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아버지의 고함에 놀란 봉연주는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든 채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왜 그러세요?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네가 지금 뻔뻔하게 나한테 묻는 것이냐? 너 스스로 벌인 일을 모르는 척할 테야?” 수화기 너머 봉연주의 아버지는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듯 말을 이어갔다. “방금 관변 측에서 대량의 인원을 동원해 우리 봉씨 가문의 모든 산업을 샅샅이 뒤졌다. 게다가 대부분의 핵심적인 물건은 다 가져갔고. 지금 봉씨 가문은 벼랑 끝에 서 있게 됐다. 이대로라면 나까지 붙잡혀가 옥살이를 하게 생겼다고!”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우리 봉씨 가문이 얼마나 인맥이 넓고 산업을 크게 하는데 누가 감히 우리 가문을 건드려요?” 봉연주는 아버지의 말에 믿기지 않는 듯 따지며 물었다. 가문의 발전은 늘 아주 잘 나가고 있었고 아는 사람도 많기에 설령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이 정도 까지는 크게 벌려지지 않았었다. 돈을 버는 유일한 봉씨 가문의 재산을 조사하고 압수한 것도 모자라 사람까지 잡아가니 그들에게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이 안 가는 모양이구나! 네 성 씨와 이름까지 대가면서 잡겠다고 지금 난리도 아니다. 너 이 쓰레기 같은 년, 도대체 어떤 큰 인물을 건드리고 다닌 거야!” 봉군의가 씩씩거리며 물었다. “저...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의 물음에 봉연주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불쌍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좀 그만해! 누구를 건드렸든 간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싹싹 빌어 용서를 받아. 안 그러면 봉씨 가문은 이대로 끝일 테니까! 정말 끝을 맞이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네년의 목을 벨 거다.” 봉군의는 화가 쉽게 풀리지 않는 듯 고함을 지르며 몇 마디 욕설을 더 내뱉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생전 처음 보는 아버지의 말투에 놀란 봉연주는 눈에 눈물이 맺힌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
안세리는 단 한 번도 안씨 가문이 이 지경까지 몰락할 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고귀하고 당당하던 부모는 목숨을 지키려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고 가문은 파산을 맞이하게 돼버린 이 상황이 안세리에게는 꿈만 같았다. 강대하던 재벌 가문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한번 몰락한 가문은 다시 일으켜 세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안세리는 이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던 안세리에게 이제 그런 삶은 그림의 떡이었다. 재벌 가문에서 평생 모자람 없이 살고 싶었던 그녀의 꿈 또한 박살이 나버렸다. “세리야, 혹시 너희 가문에도 일이 생긴 거야?” 새하얗게 질린 안세리의 얼굴을 발견한 봉연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너랑 같아. 우리 집도 관변 측에서 찾아와 샅샅이 뒤졌다네.” 안세리는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며 봉연주에게 대답했다. “우리 봉씨 가문을 조사하는 것도 모자라 안씨 가문까지 그랬다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우연한 일이 있을 수 있지?” 봉연주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고작 하룻밤 만에 두 재벌 가문이 처참하게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그녀들은 무조건 누군가가 일부러 벌인 짓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지? 도대체 누가 이런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관변을 이용해 우리 두 가문을 조사할 사람은 오직 4대 왕족의 고위층 사람들뿐이야.”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안세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 뜻은... 왕족인 조씨 가문 짓이라고?” 봉연주는 빠르게 안세리의 말에 눈치를 챘고 얼마 전 조홍연에게 당한 따끔한 “교훈”이 떠올랐다. 그녀는 조홍연이 이렇게 바로 “공격”을 진행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내 생각에는 거의 백 프로야. 조씨 가문을 빼면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안세리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왕족 가문은 건드린 적이 없지만 오늘 유진우 때문에 찾아온 조홍연과 깊은 악연이 생겼으니 안세리는 확신했다. 안세리가 확신하는 제일 결정적인 이유
“패? 무슨 패?” 안세리의 말에 봉연주는 눈빛에 생기가 돌더니 물었다. 그녀는 지금 봉씨 가문과 안씨 가문에 들이닥친 재앙을 누가 구해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조씨 가문이 비록 강대하긴 해도 상대할 수 있어. 4대 왕족 중에 아직 문씨 가문이 남아 있잖아.” 안세리는 한껏 엄숙해진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유진우가 문한성 씨를 죽였어. 조씨 가문이 아무리 뒤에서 보호해준다고 해도 문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우린 문왕부에게 모든 것을 걸어도 돼. 그래야만 유진우를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도 있고 복수를 할 수도 있는 기회지.” “좋은 생각인데? 완전 일석이조 아니야?” 안세리가 말한 “패”의 의미를 알아챈 봉연주는 뛸 듯이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는 이 생각을 못 했지?’ 비록 조씨 가문에게 비참한 짓을 당했다고 해도 그녀들의 뒤에는 아직 문왕부가 남아 있기에 포기하긴 이르다고 생각했다. “세리야, 내가 지금 당장 청아 언니에게 전화해서 먼저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하고 도와달라고 할게.” 봉연주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거려는 순간, 안세리가 급히 말렸다. “기다려! 