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 씨, 잘 생각해 봐요. 난 거절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맘에 드는 건 꼭 손에 넣어야 하거든요. 동의한다면 큰돈뿐만 아니라 우리 여씨 가문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든 우리 여씨 가문이 나서서 도와줄 거고 만약 거절한다면 우리 여씨 가문의 적이 될 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 우리 가문의 친구가 될 것인지? 적이 될 것인지?”유진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저는 협박당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어?”여동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유진우 씨, 정말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실 건가요?”“물론입니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조씨 가문을 믿고 이러나 본데, 솔직히 유진우 씨 같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어요. 계속 고집부린다면 재미없을 거예요?”여동남은 불친절한 얼굴로 말했다.“얼마든지요.”유진우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좋아요,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요!”여동남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떴다.‘감히 나한테 덤벼? 죽으려고 환장했구먼.’...다음날 아침.“악!”잠을 자고 있던 유진우는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방문을 열고 나가 보니 임윤아가 공포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유 선생님, 그레이가 죽었어요!”임윤아가 눈물을 흘리며 바깥쪽을 가리켰다.의원 정문에 임윤아가 어제 데리고 온 회색 고양이가 죽은 채로 걸려 있었다.고양이는 내장이 제거되고 피투성이가 되어 매우 비참했다.“헉?”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밖으로 나가보니 정문 양쪽으로 간판까지 모두 개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죽은 고양이를 매달고 개의 피를 뿌렸다는 건 그냥 모욕이 아니라 아주 적나라한 도발이자 위협이었다.“붕붕...”그때 어제의 마이바흐가 길옆에 천천히 멈춰 서더니 차창이 내려가면서 여동남과 여호준의 얼굴이 보였다.두 부자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희롱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당신들이 한 거야?!”유진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화를 마친 후.유진우는 임윤아와 함께 의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임윤아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유진우는 그레이의 죽음이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윤아의 두 눈은 붉어져 있었고 울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불운의 소녀가 얼마나 비굴하고 조심스럽게 살았으면 마음대로 울지도 못할까?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아팠다.두 사람은 한참 지나서야 의원의 청소를 끝냈다.잠시 후 은색 벤틀리 한 대가 천천히 문 앞에 멈췄다.차 문이 열리자 개량한복을 입은 조선미가 나왔다.“조 대표님?”임윤아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그래. 윤아야, 여러 번 말했지만 이렇게 안 해도 돼. 그냥 언니라고 해.”조선미는 미소를 지으며 임윤아의 머리를 만졌다.“네네.”임윤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공손한 태도였다.“선미 씨, 무슨 일이에요?”유진우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일이 없으면 진우 씨 보러 여기 못 와요?”조선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당연히 아니죠. 언제든지 환영해요.”유진우가 웃으며 대답했다.“호호호, 그렇게 나와야죠.”조선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요. 오늘 점심 같이해요. 거물을 소개해 줄게요.”“거물? 뭐 하는 사람인데요?”유진우는 궁금했다.“가보면 알아요.”조선미가 말했다.“윤아야, 언니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저는 가지 않을게요. 할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해요.”임윤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래 그럼. 진우 씨한테 맛있는 거 포장해서 보낼게.”조선미는 곧바로 유진우와 같이 차에 탔다.20분 후, 차는 천향루 앞에 멈춰 섰다.천향루는 조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중식당인데 조선미가 중요한 손님을 접대할 때 선택하는 곳이다.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창문을 통해 바깥 정원의 풍경을 아주 잘 감상할 수 있었다.“선미 씨, 이젠 누구를 만나는지 얘기하죠?”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서울에 손기태라고 들어봤어요?”조선미가 웃으며 말했
“에... 에이즈?”손 부인은 할 말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유진우가 말한 증상이 자신의 몸 상태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얼마 전 어린 애인을 만났었는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제대로 된 보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진우 씨, 확실해요?”옆에 있던 조선미 씨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에이즈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손기태의 ‘숨은 병'이 이것일까?“100%는 아니지만, 아마 맞을 거예요.”유진우가 대답했다.“너 너 너... 헛소리하지 마!”손 부인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오늘 오전에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에이즈는 무슨? 사람 겁주지 마!”“믿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시죠.”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이놈이 사람을 겁주고 망신 주다니? 오늘 한번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 무송아, 뺨을 호되게 때려줘!”손 부인은 화를 내며 뒤에 잘생긴 젊은 경호원에게 명령했다.하지만 무송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서있기만 했다.“무송아! 뭐 하고 있어? 움직이지 않고?”손 부인이 소리쳤다.“무슨 일이야?!”때 마침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뚱뚱한 중년 남자가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그 뒤에는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이 있었다.“어... 저 사람은 서울 부귀신 아니야?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저기 손 부인이 부귀신의 아내인 것 같은데 볼거리가 있겠구먼.”“부귀신이 아내를 총애하기로 유명한데 저 사람 좋은 꼴 못 볼 것 같은데!”중년 남자가 등장한 후 식당은 웅성웅성했다.“여보, 드디어 오셨군요!”손 부인은 손기태를 보자마자 황급히 달려가 울기 시작했다.“방금 어떤 놈이 나를 모욕했어요, 당신이 혼내줘요!”“누구야? 감히 내 아내를 모욕해?”손기태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는 아내가 조금 버릇없고 막무가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총애했다.“바로 조선
