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30분, 온하랑은 제시간에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선생님의 인솔하에 아이들이 줄을 서서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한줄 한줄 비슷하게 생긴 작은 펭귄 같았다. 온하랑은 순간 눈앞이 아물아물했다.부시아는 온하랑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외치려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다물었다. 꼬마는 선생님과 말하고 온하랑에게 뛰어갔다.그제야 온하랑은 부시아를 보고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불렀다.“시아야.”온하랑 앞에 다가온 부시아는 고개를 돌려 반 친구를 흘긋 보고는 말했다.“숙모, 집에 가요.”“그래.”온하랑은 부시아의 등에서 작은 책가방을 내려 손에 들었다. 다른 한 손은 부시아의 손을 잡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시아야, 오늘 어린이집에서 어땠어?”“괜찮았어요. 반 친구들도 친절하고요.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너무 지나치게 챙겨줘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선생님은 부시아의 집안 조건이 특별한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막 해외에서 왔기에 시아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그래, 그래. 우리 시아는 똑똑하니까 불편할 수 있지. 일주일만 참을래? 일주일 후에 선생님이랑 말할게. 시아도 무슨 의견이 있으면 바로 선생님께 말하면 돼. 선생님도 시아를 잘 이해할 수 있게.”항상 선생님의 관심 아래에 있는 것도 확실히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시아는 오늘 처음이고 어린아이인지라 선생님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시아가 어린이집에 익숙해지고 나면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달라고 하면 된다.“부시아!”뒤에서 부드러운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력이 좋은 부시아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짝꿍의 목소리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시아는 못 들은 척하며 온하랑에게 말했다.“좋아요. 숙모가 만들어준 도넛 너무 맛있어요. 친구들도 다 좋아했어요!”“좋으면 됐어.”온하랑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시아야, 방금 누가 널 부르지 않았어?”부시아는 작은 얼굴을 들고 눈을 깜
“네?!”온하랑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끄고 차 키를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장국호가 강남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누가 자수했다고?!소식을 들은 배후의 사람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죄를 뒤집어쓸 사람을 보낸 게 틀림없을 것이다.경찰청에 도착한 온하랑은 주차하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청장사무실을 찾아갔다.똑똑똑!다급한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온하랑이 외쳤다.“아저씨, 안에 계세요? 저예요. 하랑이.”“들어와.”온하랑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아저씨.”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그녀는 청장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보승민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오빠?”부승민이 왜 여기 있는 거지?부승민은 고개를 치켜들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일단 앉아서 말해.”온하랑은 청장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승민 옆에 앉았다.“아저씨, 방금 자수한 사람이 있다는 말 사실이에요? 그때 사건과 관련이 있나요?”청장을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 옆에 있는 부승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지금 심문 중이야.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을 거야.”청장은 손에 들린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난 취조실에 가서 볼 테니 먼저 여기 앉아 있어.”“네.”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가방끈을 꽉 그러쥐었다. 곧 진실이 밝혀지고 마침내 아버지를 위한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청장은 사무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온하랑은 한숨을 돌리고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바라보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앞으로 몸을 숙인 부승민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은 채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꼬고 책상을 응시했다.“자수할 사람을 데리고 왔어.”온하랑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자수하는 사람은 오빠가 찾았어?”다시 말해 배후 주모자가 보낸 방패막이가 아니라는 말이다.“고마워, 오빠.”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인 부승민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는 자수한 사람이 부민재라고, 그녀의 아버지 죽음이 부 씨 형제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온하라은 부승민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마침내 부승민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입술을 살쩍 벌리고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왜 부민재야?”어떻게 부민재일 수 있지?마치 마른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혼란스러워졌다. 부민재가 어떻게 납치 사건과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돼 있단 말이지?!할아버지는 그녀를 입양할 생각을 제일 먼저 한 사람은 부민재라고 했다. 온하랑의 아버지가 간을 기증해 할아버지를 살려주신 데 대한 고마움으로 그녀를 입영하라고 제의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부민재를 존경했다...갑자기 민지훈이 그들 가족을 해외로 보낸 사람이 손가락이 여섯 개라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부민재의 운전기사도 손가락이 여섯 개였는데 온하랑은 전혀 그들을 한데 엮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온하랑이 이렇게 묻자 부승민은 쓴웃음을 지었다.“놀랗지? 나도 방금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너와 같은 반응이었어.”