이청아 씨에게 전화를 한다고 해도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 문 어르신의 친딸 같은 사람은 맞지만 조홍연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청아 언니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또 누구한테 해야되?” 안세리가 왜 자신을 말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봉연주가 입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 “제일 좋은 상대는 바로 옥면 군신인 문관옥 씨지.” 안세리는 아까보다 아주 이성적으로 현실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있었다. “문관옥 씨가 문왕부에 돌아간 뒤로 형세가 기울였어. 전에 이청아 씨를 보살피고 그녀에게 아부하던 사람들 다 문관옥 씨에게 붙었지. 그중 문한성 씨가 제일 좋은 예시야.” “게다가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유진우가 문관옥 씨가 보는 앞에서 문한성 씨를 죽였대. 그런 대담한 행동들은 다 문관옥 씨의 자존
“걱정 마, 이 정도로 죽기야 하겠어?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내가 어떻게 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겠냐고. 좀 잇다가 내가 휠체어 타고 나타날게. 그러면 우리의 성의를 조금 더 알아봐 주실지도 몰라.” 안세리의 말을 귀신같이 들은 봉연주가 괜찮다며 대답했다. “알겠어. 우리 그럼 옥면 산장으로 가자.” 봉연주의 대답에 안세리는 하던 걱정을 멈추고 사람을 불러 휠체어를 가져오라고 한 뒤, 봉연주를 태웠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급히 옥면 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밤이 점점 더 깊어져 가는 시각, 옥면 산장 안. 문관옥은 서재에 앉아 손에 들린 자료들을 보며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진우가 옥면 산장에 쳐들어온 뒤로 그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그의 신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루도 채 안 걸려 모든 결과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 자료에서는 유진우가 강능에서 온 사람이자 이청아와 혼인 관계로 살던 사람이라고 적혀있었다. 제일 처음 유진우는 그저 의술을 조금 할 줄 아는 평범한 남자였지만 이혼을 한 후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 점점 더 자신을 드러냈다고 한다. 의술과 무도를 제외하고도 상도까지 섭렵하고 있지만 특히나 무도 쪽에서는 강남무림의 주인마저 살해한 기록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요즘 젊은이들과 다르게 자랑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도 늘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특수 기관까지 동원해 찾지 않았다면 천하의 문관옥조차 유진우의 자료를 찾아내지 못 할 뻔하였다. “이상해... 참 이상하단 말이지.” 유진우의 사진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문관옥은 생각에 깊게 잠긴 듯했다. “군신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때, 옆에 있던 문관옥의 측근이 조심스레 물었다. “유진우 이 사람 마치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사람 같아. 이혼 전에는 조용하던 사람이 이혼하고 나니까 무슨 신의 계시라도 받은 사람마냥 승승장구를 하잖아. 강대한 무도 마스터까지 된 사람이
“유장혁이요?”이 말을 듣자 측근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말이 안 됩니다. 그분은 이미 사망하지 않으셨습니까?”“유장혁은 실종한 것이지 사망한 것이 아니야. 적어도 시신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잖아.”문관옥은 엄숙하게 말했다.십 년 전의 그 사건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고 또 급하게 마무리되었다.그날 밤 이후로 만인의 주목을 받던 유장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고 관변에서는 유장혁의 시신으로 의심되는 변사체만 찾았을 뿐이었다.그러나 이 변사체는 이미 심하게 타버려 신분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관변의 공지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똑똑한 사람들은 이 사건을 깊이 파고들면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유장혁의 행방이 줄곧 묘연해지자,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문관옥은 유진우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기에 유장혁을 떠올린 것이었다.젊은 유망주, 강대한 실력 그리고 유장혁과 같은 유씨.여러 요소가 매칭되다 보니 문관옥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유장혁이 정말 살아있다면 서경왕부에 돌아갔을 텐데 왜 그쪽에는 아무런 얘기가 없을까요?”측근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서경왕부의 공로는 관변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았기에 관변에서는 늘 사람을 붙여 그곳을 비밀리에 감시했다. 만약 서경왕부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다면 즉시 연경에 보고했을 것이었다.그러나 지금 어디에도 관련 소식이 없었다.“서경왕부는 너무 눈에 띄는 존재야. 아마 유장혁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이름을 숨기고 지내는 것일지도 몰라.”문관옥은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그는 비록 신의 아들, 최강 군신으로 불리지만 평생 넘지 못하는 산이 있었는데 바로 천재 유장혁이었다.십 년 전, 유장혁이 연경에서 명성이 자자할 때 문관옥은 그를 찾아가 힘을 겨룬 적이 있었지만 참패를 당했다.이는 문관옥에게 큰 타격을 입혔고 그에게 가시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았다.문관옥은 유장혁과 다시 한번 대
