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이의 관계는 신체적인 차이로 인해 항상 남자가 부담을 덜 느끼는 쪽이 된다. 남자가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위험은 전적으로 여자가 짊어져야 하니까...배현수는 조유진이 나중에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배현수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자기가 죽은 후, 누군가가 그녀를 돌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기만큼 조유진을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그의 품에 안겨 있는 조유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배현수는 그녀를 품에서 떼어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대답해.”그의 딱딱하고 차가운 말투에 조유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어젯밤에 현수 씨가 먼저 나를 책임지지 않을 거라 했어요. 이런 일은 우리가 서로 원해서 한 거고 나도 현수 씨에게 책임지라고 질척거리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배 대표님은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거죠? 내 남자친구도 아니고 나와 결혼할 배우자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오해하게 할 말을 하냐고요? 나와 다시...”마음속에 있는 불만을 채 말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를 보니 남초윤이었다.어제 육지율과 남초윤은 선유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지금 전화 온 것을 보니 선유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조유진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남초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성 별장에 도착했어? 선유가 내일 월요일이라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제 우리 집에 오면서 숙제 책을 안 갖고 왔다네? 그래서 집에 빨리 가서 숙제해야 할 것 같다고 그래서.”“나 지금 지리산에 있어. 오후쯤 데리러 갈 테니까 진짜 미안한데 육 변과 같이 좀만 더 선유를 봐줘.”“미안하기는 뭘? 선유가 얼마나 말을 잘 듣는데. 우리가 애를 보는 게 아니라 애가 어른 둘과 같이 놀아 주는 거지.”남초윤의 말에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너도 아이가 그렇게 좋으면 한 명 낳
배현수는 손을 들어 조유진의 머리카락을 문지르며 말했다.“응, 안 갈게. 너와 함께 산성 별장으로 돌아갈게.”SY 그룹 내부에도 아직 배현수가 수습해야 할 일이 많았다.또한 앞으로 조유진과 선유 두 모녀가 함께 살 곳도 미리 봐둬야 했다. 배현수는 나중에 자기가 없더라도 두 모녀가 서로 의지하며 안전하게 잘 살기를 바랐다. 자기의 말에 설득이 되었다고 생각한 조유진은 배현수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요. 이번에는 현수 씨를 한번 믿어볼게요.”배현수가 먼저 체크아웃을 하러 나갔고 세수를 마친 조유진도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가방과 기복부를 들고 방을 나섰다.모텔 복도에서 조유진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배현수를 보았다.배현수가 가지 않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조유진은 발목의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가방과 기복부는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순간 어리둥절해진 배현수는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유진아, 왜 그래?”그녀가 많이 불안해하는 것을 느낀 배현수는 긴 팔로 그녀를 꼭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은 채 꽤 오랫동안 복도에 서 있었다.배현수의 품에 한참이나 안긴 후에야 조유진은 그나마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녀는 배현수 허리춤의 셔츠를 손으로 움켜쥐고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발목이 좀 아파요.”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꼭 마치 배현수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조유진은 꽤 오랫동안 배현수에게 애교를 부리지 않았다.그는 손으로 그녀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더니 한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가방과 기복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안아 들었다.“기복부는 어떻게 가지고 나온 거야?”배현수의 목을 껴안은 조유진은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현수 씨가 나에게 쓴 거잖아요.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어서 가져가는 건데 안 돼요?”“돼.”하지만 기념으로 남긴 물건들이 앞으로 어쩌면 그녀의 심장을 후벼 파는 화살이 될 지모 모른다.아름다운
“하... 야 이 꼬맹이, 지금 누구보고 체력이 안 좋다는 거야? 어제 네가 공연을 보겠다고 해서 목마에 태워준 사람이 누구인데! 이제 아빠가 왔다고 이 아저씨를 까맣게 잊은 거야?”“아저씨, 왜 어린이와 싸우고 따지려고 해요? 어제 나와 고작 하루정도 같이 있은 거로 이렇게 힘들다고 하면 나중에 아저씨와 이모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하려고요?”선유의 말에 육지율은 말문이 막혔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초윤도 난처한 얼굴로 한숨만 내쉬었다. 애어른 같은 선유가 정말 별소리를 다 하니... 누가 이 녀석을 말릴 수 있겠는가.물론 남초윤과 육지율은 아이 문제에서만큼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아이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혼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아이는 더더욱 가져서는 안 되었다. 오후 내내 배현수는 육지율과 단둘이 그동안의 회사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선유가 집에 가서 숙제해야 한다고 조르는 바람에 세 사람은 육지율의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산성 별장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배현수는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선유도 숙제할 책과 커다란 유리병을 품에 안고 배현수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녀석은 배현수 앞에 서서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아빠, 오자마자 왜 일부터 해요? 