롭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왜 조금이라도 그녀를 배려해 주지 않을까?“누나, 말했잖아, 그 자식은 인간성이 하나도 없다고. 이제 그 자식의 본 모습을 알겠지?”이현이 옆에서 불난집에 부채질을 해댔다.“청아야, 그 자식한테 빌지 마. 그 자식은 언젠가 벌을 받을 거야!”장경화도 한마디 보탰다.“엄마, 그만하고 치료나 잘해요. 소홍이는 제가 방법을 찾아볼게요.”이청아의 마음은 심란했다.“청아야, 소홍이 일은 걱정하지 마. 아버지가 알아보신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거야.”여호준이 옆에서 위로했다.마음에 상처를 입은 여자가 가장 약하다는 걸 알기에 이때다 싶어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고마워요.”이청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경찰차 한 대가 별장 앞에 멈췄다.차량 문이 열리자 단소홍이 반가워하며 차에서 뛰어내렸다.“이모, 저 왔어요!”단소홍은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소홍아!”그 광경에 몇몇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장경화는 방금까지 골골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바로 침대에서 뛰어내려 단소홍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며 걱정했다.“소홍아, 괜찮아? 어디
이청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제야 뭔가 발견하고 놀란 표정으로 장경화를 바라보았다.“엄마, 팔다리가 부러졌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일어설 수 있어요?”“어?”장경화는 얼굴이 굳어지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방금 소홍이를 보고 너무 흥분했나 봐, 아픈 것도 까먹었네. 이제 누워서 쉬여야겠다.”그렇게 말하면서 절뚝거리며 침대 위로 올라갔지만 그의 형편없는 연기력으로는 아무도 속일 수 없었다.“엄마! 안 다쳤으면서 일부러 그러신 거예요?”이청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어떻게 안 다칠 수가 있어? 유진우가 나 때리는 거 봤잖아? 아이고 머리가 또 아프기 시작하네!”장경화는 머리를 감싸 쥐고 다시 아픈 척을 하기 시작했다.“뇌진탕에 팔다리까지 부러졌다면서요. 병원 진료기록부 어디 있어요? 가져와요!”이청아가 소리쳤다.“그게...”장경화와 이현은 말문이 막혀 서로를 바라보았다.그제야 이청아는 모든 걸 깨달았다.“그러니까 지금껏 나한테 거짓말을 하신 거네요? 왜 그래요?”이청아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래, 나 안 다쳤어. 그래서 뭐?”들켜버리자 장경화는 아예 당당하게 나왔다.“비록 다치진 않았지만 그 자식이 사람을 때린 건 사실이잖아. 동영상으로 다 봤잖아.”“맞아! 누나, 내 얼굴을 봐, 다 그 자식이 때린 거야!”이현도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핸드폰 내놔!”이청아는 얼굴을 찡그렸다.“왜? 핸드폰은 왜?”이현은 켕기는 게 있었다.“이리 내!”이청아는 바로 핸드폰을 뺏어 들고 영상 원본을 찾아 스피커 볼륨까지 높였다.그제야 동생이 왜 맞았는지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유진우가 배은망덕한 것이 아니고 엄마와 동생이 막무가내로 남의 집에 가서 일을 벌인 것이었다.“왜? 왜 거짓말을 해요?”이청아는 짜증이 났다.“청아야, 우리가 언제 너를 속였어? 그 자식이 사람을 때린 건 맞잖아. 비록 우리가 먼저 시작했지만, 그 자식은 그러면 안 되지. 우리가 때리면 어때서? 나는 어른인데, 좀 혼내면 안 돼?”장
“유... 유진우? 어떻게?”진실을 알게 된 장경화 일행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단소홍을 구해준 사람이 여호준이 아니라 그들이 경멸하는 유진우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그야말로 갑자기 뺨을 맞은 느낌이었다.“그러니까 진우 씨는 소홍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라, 오히려 모함을 당한 거네요?”이청아는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해지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모함은 무슨, 그 자식도 분명 켕기는 게 있으니까 이 기회에 만회하려는 거겠지.”장경화가 단호하게 말했다.사람을 마음대로 부리는데 익숙한 그녀가 유진우를 오해했다고 인정할 리가 없었다. 그건 너무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까.“엄마, 계속 억지 부리실 거예요?”이청아는 입술을 깨물었다.“내가 뭐? 그 녀석이 소홍이를 모함하지 않았다면 왜 구해주겠어? 결국은 지발이 저려서 도와 준거야!”장경화는 분개하며 말했다.“맞아! 그 자식이 한 짓이 아니면 왜 도와주겠어?”이현도 동조했다.“정말 지겨워요!”이청아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했다.“왜? 왜 자꾸 진우 씨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데요? 진우 씨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계속 적대시하는 거예요? 결혼생활 3년 동안 성실하게 본분을 지켰잖아요. 그런데 왜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매번마다 진우 씨는 분명 잘못한 거 없는데 꼭 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려 하고 왜 그렇게 가만두지 못하는 거예요?”마지막에는 거의 포효하듯이 소리쳤다.모두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 했다.이청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쾅 닫고 뛰쳐나갔다.운전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후회한다.그녀는 정말 후회한다.그녀는 자신이 너무 충동적으로 엄마의 일방적인 말만 믿고 유진우를 오해한 것을 후회한다.그녀는 너무 속상하고 혼란스러웠다.이제 두 사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평안 의원 내.전화를 끊은 유진우는 심호흡을 하더니 금세 마음을 진정시켰다.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그한테 큰 영향은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