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현수 씨가 공해 바다에서 사고가 난 후, 서 비서님이 저에게 많은 얘기를 해줬거든요. 경계성 인격장애, 성남에 가서 나와 창민 오빠의 뒤를 따랐던 일, 그리고... 그 화상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현수 씨, 미안해요. 그동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그 말에 배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그 인간은 정말 입이 가볍네. 연말 보너스를 받을 생각이 없나 봐!”“서 비서님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현수 씨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 송지연 씨가 현수 씨의 정신과 상담 의사인 것도요.”조유진은 종종 배현수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곁에 가까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졌다.조유진과 이마를 맞댄 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거 알아서 뭐 해?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진아, 나는 동정 따위 필요 없어.”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동정하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만약... 마음이 아픈 거 라면요?”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이 사람을 볼 때마다 가슴이 더 아픈 게 아닐까?배현수가 혼자 견뎌낸 것들과 군데군데 입은 상처만 생각하면 조유진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순간, 배현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유진아, 네가 이렇게 말하면 결과가 어떨지 몰라?”“무슨 결과요?”조유진은 순간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배현수의 뜨거운 숨결은 이미 그의 입술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진짜 몰라서 물어?”얼굴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에 조유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배현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싫으면 그냥 자고.”사실 배현수는 오늘 그녀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강이찬과 심미경의 결혼식이 끝나면 배현수는 조유진과 선유를 성남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러다가 배현수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는 엄창민에
두 사람은 이불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배현수의 뜨거운 숨결에 조유진은 온몸이 화끈거렸다. 조유진도 몸을 돌려 그를 꼭 껴안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숨결은 더 가까이 맞닿았다.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겼다.그의 부드러운 입술에 조유진은 온몸이 나른해졌고 얼굴은 점점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이때 그나마 일말의 이성이 남아 있는 배현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콘돔 쓰고 하자. 응?”조유진이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배현수는 다시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는 한 손으로는 그녀의 뒤통수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협탁을 더듬거리며 콘돔을 찾았다.대제주시의 늦가을 밤공기는 늘 쌀쌀했다. 폐병을 앓았던 조유진은 몸이 허약한 데다 추위도 많이 타는 바람에 추운 계절만 오면 손발이 차가웠다.예전에 배현수는 그녀의 인간 핫팩이었다.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배현수의 몸에 더 밀착했다. 두 손이 그의 살결에 닿은 순간, 그의 몸은 활활 타오르는 불같이 뜨거웠다.배현수는 콘돔 포장을 뜯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귓가에 속삭였다.“네가 끼워줘. 응?”“나 할 줄 몰라요.”“내가 알려 줄게.”이불속은 밤새 들썩였고 방은 그나마 방음이 좋아 거친 숨소리와 억압된 신음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다음 날 아침, 천우 별장.심미경은 사진이 잘 나올 수 있게 흰색 원피스를 골라 입었고 그 위에 롱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그러고는 화장을 정갈하게 하고 립스틱을 바른 뒤 강이찬의 앞에 서서 물었다.“이찬 씨, 우리 결혼 증명사진 이렇게 하고 찍으러 가도 돼요?”“네, 이뻐요.”심미경을 바라보고 있는 강이찬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불안함과 망설임이 느껴졌다.이를 눈치채지 못한 심미경은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래요. 우리 가요. 오늘은 화요일이니까 구청에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예요. 신분증은 다 챙겼죠?”강이찬은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선 채 심미경에게 말했다.“미경 씨, 내가 프러
그러자 강이찬은 직접 조윤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그동안 제가 미경 씨에게 잘 못 해준 것은 사실이에요. 미경 씨를 잘 보살피지 못했어요. 미경 씨를 소홀히 한 것도 맞고요. 4억은 다시 미경 씨에게 보내시지 않아도 돼요. 미경 씨는 평소에 제 카드를 사용하면 되니까 돈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돈은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 장모님께서 받아 주시면 됩니다.”이 말을 들은 심미경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그녀는 운 좋게 자기를 이토록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심미경은 몸을 옆으로 돌려 운전하고 있는 강이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가 예물 비용으로 4천만 원만 달라고 했는데 왜 4억이나 보냈어요? 엄마가 은행에 갔을 때 잘못 본 줄 알고 여러 번이나 다시 은행직원에게 확인해 달라고 했대요. 4억이라는 것도 은행직원이 확인해 줘서야 믿었고요. 아무리 예물 비용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이제 다 나이 드신 어르신 들이라 평소에 돈을 쓸 일도 없어요. 이렇게 많은 돈을 쓸 일은 더더욱 없고요.”