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 씨, 잘 생각해 봐요. 난 거절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맘에 드는 건 꼭 손에 넣어야 하거든요. 동의한다면 큰돈뿐만 아니라 우리 여씨 가문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든 우리 여씨 가문이 나서서 도와줄 거고 만약 거절한다면 우리 여씨 가문의 적이 될 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 우리 가문의 친구가 될 것인지? 적이 될 것인지?”유진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저는 협박당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어?”여동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유진우 씨, 정말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실 건가요?”“물론입니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조씨 가문을 믿고 이러나 본데, 솔직히 유진우 씨 같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어요. 계속 고집부린다면 재미없을 거예요?”여동남은 불친절한 얼굴로 말했다.“얼마든지요.”유진우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좋아요,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요!”여동남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떴다.‘감히 나한테 덤벼? 죽으려고 환장했구먼.’...다음날 아침.“악!”잠을 자고 있던 유진우는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방문을 열고 나가 보니 임윤아가 공포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유 선생님, 그레이가 죽었어요!”임윤아가 눈물을 흘리며 바깥쪽을 가리켰다.의원 정문에 임윤아가 어제 데리고 온 회색 고양이가 죽은 채로 걸려 있었다.고양이는 내장이 제거되고 피투성이가 되어 매우 비참했다.“헉?”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밖으로 나가보니 정문 양쪽으로 간판까지 모두 개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죽은 고양이를 매달고 개의 피를 뿌렸다는 건 그냥 모욕이 아니라 아주 적나라한 도발이자 위협이었다.“붕붕...”그때 어제의 마이바흐가 길옆에 천천히 멈춰 서더니 차창이 내려가면서 여동남과 여호준의 얼굴이 보였다.두 부자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희롱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당신들이 한 거야?!”유진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화를 마친 후.유진우는 임윤아와 함께 의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임윤아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유진우는 그레이의 죽음이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윤아의 두 눈은 붉어져 있었고 울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불운의 소녀가 얼마나 비굴하고 조심스럽게 살았으면 마음대로 울지도 못할까?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아팠다.두 사람은 한참 지나서야 의원의 청소를 끝냈다.잠시 후 은색 벤틀리 한 대가 천천히 문 앞에 멈췄다.차 문이 열리자 개량한복을 입은 조선미가 나왔다.“조 대표님?”임윤아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그래. 윤아야, 여러 번 말했지만 이렇게 안 해도 돼. 그냥 언니라고 해.”조선미는 미소를 지으며 임윤아의 머리를 만졌다.“네네.”임윤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공손한 태도였다.“선미 씨, 무슨 일이에요?”유진우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일이 없으면 진우 씨 보러 여기 못 와요?”조선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당연히 아니죠. 언제든지 환영해요.”유진우가 웃으며 대답했다.“호호호, 그렇게 나와야죠.”조선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요. 오늘 점심 같이해요. 거물을 소개해 줄게요.”“거물? 뭐 하는 사람인데요?”유진우는 궁금했다.“가보면 알아요.”조선미가 말했다.“윤아야, 언니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저는 가지 않을게요. 할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해요.”임윤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래 그럼. 진우 씨한테 맛있는 거 포장해서 보낼게.”조선미는 곧바로 유진우와 같이 차에 탔다.20분 후, 차는 천향루 앞에 멈춰 섰다.천향루는 조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중식당인데 조선미가 중요한 손님을 접대할 때 선택하는 곳이다.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창문을 통해 바깥 정원의 풍경을 아주 잘 감상할 수 있었다.“선미 씨, 이젠 누구를 만나는지 얘기하죠?”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서울에 손기태라고 들어봤어요?”조선미가 웃으며 말했
“에... 에이즈?”손 부인은 할 말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유진우가 말한 증상이 자신의 몸 상태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얼마 전 어린 애인을 만났었는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제대로 된 보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진우 씨, 확실해요?”옆에 있던 조선미 씨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에이즈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손기태의 ‘숨은 병'이 이것일까?“100%는 아니지만, 아마 맞을 거예요.”유진우가 대답했다.“너 너 너... 헛소리하지 마!”손 부인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오늘 오전에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에이즈는 무슨? 사람 겁주지 마!”“믿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시죠.”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이놈이 사람을 겁주고 망신 주다니? 