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가 전국에서 가장 큰 빌딩의 꼭대기 층에 앉아 회사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비서 에밀리가 업무를 보고한 후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이건은 깊은 눈동자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말해 봐, 또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없으면, 이만 나가 봐.”이건은 꽃처럼 아름다운 비서에게도 차가운 모습을 보이기만 했다.“대표님, 최근 인터넷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요. 작은 사모님이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게스트와 불화설이 떴거든요.”이건은 만년필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계속해서 글을 써갔다.“그래, 알겠으니 이만 나가 봐.”에밀리가 나간 후, 이건은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일벌레로 상업계에 유명한 윤 대표가 뜻밖에도 아내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하던 일을 멈출 줄이야.그러나 이진의 일이라면 이건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다.전화가 곧 연결되었고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건 씨, 이 시간엔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이진은 조금 놀라며 시계를 보았는데, 지금은 출근시간이라 평소대로라면 이건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혹시 촬영장에서 누가 괴롭혔어?”이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건이 이렇게 작은 일마저 신경 써주자 감동되기도 했다.“아니요.”이진의 간단하게 얼버무리는 대답을 듣자, 이건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나한테 말해야 돼! 널 건드리는 놈들을 내가 대신 혼내 줄게!”이진은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진짜 아무 일도 없어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괴롭혀도 제가 남을 괴롭히죠!”이건은 이 말을 듣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미소를 지었다.이진이 아무리 우수하고 강해도, 이건은 평생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이다.두 사람은 한바탕 이야기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이건은 전화를 끊은 후, 핸드폰을 보며 한참 동안 미소를 지었다.오랫동안 이진을 보지 못했기에 정말 보고 싶기도 해, 이건은 즉시 일어나 자신의
문혁은 모두의 시선이 마침내 흩어지자 즉시 식사 자리에서 도망쳤다.정희는 문혁의 당황한 모습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겁쟁이, 전엔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이제야 무서운가 보네.”아직 화가 채 풀리지 않았던 정희는 문혁이 떠난 방향에 대고 주먹을 휘둘렀다.이진은 정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그런 사람 때문에 화를 낼 필요 없어. 얼른 밥부터 먹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찜닭도 시켰어.”즐겁게 떠드는 두 여자를 보자 이건은 마음이 불편했다.‘나랑 오랜만에 만난 건데,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날 쳐다보지도 않는 거야?’사실 이건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이진은 정희와 이야기를 나눈 지 2분도 채 되지 않았다.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이건은 간단하게 정희와 인사를 나눈 후, 이진의 손을 잡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스위트룸으로 향했다.이건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보다는 이진과 단둘이 있고 싶었다.룸에 들어선 이건은 왼손으로 문을 닫고, 오른손으로 이진의 허리를 껴안고는 사정없이 키스를 했다.이진은 거절하지 않았고 심지어 함께 입을 맞추었다.결국 이진은 이건을 밀어냈는데, 지금 밀어내지 않는다면 분명 저녁 식사를 놓칠 것이기 때문이다.이건은 허리를 굽힌 채 고개를 숙이고는 이진의 목덜미에 조금씩 입을 맞춰갔다.“자기야, 도대체 언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올 건데?”이진은 남자의 머리카락에 간지러움을 느꼈는데, 이렇게 자신에게 딱 달라붙는 이건을 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윤 대표님은 오늘따라 더 저한테 달라붙으시네요.”이진은 말을 하면서 이건의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건의 차가운 성격과 달리 그의 머리카락은 유난히 부드러웠다.이건은 이진이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기는커녕 자신을 비웃자, 얼른 고개를 들어 삐진 듯한 표정을 보였다.“누구처럼 집에 붙어있지 않는 것보단 낫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기나 해?”이건의 목소리는 무척 억울해 보였다.“하하하.”이진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