엄마와 말도 안 하고.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요? 매일 울었어요.”선유의 말에 배현수는 순간 하던 일을 멈췄다.그는 노트북을 덮고 옆에 서 있는 선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손에 든 것은 뭐야?”선유는 마치 보물을 내놓는 듯 조심스럽게 유리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이것은 나와 엄마가 직접 접은 종이학이에요. 안에 천 마리나 들어있어요! 엄마와 내가 며칠 내내 이것만 접었어요. 아빠가 돌아왔으니 이제 아빠에게 드릴게요.”“갑자기 왜 종이학 접을 생각을 한 거야? 숙제는 안 하고 매일 이것만 접고 있었던 거야?”그것
배현수는 조유진이 보낸 메시지를 하나하나 전부 빠짐없이 다 읽었다.음성 메시지는 몇 번을 들었는지도 모른다.배현수가 사라졌던 18일 동안 조유진은 매일 밤 그에게 잘 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배현수는 아픈 가슴을 억누르며 선유에게 말했다.“아빠는 엄마에게 프러포즈할 수 없어.”“왜요? 아빠, 이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이제 다른 아줌마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집에 오지 않은 동안 그 아줌마와 같이 있었던 거예요?”선유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안 그래도 선유는 학교에서 아빠가 다른 이쁜 아줌마와 만났고 그래서 자기와 엄마를 버렸다는 반 친구들의 말을 들었다. 서재 문밖에서 듣고 있는 조유진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가슴을 졸였다.“다른 아줌마? 그런 거 없어. 나와 너의 엄마 일이야. 다른 사람과 상관없어. 단지... 아빠가 어쩌면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몰라.”“왜 그럴지도 모르는데요? 아빠, 어른들의 세계는 너무 복잡한 것 같아요.”작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녀석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배현수는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나중에 크면 다 알게 될 거야. 누군가를 그저 사랑하는 거라면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겠지만 그 사랑이 너무 커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해.”“아빠가 놓아주어서 엄마가 편해진 다음에 아빠는요? 아빠 마음은 안 아파요?”배현수는 피식 웃었다.“괜찮아. 아빠는 아픈 게 이미 습관 돼서.”다만... 이번에는 좀 더 아파야 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는 곧 죽는다. 그 아픔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송하진이 해독제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배현수는 기껏해야 20일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다.선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참을 고민했지만 아빠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아빠의 눈을 본 녀석은 아빠가 많이 힘들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아직은 너무 어린 녀석인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요즘 이 조직들은 미스터리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배현수와 만난 후부터 조유진은 계속 이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계속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조유진은 그가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분명 좋은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알아봤자 너와 선유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어.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이미 드래곤 파 쪽에서 알고 있을 거야. 회사 일도 잔뜩 밀려있고... 유진아, 당장은 내가 우리 두 사람의 일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어.”조유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배현수를 보며 물었다.“그래서 지금은 나와 선유가 현수 씨에게 짐이 된 거네요?”배현수는 조유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밀쳐낼수록 조유진은 더 버티고 대답을 원할 것이다. 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살짝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너와 선유가 아무리 짐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행복한 짐들이야. 유진아, 말 들어, 일단 성남으로 돌아가 있어. 응?”“싫어요.”눈을 똑바로 뜬 채 배현수를 바라보고 있는 조유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배현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순간 조유진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어제 만난 이후로 배현수는 그녀를 계속 거절하거나 그녀의 마음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먼저 껴안는다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방법으로 그녀를 그의 곁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조유진을 꼭 껴안고 있는 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를 보는 배현수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지금 대제주시에 SY그룹을 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일단 선유와 성남에 가 있어. 그래야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으니까. 너 원래 대제주시를 별로 안 좋아했잖아. 선유도 아직 성남에 가 본 적이 없고. 선유 데리고 놀러 간다고 생각해. 회사 일을 다 처리하면 내가 성남으로 데리러 갈게.
