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1화

작가: 박성호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임지환이 마침 문 앞까지 걸어가자, 방안에서는 연달아 심각한 기침소리가 전해져왔다.

"콜록..."

이성봉이 문을 밀고 들어섬과 동시에, 한약재와 소독수 냄새가 섞인 자극적인 향이 코를 찌르며 불어왔다.

이 백여 평이 되는 침실 안에는, 각종 의료기기들이 진열되어 있고, 방호복과 의용 마스크를 착용한 간호사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기기 상의 데이터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병원에 있는 중환자실과 비겨도, 나무랄 데가 없다!

병상에 누워있는 야윈 노인은, 머리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고, 몸에는 여러 가지 링거 줄들이 꽂혀 있었다.

가끔씩 나는 기침소리가 없었다면, 들어온 사람들 모두가 어르신께서 세상을 뜨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으로 들어간 후, 임지환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르신의 침대 옆에는 진귀한 약재들이 진열되었다.

천금의 가치가 있는 동충하초가 여기서는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구석진 곳에 쌓여있다.

평소 한 포기마저 구하기 힘든 인삼은 배추처럼 한 단씩 묶여 탁자 위에 쌓여있다.

기기들을 제외하고 어르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쓰인 약재들만 해도 이미 몇억의 가치가 된다!

바로 그때 흰 가운을 입은 중년 의사가 걸어와 깍듯이 말했다.

"성봉 씨."

"임명의, 이분은 장하명, 장 선생님이에요."

"제가 특별히 해외에서 모셔온 유명한 의사예요."

"이 시일 동안 다 장 선생님 덕분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어르신은..."

이성봉은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장 선생님, 이 분이 바로 제가 언급했던 임명의십니다, 업계에서는 모두 그를 용성수라고 칭하죠."

임지환은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이내 시선을 병상에 있는 어르신한테 돌렸다.

장하명은 바로 눈썹을 치켜올렸고 그를 예의 없다 생각했다.

그는 수년간 해외연수를 하며 매스컴에 20여 편의 전문론문이 있고 아주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력이니, 어느 동종업계 사람들이 자신을 만나든 모두 예의를 차리고 있다.

이 임지환은 나이도 한참 어려 보이는데 왜 이렇게 자신을 경시하는 거지?

그의 마음속에는 갑자기 알 수 없는 화가 타올라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성봉 씨, 제가 요 몇 년 동안 해외에 있었지만 그래도 업계 동료들과 자주 교류를 해왔어요, 용성수라는 인물은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요."

의술계는 항상 경력이 뒷받침되어야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곳이다.

똑같이 이 가에서 청해온 사람이니 장하명도 이유 없이 남에게 눌리우고 싶지 않았다.

이 얘기가 전해지면 다른 이들의 비웃음을 살게 아닌가?

"들어본 적 없다면 아직 그 정도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걸 설명하죠."

임지환이 미적지근하게 한 마디 답했다.

장하명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화를 내려 했다.

이렇게 서로 칼을 겨누는 분위기에 이성봉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장 선생님, 지금 어르신 상태는 어떤가요?"

"어르신의 현재 몸 상태는 크게 호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고법으로 특별히 제작한 십전인삼액으로 어르신께 보신 중이라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이 의료진들은 인삼과 동충하초 그리고 설련 당귀 등 몇몇 진귀한 약재들을 전부 기기로 가루를 내었다.

그리고 이 가루를 필터링한 뒤 단백질액을 추가해 수액을 하는 방식으로 어르신의 체내에 투여했다.

"장 선생님은 역시 진 어르신의 제자답습니다, 이렇게 고법과 현대 과학기술을 결합시킬 생각을 다 하시다니."

"선생님이 계신 덕분입니다, 아니면 어르신은 지금까지 버티시지 못했을 거예요."

이성봉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장하명은 속으로 고소해났지만 그저 손을 내저었다.

"이건 다 제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어르신을 존중하는 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이 가에서 3개월 동안 객경의사가 되는 것을 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윽고 그는 임지환을 바라보며 고의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저 젊은이는 어린 나이에 명의라고 자칭하다니, 뛰어난 점이 있는 게 틀림없겠죠?"

비록 장하명의 말투는 겸손했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속에 담긴 짙은 화약 냄새를 맡아냈다.

