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수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이번 위기만 수습하고 나면 SY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거야. 앞으로 내 시간은 모두 너, 그리고 선유와 함께할게.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놓쳤잖아. 7년... 인생에 7년이 몇 개나 되겠어? 어머니는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대제주시를 떠날 수 없어. 그래서 전문 간병인을 불러 어머니를 돌보게 할 거야. 양아버지도 어머니와 사이가 좋으니 시간 날 때마다 가끔 보러 가실 수 있어. 그리고 스위스에 간다고 해서 내가 돌아올 수 없는 것도 아니잖아. 가끔 시간 나면 비행기 타고 어머니 보러 오면 돼. 너는 안 만나도 돼. 어차피 너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지 우리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게 아니잖아.”배현수를 보고 있는 조유진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다.그의 말 속에서 조유진은 알 수 있었다. 그녀와 예지은 두 사람 중에... 배현수는 그녀를 선택했다는 것을...하지만 조유진은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 순간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분명히 어젯밤, 지리산에서 배현수는 그녀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조유진은 도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현수 씨, 방금 말한 거... 진짜예요? 정말 믿어도 돼요?”배현수는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너와 한 약속은 항상 진짜였어. 공해 바다 앞에서도 말했잖아. 우리는 생과 사를 함께할 거라고. 네가 살아 있으니까 나도 살았잖아. 너를 속인 적 없지?”조유진은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다. 죽음 따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이 순간, 배현수에게 안겨 있는 조유진은 전에 없던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어쩌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을 때, 그것을 잃을까 봐 그 바람들이 산산조각이 날까 봐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배현수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해독제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
이 말을 하고 있는 조유진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개졌고 온몸은 가볍게 떨고 있었다.배현수가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자기를 바라보자 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 말했다.“정말 보고 싶었어요...”미치도록 보고 싶었다.배현수는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바로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끌어안고 있었다. 배현수는 갑자기 조유진을 서재 벽으로 밀더니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고는 거침없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그의 부드러운 키스에 온몸이 나른해진 조유진은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저 그의 품에 기대 가볍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배현수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에서 쇄골까지 이어졌고 조유진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가느다란 그녀의 하얀 손가락은 배현수의 검은 셔츠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기 전, 배현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조유진을 안고 있는 배현수는 더 거침없이 격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그는 조유진을 안아 책상에 앉히고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온몸을 탐닉했다.그의 키스에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조유진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18일 동안 내 생각한 적 있어요?” ‘혹시... 내 메시지에 답장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어요?’그 말에 배현수의 행동이 잠깐 멈추었다. 그는 까만 눈동자로 조유진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그녀의 이마에 대고 또렷하게 말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빨아들였다.두 사람은 서로를 거침없이 원하고 있었다.툭!쾅!“배현수 씨, 총에 맞았던 상처는 어떻게 되었... 어요?”의약 상자를 들고 서재에 들어온 송하진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깜짝 놀란 조유진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배현수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배현수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방문 앞을 보며 차갑게 외쳤다.“꺼져! 나가!” ‘시퍼런 대낮부터 서재에서 이렇게 끌어안고 뽀뽀한다고?’상황을
배현수는 조유진에게 옷을 걸쳐준 뒤, 책상에서 안아 내렸다. 그녀의 얼굴은 지금 사과보다 더 발그레 달아 올라있었다.방문을 나선 조유진은 그 앞에 있던 송하진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송하진이 애매한 눈빛으로 조유진을 힐끗 쳐다보자 방 안에 있던 배현수가 벌컥 화를 냈다.“뭘 그렇게 쳐다봐요? 살면서 여자 처음 봐요?”송하진이 코웃음을 치며 의약 상자를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눈은 예쁜 여자들을 보라고 달린 거 아니겠어요? 한 번 힐끗 본 거 갖고 왜 그렇게 화를 내요? 저번에는 자기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조유진 씨를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면서요?”배현수라는 이 남자, 질투 하나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아직 안 죽었잖아요.”“죽은 다음에 조유진 씨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으면 죽어도 마음이 편하겠어요?”송하진이 그저 한 번 힐끗 본 것만으로도 배현수는 살기 어린 눈으로 그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조유진이 정말 새로운 애인을 찾는다면 소유욕과 질투심이 강한 이 남자는 어쩌면 관뚜껑 뛰쳐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배현수는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문 닫으세요!”