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없다.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문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부대표님!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나랑 얘기 좀 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요. 내가 고칠게요.설마 내가 싫어진 거라면 직접 얼굴 보고 말해요!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이혼 통보만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이해해요? 그러니까 이유라도 말해 줘요!” 엄진우는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예우림은 귀가 먹었는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그를 혼자 내버려두었다. 엄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걱정 마요. 절대 부대표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게요. 나한테 이유 설명해 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이유를 듣기 전에는 나 절대 못 가요!” 커튼 뒤에 숨어 엄진우를 보고 있던 예우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진우, 천진하네. 진상을 알아도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넌 고작 평범한 회사원이잖아. 됐다. 마음대로 해. 인내심이 소진되면 알아서 떠나겠지.”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엄진우는 아직도 예우림의 집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태양이 내리쬐었지만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예우림은 그의 의지가 놀라웠다. “엄진우 벌써 열두 시간 가까이 저기 서있었어. 직업군인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결국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려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니 어쩌면 상대는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떠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이때, 긴급 뉴스가 전해졌다. “긴급 소식입니다. 오늘 밤 태풍이 창해시에 상륙할 예정이며 바람 세기는 15급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규모의 강한 천둥 폭풍우가 동반되어 건물에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시민 여러분은 반드시 집에 머무르시고 외출을 삼가하십시오.” “태풍?” 예우림은 그제야 깨달았다. 창밖에는 이미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이건
“엄진우,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예우림은 벼락에 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어젯밤 폭우 속에서 밤새도록 기다린 건가? 맙소사! “내가 그랬잖아. 나와서 이유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엄진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강인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예우림의 눈동자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엄진우를 와락 끌어안더니 그의 가슴을 두드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상관없어.” 엄진우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나한테 넌 세상이야, 예우림. 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난 오직 너 하나만 좋아해.” 예우림은 더는 차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그렇게 좋아?” 이 순간, 그녀는 차가운 상장 대기업의 부대표가 아닌 평범한 여자가 되어 자기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걸 꼭 말해야 알겠어?” 엄진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사실대로 말해줘, 응?” 예우림은 조마조마한 말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너랑 이혼하고 공씨 가문의 공자명과 결혼하라고 협박했어. 며칠 뒤 두 기업에서 손잡은 프로젝트 테이프 커팅식에서 혼약을 맺을 거야.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우리 엄마 유골을 하수구에 던져버린대.” 그 말에 엄진우는 화가 나서 혈압이 치솟았다. “할아버지 입으로 한 말이라고? 대박이다, 어떻게 손녀딸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개보다도 못한 어른이네. 개도 자기 새끼는 아낄 줄 알아. 하수도의 쥐새끼보다 더 역겹군.” 엄진우는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해결할게.” 그러자 예우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해결한다고? 안돼.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상대는 공씨 가문이야. 사대 고대 무가의 새로운 가문이라고.” “소씨 가문도 두렵지 않은데 내가 고대 무가를 두려워할 것 같아?” 엄진우가 코웃음을 치자 예우림은 어이
그 말을 끝으로 엄진우는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고 예우림은 혼자 멍하니 서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의 그녀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있지 않을까? ... 엄진우에게 있어 예우림의 일은 모레라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엄씨 가문이다. 원수를 갚은 타이밍이 되었다. 엄진우는 하수희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이 계획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건 엄진우 혼자만의 복수다. 오후 3시, 엄씨 저택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늘은 엄비호의 딸, 엄지은의 아이가 태어난 지 막 한 달 되는 날이다. 두 달 전, 엄지은은 다른 도시 명문가 아들과 결혼했다. 상대는 비록 고대 무가가 아니지만 명성이 자자한 금융 거물이라 엄씨 가문의 앞날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랜 열애 끝에 배가 불러서 하는 수 없이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곧 그들은 아들을 낳았다. 