정희는 발레 황후의 무대극 티켓을 탐낸 지 오래되었다.이번 공연은 전 세계에서 유명한 안틸라가 출연하기로 했다.현재 S 시에서 판매되고 있는 티켓은 한 장도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뒷좌석마저 400만 원이 넘게 팔렸다.“그래요, 내일 비서를 시켜 보내 드릴 게요.”이건에게 마침 안틸라가 보내온 VIP 입장권이 2장이나 있었다.“저한테 두 장이 있으니, 이진과 함께 보러 가시면 되겠네요.”촬영장으로 돌아온 이진은 기분이 다소 우울했다.오랜만에 이건을 만난 것이기에, 조금이나마 그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이진과 이건은 모두 표현이 서툴렀는데, 이진도 그동안 이건을 많이 그리워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혼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이진아, 왜 그래?”정희는 이진의 우울한 모습을 보더니 걱정되어 물었다.“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이때 정희는 재빨리 눈을 가리고는 고개를 돌렸다.“뭐야, 이러지 마. 나 아직 어리단 말이야!”이진은 정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해 물었다.“무슨 말을 하는 거야?”정희는 두 손가락을 벌려 빛을 통해 이진을 쳐다보았다.“네 목에 있는 모기 자국 같은 것들을 봐. 내가 어떻게 딴 생각을 하지 않겠어?”이진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비춰보았는데, 목뒤에도 키스마크가 있었던 것이다.이때 갑자기 어젯밤의 격렬했던 상황을 떠올리더니, 자기도 모르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정희는 얼른 컨실러를 들고 다가와 그 자국을 가려주었다.“이제 기운 좀 내. 공연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 끝나면 다시 이건 씨를 만나러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난 이건 씨가 보고 싶다고 말한 적 없거든?”이진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 안 했던 걸로 쳐 줄게.”정희는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두 장의 티켓을 꺼냈다.“짠, 이것 좀 봐!”이진은 티켓을 건네받더니 덩달아 눈을 반짝였다.안틸라는 이진이 매우 좋아하는 연예인이었
레슨이 끝난 후 방에 돌아오자 벌써 밤 9시가 되었다.정희는 이진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씻으라고 재촉했고, 잔뜩 피곤했던 이진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정희야, 나 조금만 쉬게 해주면 안 돼?”“댄스 연습실에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냈으니, 얼른 씻고 쉬어야지! 네 눈 밑의 다크서클 좀 봐. 판다를 따라잡을 정도야!”“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아.”이진은 무심코 자신의 눈 밑을 만지더니 말했다.“확실히 10대일 때와는 다르네, 그때는 밤을 새워가면서 코드를 써도 여전히 활기가 넘쳤는데.”정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감탄하기 시작했다.“우리가 18살 때 함께 T 시에 갔던 거 기억나? 우리 둘이 바이크를 타고 가다가 비가 와 쫄딱 젖어버리고 말았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았어. 참, 전에 네가 Y 시에서 변태를 만났던 건 기억나? 그때 기타로 그 변태의 머리를 내리쳤었는데, 그 기타 엄청나게 비싼 거였어! 아이고, 정말 아까웠는데.”이진은 덩달아 신난 정희를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지금의 이진은 매우 행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항상 곁에 있는 것도 모자라, 평생을 맡겨도 후회 없을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이렇게 두 사람은 옛이야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정희는 말할수록 흥분되어 방금까지 이진을 재촉했던 것을 잊은 채, 맥주를 몇 병 가지고 이진과 함께 옥상에 올라갔다.그날 밤은 아주 아름다운 밤이었다.정희는 내내 즐거움에 빠져 있었는데, 누군가가 대낮부터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젠장, 아직도 남의 사진을 맘대로 올리는 게, 불법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 거야?”이진은 정희의 목소리를 듣자 잠에서 깨어났다.“왜 그래?”“이것 좀 봐.”[이진이 남자한테 차인 걸로 의심되다? 한밤중에 옥상에서 술을 마시다.] [핫한 프로그램 게스트가 한밤중에 술을 마시다.]“이게 다 어떤 모자란 놈들이 지은 제목인 거야?”정희가 핸드폰 스크린을 내리자 사진도 있었다.이진은 핸드폰을 건네받고는,
