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진우 님?” 순간 소우진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일개 회사원에게 어떻게 군대와 조폭을 동원할 세력이 있는 거지?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어? 우리 소씨 가문은 군부대에서도 알아주는 가문이야. 당장 군부대를 부를 테니 기다려.” 소우진은 애써 덤덤한 척 말했다. “당장 채 대령한테 군용차 보내라고 연락해.” “네!” 소씨 가문 부하는 바로 채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내 전화기 저편으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우진 총무님? 저는 군구대령 채진명입니다.” “대령님, 제가 지금 창해시에 있는데 양아치들이 시비를 걸어서요. 군용차 좀 보내 주실래요?” 소우진이 물었다. “문제없습니다. 바로 한 개 중대와 군용차 세 대를 보내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군용차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상대는 통쾌하게 승낙했다. 소우진은 환희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꼭 대령님께 차 한 잔 대접할게요.” 말을 끝낸 소우진은 턱을 치켜든 채 경멸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들었지? 군부대와 군용차가 곧 도착한다. 자신 있다면 우리 건드려 보시던가.” 지하 세력이 아무리 창궐해도 절대 군부를 이길 수 없다. 양아치들의 소총을 군인의 대포와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포의 사정거리는 곧 진리이다. 하지만 장강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게 담배를 빨며 말했다. “그렇다면 기다려 봐.” 이때 소씨 가문 부하는 채진명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대령님. 어쩐 일로? 네? 대령님 아니시라고요? 아, 비서님이세요?” 하지만 이때, 전화를 받던 소씨 가문 부하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왜 그래? 채 장교의 군용차가 들어오기 힘들대?” 소우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다급히 물었다. “아니요. 군용차는 별 탈 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이다. 깜짝 놀랐네.” 그 말에 소우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상대를 사정없이 째려보았다. “근
화가 난 소우진은 안색이 푸르딩딩해졌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엄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내가 너한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나? 30분 줄 테니까 창해시를 떠나. 그게 아니라면 영원히 떠날 수 없을 거야.” 엄진우의 위협에 소씨 가문 사람들은 놀라서 허둥지둥했다. “총무님, 일단 돌아가죠.” “기회는 언제든지 있습니다. 성안으로 돌아가면 꼭 방법이 생길 겁니다.” “여긴 성안이 아닌 창해십니다. 그러니 작전상 후퇴가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소우진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질문했다. “너 소지안과 어떤 사이야? 굳이 소지안을 위해 우리 소씨 가문과 맞설 텐가? 네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어. 소지안 혼약 상대는 아주 대단한 가문의 자제야. 즉 넌 동시에 두 명문가를 건드렸단 얘기지.” 엄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까짓 두 개 가지고 뭐, 스무 개라도 상관없어. 아니, 더 많아도 난 똑같이 다 눌러줄 수 있거든.” 소우진은 화가 나서 폐가 다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체 소지안과 어떤 사인데? 네가 뭔데 소씨 가문 일에 끼어들어!” 소지안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사실 아무 사이도...”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진우는 사람들 앞에서 소지안의 손목을 움켜쥐고 키스를 퍼부었다. 쓰읍...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린 채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소지안도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엄진우가 이런 당돌한 짓을 할 줄 생각도 못 했다. 처음엔 잠시 발버둥을 쳤지만 이내 그녀는 엄진우와의 키스를 받아들인 듯 두 눈을 감고 몸에 힘을 풀었다. 약 10초간의 뜨거운 키스를 끝으로 그제야 엄진우는 그녀를 놓아주었고 시선을 소우진을 향해 돌렸다. “이젠 우리가 어떤 사이인 줄 알겠어?” “두 사람!” 소우진은 충격에 턱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소씨 가문 상속자가 이런 남자를 만날 줄 생각도 못 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젓더니 빈정대며 웃었다. “알겠다. 지금 두
이때 엄진우가 비스듬히 눈을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 “소 비서님, 5만 원 아까우니까 서 있지만 말고 빨리 자요.” 순간 소지안은 얼굴이 달아올라 괜히 앙탈을 부렸다. “나 쉬운 여자 아니에요! 진우 씨는 날 뭐로 보고.” 비록 소지안은 바람기가 많지만 그래도 남자에게 몸을 쉽게 줄 수 없었다. 게다가 특히 상대는 엄진우이다. 여자 마음이란 조그만 치도 모르는 엄진우. 무슨 일은 하든 다 순서가 있기 마련인데 엄진우는 늘 직구만 날렸다. 엄진우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 잠만 자라는데 뭐가 쉬운 여자죠? 누워서 눈 감고 푹 자면 돼요.” 소지안은 순간 멍해졌다. “아, 그러니까 자자는 말이... 잠을 잔다는 말인 거죠?” 그러니까 그게 남녀 사이의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잠만 잔다는 말인가? “아니면요?” 엄진우는 귀를 후비며 입을 삐죽거렸다. “아니면 그 여우 같은 놈들을 어떻게 속여요? 아마 지금쯤이면 멀리 갔겠지만 그래도 돈 낭비는 안 되죠. 잠이라도 자고 나가야지.” 소지안은 순간 화가 솟구쳤다. “엄진우! 이 나쁜 자식!” 말을 끝낸 그녀는 베개 하나를 집어 들더니 엄진우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엄진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 비서님, 왜 이래요? 나 소 비서님 도와줬는데?” “내 첫 키스 빼앗았으면서 책임도 안 진다 이거죠?” 소지안은 화가 나서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엄진우의 얼굴에 발길질을 해대고 싶었다. “젠장, 첫 키스라고요?” 순간 엄진우는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안절부절못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몰랐다. 그는 소지안같이 농염한 여자는 적어도 열 명 이상의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또 한 여자의 ‘처음’이 되었다. “소 비서님... 그게... 내가...” 당황한 엄진우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소지안은 엄진우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젠 말하기도 싫어요! 샤워하고
