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민, 날 약 올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부승민은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입가의 상처를 살며시 눌렀다.“내가 감히 어떻게?”온하랑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곤란해하는 부승민의 모습은 처음이었다.부승민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하랑은 곧바로 웃음을 지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레스토랑 이름을 말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여기 룸도 있어.”혹시나 그의 현재 이미지가 다른 사람한테 보이기가 민망할까 봐서 말이다.부승민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연민우에게 예약하라고 말했다.레스토랑 룸에 도착한 후 온하랑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부승민에게 메뉴판을 건넸다.“봐봐. 다른 거 뭐 더 주문할지.” 부승민은 메뉴판을 건네받아 대충 훑어보았다.“양고기스튜?”“좋아.”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먹을 테니 나중에 종업원더러 내 앞에 놓으라고 해.”“너 양고기 좋아해?”“응.”온하랑은 양고기를 즐겨 먹을 뿐만 아니라 양고기 수프를 마시는 것도 좋아했다. 아삭한 양파의 식감과 뽀얗고 진한 수프의 맛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그러나 부승민은 양고기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예전 양고기와 관련된 어떤 것도 집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부승민은 멈칫했다. 주문한 요리 대부분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거나 현재 그의 위장 상태에 적합한 음식이었다.그녀는 그의 취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주문할 수 있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단 두 가지에 불과했다. 생선구이와 초코케이크를 빼면 아는 게 없었다. 게다가 이제 그녀는 초코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결혼 3년 내내, 이혼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녀가 양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처음 이 결혼 생활이 시작될 때부터 그의 정신은 온통 딴 데 팔렸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다. 단지 그가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었다. 부승민은 가슴이 시큰거리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아니지.”부승민은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 전에는 뭔가 알아내려고 일부러 민지훈과 사귀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돼?”온하랑은 얼굴이 굳더니 눈빛이 흔들리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그거야 다르지.”“뭐가 다른데?”부승민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나 속이 뒤집혔다. 마음에 찔리는 듯 온하랑은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달싹였다.“...그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잖아...”더욱 뻔뻔스럽게 말하자면 민지훈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이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그러나 부승민은 달랐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른바 약점 때문에 부승민과 재결합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버지 복수를 위해 어떤 요구든 들어줄 수 있단 말이야?! 하랑아, 하늘에 계신 장인어른도 너의 그런 모습은 원치 않으실 거야. 분명 네가 잘 살아가길 누구보다 바라실 거야.”온하랑은 토라진 어린아이 같았다.“...응.”“다행히 네가 정보를 일찍 알아내 순조롭게 민지훈과 헤어졌으니 망정이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봤어?”“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지...”온하랑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살며시 눈을 들어 부승민의 시선을 마주했다. 마지막 몇 마디는 순식간에 모깃소리만큼 가늘어졌다.부승민은 얼굴빛이 푸르뎅뎅해서 말했다.“흠, 난 아직도 네가 어느 날 밤인가 민지훈이 잘생기고 해맑은 데다 진취적이라서 좋아한다며 널 귀찮게 하지 말라던 말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눈을 깜박이던 온하랑은 대뜸 얼굴을 붉히며 둘러대느라 애썼다.“어... 그러니까... 그건 의심할까 봐 진짜처럼 연기했을 뿐이지...”“또 뭐랬더라. 내가 준 돈으로 민지훈을 먹여 살리겠다며 나 더라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라고 했었는데.”온하랑은 얼굴이 울긋불긋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그거 다 농담이야... 농담...”“하, 너 분명히 정보를 알아냈으면서 새해 전날 내가 너더러 민지훈
이때 종업원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잇달아 음식을 테이블에 올렸다. 부승민은 젓가락을 들더니 화제를 바꿨다.“먹자.”테이블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가득했다. 양고기스튜는 온하랑의 앞에 놓았는데 여러 가지 음식의 냄새에 섞여 양고기 냄새가 선명하지 않았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수시로 양고기슈트를 향해 젓가락을 뻗는 것을 보며 호기심에 물었다.“정말 그렇게 맛있어?”“가능하면 한번 먹어볼래?”그러자 부승민은 젓가락을 뻗어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입에 가까이 가져가자마자 심한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났다. 그는 억지로 한입 베어 물고는 한참을 꼭꼭 씹은 다음 눈을 감고 삼켰다.“어때?”온하랑은 그의 표정을 보며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뭐 나쁘지 않네.”부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입에 안 맞으면 억지로 먹지 마.”온하랑이 말했다. 이 말은 어딘가 부승민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린 듯했다. 그는 다시 한 조각을 집었다.식사하던 도중에 온하랑은 입술을 감쳐물더니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오빠.”“응?”부승민이 고개를 들었다.“고마워.”온하랑은 진심으로 말했다.“뭐가 고마운데?”“비록 오빠가 나서서 나와 추서윤의 거래를 막아 내가 알 권리를 박탈했지만, 그래도 감사해...”부승민은 멈칫하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온하랑의 정체를 숨긴 건 그녀를 위해서였지만,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숨긴 데에는 나름의 사심이 들어가 있었다.그는 그녀가 그 사실을 떠올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마침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여서 그를 떠나갈까 봐 두려웠다. 가능하다면 이 사실을 평생 숨기고 싶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안다면 아이가 행방불명인 채로 계속 밖에서 떠돌게 했다고 그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부승민은 그녀가 진짜 알게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천만에.”부승민은 화제를 돌렸다.“너 아까는 그런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또 믿는 거야?”“안 돼?”부승민은 온하랑의 뾰로통한 표정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돼.
