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이는 정말로 아빠를 구하고 싶었다.시선이 마주치고 입술을 틀어 물던 온하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형님.”소청하는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왔어요...?”“할머니는 위층에 계세요?”부승민이 들어오며 물었다.소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과 부승민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안방에는 김정숙이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안색이 잿빛이 된 채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었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그녀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향했다.방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온하랑의 걸음도 점점 느려졌다.문 앞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이대로 시간이 영원히 멈추길 바랐고 김정숙을 차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온하랑은 짙은 한숨을 내쉬고 문고리를 잡았다.문이 천천히 열렸다.김정숙과 눈이 마주친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할머니.”그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그대로 김정숙에서 돌진해 김정숙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할머니...”“그래, 하랑아.”김정숙은 자애로운 모습으로 손을 그녀의 손 위로 포갰다.“할머니는 너를 탓하지 않는단다.”온하랑의 사슴 같은 눈망울에 김정숙은 바로 그녀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그녀의 손녀는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가장 여린 사람이었다.온하랑은 눈앞이 흐려졌다. 눈에서 진주알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할머니, 제가 오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실 거예요...”그간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마음이 안개가 걷히듯 사라져버렸다.김정숙은 온하랑의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그녀는 온하랑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괜찮단다.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단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버지를 위해 진범을 찾겠다는 네 마음은 나도 알고 있었단다. 이런 마음과 끈기는 흔치 않은 것이니 할머니는 너를 탓하지 않는단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10년이 지났다고 귀찮은 일을 피
“넌 영훈이의 혼외자식이 아니란다. 영훈이는 네 아버지가 아니고 삼촌이란다.”김정숙이 말했다.부승민은 순간 숨 쉬는 법을 잊게 되었다.이 소식은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아버지의 혼외자식이 아니라고?'‘아니 부영훈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 삼촌이었다고?'‘그럼 내 어머니는...'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믿기지 않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어릴 때 그렇게 원했던 어머니가 부선월이었으니 말이다.예전에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그제야 풀렸다.그제야 부선월이 왜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주었는지, 왜 부민재가 아닌 ‘혼외자식'이었던 자신을 더 아꼈는지, 왜 자꾸만 자기 일에 간섭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은 그의 어머니 신분으로 그의 결혼 생활에 간섭하고 있었던 것이었다.김정숙은 넋이 나간 부승민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선월이는 네 아버지랑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단다. 하지만 네 아버지는 집안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지. 선월이는 네 아버지를 사랑해서 너를 지우지 않았단다. 그때 나랑 네 할아버지가 너를 낳겠다는 걸 엄청 반대했었지. 하지만 선월이는 고집이 아주 센 아이라 나와 네 할아버지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었어.”“그러다 나중에 네 아버지랑 결혼한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었었지. 그 여자가 선월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높은 곳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 여자 가족들이 나랑 네 할아버지를 찾아와 욕을 퍼부었지. 그제야 선월이도 고집을 조금 내려놓게 된 거야. 너를 네 삼촌의 호적에 올리는 대신 이곳을 떠나기로 타협을 봤어.”이 일은 최국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최씨 일가 사람들은 부승민을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였던 부승호가 나서서 말렸고 최국환 아내의 집안사람들은 배다른 자식이 나타나 자신의 자식과 경쟁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결국 부승민을 부씨 일가에 남길 수 있었다.“사실 네 숙모는 네가 영호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선월이가 너를 가졌
이런 원망과 증오는 비록 부승호가 억누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부민재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고 결국 그런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할머니께서 숨기셨다는 건 전부 절 위해서 그런 것이잖아요.”그에겐 형제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것 외엔 중요한 것이 없었다. 누가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선월이는, 그러니까 네 어머니는... 그간 해외에 오랫동안 힘들게 적응하며 살았으니 너무 탓하지 말렴.”부승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아마도 부선월이 떠나기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리는 것 같았다.“제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고 더는 저랑 하랑이 사이를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저도 어머니로 대할 겁니다.”“그래.”김정숙은 고개를 끄덕였다.“되었다. 너도 얼른 나가 보아라. 난 피곤해서 조금 쉬어야 할 것 같구나.”“네, 할머니. 그럼 쉬세요.”부승민은 그대로 일어나 방을 나갔다.