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차가운 말투로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화기 너머의 서정호는 핸드폰을 잡고 한참 지나서야 반응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조유진에게 전화했다.“여보, 한밤중에 누가 전화해요?”옆에서 자고 있던 서정호 아내 유리는 통화 소리에 깨어났다.“대표님.”유리는 미간을 찌푸리거니 중얼거렸다.“설마 대표님 아직도 여자친구와 다투는 중이에요? 아니, 아직도 그러고 있대요? 대표님 성격이 얼마나 이상했으면 그렇게 오래 쫓아다녀도 못 꼬셨대요?”서정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도 참. 냉전 중이라 내가 이렇게까지 중간에서 말을 전해줘야 하나?”“그러게요. 대표님도 한 고집하셔. 여자친구분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는 게 그렇게 어렵대요? 다음에 대표님 만나면 여자 꼬시는 방법을 좀 가르쳐드려야 하겠어요! 생긴 건 멀쩡하고 잘생겼어도 꿀 먹은 벙어리네요!”서정호는 생각하더니 유리가 한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벙어리면 다행인 거죠. 벙어리도 모자라 자꾸 이상한 말도 하신다니까요?”“... 그러면 정말 벙어리만도 못한 거죠!”...조유진은 서정호에게 이번 주 토요일에 서해에서 배현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조선유도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배현수가 조선유를 데려가든 말든 그 전에 조선유에게 세 식구라는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주고 싶었다.아직 어렸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조유진은 고개 숙여 이미 깊이 잠든 조선유의 이마를 쓰다듬더니 속삭였다.“토요일이면 아빠 만날 수 있겠네.”조선유는 늘 아빠를 원했었다.요즘 아이들은 이른 나이에 성숙하기도 하고 똑똑하기도 했다. 유치원 때부터 아빠 직업이 무엇인지, 왜 데리러 오지 않는지 묻는 아이들이 많았다.그때부터 조선유는 이 질문에 대해 많이 민감했다.몇 번이고 친구가 아빠를 언급해서 싸웠던 적도 많았다.한번은 집에 달려온 조선유가 조유진을 향해 대성통곡하면서 말했다.“왜 쟤들은 아빠가 있고 나는 없는 거야!”그때 조유진은 녀석을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할 수
SY 그룹 1호 건물 회의실.마침 육지율과 함께 클라이언트와 협의를 마친 후 클라이언트가 가자마자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나는 학교 가기 싫어 님이 보내온 문자였다.「5초간 음성메시지」뒤에는 가방을 메고 룰루랄라 뛰고 있는 귀여운 이모티콘도 있었다.배현수는 문자를 받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육지율이 다가오면서 물었다.“누구야? 웃는 걸 보니 설마 조유진?”조유진 언급에 배현수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아니야.”육지율은 그의 핸드폰 화면을 보더니 카톡 이름을 읽었다.“나는 학교 가기 싫어? 설마 요즘 학생을 꼬시고 있는 거야? 성인은 된 거야?”배현수는 그를 째려보았다.“아이일 뿐이야.”“뭐? 아이도 안 놓쳐?”배현수는 변태를 보는 것처럼 육지율을 쳐다보더니 음성메시지를 들어보기로 했다.전화기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보고 싶어요! 놀러 가도 돼요?”배현수와 육지율은 놀라고 말았다.배현수는 아빠라는 소리에 놀랐고 육지율은 그가 이미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이 아이... 설마 네 딸이야?”“아니. 그냥 알고 지내는 아이야.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고 내가 아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빠라고 부르는 것 같아.”육지율이 또 물었다.“이 아이... 이름이 뭐야?”“선유.”“...”남초윤네 집에서 만난 녀석의 이름도 선유였다.‘세상이 참 좁아!’육지율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걔가 바로 네 아이야!’속으로 울부짖고 있었지만 결국 참기로 했다.“왜 그래?”“아니야! 놀러 오고 싶다는데 답장 안 해도 돼?”배현수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정말 너 찾으러 오면...”“요즘 하는 말마다 많이 이상한 거 알아? 초윤 씨가 또 뭐 어떻게 했어?”“...”배현수는 성큼성큼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육지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걔가 바로 네 친딸이란 말이야!’...문자를 보낸 조선유는 아빠한테서 답장이 오기