엄씨 어르신은 이 혼사를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여인의 몸으로 가문에 강력한 이익을 가져왔으니 그야말로 수지가 맞는 장사이다. 하여 증손주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는 이날, 큰 잔치를 벌이라고 명령했다. 물론 오늘 가장 기쁜 사람은 엄비호이다. 증손주의 탄생으로 엄씨 어르신은 이 자리를 빌어 그의 후계자 신분을 정식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둘째 형님, 경하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 엄씨 가문의 운명을 잘 이끌어주세요.” “고난을 함께 한 우리를 잊으셔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엄씨 가문 사람들은 잇달아 허리를 굽신대며 듣기 좋은 말을 내뱉었고 하나같이 귀중한 물건을 선물했다. 잔뜩 신난 엄비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족끼리 그런 말은 넣어둬. 내가 엄씨 가문 가주가 되면 다들 잘 돌봐줄 걸세. 적어도 가문 수당은 두 배로 늘려줄 거야.” 그 말에 사람들은 잔뜩 신이 나서 환호를 질러댔다. “둘째 형님,
흑백의 영정 사진에 가장 분노한 사람은 엄씨 어르신이다. 그는 격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당장 치우지 못해!? 경사스러운 날에 감히 불길한 물건을 들고 오다니! 우리 가문을 능멸하는 것이냐!” 엄비호도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여봐라! 저 영정 사진 당장 밖에 던져 버려!” 좋은 날에 불길한 행동을 하면 액운을 가져오기에 엄씨 가문은 치를 떨며 말했다. “누가 감히!” 엄진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경호원들은 순간 겁에 질려버렸다. 그들은 마치 남극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은 듯 온몸이 얼어붙어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다. 화가 난 엄비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욕설을 내뱉었다. “모자란 것들! 너희들이 그러고도 나한테서 월급을 받아?” “비호야, 넌 엄씨 가문의 후계자야. 그러니 체통을 지켜.” 엄씨 어르신의 싸늘한 호통에 엄비호는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네, 아버지. 죄송합니다.” “큰일을 할 사람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서는 안 돼.” 엄씨 어르신은 용두 지팡이를 들고 엄진우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엄진우, 넌 엄영우를 평생 사내 구실도 못하게 만들었고 또 정씨 가문의 힘을 빌어 우리 엄씨 가문의 수많은 자제를 죽였어. 그래도 난 다 용서할 수 있어. 하지만 오늘은 우리 가문에 경사가 있는 날이야. 그런데 영정 사진을 들고 온 건 어떤 의미지?” 엄씨 어르신이 싸늘하게 물었다. “너와 비호 사이의 원한은 사적으로 해결해. 엄씨 가문 전체에 도발하는 건 너한테도 이득이 될 게 없어. 어쨌든 너도 엄씨 가문의 혈육이니 네 아버지 영정 사진 들고 당장 떠나. 그러면 없던 일로 해 줄 수 있어.” 사실 이건 진심이 아니다. 엄씨 어르신은 엄진우의 실력을 목격한 적 있기에 사실은 그가 두려워서 일부러 관대한 척 말했다. 만약 여기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엄씨 가문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뒤로 물러서서 상대에게도 물러설 기회를 주는 것이 엄씨 가
"으악!"순간 엄비호의 손가락은 뼈와 살이 분리되었고 온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미친 듯이 엄진우를 향해 덮쳐들었다. "개 같은 자식! 나 너 죽여버릴 거야! 당장 죽여버릴 거야!" 엄진우는 머리도 들지 않은 채 상대의 무릎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고 엄비호의 무릎은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털썩. 이내 엄비호는 다리가 부러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는데 장면은 아주 처참했다. "으아아악!" 그는 가슴속에 꽉 찬 분노를 터뜨릴 곳이 없어 처참한 비명을 질러댔다. 엄씨 가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천부적인 기질은 없다지만 그래도 상대는 엄씨 가문의 둘째 아들이다. 엄씨 어르신의 배양과 엄씨 가문의 수많은 수행 자원 덕분에 그도 50세의 나이에 내력대만원종사가 될 수 있었는데 이는 대종사인 엄씨 어르신과는 고작 한 끗 차이였다. 그런데 엄진우의 한 방에 저렇게 무너진다고? 저게 사람인가? 엄씨 어르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엄진우의 실력이 단지 비슷한 또래에서 강한 편이라고, 레벨로 치면 대략 외경절정종사쯤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내력대만원종사를 너무 쉽게 이겨버렸다. 엄진우가 말했다. "감히 내 앞을 막는 자가 있다면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거야. 엄비호보다 더 강한 자가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살기등등하던 엄씨 가문 무도종사들은 순간 풀이 죽어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시선을 엄비호에게 돌리니, 엄비호는 이미 거품을 문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모두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비록 가문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일단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엄진우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빈정거리며 웃어 보였다. "나설 사람이 없어? 이게 창해시 전설, 사대 고대 무가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소유한 엄씨 가문인 건가? 수천 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게 고작 이런 쪼다들이야?"말을 끝낸 엄진우는 허리를 쭉 펴고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진우가 로비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은 비록 여태 조용히 살아왔지만, 이런 큰 행사에서 누군가 공공연하게 엄씨 가문을 도발한다면 반드시 강자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줘야 가문의 체면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엄진우는 그들이 상상한 것과 다르게 시큰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앞을 막겠다고?" "당연한 소리!"엄전호는 쌀쌀맞게 말했다. "반역자 엄비왕의 영정 사진을 엄씨 저택 로비에 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새끼한테 그럴 자격이나 있어?" 