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천자와 함께 식사했다고요?”유성신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차갑게 비웃었다. “내가 말하는데, 당신 진짜 미친 거 아니예요? 당신 같은 촌놈이? 천자와 함께 식사했다고요? 당신이 감히? 우리 대선배조차도 그런 자격이 없는데 당신이 뭐라고 설치는 거예요?”허름한 옷차림의 촌놈이 천자를 안다고 자칭하다니, 정말 큰소리친다!“믿든 안 믿든 당신 맘대로 해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더는 논쟁하지 않았다.이런 사람을 깔보는 사람한테 더 말해봤자 소용이 없었다.“흥! 당신이 그저 철없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제는 허풍까지 떨다니, 진짜 우리 할아버지가 왜 당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유성신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그녀는 연경 출신으로서 외지 촌놈들 앞에서 자연스레 우월감을 느꼈다.“여기입니다, 바로 이곳!”그때 강청이 갑자기 멈추며 공중에 걸린 한 장의 선지를 가리켰다.선지는 매우 커서 금테로 된 유리 틀에 장식되어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걸려 있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그리고 이 순간, 선지에는 붓글씨로 몇 줄의 글귀가 힘차고 웅장하게 쓰여 있었다.글씨는 굵고 힘차며 필세가 기이하고 생동감 넘쳐서 명백히 서예 대가가 쓴 작품이었다.“대선배, 여기 적힌 게 혹시 시인가요?”유성신은 고개를 들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비록 서예를 잘 모르지만 이 글씨가 매우 아름답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지고 감탄을 자아냈다.“맞아, 바로 시야!”강청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너희들도 들어봤을 거야. 제왕빌딩에 관한 전설, 대략 십여 년 전, 천자가 제왕빌딩에 방문하여 술을 세 번 마신 후 기분이 좋아져 시 한 편을 읊었지. 너희가 보고 있는 이 시가 바로 천자가 지은 거야!”“세상에! 전설이 진짜였어? 여기 진짜 천자가 쓴 시가 있다니, 대단해!”“역시 제왕빌딩, 이름값을 하는구나!”구세당의 제자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신나서 웅성거렸다.이 평범한 사
“몰랐네, 이 글씨를 쓴 사람이 유장혁이라니, 어쩐지 천자를 대신해 시를 쓸 수 있었구나.”“천자의 시, 천재의 글씨, 이 제왕빌딩이 유명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역시 천재, 십대에 쓴 글씨가 벌써 서예 대가에 비견될 정도라니, 정말 일자천금이구나!"“......”공중의 시를 보며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 순간, 그들은 왜 제왕빌딩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지 깨달았다.이런 보물이 있는 곳이라면 문턱이 아무리 높아도 당연한 것이다.“듣자하니 천재는 재능뿐만 아니라 외모도 준수하고 박식하다던데 만약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야!”유성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눈에 동경의 빛을 가득 담았다.강청이 아무리 우수해도 유장혁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했다.가문 배경이든 개인 능력이든 외모든 유장혁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그는 수많은 소녀들의 꿈의 연인이었고 그녀도 여러 번 유장혁과 결혼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서재산 앞에 백로가 날고 복숭아꽃 흐르는 물에 궐어가 살지어다. 푸른 삿갓, 초록 도롱이, 부슬부슬 내리는 비 속에서 돌아갈 필요 없네.”“좋은 시, 정말 좋은 시야!”“시가 좋고 글씨는 더 좋구나, 역시 당대의 천재답다!”유공권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유명의께서 과찬이십니다, 이 글씨는 아직 다소 미숙합니다.”유진우는 고개를 들어 시를 보며 십 년 전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다.“이봐요! 당신 지금 뭐라고 헛소리하는 거예요?”이 말을 듣고 유성신은 즉시 불쾌해졌다. “당신이 뭔데 감히 천재의 글씨를 평가해요? 정말 간이 부었군요!”유장혁은 그녀의 우상이자 신성도 범접 할수 없는 존재였다.“맞아! 천재는 글 한 자가 천금인데 넌? 남의 뒤나 닦아주면 다행이지!” 전기훈이 뒤이어 외쳤다.다른 사람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기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천재의 글씨는 이미 시간의 검증을 받았다.많은 서예가들이 그의 글씨를 보기 위해 찾아왔고 본 후에는 깊이 감탄했다.이런
“오랜만에 써서 조금 서툴러요. 그냥 넘어가요.” 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그의 글씨는 서예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금세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비록 이제는 신분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번거로워질 게 뻔했다.“서툴러? 흥! 나는 당신이 못해서 그런다고 봐요!”유성신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분명 실력도 없으면서 번지르르하게 말하니 정말 역겹네!”“됐어 됐어, 다들 말 좀 아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려고.” 유공권이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유진우가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어도 천재의 글씨를 평가하는 건 과한 일이었다.“흥! 망신당하는 건 저 자식이지! 감히 천재를 깎아내리다니? 정말 우리 팬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유성신은 눈을 부릅떴다.“됐어, 글씨 한 번 보고 뭐 그렇게 싸울 일인가. 내가 위층에 자리를 예약했어. 위층엔 희귀한 보물들이 많아서 너희들 눈이 휘둥그레질 거야.”“게다가 오늘 밤 제왕빌딩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 운이 좋으면 놀라운 일을 경험할지도 몰라.”강청의 말이 사람들의 이목을 즉시 끌었다.“놀라운 일? 그게 뭐예요?”유성신은 호기심을 보였다.“내가 알기로는 매 3개월마다 제왕빌딩에서 문화의 밤 행사를 열어. 시와 노래, 그리고 기타 문화적인 것들로 경쟁하는 자리야.”“만약 누군가 이 행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제왕빌딩에서 준비한 특별한 상품을 받을 수 있어.”