오늘 한번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 무송아, 뺨을 호되게 때려줘!”손 부인은 화를 내며 뒤에 잘생긴 젊은 경호원에게 명령했다.하지만 무송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서있기만 했다.“무송아! 뭐 하고 있어? 움직이지 않고?”손 부인이 소리쳤다.“무슨 일이야?!”때 마침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뚱뚱한 중년 남자가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그 뒤에는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이 있었다.“어... 저 사람은 서울 부귀신 아니야?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저기 손 부인이 부귀신의 아내인 것 같은데 볼거리가 있겠구먼.”“부귀신이 아내를 총애하기로 유명한데 저 사람 좋은 꼴 못 볼 것 같은데!”중년 남자가 등장한 후 식당은 웅성웅성했다.“여보, 드디어 오셨군요!”손 부인은 손기태를 보자마자 황급히 달려가 울기 시작했다.“방금 어떤 놈이 나를 모욕했어요, 당신이 혼내줘요!”“누구야? 감히 내 아내를 모욕해?”손기태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는 아내가 조금 버릇없고 막무가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총애했다.“바로 조선
“여, 여보, 왜 때려요?”손 부인은 억울해하며 얼굴을 가렸다.주변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항상 아내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했던 부귀신이 직접 아내를 때릴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직접 봐!”손기태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핸드폰을 아내의 몸에 던져버렸다.손 부인은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벼락을 맞은 듯 굳어버렸다.그것은 신체검사 보고서였는데 그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거였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아니야, 이건 뭐가 잘못된 거야!”손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이 보고서는 가짜에요. 여보, 난 에이즈가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그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손기태는 불쾌했다.어떤 남자가 바람피는 아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바람피다가 에이즈에 걸렸다.이것은 그야말로 치욕이다.“여보, 미안해요. 제가 미쳤었나 봐요. 용서해 줘요!”손 부인은 무릎을 꿇더니 옆에 있는 경호원을 가리키며 말했다.“다 이놈 때문이에요! 이놈이 저를 유혹했어요. 저는 억울해요.”“사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사모님께서 저를 꼬셨잖아요. 어떻게 저한테 책임을 돌리시는 거예요?”젊은 경호원은 납득할 수 없었다.이대로 손 부인을 먼저 유혹했다고 죄를 인정하면 손기태로부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 같았기 때문에 가만히 뒤집어쓸 수 없었다.“너... 닥쳐! 너잖아! 네가 먼저 유혹했잖아! 그것도 모자라서 에이즈까지 옮겼어. 짐승만도 못한 놈아!”손 부인은 화가 나서 경호원에게 달려가 심하게 때리고는 다시 손기태의 앞에 무릎 꿇고 애원했다.“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한 번만 용서해 줘요.”손기태의 표정은 차갑고 무관심했다.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아내도 충성을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가장 기본적인 충성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당신들 때문이야! 죽여 버릴 거야!”손기태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
“당신이 바로 그 의술이 아주 뛰어나다는 유진우 씨죠? 오늘 보니까 역시 명불허전이네요.”손기태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했다.“회장님께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아내가 바람이 났는데 어떤 남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래도 진우 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죠. 진우 씨의 예리한 안목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평생 속고만 살았을 겁니다.”손기태가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움을 견디느니 한순간 고통을 참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비록 체면이 조금 깎이긴 하겠지만 속고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회장님, 주제넘은 질문이지만... 혹시 전에 말씀하셨던 말 못 할 병이라는 게 바로 이건가요?”조선미가 떠보듯 물었다. 손 부인이 그 병에 걸렸다면 손기태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그게... 저는 아마 괜찮을 거예요.”손기태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일이 하도 바빠서 와이프랑 잠자리 못 한 지 반년이 됐어요.”“다행이네요.”조선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진우 씨, 제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진단할 수 있나요?”손기태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회장님, 요즘 혹시 허리와 무릎이 저리고 화도 잘 내고 불면증에 시달리나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손기태가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당연히 척 보면 알죠.”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회장님은 몸이 허해서 쉽게 병에 걸릴 뿐만 아니라 허리도 안 좋다는 거 알고 있어요. 몇 년 전에 허리를 다친 적이 있죠?”손기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고 유진우를 쳐다보는 눈빛마저 사뭇 달라졌다.유진우의 말대로 몇 년 전에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사업 때문에 출장 갔다가 킬러의 기습으로 허리에 칼을 맞았었다. 가까스로 운 좋게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 후로 다친 곳이 계속 쿡쿡 쑤시는 것처럼 아팠다.이 일을 그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유진우는 어떻게 알았을까?“역시 진우 씨 대단해
