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제야 뭔가 발견하고 놀란 표정으로 장경화를 바라보았다.“엄마, 팔다리가 부러졌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일어설 수 있어요?”“어?”장경화는 얼굴이 굳어지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방금 소홍이를 보고 너무 흥분했나 봐, 아픈 것도 까먹었네. 이제 누워서 쉬여야겠다.”그렇게 말하면서 절뚝거리며 침대 위로 올라갔지만 그의 형편없는 연기력으로는 아무도 속일 수 없었다.“엄마! 안 다쳤으면서 일부러 그러신 거예요?”이청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어떻게 안 다칠 수가 있어? 유진우가 나 때리는 거 봤잖아? 아이고 머리가 또 아프기 시작하네!”장경화는 머리를 감싸 쥐고 다시 아픈 척을 하기 시작했다.“뇌진탕에 팔다리까지 부러졌다면서요. 병원 진료기록부 어디 있어요? 가져와요!”이청아가 소리쳤다.“그게...”장경화와 이현은 말문이 막혀 서로를 바라보았다.그제야 이청아는 모든 걸 깨달았다.“그러니까 지금껏 나한테 거짓말을 하신 거네요? 왜 그래요?”이청아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래, 나 안 다쳤어. 그래서 뭐?”들켜버리자 장경화는 아예 당당하게 나왔다.“비록 다치진 않았지만 그 자식이 사람을 때린 건 사실이잖아. 동영상으로 다 봤잖아.”“맞아! 누나, 내 얼굴을 봐, 다 그 자식이 때린 거야!”이현도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핸드폰 내놔!”이청아는 얼굴을 찡그렸다.“왜? 핸드폰은 왜?”이현은 켕기는 게 있었다.“이리 내!”이청아는 바로 핸드폰을 뺏어 들고 영상 원본을 찾아 스피커 볼륨까지 높였다.그제야 동생이 왜 맞았는지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유진우가 배은망덕한 것이 아니고 엄마와 동생이 막무가내로 남의 집에 가서 일을 벌인 것이었다.“왜? 왜 거짓말을 해요?”이청아는 짜증이 났다.“청아야, 우리가 언제 너를 속였어? 그 자식이 사람을 때린 건 맞잖아. 비록 우리가 먼저 시작했지만, 그 자식은 그러면 안 되지. 우리가 때리면 어때서? 나는 어른인데, 좀 혼내면 안 돼?”장
“유... 유진우? 어떻게?”진실을 알게 된 장경화 일행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단소홍을 구해준 사람이 여호준이 아니라 그들이 경멸하는 유진우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그야말로 갑자기 뺨을 맞은 느낌이었다.“그러니까 진우 씨는 소홍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라, 오히려 모함을 당한 거네요?”이청아는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해지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모함은 무슨, 그 자식도 분명 켕기는 게 있으니까 이 기회에 만회하려는 거겠지.”장경화가 단호하게 말했다.사람을 마음대로 부리는데 익숙한 그녀가 유진우를 오해했다고 인정할 리가 없었다. 그건 너무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까.“엄마, 계속 억지 부리실 거예요?”이청아는 입술을 깨물었다.“내가 뭐? 그 녀석이 소홍이를 모함하지 않았다면 왜 구해주겠어? 결국은 지발이 저려서 도와 준거야!”장경화는 분개하며 말했다.“맞아! 그 자식이 한 짓이 아니면 왜 도와주겠어?”이현도 동조했다.“정말 지겨워요!”이청아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했다.“왜? 왜 자꾸 진우 씨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데요? 진우 씨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계속 적대시하는 거예요? 결혼생활 3년 동안 성실하게 본분을 지켰잖아요. 그런데 왜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매번마다 진우 씨는 분명 잘못한 거 없는데 꼭 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려 하고 왜 그렇게 가만두지 못하는 거예요?”마지막에는 거의 포효하듯이 소리쳤다.모두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 했다.이청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쾅 닫고 뛰쳐나갔다.운전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후회한다.그녀는 정말 후회한다.그녀는 자신이 너무 충동적으로 엄마의 일방적인 말만 믿고 유진우를 오해한 것을 후회한다.그녀는 너무 속상하고 혼란스러웠다.이제 두 사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평안 의원 내.전화를 끊은 유진우는 심호흡을 하더니 금세 마음을 진정시켰다.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그한테 큰 영향은
“유진우 씨, 잘 생각해 봐요. 난 거절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맘에 드는 건 꼭 손에 넣어야 하거든요. 동의한다면 큰돈뿐만 아니라 우리 여씨 가문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든 우리 여씨 가문이 나서서 도와줄 거고 만약 거절한다면 우리 여씨 가문의 적이 될 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 우리 가문의 친구가 될 것인지? 적이 될 것인지?”유진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저는 협박당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어?”여동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유진우 씨, 정말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실 건가요?”“물론입니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조씨 가문을 믿고 이러나 본데, 솔직히 유진우 씨 같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어요. 계속 고집부린다면 재미없을 거예요?”여동남은 불친절한 얼굴로 말했다.“얼마든지요.”유진우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좋아요,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요!”여동남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떴다.‘감히 나한테 덤벼? 죽으려고 환장했구먼.’...다음날 아침.“악!”잠을 자고 있던 유진우는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방문을 열고 나가 보니 임윤아가 공포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유 선생님, 그레이가 죽었어요!”임윤아가 눈물을 흘리며 바깥쪽을 가리켰다.의원 정문에 임윤아가 어제 데리고 온 회색 고양이가 죽은 채로 걸려 있었다.고양이는 내장이 제거되고 피투성이가 되어 매우 비참했다.“헉?”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밖으로 나가보니 정문 양쪽으로 간판까지 모두 개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죽은 고양이를 매달고 개의 피를 뿌렸다는 건 그냥 모욕이 아니라 아주 적나라한 도발이자 위협이었다.“붕붕...”그때 어제의 마이바흐가 길옆에 천천히 멈춰 서더니 차창이 내려가면서 여동남과 여호준의 얼굴이 보였다.