“군신님을 도와 문한성 도련님을 살해한 범인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경호원이 말했다.“오? 그래?”문관옥은 눈썹을 추켜올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들여보내라.”“네!”경호원은 대답하고 나서 재빨리 퇴장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안세리와 봉연주를 데리고 들어왔다.안세리는 볼이 조금 빨갛게 부어오른 것 외에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그러나 봉연주의 상태는 처참했다. 안색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었으며 휠체어에 앉아 행동이 불편했고 가끔 기침도 몇 번 했는데 몹시 허약해 보였다.“옥면 군신님께 인사 올립니다.”문관옥을 보자마자 안세리는 바로 공손하게 바닥에 꿇어앉아 절했다.봉연주도 휠체어에서 내려오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문관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됐다. 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까 일어나거라.”“감사합니다, 군신님.”안세리는 눈을 내리깐 채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얌전히 서 있었다.반대로 봉연주는 힐끔힐끔 문관옥을 훔쳐보았다.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역시나 연경 4대 훈남 중의 한 명으로 불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문관옥은 외모가 출중하고 똑 부러지게 잘생겼다.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잘생겼다.게다가 잘생긴 것도 모자라 높은 지위에 있고 손에 권력도 쥐고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였다.만약 이런 남자에게 시집간다면 그녀는 자다가도 일어나 웃을 것 같았다.“말해 봐.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지?”문관옥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군신님, 저희는 유진우가 오늘 옥면 산장에 들이닥쳐 문한성 도련님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리하여 군신님을 도와 화근을 제거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안세리는 대놓고 말했다.그녀는 문관옥과 같은 큰 인물 앞에서 거짓 치레하는 건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나오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자네들의 호의는 잘 알겠네. 근데 무슨 수로 날 도와
하룻밤이 퍼뜩 지나갔다.이튿날 오전.유진우는 안세리의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여보세요. 진우야, 우리가 너랑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잠깐 만나줄 수 있어?”안세리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난 우리 사이에 더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해. 모든 것은 너희가 자처한 일이야.”유진우가 냉랭하게 말했다.“진우야, 내가 잘못했어. 나도 그때의 선택을 몹시 후회하고 있어. 사죄할 수 있도록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안세리는 불쌍한 말투로 말했다.“너에게 기회를 주면, 은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은도가 너희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어. 너희는 왜 은도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는데?”유진우는 무표정으로 말했다.“그건 오해야. 은도의 죽음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야. 난 애초에 모르는 일이었어. 맹세해.”안세리는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너의 말을 믿을 것 같아? 너희도 문한성과 한통속이었잖아.”유진우는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안세리는 심보가 고약하고 이기적이며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궁지에 몰린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었다.“진우야, 네가 날 의심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 정말 억울해. 나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이미 진정한 범인을 알아냈어. 사실 문한성 외에 은도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안세리는 신비스럽게 말했다.“그래? 누군데?”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다.“누군지 알고 싶다면 오늘 밤 취향루로 찾아와줘. 우리 얼굴 보고 얘기하면서 오해를 풀자. 올 때까지 기다릴게.”안세리는 말을 마치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유진우는 핸드폰을 들고 눈썹을 찌푸렸다.그는 은도의 죽음을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 만약 범인이 따로 있었다면 그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지금의 문제는 안세리가 거짓말을 했나 안 했나에 있다.상대방이 과연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를 모함하려고 일부러 세운 작전일 것인가?유진우는 크게
한동안 접하면서 그녀는 유진우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다른 건 몰라도 친구를 대하는 데는 흠 잡을 곳이 전혀 없었다.“저기를 보세요! 왔어요!”이때 봉연주는 무엇을 보기라도 한 듯 갑자기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세리는 봉연주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눈길을 돌리자 흰 옷차림의 유진우가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놀랍게도 상대방은 아무도 데려오지 않고 홀로 약속 장소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이는 그녀들이 작전을 시행하는 데 더욱 유리했다.“진우야, 왔어? 얼른 앉아.”유진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안세리는 얼른 일어서서 웃는 얼굴로 마중했다.그녀의 태도는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열정적이었다.유진우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냉담하게 말했다.