그러자 강이찬이 싱긋 웃으며 따뜻하게 말했다. “나와 결혼하고 나면 앞으로 미경 씨는 계속 대제주시에 있어야 하는데 장인어른도 돌아가신 마당에 장모님 혼자서 분명 외로울 거예요. 전에 고향 시내에 있는 집값 좀 알아봤는데 30여 평 정도 되는 아파트가 2억 정도 되더라고요. 연세도 있으신 장모님이 혹시라도 병원 갈 일이 생기거나 하면 쉽게 가기 위해서라도 시내로 이사를 오시라고 하는 것은 어때요? 그러면 우리가 장모님을 만나러 가기도 편하고 시내에서 살면 좀 더 편히 생활할 수 있을 거예요. 만약 집을 사는 데 돈이 부족하면 나에게 말해요. 내가 더 보내 드릴게요.”심미경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말을 잇지 못했지만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그의 말에 감동하지 않았다면 분명 거짓말이다.“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줘요?”“이제 곧 합법적으로 부부가 될 사람에게 잘해주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게다가... 강이찬은
혼인 신고서를 들고 구청을 나온 심미경은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은 그저 꿈만 같았다. “우리 혼인 신고서를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도 돼요?”“당연히 되죠.”강이찬의 허락을 받은 심미경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고마워요. 좀 이따 차에 타면 내가 포토샵 해서 올릴게요.”강이찬은 그녀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향했다.이때 심미경이 또 물었다.“참, 우리가 혼인신고도 했는데 저녁에 이진이더러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자고 할까요?”강이진은 강이찬의 친동생이기에 심미경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었다.하지만 강이진의 이름을 들은 강이찬은 바로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아니요. 요즘 이진이가 일자리를 찾느라 바빠요. 샤브샤브 먹고 싶다면서요? 어디 가서 먹을래요? 저녁에 우리끼리 가서 먹어요.”그러자 심미경도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래요, 그럼.”차에 탄 심미경은 구청에서 찍은 사진을 포토샵 한 후 필터까지 씌워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결혼 축하합니다. 이찬 씨.]...산성 별장.저녁에 선유가 놀이방에서 숙제하는 사이 배현수와 조유진은 몰래 집에서 빠져나왔다.장은숙은 선유의 방 입구에 서서 녀석을 지키며 두 사람이 몰래 나갈 수 있게 도와줬다.마당에 차 엔진소리가 나자 선유는 바로 손에 있던 연필과 지우개를 놓고 뛰쳐나왔다. “할머니! 엄마, 아빠 벌써 나갔어요?”“방금 운전하고 나갔어. 선유야, 너는 빨리 가서 숙제해. 내일 아침에 학교도 가야 하잖아. 엄마와 아빠가 데이트 나갔으니까 늦게 돌아올지도 몰라. 너는 내일 학교 가기 위해서 일찍 자야지.” “흥! 나와 같이 가기로 해 놓고! 거짓말쟁이들! 나 몰래 도망치다니!”“엄마, 아빠는 어른이야. 어른들의 데이트에 어떻게 방해꾼을 데려가겠어. 너는 빨리 숙제나 해. 아빠가 가기 전에 신신당부했잖아. 영어 단어 10개 외우라고. 내일 저녁에 검사할 거라고.”장은숙은 선유의 어깨를 밀며 방으로 들여보냈다.그러자 선유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할머니,
조유진은 심미경의 인스타 스토리에 ‘좋아요'를 눌렀다.이때 남초윤에게서 음성 메시지가 왔다.“미경 씨는 자기가 대타 노릇을 한 게 진짜 상관없을까? 아니면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는데 그 자식이 얘기하지 않은 걸까? 나는 왜 갑자기 강이찬이 이렇게 쪼잔해 보이지? 예전에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참, 배현수와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 미경 씨와 강이찬도 결혼하는 마당에 애까지 있는 너희들도 이참에 혼인신고를 하는 게 어때?”조유진이 스피커 핸드폰으로 음성을 듣다 보니 옆에서 운전하던 배현수도 남초윤의 말을 들었다.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배현수를 보며 말했다.“미경 씨와 이찬 씨가 오늘 혼인신고 하러 갔대요. 두 사람이 찍은 웨딩사진 봤어요?”“아니.”배현수는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의 덤덤한 얼굴은 그 어떤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이때 남초윤에게서 또다시 음성 메시지가 왔다.“결혼이라는 이 늪에 빨리 들어와 봐. 그러다가 나중에 깨지면 같이 이 늪을 벗어나는 게 어때? 적어도 친구가 같이 있으면 덜 심심할 것 같은데? 유진아,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지금 너의 마음은 어떤 거야? 배현수가 살아 돌아왔으니 우리가 곧 축배를 들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될까?”이 음성도 스피커폰이었지만 옆에 있는 배현수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조유진은 문자로 한마디 답장했다.[나는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그러자 남초윤의 음성 메시지 답장도 이내 다시 왔다.“설마? 배현수가 도도한 척하는 거야? 너와 결혼하기 싫대?”조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배현수를 올려다보았다.하지만 배현수는 눈살만 살짝 찌푸릴 뿐 계속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남초윤의 음성 메시지를 배현수도 사실 다 듣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또한 일종의 대답이었다.이어 남초윤은 계속 메시지를 보냈지만 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더 이상 보지 않았다.계속 듣다 보면
오늘 밤, 사실 조유진은 겉으로 심미경의 결혼을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배현수를 떠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배현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동요도 없었고 그 어떤 대답도 없었다.조유진은 울고 싶지 않았다. 이 눈물이 부끄러워서든 화가 나서든, 그게 아니라 억울해서 괴로운 눈물일지라도 왠지 너무 체면이 깎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를 꼭 껴안고 있던 배현수는 한참 지난 후에야 심장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그녀를 품에서 놓아준 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결혼은 큰 행사야. 우리가 심미경 씨나 이찬이가 아니잖아. 내가 너와 결혼하려면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해.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안 될까?”