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야 이 꼬맹이, 지금 누구보고 체력이 안 좋다는 거야? 어제 네가 공연을 보겠다고 해서 목마에 태워준 사람이 누구인데! 이제 아빠가 왔다고 이 아저씨를 까맣게 잊은 거야?”“아저씨, 왜 어린이와 싸우고 따지려고 해요? 어제 나와 고작 하루정도 같이 있은 거로 이렇게 힘들다고 하면 나중에 아저씨와 이모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하려고요?”선유의 말에 육지율은 말문이 막혔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초윤도 난처한 얼굴로 한숨만 내쉬었다. 애어른 같은 선유가 정말 별소리를 다 하니... 누가 이 녀석을 말릴 수 있겠는가.물론 남초윤과 육지율은 아이 문제에서만큼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아이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혼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아이는 더더욱 가져서는 안 되었다. 오후 내내 배현수는 육지율과 단둘이 그동안의 회사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선유가 집에 가서 숙제해야 한다고 조르는 바람에 세 사람은 육지율의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산성 별장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배현수는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선유도 숙제할 책과 커다란 유리병을 품에 안고 배현수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녀석은 배현수 앞에 서서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아빠, 오자마자 왜 일부터 해요? 엄마와 말도 안 하고.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요? 매일 울었어요.”선유의 말에 배현수는 순간 하던 일을 멈췄다.그는 노트북을 덮고 옆에 서 있는 선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손에 든 것은 뭐야?”선유는 마치 보물을 내놓는 듯 조심스럽게 유리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이것은 나와 엄마가 직접 접은 종이학이에요. 안에 천 마리나 들어있어요! 엄마와 내가 며칠 내내 이것만 접었어요. 아빠가 돌아왔으니 이제 아빠에게 드릴게요.”“갑자기 왜 종이학 접을 생각을 한 거야? 숙제는 안 하고 매일 이것만 접고 있었던 거야?”그것
배현수는 조유진이 보낸 메시지를 하나하나 전부 빠짐없이 다 읽었다.음성 메시지는 몇 번을 들었는지도 모른다.배현수가 사라졌던 18일 동안 조유진은 매일 밤 그에게 잘 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배현수는 아픈 가슴을 억누르며 선유에게 말했다.“아빠는 엄마에게 프러포즈할 수 없어.”“왜요? 아빠, 이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이제 다른 아줌마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집에 오지 않은 동안 그 아줌마와 같이 있었던 거예요?”선유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안 그래도 선유는 학교에서 아빠가 다른 이쁜 아줌마와 만났고 그래서 자기와 엄마를 버렸다는 반 친구들의 말을 들었다. 서재 문밖에서 듣고 있는 조유진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가슴을 졸였다.“다른 아줌마? 그런 거 없어. 나와 너의 엄마 일이야. 다른 사람과 상관없어. 단지... 아빠가 어쩌면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몰라.”“왜 그럴지도 모르는데요? 아빠, 어른들의 세계는 너무 복잡한 것 같아요.”작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녀석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배현수는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나중에 크면 다 알게 될 거야. 누군가를 그저 사랑하는 거라면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겠지만 그 사랑이 너무 커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해.”“아빠가 놓아주어서 엄마가 편해진 다음에 아빠는요? 아빠 마음은 안 아파요?”배현수는 피식 웃었다.“괜찮아. 아빠는 아픈 게 이미 습관 돼서.”다만... 이번에는 좀 더 아파야 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는 곧 죽는다. 그 아픔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송하진이 해독제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배현수는 기껏해야 20일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다.선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참을 고민했지만 아빠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아빠의 눈을 본 녀석은 아빠가 많이 힘들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아직은 너무 어린 녀석인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요즘 이 조직들은 미스터리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배현수와 만난 후부터 조유진은 계속 이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계속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조유진은 그가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분명 좋은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알아봤자 너와 선유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어.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이미 드래곤 파 쪽에서 알고 있을 거야. 회사 일도 잔뜩 밀려있고... 유진아, 당장은 내가 우리 두 사람의 일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어.”조유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배현수를 보며 물었다.“그래서 지금은 나와 선유가 현수 씨에게 짐이 된 거네요?”배현수는 조유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밀쳐낼수록 조유진은 더 버티고 대답을 원할 것이다. 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살짝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너와 선유가 아무리 짐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행복한 짐들이야. 유진아, 말 들어, 일단 성남으로 돌아가 있어. 응?”“싫어요.”눈을 똑바로 뜬 채 배현수를 바라보고 있는 조유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배현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순간 조유진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어제 만난 이후로 배현수는 그녀를 계속 거절하거나 그녀의 마음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먼저 껴안는다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방법으로 그녀를 그의 곁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조유진을 꼭 껴안고 있는 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를 보는 배현수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지금 대제주시에 SY그룹을 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일단 선유와 성남에 가 있어. 그래야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으니까. 너 원래 대제주시를 별로 안 좋아했잖아. 선유도 아직 성남에 가 본 적이 없고. 선유 데리고 놀러 간다고 생각해. 회사 일을 다 처리하면 내가 성남으로 데리러 갈게.