온하랑은 뭔가 마음이 허무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면서 아주 복잡했다.수년간의 짝사랑이 마침내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고 이미 이혼했다...부승민은 항상 그녀와 재결합하고 싶어 했다.온하랑은 그날 연회에서 김시연이 그녀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아직도 부승민을 사랑해요?’아직도 사랑하는 걸까?온하랑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할 수 없었다. 이혼한 지 꽤 오래지났지만, 그녀는 지금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온하랑은 여전히 부승민을 좋아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도움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의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다.다만 그 애정이 10대와 스무 살 때처럼 순수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을 뿐이다. 과거에 부승민은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고, 그녀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하고 일했다.그러나 현재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저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있어도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에게는 다른 할 일이 생겼다. 아직 그녀는 재결합할 계획이 없었다. 그냥 자연의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온하랑은 몸을 뒤척이며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정월 17일 아침 부승민의 운전기사가 7시 30분에 온하랑의 집 아래에 도착했다. 온하랑이 뒷좌석 문을 열자 부시아는 작은 책가방을 가운데로 옮기고 있었다.“숙모, 빨리 타요.”반대편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문서를 보고 있던 부승민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온하랑은 차 문을 닫았다.“시아야.”“네?”“강남에서의 첫 등원이라 긴장돼?”“아니요!”부시아는 작은 얼굴을 쳐들며 말했다.“그럼 됐어.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이랑 잘 지내야 해. 무슨 일이 생기면 삼촌과 고모한테 바로 전화해. 알았지?”“네, 숙모.”“물건은 다 챙겼어?”온하랑은 부시아의 작은 책가방을 보며 물었다. 온하랑을 흘긋거리던 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지금 그녀가 부시아를 챙기는
부승민은 회사로 가는 길에 온하랑을 경찰서 앞에 내려 주었다. 온하랑은 자기 차를 몰고 돌아갔다. 운전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그녀는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휴대폰 너머에서 젊고 열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보세요? 온하랑 씨 맞으시죠?”“맞는데요. 누구시죠?”“저는 송 감독님의 조수 서연우입니다. 감독님이 하랑 씨와 상의할 일이 있으신데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온하랑은 의아해서 물었다.“송 감독님이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데요?”서연우가 말했다.“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기 불편한데 아마도 하랑 씨 배역에 관한 문제 같아요. 혹시 시간 되시면 잠시 촬영장에 와주실 수 있으세요?”온하랑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네. 지금 갈게요.”어쨌든 그녀는 촬영장에서 몇 장면을 찍었다. 추서윤이 경찰에 연행된 진짜 이유에 대해 알게 된 제작진은 아무래도 추서윤을 갈아치울 생각인 것 같았다.그래서 아마 지금 새로운 후보를 물색 중일 것이다. 어쩌면 온하랑이 촬영한 장면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온하랑은 앞 골목에서 유턴해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에는 스태프들이 옆으로 숨어 있었고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고 있었으며 송재열은 모니터 뒤에 근엄하게 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한 배우가 웃음을 터뜨려서 NG를 내는 바람에 한 장면을 두 번 반복 촬영했다. 온하랑은 스태프 옆에 서서 지켜보았다.이때 배우의 디테일과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송재열이 직접 가서 시범을 보여주었다.전체 장면을 다 찍은 후 배우들은 휴식을 취했다. 일부는 대본을 들고 다음 장면을 촬영할 준비를 하고 일부는 분장하러 갔다.스태프들은 현장과 소품을 정리했다. 송재열은 모니터 앞에 앉아 방금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온하랑은 천천히 송재열의 뒤로 가 모니터에 시선을 옯겼다. 송재열은 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왔어요?”운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송 감독님, 저 찾으셨어요?”“하랑
스트프들이 멈칫하더니 소품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동안 매니저들은 배우를 부르러 갔다.“잠깐만요.”송 감독은 환성기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배우와 카메라맨을 불러 장면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배우들은 매우 숙련된 상태라 한 번 연기를 하고 바로 통과했다. 송 감독은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 방금 촬영한 장면을 돌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 훨씬 편해졌어요.”온하랑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감독님,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없으면 그녀는 먼저 갈 생각이었다. 송 감독은 그 말에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네, 저쪽에 가서 앉아서 얘기합시다.”“좋아요.”온하랑은 대답했지만 조금 당황했다.또 무슨 일이 있지? 아마도 내가 촬영한 장면을 삭제하는 거겠지.온하랑은 송재열 맞은편에 앉았다. 조수가 물 두 잔을 가져왔다. 그녀는 조수에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웃으며 말했다.