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소우진은 안색이 푸르딩딩해졌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엄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내가 너한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나? 30분 줄 테니까 창해시를 떠나. 그게 아니라면 영원히 떠날 수 없을 거야.” 엄진우의 위협에 소씨 가문 사람들은 놀라서 허둥지둥했다. “총무님, 일단 돌아가죠.” “기회는 언제든지 있습니다. 성안으로 돌아가면 꼭 방법이 생길 겁니다.” “여긴 성안이 아닌 창해십니다. 그러니 작전상 후퇴가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소우진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질문했다. “너 소지안과 어떤 사이야? 굳이 소지안을 위해 우리 소씨 가문과 맞설 텐가? 네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어. 소지안 혼약 상대는 아주 대단한 가문의 자제야. 즉 넌 동시에 두 명문가를 건드렸단 얘기지.” 엄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까짓 두 개 가지고 뭐, 스무 개라도 상관없어. 아니, 더 많아도 난 똑같이 다 눌러줄 수 있거든.” 소우진은 화가 나서 폐가 다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체 소지안과 어떤 사인데? 네가 뭔데 소씨 가문 일에 끼어들어!” 소지안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사실 아무 사이도...”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진우는 사람들 앞에서 소지안의 손목을 움켜쥐고 키스를 퍼부었다. 쓰읍...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린 채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소지안도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엄진우가 이런 당돌한 짓을 할 줄 생각도 못 했다. 처음엔 잠시 발버둥을 쳤지만 이내 그녀는 엄진우와의 키스를 받아들인 듯 두 눈을 감고 몸에 힘을 풀었다. 약 10초간의 뜨거운 키스를 끝으로 그제야 엄진우는 그녀를 놓아주었고 시선을 소우진을 향해 돌렸다. “이젠 우리가 어떤 사이인 줄 알겠어?” “두 사람!” 소우진은 충격에 턱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소씨 가문 상속자가 이런 남자를 만날 줄 생각도 못 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젓더니 빈정대며 웃었다. “알겠다. 지금 두
이때 엄진우가 비스듬히 눈을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 “소 비서님, 5만 원 아까우니까 서 있지만 말고 빨리 자요.” 순간 소지안은 얼굴이 달아올라 괜히 앙탈을 부렸다. “나 쉬운 여자 아니에요! 진우 씨는 날 뭐로 보고.” 비록 소지안은 바람기가 많지만 그래도 남자에게 몸을 쉽게 줄 수 없었다. 게다가 특히 상대는 엄진우이다. 여자 마음이란 조그만 치도 모르는 엄진우. 무슨 일은 하든 다 순서가 있기 마련인데 엄진우는 늘 직구만 날렸다. 엄진우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 잠만 자라는데 뭐가 쉬운 여자죠? 누워서 눈 감고 푹 자면 돼요.” 소지안은 순간 멍해졌다. “아, 그러니까 자자는 말이... 잠을 잔다는 말인 거죠?” 그러니까 그게 남녀 사이의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잠만 잔다는 말인가? “아니면요?” 엄진우는 귀를 후비며 입을 삐죽거렸다. “아니면 그 여우 같은 놈들을 어떻게 속여요? 아마 지금쯤이면 멀리 갔겠지만 그래도 돈 낭비는 안 되죠. 잠이라도 자고 나가야지.” 소지안은 순간 화가 솟구쳤다. “엄진우! 이 나쁜 자식!” 말을 끝낸 그녀는 베개 하나를 집어 들더니 엄진우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엄진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 비서님, 왜 이래요? 나 소 비서님 도와줬는데?” “내 첫 키스 빼앗았으면서 책임도 안 진다 이거죠?” 소지안은 화가 나서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엄진우의 얼굴에 발길질을 해대고 싶었다. “젠장, 첫 키스라고요?” 순간 엄진우는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안절부절못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몰랐다. 그는 소지안같이 농염한 여자는 적어도 열 명 이상의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또 한 여자의 ‘처음’이 되었다. “소 비서님... 그게... 내가...” 당황한 엄진우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소지안은 엄진우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젠 말하기도 싫어요! 샤워하고
하지만 엄진우가 방에서 나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청용의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엄씨 가문에 대한 공격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사흘 안에 엄씨 가문의 모든 산업은 문을 닫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엄비룡과 엄비호의 가족들도 모두 우리의 감시하에 있습니다.” 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르신은 아직 건들지 마. 내 생각엔 어르신도 그 일을 몰랐을 것 같아.” 청용은 멈칫하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명왕님, 정말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엄진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명왕님이었다면, 아마 5분도 안 돼 그들을 전부 학살했을 것입니다.” 북강 폭군이라는 타이틀은 장난이 아니다. 그건 무수한 시체로 쌓아 올린 것이다.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네가 틀렸어. 난 그들이 쉽게 죽는 걸 바라지 않을 뿐이야. 제발 죽여달라고 나한테 싹싹 빌 때까지 아주 천천히 괴롭혀 줄 거야. 아니면 너무 시시하잖아.” 엄진우는 하찮은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죽이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죽음으로 다가가는 절망은 죽기보다 더 괴로운 느낌이 될 것이다. 엄진우의 말에 청용은 순간 소름이 돋더니 식은땀이 흘리기 시작했다. 역시 엄진우, 역시 명왕이다. “아, 명왕님. 오윤하가 엄진우라는 이름으로 뒤를 캐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강의 인맥을 동원하여 명왕님의 군인 시절 기록을 뒤지려고 합니다.” 청용의 말에 엄진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야? 이 여자 지금 날 캐고 있다고?” 만약 엄진우가 바로 명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맨날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것이 뻔하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너 내 입대 서류 대충 조작해서 그 여자 좀 속여줘.”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 청용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명왕님, 근데 약혼녀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 속일 자신 있으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루라도 더 미루는 거지.” 엄진우는