“그럼 데려다줄게. 근데 만약에 아빠 찾지 못하겠으면 경찰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해.”“네! 아저씨, 감사합니다!”가는 길 내내 흥분한 상태였다.‘미리 인사 안 하고 찾아가면 아빠가 놀라시겠지?’...곧 SY 그룹 입구에 도착했다.조선유는 택시비를 내고 가방을 메고 택시에서 내렸다.경비처에 달려가 두리번거리더니 물었다.“경비 아저씨, 저 아빠 찾으러 왔어요. 여기 건물도 많고 엄청 커 보이는데 우리 아빠 어느 건물에 있어요?”경비처에 앉아있던 경비 아저씨는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누구세요?”경비 아저씨는 창문을 열고 좌우로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조선유는 애써 창문을 잡고 고개를 들어 어리둥절한 경비 아저씨를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아저씨, 여기요, 고개 숙여보세요. 저 아래에 있어요.”경비 아저씨는 고개를 숙여서야 작고 귀여운 녀석을 발견했다.“... 어린이 친구, 아저씨 깜짝 놀랐잖아.”조선유는 순진무구한 두 눈을 깜빡이면서 말했다.“아저씨, 아직 제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잖아요.”“아빠 성함이 뭔데? 여기서 출근하셔?”조선유는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멋진 표지모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이 사람이 바로 저의 아빠예요! 아저씨, 우리 아빠 알아요?”“이, 이분은 대표님이신데?”‘대표님은 아직 미혼에 아이도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이 아이는 어려 보이지도 않고, 최소 대여섯 살 돼 보이는데?’경비 아저씨가 말했다.“어린이 친구, 혹시 사람 잘 못 찾은 거 아니야? 이분은 아저씨 대표님이셔. 아이도 없어.”“잘 못 찾은 거 아니에요! 정말 제 아빠라고요. 카톡도 있는걸요?”경비 아저씨는 어린아이와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카톡이 있으면 문자 보내서 데리러 나오라고 하면 되지!”그러고는 여유롭게 앉아 차를 마시면서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요즘 아이들은 겁도 없어. 어쩌면 이런 어이없는 거짓말을 다 해.’조선유는 미간을 찌
강이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어린이 친구,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알아요! 저의 아빠예요!”조선유의 확고한 표정에 강이진은 어이가 없었는지 아래로 내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눈도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한다는 게 바로 너 같은 아이를 말하는 거야!”경비 아저씨가 쫓아오자 강이진이 말했다.“아저씨, 빨리 쫓아내요. 일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요!”“네네네, 제가 한눈파는 사이 몰래 들어왔네요. 지금 바로 쫓아내겠습니다!”경비아저씨가 끌고 나가려고 하자 조선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우리 아빠 정말 여기에 있다고요! 거짓말 아니에요!”강이진은 위층에 있는 강이찬을 찾아가려다 갑자기 송인아가 보냈던 문자가 생각났다.「바로 이 녀석이야! 벌써 6살이나 되었다니!」강이진은 자료 중에 있던 사진을 떠올리더니... 심장 박동수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뒤돌아 다시 조선유를 보았다.‘이 녀석이... 정말 조선유라는 아이였네!’그녀는 경비아저씨를 불러세웠다.“잠깐만요!”경비아저씨가 놓아주자 조선유는 달려오면서 말했다.“아줌마, 제 말 믿는 거예요?”강이진은 허리 굽혀 조선유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부드럽게 웃더니 경비아저씨에게 말했다.“이 아이 저 알아요. 아빠 만나러 데리고 갈 테니 먼저 가보세요.”경비 아저씨가 가자 조선유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줌마, 우리 아빠 어디 있어요?”“아빠 아줌마 친군데 여기 없어. 잘 못 찾아왔어.”“네? 그러면 어디 있어요? 아줌마, 저 좀 데려다주면 안 돼요?”“그래, 가자. 아줌마가 데려다줄게.”강이진은 녀석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향했다.조유진이 배현수를 위해 낳은 아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만약 맞다면, 더욱이 배현수를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조유진은 오전 업무를 마치고 식당에 가서 밥 먹으려다 집에 있는 조선유가 생각나 영상통화를 걸었다.한참 지나도 받지 않자 이상한 느낌에 집에 있는 CCTV를 확인했다.집 안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조선유는 보이지 않았고,