정희의 화끈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고, 성공적으로 진 감독의 관심을 끌었다.“정희 씨, 아침부터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진 감독은 빠른 걸음으로 정희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감독님, 우리 진이 만만하세요, 왜 다들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냐고요, 이것 좀 보세요!”말하며 핸드폰에 담긴 사진과 글을 진 감독에게 보여줬다.진 감독은 그것을 보고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문혁이라는 것을 알고 더 골치 아팠다.하지만 곧 촬영이 시작되어 진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정희를 먼저 달랬다.“이 일은 내가 꼭 책임지고 해결할 게. 그러니까 먼저 촬영부터 하자? 더 늦어지면 서로가 피곤해질 거야.”정희는 진 감독을 한 번 보고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감독님, 저도 감독님이 그 누구보다 이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근데 어떻하죠, 누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사문혁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면 이런 헛소문을 올리지 않죠, 그것도 몇 번이나, 프로그램에 관한 사적인 정보도 누설하지 않을 거고요.”“그게 다 정말이야? 장난 아니지.”진 감독은 정희를 바라보며 입술을 오므렸다.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문혁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고, 직업상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어떤 회사도 신용을 지키지 않고 기밀을 외부에 누설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정희가 입을 삐죽거렸다.“믿기 어려우시면 가서 물어보시든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판매자가 DA 그룹이라는 겁니다.”진 감독과 정희는 길을 따라 사문혁의 방을 찾았다. 사문혁의 매니저가 문을 열고 표정이 어두운 진 감독을 보고 어리둥절했다.진 감독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사문혁은 진 감독 뒤에 있는 정희를 바라보며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감독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난 아직 준비 안됐어요.”두 사람을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부츠를 바라보았다.“너 우리 프로그램 진행 상
정희는 이진의 발걸음을 뒤쫓았다.“왜 놓아줘? 오늘 아침 뉴스도 그 자식 작품인데.”“나 그만둔다고 한 적 없어. 방송이 곧 시작할 예정이라 섭외할 게스트를 빨리 구할 수 없어 녹화가 끝난 뒤 다시 정리하고 싶을 뿐이지.” 씩씩거리는 정희를 보고 이진은 입꼬리를 올리고 정희를 끌어안았다.“내 대신 화풀이해줘서 고마워.”“넌 뭐가 그렇게 침착해, 내가 없었더라면 넌 어떻하니…….”정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마음은 좀 가라앉았다.“그 자식 처음엔 완전 발 뺐어, 모함이라고, 근데 내가 영상을 딱 보여줬잖아, 그 얼굴 너도 봐야 돼, 얼마나 웃기던지.”“어? 무슨 영상?”이진은 물으며 정회와 함께 촬영장으로 걸어갔다.곧이어 정희는 윤이건이 그녀에게 동영상을 보낸 것을 포함하여 모든 일을 이진에게 말했다.정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줄거리를 잇지 못해 듣는 이진을 어리둥절하게 하였지만 이진도 곧 사건을 정리하고 윤이건이 뒤에서 자기를 지켜주는 것을 알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블랙 롤스로이스 한 대가 현관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서자 문이 열리며 길쭉한 다리가 보이고, 이어 멎진 남자의 얼굴이다.민시우는 양복의 넥타이를 매고 다리를 들어 문으로 들어갔다.촬영 기간인 데다 민시우가 제작진에게 알리지 않아 접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문 앞 스태프들이 그를 알아채고 촬영장으로 안내했다.“맞어, 그 얼굴 너무 웃기는 거 있지, 그렇게 끝까지 발 빼더니.”촬영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민시우는 사람들 속에서 정희를 보았다. 가까스로 들으니 정희가 한 스태프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청년도 원래 리액션이 풍부한지라 눈을 크게 뜨고 같이 장단을 맞춰줬다. “무슨 얘기 중?”민시우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와 정희를 깜짝 놀라게 했다.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민시우, 무심코 정희와 직원 오군을 갈라놓는 듯했다.“여기는 무슨 일 이세요? 빨리 가요, 그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까!”이때 민시우를 보고 정희는 화기 치밀어 올랐다. 다시
