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핸드폰 스크린을 보더니, 이진은 얼른 핸드폰을 들고 옆으로 걸어가 수신 버튼을 누르고는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이건 씨? 무슨 일 있어요?”전화 너머의 사람은 잠시 망설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저도요, 금방 돌아갈 테니 집에서 밥 잘 먹고 일찍 자야 돼요!”“응.”두 사람 모두 표현이 서툴렀기에 몇 마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이진이 핸드폰을 거두고 고개를 들자, 정희가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이건 씨인가 보네? 아이고, 정말 한시도 너와 떨어지기 싫으신 가 보네. 정말 부러워 죽겠어!”정희는 부러워하는 말투로 말했지만, 히죽거리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나저나 네가 떠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벌써 보고 싶다고 하는 거야? 보고 싶다는 이유로 연락을 하시다니!”정희는 말하면서 손으로 눈을 가리더니 계속 고개를 저었다.“정말 못 봐주겠네!”이진은 정희의 이런 모습을 보자 웃음을 터뜨렸고, 곧 곁눈질로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왜? 부부끼리 그런 말도 못 해?”“쳇, 재미없어!”한편 진 감독은 연습생들을 열심히 훈련시키고 있는 문혁을 찾으러 갔다.“밥은 제대로 먹은 거야? 이 다리와 허리를 곧게 펴라고 말했잖아!”진 감독이 들어섰을 때, 문혁은 마침 한 남자 연습생을 엄하게 훈계하고 있었다.그 남자 연습생은 고개를 숙인 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다행히 진 감독이 제때에 나타나 그 연습생을 구한 셈이다.“사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나와주실래요?”문혁은 그 남자 연습생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연습실을 나서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진 감독을 보았다.“무슨 일이죠?”문혁의 이런 태도에 진 감독은 어이가 없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는 그의 비위를 맞춰가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이 선생님과 트러블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이진을 언급하자 문혁의 안색은 더욱 보기 흉해졌다.“저한테
녹화실에 앉아 있던 진 감독은 이 장면을 보자 어이가 없어 이마를 짚었다.‘역시 저 새끼는 내 말을 귀 등으로 들었네. 그분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진 감독은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나서서 막지 않았다.하나는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그도 문혁이 엄청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진은 고개를 돌려 무례하게 자신을 가리키는 문혁을 조용히 쳐다보았다.모두들 이진이 화를 내며 대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제작진분들이 절 이 자리에 앉히신 건, 적어도 저한테 의견을 발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겠죠.”“참나, 무슨 수단을 통해 들어온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문혁은 이진이 화를 내지 않자 그녀를 더욱 얕보고는 말을 이어갔다.“당신 같은 사람이 무대를 볼 줄 알기나 해? 네까짓 게 뭔데 내가 준비한 무대에 함부로 평가를 해?”이 말을 듣자 이진의 눈빛이 조금씩 차가워졌다.이진이 노래를 배우고 있을 때 문혁은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방송 중이라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뻔뻔한 인간일 줄이야.’“일단 당신 팀의 선보인 곡은 전체적으로 너무 평범해요. 게다가 선택하신 주제와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어요.”이진을 책상 위의 대본을 들고 말했다.“심지어 가사는 엉망진창이네요. 점수를 드릴만 한 점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높은 점수를 드리죠?”이진은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를 보였다.“당신!”문혁은 이진이 감히 이렇게 말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히 좋은 공연 효과를 얻기 위해 그는 주목받을 단어들만 가득 써넣었던 것이다.문혁은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진이 말했다.“당신이 꽤나 괜찮은 가수인 줄 알았는데, 이번 상황은 왠지.”이진은 잠시 멈추고는 말을 이어갔다.“이 곡은 당신이 만든 게 아닌 거죠? 설마 자기가 맡은 팀이라고 부정행위를 하신 건 아니죠?”이진의 얼굴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번
