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을 끼얹은 듯한 배현수의 말에 선유는 아우성을 치며 단번에 화를 냈다.“아빠, 보는 눈이 없어요!”보석이 많이 박힌 이 왕관은 보기만 해도 매우 아름답다.엄마 말이 맞다. 아빠는 보는 눈이 없다.배현수는 못마땅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보는 눈이 없는데 어떻게 엄마를 아내로 맞이하겠어?”“하지만 엄마가 아직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잖아요!”선유가 마음먹고 대들면 감당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디스를 당한 배현수는 하마터면 ‘X발’이라고 외칠 뻔했다.조유진은 녀석을 잡아당기더니 머리를 빗겨주며 말했다.“삼촌이 선물한 왕관을 쓰니까 너무 예뻐. 아빠 말은 들을 필요 없어.”선유는 가슴을 치며 작은 손을 내저었다.“됐어요. 아빠랑 따지지 않을래요. 엄마, 사진 좀 찍어줘!”조유진은 휴대전화를 꺼내 왕관을 쓴 녀석에게 사진을 몇 장 찍어주려던 참이었다.이때 배현수가 또 입을 열었다.“어느 집 꼬맹이가 한 근짜리 황금을 머리에 쓰고 있어? 키도 다 안 컸는데 경추에 안 좋아.”선유가 대답했다.“아빠, 본인이 좋은 사람 아니라고 일부러 떠벌리고 다니고 싶은 거예요?”선유는 한참 동안 왕관을 들고 있더니 다시 왕관을 쓰고 엄준에게 다가갔다.“할아버지, 삼촌이 선물한 왕관 정말 멋지죠?”엄준은 녀석 때문에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와! 선유야, 할아버지도 생일선물 준비했는데 뭔지 맞춰볼래?”“장난감이요!”엄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장난감이 맞긴 해.”다만 장난감이 좀 크다.선유는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할아버지, 무슨 장난감인데요? 너무 궁금해요!”아빠 혼자만 뜸을 들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할아버지까지 뜸을 들이면 녀석은 어쩌면 오늘 밤에 잠을 설칠 수도 있다.엄준이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는 핑크색 승용차를 준비했어.”“어디에 있는데요!”선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찾지 못하자 엄준이 웃으며 말했다.“마당에 있어. 할아버지에게 없어! 나가서 찾아봐.”재빨리 마당으로 달려가
조유진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선유야,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선유는 얼른 다가가 말했다.“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백년해로하세요!”엄준은 고개를 숙여 다리 옆에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우리 선유가 커서 꼬마 선유가 태어나는 것도 봐야지. 그러면 나도 증조할아버지가 될 수 있잖아.”선유가 배현수를 올려다보자 배현수가 차갑게 물었다.“왜 날 쳐다봐?”선유는 손가락을 조물딱거리며 말했다.“엄마, 삼촌, 할아버지의 선물이 뭔지는 다 알았어요. 하지만 아빠는 도대체 무슨 선물을 준비한 건데요? 왜 이렇게 감추고 있어요?”“내가 주는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어.”선유는 기대와 함께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설마 직접 문제집을 내주고 그런 건 아니죠?”도대체 녀석은 아빠를 얼마나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일까?...오후 5시, 엄명월이 엄씨 사택에 도착하지 않자 조유진이 전화를 걸어 물었다.엄명월은 전화기 너머로 불평을 토로했다.“오늘 재수가 없는지 운전하는데 누가 뒤에서 부딪혔어요. 경찰이 와서 처리하길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기다릴 필요 없어요. 언제 도착할지 몰라요.”조유진은 깜짝 놀랐다.“상황이 심각해요?”“심각하지는 않아요. 범퍼가 조금 눌렸을 뿐이에요.”한편 엄명월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 순간 이상하면서도 낯익은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휴대폰을 귓가에서 내려놓고 물었다.“또 당신이에요?”상대방은 미소를 짓더니 흉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사 씨, 또 만났네요. 우리 둘은 인연이 아주 깊은 것 같아요.”엄명월이 뒤를 돌아보니 멈춰 서 있는 검은색 허머차의 앞 범퍼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멀쩡했다.“그쪽이 내 차를 들이받은 거예요?”상대방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눈 오는 날이라 길이 미끄러워 차가 통제가 안 되더라고요.”“운전면허 다시 따세요.”엄명월이 한마디 쏘아붙였다.이윽고 경찰이 와서 조사했다.“운전면허증 좀 보여주세요.”엄명월이 경찰에게 건넨 운전