두 부자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희롱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당신들이 한 거야?!”유진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화를 마친 후.유진우는 임윤아와 함께 의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임윤아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유진우는 그레이의 죽음이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윤아의 두 눈은 붉어져 있었고 울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불운의 소녀가 얼마나 비굴하고 조심스럽게 살았으면 마음대로 울지도 못할까?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아팠다.두 사람은 한참 지나서야 의원의 청소를 끝냈다.잠시 후 은색 벤틀리 한 대가 천천히 문 앞에 멈췄다.차 문이 열리자 개량한복을 입은 조선미가 나왔다.“조 대표님?”임윤아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그래. 윤아야, 여러 번 말했지만 이렇게 안 해도 돼. 그냥 언니라고 해.”조선미는 미소를 지으며 임윤아의 머리를 만졌다.“네네.”임윤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공손한 태도였다.“선미 씨, 무슨 일이에요?”유진우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일이 없으면 진우 씨 보러 여기 못 와요?”조선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당연히 아니죠. 언제든지 환영해요.”유진우가 웃으며 대답했다.“호호호, 그렇게 나와야죠.”조선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요. 오늘 점심 같이해요. 거물을 소개해 줄게요.”“거물? 뭐 하는 사람인데요?”유진우는 궁금했다.“가보면 알아요.”조선미가 말했다.“윤아야, 언니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저는 가지 않을게요. 할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해요.”임윤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래 그럼. 진우 씨한테 맛있는 거 포장해서 보낼게.”조선미는 곧바로 유진우와 같이 차에 탔다.20분 후, 차는 천향루 앞에 멈춰 섰다.천향루는 조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중식당인데 조선미가 중요한 손님을 접대할 때 선택하는 곳이다.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창문을 통해 바깥 정원의 풍경을 아주 잘 감상할 수 있었다.“선미 씨, 이젠 누구를 만나는지 얘기하죠?”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서울에 손기태라고 들어봤어요?”조선미가 웃으며 말했
“에... 에이즈?”손 부인은 할 말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유진우가 말한 증상이 자신의 몸 상태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얼마 전 어린 애인을 만났었는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제대로 된 보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진우 씨, 확실해요?”옆에 있던 조선미 씨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에이즈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손기태의 ‘숨은 병'이 이것일까?“100%는 아니지만, 아마 맞을 거예요.”유진우가 대답했다.“너 너 너... 헛소리하지 마!”손 부인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오늘 오전에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에이즈는 무슨? 사람 겁주지 마!”“믿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시죠.”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이놈이 사람을 겁주고 망신 주다니? 오늘 한번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 무송아, 뺨을 호되게 때려줘!”손 부인은 화를 내며 뒤에 잘생긴 젊은 경호원에게 명령했다.하지만 무송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서있기만 했다.“무송아! 뭐 하고 있어? 움직이지 않고?”손 부인이 소리쳤다.“무슨 일이야?!”때 마침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뚱뚱한 중년 남자가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그 뒤에는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이 있었다.“어... 저 사람은 서울 부귀신 아니야?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저기 손 부인이 부귀신의 아내인 것 같은데 볼거리가 있겠구먼.”“부귀신이 아내를 총애하기로 유명한데 저 사람 좋은 꼴 못 볼 것 같은데!”중년 남자가 등장한 후 식당은 웅성웅성했다.“여보, 드디어 오셨군요!”손 부인은 손기태를 보자마자 황급히 달려가 울기 시작했다.“방금 어떤 놈이 나를 모욕했어요, 당신이 혼내줘요!”“누구야? 감히 내 아내를 모욕해?”손기태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는 아내가 조금 버릇없고 막무가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총애했다.“바로 조선
“여, 여보, 왜 때려요?”손 부인은 억울해하며 얼굴을 가렸다.주변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항상 아내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했던 부귀신이 직접 아내를 때릴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직접 봐!”손기태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핸드폰을 아내의 몸에 던져버렸다.손 부인은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벼락을 맞은 듯 굳어버렸다.그것은 신체검사 보고서였는데 그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거였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아니야, 이건 뭐가 잘못된 거야!”손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이 보고서는 가짜에요. 여보, 난 에이즈가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그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손기태는 불쾌했다.어떤 남자가 바람피는 아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바람피다가 에이즈에 걸렸다.이것은 그야말로 치욕이다.“여보, 미안해요. 제가 미쳤었나 봐요. 용서해 줘요!”손 부인은 무릎을 꿇더니 옆에 있는 경호원을 가리키며 말했다.“다 이놈 때문이에요! 이놈이 저를 유혹했어요. 저는 억울해요.”