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너머의 조유진은 순간 멈칫했다.입을 벌려 무엇인가 말하기도 전에 배현수의 침착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한 시간 정도면 진주에 도착할 것 같아. 호텔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줘.”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쥔 채 아무런 대답 없이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배현수가 불렀다.“유진아?”조유진은 급히 ‘어’라고 외쳤다. 그리고 바로 호텔 위치와 방 번호를 알려줬다.전화기 너머로 경미한 자동차 주행 소리가 들려왔다.조유진은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 말했다.“서 비서님과 같이 안 있었어요?”“새벽이잖아. 서정호를 부르면 적어도 40, 50분은 늦어.”서정호는 도시 외곽에 살고 있다.한편 배현수가 살고 있는 산성 별장은 뉴타운 근교에 있다. 두 곳의 거리가 좀 멀다.조유진은 살짝 흐느끼는 목소리로 물었다.“앞이 잘 보여요?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해 큰 문제는 없어.”그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차분했다. 마치 이 모든 행동이 평소와 같은 것처럼 말이다.그런데 사실... 이것은 미친 짓이다.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한밤중에 혼자 차를 몰고 진주시로 그녀를 찾으러 왔다. 서 비서더러 운전하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조유진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눈시울을 붉혔다.“현수 씨, 나 그저 악몽 꾼 것뿐이에요.”“알고 있어.”“한밤중에 차를 몰고 올 필요는 없어요. 낮에 비행기를 타거나 서 비서님에게 운전 부탁해서 와도 돼요.”이번에는 배현수가 몇 초 동안 침묵을 지켰다.서로 말이 없는 통화 사이에 작고 가벼운 전류 소리가 들렸다.배현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너 지금 내가 필요하잖아. 낮에는 슬퍼하지 않을 텐데 그때 가서 뭘 해?”뜨거운 눈물이 이불 위에 떨어졌다.이 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서로만이 알 것이다.그녀가 스위스에서 유산했을 때, 그녀가 그를 가장 필요로 했을 때, 그가 곁에 있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조유진은 가볍게 코를 훌쩍였다.“그럼 운
통화는 계속되었다.조유진은 그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까 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새벽 5시가 다 되어갔지만 진주시의 겨울밤은 여전히 캄캄했다.호텔 방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똑똑.기척이 들리자 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벌떡 일어섰다.방범 체인을 풀고 열려고 했지만 드래곤 파의 납치가 생각나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룸서비스입니다.”‘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익숙하고 훤칠한 남자의 모습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큰 손이 허리를 껴안았다.차갑고 은은한 향기가 그녀를 덮쳤다.배현수는 몸을 숙였다. 그러고는 얼굴을 숙이더니 코끝을 맞대고 말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룸서비스라고 하는데 문을 열어?”조유진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누군가 포옹해주기 위해 한밤중에 여기까지 달려온 것을 알거든요.”사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아봤다.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둥켜안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쾅.배현수는 발을 들어 방문을 걷어찼다.안경 렌즈 뒤 남자는 검은 눈망울에 장난기를 머금고 웃었다.“문앞까지 배달된 남자, 한 번 맛보지 않을래?”조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안경 좀 벗겨줘.”일회용 슬리퍼를 신은 조유진인지라 두 사람은 키 차이가 많이 났다.그녀는 그의 팔을 잡고 힘주어 까치발을 들고는 손을 들어 그의 콧등에 있는 안경을 벗겼다.배현수가 한마디 더 했다.“키스?”안경을 벗는 순간 조유진은 허리가 부쩍 조이는 것을 느꼈다.뜨거운 키스가 거침없이 이어졌다.심지어 그녀에게 저항하고 고려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조유진은 그의 힘준 포옹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작은 이별이 신혼보다 낫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잠깐의 이별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더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키스는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깊었다.조유진은 숨이 막혀 그의 품에 주저앉아버렸다. 하얀 손을 그의 어깨에 놓은 채 그의 깊은 키스에 온