배현수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이번 위기만 수습하고 나면 SY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거야. 앞으로 내 시간은 모두 너, 그리고 선유와 함께할게.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놓쳤잖아. 7년... 인생에 7년이 몇 개나 되겠어? 어머니는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대제주시를 떠날 수 없어. 그래서 전문 간병인을 불러 어머니를 돌보게 할 거야. 양아버지도 어머니와 사이가 좋으니 시간 날 때마다 가끔 보러 가실 수 있어. 그리고 스위스에 간다고 해서 내가 돌아올 수 없는 것도 아니잖아. 가끔 시간 나면 비행기 타고 어머니 보러 오면 돼. 너는 안 만나도 돼. 어차피 너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지 우리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게 아니잖아.”배현수를 보고 있는 조유진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다.그의 말 속에서 조유진은 알 수 있었다. 그녀와 예지은 두 사람 중에... 배현수는 그녀를 선택했다는 것을...하지만 조유진은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 순간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분명히 어젯밤, 지리산에서 배현수는 그녀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조유진은 도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현수 씨, 방금 말한 거... 진짜예요? 정말 믿어도 돼요?”배현수는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너와 한 약속은 항상 진짜였어. 공해 바다 앞에서도 말했잖아. 우리는 생과 사를 함께할 거라고. 네가 살아 있으니까 나도 살았잖아. 너를 속인 적 없지?”조유진은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다. 죽음 따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이 순간, 배현수에게 안겨 있는 조유진은 전에 없던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어쩌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을 때, 그것을 잃을까 봐 그 바람들이 산산조각이 날까 봐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배현수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해독제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
이 말을 하고 있는 조유진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개졌고 온몸은 가볍게 떨고 있었다.배현수가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자기를 바라보자 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 말했다.“정말 보고 싶었어요...”미치도록 보고 싶었다.배현수는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바로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끌어안고 있었다. 배현수는 갑자기 조유진을 서재 벽으로 밀더니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고는 거침없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그의 부드러운 키스에 온몸이 나른해진 조유진은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저 그의 품에 기대 가볍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배현수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에서 쇄골까지 이어졌고 조유진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가느다란 그녀의 하얀 손가락은 배현수의 검은 셔츠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기 전, 배현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조유진을 안고 있는 배현수는 더 거침없이 격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그는 조유진을 안아 책상에 앉히고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온몸을 탐닉했다.그의 키스에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조유진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18일 동안 내 생각한 적 있어요?” ‘혹시... 내 메시지에 답장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어요?’그 말에 배현수의 행동이 잠깐 멈추었다. 그는 까만 눈동자로 조유진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그녀의 이마에 대고 또렷하게 말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빨아들였다.두 사람은 서로를 거침없이 원하고 있었다.툭!쾅!“배현수 씨, 총에 맞았던 상처는 어떻게 되었... 어요?”의약 상자를 들고 서재에 들어온 송하진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깜짝 놀란 조유진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배현수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배현수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방문 앞을 보며 차갑게 외쳤다.“꺼져! 나가!” ‘시퍼런 대낮부터 서재에서 이렇게 끌어안고 뽀뽀한다고?’상황을
배현수는 조유진에게 옷을 걸쳐준 뒤, 책상에서 안아 내렸다. 그녀의 얼굴은 지금 사과보다 더 발그레 달아 올라있었다.방문을 나선 조유진은 그 앞에 있던 송하진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송하진이 애매한 눈빛으로 조유진을 힐끗 쳐다보자 방 안에 있던 배현수가 벌컥 화를 냈다.“뭘 그렇게 쳐다봐요? 살면서 여자 처음 봐요?”송하진이 코웃음을 치며 의약 상자를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눈은 예쁜 여자들을 보라고 달린 거 아니겠어요? 한 번 힐끗 본 거 갖고 왜 그렇게 화를 내요? 저번에는 자기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조유진 씨를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면서요?”배현수라는 이 남자, 질투 하나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아직 안 죽었잖아요.”“죽은 다음에 조유진 씨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으면 죽어도 마음이 편하겠어요?”송하진이 그저 한 번 힐끗 본 것만으로도 배현수는 살기 어린 눈으로 그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조유진이 정말 새로운 애인을 찾는다면 소유욕과 질투심이 강한 이 남자는 어쩌면 관뚜껑 뛰쳐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배현수는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문 닫으세요!”송하진은 문을 발로 차며 말했다.“아직 조유진 씨에게 중독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유진이가 의사도 아닌데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마음 아파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혼자 힘들면 그만이다. 굳이 다른 사람까지 이 일에 끌어들여 같이 힘들어할 필요가 있겠는가?송하진도 배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요즘 발작 빈도는 어때요?” “하루에 한 번씩은 아픈데 그리 오래가지는 않아요.”송하진은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진짜 잘 참네요. 보통 아프면 탈진할 정도거든요.”배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은 없나요?”“있긴 한데... 효과가 큰 편은 아니에요.”“그래도 좀 주세요.” “알겠어요.”...천우 별장.심미경은 한창 강이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