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수가 말했다.“어젯밤 찬물에 몸을 담근 탓에 새벽에 미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은데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그 말을 들은 엄준은 걱정된 듯 도 집사에게 지시했다.“도 집사, 의사를 불러서 환희 상태 좀 체크해 봐. 괜히 설에 아프면 안 되잖아.”“네, 바로 전화해서 오라고 하겠습니다.”선유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해 어젯밤에 일찍 잤다. 배현수가 성남에 온 줄도 모르고 조유진이 왜 갑자기 아픈지도 모르기에 의아한 듯 관심조로 물었다.“엄마 왜 열이 나요?”배현수가 대답했다.“어린애는 몰라도 돼. 넌 데코레이션이나 계속해.”선유는 바닥에 있는 솔을 주워 풀 반죽을 묻히며 어이없는 듯 말했다.“할아버지가 안아주지 않으면 손이 안 닿아요!”배현수는 꼬마를 번쩍 들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얼른 붙여.”선유는 그의 어깨에 걸터앉아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아빠, 재촉하지 마요! 재촉하면 붙이다가 삐뚤어지니까!”배현수가 녀석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는가?“그렇게 굼뜨게 할 거면 붙이지 마.”다 붙인 후, 선유가 배현수의 어깨에서 내리며 새하얀 두 손바닥을 불쑥 내밀었다.배현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힐끗 봤다.“왜?”선유는 웃으며 말했다.“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용돈 주세요!”새해 인사도 하고 세뱃돈도 받을 셈이었다.성남에 있을수록 아이가 점점 안 좋은 버릇이 든 것 같다.배현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세뱃돈 없어.”선유는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실망한 듯 말했다.“아빠, 정말 재미없어.”녀석이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인 모습에 배현수는 피식 웃었다.“곧 생일인데 선물 줄까?”그 말에 선유는 신이 나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뭔데요?!”“비밀이야, 내일 깨면 알겠지. 뭐.”“설마 돈 봉투는 아니죠?”배현수는 하찮은 얼굴로 말했다.“그렇게 촌스러운 거 아니야.”오전 내내 엄씨 사택에서는 주방에서는 설날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등 섣달 그믐날을 보낼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점심까지 잔 조
어젯밤 스캔들이 실검을 도배했을 때, 조유진은 찬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 인터넷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갑작스러운 배현수의 질문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요?”남자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자 분위기는 몇 초 동안 경색되었다.배현수는 거대한 파도가 소용돌이치듯 어두운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어젯밤 엄창민과 함께 우산을 썼잖아.”조유진은 잠시 멍해졌다.어젯밤의 상황을 힘껏 회상해 보니 그런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밖에 눈이 오고 있었고 또 약에 중독되어 창민 오빠의 차에 탄 거예요. 오빠는 최대한 젠틀하게 나를 배려해 준 것이고요. 창민 오빠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그렇다고 엄창민이 그녀를 거기에 둔 채 다른 사람이 해코지하길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사람이라면 다 아는 기본도리이다.하지만 같이 우산을 썼다는 것은 배현수에게 아주 사적인 행동으로 커플과 부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행동이다.애당초 조유진이 엄창민과 사귄다는 오해를 한 것처럼 말이다.그때 성남에 와서 조유진과 엄창민의 뒤를 밟고 그들이 고깃집을 가고 마트도 함께 가는 것을 보며... 이런 행동들이 극히 평범한 커플처럼 느껴졌기에 오해했을 뿐이다.지금 돌이켜봐도 너무 질투가 나 당장 심장이 불타오를 것 같다.배현수는 입술을 달싹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온몸으로 ‘나 좀 달래봐’라는 뜻을 풍기고 있었다.이 뜻을 알아챈 조유진은 문득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왜 혼자 성남으로 먼저 돌아왔는지 잊었단 말인가?아직 전에 화가 난 것도 따지지 않았기에 절대 그를 달랠 리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지하게 말했다.“창민 오빠와 우산을 같이 쓴 것은 어제 상황이 특수했던 것도 있지만 평범한 친구들 사이도 우산을 같이 쓰잖아요.”