“그래서 이 시기마다 제왕빌딩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지. 내가 미리 예약하고 인맥을 좀 써서 오늘 자리를 잡았지, 그렇지 않으면 자리도 없었을 거야.” 강청은 신나서 말했다.많은 돈을 들여 자리를 예약한 건 이 문화의 밤 행사를 보기 위해서였다.어쨌든 제왕빌딩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들 부유하거나 권력 있는 사람들이다.지금이 바로 그런 사람들과 인맥을 쌓을 최고의 기회다.“문화의 밤? 정말 기대된다!”말을 듣고 유성신은 즉시 흥분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손녀가 비록 재능이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우승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결국, 연경은 앨리트들이 모여 있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는 곳이다.“할아버지, 저는 학교에서 유명한 재녀에요. 제 지위는 흔들리지 않아요. 이 문화의 밤에서조차 우승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는 게 낫겠어요.” 유성신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이 계집애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니?” 유공권은 살짝 찡그렸다.“사부님, 후배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이 분야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저는 후배를 믿습니다.” 강청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들었죠? 선배도 이렇게 말하는데 오늘의 우승은 제가 꼭 차지할 거예요!” 유성신은 더욱 자만해졌다.유공권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이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는 언젠가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다.“시간이 다 되었으니 우리 올라갑시다.”강청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2층으로 올라갔다.1층의 화려함과는 달리 2층은 더욱 고풍스럽고 정교했다.각 장식물과 장소마다 세심하게 배치되어 흠잡을 데가 없었다.이때, 제왕빌딩 2층에는 이미 많은 고관귀족들이 모여 있었다.이들 옆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연경의 재자들이 한두 명씩 동행하고 있었다.3개월마다 열리는 제왕빌딩의 문화의 밤 행사는 항상 많은 단골손님들을 끌어모았다.이것 또한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었다.강청의 인도로 사람들은 예약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제왕빌딩의 면적은 매우 넓었고 비록 오늘밤 손님이 많았지만 전혀 붐비지 않았다.“어머! 이거 우리 대재녀 유성신 아니야?”그때, 옆에서 조롱하는 듯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섹시하게 차려입은 화려한 여자가 요염하게 걸어오고 있었다.그녀의 옆에는 허여멀쑥한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남자는 긴 옷을 입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며 서적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은도? 네가 여기에 왜 있어?”유성신은 여자를 보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얼굴은 금세 수
“은 아가씨, 좀 지나친 것 같네요.”이때, 강청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성신은 그래도 제 후배인데 나를 봐서라도 그런 말은 좀 적절하지 않네요.”“유 도련님도 여기에 있었군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은도는 놀란 척하며 곧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유성신이 제왕빌딩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도 유 도련님이 있어서였군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유 도련님은 명문 가문의 도련님인데 어째서 이런 평범한 아이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죠?”“뭐? 누구보고 평범하다고 하는 거야?!”이 말을 듣자마자 유성신은 즉시 화가 나서 손을 들었지만 옆의 사람들이 급히 그녀를 붙잡았다.은씨 가문의 세력은 유씨 가문과 맞먹거나 그보다 강할 수 있었다.여기서 은씨 가문 아가씨를 때리기라도 한다면 강청조차 그녀를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대꾸하는 사람이 누구냐. 뭐 문제라도 있나?”은도는 입꼬리를 올리며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그녀는 유성신이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너...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유성신은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욕을 하고 싶었지만 강청이 손을 들어서 막았다.“은 아가씨, 관용을 베푸는 게 좋겠어요. 우리는 오늘 식사를 하러 왔지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게 아니에요.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좋아요. 유 도련님의 면목을 봐서 오늘은 넘어가 줄게요.”은도는 유성신을 힐끗 보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 있다가 제왕빌딩에서 문화의 밤을 연다고 하던데 너는 스스로 박식하다고 자부하니 이기지 못해도 너무 부끄러워하지는 않길 바라.”“흥! 내가 질 거라고? 웃기지 마!”유성신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시와 노래에서라면 너 같은 사람 열 명이 모여도 내 상대가 안 돼!”“오? 그래? 그렇게 자신 있다면 우리 한번 겨뤄볼까?” 은도는 비웃으며 말했다.“겨루자! 내가 너를 무서워할 것 같아?” 유성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가문과 돈에서는 그녀가 부족할지 몰라도 재능에서는
