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은 고개를 들어 잔에 든 와인을 마시며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는 자신의 상황을 되새겨보았다. 그리고 곧 입꼬리를 올리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역시 누구든지 감정을 쉽게 다스리긴 힘드나 보네.’그녀들은 곧이어 술병을 비워갔는데 세 사람은 점점 취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취하고 말았다.부엌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기며 술 한 병을 더 따려고 했으나 모두 잠이 들고 말았다.이진과 정희는 완전히 쓰러지고 말았는데 유연서는 아직 조금 정신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눈을 뜨고 상황을 둘러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번 일로 이진의 신뢰를 꽤나 얻었나 보네.’그녀들은 이튿날 아침이 되기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지만 인터넷은 이미 떠들썩하기 시작했다.파파라치들이 백정아의 도발에 넘어간 것이다.그들은 러시아워를 맞아 어제 찍었던 백정아의 사진을 모두 인터넷에 올렸다.이것은 분명 네티즌들의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백정아의 이미지는 안 그래도 나빠지고 있었는데 지금 인터넷에는 온통 그녀에 대한 욕설들만 가득했다.일이 일어난 지 대략 반 시간이 지난 후, 여전히 정희의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이진은 해란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대표님, 어디 계세요? 회사에 큰일이 생겼어요.”이진은 핸드폰을 들고 천천히 일어나 앉았는데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파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대표님? 괜찮으세요?”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이진의 소리에 해란은 마음을 졸였는데 이진은 쓴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괜찮아. 회사 쪽은 무슨 일이야?”“AMC 지부의 건축 설계 도면이 유출되어 지금 회사 전체가 혼란스러워졌어요.”해란의 말을 듣자 이진은 머리가 더 아팠다.“단서가 있나요?”“아직은 정확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어요. 지금 처리하는 중이지만 정말 골치 아프게 되었어요.”이진은 해란이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어쨌든 회사의 총감독인 그녀가 이런 일을 처리할 때 당황해서는 안 된다.“먼저 할 수 있는
이진이 이문권의 손에서 이 회사를 지부로 인수한 뒤 그녀는 첫날 부임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을 해란에게 맡겼다.지금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두 번째로 이진을 만난 것인데 그녀의 분위기와 카리스마는 전과 완전히 달랐다.한편 이진이 묻자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신발 끝을 보고만 있었다.딱히 찔리는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이진의 카리스마에 놀란 것이다.이진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그 위압감은 엄청 남달랐다.이 고위층들은 그녀의 모습에 자연히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눈을 볼 배짱이 없었다.이진은 그들의 모습을 보더니 차가운 눈빛을 보였는데 아마 모두 그녀가 예상했던 상황대로 흘러간 것이었다.‘보아하니 긴 싸움이겠네.’“좋아요, 다들 이렇게 나오신다면 하나씩 가능성을 선별해 보죠.”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해란을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바로 이 설계 도면을 투영 위에 펼쳐놓았다.“회사의 프로젝트를 다시 실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모든 절차들이 신중할 수밖에 없어요.”많은 사람들이 그 도면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지만 저마다 표정이 달랐다.해란이 설계도 최초의 구조부터 도난당한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설명하자 그들의 표정은 더욱 긴장되었다.이전에 이문권이 회사를 망하게 만들었던 데다가 지금은 재가동의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만약 프로젝트가 이렇게 폐기되어 버린다면 그 손실은 분명 엄청날 것이다.그중에서 이번 일을 일으킨 사람을 찾아내는 건 분명 긴 심리전이다.누가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는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결국 모두가 짧은 시간에 끝날 줄 알았던 회의는 저녁까지 이어지고 말았다.이번 회의는 점심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이진은 프런트의 직원들을 시켜 도시락 수십 개를 주문해 점심은 회의실에서 직접 해결하였다.