“이렇게 나왔으니 할 말 있으면 바로 해.”“서두르지 않아도 돼. 먼저 따뜻한 차 한 모금 마시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자.”안세리는 웃는 얼굴로 비위를 맞추며 말하는 동안 유진우에게 손수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유진우는 아무 반응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내가 약 탔을까 봐 걱정하는 거 아니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먼저 마실게.”안세리는 눈치 빠르게 자기한테 차를 따르고 들이마셨다.“나도 마실게.”봉연주도 뒤질세라 똑같이 차를 마셨다.그녀들은 당연히 약을 타는 비열한 수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게다가 유진우 같은 고수는 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어때? 문제없는 거 맞지?”안세리는 웃으며 말했다.“진우야, 난 우리가 늘 합이 좋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와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맞아. 친구를 많이 두면 언제든 도움받을 일이 있을 거야.”봉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친구까지는 필요 없어. 내가 어찌 너희 두 사람을 넘보겠어.”유진우는 냉담하게 말했다.“진우야,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우리가 잘못했어.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줘.”안세리는 일부러 연약한 체하며 간청했다.“나랑 조건을 따
삼 분 후, 모든 호룡각의 킬러들은 이미 피를 뿌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온몸이 피로 물든 유진우는 흔들리며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내면의 강력한 진기 역시 모두 사라지면서 그는 이제 거의 죽음에 가까웠다. 눈앞의 풍경은 점점 흐릿해지고 심장박동은 거의 멈춰 있었다. “이렇게 많은 위험을 겪고도 결국엔 내가 내 사람의 손에 죽다니, 정말 웃기네.” 유진우는 차가운 웃음을 짓고 가슴에 박힌 칼을 내려다보며 두 손으로 칼을 움켜잡고 힘껏 뽑았다. 순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을 때 칼이 몸에 꽂혀 있는 건 보기 싫었다. 칼을 빼자 유진우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결국 ‘쿵!’하고 땅에 쓰러졌다. 이내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유진우가 쓰러질 때 그의 몸에 항상 지니고 있던 부적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금빛으로 변하며 유진우의 이마에 흡수되더니 사라졌다. 영혼 부적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안의 강력한 에너지가 유진우의 사지와 백골을 휘감으며 퍼졌다. 이전에 사철수가 뿌린 이상한 독은 이 에너지에 접촉하자마자 급속히 분해되었고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유진우의 내부 상처와 방금 뚫린 치명적인 칼자국도 이 에너지를 받고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 에너지 안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흘러 원래 생명을 잃었던 유진우를 천천히 죽음의 문턱에서부터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시각, 수십 리 떨어진 어느 비밀 저택에서 명상 중이던 이청성은 갑자기 몸이 움찔하더니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녀의 완벽한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호신 부적이 손상된 건가?” 이청성은 이마를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수를 놓으며 계산을 했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얼굴이 크게 변했다. “큰일 났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이청성은 곧바로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한 줄기의 빛으로 바뀌더니 황급히 어딘가로 향했다. 이 시각, 호룡각의 비밀 기지 안에서는 가면을 쓴 한 남자가 금색 의
이제 유진우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죽는 것뿐이었다. “응?” 유진우의 빠른 철권을 맞닥뜨린 사철수는 눈이 커지며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철수의 두 팔이 그대로 부러졌고 그의 몸은 마치 자루처럼 10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졌고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배신자!” 유진우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터뜨리며 계속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사철수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두 손으로 인을 그렸고 발을 힘껏 구르자 갑자기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한 무더기의 옷만 남았다. 이건 분명히 기문둔술이었다. “와!” 사철수가 도망친 뒤 유진우는 거칠게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며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했다. 전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몸은 독에 중독되었으며 가슴을 관통한 그 칼이 여전히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제 유진우는 죽음 직전까지 다가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전하!” 손도운은 절망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중상을 입은 상태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우 형님!” 왕현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설 수 없었다. 세 사람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게다가 호룡각의 킬러들이 여전히 주변에 많았다. “왕현 씨! 손도운을 데리고 먼저 가요!” 유진우는 부서진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칼이 몸에서 뽑지 않는 한 대략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진우 형님! 그럼 형님은요?” 왕현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세 사람 중 유진우의 부상이 가장 심각했다. “걱정하지 마요. 저는 수련이 깊으니 죽지 않아요.” 유진우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만 떠들고 손도운 데리고 가요!” 왕현은 계속 말하려 했지만 유진우의 호통에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손도운을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호룡각의 킬러들은 두 사람을 쫓지 않고 오히려 유진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다른 두 명