구세당의 수입은 사실 매우 적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는 치료비를 받지 않거나 약재비만 조금 받는다. 명성은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고생이다. 1억 원이라면 구세당이 평생 벌어도 모을 수 없는 돈이다. 차라리 한 번 걸어보는 것이 낫다. 작은 것을 걸고 큰 것을 얻는 것이다!“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나는 절대 구세당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 유공권은 여전히 단호했다.“할아버지! 왜 저를 믿지 않으세요?”유성신은 다소 초조해졌다. “전에 불량배들이 말썽 부릴 때 할아버지도 구세당을 걸지 않았나요? 게다가 그것도 유진우에게 맡겼잖아요! 왜 그때는 외부인을 믿으셨고 저는 못 믿으시는 거예요? 왜요?!”마지막 말은 거의 외치듯이 말했다.“아이야,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네가 멋대로 행동하는 거야. 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해.” 유공권은 눈살을 찌푸리며 설명했다.“난 몰라요, 난 몰라요!”유성신은 완전히 듣지 않고 감정이 격해졌다. “왜 유진우는 구세당을 걸 만한 가치가 있고 나는 안 되는 거예요? 오늘 할아버지가 나를 믿지 않으면 우리 관계를 끊을 거예요!”“너...”유공권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마음속으로는 화가 나고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아이는 어쩌면 이렇게 고집이 센 걸까?단순히 자존심을 위해 전 재산을 걸 만큼 가치가 있을까?“사부님, 후배가 다소 충동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이때, 강청이 도왔다. “은도는 제가 잘 아는 사람인데 그녀는 시와 문학에 전혀 소양이 없어요. 후배와는 비교할 수도 없죠. 저는 후배를 믿습니다. 그녀는 분명 이길 수 있어요!”“맞아요, 후배는 재능이 많아요. 특히 시와 문학에 있어서는 독보적이죠. 저 부잣집 딸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어요!” 전기훈도 함께 거들었다.“사부님! 부자가 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겨서 1억 원을 얻는다면 더 많은 환자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고 이는 큰 선행이에요!” 제자들도 같이 설
“손님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문화의 밤 행사가 시작되자, 통통한 중년 남자가 웃으며 무대에 올라왔다. 그는 무대 아래의 손님들을 향해 각각 고개 숙여 인사하며 예의를 갖추었고, 조금의 소홀함도 보이지 않았다.“저는 제왕빌딩 매니저, 진동명입니다. 제왕빌딩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진동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드디어 석 달에 한 번 있는 문화의 밤 행사가 돌아왔습니다. 저희 사장님이 진보대에서 아주 좋은 보물을 하나 준비해 주셨습니다. 오늘 밤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 행사의 목적은 문학을 통해 친구를 사귀는 것이지, 승부를 가리는 것이 아닐 테니, 마음껏 즐기다 가시길 바랍니다.”“진 매니저님, 사장님이 준비한 보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시죠.”한 남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맞아요! 우리는 이걸 보려고 여기 온 거니까, 실망하게 하지 마세요!”여러 사람이 함께 소리쳤다.“여러분, 잠시만요. 지금 바로 보물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진동명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금세 알아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쭉한 나무 상자를 들고 나왔다.나무 상자는 너비가 0.5 미터, 길이가 1.5미터 정도 돼 보였다. 그리고 나무상자 전체가 금사나무로 만들어져서 상자만 해도 값비싸 보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안에 있는 보물이 얼마나 더 귀할지 기대가 되었다.“딸깍!”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진동명이 천천히 나무 상자를 열었다.나무상자 안에는 정교하게 장식된 그림 한 점이 들어 있었다. 그림 속에는 궁궐 의상을 입은 여인이 정자에 앉아 바깥의 눈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그림 속 여인의 몸매는 늘씬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얼굴의 반만 보였지만 그 아름다움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였다. 특히 그녀의 눈은 생동감 있고 매혹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절세미인의 우아한 자태와 순백의 설경이 어우러져,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작품의 출처를 알게 되자, 현장은 순간 술렁였다.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품격 있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도현 대가와 같은 전설적인 인물은 특히나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시와 그림은 완전히 다른 분야인 만큼, 그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익히기 힘들었기에 두 가지를 모두 통달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그 때문에 도현 대가처럼 시와 그림 두 분야에서 모두 정점에 오른 존재는 더더욱 전무후무했다.게다가 도현 대가는 돈에 대해 탐욕이 없으며, 쉽게 작품을 만들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도현 대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면 언제나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은 물론 보물로 여겨졌다.심지어 많은 고위 관리와 재벌들은 도현 대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도현 대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흥분했다.“모두 아시다시피, 도현 대가의 진품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만약 우리 사장님이 도현 대가와 깊은 인연이 없었다면, 이 미인도를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진동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역시 도현 대가의 작품답습니다. 이 미인도는 마치 천상의 여인이 내려온 것처럼 생생하고 아름답습니다!”“도현 대가의 진품을 볼 수 있다니, 정말 행운입니다!”“잠깐만요... 