결국 모든 사람들이 슬슬 버티기 힘들어졌을 때 꼬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이진은 십여 명의 사람들 중에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현재 두 사람의 혐의가 가장 크지만 이진도 딱히 의심이 갈만한 점을 찾지 못했다.일의 내용, 인수인계, 심지어 그들의 반응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이진의 마음속 의혹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하지만 이진의 침착하고 평온한 모습은 오히려 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하 총감독마저 견디기 힘들었다.“이 대표님, 만약 저한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는 범인이 아니므로 더 이상 심문을 받고 싶지 않아요.”“맞아요! 저희가 이전 회사에서 넘어온 사람이지만 이렇게 의심을 받는 건 정말 마음이 불편하네요!”두 사람이 계속 입을 열지 않는다면 이진은 그들을 더 의심했을 거다.그러나 두 사람은 피하지 않은 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기에 오히려 일이 쉬워졌다. “그래서 두 분은 더 이상 변명할 생각은 없는 건가요?”“전 줄곧 제 몫의 일만 책임지고 있었으니 변명하고 싶은 것이 없네요.”“없습니다! 이런 일은 깊게 파고들수록 점점 복잡해지기만 해요. 전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두 총감독은 모두 큰 동작을 하진 않았지만 눈빛은 화가 나 있었다.이진은 쥐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고는 표정을 가라앉혔다.두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 각자의 입장을 설명했다.확실히 이 두 사람은 기획안을 가장 직접적으로 접할 수는 있지만 동기가 부족했다.하지만 이문권이 정말 복수를 원했다면 이렇게 위험이 높은 일은 벌이지 않았을 거다.게다가 그들은 이미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기에 높은 자리를 차지할 욕심은 없을 거다.만약 회사에 복수하고 싶었던 거면 지금까지 기다리진 않았을 거다.이런 생각에 이진은 작은 소리로 웃었다.‘정말 까다로운 일이네. 하지만 그들이 아니라면 또 누가…….”이진은 잠시 생각을 멈추더니 갑자기 이전에 봤었던 두 사람의 자료를 떠올렸다.“실례지만, 두 총감독님의 부인은 지금 집에 계신 가요?”두 사람
이날따라 이진의 머리는 하루 종일 팽이처럼 돌기만 했다.한편 윤이건도 가만있지만은 않았다.아침에 민시우는 이진과의 전화를 끊은 뒤 강제로 윤이건을 깨웠다.다년간의 친구로서 민시우는 윤이건의 성격과 그를 일찍 깨운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윤이건을 깨우는 동시에 백정아에 관한 뉴스를 열어 그의 눈앞에 놓았다.아니나 다를까, 윤이건은 차가운 눈빛으로 뉴스를 보고는 민시우의 핸드폰을 빼앗아갔다.민시우는 방금까지 떨리던 마음을 그제야 가라앉힐 수 있었다.“그래서 이게 백정아가 어제 클럽에 들어갔을 때 파파라치한테 찍힌 사진이야?”민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윤이건은 마음을 졸였다.“이진은 알고 있어?”두 사람이 어제 처음으로 싸웠던 이유가 바로 백정아 때문이었다.지금 만약 이진이 이 뉴스를 보게 된다면 반드시 오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그러자 민시우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나도 형수님이 이 일을 알고 있는지는 몰라. 근데 방금 형수님께서 나한테 조사를 도와달라고 전화가 왔어.”윤이건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아팠다.이진은 이문권의 회사를 인수한 후부터 부쩍 야위기 시작했다.그녀가 무척 바빠서 어쩔 줄 모르는 시기에 자신이 스캔들 따위를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하자 그는 이를 악물며 핸드폰을 열어 백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실 어젯밤 시간이 늦었을 때 백정아가 아무리 떼를 써도 윤이건은 부하를 시켜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지금 이 시각 백정아는 스캔들의 여주인공답지 않게 자신의 별장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이건 오빠? 이 시간에 왜 갑자기 연락하신 거예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오늘 오후, 매니저를 데리고 S-Club의 지하실 통로로 꼭대기 층으로 오시죠.”윤이건은 백정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침대 위에 누워있던 백정아는 아직 잠이 덜 깼지만 자신이 뉴스에 나왔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얼른 핸드폰을 열어보자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는 온통 그녀가 찍힌 사진이었다.백정아는 가볍