손기태는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지금까지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그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쩔 바를 몰랐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뒤에 더 큰 ‘서프라이즈’ 가 숨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고? 아내의 외도보다 충격이 몇 배는 더 컸다.“진우 씨, 확... 확신해요?”손기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지막 일말의 희망까지 다 버리진 않은 모양이다.“회장님,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지금 몸 상태를 봐서는 오래전에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예요. 만약 못 믿으신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도 돼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젠 그마저도 손기태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비록 재산이 많긴 하지만 아내가 외도한데다가 아들까지 친아들이 아니라니... 이런 이중 충격은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알았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진우 씨. 여기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는데 우리 자리를 옮겨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손기태가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유진우와 조선미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조 기사, 선미 씨랑 진우 씨를 먼저 시크릿 가든에 모셔다드려. 난 이따가 바로 갈게.”손기태가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네.”대답을 마친 운전기사는 유진우와 조선미를 밖에 세운 롤스로이스 자동차로 안내했다.두 사람이 떠난 후에야 손기태의 낯빛이 굳어졌다. 아들이 친아들인지 아닌지는 유전자 검사만 하면 모든 게 밝혀진다.아내의 외도까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남의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오후 시크릿 가든.유진우와 조선미는 정원을 같이 거닐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두 사람 뒤로 몇몇 도우미들이 디저트와 음료를 들고 항시 대기했다.그들은 한 바퀴 쭉 둘러본 후에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선미 씨, 손 회장님께서 이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유진우가 불쑥 물었다. 만약 손 부인이 눈에 거슬리는 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그들
커다란 가업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없다는 건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다.“회장님,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칼에 찔려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지만 치료할 수 있어요. 몸이 다 회복되면 아들 하나가 아니라 열 명 낳는 것도 문제없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그게 정말입니까?”손기태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반년 동안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주요하게 그의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그 사실을 계속 숨겨왔었다. 그런 그가 다시 예전처럼 일어설 수 있다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회장님, 전 불가능한 일은 입 밖에 꺼내지 않습니다.”그러고는 단약 한 알을 꺼냈다.“이건 제가 제조한 우금환인데 막힌 혈도 뚫어주고 내상을 치료하는 데 아주 좋아요. 일단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네!”손기태는 두말없이 바로 우금환을 꿀꺽 삼켰다.우금환을 삼키자마자 따뜻한 기운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손기태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전에 계속 있었던 허리 통증도 많이 완화되는 것 같았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이 단약이 정말 대박인데요, 진우 씨?”몸속의 신기한 변화를 느끼며 손기태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순식간에 환골탈태한 기분이었다.전에는 유진우의 의술을 의심했었지만 이젠 완전히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아무리 명성이 자자한 명의든 교수든 유진우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회장님, 우금환을 사흘에 한 알 복용하시면 한 달 후에는 완치될 겁니다.”유진우가 약병 하나를 손기태에게 건넸다. 그 약병 안에 우금환이 가득 담겨있었다.“고마워요, 진우 씨.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손기태는 흥분한 나머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얼른 일어나세요, 회장님... 별거 아닌 일인데요, 뭐. 이러지 마세요.”유진우는 재빨리 그를 일으켜 세웠다.이 일은 그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손기태의 병을 치료해