이때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가 전국에서 가장 큰 빌딩의 꼭대기 층에 앉아 회사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비서 에밀리가 업무를 보고한 후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이건은 깊은 눈동자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말해 봐, 또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없으면, 이만 나가 봐.”이건은 꽃처럼 아름다운 비서에게도 차가운 모습을 보이기만 했다.“대표님, 최근 인터넷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요. 작은 사모님이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게스트와 불화설이 떴거든요.”이건은 만년필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계속해서 글을 써갔다.“그래, 알겠으니 이만 나가 봐.”에밀리가 나간 후, 이건은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일벌레로 상업계에 유명한 윤 대표가 뜻밖에도 아내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하던 일을 멈출 줄이야.그러나 이진의 일이라면 이건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다.전화가 곧 연결되었고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건 씨, 이 시간엔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이진은 조금 놀라며 시계를 보았는데, 지금은 출근시간이라 평소대로라면 이건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혹시 촬영장에서 누가 괴롭혔어?”이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건이 이렇게 작은 일마저 신경 써주자 감동되기도 했다.“아니요.”이진의 간단하게 얼버무리는 대답을 듣자, 이건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나한테 말해야 돼! 널 건드리는 놈들을 내가 대신 혼내 줄게!”이진은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진짜 아무 일도 없어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괴롭혀도 제가 남을 괴롭히죠!”이건은 이 말을 듣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미소를 지었다.이진이 아무리 우수하고 강해도, 이건은 평생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이다.두 사람은 한바탕 이야기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이건은 전화를 끊은 후, 핸드폰을 보며 한참 동안 미소를 지었다.오랫동안 이진을 보지 못했기에 정말 보고 싶기도 해, 이건은 즉시 일어나 자신의
문혁은 모두의 시선이 마침내 흩어지자 즉시 식사 자리에서 도망쳤다.정희는 문혁의 당황한 모습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겁쟁이, 전엔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이제야 무서운가 보네.”아직 화가 채 풀리지 않았던 정희는 문혁이 떠난 방향에 대고 주먹을 휘둘렀다.이진은 정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그런 사람 때문에 화를 낼 필요 없어. 얼른 밥부터 먹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찜닭도 시켰어.”즐겁게 떠드는 두 여자를 보자 이건은 마음이 불편했다.‘나랑 오랜만에 만난 건데,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날 쳐다보지도 않는 거야?’사실 이건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이진은 정희와 이야기를 나눈 지 2분도 채 되지 않았다.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이건은 간단하게 정희와 인사를 나눈 후, 이진의 손을 잡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스위트룸으로 향했다.이건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보다는 이진과 단둘이 있고 싶었다.룸에 들어선 이건은 왼손으로 문을 닫고, 오른손으로 이진의 허리를 껴안고는 사정없이 키스를 했다.이진은 거절하지 않았고 심지어 함께 입을 맞추었다.결국 이진은 이건을 밀어냈는데, 지금 밀어내지 않는다면 분명 저녁 식사를 놓칠 것이기 때문이다.이건은 허리를 굽힌 채 고개를 숙이고는 이진의 목덜미에 조금씩 입을 맞춰갔다.“자기야, 도대체 언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올 건데?”이진은 남자의 머리카락에 간지러움을 느꼈는데, 이렇게 자신에게 딱 달라붙는 이건을 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윤 대표님은 오늘따라 더 저한테 달라붙으시네요.”이진은 말을 하면서 이건의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건의 차가운 성격과 달리 그의 머리카락은 유난히 부드러웠다.이건은 이진이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기는커녕 자신을 비웃자, 얼른 고개를 들어 삐진 듯한 표정을 보였다.“누구처럼 집에 붙어있지 않는 것보단 낫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기나 해?”이건의 목소리는 무척 억울해 보였다.“하하하.”이진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