백정아가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윤이건은 기분이 불쾌하여 미간을 찌푸렸다.결국 어르신들의 친분을 생각했기에 백정아에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이다.백정아는 눈을 비비며 책상 앞의 윤이건을 보았는데 그가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자신을 의심하진 않은 지 보려고 했다.윤이건은 백정아를 상대하지 않고 그녀가 서명을 하는 것만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잠시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는데 백정아는 바로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이건 오빠, 제가 도울만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반드시 최선을 다할 게요!”“그저 이진 씨께서 저희를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백정아는 몰래 입꼬리를 올리며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제발 좀 오해를 했으면 좋겠네. 두 사람이 사이가 틀어진다면 내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딱 좋잖아.’백정아의 말에 윤이건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그녀의 이런 가식적인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녀를 사무실에서 내보냈다.“자, 별일 없으니 이제 그만 가시죠. 나머지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까 돌아가서 쉬도록 해요.”윤이건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하며 백정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가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자 백정아는 민망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윤이건의 사무실을 떠났다.그녀는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매니저한테 연락했다.“내가 나가자마자 파파라치들을 돌려보내. 절대로 들키지 않게 잘 마련해!”매니저는 백정아의 말을 듣고는 그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 지금이 아니라 굳이 백정아가 떠난 후에 그들을 돌려보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백정아는 지하 차고 문을 빠져나가던 와중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인 뒤 속상한 표정으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이때 어두운 곳에서 숨어있던 파파라치들은 이 장면을 찍었다.-이때 AMC 지부 회의실.이진과 하 총감독, 정 총감독 및 그들 두 사람의 부인은 자료 유출 사건으
이진이 일어나자 하 총감독은 그녀가 뭔가를 하려는 줄 알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이진은 회의실 안을 몇 바퀴 돌면서 자리에 앉은 네 사람을 훑어보았다.갑자기 그녀는 하 부인의 곁에 멈춰 서더니 조용히 그녀를 훑어보다가 곁에 다가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하 부인은 이진이 자신을 이렇게 쳐다보자 기분이 언짢아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이진을 쳐다보며 말했다.“이 대표님, 이건 좀 무례한 것 아닌 가요?”하 부인의 말투가 조금 거칠었지만 이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어깨만 으쓱거렸다.이진의 이런 태도를 보자 하 총감독이 폭발하고 말았는데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바닥으로 내던졌다.물컵이 지면과 접촉하자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온 바닥에 유리 조각이 가득했다.이진은 하 총감독의 이런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고 옆에 서 있던 해란은 앞으로 나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이진에게 가로막혔다.“이진 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시는 거 아니에요? 저희를 이곳에 여태까지 두시면서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도 모자라 지금 제 부인한테 이런 무례한 행동까지 하시는 거예요? 도대체 원하시는 게 뭐예요?”하 총감독은 이진을 쳐다보며 노발대발했는데 그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흥분을 했다.그러나 이진은 그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썹을 찡긋거리며 하 부인을 살펴보았다.그러고는 다시 옆에서 화를 내며 아내를 보호하는 듯한 하 총감독을 쳐다보았는데 정말 이진이 그들 부부를 괴롭힌 것만 같았다.이때 이진은 갑자기 하 부인의 곁으로 발걸음을 옮겨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하 부인께서는 정말 평소에도 이렇게 소박하신 가요?”하 부인은 이진의 말을 듣자 무척 당황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침착함을 되찾고는 태연하게 이진을 쳐다보았다.“그럼요.”하 부인은 말을 마치고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이진과 거리를 두었다.한편 이진은 그녀의 반응에 자신이 원하는 답안을 얻게 되어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