그 시각 가든 응접실.“아빠, 회장님께서 우리한테 돈을 빌려주실까요?”여호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회장님은 통이 크시고 평소 선행을 좋아하시는 분이야. 게다가 우리 여씨 가문이랑 관계도 괜찮아서 돈을 빌리는 것쯤은 아무 문제 없을 거야.”여동남이 차를 마시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비록 여씨 가문이 예전보다는 많이 기울었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고 밖에 나가면 그래도 어느 정도 체면은 섰다.“우리 자금만 끊이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리지 않았어요. 이게 다 사업이 망한 탓이에요.”여호준이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얼마 전 그들은 비보를 전해 들었는데 그들과 손을 잡은 수많은 대표들이 갑자기 자금을 철수하기 시작했고 전에 얘기를 다 마쳤던 프로젝트마저도 전부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가문 전체가 순식간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지금 거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보름도 안 되어 여씨 가문이 망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손기태밖에 없다.“이 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투자자들이 갑자기 전부 자금을 철수했어. 아무래도 누군가 뒤에서 우리 여씨 가문을 상대로 손을 쓴 것 같아.”여동남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식이 대체 누군데 감히 우리 여씨 가문을 건드려요?”여호준이 불같이 화를 내며 책상을 탁 쳤다.원래는 비연단의 처방전을 손에 넣은 후 자금을 투자하여 스스로 연구할 계획이었다. 일이 계획대로만 진행되었더라면 여씨 가문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아직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어. 일단 자금부터 마련하고 고비를 넘긴 후에 그놈이 누군지 잡아내야지!”여동남의 두 눈에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아빠, 우리 지금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대략 얼마 정도 필요해요?”여호준이 떠보듯 물었다.“적어도 6천억은 있어야 해!”여동남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나 많이요?”여호준의 낯빛이 확
허공에 드리운 거대한 형상은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뜨거운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위협적이었다.“화신의 분노!”기운이 최고조에 달하자 한비영은 양손을 앞으로 세차게 밀어내었다.그의 등 뒤에 나타난 화신 또한 똑같이 손바닥을 내지르는 동작을 취했다.곧이어 새빨간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염 용이 하늘로 솟구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유진우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주작!”유진우는 기운을 전환하며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현청진기를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그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불꽃의 신조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끼오!”주작은 커다란 날개를 힘차게 펼치며 수많은 불빛을 흩뿌렸다. 화살처럼 치솟아 오른 주작은 한비영의 용과 정면으로 충돌했다.“쾅!”굉음과 함께 두 거대한 존재는 격렬히 부딪혔다.주작은 폭발하여 수많은 불꽃 조각으로 흩어졌고 용 또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두 사람의 대결은 다시 한번 무승부로 끝났다.이 결과를 본 한비영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세 번째 기술을 준비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한비영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배는 바다를 삼키는 고래처럼 부풀어 오르며 천지의 영기를 거칠게 빨아들였다.그 순간 그의 등 뒤에 검은 구름 같은 형상을 띤 신상이 나타났다.이 신상은 흉측한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러왔다.“천둥의 분노!”한비영이 긴 함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향해 강렬한 주먹을 내질렀다.그의 등 뒤의 천둥의 형상 또한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 유진우를 향해 내리쳤다.그 주먹은 마치 태산이 내려앉는 듯한 기세로 막강한 압박감을 뿜어냈다.“청룡!”유진우는 다시 한번 몸속의 현청진기를 뿜어내 머리 위에 푸른 청룡을 소환했다.푸른 용은 생동감이 넘쳤으며 비늘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였다.용의 신비롭
“너희들 생각엔 한비영이랑 유진우 둘 중에 누가 더 셀 것 같아?”“만약 두 사람 모두 전성기 시절의 실력대로라면 아마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은 누가 더 전략을 잘 짜느냐가 관건이겠지만.”“말도 안 돼! 당연히 한비영 도련님께서 훨씬 월등하시지! 유진우는 이미 한물갔어. 이제는 한비영 도련님께서 진정한 천하제일 천재란 말이야!”“나도 도련님께서 이기실 것 같아. 어쨌든 유진우는 방금까지 싸워서 체력을 다 써버렸으니 꽤 지쳤을 거야.”“...”대치 중인 한비영과 유진우를 바라보며 무인들은 귓속말로 여러 추측들을 주고받았다.두 사람 모두 알아주는 천재로서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이런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맞붙는다고 하니 그 누가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있으랴.물론 대다수는 한비영의 승리를 예상했다.한비영은 최근 몇 년간 천하에 이름을 떨치며 대단한 기세를 뽐냈고 자질로 봤을 때는 이미 무적이었다.그 반면, 유진우도 과거엔 알아주는 무인이었지만 지금의 한비영과 비교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그래, 싸워라, 싸워. 얼른 너희 둘이 싸우다가 둘 다 죽거나 크게 다쳐야 내가 얻는 게 있지.”문관옥은 두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냉소를 지었다.생사가 걸렸는데 아직까지 무슨 무림인들의 규칙을 지킨다고 설쳐대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전략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결투의 기본 상식이거늘.“유진우, 난 지금부터 천신사상결을 사용할 거다. 잘 사리는 게 좋을 거야.”“받아라!”한비영은 경고 한 마디를 마친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그의 몸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폭발하더니 푸른빛의 잔상이 등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잔상은 여섯에서 일곱 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로 마치 신마와 같은 위풍당당하고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었다.“세상에, 시작부터 천신사상결이라니. 아무래도 도련님께서 싸움을 한 번에 끝내실 생각인가 보구나!”“천신사상결이라니, 저건 천하에 위세를 떨친 기술이야. 신이 앞을