배현수도 똑같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나는 내게 마음이 있는 여자와 우산을 같이 쓰지 않아.”어젯밤은 특수한 상황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배현수가 겨우 입을 열었다.“너희 엄마가 나를 모함하는 거잖아.”이 말은 선유에게 대답한 것이기도 했지만 조유진을 보고 한 말이기도 했다.조유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선유에게 말했다.“엄마도 생일선물 준비했어. 평안을 기원하는 자물쇠야. 새 옷도 한 벌 샀는데 이따가 마음에 드는지 입어 봐.”선유는 앙증맞게 고개를 끄덕였다.“응응! 엄마가 사주는 건 다 좋아!”잠시 후 위층에서 내려온 엄창민의 손에는 선물세트가 들려 있었다.“선유야, 너의 생일이니까 나도 선물 준비했어! 열어봐.”지체없이 선물세트를 뜯은 선유는 작은 손으로 박스 안에서 작은 왕관을 들고 나왔다. 특이한 것은 왕관은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왕관 위에는 알록달록한 보석이 박혀 반짝반짝 빛났다.선유는 깜짝 놀라 외쳤다.“와! 너무 예뻐요!”엄창민은 선유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공주님, 한번 써보세요.”녀석은 작은 왕관을 들고 자신의 머리에 올렸지만 삐뚤어지자 조유진이 손을 들어 몇 번 조정해줬다.선유는 작은 입을 벌리며 말했다.“창민 아저씨, 선물 고마워요! 마음에 들어요!”그 말에 엄창민이 대답했다.“그렇게 좋으면 앞으로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이해하지 못한 선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버지께서 엄창민이라고 부르는데 그럼 나도 엄창민이라고 불러도 돼요?”엄창민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삼촌이라고 불러봐!”선유는 바로 말했다.“삼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녀석은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며 엄창민의 비위를 맞췄다.의자에 기대어 있던 친아버지는 순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작은 선물에 조카딸 하나 공짜로 얻었네.”선유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아빠, 삼촌이 엄마에게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아빠가 없을 때 삼촌이 우리를 돌봐 줬어요!”어린아이들이 거짓말을 못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말은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
찬물을 끼얹은 듯한 배현수의 말에 선유는 아우성을 치며 단번에 화를 냈다.“아빠, 보는 눈이 없어요!”보석이 많이 박힌 이 왕관은 보기만 해도 매우 아름답다.엄마 말이 맞다. 아빠는 보는 눈이 없다.배현수는 못마땅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보는 눈이 없는데 어떻게 엄마를 아내로 맞이하겠어?”“하지만 엄마가 아직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잖아요!”선유가 마음먹고 대들면 감당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디스를 당한 배현수는 하마터면 ‘X발’이라고 외칠 뻔했다.조유진은 녀석을 잡아당기더니 머리를 빗겨주며 말했다.“삼촌이 선물한 왕관을 쓰니까 너무 예뻐. 아빠 말은 들을 필요 없어.”선유는 가슴을 치며 작은 손을 내저었다.“됐어요. 아빠랑 따지지 않을래요. 엄마, 사진 좀 찍어줘!”조유진은 휴대전화를 꺼내 왕관을 쓴 녀석에게 사진을 몇 장 찍어주려던 참이었다.이때 배현수가 또 입을 열었다.“어느 집 꼬맹이가 한 근짜리 황금을 머리에 쓰고 있어? 키도 다 안 컸는데 경추에 안 좋아.”선유가 대답했다.“아빠, 본인이 좋은 사람 아니라고 일부러 떠벌리고 다니고 싶은 거예요?”선유는 한참 동안 왕관을 들고 있더니 다시 왕관을 쓰고 엄준에게 다가갔다.“할아버지, 삼촌이 선물한 왕관 정말 멋지죠?”엄준은 녀석 때문에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와! 선유야, 할아버지도 생일선물 준비했는데 뭔지 맞춰볼래?”“장난감이요!”엄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장난감이 맞긴 해.”다만 장난감이 좀 크다.선유는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할아버지, 무슨 장난감인데요? 너무 궁금해요!”아빠 혼자만 뜸을 들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할아버지까지 뜸을 들이면 녀석은 어쩌면 오늘 밤에 잠을 설칠 수도 있다.엄준이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는 핑크색 승용차를 준비했어.”“어디에 있는데요!”선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찾지 못하자 엄준이 웃으며 말했다.“마당에 있어. 할아버지에게 없어! 나가서 찾아봐.”재빨리 마당으로 달려가