배현수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이번 위기만 수습하고 나면 SY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거야. 앞으로 내 시간은 모두 너, 그리고 선유와 함께할게.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놓쳤잖아. 7년... 인생에 7년이 몇 개나 되겠어? 어머니는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대제주시를 떠날 수 없어. 그래서 전문 간병인을 불러 어머니를 돌보게 할 거야. 양아버지도 어머니와 사이가 좋으니 시간 날 때마다 가끔 보러 가실 수 있어. 그리고 스위스에 간다고 해서 내가 돌아올 수 없는 것도 아니잖아. 가끔 시간 나면 비행기 타고 어머니 보러 오면 돼. 너는 안 만나도 돼. 어차피 너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지 우리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게 아니잖아.”배현수를 보고 있는 조유진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다.그의 말 속에서 조유진은 알 수 있었다. 그녀와 예지은 두 사람 중에... 배현수는 그녀를 선택했다는 것을...하지만 조유진은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 순간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분명히 어젯밤, 지리산에서 배현수는 그녀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조유진은 도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현수 씨, 방금 말한 거... 진짜예요? 정말 믿어도 돼요?”배현수는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너와 한 약속은 항상 진짜였어. 공해 바다 앞에서도 말했잖아. 우리는 생과 사를 함께할 거라고. 네가 살아 있으니까 나도 살았잖아. 너를 속인 적 없지?”조유진은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다. 죽음 따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이 순간, 배현수에게 안겨 있는 조유진은 전에 없던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어쩌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을 때, 그것을 잃을까 봐 그 바람들이 산산조각이 날까 봐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배현수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해독제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
이 말을 하고 있는 조유진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개졌고 온몸은 가볍게 떨고 있었다.배현수가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자기를 바라보자 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 말했다.“정말 보고 싶었어요...”미치도록 보고 싶었다.배현수는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바로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끌어안고 있었다. 배현수는 갑자기 조유진을 서재 벽으로 밀더니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고는 거침없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그의 부드러운 키스에 온몸이 나른해진 조유진은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저 그의 품에 기대 가볍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배현수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에서 쇄골까지 이어졌고 조유진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가느다란 그녀의 하얀 손가락은 배현수의 검은 셔츠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기 전, 배현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조유진을 안고 있는 배현수는 더 거침없이 격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그는 조유진을 안아 책상에 앉히고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온몸을 탐닉했다.그의 키스에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조유진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18일 동안 내 생각한 적 있어요?” ‘혹시... 내 메시지에 답장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어요?’그 말에 배현수의 행동이 잠깐 멈추었다. 그는 까만 눈동자로 조유진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그녀의 이마에 대고 또렷하게 말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빨아들였다.두 사람은 서로를 거침없이 원하고 있었다.툭!쾅!“배현수 씨, 총에 맞았던 상처는 어떻게 되었... 어요?”의약 상자를 들고 서재에 들어온 송하진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깜짝 놀란 조유진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배현수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배현수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방문 앞을 보며 차갑게 외쳤다.“꺼져! 나가!” ‘시퍼런 대낮부터 서재에서 이렇게 끌어안고 뽀뽀한다고?’상황을