예흥찬의 말에 예우림은 혈압이 올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잊지 마세요. 전에 호문 소주와 결혼하라고 하셨는데 호문은 이미 멸망했어요. 이패왕은 행방불명이고 그의 아들은 이미 병원에서 죽었다고요.” 예흥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지나간 일이야, 우림아. 너도 요즘 창해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을 거다. 우리 라이벌 진씨 가문은 정제불명의 세력에 의해 멸문당했다. 사대 고대 무가는 이제 삼대 고대 무가가 되었어. 하지만 이 거대한 권력의 공백 속에서 한 가문이 그 기회를 잡고 일어섰는데 바로 공씨 가문이다. 공씨 가문의 공성그룹은 일약 부상하여 이 창해시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이 되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공씨 가문의 선조들은 이미 절정대종사에 입문하여 단숨에 기타 세 가문 위에 올라서게 되었어.” 예흥찬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공씨 가문의 공자명은 우리 회사에 아주 관심이 많아. 하지만 그건 그저 포장일 뿐, 공자명이 진짜 관심을 가진 건 바로 너야.” 예흥찬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림아, 공씨 가문은 당시 호문보다 수백 배나 더 강해. 네가 만약 공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다면 우리 예씨 가문은 반드시 창해시에서 고대 무가 다음으로 버금가는 명문가로 부상할 수 있다.” 여기까지 들은 예우림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기요,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네요? 전 절대 허락할 수 없어요! 또 이런 일로 저 협박하신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예흥찬의 체면을 전혀 봐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예흥찬의 다음 말은 그녀를 그대로 얼어붙게 했다. “예우림, 까불지 마. 네 엄마 유골이 내 손에 있다는 거 설마 잊었어? 네 엄마 유골이 물고기 먹이가 되길 바라는 거 아니겠지?” 순간 예우림의 두 눈에는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거 당신 며느리 유골이자 제 엄마의 유골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그 말에 예정국으 사색이 되어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제가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우림이 엄마 유골은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맡길 게요. 전 아무 의견이 없어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예정국은 절대 예씨 가문을 떠나서 살 수 없었다. 비록 예우림의 어머니에게 감정이 남아있긴 하나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예씨 가문에서 쫓겨나 호화로운 생활을 잃는 거에 비하면 차라리 사랑했던 여자의 유골을 하수구에 버리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예정국의 우물쭈물한 모습에 예우림은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예정국! 당신은 죽은 아내도 팔아먹을 만큼 비열한 사람인가요? 당신한테 양심이란 게 있기나 해요?” 그녀는 자기가 이런 더러운 사람의 피를 가졌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너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어?” 예정국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매번 가문의 뜻을 거역하지만 않았더라도 할아버지가 이러셨겠냐고! 예우림, 당장 할아버지한테 그러겠다고 약속해! 정말 네 엄마가 하수구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예정국도 이참에 그녀를 밀어붙였다. “개돼지만도 못한 사람들!” 예우림은 화가 나서 치가 다 떨렸다. 이런 사람들이 그녀의 가족이라고? 차라리 고아만도 못하다. 예흥찬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림아. 우린 가족이야. 그러니 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예씨 가문의 이익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해.” “어떡하면 우리 엄마 봐주실래요?” 예우림은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간단해. 첫 번째는 며칠 뒤 공씨 가문과 예씨 가문의 부동산 프로젝트 테이프 커팅식에 반드시 참석하는 거야. 그리고 그날 현장에서 공자명과의 혼사를 확정하는 거지.” 예흥찬은 속사포처럼 요구를 내뱉었다. 예우림은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렇게 할 게요.” 어머니는 그녀의 약점이다. 하여 그녀는 어머니의 유골 때문에라도 예흥찬의 조건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방법이 없다.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문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부대표님!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나랑 얘기 좀 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요. 내가 고칠게요.설마 내가 싫어진 거라면 직접 얼굴 보고 말해요!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이혼 통보만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이해해요? 그러니까 이유라도 말해 줘요!” 엄진우는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예우림은 귀가 먹었는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그를 혼자 내버려두었다. 엄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걱정 마요. 절대 부대표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게요. 