조유진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선유야,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선유는 얼른 다가가 말했다.“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백년해로하세요!”엄준은 고개를 숙여 다리 옆에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우리 선유가 커서 꼬마 선유가 태어나는 것도 봐야지. 그러면 나도 증조할아버지가 될 수 있잖아.”선유가 배현수를 올려다보자 배현수가 차갑게 물었다.“왜 날 쳐다봐?”선유는 손가락을 조물딱거리며 말했다.“엄마, 삼촌, 할아버지의 선물이 뭔지는 다 알았어요. 하지만 아빠는 도대체 무슨 선물을 준비한 건데요? 왜 이렇게 감추고 있어요?”“내가 주는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어.”선유는 기대와 함께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설마 직접 문제집을 내주고 그런 건 아니죠?”도대체 녀석은 아빠를 얼마나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일까?...오후 5시, 엄명월이 엄씨 사택에 도착하지 않자 조유진이 전화를 걸어 물었다.엄명월은 전화기 너머로 불평을 토로했다.“오늘 재수가 없는지 운전하는데 누가 뒤에서 부딪혔어요. 경찰이 와서 처리하길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기다릴 필요 없어요. 언제 도착할지 몰라요.”조유진은 깜짝 놀랐다.“상황이 심각해요?”“심각하지는 않아요. 범퍼가 조금 눌렸을 뿐이에요.”한편 엄명월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 순간 이상하면서도 낯익은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휴대폰을 귓가에서 내려놓고 물었다.“또 당신이에요?”상대방은 미소를 짓더니 흉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사 씨, 또 만났네요. 우리 둘은 인연이 아주 깊은 것 같아요.”엄명월이 뒤를 돌아보니 멈춰 서 있는 검은색 허머차의 앞 범퍼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멀쩡했다.“그쪽이 내 차를 들이받은 거예요?”상대방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눈 오는 날이라 길이 미끄러워 차가 통제가 안 되더라고요.”“운전면허 다시 따세요.”엄명월이 한마디 쏘아붙였다.이윽고 경찰이 와서 조사했다.“운전면허증 좀 보여주세요.”엄명월이 경찰에게 건넨 운전
선유가 작은 손을 뻗어 하나 집어 들려고 하자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녀석의 손을 바라봤다.하지만 예민하지 못한 선유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한 조각씩 집어들어 먹어치웠다.잠시 후, 엄창민은 소장하고 있던 술 두 병을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최근 난방 때문에 건조하던 찰나 테이블에 오렌지가 한 접시 놓여있는 것을 언뜻 보고는 그도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먹고 나서 맛이 괜찮았는지 또 손을 뻗으려 했다.조유진을 달래기 위해 오렌지를 준비했던 배현수는 코앞에서 그 오렌지가 선유와 엄창민에게 먹히는 것을 지켜봤다.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참다못한 배현수는 과일 접시를 뺏어서 조유진에게 건네며 한마디 했다.“먹어.”그녀가 먹지 않으면 배현수는 어이가 없어 잠을 설칠 것이다.조유진은 그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마지막 조각을 집어먹었다.엄명월이 도착하자 설날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테이블에서 엄준, 엄창민, 엄명월은 모두 술을 마셨다.‘자격이 없는 사위' 배현수도 당연히 술을 마셔야 했다.오늘 밤 안 마시면 조유진과 구청의 문턱을 넘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설날 저녁 식사를 한 젓가락 집기도 전에 엄창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술을 들더니 각자 앞에 있는 150cc 디켄터를 가득 채웠다.엄명월이 조유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오늘 밤은 삼 대 일인 거예요? 배 대표가 술 너무 많이 먹는다고 마음이 아프거나 하진 않겠죠?”조유진은 조롱하며 말했다.“아프지 않으니까 얼마든지 마셔요. 나중에 엄명월 씨가 남자를 데려와도 똑같을 거예요.”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디켄터를 들고 앞에 있는 술잔에 술을 한 잔 따른 후 고개를 숙여 조유진의 귀에 대고 말했다.“내가 진짜로 취하면 사모님이 케어해 주세요.”엄준은 잔을 들어 첫 시작을 알렸다.“그래, 이번 설에 드디어 다 모였구나.”말을 마친 뒤 엄창민과 엄명월을 바라보며 두 마디를 더 했다.“두 사람도 힘내서 내년에 꼭 다른 사람을 데려오길 바라!”엄명월이 대꾸했다.“술이나