나오자마자 2층 창문에 기대어 서 있는 온하랑을 발견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과 옷자락은 마치 선녀의 모습 같았고 당장이라도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문이 닫히는 소리에 온하랑은 고개를 돌렸다. 입을 열기도 전에 부승민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녀를 꽈악 끌어안았다.그는 머리를 그녀의 목덜미에 파묻은 채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온하랑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왜 그래?”그의 행동이 너무도 수상했다. 김정숙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궁금해졌다.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들려오지 않자 다시 그를 불렀다.“부승민?”몇 분 뒤, 부승민은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금방 알게 된 자신의 정체는 다른 누구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온하랑은 의구심이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형에 대해 할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그냥 할머니가 형 교육을 잘못했다고 자책하셨어. 그리고 예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그냥 추억 회상 좀 했을 뿐이야.”온하랑은 그를 빤히 보다가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겼다.곧 유
부승민은 뜸을 들였다.“저는 왜 어머니가 하랑이한테 그렇게 큰 적의를 드러내시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설마 최국환 재혼한 상대가 하랑이 어머니라서 그러시는 건가요?”최동철의 계모는 온하랑의 친모였다는 것을 부승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온하랑은 이미 임가희와 남처럼 지내고 있었기에 굳이 온하랑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온하랑이 대학 시절부터 최동철과 알고 지냈을 줄은 몰랐다.경주에서 영상 통화를 하던 그날 온하랑의 기분은 그리 썩 좋지 않아 보였다. 그때부터 그는 이미 그녀가 임가희에 대해 알게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그녀는 그와 똑같이 전부 친부와 친모에게 버려진 사람이었다.부승민이 온하랑의 편을 들어주자 부선월은 화가 나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그래! 임가희 그 여우만 아니었으면 최국환과 재혼한 사람은 나였을 거야! 네가 최씨 일가 도련님이 되는 거고 최씨 일가가 전부 네 것이 되는 거라고! 온하랑 그 애도 자기 엄마랑 똑같이 얼굴 하나만 믿고 너를...”최국환과 떨어지게 될 때 최국환은 몰래 그녀를 공항에 데려다주면서 직접 말했었다. 어떻게든 그녀와 아이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이다.그녀는 그렇게 최국환의 말만 믿고 언젠가 자신을 데려가 주기를 바라면서 해외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런데 최국환이 아무런 집안 배경도 없고 술집에서 술이나 파는 여자와 밤을 보내 재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런 여자에게 밀려났으니 부선월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임가희의 뒷조사를 했었고 임가희가 예전에 고향에서 어떤 남자와 결혼한 전적이 있고 딸까지 낳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이 소식을 바로 최씨 일가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임가희가 대체 최국환에게 무슨 술수를 쓴 것인지 최국환은 임가희와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나중에 임가희의 전남편은 사망하게 되었고 그 딸은 부씨 일가에서 키워지게 되었다.부숸월은 처음에는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만 온하랑을 보았었다. 임가희의
그녀는 고기 한 점을 집으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왜 날 쳐다보는 거야?”“아무것도 아니야.”부승민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듯 눈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하랑아, 너...”하지만 말하다 말고 입술을 꾹 다물더니 말을 바꾸었다.“형의 사건이 이미 검찰로 송치됐잖아. 넌 어떻게 생각해?”온하랑은 멈칫하더니 시선을 떨구었다.“딱히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판결을 기다려야지.” “혹시... 나한테 시간 좀 주면 안 될까?...”“뭐?”온하랑은 눈썹을 치켜올렸다.“형의 일 때문에 일부러 나와 멀어지려고 하지 마.”시간을 주면 부민재의 말이 진실이고 추서윤이야말로 온하랑의 아버지를 죽인 주범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온하랑은 시선을 떨어트렸다. 부민재의 사건을 뒤집을 수 있게 할 시간을 달라는 말인가? 부승민은 그렇게까지 부민재의 말을 신뢰하는 걸까? 장국호와 경찰이 굳이 부민재에게 누명을 씌울 이유가 있을까?특히 장국호는 높은 형량에 직면해 있어 제 코가 석 자인데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찰에 협조하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런 그가 경찰 앞에서 거짓 진술을 한 사실이 들통나면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만약 그녀가 장국호라면 그렇게 할 것인가? 부승민을 여전히 믿어도 되는 것일까?온하랑이 말이 없자 부승민은 그녀가 묵인하는 거로 받아들였다. 며칠 후 부승민은 일하던 중 연민우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온하랑이 최근 차를 팔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그녀는 고급 승용차 두 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두 대 모두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다.온하랑이 돈이 부족했던 걸까? 부승민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연민우에게 계속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며칠이 더 지난 후 부승민은 신문을 읽다가 온하랑이 400억을 기부해서 한마음재단을 설립하여 불우한 아이들에게 사랑을 더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부승민은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움켜쥐었다. 신문은 폐지처럼 구겨졌다.온하랑은 대체