선유가 작은 손을 뻗어 하나 집어 들려고 하자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녀석의 손을 바라봤다.하지만 예민하지 못한 선유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한 조각씩 집어들어 먹어치웠다.잠시 후, 엄창민은 소장하고 있던 술 두 병을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최근 난방 때문에 건조하던 찰나 테이블에 오렌지가 한 접시 놓여있는 것을 언뜻 보고는 그도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먹고 나서 맛이 괜찮았는지 또 손을 뻗으려 했다.조유진을 달래기 위해 오렌지를 준비했던 배현수는 코앞에서 그 오렌지가 선유와 엄창민에게 먹히는 것을 지켜봤다.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참다못한 배현수는 과일 접시를 뺏어서 조유진에게 건네며 한마디 했다.“먹어.”그녀가 먹지 않으면 배현수는 어이가 없어 잠을 설칠 것이다.조유진은 그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마지막 조각을 집어먹었다.엄명월이 도착하자 설날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테이블에서 엄준, 엄창민, 엄명월은 모두 술을 마셨다.‘자격이 없는 사위' 배현수도 당연히 술을 마셔야 했다.오늘 밤 안 마시면 조유진과 구청의 문턱을 넘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설날 저녁 식사를 한 젓가락 집기도 전에 엄창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술을 들더니 각자 앞에 있는 150cc 디켄터를 가득 채웠다.엄명월이 조유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오늘 밤은 삼 대 일인 거예요? 배 대표가 술 너무 많이 먹는다고 마음이 아프거나 하진 않겠죠?”조유진은 조롱하며 말했다.“아프지 않으니까 얼마든지 마셔요. 나중에 엄명월 씨가 남자를 데려와도 똑같을 거예요.”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디켄터를 들고 앞에 있는 술잔에 술을 한 잔 따른 후 고개를 숙여 조유진의 귀에 대고 말했다.“내가 진짜로 취하면 사모님이 케어해 주세요.”엄준은 잔을 들어 첫 시작을 알렸다.“그래, 이번 설에 드디어 다 모였구나.”말을 마친 뒤 엄창민과 엄명월을 바라보며 두 마디를 더 했다.“두 사람도 힘내서 내년에 꼭 다른 사람을 데려오길 바라!”엄명월이 대꾸했다.“술이나
엄창민이 배현수를 여러 번 흔들었다.한 번 흔들어 움직이지 않으면 두 번 흔들고 또 세 번 흔들고...엄창민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나도 안 취했는데 이 사람이 취했다고?”배현수가 그보다 주량이 약할 리는 없다. 밑바닥부터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런 술자리 문화를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엄창민은 일부러 심술궂게 굴며 말했다.“술잔에 있는 술을 다 마시지 않으면 조유진과 결혼 못 할 거예요?”하지만 엎드려 있는 남자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정말 취한 것 같았다.선유가 달려가 의자에 꿇어앉더니 작은 손으로 배현수의 팔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아빠, 얼른 일어나서 술 마셔요!”‘다 마시지 않으면 삼촌이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반대할지도 몰라요.’이것보다 더 안 좋은 결과는 없다!상황이 심상치 않자 조유진이 남자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배현수 씨?”엄준이 한마디 끼어들었다.“3대1로 마셔서 진짜로 취해 쓰러진 건 아니겠지? 선유야, 네 아빠가 아직 숨쉬고 있는지 확인해 봐. 진짜로 쓰러지면 안 되니까!”이 말에 조유진은 깜짝 놀랐다.선유는 테이블 위쪽으로 올라가 배현수의 코 위에 작은 손을 갖다 대더니 말했다.“아직 숨은 붙어 있어요.”엄명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우리 넷이 술 네 병도 다 못 마셨어요. 다들 주량이 얼마나 센데 사람이 죽겠어요?”잠시 멈첫한 엄명월은 이내 장난기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아버지, 배현수가 아직 사위도 아닌데 벌써 마음이 아픈 거예요?”조유진은 마지막 술병을 흔들었다. 보아하지 아직 3분의 1이 남았다.즉 그들 네 명은 술 네 병을 거의 다 마셨고 배현수 혼자서 적어도 한 병을 다 마셨다는 것이다.진짜로 취한 것이든 아니면 취한 척하는 것이든 쓰러질 때가 됐다.“아빠, 이만 이 사람 데리고 올라가 쉴게요. 그만 마시고 밥이나 좀 드세요.”엄준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도 집사, 환희와 같이 배현수 좀 부축해 주세요.”조유진과 도 집사는 배현수