이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는 당연히 S-Club이 윤이건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정아가 그곳을 두 번 들어선 가운데 어젯밤도 포함되었다…….두 사람 사이의 일과 윤이건에 대한 백정아의 마음을 생각하자 이진은 참지 못하고 손에 든 핸드폰을 내던졌다.한편 임만만은 전화 너머에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끊기자 이진이 화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회의실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난 이진을 보더니 더욱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원래 간담이 서늘했던 하 부인과 하 총감독은 이진의 이런 태도에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옆에 서서 지켜보던 해란은 이진이 이렇게 화를 내자 얼른 다가가 그녀의 마음을 달랬다.“이 대표님, 진정하세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화가 나신 거예요?”해란은 혹시나 이진을 화나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이진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해란 씨, 핸드폰 좀 빌려주시죠.”이진의 명령에 해란은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자신의 핸드폰을 이진에게 건넸다.이진은 핸드폰을 받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자 하 부인은 갑자기 당황하며 이진의 앞으로 달려가 그녀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을 꼭 잡았다.“이 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하 부인이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는데 그녀의 눈빛은 엄청 당황하고 초조해 보였다.그러자 이진은 하 부인을 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하 부인님, 당신이 지금 입고 계신 치마는 전국을 통틀어 한 체인점에만 있는 상품이에요. 하 총감독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가격이니 분명 이건 불법 수단을 통해 얻으신 거겠죠? 저는 그저 하 총감독님을 위한 것이에요.”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하 총감독을 향해 웃었는데 오히려 이진이 매우 무고해 보였다.“게다가 전 검소한 하 부인께서 이렇게 비싼 치마를 사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믿어요. 제가 곧 CCTV와 영수증을 조사할 겁니다. 괜히 착한 분들에게 누명을 씌우면
이렇게 늦게까지 파파라치와 기자에게 막힌 것은 이진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눈앞의 많은 기자들을 보며 이진은 눈썹을 비틀고 얼굴에 약간의 불쾌함이 있었다.바쁜 하루를 보내고 이렇게 기자들에게 막히면 누구라도 불쾌할 것이다. 이진도 마찬가지이다.어디 가지도 못하고 이런 상황에서 그녀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수밖에 없었다.“이 질문에 대해 아무것도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 둘 사이 어떤 관계인지는 백정아한테 물어보시죠, 왜 저한테 묻는 겁니까?”“이거 잘못된 거 아닌가요?”이진은 기자들의 질문에 비웃는 듯이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그 기자들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진이가 여지없이 맞받아쳤다.“그리고 인터넷에 뜬 기사 윤이건 씨가 인정했나요? 모두 다 당신들의 추측 아닌가요?”“게다가 정말 무엇을 했더라 해도 우리 개인사이니 굳이 알려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계속 물어보겠다면 변호사 부를 겁니다.”“실례하겠습니다.”이진은 단숨에 말을 마치고, 아무 말도 못하는 파파라치와 기자를 냉정하게 한 번 보고는 몸을 돌려 GN 그룹을 떠났다.이진의 강경한 맞대응은 기자들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다만 멍하니 이진의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기자들을 멀리한 다음 이진은 GN 그룹 근처의 카페에서 멈춰 가방에서 다른 휴대폰을 꺼냈다.평상시 업무 때문에, 그녀는 두 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는 업무용이고, 하나는 개인용이다.이때 그녀는 개인용 핸드폰을 들고 임만만에게 전화를 걸었다.“만만아, 나야, 나 지금 회사 근처의 카페에 있어, 여기서 기다릴게.”간단하게 말을 마친 후 이진은 또 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지금 회사 근처인데 좀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이진이 가볍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다소 피곤함을 드러냈다.전화 한편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 이진에게 전화를 걸려던 정희가 급히 일어났다.“알았어! 금방 갈게.”그녀도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었는데 마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