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렇게 하죠.” 엄진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동의했다. 그는 자기가 제시한 요구가 용국 궁정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예상했었다. 그저 최대한 높게 요구하고 적절한 가격에 합의하려는 의도였다. “오늘 안에 결과를 알려주지.” 삼장로는 한마디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날 오후 엄진우는 조중영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엄 선생님, 엄 선생님의 작품입니까?” 전화기 저편의 조중영의 목소리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승진을 말한다면 맞아요. 내가 손 좀 썼어요.” 엄진우는 마치 사소한 일을 처리한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엄 선생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조중영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북강의 그 반쪽 호부는 받았어요?” 엄진우가 웃으며 물었다. “받았습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조중영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반쪽 호부로는 북강 군계를 완전히 장악할 수 없겠지만 북강 군정 수장의 신분과 이 반쪽 호부를 합친다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이 있을 때 가능한 많은 북강 군계의 힘을 잡으세요.” 엄진우가 조중영에게 당부했다. 북강은 엄진우의 본거지로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비록 엄진우는 더는 명왕이 아니지만 북강의 백만 장병들에게 그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알겠습니다!” 조중영은 서둘러 대답했다. “내일 북강으로 갈 거예요.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명단을 줄 테니 그때까지 준비하세요.” 말을 마친 엄진우는 전화를 끊었다. 늦은 밤. 하루 종일 바빴던 엄진우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방 문이 소리 없이 열렸고 엄진우는 눈꺼풀을 살짝 떨었다. 엄진우는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무리 깊이 잠들어 있어도 누군가 다가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눈을 뜨지 않고 계속 자는 척했다. 이때, 한 그림자가 엄진우에게 다가오더니 한 손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쓰읍!” 엄진우는 차가운 숨을 들이
“빨리! 지금 바로 출발하자!” 조중영은 엄진우가 이미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소식에 급히 비서에게 말했다. 비행기 안, 엄진우는 비즈니스석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피곤했고, 밤새도록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특히 예우림은 더욱 미쳐 있었는데 날이 밝아서야 겨우 떠났다. 이때, 엄진우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서비스 벨을 눌렀고 곧 아름다운 외모에 검은 스타킹을 신은 승무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남자 옆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남자를 향해 하얀 목선을 드러냈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 “번호 좀 찍어. 비행 내내 지켜봤는데 아주 내 맘에 쏙 드네.” 남자는 과감하게 승무원의 몸을 훑어보았는데 특히 그녀의 다리를 지날 때는 눈알이 빠져나갈 듯했다. “죄송하지만, 손님. 규정상 개인 연락처는 승객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승무원은 남자의 시선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 “됐거든? 나 이 항공사 비행기만 수년간 타왔어. 나 정상급 회원이라고. 이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내 침대에 올라온 걸 양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야.” 남자는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승무원의 눈에 잠시 혐오감이 스쳤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죄송합니다, 손님. 더 도와드릴 일이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승무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거절당한 남자는 당황하며 화를 냈다. 그는 승무원의 손목을 낚아챘다. “어디서 고상한 척이야? 내 눈에 들어온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손님, 자제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승무원은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여자였다. “사람을 불러? 우리 아버지가 바로 이 항공사 주주야! 네가 사람을 불러봐야 결국 내 침대로 보내질 뿐이지.”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거참 시끄럽군.” 남자의 뒤에
쪽지를 확인한 엄진우는 승무원을 향해 미소를 짓더니 쪽지를 구겨 버렸다. 착륙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다시 엄진우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함께 움직이세요, 손님.” “마음은 알겠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나한테 뭘 어떻게 할지 두고 볼 생각이라서요.” 엄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흥, 곧 알게 될 거야.”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머리를 돌리며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손님, 지금 가지 않으면 늦습니다!” 승무원이 초조하게 재촉했다. “가? 어딜 가? 경고하는데 참견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네 상사에게 말해 널 해고할 거야.” 남자는 승무원을 노려보며 위협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보세요.” 엄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결국 승무원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를 떠났다. 곧 비행기가 착륙했다. 엄진우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남자는 엄진우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의 곁에 바싹 붙었다. 이때 한 무리의 건장한 남자들이 엄진우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도련님!” 그들은 일제히 외쳤다.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식 잡아! 비행기에서 내 좋은 일을 망친 놈이야.” 남자가 크게 외쳤다. 곧 건장한 남자들이 살기를 품고 엄진우를 노려봤다. “하지 마세요!” 이때 승무원이 달려와 헐떡이며 엄진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공항 직원들에게 연락했으니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다들 콩밥 먹게 될 겁니다!” 승무원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남자는 잠시 멍해졌다가 곧 큰 웃음을 터뜨렸다. “직원들이 뭐 어쩔 수 있다고? 순진하군.”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항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다가왔다. “공항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게 누구야?!” 직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물었다. “바로 나다!” 남자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당신 누구야? 공항에서 소란을 피우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고 있어?” 직원은 냉정한 표정으로 물었다. “난 오