착한 선유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넌 그냥 닥치고 있으면 돼.”그 말에 선유가 중얼거렸다.“참지 못하면요?”배현수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그럼 내일 생일 선물은 없어.”“네...”선물을 위해서 녀석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이틀 밤이나 아빠의 선물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안방 문이 ‘딸깍’소리를 내며 열리자 배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눈을 감았다.선유는 고개를 돌려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방금 아빠가 잠꼬대했어!”조유진이 다가와 물었다.“무슨 잠꼬대?”큰 눈을 껌벅이는 녀석의 작은 얼굴은 천진난만해 보였다.“아빠가 엄마 이름을 불렀어. 안 취했다면서 더 마실 수 있다고 했어.”조유진은 얼떨떨한 눈빛으로 술에 취한 배현수를 바라보다 뜨거운 수건으로 그의 손을 닦아주며 말했다.“인사불성이 된 사람이 더 마실 수 있다고?”선유는 턱을 끄덕였다.“응응! 아빠는 엄마와 너무 결혼하고 싶대!”조유진은 침대 옆에 앉아 선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선유야, 엄마가 질문 하나 할게.”선유는 어린 나이지만 늘 애어른처럼 어른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어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일이 어쩌면 어린아이에게 물어보면 쉽게 풀릴 수도 있다.아이들은 순진하고 그들의 세상은 간단하기에 외부의 방해 없이 깔끔하게 문제를 직시할 수 있다.“엄마, 무슨 질문인데? 엄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조유진이 물었다.“가장 친한 친구가 너를 두 번 속였다면 넌 그 친구와 계속 놀 거야?”선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아빠가 엄마를 속였어?”이렇게 티가 났나?조유진은 사실대로 말했다.“그렇지. 아빠가 엄마를 속이는 게 엄마는 너무 싫거든.”조유진은 배현수에게서 등을 돌린 채 선유와 얼굴을 맞대고 말하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침대 위의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심장마저 답답한 듯했다.선유는 한참을 고민하다 대책을 내놓았다.“그럼 엄마도 아빠를 속여서 얼마나 잘못한 건지 알게 해줘요.”참 ‘좋은’ 생각이다.조유진은 더 이상 꼬맹
조유진이 이렇게 반문하자 배현수는 눈에 띄게 얼어붙었다.그는 조유진의 어깨를 짓누르더니 부드럽고 향긋한 목덜미에 얼굴을 깊숙이 묻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어, 개처럼 따라다녀야 해. 네가 언젠가 돌아봐 주기를 기다리면서.”답답하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조유진의 심장을 찔렀다.왠지 모르게 배현수가 성남까지 와서 그녀와 엄창민을 몰래 따라다녔던 기억이 났다.목구멍이 점점 시큰거린 조유진은 실소를 터뜨렸다.“내가 무시해도 참을 수 있어요?”“몰라.”그의 대답에 가식이 없었다.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두 손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그런 그의 신체적인 반응이 조유진은 낯설지 않았다.배현수의 손을 살짝 헤집고 돌아서서 그를 보려고 했으나 점점 더 강하게 그의 허리를 조였고 남자의 손등에 핏줄마저 선명히 드러났다.손을 뗄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조유진은 살짝 흐느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말했다.“몸이 왜 이렇게 반응해요? 송지연이 엉터리 심리상담사예요?배현수는 어이없는 듯 말했다.“송지연이 엉터리 의사가 아니라 내가... 너 없으면 못 살아.”조유진과 헤어져 있는 동안 손에 입은 화상흉터는 아물지 않았고 새 상처가 낡은 상처를 덮어도 엄지손가락에는 옅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조유진은 눈시울을 살짝 적셨다.“배현수 씨, 불쌍한 척하는 거예요?”아직도 척할 필요가 있을까?지금도 충분히 유기견처럼 보이지 않냐 말이다.한참을 묵묵히 있던 배현수가 말했다.“예지은의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네가 대제주시를 떠난 뒤 갑자기 실종됐어.”조유진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그럼 찾았어요? 내가 그날 찾아간 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아직 찾고 있어. 너와 상관없어.”조유진은 예지은에 대해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조씨 집안으로 데려온 사실을 안 후부터 절대 좋은 감정이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예지은은 배현수의 친어머니이기에 미워할 수 없었다.두 모자가 비록 정이 깊지는 않지만 혈연관계가 있는 것은