유진우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자신을 습격한 사철수를 보며 순간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의심해 왔다. 왕현, 유공권 등도 그중 하나였지만 유독 사철수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철수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래서 그는 사철수에 대해 항상 죄책감을 느껴왔고 그랬기에 아까 전심을 다해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독에 걸리고 상처를 입어도 사철수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왕부의 결사대원이었고 마치 가족처럼 여기던 사철수가 뒤에서 칼을 꽂을 줄은... ‘도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유진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장혁아, 미안하다. 이렇게 해야만 했어.” 사철수의 얼굴은 복잡해 보였고 그 눈빛에는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지. 그때의 진실을 조사하지 말라고. 그런 건 죽음을 부를 위험이 크다고. 그런데 왜? 왜 너는 그걸 듣지 않았니? 너는 잘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 죽으려 드는 거야?” “당신... 도대체 누구야?” 유진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사철수는 서경 중군 부장이지만 그전에 내 진짜 신분은 호룡각의 밀사였다.” 사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룡각의 밀사?” 유진우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철수가 호룡각에서 보낸 첩자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그를 습격한 것은 사철수가 미리 정보로 전달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때 터졌던 검은 독기 역시 사철수의 짓이라고?’ 사철수는 일부러 자신을 독에 중독시켜 유진우에게 독을 풀게 하면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공격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얽힌 계략은 그를 완벽하게 속여왔고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것들이 전부 거
두 손이 맞붙으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유진우는 몸을 한 번만 움찔했을 뿐인데 모든 힘을 가볍게 막아냈다. 반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의 한 손에 의해 수십 미터나 날아가며 땅에 떨어졌고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온몸의 경락이 반쯤 부서져버렸다. “너... 너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가슴을 움켜잡았고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진우는 분명 독에 중독되었고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단순한 한 방으로 나를 이렇게 쉽게 물리친 거지? 우리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컸던 건가?’ “내가 기습당하기 전에 내 실력을 조사하지 않았나?”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사철수 몸속의 독은 이미 모두 빠져나갔고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유진우 자신은 부상을 입고 독에 중독되었지만 깊은 수련 덕분에 당장 쓰러지지는 않았다. “넌 아무리 강해도 결국 그냥 무도 마스터에 불과하다. 우리는 충분히 널 죽일 수 있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호룡각이 파괴된 날, 그곳의 고위 인물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남은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싸웠고 사실상 더 이상 조직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잘 모르지만 서경 왕부의 음모였고 유진우가 그 모든 일의 주범이라고 알고 있었다. 오늘 그는 유진우가 서경 왕부의 밀사를 만나러 온다는 비밀 정보를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복수를 꿈꿨지만 상대가 이토록 강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흥! 만약 내가 그저 평범한 무도 마스터였다면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 거야.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건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우가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라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쳤다. 전신의 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뒤에서 기습 공격을 한 탓에 방어할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진우가 여전히 사철수를 치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긴 칼을 내리칠 때 유진우는 재빨리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몸에 방어막을 만들었다. “쾅!”