나한테 이유 설명해 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이유를 듣기 전에는 나 절대 못 가요!” 커튼 뒤에 숨어 엄진우를 보고 있던 예우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진우, 천진하네. 진상을 알아도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넌 고작 평범한 회사원이잖아. 됐다. 마음대로 해. 인내심이 소진되면 알아서 떠나겠지.”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엄진우는 아직도 예우림의 집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태양이 내리쬐었지만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예우림은 그의 의지가 놀라웠다. “엄진우 벌써 열두 시간 가까이 저기 서있었어. 직업군인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결국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려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니 어쩌면 상대는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떠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이때, 긴급 뉴스가 전해졌다. “긴급 소식입니다. 오늘 밤 태풍이 창해시에 상륙할 예정이며 바람 세기는 15급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규모의 강한 천둥 폭풍우가 동반되어 건물에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시민 여러분은 반드시 집에 머무르시고 외출을 삼가하십시오.” “태풍?” 예우림은 그제야 깨달았다. 창밖에는 이미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이건
“엄진우,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예우림은 벼락에 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어젯밤 폭우 속에서 밤새도록 기다린 건가? 맙소사! “내가 그랬잖아. 나와서 이유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엄진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강인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예우림의 눈동자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엄진우를 와락 끌어안더니 그의 가슴을 두드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상관없어.” 엄진우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나한테 넌 세상이야, 예우림. 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난 오직 너 하나만 좋아해.” 예우림은 더는 차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그렇게 좋아?” 이 순간, 그녀는 차가운 상장 대기업의 부대표가 아닌 평범한 여자가 되어 자기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걸 꼭 말해야 알겠어?” 엄진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사실대로 말해줘, 응?” 예우림은 조마조마한 말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너랑 이혼하고 공씨 가문의 공자명과 결혼하라고 협박했어. 며칠 뒤 두 기업에서 손잡은 프로젝트 테이프 커팅식에서 혼약을 맺을 거야.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우리 엄마 유골을 하수구에 던져버린대.” 그 말에 엄진우는 화가 나서 혈압이 치솟았다. “할아버지 입으로 한 말이라고? 대박이다, 어떻게 손녀딸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개보다도 못한 어른이네. 개도 자기 새끼는 아낄 줄 알아. 하수도의 쥐새끼보다 더 역겹군.” 엄진우는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해결할게.” 그러자 예우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해결한다고? 안돼.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상대는 공씨 가문이야. 사대 고대 무가의 새로운 가문이라고.” “소씨 가문도 두렵지 않은데 내가 고대 무가를 두려워할 것 같아?” 엄진우가 코웃음을 치자 예우림은 어이
그 말을 끝으로 엄진우는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고 예우림은 혼자 멍하니 서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의 그녀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있지 않을까? ... 엄진우에게 있어 예우림의 일은 모레라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엄씨 가문이다. 원수를 갚은 타이밍이 되었다. 엄진우는 하수희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이 계획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건 엄진우 혼자만의 복수다. 오후 3시, 엄씨 저택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늘은 엄비호의 딸, 엄지은의 아이가 태어난 지 막 한 달 되는 날이다. 두 달 전, 엄지은은 다른 도시 명문가 아들과 결혼했다. 상대는 비록 고대 무가가 아니지만 명성이 자자한 금융 거물이라 엄씨 가문의 앞날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랜 열애 끝에 배가 불러서 하는 수 없이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곧 그들은 아들을 낳았다. 엄씨 어르신은 이 혼사를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여인의 몸으로 가문에 강력한 이익을 가져왔으니 그야말로 수지가 맞는 장사이다. 하여 증손주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는 이날, 큰 잔치를 벌이라고 명령했다. 물론 오늘 가장 기쁜 사람은 엄비호이다. 증손주의 탄생으로 엄씨 어르신은 이 자리를 빌어 그의 후계자 신분을 정식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둘째 형님, 경하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 엄씨 가문의 운명을 잘 이끌어주세요.” “고난을 함께 한 우리를 잊으셔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엄씨 가문 사람들은 잇달아 허리를 굽신대며 듣기 좋은 말을 내뱉었고 하나같이 귀중한 물건을 선물했다. 잔뜩 신난 엄비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족끼리 그런 말은 넣어둬. 내가 엄씨 가문 가주가 되면 다들 잘 돌봐줄 걸세. 적어도 가문 수당은 두 배로 늘려줄 거야.” 그 말에 사람들은 잔뜩 신이 나서 환호를 질러댔다. “둘째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