엄창민이 배현수를 여러 번 흔들었다.한 번 흔들어 움직이지 않으면 두 번 흔들고 또 세 번 흔들고...엄창민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나도 안 취했는데 이 사람이 취했다고?”배현수가 그보다 주량이 약할 리는 없다. 밑바닥부터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런 술자리 문화를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엄창민은 일부러 심술궂게 굴며 말했다.“술잔에 있는 술을 다 마시지 않으면 조유진과 결혼 못 할 거예요?”하지만 엎드려 있는 남자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정말 취한 것 같았다.선유가 달려가 의자에 꿇어앉더니 작은 손으로 배현수의 팔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아빠, 얼른 일어나서 술 마셔요!”‘다 마시지 않으면 삼촌이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반대할지도 몰라요.’이것보다 더 안 좋은 결과는 없다!상황이 심상치 않자 조유진이 남자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배현수 씨?”엄준이 한마디 끼어들었다.“3대1로 마셔서 진짜로 취해 쓰러진 건 아니겠지? 선유야, 네 아빠가 아직 숨쉬고 있는지 확인해 봐. 진짜로 쓰러지면 안 되니까!”이 말에 조유진은 깜짝 놀랐다.선유는 테이블 위쪽으로 올라가 배현수의 코 위에 작은 손을 갖다 대더니 말했다.“아직 숨은 붙어 있어요.”엄명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우리 넷이 술 네 병도 다 못 마셨어요. 다들 주량이 얼마나 센데 사람이 죽겠어요?”잠시 멈첫한 엄명월은 이내 장난기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아버지, 배현수가 아직 사위도 아닌데 벌써 마음이 아픈 거예요?”조유진은 마지막 술병을 흔들었다. 보아하지 아직 3분의 1이 남았다.즉 그들 네 명은 술 네 병을 거의 다 마셨고 배현수 혼자서 적어도 한 병을 다 마셨다는 것이다.진짜로 취한 것이든 아니면 취한 척하는 것이든 쓰러질 때가 됐다.“아빠, 이만 이 사람 데리고 올라가 쉴게요. 그만 마시고 밥이나 좀 드세요.”엄준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도 집사, 환희와 같이 배현수 좀 부축해 주세요.”조유진과 도 집사는 배현수
착한 선유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넌 그냥 닥치고 있으면 돼.”그 말에 선유가 중얼거렸다.“참지 못하면요?”배현수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그럼 내일 생일 선물은 없어.”“네...”선물을 위해서 녀석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이틀 밤이나 아빠의 선물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안방 문이 ‘딸깍’소리를 내며 열리자 배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눈을 감았다.선유는 고개를 돌려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방금 아빠가 잠꼬대했어!”조유진이 다가와 물었다.“무슨 잠꼬대?”큰 눈을 껌벅이는 녀석의 작은 얼굴은 천진난만해 보였다.“아빠가 엄마 이름을 불렀어. 안 취했다면서 더 마실 수 있다고 했어.”조유진은 얼떨떨한 눈빛으로 술에 취한 배현수를 바라보다 뜨거운 수건으로 그의 손을 닦아주며 말했다.“인사불성이 된 사람이 더 마실 수 있다고?”선유는 턱을 끄덕였다.“응응! 아빠는 엄마와 너무 결혼하고 싶대!”조유진은 침대 옆에 앉아 선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선유야, 엄마가 질문 하나 할게.”선유는 어린 나이지만 늘 애어른처럼 어른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어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일이 어쩌면 어린아이에게 물어보면 쉽게 풀릴 수도 있다.아이들은 순진하고 그들의 세상은 간단하기에 외부의 방해 없이 깔끔하게 문제를 직시할 수 있다.“엄마, 무슨 질문인데? 엄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조유진이 물었다.“가장 친한 친구가 너를 두 번 속였다면 넌 그 친구와 계속 놀 거야?”선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아빠가 엄마를 속였어?”이렇게 티가 났나?조유진은 사실대로 말했다.“그렇지. 아빠가 엄마를 속이는 게 엄마는 너무 싫거든.”조유진은 배현수에게서 등을 돌린 채 선유와 얼굴을 맞대고 말하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침대 위의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심장마저 답답한 듯했다.선유는 한참을 고민하다 대책을 내놓았다.“그럼 엄마도 아빠를 속여서 얼마나 잘못한 건지 알게 해줘요.”참 ‘좋은’ 생각이다.조유진은 더 이상 꼬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