그녀를 내려다보던 배현수는 조롱하듯 말했다.“히터 서비스는 돈을 추가해야 합니다.”조유진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얼마예요?”“분 단위로 계산해요. 돈은 달러로 계산하고요.”“이렇게 비싸요?”배현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오뚝한 콧등을 톡 쳤다.“나와 결혼해 주시면 공짜로 해드릴게요.”조유진은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의 검은 카드를 들고 말했다.“카드로 할게요.”배현수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더니 한껏 다가서서 몸을 숙였다.“알겠습니다. 배현수 씨 사모님, 얼마나 따뜻하게 해드릴까요?”조유진은 진짜로 시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이 새벽 5시니까 아침 8시까지면 3시간이다.검은 카드를 그의 손바닥 위에 긁으며 말했다.“먼저 세 시간만 계산해 주세요.”배현수는 코트를 벗은 뒤 욕실로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는 이불을 들추고 들어왔다.그리고 뒤에서 조유진을 덥석 안았다.그의 몸은 매우 뜨거웠다.가슴도 따뜻했다.조유진은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 기댔다.배현수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더니 차가운 두 손을 꼭 잡았다.“왜 좋은 호텔에 묵지 않은 거야?”이 호텔은 히터도 잘 안 되고 침대도 푹신푹신하지 않다.조유진이 말했다.“건축자재 공장과 가깝고 근처에는 고급 호텔이 별로 없어요. 출장 온 거지 휴가 온 게 아니잖아요.”그녀의 몸은 얼음 덩어리 같았다.배현수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나 잠옷 벗을까? 그러면 네가 더 따뜻할 것 같은데?”조유진은 얼굴을 붉혔다.“싫어요.”배현수는 사실 뻔히 알면서 물어본 것이다.“왜 싫어? 잠옷을 벗으면 더 따뜻해.”그의 목소리는 한껏 잠겨 있었다.배현수가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 조유진은 얼른 말했다.“의사가 유산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잠자리하지 말라고 했어요.”배현수는 나지막이 웃으며 일어나 잠옷을 벗었다.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미지근한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이내 조유진의 온몸을 따뜻하게 해줬다. 그의 몸은 불같
일어나 앉은 조유진은 자신의 몸이 벌거벗은 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이제야 생각났다... 옆에 남자도 누워있다.뇌 정지가 왔지만 이내 밖에서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조유진은 자기 옆구리를 껴안고 있던 남자의 팔을 얼른 떼고 가운을 두르고 문을 열었다.조마조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늦잠을 잤네요. 죄송해요. 바로 씻을 테니 10분만 기다려 주세요.”엄명월은 그녀의 목에 있는 키스 마크를 한눈에 알아보았다.새하얀 피부에 남아 있는 자국은 시선을 강탈했다.엄명월은 방안을 샅샅이 훑으며 말했다.“참 대담하네요. 배 대표님 몰래 남자를 호텔에 불러들이다니요?”조유진은 바로 문 앞을 가로막으며 어색한 듯 웃었다.“엄 팀장님, 오해...”엄명월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우리 다 성인이에요. 이해해요. 이런 사생활은 외부에 폭로하지 않을게요.”조유진은 입을 달싹였다.“고마워요.”가십거리를 즐기는 조유진을 겨우 보낸 조유진은 문을 닫고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불과 10분 만에 옷을 후다닥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남자 ‘모델’이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오전 9시, 조유진은 엄명월을 따라 건축자재 공장에 도착했다.공장 시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명월은 화를 냈다. 그녀는 공장 안에 가득 쌓인 건축 자재를 보며 피식 웃었다.“이게 최근 품질 미달로 반출된 건축 자재들이에요?” 라인 책임자 우동윤은 늙은 여우 같은 인간이다. 그는 교묘하게 책임을 전가했다.“엄 팀장님, 사실 건자재 공장마다 부적격 건축자재들이 많이 반출돼요. 이 건축자재들은 더 이상 시장에 내다 팔 수 없어서 버릴 수밖에 없고요. 생산 라인을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정상적인 프로세스입니다.”그는 가볍게 말하며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20대 초반밖에 안 되는 눈앞의 이 두 계집애가 알긴 뭘 알겠는가?그녀들은 그저 윗선에 보고하기 위해 본인들에게 위압하는