엄무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은혜도 모르는 놈은, 유골을 아주 바닥에 쫙 깔아줘야 해요. 우리 가문 사람들이 오며가며 전부 짓밟을 수 있게.""엄진우! 네 아비뿐만 아니라 너도 곧 한 줌의 재가 될 거야." 두 사람의 건방진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갑자기 공포의 기운이 사면팔방으로 몰려왔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순간 머리를 쳐들고 진기를 내뿜으며 그 기운을 물리치려고 했다. 엄진우의 강력한 기운은 강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진압했다. 엄진우가 말했다. “나한테 덤비고 싶어? 당신들은 자격 없어.” 그는 상대를 완전히 무시한 채 계속 로비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 순간, 엄전호와 엄무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건 공포의 경지를 벗어난 진압이다. 그들이 겪어본 가장 강력했던 기운은 바로 대종사인 엄씨 어르신의 기운이었는데, 엄진우의 기운은 엄씨 어르신보다 최소만 배는 강력했다. 마치 인간이 우주의 은하수에 홀로 서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어떻게 된 거지?” 엄씨 가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격렬한 싸움이 발생할 줄 알고 미리 몸을 풀고 있었는데 이게 끝이라고? 엄씨 가문 신세대 최강자라 불리는 두 인물이 이렇게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싸우지도 못하고 말이다. “어이가 없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두 사람 오줌까지 지렸어. 바지 다 젖었잖아. 그 정도라고?” “설마 지금 엄진우한테 겁먹은 거야?” 사람들은 도무지 갈
“내가 아무리 늙어도 너 같은 애송이 하나는 쉽게 죽일 수 있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 엄씨 어르신은 다섯 손가락을 높이 쳐들었다. 순간 거대한 기압이 밀려오더니 그의 발아래 땅은 순식간에 몇 미터나 무너져 내렸다. 주변에 있던 엄씨 가문 자제들은 겁에 질려 급히 몸을 피하더니 다들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이건 적어도 작은 언덕의 무게가 필요했다. 역시 대종사급의 강자답다. 하지만 엄진우는 미동도 없이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더니 기지개를 켜고 하품했다. “할아버지는 이젠 늙었다고 내가 말했죠? 별일 없으면 그냥 돌아가서 쉬세요.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요.” 엄씨 어르신은 깜짝 놀랐다. 그는 대종사의 내력 100%를 동원해 엄진우에게 공격을 가했다. 이런 힘은 엄씨 어르신 본인조차 두려워하는 힘이다. 예상대로라면 엄진우는 지금쯤 무릎을 꿇고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어야 하는 건데... 왜 그는 이리 멀쩡하게 서있는 거지? “말도 안 돼! 내력강자를 이길 수 있다고 해도 내력종사와 대종사의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야!” “네가 무슨 수법으로 내 기운을 막았는지 모르겠지만 네 운은 여기까지다.” 엄씨 어르신은 엄진우를 완전히 포기하고 이 자리에서 직접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큰 걸음을 내디디더니 늙은 몸으로 하늘을 진동시키는 큰 기운을 내뿜었다. 순간 그 기운은 번개처럼 엄진우에게 덮쳐들어 수많은 잔상을 만들어냈는데 그 모습에 엄씨 가문의 무도종사들은 저도 몰래 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엄씨 어르신을 모신지도 꽤 되었지만 이 순간 그들은 상대의 그림자도 포착할 수 없었다. 쿠웅! 눈 깜짝할 사이, 엄씨 어르신의 굳은살이 가득한 손바닥은 엄진우의 어깨를 세게 가격했다. 삽시간에 지면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더니 심지어 나무들까지 재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때, 가까이 서있던 몇 명의 무도종사들은 이미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무서워... 엄진우 이 자식 뼈도 안 남겠는데? 지금쯤이면 아마 재로 변
“보아하니 입만 살았네요.” 엄진우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그는 전혀 엄씨 가문 사람들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들은 단지 ‘가족’이라는 명분을 가진 원수일 뿐이다. 엄진우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엄씨 어르신과 겁에 질려버린 엄씨 가문 사람들을 무시한 채 엄비왕의 영정 사진을 로비에 걸더니 무릎을 꿇고 큰절을 세 번 올렸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영정 사진 속의 엄비왕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 왔어요. 이번에는 몰래 들어온 게 아니라 당당하게 들어온 거예요.” 이때 겨우 몸에 기력이 돌아온 엄씨 어르신은 비틀거리며 달려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천박한 놈아! 난 네가 이 배은망덕한 자식의 영정 사진을 여기에 거는 걸 허락한 적 없다! 이건 조상님에 대한 모욕이고 불순이야!” 그러자 엄씨 가문 사람들도 이내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네가 아무리 힘으로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영원히 납득하지 못한다!” “우리는 죽어도 엄비왕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엄진우가 짜증 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리자 방금까지도 아우성을 치던 사람들은 겁에 질려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엄진우는 엄씨 어르신의 두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눈깔 똑똑히 뜨고 보세요.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죠? 바로 당신 아들이잖아. 영감탱이가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이라고!” 엄진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기 핏줄을 보는 게 그렇게 싫어? 아니면 너무 미안해서 피하는 건가?” 손자뻘 되는 젊은이에게 질책당하자 엄씨 어르신은 화가 나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입 다물어!” “싫은데?” 엄진우는 엄씨 어르신을 약 올리듯이 계속 말했다. “사실 우리 아버지의 내력을 폐하고 집에서 쫓아낸 후 많이 후회했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남은 두 아들을 보내서 우리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던 거 아니야?” 엄진우의 말은 가시가 되어 엄씨 어르신의 정곡을 정확히 찔렀다. 엄씨 어르신은 멈칫하더니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