도현 대가의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이라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 그림 속 미인은 실존 인물인가요?”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문제의 핵심을 깨달았다.“이 손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림 속 미인은 허구가 아닌 실존 인물입니다.”진동명이 잠시 멈추었다가, 모든 사람의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한 후에야 큰 소리로 말했다.“여러분께 숨기지 않겠습니다. 이 미인도의 모델은 바로 용국 제일 미인, 연지 랭킹 1위인 이청성입니다!”“뭐라고? 이청성이라고?”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현장은 순식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사람들은 모두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이청성이라는 이름은 최근 몇 년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천우의 말은 강력한 힘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만약 서경이 무너진다면 8대 제후, 각 지역의 고위급 관료, 수천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다들 서경에 뿌리 박고 사는 사람들이라 애국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천우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난 소심하고 겁도 많아서 항상 앞뒤를 생각하거든. 만약 반란을 진압하다가 군대를 다 잃으면 어떡해?”주한휘는 여전히 망설였다.“제후님, 혹시 손해를 보게 된다면 서경왕부에서 두 배로 갚아드리겠습니다.”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주한휘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건 실질적인 이득을 원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어쨌거나 전 재산을 걸어야 하는 작전이기에 혹시라도 실패하면 큰 손실은 면할 수 없으니까.그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천우야, 내가 널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은 말로만 해선 안 돼.”주한휘가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원하는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얘기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최대한 다 들어드리겠습니다.”유천우가 큰소리치며 장담했다. 이 정도면 성의를 충분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했다.“알았어. 천우 네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마음이 놓이네.”주한휘가 웃으면서 말했다.“사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나 보물이 아니야.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게 내 딸인데 올해 25살이 됐는데도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어. 만약 천우 너 같은 남자한테 시집간다면 참 좋을 텐데.”“저요?”유천우는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래.”주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딸 해린이 절세미녀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얼굴도 나름 예쁘고 재능도 뛰어나. 만약 해린이를 아내로 들인다면 내조도 엄청 잘하는 현모양처가 될 거야.”현재 그에게는 돈과 인맥 모두 충분했다. 유일하게 부족한 게 바로 하늘보다 높은 권력이었다.서경왕이 죽은 지금 유천우가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만약 딸이 유천우와 결혼한다면 나중에 서경의 왕비가 될 것이고 주한휘의 신
유천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먼저 예의를 갖춰서 설득하다가 안 되면 무력을 사용하여 제압하는 것이었다.만약 반란을 일으킨 4대 제후가 서경왕부에 굴복한다면 서경왕부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권력도 그대로 유지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진압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때가 되면 서경왕부는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나머지 4대 제후와 서경의 많은 세력과 손을 잡고 반역자들을 몰살할 것이다.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유천우의 말을 들은 장범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오늘날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 덕이야. 반란을 진압하는 건 물론이고 목숨까지 바치라고 해도 기꺼이 바칠 수 있어.”“감사합니다. 제후님의 도움이 있다면 이번 어려움을 꼭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유천우가 말했다.“이건 내 제후령이야. 제후령만 있으면 가진의 병사를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어.”장범규는 갑자기 병부를 꺼내 유천우에게 건넸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로 보여주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이건...”되레 유천우가 망설였다. 장범규가 이토록 통쾌하게 병부를 내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행동은 그의 충성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사양하지 마. 비상시국이잖아. 이 제후령이 있으면 움직이기 훨씬 편할 거야.”장범규는 병부를 유천우의 손에 쥐여주었다.“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제후님!”유천우는 두 손을 맞잡고 인사를 올리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됐어.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시간도 없는데 얼른 가봐.”장범규가 손을 흔들었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천우는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 다음 일행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오늘 밤 첫 번째 목적지는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30분도 채 안 되어 평양 제후 장범규의 지지를 얻었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제후령마저 받았다.만약 이 속도대로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