하지만 엄진우가 방에서 나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청용의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엄씨 가문에 대한 공격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사흘 안에 엄씨 가문의 모든 산업은 문을 닫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엄비룡과 엄비호의 가족들도 모두 우리의 감시하에 있습니다.” 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르신은 아직 건들지 마. 내 생각엔 어르신도 그 일을 몰랐을 것 같아.” 청용은 멈칫하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명왕님, 정말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엄진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명왕님이었다면, 아마 5분도 안 돼 그들을 전부 학살했을 것입니다.” 북강 폭군이라는 타이틀은 장난이 아니다. 그건 무수한 시체로 쌓아 올린 것이다.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네가 틀렸어. 난 그들이 쉽게 죽는 걸 바라지 않을 뿐이야. 제발 죽여달라고 나한테 싹싹 빌 때까지 아주 천천히 괴롭혀 줄 거야. 아니면 너무 시시하잖아.” 엄진우는 하찮은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죽이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죽음으로 다가가는 절망은 죽기보다 더 괴로운 느낌이 될 것이다. 엄진우의 말에 청용은 순간 소름이 돋더니 식은땀이 흘리기 시작했다. 역시 엄진우, 역시 명왕이다. “아, 명왕님. 오윤하가 엄진우라는 이름으로 뒤를 캐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강의 인맥을 동원하여 명왕님의 군인 시절 기록을 뒤지려고 합니다.” 청용의 말에 엄진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야? 이 여자 지금 날 캐고 있다고?” 만약 엄진우가 바로 명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맨날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것이 뻔하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너 내 입대 서류 대충 조작해서 그 여자 좀 속여줘.”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 청용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명왕님, 근데 약혼녀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 속일 자신 있으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루라도 더 미루는 거지.” 엄진우는
예흥찬의 말에 예우림은 혈압이 올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잊지 마세요. 전에 호문 소주와 결혼하라고 하셨는데 호문은 이미 멸망했어요. 이패왕은 행방불명이고 그의 아들은 이미 병원에서 죽었다고요.” 예흥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지나간 일이야, 우림아. 너도 요즘 창해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을 거다. 우리 라이벌 진씨 가문은 정제불명의 세력에 의해 멸문당했다. 사대 고대 무가는 이제 삼대 고대 무가가 되었어. 하지만 이 거대한 권력의 공백 속에서 한 가문이 그 기회를 잡고 일어섰는데 바로 공씨 가문이다. 공씨 가문의 공성그룹은 일약 부상하여 이 창해시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이 되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공씨 가문의 선조들은 이미 절정대종사에 입문하여 단숨에 기타 세 가문 위에 올라서게 되었어.” 예흥찬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공씨 가문의 공자명은 우리 회사에 아주 관심이 많아. 하지만 그건 그저 포장일 뿐, 공자명이 진짜 관심을 가진 건 바로 너야.” 예흥찬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림아, 공씨 가문은 당시 호문보다 수백 배나 더 강해. 네가 만약 공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다면 우리 예씨 가문은 반드시 창해시에서 고대 무가 다음으로 버금가는 명문가로 부상할 수 있다.” 여기까지 들은 예우림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기요,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네요? 전 절대 허락할 수 없어요! 또 이런 일로 저 협박하신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예흥찬의 체면을 전혀 봐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예흥찬의 다음 말은 그녀를 그대로 얼어붙게 했다. “예우림, 까불지 마. 네 엄마 유골이 내 손에 있다는 거 설마 잊었어? 네 엄마 유골이 물고기 먹이가 되길 바라는 거 아니겠지?” 순간 예우림의 두 눈에는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거 당신 며느리 유골이자 제 엄마의 유골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그 말에 예정국으 사색이 되어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제가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우림이 엄마 유골은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맡길 게요. 전 아무 의견이 없어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예정국은 절대 예씨 가문을 떠나서 살 수 없었다. 비록 예우림의 어머니에게 감정이 남아있긴 하나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예씨 가문에서 쫓겨나 호화로운 생활을 잃는 거에 비하면 차라리 사랑했던 여자의 유골을 하수구에 버리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예정국의 우물쭈물한 모습에 예우림은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예정국! 당신은 죽은 아내도 팔아먹을 만큼 비열한 사람인가요? 당신한테 양심이란 게 있기나 해요?” 그녀는 자기가 이런 더러운 사람의 피를 가졌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너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어?” 