관련 챕터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2화

    "똑똑한척하기는!"임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뭐라고?""무슨 망할 인삼환인지, 어르신의 몸에 한치의 좋은 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르신의 몸을 더 빨리 망가트리고 있어요."임지환이 싸늘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장하명의 표정은 갑자기 어두워졌다."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만약 나의 십전인삼환이 효과가 없었다면 어르신이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어?"임지환은 어조가 격앙된 장하명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한약과 서약을 결합하려는 사고방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틀린 건 당신이 대상을 잘못 정했다는 것이죠!""인삼이든 설련이든, 심지어 보조 재료인 당귀까지 모두 크게 보신을 하는 물건이에요, 일반 환자들이 먹으면 자연스레 아무 일도 없겠죠.""하지만 어르신의 몸 상태는 지금 극도로 허약합니다, 크게 보신되는 이 약물들은 그에게 있어 비상보다도 몇 배 더 되는 독이 될 겁니다!""너무 허하면 보신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나요?"임지환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한 글자를 말할 때마다 장하명의 안색은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결국 장하명의 안색은 심히 창백해졌다."하명 씨, 그동안 수고했어요, 내려가서 쉬세요.""이곳에는 임명의가 계실 테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이성봉은 손을 휘저었고 온화하던 말투에도 조금 냉랭한 기운이 더해졌다.이성봉의 말을 듣자 창백하던 장하명의 얼굴이 순간 핏기 하나 없이 하얘졌다.이 씨 가주가 임지환의 말을 매우 동의하는 게 분명했다.그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 바로 일을 떠넘기며 말했다."방금은 제가 무례했네요, 어르신을 치료하는 중임은 임명의에게 맡기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장하명은 한편으로 물러갔다.그의 마음속은 아직도 조금 내키지 않았다. 저 녀석이 정말 재주가 있는 건지 보고 싶었다."자, 임명의!"이성봉이 공손히 말했다.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상 앞으로 걸어가 어르신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모두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과는 달리, 임지환의 진단은 여유롭기 그지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3화

    임지환은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이 씨네 둘째인 이성강이 팔자걸음을 하며 밖에서 걸어들어왔다."둘째야, 뭐 하는 거야?"이성봉은 불쾌한 듯 말했다."임 명의가 방금 아버지를 위해 치료를 하려 하는데 왜 방해하는 거야?""형님, 제가 일부러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 치료를 할 더 적합한 사람이 있어서예요."이성강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더 적합한 사람?"이성봉은 궁금했다."당연하죠, 이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육지 명의께서 아버지의 병을 치료해 주시는 게 더 알맞은 것 같아요."이성강은 말을 마치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그제야 모든 사람들은 이성강의 뒤에 은발을 한 노인이 서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노인은 긴 셔츠를 입고 있었고 키는 조금 작았지만 몸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육지 명의 소태진?""이분은 사부님 마저도 스스로 안된다 부끄러워하실 의술의 대가십니다!""이 분이 계신데, 저 임 씨는 아무것도 아니죠?"소태진이라는 이름을 듣자 구석진 곳에 서있던 장하명은 구원자라도 본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 아부의 말투로 말했다."소 어르신, 후배를 기억하시려는지 모르겠네요? 저희, 소항의술교류회에서 한번 뵌 적 있는데요."소태진은 그의 말을 듣고 한번 훑어보았다.이내 그는 웃어 보였다."네가 진중생이 데려온 그 꼬마 제자냐? 몇 년 못 본 사이에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네, 저도 여기서 이렇게 선배님을 만날 행운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이젠 정말 이 어르신이 살 가망이 생겼네요."장하명은 미친 듯이 아부를 떨었다."장 선생, 이 소명의가 정말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그리 대단합니까?"이성봉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저는 소 어르신에 대해 함부로 평가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르신은 제 사부님보다도 의술이 더 뛰어나시기 때문이죠.""명성은... 아마도 이 용성수보다 많지 않을까 싶네요."장하명은 말을 마치고 일부러 도발하듯 임지환을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4화