“도대체 무슨 일인데?”온하랑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왜... 부민재가 왜 추서윤을 납치한 건데...”추서윤은 그때 부승민의 여자 친구이자 부민재의 제수였는데 왜 추서윤을 납치한단 말인가?“추서윤을 납치했다고?”부승민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다 속은 거야...”“무슨 말이야?”부승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납치 사건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전부 자작극이었어.”넋을 잃고 부승민을 바라보던 온하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납치 사건이 가짜였다고?그럼 아버지의 죽음은 어떻게 된 거지?“설 전날 밤 형수님이 했던 말 아직도 기억해? 형이 밖에 다른 여자가 있는데 형수님이 따져 물었을 때 그 여자와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자신이 결백하다고 했지만 끝내 그 여자가 누군지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던 말.”온하랑의 머릿속에 문득 무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눈썹과 입꼬리가 떨려왔다.“누군지 짐작 가?”“추서윤이야?”온하랑은 어렴풋이 이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것처럼 믿기지
마음에 찔리는 일을 하지 않은 한 말이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그녀와 부승민 때문이 아니라 부민재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민재에게 불리한 유언을 남기고 그녀에게 보상의 의미로 많은 재산을 남긴 거였다...부승민은 침묵했다. 커다란 손을 온하랑의 어깨에 얹고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를 위로했다.온하랑은 갑자기 그의 팔을 뿌리치고 싶은 생각이 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몇 걸음 떨어져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만지지 마!”부승민의 손은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지금 온하랑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근본 원인은 형제 간의 허점이 다른 사람에게 악용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그에게도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었으니, 그녀가 그에게 가차 없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랑아, 지금 네가 힘들다는 거 알아. 나를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해. 억지로 참으려고 하지 마.”온하랑은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주먹을 꽉 그러쥐고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이를 악물고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꺼져!”온하랑은 뒤돌아서서 청장 사무실을 나갔다.“하랑아...”부승민은 얼른 큰 보폭으로 얼른 그녀를 쫓아갔다. 발걸음을 멈춘 온하랑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따라오지 마. 혼자 있게 내버려둬.”“알았어...”부승민은 입술을 꽉 다물고 힘겹게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그녀는 지금 그가 미치도록 증오스러울 것이다...예전 추서윤을 위해 여러 번이나 온하랑에게 상처를 준 일은 전부 우스운 일이 되어버렸다.차에 돌아와 앉은 온하랑은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고 눈을 감았다. 사건의 진실을 듣는 순간 부승민을 향한 분노가 최대치에 달했다.이성적으로는 그녀도 부승민 역시 속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를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왜 그는 분명 추서윤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받아줬단 말인가? 왜 그는 추서윤의 거짓말과 목적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까? 왜 그는 추서윤에게 그토록
주얼리샵에서 나올 때 낯익은 모습이 부선월의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그 모습은 이미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가게의 입구에서 사라진 뒤였다. 눈을 들어 가게 간판을 보니 술집이었다.온하랑이 저 바에 간 건가?부선월은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온하랑의 차를 발견했다. 설핏 어두운 빛이 눈동자에 스치더니 부선월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했다.대낮이라 바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몇 명의 직원이 상자를 나르며 물건을 채우느라 바삐 돌아쳤다. 바에 있던 젊은 남자 바텐더는 재료를 보충하고 있었다.술을 몇 병 주문한 온하랑은 자리를 찾아 앉아 병뚜껑을 따서 술을 잔에 따른 후 고개를 젖히고 쭉 들이켰다.씁쓸하고 매콤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체내에 흘러 들어갔다. 온하랑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마음 깊은 곳의 우울함과 고통은 전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하랑은 몇 잔을 더 따라 마셨다.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익숙하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지며 온하랑의 눈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가득 찼다. 마침내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강직하고 고상한 아버지는 자본가의 손에 살해당한 게 아니라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음모에 연루되어 사망했다. 부씨 가문의 권력 싸움, 야심으로 가득 찬 추서윤의 자작극 납치 사건에 휘말려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려다가 살해당했다.온하랑은 차라리 아버지가 부도덕한 자본가들에게 살해당하는 한 이렇게 헛되이 죽는 건 바라지 않았다. 도무지 마음속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몇 잔을 연달아 마셨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부승민의 그림자가 눈앞에 비친 것 같았다. 술잔을 들고 눈썹을 찡그린 채 손을 흔들며 그림자를 흩뜨렸다.부승민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어떻게 추서윤의 거짓말도 눈치채지 못했을까?어이없게도 추서윤에게 오랜 세월 속아왔다. 온하랑은 한심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버젓한 BX 그룹의 회