팬들은 자기 아이돌이 무슨 큰 억울함을 당했다고 굳게 믿고 반기를 들었다.팬 두목은 재학 중인 3학년 여학생인데 이름은 소윤이고 사문혁의 1호 팬이다. 소윤은 아침 일찍 이 메시지를 보고 팬 커뮤니티의 주요 ID를 긴급 동원하여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여론을 이진에게로 몰았다.모든 어랜지를 마치고 소윤은 만족스럽게 댓글을 보고 있었다.‘흥, 아무도 우리 문혁이를 괴롭힐 수 없어! 걱정 마, 넌 우리가 지킬 거야, 넌 그냥 앞을 보고 나가면 돼, 우리가 영원히 너의 뒤에 서 있으니까!’득의양양할 때 갑자기 사문혁의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서둘러 수신 버튼을 눌렀다.“소윤 씨? 나 진사범이에요.”진사범은 이 여자아이를 매우 좋아한다. 돈도 많고 머리도 없고, 오로지 사문혁을 쫓아다니기 때문이다.“사연 오빠, 문혁 오빠 지금 어때요? 기분이 별로인가요?”소윤은 자기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우울한지 통 말을 안 해요.”진사범은 긴장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사문혁을 한 번 보고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아니면 제 아빠한테 프로그램 하나 투자하라고 할까요?”소윤이 아버지가 바로 S-ONE의 주주이다. 그것도 권력이 있는 주주.진사범은 소윤이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흥분을 억누르며 낮은 어조로 말했다.“어떻게 돼 긴요, 뭐 그런…….”소윤은 의리 있게 가슴을 두드리다가 문득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삐걱거리지 말고 할 말이 있으면 말해요!”곧 새로운 검색어가 올랐다.에밀리는 윤이건의 손에 꼭 쥐어진 자기 핸드폰을 걱정했다.윤이건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눈에는 불길이 타올랐다. 윤이건은 ‘충격! 연예인 이 모 씨 인기 가수 내연관계 거절 받고…….’ 라는 표제를 뚫어지게 보았다.글에는 이진이 사문혁이 맘에 들어 내연관계를 갖고 싶지만 사문혁이 거절하자 이진이 그를 프로그램에서 쫓아낸 내용이 있었다.윤이건은 고개를 들어 에밀리에
정희의 마음은 아팠다. 알고 보니 줄곧 자신의 일방적인 희망이었고, 자신의 갈등과 고통은 우스갯소리와도 같았다.“더 이상 날 찾아오지 마요. 보고 싶지 않으니까.”정희와 민시우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는 민시우가 처음보는 진지함이 가득했다.정희는 민시우가 내미는 손을 뿌리쳤다.“저를 놀리는 거예요?”“아니예요.”민시우가 급히 말했다.“난…….”“뭐죠? 네? 나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데 자꾸 매달리는 이유가 뭔데요?”정희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막무가내로 내게 다가와서는 흔들리게 하고, 내 허락은 받았어요?”정희가 우는 것을 보는 순간 민시우는 가슴이 찔린 듯 아팠다.정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누구를 좋아해본 적은 처음이고 그를 아프게 하는 사람도 정희가 처음이다. 정희를 아프게 한 것은 모두 이 감정을 늦게 알아챈 그의 잘못이다. 바로 그 순간, 민시우의 머릿속은 정희와 함께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사랑해요!”품에 안겨 있던 여인의 굳어진 몸을 느끼며 민시우는 말을 이었다.“나 감정 가지고 장난친 적 없어요, 제때에 마음 밝히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 정말 정희 씨가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몰랐어요.”민시우는 품안의 여인을 끌어당기고 붉어진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근데 지금은 알 것 같아요.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거, 정희 씨, 사랑 사귈래요?”빗물이 정희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러나 민시우는 정희의 눈물을 구별할 수 있었다.이건 민시우 처음의 고백이고, 그는 지금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안절부절하다가 마침내 정희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풀려났다.민시우는 정희의 얼굴을 치켜들고 고개를 키스했다. 앞에 서 있는 이 여인은 이제 그의 여자 친구이다!다음날 낯선 호텔에서 깨어난 정희는 새하얀 벽을 보며 어제 뜨거운 밤을 떠올렸고, 얼굴이 붉어지며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몸이 쑤시는 듯한 아픔에 정희는 저도 모르게 아픔을 토하였다. “왜? 어디 아파요?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