배현수는 조유진에게 옷을 걸쳐준 뒤, 책상에서 안아 내렸다. 그녀의 얼굴은 지금 사과보다 더 발그레 달아 올라있었다.방문을 나선 조유진은 그 앞에 있던 송하진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송하진이 애매한 눈빛으로 조유진을 힐끗 쳐다보자 방 안에 있던 배현수가 벌컥 화를 냈다.“뭘 그렇게 쳐다봐요? 살면서 여자 처음 봐요?”송하진이 코웃음을 치며 의약 상자를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눈은 예쁜 여자들을 보라고 달린 거 아니겠어요? 한 번 힐끗 본 거 갖고 왜 그렇게 화를 내요? 저번에는 자기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조유진 씨를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면서요?”배현수라는 이 남자, 질투 하나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아직 안 죽었잖아요.”“죽은 다음에 조유진 씨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으면 죽어도 마음이 편하겠어요?”송하진이 그저 한 번 힐끗 본 것만으로도 배현수는 살기 어린 눈으로 그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조유진이 정말 새로운 애인을 찾는다면 소유욕과 질투심이 강한 이 남자는 어쩌면 관뚜껑 뛰쳐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배현수는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문 닫으세요!”송하진은 문을 발로 차며 말했다.“아직 조유진 씨에게 중독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유진이가 의사도 아닌데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마음 아파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혼자 힘들면 그만이다. 굳이 다른 사람까지 이 일에 끌어들여 같이 힘들어할 필요가 있겠는가?송하진도 배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요즘 발작 빈도는 어때요?” “하루에 한 번씩은 아픈데 그리 오래가지는 않아요.”송하진은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진짜 잘 참네요. 보통 아프면 탈진할 정도거든요.”배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은 없나요?”“있긴 한데... 효과가 큰 편은 아니에요.”“그래도 좀 주세요.” “알겠어요.”...천우 별장.심미경은 한창 강이찬과
그런데 청부 살인이라니... 이건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인 것과 별개의 문제이다.전화기 너머의 강이찬은 오랫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그의 얼굴은 어느새 새파랗게 질려있었다.이때 심미경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하이힐 두 켤레를 들고 와 그에게 물었다.“이찬 씨, 결혼식 날 하이힐은 어떤 거 신을까요?”강이찬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멍하니 자리에선 채 심미경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봤다.심미경은 강이찬의 앞에 다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그래요? 누구와 통화한 건데요? 회사에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미경 씨.”“왜요? 이찬 씨,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여요. 어디 불편한 건 아니죠?”순간, 강이찬은 심미경을 덥석 껴안았다. 그는 심미경을 더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니요. 아픈 데 없어요. 요 며칠 신혼집 꾸미느라 좀 힘들었나 봐요.”하이힐을 두 손에 들고 있는 심미경은 강이찬을 안아주지 못하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풍선도 아직 많이 불어야 하는데... 인터넷에 보니까 풍선 불어주는 기계가 있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바보같이 입으로 부니까 속도가 늦었나 봐요. 기계를 생각하지 못하다니... 참, 요즘 이것저것 바쁜 게 너무 많은 데 이진이더러 와서 도와달라고 할까요?”심미경이 기억을 잃은 후, 강이진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심미경을 계속 새언니라고 부르며 아주 깍듯이 대했다.그러다 보니 심미경도 점점 강이진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 강이찬의 여동생이고 미래의 시누이가 먼저 호의를 표시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강이찬은 강이진이 독립하면서 성숙해졌기에 예전처럼 심미경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심미경을 대하는 강이진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은 단지 도둑이 제 발 저려서였기 때문이다.강이진은 심미경이 기억을 되찾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날 교통사고의 범인이 그녀라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것이
심미경의 외치는 소리에 잠에서 깬 강이찬은 바로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심미경을 본 그는 큰 손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악몽을 꾼 거예요?”겁에 질린 심미경은 강이찬의 품에 안겨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꿈에서 내가 임신했는데... 누군가 칼로...”심미경은 뒤의 말을 잇지 않았다.하지만 강이찬은 이미 그녀의 말을 대충 짐작한 듯했다. 그는 손을 들어 심미경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악몽일 뿐이에요. 겁내지 말아요.”두 사람의 첫 아이는 교통사고로 죽었다.심미경은 기억을 잃었지만 악몽을 꾼 탓인지 아니면 본능 때문인지 아이만 생각하면 누군가 바늘로 심장을 찌르듯 가슴이 쿡쿡 쑤셨다.강이찬의 품에 안겨 있는 심미경은 흐느끼며 말했다.“그날 밤, 내가 차를 몰고 야식을 사러 나가지만 않았어도...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 아이도... 다 내 탓이에요.”“미경 씨와 상관없어요. 아이는 앞으로 또 가지면 돼요. 지금은 일단 몸조리부터 해요. 신혼생활을 충분히 즐기다가 나중에 아이를 가져도 돼요. 아이를 갖는 게 그렇게 급하지 않아요.”물론 아이가 다시 생긴다고 해도... 이미 잃은 아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눈시울이 빨개진 심미경은 강이찬의 품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정말 아이가 있을까요?”심미경은 교통사고로 유산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궁이 많이 상했고 건강도 전보다 많이 안 좋아졌다. 의사는 그녀가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하늘이 도운 것이라 했다.앞으로 어쩌면...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하지만 강이찬은 이 일을 줄곧 심미경에게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괴로워할까 봐... 한 번도 그녀 앞에서 언급한 적이 없었다.강이찬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강이찬이 미안해하는 마음과 아픈 가슴은 심미경도 그의 눈빛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꼭 있을 거예요.”만약 심미경이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데 임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