“감독님, 무슨 일이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송재열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네.”“구미호 역할을 하랑 씨가 계속 맡아주시면 좋겠어요...”“그러죠... 네? 잠시만요?!”온하랑은 당황한 표정으로 송재열을 바라보았다.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내가 출연한 장면을 삭제하는 게 아니고요?”그녀는 자신의 장면을 삭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차피 그녀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누가 하랑 씨 장면을 삭제한대요? 혹시 연우의 전달에 문제가 있어 오해하신 건가요?”“아니요... 연우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 생각이에요. 새로운 배우를 찾으시는 거 아니었어요?...”송재열은 그 말에 손깍지를 끼고 말했다.“다른 배우를 찾을 생각도 했지만, 하랑 씨도 알다시피 촬영하려면 스케줄을 미리 짜야 하는데 대부분 배우는 이미 스케줄이 꽉 찼어요. 지금 바로 촬영에 투입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아요. 그런 배우들도 오디션을 봤지만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서 고민 끝에 하랑 씨가 한
“그래, 좋아.”송재열은 기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본을 가져와 재빨리 넘기며 구미호 출연 장면을 찾았다.“여기로 하지. 한 번 봐봐.”온하랑은 대본을 건네받아 열심히 읽었다. 이 장면은 거의 끝날 때 구미호가 남자 주인공에게 맞아 심각한 상처를 입고 죽기 직전에 남자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며 구미호 성격의 유래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화가 끝날 무렵 구미호는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한다.구미호, 소민은 어렸을 때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그녀는 여인으로 둔갑한 백 년 묵은 여우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여우 귀를 가진 인간 모습의 반인반수였다. 인간 세상에 살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괴물로 취급되어 학대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나 4, 5살까지 밖에서 떠돌다가 한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할아버지 집은 몹시 가난했고, 소민은 마르고 약해 또래 친구들로부터 자주 따돌림과 조롱을 당했다. 누구도 그녀와 함께 놀려고 하지 않았다. 한번은 괴롭힘을 당한 후 혼자 연못가로 달려가서 펑펑 울 때였다. 그녀와 비슷한 또래인 같은 마을의 한 소녀가 다가왔다.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그 소녀는 그들과 함께 괴롭히지 않고 항상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소녀가 곁으로 다가와 사탕을 건네자 소민은 고마워서 어쩔 바를 몰랐다. 그때부터 소녀에 대한 소민의 마음은 점점 달라졌다.그러던 어느 날 선계의 거대한 악당 조직이 갑자기 인간 세상에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소민과 아이들을 잡아갔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몇 명 죽이자 나머지 아이들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아이들을 잡아가는 도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숲에서 쉬기 위해 소민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다 같이 나무에 묶어버렸다. 갑자기 소민의 여우 귀가 움직이며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녀는 오감이 예민해서 보통 사람보다 멀리 보고 들을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소민은 소변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만약 다른 아이였다면 악당은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지만 소
“...만약 그때 사제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나도 너희 스승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면 네가 나를 좋아했을까?”악당이 되기 전,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만 해도 그녀는 선량했다. 분명 자신이 사제와 함께 갈 수 있었지만 소민은 소녀를 위해 희생했다.온하랑은 눈을 뜨고 잠시 감정을 추스르다가 바닥에서 일어섰다.“보셨죠? 감독님. 전 연기에 소질이 없어요.”소민의 캐릭터는 정말 입체적으로 설정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악 속에 선이 있고, 선 속에 악이 있었다. 비록 악당이지만 미워할 수 없었다.송재열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소질이 없다니! 정말 너무 잘했어! 그냥 소민 본인 같았어!”“아뇨, 감독님. 마음에도 없는 칭찬하지 마세요...”“내가 그럴 사람이야? 전부 사실이야, 하랑 씨. 난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아. 자네는 정말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어. 연기자의 길을 걷지 않으면 재능을 낭비하는 거야...” “하하...”온하랑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감독님, 제가 무슨 재능이 있다고 그래요...”“자꾸 겸손 떨지 마. 자네가 대역을 연기할 때부터 난 자네가 좋은 재목이란 걸 알아봤다고. 금방 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몇 년 연기 한 배우보다 NG가 적었어.”“아니요...”온하랑은 송재열의 말에 다소 흔들리는 듯했다. 그러자 송재열은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였다.“하랑 씨, 내가 정말 자네보다 적합한 배우를 찾을 수 없어 그러는데 그냥 자네가 연기하면 안 될까? 게다가 추서윤이 이번에 일이 터진 것도 자네와 관련이 있지 않아? 자네가 대신 그 역할을 맡으면 정말 딱 좋잖아. 안 그래?”뭐가 딱 좋단 말이지?온하랑은 망설이며 말했다.“죄송해요, 송 감독님. 제가 생각해 봐도 될까요?”“그래, 그래! 이틀 동안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 마침, 이틀은 소민의 촬영 장면이 없거든.”송재열의 태도만 보면 마치 온하랑이 고민 끝에 무조건 동의할 것 같았다.온하랑이 집에 돌아왔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