원자재를 보관하는 공장에 들어서자 엄명월과 조유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광경이 펼쳐졌다.우동윤은 일부러 경악한 척하며 말했다.“얼마 전까지 진주시에 눈이 많이 내렸어요. 방금 눈이 녹다 보니 지붕에서 물이 새는 줄 몰랐어요. 최선을 다해 방수 공사하고 있지만 이 자재들은 망가져서 더 이상 쓸 수 없겠네요...”엄명월은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냉소를 지었다.“그건 이유인가요, 아니면 핑계인가요?”우동윤은 두 손을 맞잡은 채 애매한 태도로 말했다.“엄 팀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생산라인에서 여러 가지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에요. 자연재해로 인해 일부 원자재가 망가지고 폐기되는 것은...” 엄명월은 바로 호통쳤다.“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세요!”우동윤은 몇 초간 넋을 잃었지만 얼굴에는 두려움이나 후회라고는 전혀 없었다.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엄 팀장님, 지금 그 말 확실합니까?”사실 일하는 데서 우동윤 같은 늙은 여우는 많다.“왜,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건가요?”“그건 아니에요. 지금 라인에 있는 기술자들은 대부분 제가 데려온 사람들입니다. 만약 제가 가버리면 십중팔구 더 이상 이 공장에 있지 않을 것이고요. 그 친구들처럼 20, 30년 경력이 있는 베테랑 기술자들은 워낙 많지 않아서 필요로 하는 공장이 많을 거예요.”엄명월은 이를 악물고 가볍게 웃었다.“지금 협박하는 거예요?”“제가 어떻게 감히 엄 팀장님을 협박하겠어요. 단지 엄 팀장님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죠. 곧 연말이에요. 지금 받은 수주들도 빨리 출고해야 하고요. 그런데 이 시점에 베테랑 기술자들이 그만두면...”우동윤은 일부러 몇 초간 뜸을 들이며 엄명월과 조유진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봤다.그러다가 계속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곧 새해가 돼요. 엄 팀장님, 지금 해고하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기술자들을 찾을 수 있겠어요? 우리야 당장이라도 갈 수 있지만 지금 받은 수주들을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아마 고객사들이...”엄명월의
“이 리스트의 물건이 다 팔리면 제가 어떻게 혼내는지 보세요!”조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방금 우리가 본인을 해고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분명 배후에 누군가가 있을 거예요.”엄명월은 눈살을 찌푸렸다.“이미 다른 회사와 내통하고 있다는 말이에요?”조유진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공장 식당에서 먹는 게 어때요? 정보도 좀 알아볼 겸.”“옷이 더러워서 호텔 가서 샤워 좀 하고 싶어요...”호텔?오전 내내 바쁘게 돌아다닌 조유진은 그제야 ‘남자 모델'이 아직 호텔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점심때 뭘 먹을지 물어보려고 전화하려 할 때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어디야?”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조유진이 말했다.“공장 쪽에 있어요. 식당에서 밥 먹고 가려고요. 이따가 음식을 싸서 호텔로 가져갈까요? 아니면 따로 배달 음식 주문할 거예요?”배현수의 성격상 절대 공장 식당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전화기 너머로 바스락거리는 옷 입는 소리가 났다.“위치 보내줘. 그쪽으로 갈게.”조유진은 옆에 있는 엄명월을 곁눈질로 쳐다봤다.그러고는 돌아서서 손으로 수화기를 가렸다.“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기 식당 음식 별로 맛이 없어요.”게다가 지금은 사실 근무시간이다. 출장 중이라 시간이 자유로울 뿐이다.“너도 먹을 수 있는데 내가 왜 못 먹겠어? 혹시 엄명월과 같이 있는 거야?”“네.”배현수는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나더러 오지 말라고 하고 몰래 엄명월과 같이 있으려고?”조유진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전화를 끊은 후, 조유진이 말했다.“저희와 같이 식당에서 밥 먹겠다는 사람이 또 있네요.”엄명월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여기에 친구가 있어?”“네, 그냥 보통 친구예요.”엄명월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아침에 호텔 방에 있던 그 남자 모델이야?”조유진은 묵인했다.엄명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게 평범한