그 말에 조유진은 배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결혼하기 싫으면 그런 핑계 대지 않아도 돼요. 내가 현수 씨에게 결혼을 강요한 것도 아니잖아요.”말을 마친 조유진은 또다시 배현수를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다.배현수는 씩 웃으며 다시 그녀의 팔을 잡고 말했다. “일단 먼저 이 귀찮은 일들을 다 처리하면 내가 성남에 너와 선유를 데리러 갈게. 그러고 나서 우리 혼인신고 하러 가자.”하지만 배현수는 이 생에 그녀와 결혼할 기회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지금은 그녀를 달래지 않으면 조유진은 어쩌면 성남도 안 가겠다고 할 것이다.배현수는 항상 어쩔 수 없이 조유진에게 거짓말을 했다.그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조유진은 배현수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며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배현수가 작정하고 속이려 한 이상 그녀는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의 눈빛으로 보아 확실히 거짓말 같지 않았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조유진은 그저 말없이 배현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배현수는 어느새 따스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이때 배현수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화 다 풀렸어?”“일단 오늘 현수 씨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하지만 전세까지 냈는데 안 가면 돈 낭비잖아요. 그리고 내가 특별히 우리가 같이 본 적 없던 영화로 골랐단 말이에요.”그 말에 배현수는 눈썹을 찡그렸다.“무슨 영화? 너와 같이 액션 영화를 본 것은 기억이 나.”그의 말을 들은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런 영화 아니에요! 진지한 멜로 영화란 말이에요...”배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가린 그녀의 손을 잡더니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멜로 영화가 진지한 것도 있어?”멜로 영화에 에로틱한 장면이 빠지면 어린이 프로가 아닌가? 조유진은 배현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이렇게 차갑고 도도한 사람이 어떻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음담패설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7년 전, 그들이 동거를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나이가 어린 조유진은 그런 영화들이 궁금해 배현수에게 같이 보자고 졸랐다.처음에 배현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절친 남초윤이 그녀에게 안 좋은 것만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유진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보게 되었다.사실 배현수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기숙사에 살 때, 남자애들은 이런 영화를 보고 어떤 여자가 예쁜지 토론하곤 했다.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조유진과 함께 있는 게 훨씬 더 좋았다.조유진이 하도 보겠다고 떼를 써서 배현수도 어쩔 수 없이 같이 그런 영화를 봤다. 하지만 얼마 보지 못하고 바로 컴퓨터를 껐다.조유진이 다른 남자를 보는 것을 정말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날 밤, 그는 그녀의 온몸에 오랫동안 키스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앞으로 다른 남자 보지 마. 보고 싶으면 나를 봐.”조유진은 배현수의 품에 반쯤 안긴 채로 제일 위층에 있는 프라이빗 영화관에 들어섰다.그녀가 고른 영화는 비교적 오래된 2007년에 개봉한 [속죄]라는 영화였다. 배현수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었지만 슬픈 결말로 끝나는 비극적인 영
희미한 불빛만 비치는 어두운 공간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고 모든 욕망이 이곳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스크린을 등진 채 배현수의 다리 위에 앉은 조유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여기에 CCTV가 있는 것은 아니겠죠?”“없어, 있어도 이미 껐어.”이 프라이빗 영화관은 육지율이 추천해 준 것이다. 육지율은 여기에 투자까지 했다 보니 주주인 셈이었다. 그는 이런 엉망진창인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술집, 연극장, 길모퉁이 카페, 보드게임 놀이방, 방 탈출...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조유진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물었다.“정말요?”그녀와 이마를 맞댄 배현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다른 사람에게 사생활까지 보여줄 생각 없어.”그의 말에 조유진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공장소에서 행동이 너무 과격할 수는 없지 않은가...“영화도 아직 다 안 끝났고... 여기 꽤 더러울 것 같은데요.”그 말에 배현수는 그녀와 코끝을 맞대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유진아, 무슨 생각하는 거야?”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봤다.“그저 뽀뽀만 하려고 한 건데? 더 깊은 것까지 원한 거야?”배현수의 말에 조유진은 말문이 막혔다.‘아니! 그게 아니라 싫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귀까지 빨개졌다.사람을 이상한 생각 하게끔 유도한 게 누군데... 그녀는 배현수가 원하는 게 그 짓인 줄 알았다. 배현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늘 차갑고 도도한 그였지만 그녀를 보는 눈빛은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대형 스크린의 빛이 그의 얼굴에 반사되어 그림자가 가끔 졌지만 조유진을 보는 눈빛은 너무 그윽하고 따뜻해 평소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어두운 빛 때문에 조유진은 그의 얼굴에 스쳐 간 아픔과 아쉬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저 그런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갖다 댔다.입술이 닿자마자 팝콘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