가진은 서경의 변방 도시이자 평양 제후 장범규의 영역이었다.무장 출신인 장범규는 서경왕 유만수와 함께 수년간 전장을 누볐고 세운 공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나중에 평양 제후가 된 후 서경의 변방을 지켰다.수년 동안 장범규는 성실하게 직무에 임해왔다.그때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갑자기 평양 제후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유천우 등 몇 명이 나란히 내렸다.“형, 여기가 바로 평양 제후 장범규네 저택이에요.”유천우가 간단하게 소개했다.“장범규는 그래도 충성스럽고 용맹한 사람이에요. 가진을 수년 동안 관리하면서 직무와 책임을 다했거든요.”“밖에 누구야?”저택 입구를 지키던 호위병 두 명이 수상한 움직임을 알아채고 큰소리로 호통쳤다.유천우는 그들에게 다가가 신분패를 보여주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서경왕의 둘째 아들 유천우다.”“도련님?”두 호위병은 유천우의 신분패를 보자마자 겁에 질린 나머지 바로 무릎을 꿇었다.“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까 일어나.”유천우가 신분패를 거두어들였다.“지금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평양 제후님을 뵈러 왔어. 들어가서 보고 좀 올려줄래?”“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당장 가서 제후님께 말씀드릴게요.”그중 한 호위병이 대답하고는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화려한 옷차림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중년 남자가 부하들과 함께 부랴부랴 나왔다. 그 사람이 바로 평양 제후 장범규였다.“안녕하세요, 제후님.”유천우가 먼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서경왕의 둘째 아들이긴 해도 눈앞의 장범규는 제후이기에 신분이 그보다 훨씬 높았다.장범규가 직접 마중을 나온 것만 해도 충분히 체면을 세워준 일이었다.“천우야,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왔어?”장범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제후님, 서경왕부에 변고가 생겨서 제후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변고가 생겼다고? 무슨 일인데?”장범규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유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자,
“네 말은 누군가 4대 제후가 동시에 반란을 일으키게 조종하고 있단 말이야?”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맞아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지금 서경에서 4대 제후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죠.”“유태범!”이의진은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말했다.“작은아버지는 야심이 크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4대 제후의 손을 빌려서 우리가 병부를 내놓게 압박하고 있는 거예요.”유천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분석했다.“만약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4대 제후는 반란을 일으켜 우리가 군대를 동원하게 압박한 다음 유태범이 중간에서 방해하면서 우리한테 불리하게 할 겁니다. 우리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하면 서경왕부의 위엄이 크게 손상될 거예요. 그러다가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해질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백성들을 구하고 4대 제후를 제압할 계획인 거죠. 그때가 되면 유태범은 만인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왕이 될 겁니다.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유태범이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새로운 서경왕이 되겠죠. 아주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네요.”유천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유태범이 꾸민 건 음모가 아니라 공공연한 모의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게 바로 공공연한 모의의 무서운 점이다.“그렇다면 유태범이 진작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네.”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지금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거야.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고 설득도 불가능하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해?”“나머지 4대 제후와 아버지의 옛 부하들과 손을 잡아야만 유태범과 겨룰 수 있을 겁니다.”유천우가 대답했다.“일리 있어.”이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나머지 4대 제후를 모셔오도록 할게. 같이 모여서 상의하는 게 좋겠어.”“어머니, 제가 직접 갈게요. 그래야 성의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죠.”유천우가 직접 나섰다. 나머지 4대 제후