“사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사모님께서 저를 꼬셨잖아요. 어떻게 저한테 책임을 돌리시는 거예요?”젊은 경호원은 납득할 수 없었다.이대로 손 부인을 먼저 유혹했다고 죄를 인정하면 손기태로부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 같았기 때문에 가만히 뒤집어쓸 수 없었다.“너... 닥쳐! 너잖아! 네가 먼저 유혹했잖아! 그것도 모자라서 에이즈까지 옮겼어. 짐승만도 못한 놈아!”손 부인은 화가 나서 경호원에게 달려가 심하게 때리고는 다시 손기태의 앞에 무릎 꿇고 애원했다.“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한 번만 용서해 줘요.”손기태의 표정은 차갑고 무관심했다.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아내도 충성을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가장 기본적인 충성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당신들 때문이야! 죽여 버릴 거야!”손기태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
“당신이 바로 그 의술이 아주 뛰어나다는 유진우 씨죠? 오늘 보니까 역시 명불허전이네요.”손기태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했다.“회장님께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아내가 바람이 났는데 어떤 남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래도 진우 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죠. 진우 씨의 예리한 안목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평생 속고만 살았을 겁니다.”손기태가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움을 견디느니 한순간 고통을 참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비록 체면이 조금 깎이긴 하겠지만 속고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회장님, 주제넘은 질문이지만... 혹시 전에 말씀하셨던 말 못 할 병이라는 게 바로 이건가요?”조선미가 떠보듯 물었다. 손 부인이 그 병에 걸렸다면 손기태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그게... 저는 아마 괜찮을 거예요.”손기태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일이 하도 바빠서 와이프랑 잠자리 못 한 지 반년이 됐어요.”“다행이네요.”조선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진우 씨, 제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진단할 수 있나요?”손기태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회장님, 요즘 혹시 허리와 무릎이 저리고 화도 잘 내고 불면증에 시달리나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손기태가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당연히 척 보면 알죠.”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회장님은 몸이 허해서 쉽게 병에 걸릴 뿐만 아니라 허리도 안 좋다는 거 알고 있어요. 몇 년 전에 허리를 다친 적이 있죠?”손기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고 유진우를 쳐다보는 눈빛마저 사뭇 달라졌다.유진우의 말대로 몇 년 전에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사업 때문에 출장 갔다가 킬러의 기습으로 허리에 칼을 맞았었다. 가까스로 운 좋게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 후로 다친 곳이 계속 쿡쿡 쑤시는 것처럼 아팠다.이 일을 그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유진우는 어떻게 알았을까?“역시 진우 씨 대단해
손기태는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지금까지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그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쩔 바를 몰랐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뒤에 더 큰 ‘서프라이즈’ 가 숨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고? 아내의 외도보다 충격이 몇 배는 더 컸다.“진우 씨, 확... 확신해요?”손기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지막 일말의 희망까지 다 버리진 않은 모양이다.“회장님,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지금 몸 상태를 봐서는 오래전에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예요. 만약 못 믿으신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도 돼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젠 그마저도 손기태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비록 재산이 많긴 하지만 아내가 외도한데다가 아들까지 친아들이 아니라니... 이런 이중 충격은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알았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진우 씨. 여기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는데 우리 자리를 옮겨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손기태가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유진우와 조선미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조 기사, 선미 씨랑 진우 씨를 먼저 시크릿 가든에 모셔다드려. 난 이따가 바로 갈게.”손기태가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네.”대답을 마친 운전기사는 유진우와 조선미를 밖에 세운 롤스로이스 자동차로 안내했다.두 사람이 떠난 후에야 손기태의 낯빛이 굳어졌다. 아들이 친아들인지 아닌지는 유전자 검사만 하면 모든 게 밝혀진다.아내의 외도까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남의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오후 시크릿 가든.유진우와 조선미는 정원을 같이 거닐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두 사람 뒤로 몇몇 도우미들이 디저트와 음료를 들고 항시 대기했다.그들은 한 바퀴 쭉 둘러본 후에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선미 씨, 손 회장님께서 이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유진우가 불쑥 물었다. 만약 손 부인이 눈에 거슬리는 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그들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