백발의 노인은 구세주를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경원종이 유명하다고는 해도 천하회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말도 안 될 정도였다.이미 2년 전부터 한비영이 대 마스터에 접어들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이런 절세의 천재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존재였다.“한비영 도련님이 나서주셨으니 이제 유진우도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미모의 부인은 기쁨으로 두 눈을 반짝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쳐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한비영이 와주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전투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한비영 도련님을 뵙습니다!”한비영이 땅으로 착지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공손한 인사를 건네며 존경을 표했다.“다들 물러나 계십시오. 이제 전투는 제가 맡습니다.”한비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네!”사람들 역시 큰 소리로 대답하며 양옆으로 물러서 자리를 내어주었다.위험을 피하면서도 공로를 나눌 수 있는 이 상황에 사람들은 기꺼이 옆으로 물러나 한비영의 실력을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도련님, 유진우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혼자서 상대하시기엔 무리일 수도 있으니 같이 힘을 합치는 건 어떨까요?”“관옥 도련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혼자 싸우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니 도련님께선 잠시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하지만 비영 도련님, 이번 일은 중대한 사안입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함께 싸우시는 편이 어떠신지요.”문관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왜 그러십니까, 도련님께선 이 한비영을 못 믿으신다는 겁니까? 설마 제가 유진우 하나 상대 못 할 것 같나요?”한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도련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우실 때가 아니라 임무가 우선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도련님 혼자 책임을 지시기 버거울 겁니다.”문관옥이 경고하듯 말했다.“저는 무림인으로서 무림인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도련님께서 책임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이봐요!”문관
“응?”유진우의 시선이 느껴지자 문관옥은 밀려오는 불안함에 눈꺼풀이 떨렸다.조금 전, 백호랑이 시간을 끄는 틈을 타 그는 이미 단약을 삼켜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체력 역시 회복하고 있었다.몇 분 정도 지나자 상처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금세 사라졌고 체력도 빠르게 돌아왔다.그 반면, 유진우는 계속 이어지는 전투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을 것이다.이제 역전된 기세에 문관옥은 어쩌면 자신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문관옥은 더 자신감을 얻었다.물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여러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겁한 방식일지라도 단독으로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영웅 여러분, 유진우의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을 겁니다.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분명 죽일 수 있을 겁니다.”문관옥이 큰 소리로 외쳤다.그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유진우의 모습은 문관옥의 말처럼 체력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유진우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백호랑이 데리고 온 군사들의 시신은 아직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은 피로 새겨진 교훈이었다. 그 누가 감히 선뜻 나설 수 있을까?“오늘의 임무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리스크가 있어야만 성공이 따르는 겁니다. 저놈만 죽이면 여러분들은 평생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문관옥이 차분한 말투로 사람들을 유혹했다.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각자의 얼굴에 의욕이 넘쳤다.유진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일 뿐이었고 방금 몇 차례의 전투를 통해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을 것이다.그들이 힘을 모아 공격하기만 한다면 승산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죽는 게 무섭지 않다면, 어디 한 번 앞으로 나와 봐.”유진우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자 사람들은 놀란 기색으로 뒷걸음질 쳤다.조금 전의 혈투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려움으