“형, 난 진짜 안 돼요.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은 형밖에 없어요.”유천우의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드러났다.“됐어. 왕위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안팎으로 불안이 끊이지 않아. 일단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야.”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형이 나서서 이끌어준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난 지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어.”그러자 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유태범 일당이 아직 내가 서경으로 돌아온 걸 모르고 있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어. 내가 돌아온 걸 몰라야 유태범이 무슨 꿍꿍이라도 꾸민다면 제때 해결할 수 있지. 그리고 호룡각의 잔당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어. 기회를 봐서 싹 다 일망타진할 거야.”“그런 거였군요.”유천우는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알겠어요. 그럼 서경왕부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일은 나한테 맡기고 형은 보이지 않는 음모들을 해결해주세요.”“그래. 그렇게 하자.”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참. 그리고 이거.”유천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금색 영패 하나를 꺼내 유진우에게 건넸다.“이건 내 군령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내 결사대원 800명을 동원할 수 있고 필요한 순간에 꽤 도움이 될 겁니다.”그의 결사대원 800명은 모두 엄선해서 뽑은 고수들이었다.유천우가 태어난 순간부터 이의진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몰래 그들을 훈련시키면서 힘을 비축했다.20년이 지난 지금 결사대원 800명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알았어. 영패는 일단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줄게.”유진우도 거절하진 않았다.지금 이청성의 도움을 받고 있긴 했지만 호룡각의 잔당들에 비하면 아직 역부족이었다. 이젠 유천우의 결사대원 800명이 더해졌으니 싸울 힘이 생겼다.“천우야!”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조금 전 나갔던 이의진이 다시 다급하게 빈소로 들어왔다. 유진우는 재빨리 가면을 쓰고 근위병인 척 옆에 섰다.유천우와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건 형제끼리의 믿음 때문이
“형?”유천우는 인피 가면을 벗은 남자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이내 기쁨에 겨워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서경왕부에 위장 잠입한 유장혁이었다.“많이 컸구나, 천우야. 이젠 혼자서도 일을 척척 해내고.”유진우는 배다른 동생 유천우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사실 조금 전 유천우와 이의진의 얘기를 전부 다 들었다. 유천우가 자신을 믿어준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웠다. 물론 이의진이 걱정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지금까지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형제끼리 물고 뜯고 부자끼리 서로 죽이는 걸 수두룩하게 봐왔다. 자기 아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형, 서경에는 언제 왔어요?”유천우가 물었다.“이틀 정도 됐어.”유진우가 대답했다.“아버지 돌아가신 거 알았어요?”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유진우는 빈소의 영정사진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부자는 1년 전 강능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다시 만났을 때 유진우는 빈소에 서 있었고 유만수는 관 속에 누워있었다.‘이건 뭐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유진우는 관 앞으로 걸어가 반쯤 열린 관뚜껑 사이로 그 안에 누워있는 유만수를 보았다. 얼굴이 평온한 걸 보니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았다.하지만 어찌 된 건지 그렇게 미워했던 유만수의 얼굴을 본 순간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내가 만약 서경에 빨리 돌아왔더라면, 빨리 만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왜?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유진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형, 사실 최근 2년 사이 아버지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특효약으로 연명하셨어요. 의사는 아버지가 천인오쇠라고 하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어요. 천천히 쇠약해져서 죽는 것보다 이 결과가 아버지한테는 오히려 해방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유천우가 울먹거리며 말했다.“범인은 잡았어?”유진우가 돌아서서 물었다.“홍복홍이 지금 조사하고 있어요.”유천우가 대답했다.“서경왕부에 숨은 스파
그래야만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지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표기 대장군 유태범밖에 없었다.첫째로 유태범은 유씨 가문 사람이라 왕족에 속했기에 명분이 정당했다. 둘째로 표기 대장군으로서 서경의 절반에 달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 셋째로 유태범은 오랜 시간 동안 힘을 키워왔다. 인맥, 위신, 공로 모두 왕위에 오르기에 충분했다.현재 유태범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적지 않은 관원들은 애도를 표한 후 바로 대장군 저택으로 가서 유태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서경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의진은 그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어머니, 벌써 종일 여기 계셨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몸이 상하실까 걱정됩니다.”