...SY 그룹 관제실.조유진과 남초윤은 정신력을 집중해서 CCTV를 확인하고 있었다.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육지율은 손에 땀을 쥐었다.“이 일을 현수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남초윤은 팔꿈치로 그의 가슴을 툭 쳤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유진이 탓하고 있어요! 그만 해요! 좀!”사실 육지율이 탓하지 않아도 만약 조선유를 정말 잃어버리게 된다면 배현수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조유진은 자책으로 자살할 지도 몰랐다.하지만 육지율도 말은 이렇게 해도 열심히 찾고 있었다.힘겹게 CCTV를 확인하는 조유진과 남초윤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여기서 찾고 있어요. 저는 경비 아저씨한테 선유를 보았는지 물어보고 올게요.”5분 뒤, 육지율이 돌아왔다.“선유가 오긴 왔었는데 어떤 여자가 데려갔다고 했어요. 경비 아저씨 말로는 그 여자도 우리 회사 직원이라고 했어요.”조유진은 CCTV를 통해 한눈에 강이진을 알아보았다.“강이진이에요! 강이진이 선유를 데려갔어요!”남초윤은 이를 꽉 깨물더니 말했다.“젠장, 또 이 년이 한 짓이야? 빨리 이찬 씨한테 전화해요! 친동생을 오빠가 교육해야지 누가 하겠어요?”...한편으로 강이진은 조선유를 병원으로 데려갔다.조선유는 이상한 느낌에 입을 삐쭉 내밀더니 물었다.“아줌마, 병원에는 왜 데리고 온 거예요?”“네가 현수 오빠 딸이라며, 친자확인 해봐야지!”아무나 배현수와 부녀 상봉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잡종 말이야!’조선유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씩씩거리면서 말했다.“거짓말쟁이! 빨리 돌려보내 주세요!”“빨리 내려!”강이진은 거칠게 조선유를 차에서 끌어냈다.조선유는 그녀의 손등을 잡더니 꽉 깨물었다.강이진이 아파서 손을 움츠린 틈을 타 바로 도망갔다.녀석은 스마트 워치로 달달 외운 전화번호에 전화했다.‘아빠, 빨리 전화 받아요!’강이진이 손을 뻗어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짐을 끌듯이 끌고 가려고 할때...드디어 통화가 연결되었다.조선유는 바로 소리 질렀다.“아빠! 저 선유
강이진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강이찬의 전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받지 않으면 납치라는 죄명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몇 초간 망설이더니 아주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오빠?”“이진아, 유진 씨 아이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나... 나 아니야!”“거짓말하지마! CCTV로 똑똑히 봤어! 바보 같은 짓이나 하지 말고 얼른 말해. 지금 어디 있어?”“지금 제일병원에 있어.”...조유진 일행은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조선유는 조유진을 보자마자 강이진을 말치고 달려갔다.“엄마!”녀석을 꽉 끌어안은 조유진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이 긴장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왜 혼자 나왔어? 엄마 미쳐버리는 줄 알았잖아.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야. 어디 다친 데 없어?”모녀 2인은 모두 울고 말았다.조선유는 조유진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사과했다.“엄마, 미안해. 다시는 혼자 다니지 않을게.”“괜찮으니 다행이야... 다행이야.”조유진은 더욱 꽉 끌어안으면서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강렬했던 두려움도 서서히 사라졌다.조유진은 눈물을 닦아내고 일어나더니 강이진을 차갑고 매섭게 쳐다보았다.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을 때 강이찬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유진아, 이진이가 흥분해서 그랬을 거야. 내가 교육할 테니 그만...”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유진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강이진은 제 발 저린 표정으로 말했다.“나, 나는 납치한 적 없어! 그저 친자 확인하러 병원에 데려왔을 뿐이야! 정말 현수 오빠 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란 말이야! 왜 그렇게 죽일 듯이 쳐다봐? 아... 이제야 알겠네. 이 잡종이 현수 오빠 아이가 아니라서 화난 거네...”“짝!”조유진은 힘껏 그녀의 뺨을 때렸다.“이건 선유를 납치해서고.”강이진은 아예 턱이 돌아간 채 얼굴을 감싸 쥐고 억울한 표정을 했다.“납치한 적 없다는데 왜 그래!”“짝!”또 뺨을 때렸다.“이건 선유를 잡종이라고 말해서고.”“조유진! 그만 안 해? 오빠,
