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뭔가 마음이 허무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면서 아주 복잡했다.수년간의 짝사랑이 마침내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고 이미 이혼했다...부승민은 항상 그녀와 재결합하고 싶어 했다.온하랑은 그날 연회에서 김시연이 그녀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아직도 부승민을 사랑해요?’아직도 사랑하는 걸까?온하랑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할 수 없었다. 이혼한 지 꽤 오래지났지만, 그녀는 지금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온하랑은 여전히 부승민을 좋아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도움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의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다.다만 그 애정이 10대와 스무 살 때처럼 순수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을 뿐이다. 과거에 부승민은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고, 그녀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하고 일했다.그러나 현재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저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있어도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에게는 다른 할 일이 생겼다. 아직 그녀는 재결합할 계획이 없었다. 그냥 자연의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온하랑은 몸을 뒤척이며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정월 17일 아침 부승민의 운전기사가 7시 30분에 온하랑의 집 아래에 도착했다. 온하랑이 뒷좌석 문을 열자 부시아는 작은 책가방을 가운데로 옮기고 있었다.“숙모, 빨리 타요.”반대편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문서를 보고 있던 부승민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온하랑은 차 문을 닫았다.“시아야.”“네?”“강남에서의 첫 등원이라 긴장돼?”“아니요!”부시아는 작은 얼굴을 쳐들며 말했다.“그럼 됐어.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이랑 잘 지내야 해. 무슨 일이 생기면 삼촌과 고모한테 바로 전화해. 알았지?”“네, 숙모.”“물건은 다 챙겼어?”온하랑은 부시아의 작은 책가방을 보며 물었다. 온하랑을 흘긋거리던 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지금 그녀가 부시아를 챙기는
부승민은 회사로 가는 길에 온하랑을 경찰서 앞에 내려 주었다. 온하랑은 자기 차를 몰고 돌아갔다. 운전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그녀는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휴대폰 너머에서 젊고 열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보세요? 온하랑 씨 맞으시죠?”“맞는데요. 누구시죠?”“저는 송 감독님의 조수 서연우입니다. 감독님이 하랑 씨와 상의할 일이 있으신데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온하랑은 의아해서 물었다.“송 감독님이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데요?”서연우가 말했다.“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기 불편한데 아마도 하랑 씨 배역에 관한 문제 같아요. 혹시 시간 되시면 잠시 촬영장에 와주실 수 있으세요?”온하랑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네. 지금 갈게요.”어쨌든 그녀는 촬영장에서 몇 장면을 찍었다. 추서윤이 경찰에 연행된 진짜 이유에 대해 알게 된 제작진은 아무래도 추서윤을 갈아치울 생각인 것 같았다.그래서 아마 지금 새로운 후보를 물색 중일 것이다. 어쩌면 온하랑이 촬영한 장면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온하랑은 앞 골목에서 유턴해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에는 스태프들이 옆으로 숨어 있었고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고 있었으며 송재열은 모니터 뒤에 근엄하게 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한 배우가 웃음을 터뜨려서 NG를 내는 바람에 한 장면을 두 번 반복 촬영했다. 온하랑은 스태프 옆에 서서 지켜보았다.이때 배우의 디테일과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송재열이 직접 가서 시범을 보여주었다.전체 장면을 다 찍은 후 배우들은 휴식을 취했다. 일부는 대본을 들고 다음 장면을 촬영할 준비를 하고 일부는 분장하러 갔다.스태프들은 현장과 소품을 정리했다. 송재열은 모니터 앞에 앉아 방금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온하랑은 천천히 송재열의 뒤로 가 모니터에 시선을 옯겼다. 송재열은 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왔어요?”운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송 감독님, 저 찾으셨어요?”“하랑
스트프들이 멈칫하더니 소품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동안 매니저들은 배우를 부르러 갔다.“잠깐만요.”송 감독은 환성기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배우와 카메라맨을 불러 장면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배우들은 매우 숙련된 상태라 한 번 연기를 하고 바로 통과했다. 송 감독은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 방금 촬영한 장면을 돌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 훨씬 편해졌어요.”온하랑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감독님,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없으면 그녀는 먼저 갈 생각이었다. 송 감독은 그 말에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네, 저쪽에 가서 앉아서 얘기합시다.”“좋아요.”온하랑은 대답했지만 조금 당황했다.또 무슨 일이 있지? 아마도 내가 촬영한 장면을 삭제하는 거겠지.온하랑은 송재열 맞은편에 앉았다. 조수가 물 두 잔을 가져왔다. 그녀는 조수에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웃으며 말했다.“감독님, 무슨 일이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송재열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네.”“구미호 역할을 하랑 씨가 계속 맡아주시면 좋겠어요...”“그러죠... 네? 잠시만요?!”온하랑은 당황한 표정으로 송재열을 바라보았다.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내가 출연한 장면을 삭제하는 게 아니고요?”그녀는 자신의 장면을 삭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차피 그녀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누가 하랑 씨 장면을 삭제한대요? 혹시 연우의 전달에 문제가 있어 오해하신 건가요?”“아니요... 연우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 생각이에요. 새로운 배우를 찾으시는 거 아니었어요?...”송재열은 그 말에 손깍지를 끼고 말했다.“다른 배우를 찾을 생각도 했지만, 하랑 씨도 알다시피 촬영하려면 스케줄을 미리 짜야 하는데 대부분 배우는 이미 스케줄이 꽉 찼어요. 지금 바로 촬영에 투입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아요. 그런 배우들도 오디션을 봤지만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서 고민 끝에 하랑 씨가 한