정희는 발레 황후의 무대극 티켓을 탐낸 지 오래되었다.이번 공연은 전 세계에서 유명한 안틸라가 출연하기로 했다.현재 S 시에서 판매되고 있는 티켓은 한 장도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뒷좌석마저 400만 원이 넘게 팔렸다.“그래요, 내일 비서를 시켜 보내 드릴 게요.”이건에게 마침 안틸라가 보내온 VIP 입장권이 2장이나 있었다.“저한테 두 장이 있으니, 이진과 함께 보러 가시면 되겠네요.”촬영장으로 돌아온 이진은 기분이 다소 우울했다.오랜만에 이건을 만난 것이기에, 조금이나마 그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이진과 이건은 모두 표현이 서툴렀는데, 이진도 그동안 이건을 많이 그리워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혼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이진아, 왜 그래?”정희는 이진의 우울한 모습을 보더니 걱정되어 물었다.“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이때 정희는 재빨리 눈을 가리고는 고개를 돌렸다.“뭐야, 이러지 마. 나 아직 어리단 말이야!”이진은 정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해 물었다.“무슨 말을 하는 거야?”정희는 두 손가락을 벌려 빛을 통해 이진을 쳐다보았다.“네 목에 있는 모기 자국 같은 것들을 봐. 내가 어떻게 딴 생각을 하지 않겠어?”이진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비춰보았는데, 목뒤에도 키스마크가 있었던 것이다.이때 갑자기 어젯밤의 격렬했던 상황을 떠올리더니, 자기도 모르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정희는 얼른 컨실러를 들고 다가와 그 자국을 가려주었다.“이제 기운 좀 내. 공연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 끝나면 다시 이건 씨를 만나러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난 이건 씨가 보고 싶다고 말한 적 없거든?”이진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 안 했던 걸로 쳐 줄게.”정희는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두 장의 티켓을 꺼냈다.“짠, 이것 좀 봐!”이진은 티켓을 건네받더니 덩달아 눈을 반짝였다.안틸라는 이진이 매우 좋아하는 연예인이었
레슨이 끝난 후 방에 돌아오자 벌써 밤 9시가 되었다.정희는 이진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씻으라고 재촉했고, 잔뜩 피곤했던 이진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정희야, 나 조금만 쉬게 해주면 안 돼?”“댄스 연습실에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냈으니, 얼른 씻고 쉬어야지! 네 눈 밑의 다크서클 좀 봐. 판다를 따라잡을 정도야!”“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아.”이진은 무심코 자신의 눈 밑을 만지더니 말했다.“확실히 10대일 때와는 다르네, 그때는 밤을 새워가면서 코드를 써도 여전히 활기가 넘쳤는데.”정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감탄하기 시작했다.“우리가 18살 때 함께 T 시에 갔던 거 기억나? 우리 둘이 바이크를 타고 가다가 비가 와 쫄딱 젖어버리고 말았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았어. 참, 전에 네가 Y 시에서 변태를 만났던 건 기억나? 그때 기타로 그 변태의 머리를 내리쳤었는데, 그 기타 엄청나게 비싼 거였어! 아이고, 정말 아까웠는데.”이진은 덩달아 신난 정희를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지금의 이진은 매우 행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항상 곁에 있는 것도 모자라, 평생을 맡겨도 후회 없을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이렇게 두 사람은 옛이야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정희는 말할수록 흥분되어 방금까지 이진을 재촉했던 것을 잊은 채, 맥주를 몇 병 가지고 이진과 함께 옥상에 올라갔다.그날 밤은 아주 아름다운 밤이었다.정희는 내내 즐거움에 빠져 있었는데, 누군가가 대낮부터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젠장, 아직도 남의 사진을 맘대로 올리는 게, 불법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 거야?”이진은 정희의 목소리를 듣자 잠에서 깨어났다.“왜 그래?”“이것 좀 봐.”[이진이 남자한테 차인 걸로 의심되다? 한밤중에 옥상에서 술을 마시다.] [핫한 프로그램 게스트가 한밤중에 술을 마시다.]“이게 다 어떤 모자란 놈들이 지은 제목인 거야?”정희가 핸드폰 스크린을 내리자 사진도 있었다.이진은 핸드폰을 건네받고는,