온하랑은 잠시 침묵했다.“무슨 소리야. 시간이 나면 지금이라도 당장 할머니를 뵈러 갈 거거든.”“그럼 난데없이 왜 그딴 재단을 세운 건데?”부승민의 질문에 온하랑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그 돈을 내 손에 쥐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차라리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야.”어렸을 때 자신도 버려진 아이로 여겨졌고, 얼마 전 임가희의 정체를 알게 된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때마침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고 싶었기에 자연스럽게 재단을 설립했을 뿐이다. 그녀의 이런 생각을 부승민은 절대 믿지 않았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나면 넌 아무 걱정 없이 떠나도 되겠네?”“...”그녀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 그녀는 촬영할 장면이 몇 개 남았고, 이 동안 재단에 적합한 부이사장과 기타 관리 인력을 뽑아 재단을 운영하게 할 생각이었다. 촬영이 끝나면 그녀는 원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릴 수 있었다.예전에 그녀는 부승민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미래의 삶을 위해 부승민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마음에 찔려서 당황하는 온하랑의 모습을 바라보던 부승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짙은 어둠이 마음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왜 갑자기 떠나려고 해? 형 때문에 그래? 만약 형이 장인어른을 살해한 주범이 아니라고 해도 날 버릴 거야?”온하랑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부승민이 부민재를 꺼내기 위해 가짜 증거까지 만들어 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부승민의 어두운 눈동자를 마주한 온하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숨이 막혔다.“떠나려는 거 아니야.”금방 이혼하고나서 밖에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동안 그녀는 부승민의 집착을 몸소 경험했다. 몇 번이고 밀어냈지만 그는 번번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그녀가 어디를 가든 찾아낼 수 있었다. 따라서 그
“알아. 그저 조금 감정이 북받쳤을 뿐이야.”온하랑은 눈을 내리깔며 그에게 되물었다.“그런데 내가 재단을 설립한 일로 왜 민재 오빠 때문에 떠난다고 생각한 거야? 오빠가 민재 오빠를 주범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유가 증거를 찾을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잖아? 아니면 혹시 애초에 민재 오빠가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속으로는 알고 있어서야?”“아니야. 난 그저 네가 내 곁을 떠날까 봐 두려웠어.” “하지만 며칠 전, 오빠는 나더러 믿고 시간을 달랬잖아. 난 그러기로 했는데 오빠는 날 믿지 않았어...”온하랑은 허벅지를 힘껏 꼬집으며 눈물을 흘렸다.“항상 내 기분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오빠만 생각하잖아.”부승민은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했다.“미안해, 하랑아. 울지마. 네 기분을 신경 안 쓴 게 아니야. 난 그냥...”그는 두 팔을 벌려 온하랑을 끌어안았다.“널 떠날 수 없어서... 앞으로 다시는 널 의심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그 말을 어떻게 믿어.”온하랑은 그를 노려보았다.“예전에도 다시는 나에게 치근덕거리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잖아.”부승민의 어떤 말은 그냥 방귀라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 된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알아차린 온하랑이었다. 부승민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온하랑의 볼에 입을 맞췄다.“너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뻔뻔스럽기 짝이 없네.”온하랑은 미간을 찡그렸다. 부승민은 온하랑이 불쾌해하는 표정이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워서 다시 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오늘 밤 같이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을래?”온하랑은 그를 째려보았다.“됐어, 얼른 가. 난 피곤해서 집에 가서 잘래.”그녀는 부승민을 밀어내고 문을 열었다. 부승민이 따라가려고 발을 뻗는데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부승민은 걸음을 멈추고 앞에 있는 문짝을 바라보았다. 그는 멋쩍게 코를 매만지며 안에 대고 외쳤다.“하랑아, 잘 자. 난 위층으로 올라갈게.”집에 들어온 온하랑은 김시연의 눈
저녁 8시 15분, 선셋 바. 약속 시간은 8시였는데 김시연과 온하랑은 일부러 조금 늦게 왔다.김시연의 말에 따르면 상대방이 한참 기다렸다가 그녀가 오지 않아서 자리를 박차고 가버릴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서였다.술집 내부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두 사람은 안쪽 테이블에 앉아 음료 두 잔을 주문했다. 김시연은 휴대폰을 꺼내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냈다.[전 도착했어요. 어디예요?”[아직 도착하지 못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상대방이 얼른 답장을 보냈다.[네.]김시연은 답장을 보내며 투덜거렸다.“미친, 나보다 너 늦네!”멀지 않은 구석진 테이블에 훤칠한 남자가 나른히 자리에 앉아 지루하게 와인을 음미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가끔 문 쪽을 힐긋 쳐다보았다.세련되고 깔끔한 외모에 금테 안경을 낀 남자는 온몸에서 우아하고 상쾌한 분위기가 풍겼다. 상큼한 봄바람 같은 남자의 매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다가가고 싶게 만들었다.얼마 앉아 있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이 몰려와 대시했다. 그중에는 남자도 여자도 있었지만 모두 그에게 거절당했다.어떤 사람이 들어와 자리에 앉는 것을 본 그는 눈빛이 반짝이더니 천천히 와인을 다 마셨다. 잔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가려고 할 때 갑자기 누군가 그를 불렀다.“도진 오빠?”임연지는 웃으며 다가갔다.“어머, 강남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연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 정말 우연이네요.”임연지는 뒤에 있는 오재원에게 소개했다.“재원아, 이쪽은 우리 사촌 오빠 친구 연도진 씨야.”“이쪽은 오재원이고 사촌 오빠 소꿉친구예요.”연도진에게 친절하게 말하는 임연지의 말 속에 약간의 호감이 담겨 있는 것을 본 오재원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연도진을 훑어보더니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연도진도 눈을 들어 그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손을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전 일이 있어서 이만 가야겠어요.”임연지는 미소를 지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