“죽음이 코앞인데도 입이 여전히 거칠군. 처리해!”오우현은 분노에 찬 어조로 외쳤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타수들은 이리떼처럼 엄진우에게 달려들었다.기하영은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가린 채 차마 보지 못했다.그 타수들은 모두 체격이 건장한 자들이었고 엄진우의 가녀린 몸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곧 기하영은 귀가 조용해지며 세상이 잠잠해진 것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그녀는 손을 떼고 눈을 떴다.눈앞의 광경을 보고 기하영은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오우현의 타수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생사가 불분명했다.엄진우는 뒷짐을 쥐고 심지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꿀꺽!오우현은 힘겹게 침을 삼키고 공포에 찬 눈길로 엄진우를 바라봤다. "싸... 싸움 잘하면 뭐? 싸움보다 중요한 건 세력이야! 당장 우리 아버지 부를 테니까 너 딱 가만히 있어. 이 작은 북강 땅에서 난 아직 누굴 무서워한 적 없어!" 오우현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버지, 지금 어디예요? 공항에 계신다고요? 잘됐네요. 여기 어떤 새끼가 절 무시해요. 좀 처리해 주세요. 네, 그럼 손님 접대가 끝나면 와주세요.”전화를 끊고 오우현은 말했다.“아버지 손님 접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오늘 네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지 않는다면 난 오씨 성을 버릴 거야. 아버지가 지금 누굴 접대하고 있는지 알아? 말하면 깜짝 놀랄걸! 북강의 새로 온 군정 책임자 조중영 장관님이야.”오서화가 지금 공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오우현은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그래? 그럼 네 아버지가 너에게 조중영이 왜 공항에 왔는지 말했어?”엄진우는 조중영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공항에 올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지 않았지만 조중영이 이때 공항에 있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었다.“어디서 감히 조 장관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이 북강에서는 조 장관님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어. 그분이 공항에 오는 데 누구한테 보고라도 해야
조중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큰 걸음으로 엄진우에게 다가갔다.오서화는 차갑게 웃었다.감히 내 아들을 괴롭혀? 내가 누군지 똑똑히 보여주지.오우현의 얼굴에도 음험한 웃음이 가득했다. 몇 마디 말로 조 장관님을 엄지우에게 반감을 품게 만들어서 속으로 자기가 정말 천재라고 생각했다.조중영이 격노하여 신분도 잊은 채 사람들 앞에서 엄진우를 한 대 때린다고 해도 오우현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조중영의 행동은 모든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엄진우 씨, 제가 늦었습니다.”조중영은 엄진우 앞에 멈춰 서더니 약간 허리를 굽혔다.그는 이른 아침부터 공항으로 엄진우를 마중하러 나왔지만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많은 북강의 상인과 관리들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북강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엄진우는 무심히 말하며 밖으로 걸어 나갔고 오서화와 오우현 부자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네.”조중영은 단호하게 대답하고 엄진우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오서화의 옆을 지나가며 조중영은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엄진우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서화와 오우현 부자는 계속해서 몸을 떨고 있었다.대체... 어떤 사람을 건드린 거야?조중영은 국경을 지키는 대관이었다!조중영이 이처럼 공손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설마 제경의 황태자들 중 하나란 말인가?이 생각에 오서화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했다.“이 불효자야! 우리 오씨 가문이 이제 너 때문에 망하게 생겼어.”오서화는 오우현의 얼굴을 한 대 치며 이를 악물었다.오우현은 얼굴을 감싸 쥐고 혼이 나간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날 북강에서는 오씨 가문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시작되었고 불법 행위 28건이 밝혀졌다.오씨 가문의 주요 구성원, 오서화와 오우현 부자도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 모든 것에 대해 엄진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의 눈에 작은 오씨 가문은 그저 눈에 띄지 않는 개미일 뿐이었다.“엄진우 씨,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한 차실 안에서 조중영이 엄진우에게