송하진은 문을 발로 차며 말했다.“아직 조유진 씨에게 중독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유진이가 의사도 아닌데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마음 아파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혼자 힘들면 그만이다. 굳이 다른 사람까지 이 일에 끌어들여 같이 힘들어할 필요가 있겠는가?송하진도 배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요즘 발작 빈도는 어때요?” “하루에 한 번씩은 아픈데 그리 오래가지는 않아요.”송하진은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진짜 잘 참네요. 보통 아프면 탈진할 정도거든요.”배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은 없나요?”“있긴 한데... 효과가 큰 편은 아니에요.”“그래도 좀 주세요.” “알겠어요.”...천우 별장.심미경은 한창 강이찬과
그런데 청부 살인이라니... 이건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인 것과 별개의 문제이다.전화기 너머의 강이찬은 오랫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그의 얼굴은 어느새 새파랗게 질려있었다.이때 심미경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하이힐 두 켤레를 들고 와 그에게 물었다.“이찬 씨, 결혼식 날 하이힐은 어떤 거 신을까요?”강이찬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멍하니 자리에선 채 심미경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봤다.심미경은 강이찬의 앞에 다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그래요? 누구와 통화한 건데요? 회사에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미경 씨.”“왜요? 이찬 씨,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여요. 어디 불편한 건 아니죠?”순간, 강이찬은 심미경을 덥석 껴안았다. 그는 심미경을 더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니요. 아픈 데 없어요. 요 며칠 신혼집 꾸미느라 좀 힘들었나 봐요.”하이힐을 두 손에 들고 있는 심미경은 강이찬을 안아주지 못하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풍선도 아직 많이 불어야 하는데... 인터넷에 보니까 풍선 불어주는 기계가 있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바보같이 입으로 부니까 속도가 늦었나 봐요. 기계를 생각하지 못하다니... 참, 요즘 이것저것 바쁜 게 너무 많은 데 이진이더러 와서 도와달라고 할까요?”심미경이 기억을 잃은 후, 강이진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심미경을 계속 새언니라고 부르며 아주 깍듯이 대했다.그러다 보니 심미경도 점점 강이진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 강이찬의 여동생이고 미래의 시누이가 먼저 호의를 표시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강이찬은 강이진이 독립하면서 성숙해졌기에 예전처럼 심미경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심미경을 대하는 강이진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은 단지 도둑이 제 발 저려서였기 때문이다.강이진은 심미경이 기억을 되찾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날 교통사고의 범인이 그녀라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것이
심미경의 외치는 소리에 잠에서 깬 강이찬은 바로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심미경을 본 그는 큰 손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악몽을 꾼 거예요?”겁에 질린 심미경은 강이찬의 품에 안겨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꿈에서 내가 임신했는데... 누군가 칼로...”심미경은 뒤의 말을 잇지 않았다.하지만 강이찬은 이미 그녀의 말을 대충 짐작한 듯했다. 그는 손을 들어 심미경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악몽일 뿐이에요. 겁내지 말아요.”두 사람의 첫 아이는 교통사고로 죽었다.심미경은 기억을 잃었지만 악몽을 꾼 탓인지 아니면 본능 때문인지 아이만 생각하면 누군가 바늘로 심장을 찌르듯 가슴이 쿡쿡 쑤셨다.강이찬의 품에 안겨 있는 심미경은 흐느끼며 말했다.“그날 밤, 내가 차를 몰고 야식을 사러 나가지만 않았어도...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 아이도... 다 내 탓이에요.”“미경 씨와 상관없어요. 아이는 앞으로 또 가지면 돼요. 지금은 일단 몸조리부터 해요. 신혼생활을 충분히 즐기다가 나중에 아이를 가져도 돼요. 아이를 갖는 게 그렇게 급하지 않아요.”물론 아이가 다시 생긴다고 해도... 이미 잃은 아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눈시울이 빨개진 심미경은 강이찬의 품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정말 아이가 있을까요?”심미경은 교통사고로 유산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궁이 많이 상했고 건강도 전보다 많이 안 좋아졌다. 의사는 그녀가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하늘이 도운 것이라 했다.앞으로 어쩌면...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하지만 강이찬은 이 일을 줄곧 심미경에게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괴로워할까 봐... 한 번도 그녀 앞에서 언급한 적이 없었다.강이찬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강이찬이 미안해하는 마음과 아픈 가슴은 심미경도 그의 눈빛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꼭 있을 거예요.”만약 심미경이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데 임신이