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긴 칼이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강하게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진기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엄청난 반동에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칼은 튕겨져 나가고 그는 몸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자신은 전력을 다해 칼을 내리쳤고 심지어 기습 공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유진우는 죽지는 않아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밀려서 뒤로 물러섰다. ‘이 어린놈이 나보다 더 강하다고?’ “윽!” 그때, 치료 중이던 유진우가 갑자기 검은 피를 토했다. 얼굴은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방금 전 독기는 너무 강력해서 유진우의 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철수를 치료하는 데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독소를 억제할 수 없었고 그대로 오장육부에 침투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기습에 맞서려고 무리하게 방어를 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충격이 겹쳐 결국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하하하, 결국 너도 다 죽어가고 있구나!”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한 방에 바로 무너지네.’ “이번엔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떨어진 칼을 다시 움켜잡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어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전하!” 중상을 입
“난 너랑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꺼져!”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더 이상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맹렬히 공격을 시작했다. 원래 서로 비슷한 수준이던 손도운은 금세 밀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결국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전에 손도운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와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뜨거운 혈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손도운의 그 우세는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순수한 실력 차이였다. 이제 싸움은 더 이상 간단한 기술이나 혈기 싸움이 아니었다. 실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죽어라!”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격렬해졌다. 손도운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방어할 뿐 반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3분 내로 손도운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 모습을 본 유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앞에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경계심이 솟구쳤다.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발아래에서 검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유진우는 본능적으로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영혼처럼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뚫고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안개가 눈, 귀, 입, 코, 그리고 피부의 모든 모공을 통해 침투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유진우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봐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호신 진기마저 막지 못하는 이런 괴이한 안개는 대체 뭐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유진우는 곧바로 기운을 모아 독을 빼내려 했다. 비록 이 검은 안개가 매우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장혁아! 괜찮아? 아무
손도운의 검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빨랐다.게다가 그의 검술은 극히 사납고 위압적이며 전형적인 군무 스타일로 꾸밈이 없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그의 모든 움직임과 검법은 살인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깔끔하고 효과적이면서 매우 폭력적이었다.4대 호법의 진형이 신비롭기는 했지만, 손도운의 빠른 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들이 진형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손도운은 빈틈을 발견하고 빠른 검으로 돌파했다.한 차례의 교전 끝에 네 사람은 완전히 제압당해 반격할 여지가 없었다.“손 장군님이 이렇게 강한 무도 마스터인 줄 몰랐네요!” 사철수는 조금 놀랐다.“유만수의 근위병이자 밀정단까지 이끄는 자인데 당연히 평범할 리가 없죠.” 유진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손도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유만수로부터 중임을 받고 연경까지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손 장군님의 나이를 보아하니 겨우 30대에 불과한데 이런 성취를 거둘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위왕 님 곁에는 숨은 인재들이 많네요.”사철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끝났네요.”유진우가 불쑥 말했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도운의 공세가 거세졌다.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칼날의 기세는 막을 수 없었다.초반부터 기세가 꺾인 4대 호법은 순간적으로 압박을 받아 열수를 버티기도 전에 손도운의 빠른 검에 처져 입과 코로 피를 뿜으며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졌다.“흥! 감히 전하를 해치려고 해? 그전에 내가 든 검이 동의하는지 물어봐!”손도운은 살기가 가득한 아우라를 뿜으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그가 유진우를 마주했을 때 보여준 겸손함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고수를 만났네.”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손을 들어 계속 공격하려는 4대 호법을 제지했다.“이제 당신 차례야!”손도운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고 칼끝을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얼굴을 향해 겨눴다.“흥! 네가 4명을 이겼다고 해서