정희의 화끈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고, 성공적으로 진 감독의 관심을 끌었다.“정희 씨, 아침부터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진 감독은 빠른 걸음으로 정희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감독님, 우리 진이 만만하세요, 왜 다들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냐고요, 이것 좀 보세요!”말하며 핸드폰에 담긴 사진과 글을 진 감독에게 보여줬다.진 감독은 그것을 보고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문혁이라는 것을 알고 더 골치 아팠다.하지만 곧 촬영이 시작되어 진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정희를 먼저 달랬다.“이 일은 내가 꼭 책임지고 해결할 게. 그러니까 먼저 촬영부터 하자? 더 늦어지면 서로가 피곤해질 거야.”정희는 진 감독을 한 번 보고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감독님, 저도 감독님이 그 누구보다 이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근데 어떻하죠, 누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사문혁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면 이런 헛소문을 올리지 않죠, 그것도 몇 번이나, 프로그램에 관한 사적인 정보도 누설하지 않을 거고요.”“그게 다 정말이야? 장난 아니지.”진 감독은 정희를 바라보며 입술을 오므렸다.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문혁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고, 직업상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어떤 회사도 신용을 지키지 않고 기밀을 외부에 누설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정희가 입을 삐죽거렸다.“믿기 어려우시면 가서 물어보시든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판매자가 DA 그룹이라는 겁니다.”진 감독과 정희는 길을 따라 사문혁의 방을 찾았다. 사문혁의 매니저가 문을 열고 표정이 어두운 진 감독을 보고 어리둥절했다.진 감독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사문혁은 진 감독 뒤에 있는 정희를 바라보며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감독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난 아직 준비 안됐어요.”두 사람을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부츠를 바라보았다.“너 우리 프로그램 진행 상
정희는 이진의 발걸음을 뒤쫓았다.“왜 놓아줘? 오늘 아침 뉴스도 그 자식 작품인데.”“나 그만둔다고 한 적 없어. 방송이 곧 시작할 예정이라 섭외할 게스트를 빨리 구할 수 없어 녹화가 끝난 뒤 다시 정리하고 싶을 뿐이지.” 씩씩거리는 정희를 보고 이진은 입꼬리를 올리고 정희를 끌어안았다.“내 대신 화풀이해줘서 고마워.”“넌 뭐가 그렇게 침착해, 내가 없었더라면 넌 어떻하니…….”정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마음은 좀 가라앉았다.“그 자식 처음엔 완전 발 뺐어, 모함이라고, 근데 내가 영상을 딱 보여줬잖아, 그 얼굴 너도 봐야 돼, 얼마나 웃기던지.”“어? 무슨 영상?”이진은 물으며 정회와 함께 촬영장으로 걸어갔다.곧이어 정희는 윤이건이 그녀에게 동영상을 보낸 것을 포함하여 모든 일을 이진에게 말했다.정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줄거리를 잇지 못해 듣는 이진을 어리둥절하게 하였지만 이진도 곧 사건을 정리하고 윤이건이 뒤에서 자기를 지켜주는 것을 알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블랙 롤스로이스 한 대가 현관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서자 문이 열리며 길쭉한 다리가 보이고, 이어 멎진 남자의 얼굴이다.민시우는 양복의 넥타이를 매고 다리를 들어 문으로 들어갔다.촬영 기간인 데다 민시우가 제작진에게 알리지 않아 접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문 앞 스태프들이 그를 알아채고 촬영장으로 안내했다.“맞어, 그 얼굴 너무 웃기는 거 있지, 그렇게 끝까지 발 빼더니.”촬영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민시우는 사람들 속에서 정희를 보았다. 가까스로 들으니 정희가 한 스태프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청년도 원래 리액션이 풍부한지라 눈을 크게 뜨고 같이 장단을 맞춰줬다. “무슨 얘기 중?”민시우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와 정희를 깜짝 놀라게 했다.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민시우, 무심코 정희와 직원 오군을 갈라놓는 듯했다.“여기는 무슨 일 이세요? 빨리 가요, 그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까!”이때 민시우를 보고 정희는 화기 치밀어 올랐다.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