“여, 여보, 왜 때려요?”손 부인은 억울해하며 얼굴을 가렸다.주변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항상 아내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했던 부귀신이 직접 아내를 때릴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직접 봐!”손기태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핸드폰을 아내의 몸에 던져버렸다.손 부인은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벼락을 맞은 듯 굳어버렸다.그것은 신체검사 보고서였는데 그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거였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아니야, 이건 뭐가 잘못된 거야!”손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이 보고서는 가짜에요. 여보, 난 에이즈가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그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손기태는 불쾌했다.어떤 남자가 바람피는 아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바람피다가 에이즈에 걸렸다.이것은 그야말로 치욕이다.“여보, 미안해요. 제가 미쳤었나 봐요. 용서해 줘요!”손 부인은 무릎을 꿇더니 옆에 있는 경호원을 가리키며 말했다.“다 이놈 때문이에요! 이놈이 저를 유혹했어요. 저는 억울해요.”“사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사모님께서 저를 꼬셨잖아요. 어떻게 저한테 책임을 돌리시는 거예요?”젊은 경호원은 납득할 수 없었다.이대로 손 부인을 먼저 유혹했다고 죄를 인정하면 손기태로부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 같았기 때문에 가만히 뒤집어쓸 수 없었다.“너... 닥쳐! 너잖아! 네가 먼저 유혹했잖아! 그것도 모자라서 에이즈까지 옮겼어. 짐승만도 못한 놈아!”손 부인은 화가 나서 경호원에게 달려가 심하게 때리고는 다시 손기태의 앞에 무릎 꿇고 애원했다.“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한 번만 용서해 줘요.”손기태의 표정은 차갑고 무관심했다.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아내도 충성을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가장 기본적인 충성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당신들 때문이야! 죽여 버릴 거야!”손기태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
“당신이 바로 그 의술이 아주 뛰어나다는 유진우 씨죠? 오늘 보니까 역시 명불허전이네요.”손기태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했다.“회장님께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아내가 바람이 났는데 어떤 남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래도 진우 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죠. 진우 씨의 예리한 안목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평생 속고만 살았을 겁니다.”손기태가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움을 견디느니 한순간 고통을 참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비록 체면이 조금 깎이긴 하겠지만 속고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회장님, 주제넘은 질문이지만... 혹시 전에 말씀하셨던 말 못 할 병이라는 게 바로 이건가요?”조선미가 떠보듯 물었다. 손 부인이 그 병에 걸렸다면 손기태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그게... 저는 아마 괜찮을 거예요.”손기태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일이 하도 바빠서 와이프랑 잠자리 못 한 지 반년이 됐어요.”“다행이네요.”조선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진우 씨, 제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진단할 수 있나요?”손기태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회장님, 요즘 혹시 허리와 무릎이 저리고 화도 잘 내고 불면증에 시달리나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손기태가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당연히 척 보면 알죠.”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회장님은 몸이 허해서 쉽게 병에 걸릴 뿐만 아니라 허리도 안 좋다는 거 알고 있어요. 몇 년 전에 허리를 다친 적이 있죠?”손기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고 유진우를 쳐다보는 눈빛마저 사뭇 달라졌다.유진우의 말대로 몇 년 전에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사업 때문에 출장 갔다가 킬러의 기습으로 허리에 칼을 맞았었다. 가까스로 운 좋게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 후로 다친 곳이 계속 쿡쿡 쑤시는 것처럼 아팠다.이 일을 그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유진우는 어떻게 알았을까?“역시 진우 씨 대단해