그들은 어둠 속을 지니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용사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소중하고 중점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전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도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하의 신분이 특수하여 모든 세력이 은밀히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밀정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손 장군님, 왕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전하, 지금 상황은...”손도운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갑자기 아래층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들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가면을 쓴 암살자 무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암살자들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선두에 선 한 사람은 붉은 옷을 입었고 그 옆에 있는 네 명은 흰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색 옷을 입었다.“당신들 누구야?”왕현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아 유진우의 앞에 막아섰다.“전하, 먼저 가세요. 제가 뒤따라가겠습니다.”손도운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천천히 뽑았다.“유장혁! 네가 우리 호룡각을 무너뜨리고 각주를 죽였으니 오늘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고작 당신들 몇 명만으로 날 죽일 수 있겠어요?”유진우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전혀 개의치 않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이 오만한 놈아, 오늘 호룡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진 쳐! 저놈을 죽여라!”“예!”옆에 있던 흰옷의 암살자 네 명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네 사람의 속도가 매우 빨랐고 움직임이 신비로웠으며 그들이 피하고 이동하는 모습은 거의 잔상만 보일 뿐이었다.가장 관건적인 것은 네 사람의 공격과 방어가 매우 잘 조율되어 있었고 진법이 완성되면서 살상력이 배가되었다.“나
“짧게는 반달, 길게는 1년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유진우의 몸은 경직되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자신이 늘 유만수의 부작위를 원망했어도 그들은 결국 같은 피가 흐르는 부자였다.유만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불안해하고 있었다.그의 곁에 남아있는 가족은 몇 명밖에 안 되는데 유만수까지 떠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 소식 확실한가요?”유진우는 침착해 보이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만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전하, 이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확실합니다. 어르신께서 제가 전하께 알려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저는 전하께서 이 사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손도운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어르신께서 항상 몸이 정정하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예요?”사철수가 물었다.“지난 10년 동안 어르신께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서경을 지키고, 오랑캐의 침략을 막고, 모든 내부 세력도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손도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유만수의 근위병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안중에 두고 있었다.예전의 서경왕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조정과 민간을 뒤흔들 정도로 위엄있고 패기가 넘쳤다.그러나 이제 영웅은 죽어가고 있으며 그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휴... 어르신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서경 전체뿐만 아니라 용국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도 함께 짊어지셨습니다. 비록 높은 공들을 세웠지만 몸이 너무 많이 상했습니다.”손도운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유만수...또 다른 말은 없었어요?” 유진우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서경은 전하의 영원한 집이니 전하께서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언제든지 돌아오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손도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