    그는 상자를 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려 했다!"둘째야, 네가 정말 함부로 소란을 피우고 있구나.""지금 임명의께서 화가 나 가셨는데 대체 그럼 아버지는 누가 치료한단 말이냐?"임지환이 바로 몸을 돌려 가는 것을 보고 이성봉은 순간 조급해졌다.그는 적지 않은 인력과 물력을 동원했고 심지어 엄청난 신세를 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양주왕 이 거물을 청해 설득을 부탁했다.많은 힘을 들여 겨우 임지환을 모셔왔다.하지만 결국 어르신의 병을 치료 못한 것도 모자라 상대에게 밉보이기까지 했다.양주왕 조강기, 그는 이 씨 어르신 이장호마저 버선발로 맞이해야 할 큰 인물이다!"형님, 양주왕도 사람을 잘못 보실 때가 있겠죠.""그리고 의술로 치자면 소 어르신이 단연 더 뛰어나시죠.""저 녀석은 어르신 옆에서 신을 들어줄 자격도 없어요!"이성강은 이성봉을 아랑곳하지도 않았다.그는 마음속에 자기만의 계획이 있다.만약 그가 청해온 명의가 아버지를 완쾌시킬 수 있다면, 그가 집안 주인의 자리에 못 앉을 것도 없다.소태진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거만하게 말했다."저 어린 녀석이 80%의 확신이 있다면, 이 늙은이는 100%일세!""소 어르신, 저는 어르신의 의술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걱정이 있어서 입니다.""하지만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저희 아버지의 생사는 어르신께 맡기겠습니다."이성봉은 임지환이 떠났으니 그 다음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소태진은 수염을 어루만지며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숙연하게 말했다."이 늙은이는 이 선생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을 걸세."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를 돌려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대호야, 병실로 들어와 나의 만압보물상자를 갖고 와.""네 어르신!"밖에 있는 사람이 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몸집이 우람하고 소처럼 튼실한 강철 같은 장정 한 명이 상자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이 선생, 나의 이 만압 보물 상자는 금사 남목으로 만들어졌어, 특히 침술에 쓰이는 금침은 모두 순금으로 되어 당연히 소홀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5화

    어르신의 몸이 점차 회복되는 것을 보고 이성봉은 마음속의 큰 돌을 내려놓는듯했다.자리에 있던 의료진들은 이 장면을 보고 다들 저도 몰래 의아한 표정을 금치 못했고 소태진의 의술에 감탄했다."이 어르신의 병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소 어르신의 치료하에 이렇게 순식간에 생사가 뒤집히다니, 정말 의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른듯합니다!""이 장 모인도 의술에 있어 어느 정도 이룬 게 있다지만 소 어르신 앞에서는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어요!""..."주위 사람들의 감탄은 소태진의 마음을 굉장히 흡족게 했다.하지만 그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건 이 늙은이의 본분일세. 만약 더 일이 없다면 이 늙은이는 먼저 가보겠네, 소항 쪽에 아직도 내가 치료해야 할 환자들이 많아."이성봉은 소태진이 가겠다는 말을 듣고 바로 만류했다."소 어르신께서 아버지를 치료하셨으니 저희 이 씨 집안의 대은인이십니다.""어서 사람을 명해 스카이 호텔 루프탑 전체를 대여하라고 해, 연회를 열어 소 어르신을 대접할 것이다!"이성봉은 사업계에서 수십 년간 일을 하며 세상 물정에 관해선 확실하게 꿰고 있다."이 선생이 이리 열정적으로 초대하니 이 늙은이도 그럼 거절하지 않겠네."소태진도 교활한 사람이라 자연스레 겉치레를 해야 할 때와 거두어야 할 때를 알고 있다.일행은 이 씨 저택에서 걸어 나와 스카이 호텔로 출발하려 했다."저기는 임명의 아닌가? 나간 지 반나절이 되었는데 아직도 여기서 안 가고 뭐하는지."문을 나서자마자 눈치 빠른 이성강은 저택 입구에서 상자를 들고 서있는 임지환을 발견했다.그의 조롱에 임지환은 느긋이 말했다."이 씨네 집이 워낙 외져서 한참을 기다려도 차가 잡히지 않네요.""어이 임씨, 재밌어?""사람이 능력이 안되면 겸손하기라도 해야지, 지금 무슨 잘난 척을 하는 거야?"이성강은 비웃었고 가소롭다는 표정이 가득했다."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저 소 씨가 어르신을 치료했나 보지?"임지환이 무심한 듯 물었다."당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6화