“엄진우 씨, 방법이 있으신가요?”조중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그 윤경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보겠어요.”엄진우는 무심하게 말했다.이 말을 듣고 조중영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엄진우 씨, 제가 북강의 군정 총책임자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호부도 절반밖에 받지 못해 아직은 군대를 동원할 수 없습니다.”조중영은 약간 부끄러운 듯 말했다.“군대를 동원한다고요? 나 혼자면 충분해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중영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절대로 안 됩니다. 윤경은 잔인하고 냉혹하며 부하 중 수많은 고수도 있습니다. 혼자 가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요.”그는 급히 말했다.“걱정 마세요. 북강에서는 아직 날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엄진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조중영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엄진우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엄진우 씨,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연락 죄송합니다. 저는 기하영입니다. 항공사 시스템을 통해 엄진우 씨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어요. 오늘 엄진우 씨 덕분에 제가 큰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요?”엄진우의 머릿속에 기하영의 모습이 떠올랐다.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아름다운 승무원 중에서도 그녀의 미모는 단연 돋보였다. 게다가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그녀의 긴 다리는 수많은 남성의 꿈이자 이상이었다.“황격 호텔에 있으니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죠.”엄진우는 잠시 고민한 후 답장을 보냈다.“좋아요!”기하영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한 시간 후, 그녀는 엄진우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엄진우 씨, 레스토랑 입구에 있습니다.”문자를 받고 엄진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기하영을 본 순간 그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유니폼을 벗은 기하영은 흰 티셔츠와 회색 플리츠 스커트를 입었고 그 아래로는 흰색 오버 니삭스를 신었다.특히 아무렇게나 묶은 높은 포니테일과 운동화가 그녀를 더욱 어리고 활기차게
“무슨 일 있어요?”엄진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기하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기하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녀의 모습은 전혀 ‘아무 일도 없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아 보였기에 엄진우도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후 엄진우는 기하영을 호텔 밖으로 배웅했다.두 사람이 호텔을 나서자마자 한 옷차림이 허술한 중년 남자가 갑자기 구석에서 튀어나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엄진우의 반응은 매우 빨랐다. 중년 남자가 그들 앞에 나타나자마자 그는 바로 발로 차버렸다.중년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아빠!”옆에 있던 기하영은 깜짝 놀라 외치며 급히 달려가 그를 일으켰다.엄진우는 어안이 벙벙했다.이 덥수룩한 수염에, 헝클어진 옷차림으로 마치 노숙자처럼 보이는 이 남자가 기하영의 아버지라고?“하! 다 컸네. 친아버지까지 때리다니!”중년 남자는 기하영의 손을 잡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비록 엄진우가 공격한 것이었지만 두 사람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중년 남자는 그들을 한패로 여긴 것이 분명했다.“아저씨, 오해입니다. 방금 저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나타난 줄 알고 그랬습니다.”엄진우는 남자한테 다가가며 약간 난처한 듯 설명했다.기하영의 아버지는 엄진우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돈 많은 사람을 낚았구나. 흐음, 여기가 황격 호텔이지? 우리 동네 유일한 5성급 호텔인데 하룻밤에 백만 원도 넘는 곳이라 들었어.”“이런 좋은 일이 있었으면 아빠한테도 알렸어야지.”기하영의 아버지가 말했다.이 말을 듣고 엄진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아빠!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요.”기하영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급히 설명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원래 그런 식으로 복잡하게 노는 거지. 호텔까지 함께 드나들면서 평범한 친구라니. 웃기지 마라. 너희가 어떤 사이인지는 상관없으니까 빨리 돈이나 줘 봐. 그러면 당장 떠나 줄 테니.”기하영의 아버지는 손바닥
기하영은 서둘러 돈을 받아 들고 그중 200만을 세어 아버지에게 건네고 나머지 돈은 엄진우에게 돌려주었다.“여기 있어요. 이제 일어나세요.”기하영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200만을 땅에서 구르던 아버지에게 던졌다.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즉시 울부짖음을 멈추고 웃으며 땅에서 일어나 돈을 주워들었다.“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됐잖아. 그럼 난 먼저 가볼게. 다음에 또 보자.”돈을 챙긴 기하영의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창피한 꼴을 보여드리게 됐네요.”기하영은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여 말했다.“집마다 어려움이 있는 법이죠.”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까 아버지가 전화로 어디에 있는지 물어서 별생각 없이 황격 호텔에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그녀의 아버지가 엄진우에게 불편함과 난처함을 끼쳤기에 기하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대학 졸업 후에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승무원이 된 것도 당신 아버지 때문인가요?”엄진우가 물었다.기하영은 잠시 침묵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제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안 형편이 괜찮았어요. 제 아버지는 성공한 소 기업가였거든요.”그렇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유학을 할 수 있었을 리 없었다.“하지만 제가 대학에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서 집안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어요. 그래서 어머니와 결국 이혼하셨죠. 집과 차를 다 팔아도 큰 빚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 저는 국내로 돌아와 돈을 벌어 빚을 갚아야 했어요.”이 이야기를 들은 엄진우는 기하영을 다시 보게 되었다.어린 나이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가 이런 역경과 압박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몸을 팔아 쉽게 돈을 벌지 않은 것은 매우 존경할 만한 일이었다.특히 승무원이라는 직업에서 그녀의 행동은 더욱 빛나 보였다.“그럼 이제 빚은 다 갚았어요?”엄진우는 물었다.“빚은 다 갚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여전히 도박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또 누군가가 찾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