안방의 불빛은 매우 어두워 배현수는 미처 그녀의 안색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손도 안 댔는데 벌써 아파? 유진아, 지금 아픈 건 나야.”아파서 죽을 지경이다.조유진은 가는 팔로 그의 팔뚝을 잡더니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니... 나 생리 온 것 같아요.”...대제주시.육지율은 남초윤을 데리고 저택에서 설날 저녁 식사를 한 뒤 교외의 강변으로 드라이브를 갔다.며칠째 눈이 계속 내려 강에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었다.육지율이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려 고개를 돌렸더니 발신자 표시에는 ‘유’자가 떠 있었다.조수석에 타고 있던 남초윤도 당연히 봤다.얼마나 신경을 쓰면 상대방의 풀네임도 저장하지 않았을까? 오직 ‘유’자로만 저장을 한다고?남초윤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받고 싶으면 받아요.”육지율의 이런 상황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남초윤은 익숙해졌다.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시가 박힌 것처럼 아팠다.육지율은 진짜로 그녀의 말대로 전화를 받았지만 스피커폰으로 받았다.아름다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부드럽게 들려왔다.“지율 씨, 새해 복 많이 받아.”육지율은 편안한 자세로 운전석에 기대 있었다. 잘생긴 사납고 건방진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모습으로 덤덤하게 대답했다.“응, 새해 복 많이 받아.”유설영은 바로 물었다.“아직도 육씨 저택에 가서 설날 저녁을 먹어?”“다 먹었어.”그 말에 유설영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럼 놀러 나올래? KK클럽으로 내가 사람들을 불렀는데 고등학교 동창들도 여럿 있어.”남초윤의 가슴은 저도 모르게 철렁 내려앉았다.육지율은 핸들에 손을 얹은 채 남초윤을 쳐다보다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가족과 같이 나왔어. 난 안 갈 테니 너희들끼리 놀아.”유설영은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가족? 가족이 있어? 할아버지와 같이 불꽃놀이 보러 나간 거야?”망신스러운 육지율의 결혼이었기에 남초윤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육지율은 이 말을 인정할 수 없다.“결혼하기 전에 정상적인 연애를 하는 것마저 안 되면 당신과 김성혁이 예전에 연애했던 것은요? 그럼 그것도 함부로 논 거겠네요?”남초윤의 과거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분명 말했다.과거의 사람은 과거에서 끝내야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옛사랑을 다시 언급하는 일은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며 과거는 바꿀 수 없다.육지율이라는 사람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영원히 현재에 포인트를 두고 살아가고 있으며 누가 더 소중하고 누구와 멀리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이 세상 남녀 사이는 조건만 나쁘지 않으면 결혼 전에 몇 번 감정이 있을 수 있고 아주 정상적이다.하물며 육지율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이다.유설영과 사귀었던 것이 뭐 어때서? 결혼하기 전에 누구와 연애를 하든 모두 그의 자유이다.남초윤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내가 지금 예전의 일을 말하는 거예요? 나 과거를 들추어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요.”그 당시 그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육지율의 배우자리스트에 없었다. 심지어 서로 알지도 못했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에게 이런 요구를 하겠는가?육지율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모처럼 정색을 하고는 말했다.“결혼 후 한 번도 결혼생활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어요.”바람피우는 일은 육지율에게 저급하기 그지없다.장난이 심하지만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예전에 연애하다가 질릴 것 같으면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말하고 빨리 헤어지고 깨끗하게 연락을 끊었다.상대방이 정말로 죽기 살기로 쫓아오면 경제적으로 약간의 보상을 해줬다.물론 다른 것은 더 이상 줄 수 없다.이 사람과 앞으로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건드리면 정말 무책임하다.양다리, 환승연애, 바람... 이런 천한 일은 여태껏 해 본 적이 없다.안 좋게 얘기하면 이런 일은 자제력 없는 사람들이 자극을 찾거나 존재감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지루하고 저속한 감정에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