“윽...”그때 문관옥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피를 내뿜었다.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손에 든 빙화검을 바닥에 꽂아 가늘게 떨리는 몸을 지탱했다.마지막 공격에서 문관옥이 크게 다친 것이 분명했다.“뭐라고요?”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경악했다.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어 하는 모습이었다.‘문관옥이 졌다고? 말도 안 돼!’문관옥은 4대 군신들의 우두머리였고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들과 싸워왔었다.방금 공격에서 보여준 건 대 마스터가 되어야만 쓸만한 기술들이었다.‘그런 고수가 어떻게 질 수 있어? 유진우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문관옥도 이길 수 없을 만큼?’“계속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문관옥은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그가 전력을 쓴 공격도 쉽게 막아냈으니 말이다.문관옥은 유진우를 쉽게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다쳐버렸다.‘정말 말도 안 돼!’‘어떻게 된 거지? 유진우는 분명 사라진 지 10년이나 지났어. 서경왕부의 도움이 없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갖춘 거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내가 실력을 숨긴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약한 거야. 제대로 된 싸움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할 만큼.”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너!”문관옥은 이를 악물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또 피를 뿜었다.“4대 도련님 중에서 네가 최약체 아니야?”유진우가 말했다.실력으로만 봐서는 천하회의 한비영이 문관옥보다 훨씬 나았다.“날 너무 업신여기는 거 아니야?”화가 난 문관옥이 명령했다.“백호랑! 내 명을 들어. 당장 이놈을 죽여!”“돌진!”명령을 받은 백호랑들은 칼을 들고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이 백호랑들은 모두 문관옥이 정성껏 길러낸 호위무사들로 충성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실력도 강했다.물론 그도 백호랑이 정말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공격하라고 명령한 건 시간을 끌면서 유진우의 기력을 소모하기 위해서였다.이번 작전에 참여한 세력들은
“대 마스터...문 도련님의 한 방은 분명 대 마스터에 버금 가는 실력입니다!”채지웅은 그를 올려다보며 놀라움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유진우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문관옥이 더 강할 줄은 몰랐다.‘마스터의 경지로 대 마스터의 실력을 발휘하다니... 말도 안 돼. 역시 천교는 다르다는 건가?’“이런 기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온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노윤하는 입을 딱 벌린 채 충격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고수라고 생각했지만 문관옥 같은 고수 앞에서 자기는 정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너무 대단하시네요. 제 실력이 문 도련님 절반이라도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요...”사호문 제자들도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경외심을 느꼈고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문관옥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인제야 그들은 마침내 천교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깨달았다.“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문관옥이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서 유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스텝을 밟고는 칼을 들어 앞으로 찌를 뿐이었다.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지만 화려한 테크닉도 없는 그저 단순한 공격이었다.그러나 문관옥이 들고 있는 거대한 칼날에 비하면 유진우는 코끼리 앞에 선 개미처럼 작고 약해 보였다. 입김만 불어도 부서질 듯이 말이다.“죽어!”유진우가 정면으로 맞서자 문관옥은 칼을 든 손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그리고는 양손에 칼을 꼭 쥐고 아래로 내리쳤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의 칼끝이 무관옥의 칼날을 정확하게 찔렀다.순간, 공포스러운 파동이 하늘 높이 치밀어 오르더니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에 있던 꽃과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버렸고 바닥마저도 한층 벗겨져 버렸다.관전하는 무사들도 쓰러져서 곤두박질쳤다.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서야 무사들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에 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구덩이 안에는 흑백의 그림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흰색은 유진우였고 검은색은
문관옥의 맹렬한 기세에 유진우는 그저 검으로 막아내기만 했다. 그리고는 그저 문관옥이 마음껏 공격하게 내버려두었다.하지만 그것이 사람들 눈에는 문관옥이 계속 유진우를 누르고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보였다.계속해서 공격한다면 문관옥이 곧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문 도련님께서 익힌 기술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공격하면 할수록 위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이 싸움을 보니 유장혁이 더 이상 당해 내지 못할 것 같네요...”“천재라고 하길래 뭐 얼마나 대단하나 했는데... 결국 문 도련님 같은 천교를 당해낼 수 없잖아요!”“문 도련님 파이팅입니다! 유진우를 죽여버려요!”기세등등하게 공격을 이어 나가는 문관옥을 보며 그들은 놀라워 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일부 사호문 제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다.“죽여라! 죽여라!”문관옥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손에 든 칼을 점점 더 빨리 휘둘렀다. 그러면서 기세도 점점 더 거세졌다. 그의 공격은 마치 바람에 소나기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유장혁, 아까는 그렇게 건방지더니... 