옆에 식판을 든 근로자 두 명이 지나갔다.“이틀 동안 일하지 않아서 밥도 안 넘어가요.”“오늘 위에서 조사했다고 왔다고 하던데 우리 다 해고되는 거 아니에요?”“해고가 뭐가 두려워요? 우 공장장님이 얘기했잖아요. 해고되면 더한 공장으로 데려가겠다고요. 그쪽 월급이 이쪽보다 두 배나 높다고 하셨어요.”“우 공장장님 말이 믿을 수 있는 거예요? 진짜로 이렇게 좋은 일이 있다고요?”“어차피 우리는 우 공장장님만 따르면 되잖아요. 우 공장장님만 따르면 손해는 없을 거예요.”...엄명월은 젓가락을 테이블에 ‘탁’하고 내려놨다. 순식간에 식욕이 없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조유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충동하지 마세요!”물을 사 오던 배현수도 이 상황을 발견했다.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타이밍을 잘못 맞췄나?”조유진은 황급히 손을 뗐다.배현수가 생수병 뚜껑을 딴 후 조유진에게 건넸다.조유진은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더한이라는 회사 왠지 귀에 익은 것 같아요. 혹시 예전에 나에게 얘기한 적 있어요?”엄명월은 한마디 귀띔했다.“지난번에 하민 건설의 장 주임의 주문 건이요. 그게 더한에서 빼앗아 온 거예요. 아마 우리에게 복수하려는 것 같아요.”조유진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하민 건설 계약서 하나 뺏긴 것 때문에 사람까지 붙여서 우리에게 복수한다고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엄명월이 말했다.“그저 경고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단은 날뛰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어요. 지금 기술자들을 대신할 사람만 찾으면 바로 해고할 거니까.”조유진이 넋을 놓고 있는 모습에 배현수는 닭 다리를 집어서 조유진의 앞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접시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맛있게 먹어.”정신을 차린 조유진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며 말했다.“이렇게 많이는 다 못 먹어요.”“다 못 먹으면 천천히 먹어.”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꾸할 수 없게 했다.진주에 온 목적이 그녀가 밥을 먹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것일까?밥을
조유진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배 대표님, 이건 억지 아니에요?”자기가 직접 복근을 만지게 해놓고 그것도 직접 자기 손으로 말이다.그런데 오히려 여자에게 실컷 만졌다고 말하고 있다.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예전에 내 복근 만지는 거 좋아했잖아. 마음이 변한 거야? 이제 싫어?”눈빛에 한 가닥 서운함이 느껴졌다.조유진은 마음이 동요했다.“싫은 게 아니라 현수 씨가 여기에 있으니까 일에 집중이 안 되잖아요. 오후 내내 복근 만지는 것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배현수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날 쫓아내는 거야?”조유진은 당연히 그 뜻이 아니다.“아니, 그게 아니라 SY그룹 일도 많은데 여기 있으면 일을 못 하잖아요.”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주물럭거렸다.무슨 말을 하려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배현수는 침대 옆에 꼿꼿이 앉아 전화를 받았다.요양원 간병인에게서 온 전화다.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우물쭈물하는 소리는 꽤 불안해 보였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말했다.“배 대표님, 어머니가 요즘 한 옥패를 계속 주시하고 있어요. 귀중품일까 봐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관해두려고 했는데 제가 뺏는 줄 알고 갑자기 확 앗아가다가 그만... 땅바닥 떨어뜨려... 깨졌어요.”“옥패요?”배현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어떤 옥패인데요?”“여자 보살이 있는 옥패인데 보라색이에요. 에메랄드처럼 보여요. 컬러가 아주 투명하고요.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유리종류인 것 같습니다.”보라색 여자 보살 옥패?배현수는 잠시 멍해졌다.전화기 사이로 침묵이 흐를수록 간병인은 전전긍긍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배상하라고 하시면... 내 한평생을 바쳐도 배상 못 해요...”간병인은 서 비서가 면접 보고 들어온 사람이다. 아마도 배현수가 얼마나 권력이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 만약 배현수가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면 그녀는 서 비서를 찾아가 사정할 수밖에 없다.배현수가 입을 열었다.“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줘요.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