상황을 보고 다가온 한 웨이터가 세 양아치를 몇 번 쳐다보더니 온하랑에게 물었다.“여성분, 무슨 일이세요?”“계산하고 싶은데 이 사람들이 저를 못 가게 해요.”웨이터가 말했다.“형님들, 비켜 주세요. 다른 분 힘들게 하지 마시고...”“꺼져. 그쪽이 상관할 일이 아니야!”밤톨 머리를 한 양아치가 고개를 돌려 웨이터의 말을 자르며 흉악한 눈빛으로 경고했다.“형님, 진정하세요...”“누가 네 형님이야?”밤톨 머리의 남자가 말했다.“괜히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 “저기요. 계속 이렇게 소란 피울 거면 여기서 나가 주시죠.”밤톨 머리의 남자는 눈썹을 치켜들고 거들먹거렸다.“왜? 날 쫓아내려고? 어디서 감히!”왼쪽에 있던 남자가 씩씩대며 앞으로 걸어가 웨이터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 자식이 감히 어디서 용수 형님한테 이딴 태도로 말해? 당장 매니저 불러와!”오른쪽에 있던 남자도 말했다.“너 새로 온 놈이야? 용수 형님을 몰라?!”다른 웨이터가 상황을 무마하려고 나섰지만 세 명의 양아치는 여전히 으르렁거렸다. 온하랑은 그들이 비킨 틈을 타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금방 두 걸음을 내디뎠는데 밤톨 머리의 양아치가 돌아서서 온하랑의 손목을 붙잡았다.“이쁜이, 어딜 그리 급하게 가!”“손 놔!”온하랑은 벗어나려고 애 썼지만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다. 반쯤 추한 상태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나랑 몇 잔 마시면 놔 줄게.”“꿈 깨!”밤톨머리 남자는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오냐오냐하니까 이년이!”그가 힘껏 잡아당기자, 하늘이 핑글핑글 돌며 온하랑은 머리가 어지러워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남자는 재빨리 술 한 잔을 따르더니 온하랑의 앞에 강압적으로 내밀었다.“마셔!”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며 입술을 꾹 다물고 말하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분위기가 삽시에 싸해졌다.“이게 무슨 일이야?”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일제히
온하랑이 유학 중일 때 최동철은 확실히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특별히 신경 써줄 이유가 없었다.온하랑은 최동철의 취미가 사진 찍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최동철 또한 온하랑이 이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촬영을 배울 생각이 없는지 물어봤지만, 그녀는 거절했다.나중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온하랑은 그를 멀리했고, 그가 소개해 준 아파트에서 이사했다. 그 후 온하랑은 귀국하여 그의 연락처를 모두 삭제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그 약간의 호감은 최동철이 그녀를 따라 귀국하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었고 온하랑은 점점 최동철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갔다.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최동철은 단톡방을 열었고 우연히 익숙한 계정을 보았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과 닉네임이 그대로였다.사실 풍경 사진 공모전 최초 창시자 중 한 사람이 최동철이었으며 그는 수년 동안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최동철은 두 사람이 사진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더구나 온하랑이 자신의 사진 수업에 등록할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그제야 그는 그녀가 기억을 잃고 그해의 유학 생활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최동철은 조금 씁쓸했다. 함께 풍경 사진을 찍자고 초대했을 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이복동생 부승민의 전처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바뀌었다. 최동철의 시선이 온하랑의 얼굴에 옮겨졌다. 그녀의 뺨은 약간 붉게 물들고, 두 눈은 촉촉하고 짙었으며 눈꼬리가 빨개져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요염함이 묻어났다.“가자, 데려다줄게.”“싫어, 더 마실 거야.”온하랑은 그녀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최동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액체가 반쯤 남은 잔을 빼앗으며 말했다.“마시지 마!”온하랑은 그를 흘겨보더니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다.“더 마실 거라고!”빌어먹을 부승민! 몇 분간의 용서는 이제 없던 일이야
온하랑은 검은 까마귀 털 같은 속눈썹을 깜빡거리더니 눈물이 테이블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아무 일도 없던 최동철의 마음을 갑자기 뭔가가 쿡 찌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부승민을 정말 사랑했다.부승민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온하랑은 눈가를 닦으며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다 마셨다.최동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술을 더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술에 취한 채 테이블에 엎드려 계속 술을 마실 거라며 주사를 부리고 있었다.그는 온하랑 손에 들린 컵을 빼앗은 뒤 계산을 마쳤다. 그러고는 온하랑을 안아 들고 바에서 나와 차 뒷좌석에 태웠다.온하랑은 이미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상태로 뒷좌석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최동철은 차를 돌아 조수석에 올라탔다.“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호텔로 가주세요.”기사는 시동을 걸고 최동철이 지내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가는 도중에 최동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비서의 전화였다.최동철이 전화를 받자마자 비서가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임씨 아가씨와 함께 강남시에 오셨다고 합니다. 지금 인더숲 호텔에서 묵고 계시는데 대표님을 뵙겠다고 하십니다.”사모님은 최동철의 아버지 최국환이 둘째 부인이자 최동림의 친엄마 그리고 최동철의 새엄마였다.“저녁에 보자고 그래.”“사모님께서 지금 대표님을 뵙겠다고 하시는데요. 급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최동철은 멈칫했다.“내가 조금 있다가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해.”“알겠습니다. 참 대표님 부민재가 자수했습니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이 든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알겠어.”비서는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최동철은 핸드폰을 주머니 안에 넣으며 손가락을 튕겼다.부하가 장국호를 잡은 다음에 가장 먼저 그때의 일을 신문했기에 최동철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장국호는 아직 강남시에 도착하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니 오늘 온하랑이 이렇게 슬퍼하는 이유가 부승민과 부민재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