강이진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오빠…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나는 오빠 친동생이야! 심미경은 멀쩡히 잘 살아 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그저 유산한 것뿐이잖아? 아이는 결혼하고 다시 가지면 돼. 오빠, 그냥 모른 척해주면 안 돼? 그러다가 내가 진짜 감옥이라도 가게 되면? 나더러 어떻게 살라고! 그리고 오빠 얼굴에도 먹칠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그냥 모른 척해줘...”“일주일 줄게. 너 절로 가서 자수해. 내가 강요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말을 마친 강이찬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화기를 쥐고 있는 강이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이내 손에 있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심미경 이 여자 때문에 오빠가 나를 감옥에 보내려 하다니!’강이진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화도 나고 무섭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절대 자수하러 가지 않을 것이다.자수하는 순간 그녀의 인생은 끝장일 테니까!사고 운전기사는 이미 모든 죄를 인정했다. 사고 운전기사가 진술을 번복하지 않는 한, 강이진은 절대 자기가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증거도 부족한데 강이찬이 그녀를 어떻게 감옥에 들여보낼 수 있겠는가?...산성 별장.송하진은 저녁을 먹은 후, 배현수와 서재에서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다.조유진은 선유를 씻긴 후, 녀석과 함께 방에서 게임을 했다.선유와 놀고 있던 조유진이 옆에 있던 휴대전화를 힐끗 보니 심미경으로부터 모바일 청첩장이 와 있었다.청첩장을 클릭하자 여러 장의 아름다운 웨딩사진이 떴다.강이찬과 심미경,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이었다.조유진의 품에 안긴 선유는 그녀와 함께 웨딩사진을 보며 말했다.“엄마, 이찬 삼촌과 미경이 이모의 웨딩사진이 너무 예뻐! 엄마와 아빠는 언제 찍어? 나도 같이 찍으면 안 돼?”녀석의 물음에 조유진은 순간 어리둥절했다.웨딩사진... 조유진은 한 번도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7년 전,
선유의 말에 조유진은 깔깔 웃었다.“너의 친구? 어느 친구가 그렇게 말했는데?”“옆에 반의 퀸카 조가은이라고, 걔가 말한 거야. 여자는 남자가 원하는 대로 다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여자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했어. 그러니까 엄마도 절대 아빠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안 돼. 알겠지? 그러다가 엄마만 상처받아. 나는 엄마가 힘든 거 싫단 말이야. 나는 엄마가 평생 행복했으면 좋겠어.”선유는 진지한 표정으로 조유진에게 충고하고 있었다.그러자 조유진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어린 녀석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거야?”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 애들마저 이렇게 어른스러워진 건가?“조가은도 걔네 엄마가 그렇게 말한 거라고 했어. 우리 반에 조가은을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아주 많거든.”조유진은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우리 귀여운 선유를 좋아하는 남자애는 없어?”“나는 우리 반 남자애들이 다 별로야. 키가 작거나 아니면 뚱뚱하거나... 하여튼 못생겼어. 그런 애들은 나를 안 좋아해 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어차피 나도 관심이 없으니까. 잘생긴 사람을 매일 봐서 그런지 그런 애들은 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조유진은 선유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잘생긴 사람? 어디서 매일 봤는데?”“아빠잖아! 음... 물론 지율 아저씨도 잘생겼는데 지율 아저씨는 여자와 너무 자주 말다툼하는 것 같아. 여자에게 양보할 줄도 모르고, 그래서 별로야. 그러니까 초윤이 이모가 계속 지율 아저씨와 이혼하겠다고 그러지.”그 말에 조유진이 깜짝 놀라 물었다.“그런 얘기까지 했어?”선유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말했다.“응! 지율 아저씨와 초윤이 이모와 같이 놀이동산 가던 날, 진짜 가는 내내 계속 싸웠어. 옆에 있는 내가 다 혀를 찰 정도였다니까? 지율 아저씨는 정말 철이 안 든 것 같아. 내가 말해서야 겨우 싸우지 않았어.”“두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그랬어?”“응. 초윤이 이모는 이혼하려면 빨리하자고 그랬고 지율 아저씨는 같이 살고 싶지 않으면 살지 말
조유진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현수 씨가 공해 바다에서 사고가 난 후, 서 비서님이 저에게 많은 얘기를 해줬거든요. 경계성 인격장애, 성남에 가서 나와 창민 오빠의 뒤를 따랐던 일, 그리고... 그 화상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현수 씨, 미안해요. 그동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그 말에 배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그 인간은 정말 입이 가볍네. 연말 보너스를 받을 생각이 없나 봐!”“서 비서님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현수 씨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 송지연 씨가 현수 씨의 정신과 상담 의사인 것도요.”조유진은 종종 배현수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곁에 가까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졌다.조유진과 이마를 맞댄 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거 알아서 뭐 해?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진아, 나는 동정 따위 필요 없어.”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동정하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만약... 마음이 아픈 거 라면요?”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이 사람을 볼 때마다 가슴이 더 아픈 게 아닐까?배현수가 혼자 견뎌낸 것들과 군데군데 입은 상처만 생각하면 조유진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순간, 배현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유진아, 네가 이렇게 말하면 결과가 어떨지 몰라?”“무슨 결과요?”조유진은 순간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배현수의 뜨거운 숨결은 이미 그의 입술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진짜 몰라서 물어?”얼굴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에 조유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배현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싫으면 그냥 자고.”사실 배현수는 오늘 그녀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강이찬과 심미경의 결혼식이 끝나면 배현수는 조유진과 선유를 성남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러다가 배현수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는 엄창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