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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상자?"

임지환의 말을 들은 배지수가 생각해 보더니 드디어 임지환이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라탄 상자 하나를 떠올렸다.

배지수의 남동생 배준영은 평범한 그 라탄 상자를 보곤 촌스럽다며 임지환이 고대에서 온 사람이라고 비웃기까지 했었다.

"그거 네 거잖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 나 다른 요구는 없어."

임지환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임지환, 네가 억울하다는 거 나 다 알아. 하지만 나도 사정이 있어서 이러고 있다는 거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배지수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알아."

말을 마친 임지환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혼 서류에 사인했다.

배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곧이어 짙은 상실감이 덮쳐왔다.

두 사람의 결혼은 이렇게 끝이 났다.

임지환에게는 불공평하지만 배씨 집안에게 있어서 이는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

"후회되면 언제든지 찾아와, 내가 약속했던 조건들 계속 유효하니까."

배지수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이혼 서류를 들고 하이힐을 신은 채 집을 나섰다.

임지환은 그런 배지수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앞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임지환은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켜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뭐 하려고?"

한수경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임지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2층에 가서 제 물건 챙겨야죠."

임지환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 임지환을 바라보던 한수경이 휴대폰을 꺼내 거실 한쪽으로 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모. 임지환이 이혼 서류에 사인했어요."

한편, 잠원 별장.

"뭐? 그게 정말이야? 그 쓰레기가 정말 사인했다고?"

예쁘장한 중년 여자가 얼굴에 하고 있던 팩을 던지며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바로 배지수의 어머니인 유옥진이었다.

유옥진의 옆에 있던 배준영도 그 소리를 곤 귀를 쫑긋 세웠다.

"네, 정말이에요. 제가 설득해서 사인하게 했어요. 그것도 지수 앞에서."

한수경이 공을 가로채며 말했다.

"너무 잘됐다, 그 쓰레기가 드디어 우리 딸을 떠나겠다고 해서 너무 다행이야. 수경아, 이모가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

유옥진이 신이 나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의 혼사를 늘 반대했다. 하지만 배지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자꾸 임지환이 좋다는 말을 해댔다.

그런데 드디어 두 사람이 이혼했다고 하니 유옥진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저희 가족이니까 당연한 일 한 건데요, 뭐."

말을 하던 한수경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목소리를 낮췄다.

"이모, 그런데 그놈이 글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래? 그렇게 말이 잘 통하는 놈이라고?"

유옥진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놈이 자존심은 꽤 센가 봐요."

배준영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저 자신이 가지고 온 그 상자를 가지고 가겠다고 했어요."

"무슨 상자?"

"저는 몰라요, 이모가 와서 한번 볼래요? 집에 귀중한 물건을 가져갈까 봐 걱정돼요. 이놈이 가버리면 저희 말할 데도 없잖아요."

한수경의 말을 들은 유옥진은 다급해졌다.

"수경아, 네가 그놈 좀 잡고 있어, 나랑 준영이 지금 갈게. 이혼까지 해놓고 배씨 집안 물건을 가져가겠다고? 꿈도 꾸지 말라고 그래."

"맞아요, 제가 그놈 손모가지를 잘라버려야겠어요. 엄마, 제가 차 꺼내올게요."

배준영이 차 열쇠를 들고 다급하게 차를 꺼내러 갔다.

그들은 배씨 집안의 재산을 반드시 지켜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

2층으로 올라간 임지환은 방을 둘러봤다.

3년 동안 이곳에서 너무 많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겼다.

그는 거실로 들어가지 않고 제일 안쪽에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을 켜 수납장의 제일 위쪽에서 라탄 상자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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