“그래, 좋아.”송재열은 기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본을 가져와 재빨리 넘기며 구미호 출연 장면을 찾았다.“여기로 하지. 한 번 봐봐.”온하랑은 대본을 건네받아 열심히 읽었다. 이 장면은 거의 끝날 때 구미호가 남자 주인공에게 맞아 심각한 상처를 입고 죽기 직전에 남자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며 구미호 성격의 유래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화가 끝날 무렵 구미호는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한다.구미호, 소민은 어렸을 때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그녀는 여인으로 둔갑한 백 년 묵은 여우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여우 귀를 가진 인간 모습의 반인반수였다. 인간 세상에 살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괴물로 취급되어 학대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나 4, 5살까지 밖에서 떠돌다가 한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할아버지 집은 몹시 가난했고, 소민은 마르고 약해 또래 친구들로부터 자주 따돌림과 조롱을 당했다. 누구도 그녀와 함께 놀려고 하지 않았다. 한번은 괴롭힘을 당한 후 혼자 연못가로 달려가서 펑펑 울 때였다. 그녀와 비슷한 또래인 같은 마을의 한 소녀가 다가왔다.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그 소녀는 그들과 함께 괴롭히지 않고 항상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소녀가 곁으로 다가와 사탕을 건네자 소민은 고마워서 어쩔 바를 몰랐다. 그때부터 소녀에 대한 소민의 마음은 점점 달라졌다.그러던 어느 날 선계의 거대한 악당 조직이 갑자기 인간 세상에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소민과 아이들을 잡아갔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몇 명 죽이자 나머지 아이들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아이들을 잡아가는 도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숲에서 쉬기 위해 소민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다 같이 나무에 묶어버렸다. 갑자기 소민의 여우 귀가 움직이며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녀는 오감이 예민해서 보통 사람보다 멀리 보고 들을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소민은 소변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만약 다른 아이였다면 악당은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지만 소
“...만약 그때 사제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나도 너희 스승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면 네가 나를 좋아했을까?”악당이 되기 전,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만 해도 그녀는 선량했다. 분명 자신이 사제와 함께 갈 수 있었지만 소민은 소녀를 위해 희생했다.온하랑은 눈을 뜨고 잠시 감정을 추스르다가 바닥에서 일어섰다.“보셨죠? 감독님. 전 연기에 소질이 없어요.”소민의 캐릭터는 정말 입체적으로 설정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악 속에 선이 있고, 선 속에 악이 있었다. 비록 악당이지만 미워할 수 없었다.송재열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소질이 없다니! 정말 너무 잘했어! 그냥 소민 본인 같았어!”“아뇨, 감독님. 마음에도 없는 칭찬하지 마세요...”“내가 그럴 사람이야? 전부 사실이야, 하랑 씨. 난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아. 자네는 정말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어. 연기자의 길을 걷지 않으면 재능을 낭비하는 거야...” “하하...”온하랑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감독님, 제가 무슨 재능이 있다고 그래요...”“자꾸 겸손 떨지 마. 자네가 대역을 연기할 때부터 난 자네가 좋은 재목이란 걸 알아봤다고. 금방 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몇 년 연기 한 배우보다 NG가 적었어.”“아니요...”온하랑은 송재열의 말에 다소 흔들리는 듯했다. 그러자 송재열은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였다.“하랑 씨, 내가 정말 자네보다 적합한 배우를 찾을 수 없어 그러는데 그냥 자네가 연기하면 안 될까? 게다가 추서윤이 이번에 일이 터진 것도 자네와 관련이 있지 않아? 자네가 대신 그 역할을 맡으면 정말 딱 좋잖아. 안 그래?”뭐가 딱 좋단 말이지?온하랑은 망설이며 말했다.“죄송해요, 송 감독님. 제가 생각해 봐도 될까요?”“그래, 그래! 이틀 동안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 마침, 이틀은 소민의 촬영 장면이 없거든.”송재열의 태도만 보면 마치 온하랑이 고민 끝에 무조건 동의할 것 같았다.온하랑이 집에 돌아왔을 때
오후 5시 30분, 온하랑은 제시간에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선생님의 인솔하에 아이들이 줄을 서서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한줄 한줄 비슷하게 생긴 작은 펭귄 같았다. 온하랑은 순간 눈앞이 아물아물했다.부시아는 온하랑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외치려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다물었다. 꼬마는 선생님과 말하고 온하랑에게 뛰어갔다.그제야 온하랑은 부시아를 보고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불렀다.“시아야.”온하랑 앞에 다가온 부시아는 고개를 돌려 반 친구를 흘긋 보고는 말했다.“숙모, 집에 가요.”“그래.”온하랑은 부시아의 등에서 작은 책가방을 내려 손에 들었다. 다른 한 손은 부시아의 손을 잡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시아야, 오늘 어린이집에서 어땠어?”“괜찮았어요. 반 친구들도 친절하고요.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너무 지나치게 챙겨줘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선생님은 부시아의 집안 조건이 특별한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막 해외에서 왔기에 시아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그래, 그래. 