왜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막지만 말고 반격해 봐! 공격해 보라고!”“왜 방어만 하고 있어?”“설마 두려운 건 아니겠지?”“전에는 그렇게 멋있고 대단하던 사람이었잖아. 지금은? 겨우 내 공격을 버티고 있는 주제에!”“그러면서도 천재라고? 웃기지도 않아!”“너한테 그럴 자격 따위 없어!”“어때? 내 실력이 느껴져? 많이 무섭지? 절망적이지?”“안타깝지만 오늘은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문관옥은 공격하면서도 계속 비아냥거리는 말을 해댔고 유진우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하려 했다.하지만 그의 꼼수에 유진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사실 그는 문관옥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문관옥은 대단하지만 유진우보다는 약했다.다른 조직이 아닌 호룡각이었기에 유진우는 겨우 이 정도의 사람들만 보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분명 다른 고수
문관옥의 무기는 빙화검이라는 칼이었는데 전설적인 3대 검 중 하나였다.이 칼은 위력이 셀 뿐 아니라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론 한기가 엄습하고 때론 화염이 치솟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두 속성 모두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력이 강할 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문관옥은 앞으로 돌진하면서 빙화검을 칼집에서 꺼냈 다.뜨거운 붉은 불꽃이 순식간에 칼날 전체를 뒤덮었다. 불길이 마치 짐승처럼 포효하는 듯했고 칼날이 지나가는 곳마다 땅의 화초들이 검게 타들어갔다.“화염 첫 번째 기술!”문관옥이 손목을 살짝 움직이더니 화염을 내뿜는 긴 칼을 높이 쳐들고 허공을 가르며 유진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굉음이 울려퍼졌다.화염에 휩싸인 긴 칼이 갑자기 폭발하여 거대한 칼날이 허공에 떠서 형성되었다.칼자루는 길이가 십여미터쯤 돼 보였고 너비는 3미터 쯤인 것 같았다. 주위에는 불꽃이 감돌며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언뜻 보기에는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칼날이 유진우을 향해 이렇게 무겁게 내리꽂히는 듯했다.“너무 무서운데요? 이게 문 도련님의 실력이였군요. 역시 강하세요.”“맞아요, 역시 도련님이세요. 거의 마스터 수준아닌가요?”“문 도련님 같은 분만이 유진우와 겨룰 수 있죠.”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칼날을 보고 있자니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놀라움을 나타냈다.비교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었지만 경원종 고수들의 공격과 비교해 보면 문관옥의 공격은 차원이 달랐다.이게 바로 일반 고수들과 천교의 차이였다.“검!”유진우가 이렇게 말하자 땅에 떨어졌던 청하검이 그대로 10여 미터 거리를 날아오더니 유진우의 손에 쏙 들어왔다.유진우는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머리 위에 꽂혀지는 불꽃을 살짝 건드렸다.그러자 하얀 빛이 순식간에 검을 뚫고 나와 빙화검의 불꽃에 세게 부딪쳤다.쿵하는 큰 소리와 함께 두 칼날이 마주쳤다. 그 찰나, 땅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에너지가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마다 온통 난장판이었
펑!여기저기로부터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위력이 넘치는 번개들은 유진우의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 속에 빨려 들어갔고 바람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칼날은 전부 터져버려 모양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날카로운 얼음덩이들은 순식간에 물로 녹아버렸다.경원종의 모든 공격은 전부 무력화 되고 말았다.그뿐만 아니라 비연교 제자들의 암기들도 반사되어 공중에서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려오며 사방에서 땡그랑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이럴 수가.”오행 진법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채지웅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경원종의 다른 고수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금방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한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으니 현재 기진맥진한 그들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이 없었다.“도망가야 해! 얼른 도망가야 해!”노윤하가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줄행랑을 놓았다.유진우의 손바닥 그림자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 같은 강렬한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의 공격은 일반 마스터가 다다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으니 유진우는 이미 대 마스터의 문턱을 밟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펑!흰색의 손바닥 그림자가 곧장 따라와 사방을 휩쓸자 미처 피하지 못한 경원종의 고수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가까이에 있던 사호문 제자들은 상황파악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뒤에 숨어서 암기를 날리던 비연교 제자들도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유진우가 만들어낸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는 도살장의 분쇄기처럼 그곳에 남아있는 적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지금 이곳은 지옥이 다름없었다.이곳저곳에서 피가 튕기고 산산조각이 난 시체들이 떠다녔다.바닥이 새빨간 피에 물들여져 피로 된 길고 긴 길을 만들어냈다.손바닥 그림자가 유유히 사라지자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경원종에서는 채지웅 혼자 살아남고 전멸했다.채지웅은 바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