예정국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매번 가문의 뜻을 거역하지만 않았더라도 할아버지가 이러셨겠냐고! 예우림, 당장 할아버지한테 그러겠다고 약속해! 정말 네 엄마가 하수구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예정국도 이참에 그녀를 밀어붙였다. “개돼지만도 못한 사람들!” 예우림은 화가 나서 치가 다 떨렸다. 이런 사람들이 그녀의 가족이라고? 차라리 고아만도 못하다. 예흥찬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림아. 우린 가족이야. 그러니 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예씨 가문의 이익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해.” “어떡하면 우리 엄마 봐주실래요?” 예우림은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간단해. 첫 번째는 며칠 뒤 공씨 가문과 예씨 가문의 부동산 프로젝트 테이프 커팅식에 반드시 참석하는 거야. 그리고 그날 현장에서 공자명과의 혼사를 확정하는 거지.” 예흥찬은 속사포처럼 요구를 내뱉었다. 예우림은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렇게 할 게요.” 어머니는 그녀의 약점이다. 하여 그녀는 어머니의 유골 때문에라도 예흥찬의 조건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방법이 없다.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문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부대표님!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나랑 얘기 좀 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요. 내가 고칠게요.설마 내가 싫어진 거라면 직접 얼굴 보고 말해요!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이혼 통보만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이해해요? 그러니까 이유라도 말해 줘요!” 엄진우는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예우림은 귀가 먹었는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그를 혼자 내버려두었다. 엄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걱정 마요. 절대 부대표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게요. 나한테 이유 설명해 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이유를 듣기 전에는 나 절대 못 가요!” 커튼 뒤에 숨어 엄진우를 보고 있던 예우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진우, 천진하네. 진상을 알아도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넌 고작 평범한 회사원이잖아. 됐다. 마음대로 해. 인내심이 소진되면 알아서 떠나겠지.”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엄진우는 아직도 예우림의 집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태양이 내리쬐었지만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예우림은 그의 의지가 놀라웠다. “엄진우 벌써 열두 시간 가까이 저기 서있었어. 직업군인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결국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려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니 어쩌면 상대는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떠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이때, 긴급 뉴스가 전해졌다. “긴급 소식입니다. 오늘 밤 태풍이 창해시에 상륙할 예정이며 바람 세기는 15급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규모의 강한 천둥 폭풍우가 동반되어 건물에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시민 여러분은 반드시 집에 머무르시고 외출을 삼가하십시오.” “태풍?” 예우림은 그제야 깨달았다. 창밖에는 이미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이건
“엄진우,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예우림은 벼락에 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어젯밤 폭우 속에서 밤새도록 기다린 건가? 맙소사! “내가 그랬잖아. 나와서 이유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엄진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강인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예우림의 눈동자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엄진우를 와락 끌어안더니 그의 가슴을 두드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상관없어.” 엄진우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나한테 넌 세상이야, 예우림. 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난 오직 너 하나만 좋아해.” 예우림은 더는 차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그렇게 좋아?” 이 순간, 그녀는 차가운 상장 대기업의 부대표가 아닌 평범한 여자가 되어 자기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걸 꼭 말해야 알겠어?” 엄진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사실대로 말해줘, 응?” 예우림은 조마조마한 말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너랑 이혼하고 공씨 가문의 공자명과 결혼하라고 협박했어. 며칠 뒤 두 기업에서 손잡은 프로젝트 테이프 커팅식에서 혼약을 맺을 거야.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우리 엄마 유골을 하수구에 던져버린대.” 그 말에 엄진우는 화가 나서 혈압이 치솟았다. “할아버지 입으로 한 말이라고? 대박이다, 어떻게 손녀딸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개보다도 못한 어른이네. 개도 자기 새끼는 아낄 줄 알아. 하수도의 쥐새끼보다 더 역겹군.” 엄진우는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해결할게.” 그러자 예우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해결한다고? 안돼.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상대는 공씨 가문이야. 사대 고대 무가의 새로운 가문이라고.” “소씨 가문도 두렵지 않은데 내가 고대 무가를 두려워할 것 같아?” 엄진우가 코웃음을 치자 예우림은 어이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