우리 시아는 똑똑하니까 불편할 수 있지. 일주일만 참을래? 일주일 후에 선생님이랑 말할게. 시아도 무슨 의견이 있으면 바로 선생님께 말하면 돼. 선생님도 시아를 잘 이해할 수 있게.”항상 선생님의 관심 아래에 있는 것도 확실히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시아는 오늘 처음이고 어린아이인지라 선생님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시아가 어린이집에 익숙해지고 나면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달라고 하면 된다.“부시아!”뒤에서 부드러운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력이 좋은 부시아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짝꿍의 목소리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시아는 못 들은 척하며 온하랑에게 말했다.“좋아요. 숙모가 만들어준 도넛 너무 맛있어요. 친구들도 다 좋아했어요!”“좋으면 됐어.”온하랑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시아야, 방금 누가 널 부르지 않았어?”부시아는 작은 얼굴을 들고 눈을 깜
“네?!”온하랑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끄고 차 키를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장국호가 강남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누가 자수했다고?!소식을 들은 배후의 사람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죄를 뒤집어쓸 사람을 보낸 게 틀림없을 것이다.경찰청에 도착한 온하랑은 주차하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청장사무실을 찾아갔다.똑똑똑!다급한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온하랑이 외쳤다.“아저씨, 안에 계세요? 저예요. 하랑이.”“들어와.”온하랑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아저씨.”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그녀는 청장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보승민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오빠?”부승민이 왜 여기 있는 거지?부승민은 고개를 치켜들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일단 앉아서 말해.”온하랑은 청장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승민 옆에 앉았다.“아저씨, 방금 자수한 사람이 있다는 말 사실이에요? 그때 사건과 관련이 있나요?”청장을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 옆에 있는 부승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지금 심문 중이야.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을 거야.”청장은 손에 들린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난 취조실에 가서 볼 테니 먼저 여기 앉아 있어.”“네.”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가방끈을 꽉 그러쥐었다. 곧 진실이 밝혀지고 마침내 아버지를 위한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청장은 사무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온하랑은 한숨을 돌리고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바라보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앞으로 몸을 숙인 부승민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은 채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꼬고 책상을 응시했다.“자수할 사람을 데리고 왔어.”온하랑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자수하는 사람은 오빠가 찾았어?”다시 말해 배후 주모자가 보낸 방패막이가 아니라는 말이다.“고마워, 오빠.”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인 부승민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는 자수한 사람이 부민재라고, 그녀의 아버지 죽음이 부 씨 형제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온하라은 부승민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마침내 부승민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입술을 살쩍 벌리고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왜 부민재야?”어떻게 부민재일 수 있지?마치 마른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혼란스러워졌다. 부민재가 어떻게 납치 사건과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돼 있단 말이지?!할아버지는 그녀를 입양할 생각을 제일 먼저 한 사람은 부민재라고 했다. 온하랑의 아버지가 간을 기증해 할아버지를 살려주신 데 대한 고마움으로 그녀를 입영하라고 제의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부민재를 존경했다...갑자기 민지훈이 그들 가족을 해외로 보낸 사람이 손가락이 여섯 개라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부민재의 운전기사도 손가락이 여섯 개였는데 온하랑은 전혀 그들을 한데 엮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온하랑이 이렇게 묻자 부승민은 쓴웃음을 지었다.“놀랗지? 나도 방금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너와 같은 반응이었어.”“도대체 무슨 일인데?”온하랑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왜... 부민재가 왜 추서윤을 납치한 건데...”추서윤은 그때 부승민의 여자 친구이자 부민재의 제수였는데 왜 추서윤을 납치한단 말인가?“추서윤을 납치했다고?”부승민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다 속은 거야...”“무슨 말이야?”부승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납치 사건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전부 자작극이었어.”넋을 잃고 부승민을 바라보던 온하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납치 사건이 가짜였다고?그럼 아버지의 죽음은 어떻게 된 거지?“설 전날 밤 형수님이 했던 말 아직도 기억해? 형이 밖에 다른 여자가 있는데 형수님이 따져 물었을 때 그 여자와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자신이 결백하다고 했지만 끝내 그 여자가 누군지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던 말.”온하랑의 머릿속에 문득 무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눈썹과 입꼬리가 떨려왔다.“누군지 짐작 가?”“추서윤이야?”온하랑은 어렴풋이 이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것처럼 믿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