수심과 피곤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유천우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이의진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서경왕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왕비인 어머니가 버티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져선 안 돼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이의진은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유천우가 가로챘다.“어머니,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버지 곁을 지켜도 괜찮아요.”이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천우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잘 보살펴드려.”“알겠습니다.”두 도우미는 대답한 후 이의진을 부축했다. 무릎을 하도 오랜 시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천우야, 너도 몸 잘 챙겨. 절대 방심해선 안 돼.”이의진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후에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다들 돌아가. 여긴 나 혼자 지키면
그 시각 서경왕부 문 앞.유태범 등 3인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이끌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서경왕부를 떠난 후 조군영이 참다못해 물었다.“대장군님, 이의진 모자가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날뛰는데 계속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합니까?”“당연히 내버려 둘 순 없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도 안 돼. 흑용군의 대부분 고급 장교들이 서경왕부에 충성해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어.”유태범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조군영이 또 물었다.“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면 몰래 압력을 가해야지.”유태범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경에 내란이 일어서 서경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간질시킬게요. 백성들의 원한이 커져서 서경왕부도 감당이 안 될 때 대장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경의 백성들은 대장군님께 고마워할 것이고 새로운 서경왕으로 모시겠죠.”눈치가 참 빠른 조군영이었다.“맞아. 아주 영특하구나, 너. 나중에 내가 서경왕 자리에 앉으면 표기 대장군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유태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장군님.”조군영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얼른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절대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해.”유태범이 신신당부했다.“알겠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조군영은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대장군님, 일반적인 내란이라면 서경왕부의 뿌리를 흔드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반드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고원이 귀띔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유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난 내 사람을 몰래 키워왔어. 8대 제후 중에 절반이 내 사람이야. 내 명령 한마디면 주저하지 않고 날 도와줄 거야.”“진작 준비하고 계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고원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왕이 되면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
“유태범은 오랫동안 야심을 숨겨왔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무조건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이 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맞아. 대놓고 움직이진 못해도 뒤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이의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유천우가 한탄하듯 말했다.“천우야, 네 능력도 네 형 못지않아. 네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이의진이 그를 격려했다.“어머니,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이의진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 폐하께 말씀드려서 너한테 왕위를 물려주게 할 거야. 앞으로 서경왕은 너고 그 중책을 맡아야 해.”“어머니, 왕위는 형 거예요. 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경왕은 형만이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천우야, 다른 일은 남한테 양보해도 이건 절대 안 돼!”이의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호통쳤다.“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에 그리는 자리인지 알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권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처럼 매일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왕이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걱정거리만 태산일 텐데. 그럴 바엔 맨날 먹고 놀면서 편히 살겠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이 녀석아, 일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가 있어서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 권력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