손기태는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지금까지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그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쩔 바를 몰랐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뒤에 더 큰 ‘서프라이즈’ 가 숨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고? 아내의 외도보다 충격이 몇 배는 더 컸다.“진우 씨, 확... 확신해요?”손기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지막 일말의 희망까지 다 버리진 않은 모양이다.“회장님,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지금 몸 상태를 봐서는 오래전에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예요. 만약 못 믿으신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도 돼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젠 그마저도 손기태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비록 재산이 많긴 하지만 아내가 외도한데다가 아들까지 친아들이 아니라니... 이런 이중 충격은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알았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진우 씨. 여기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는데 우리 자리를 옮겨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손기태가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유진우와 조선미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조 기사, 선미 씨랑 진우 씨를 먼저 시크릿 가든에 모셔다드려. 난 이따가 바로 갈게.”손기태가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네.”대답을 마친 운전기사는 유진우와 조선미를 밖에 세운 롤스로이스 자동차로 안내했다.두 사람이 떠난 후에야 손기태의 낯빛이 굳어졌다. 아들이 친아들인지 아닌지는 유전자 검사만 하면 모든 게 밝혀진다.아내의 외도까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남의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오후 시크릿 가든.유진우와 조선미는 정원을 같이 거닐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두 사람 뒤로 몇몇 도우미들이 디저트와 음료를 들고 항시 대기했다.그들은 한 바퀴 쭉 둘러본 후에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선미 씨, 손 회장님께서 이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유진우가 불쑥 물었다. 만약 손 부인이 눈에 거슬리는 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그들
커다란 가업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없다는 건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다.“회장님,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칼에 찔려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지만 치료할 수 있어요. 몸이 다 회복되면 아들 하나가 아니라 열 명 낳는 것도 문제없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그게 정말입니까?”손기태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반년 동안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주요하게 그의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그 사실을 계속 숨겨왔었다. 그런 그가 다시 예전처럼 일어설 수 있다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회장님, 전 불가능한 일은 입 밖에 꺼내지 않습니다.”그러고는 단약 한 알을 꺼냈다.“이건 제가 제조한 우금환인데 막힌 혈도 뚫어주고 내상을 치료하는 데 아주 좋아요. 일단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네!”손기태는 두말없이 바로 우금환을 꿀꺽 삼켰다.우금환을 삼키자마자 따뜻한 기운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손기태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전에 계속 있었던 허리 통증도 많이 완화되는 것 같았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이 단약이 정말 대박인데요, 진우 씨?”몸속의 신기한 변화를 느끼며 손기태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순식간에 환골탈태한 기분이었다.전에는 유진우의 의술을 의심했었지만 이젠 완전히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아무리 명성이 자자한 명의든 교수든 유진우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회장님, 우금환을 사흘에 한 알 복용하시면 한 달 후에는 완치될 겁니다.”유진우가 약병 하나를 손기태에게 건넸다. 그 약병 안에 우금환이 가득 담겨있었다.“고마워요, 진우 씨.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손기태는 흥분한 나머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얼른 일어나세요, 회장님... 별거 아닌 일인데요, 뭐. 이러지 마세요.”유진우는 재빨리 그를 일으켜 세웠다.이 일은 그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손기태의 병을 치료해
그 시각 가든 응접실.“아빠, 회장님께서 우리한테 돈을 빌려주실까요?”여호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회장님은 통이 크시고 평소 선행을 좋아하시는 분이야. 게다가 우리 여씨 가문이랑 관계도 괜찮아서 돈을 빌리는 것쯤은 아무 문제 없을 거야.”여동남이 차를 마시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비록 여씨 가문이 예전보다는 많이 기울었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고 밖에 나가면 그래도 어느 정도 체면은 섰다.“우리 자금만 끊이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리지 않았어요. 이게 다 사업이 망한 탓이에요.”여호준이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얼마 전 그들은 비보를 전해 들었는데 그들과 손을 잡은 수많은 대표들이 갑자기 자금을 철수하기 시작했고 전에 얘기를 다 마쳤던 프로젝트마저도 전부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가문 전체가 순식간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지금 거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보름도 안 되어 여씨 가문이 망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손기태밖에 없다.“이 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투자자들이 갑자기 전부 자금을 철수했어. 아무래도 누군가 뒤에서 우리 여씨 가문을 상대로 손을 쓴 것 같아.”여동남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식이 대체 누군데 감히 우리 여씨 가문을 건드려요?”여호준이 불같이 화를 내며 책상을 탁 쳤다.원래는 비연단의 처방전을 손에 넣은 후 자금을 투자하여 스스로 연구할 계획이었다. 일이 계획대로만 진행되었더라면 여씨 가문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아직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어. 일단 자금부터 마련하고 고비를 넘긴 후에 그놈이 누군지 잡아내야지!”여동남의 두 눈에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아빠, 우리 지금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대략 얼마 정도 필요해요?”여호준이 떠보듯 물었다.“적어도 6천억은 있어야 해!”여동남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나 많이요?”여호준의 낯빛이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