조유진은 신나게 달려가는 조선유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이 장면을 수없이 상상도 해보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정작 눈앞에서 보니 가슴이 아파서 찢어질 것만 같았다.심장이 마치 두껍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비닐봉지에 단단히 쌓인 듯 답답해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이제 겨우 조금씩 공기를 마실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수많은 바늘이 그 비닐봉지를 뚫어 아프고 속수무책일 뿐이었다.자그마한 몸뚱어리가 배현수의 허벅지를 덮쳤다.조선유는 고개를 쳐들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빠! 저 구하러 온 거예요?”녀석은 작은 두 손으로 그의 허벅지를 와락 끌어안았다.배현수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 고개 숙여 귀엽고 작은 얼굴을 바라보더니 믿을 수가 없었다.‘나와 유진이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니.’복잡미묘한 배현수의 눈빛과 마주치게 된 조선유는 이해되지 않았다.“아빠, 왜 말이 없어요? 너무 반가워서 그래요?”그렇다. 반갑고 기쁜 감정이 휘몰아쳐 왔다.배현수는 조선유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왜 전에는 유진이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그는 조선유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여섯 살이라고?”이미 목이 메어왔다.조선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네! 여섯 살이에요! 아빠, 제가 전에 알려줬잖아요. 왜 또 물어요?”“엄마가 선유라는 이름을 지어준 건 아빠가 그리워서라고?”“네! 엄청나게 그리워했어요! 저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처음 만났을 때, 조선유는 여섯 살이라면서 아빠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가 아빠를 엄청 사랑했다고 말했었다.두 번째로 만났을 때, 6월6일이 엄마 생일이라면서 자기도 엄마처럼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했다.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조유진... 이렇게 큰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니!’요 며칠, 육지율도 계속 암시하고 있었다.조유진과 가까운 사이든, 먼 사이든 모두 아는 사실이었지만 배현수만이 마지막에 알게 된 것이다.배현수는 갑자기 웃고 말았다.‘유진이가 숨기려고
남초윤은 귓가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눈을 반짝였다.“예뻐요? 난 항상 예뻤는걸요?”“...”남초윤의 뻔뻔한 나르시시즘에 육지율은 피식 가볍게 웃었다.“왜 웃어요?”“그냥 당신이 여기에 끼어있는 모습이 깍두기 같아서요.”“...”육지율은 더 이상의 말을 아끼고 남초윤을 그대로 끌고 자리를 떴다....눈팅족들이 이제 모두 떠나고 그 자리에는 배현수와 조유진만이 남아 서로 대치 중이다.“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 사이에 딸이 있다고 하여도 너는 절대 신분세탁을 할 수 없어.”조유진은 배현수의 질의에 입술을 달싹였다.“그럼 배 대표님은 어찌할 계획이신가요? 저를 버리고 선유만 데려가실 건가요? 아니라면 배 대표님께 있어서는 선유도 아무것도 아닌가요? 그렇다면 제가 지금 선유를 데리고 집으로 가겠으니 계속하여 예전처럼...”조유진은 계속하여 말을 이으며 몸을 돌려 선유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렇다. 조유진은 자신의 결정이 후회되었다. 그녀는 결코 선유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러자 배현수가 다급히 조유진의 가녀린 손목을 덥석 잡아채고는 싸늘하고 검은 눈빛으로 조유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네가 선유한테 뭘 해줄 수 있는데? 애초에 오늘 강이진이 선유를 왜 데려갈 수 있었던 건데?”배현수의 질타는 정확히 조유진의 정곡을 찔렀고 조유진은 배현수의 공격에 안색마저 창백해졌다.“내가 조선유와 처음 만나게 된 곳은 병원이었어. 그때 선유는 자신의 엄마가 돈 벌러 나갔기 때문에 병원에 혼자 남겨졌었지. 만약 그때 마주친 사람이 내가 아니라 인신매매 납치범이었다면? 조유진, 너 혼자 그 후과를 감당할 수는 있기나 해?”배현수가 내뱉는 매 한 글자, 한마디가 정확히 조유진의 가슴에 박혀 끊임없이 그녀의 마음을 찢어놓았다.조유진은 힘겹게 목을 가다듬고 간절한 눈빛으로 배현수를 바라보았다.“저도 제가 당신을 이길 수 없고 양육권도 제가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조건이 있어요.”“말해.”“당신이 선유를 데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