    "감히 어르신을 저주하다니, 정말 죽고 싶어 안달 났나 보군. 우리 이 가의 미움을 사면 반쯤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것과 같다는 것을 모르나 보네!"소태진의 뒤를 따르던 이 가네 가족들은 갑자기 수군대며 임지환을 욕하기 시작했다."성봉 씨, 큰일 났어요!""어르신의 몸이 갑작스레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지금 바이탈까지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요!""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르신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겁니다!"이때 방에 남아 이 어르신을 돌보던 장하명이 비틀대며 달려 나왔다."뭐라고요?"이성봉은 안색이 급격히 변했고 시선은 소태진을 향했다."소 어르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소태진의 안색은 바로 하얗게 질렸다.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이 선생, 당황하지 말아요, 내가 다시 침을 놓아볼 테니.""늦었어요, 지금 상황으로 어르신은 10분도 버티기 어려울 거예요."장하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그 말을 듣자 소태진의 얼굴은 창백해졌다.10분?저 임 씨 녀석이 말한 것과 한 치의 차이도 없었다!설마... 어르신은 정말 죽기 직전 잠깐 기운을 차리신 걸까?이 어르신에게 정말 무슨 변고가 생겨 이 씨 집안에게 밉보이면 그도 감당을 할 수 없게 된다."임 선생, 멈춰주세요!"집안 어르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을 듣고 이성봉은 체면을 차릴새도 없었다.그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임지환을 따라잡고 그의 길을 막아섰다."왜 그러시죠?"임지환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물었다. 그는 전혀 멈춰 설 의향이 없었다."임명의, 죽음을 보고도 지나치시면 안 됩니다!""방금 무례하게 굴었다면 무릎을 꿇고 사죄할게요."이성봉은 말을 하며 임지환의 말을 듣지도 않고 무릎부터 바로 꿇었다."말은 이미 했지만 믿지 않은 건 그쪽이니 다른 사람을 탓하면 안 되죠."임지환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임명의, 멈춰주세요!""제 아버지는 젊었을 때 나라를 위해 출정을 하고 충성을 다했습니다.""아버지가 나라의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7화

    검은 피가 다 흐르고 난 뒤, 임지환의 손은 마치 꽃밭을 날아지나는 벌처럼 은침을 어르신의 몸 곳곳에 찔러 넣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어르신은 고슴도치처럼 찔려졌다.모든 것을 마치고 임지환은 옆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다들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어르신은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이 가네 사람들은 점차 인내를 잃어갔다."어떻게 된 거지? 왜 할아버지는 아직도 일어나시질 않는 거야?""내가 보기에 저 자는 전혀 능력이 없어, 그저 우리의 환심을 사려 할 뿐.""어르신 너무 불쌍하세요, 임종에 이런 죄까지 당하셔야 하다니.""..."그들의 재잘거림에 임지환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정말 이득만 생각하고 교훈을 잊는 사람들이다.이성봉은 안색이 잿빛이 되었고 머릿속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만약 이 가네 어르신이 돌아가신다면 집안의 기반도 흔들릴 것이다. 앞으로 어떤 소란들이 생기게 될지 모른다.이때 이성강만 옆에 서서 음침한 표정을 하고 냉소를 짓고 있다.어르신이 죽기만 하면, 그는 철저히 분가해 첫째와 가업을 뺏을 생각이다."시끄러워! 나 아직 잘 살아있잖아!""어르신..."모든 이 씨집안 사람들은 차가운 숨을 들이쉬며 귀신이라도 본듯했다.어르신은 언제 깨어나신 건지 이미 일어나 앉아 있었다."이 꼴통들, 일은 제대로 못하고 날 죽어라 저주하는 건 아주 하나같이 부지런하네."이 어르신의 목청은 아주 높았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정기가 충만한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몇 년간 병상에 누워있던 환자 같지 않았다."정말 신의 한 수입니다! 임명의는 정말 신이라 할 수 있어요!"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태진은 이 모습을 보고는 바로 두 눈을 크게 뜬 채 흥분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어르신, 방금 깨어나셨으니 지금은 조용히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이 은침은 제가 한 시간 뒤에 뽑을 겁니다.""그리고 보름만 요양하시면, 어르신의 건강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겁니다."임지환은 귀띔을 해준 후 이내 어르신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8화

    "지금 바로 이렇게 주시면 시장님의 체면을 구기는 게 아닌가요?""더군다나 저 임 씨는 그저 의사일 뿐인데, 저희 이 씨 집안의 증정을 받을 자격이나 됩니까?"이성강은 분노가 얼굴에 가득 찼고 내키지 않는듯해 보였다.용은 저택은 비록 어르신의 명의로 되어있지만 평소 대부분 그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그 저택을 자신의 산업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만약 어르신이 임지환에게 선물한다면 그것은 그의 몸에서 살덩어리를 떼어내는 것과도 같다.그것도 몇백억 대의 비계다!"어리석다! 임 선생이 어떤 인물인지 감히 너 따위가 추측할 수 있는 거야?"나에게 생명을 구해준 은혜가 있는 분이다, 그저 저택 하나일 뿐이니 준다면 주는 것이다.""이 일엔 더 이상 끼어들지 마, 시장이 정말 탓을 하려 한다면 당연히 내가 해명을 할 테니."이장호의 태도는 단호했다."하지만..."이성강이 입을 열기도 전, 이장호는 소리를 내어 끊어버렸다."둘째야 그만하고 좀 조용히 해, 방에 가 있으면서 반성하거라."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이 나자 이성강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는 임지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악물고 있던 이 사이로 한마디 내뱉었다."이제 두고 보자!"뒤이어 그는 콧방귀를 뀌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떠났다."임 선생,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우리 둘째가 집에서 워낙 오냐오냐하다 보니 혹시 듣기 거북한 말을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게나."이장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괜찮아요, 개가 짖는다 생각하죠 뭐."이장호처럼 팔방미인인 사람도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임명의, 스카이 호텔에 이미 만찬을 준비했으니 걸음을 옮겨 얘기를 이어가는 게 어떨까요?"이성봉이 적당한 시기에 말을 꺼냈다."임명의, 먹으면서 얘기를 잘 나눠봐요."소태진도 아부를 떨며 말했다."난 아직 물어보고 싶은 의술 상의 문제들이 많네, 선생한테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임지환의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목격한 후, 소

  • 은침 날리는 용왕   제19화

    "언니가 오해했어, 진 도련님이랑 약속을 잡은 건 단지 프로젝트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야."배지수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재빨리 설명했다."알았어, 먼저 밥 먹고 얘기를 해보는 것도 괜찮지.""어차피 감정은 천천히 키워나갈 수 있잖아.""걱정하지 마, 이 일은 나한테 맡겨."전화를 끊은 후, 배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구름과 안개가 감도는 청용산을 바라보며 눈동자에는 강인함이 스쳐지났다."언젠가 이 청용산에 배 가의 자리가 생길 거야!"...스카이 호텔은 강남구의 상업중심에 위치했고 한강과 가까운 강한 시에서 규모가 가장 큰 5성급 호텔이다.저녁 무렵, 새 벤츠 C 클래스 한 대가 호텔 입구에 멈춰 섰다.오피스룩을 한 한수경이 하이힐을 신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배지수가 진 가와 연관이 생긴 후 그녀의 외출용 차량도 점점 수준이 높아졌다.전에 타던 파사트에서 지금의 신상 벤츠 C 클래스까지, 그야말로 비약이라 할 수 있다.이 모든 건 전부 진 가에 감사해야 한다.그러니 오늘의 저녁식사도 절대 실수해서는 안 된다!한수경은 곧장 프런트 데스크로 가 룸을 예약하려 했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한수경이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 서있던 웨이터가 마중을 나왔다."루프탑에 룸 하나 예약해 주세요, 여기서 제일 좋은 룸으로!"한수경이 패기 있게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호텔 루프탑 연회장은 전부 예약되었습니다."웨이터가 답했다."네?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그렇게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나랑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매니저 불러와요, 오늘 정말 믿기질 않네."한수경이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여사님, 저희는 충분히 자세하게 말씀드렸습니다."웨이터가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저희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한수경은 직원을 힐긋 쳐다보고, 고양이 같은 눈매에 분노를 가득 머금고 말했다."내가 말한 거 못 알아들어요? 얘기를 하더라도 로비 매니저랑 할 거예요, 당신이 뭔데?"

최신 챕터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7화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6화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5화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4화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3화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2화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1화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 은침 날리는 용왕   제600화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 은침 날리는 용왕   제599화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