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호가 채수빈을 싸고돌수록 임유환은 제 어머니만 불쌍하게 여겨졌다.연경 고씨 가문의 아가씨로 지금의 서인아 못지않게 수많은 업적을 이뤄내던 어머니가 임준호라는 사람을 만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륜도 가감 없이 끊어내며 사랑만 좇아 결혼했는데 결혼 후에는 임준호의 내조를 한답시고 상업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제 손으로 포기하며 자식을 키우고 집안을 지키는 데에만 매진했었다.상업계의 아름다운 장미가 임준호 같은 남자 하나 때문에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마저 저버렸는데 그 결과가 참혹한 죽음이라니, 누구의 운명도 이토록 비극적일 순 없었다.그렇게 저만을 바라보던 아내가 죽었는데도 임준호는 슬프지도 않은지 이튿날 바로 다른 여자를 집안의 안주인으로 들이더니 지금까지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었다.장례식도 없이 쓸쓸히 떠나신 어머니의 산소에는 개미 한 마리도 다녀가지 않는데, 가끔 임유환이 성묘하러 가서 절을 세 번 하고 오는 게 전부인데 임준호는 채수빈이라는 여자와 여태껏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게 치가 떨리게 분했다.“임준호!”그에 임유환은 두 주먹을 꽉 쥐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유환 오빠...”그때 윤여진이 그런 임유환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자 임유환도 순간 정신을 차렸는지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미안, 내가 못 볼 꼴을 보였네.”정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화를 내본 게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오빠, 우리 그럼 이 얘기 말고 다른 얘기 할까요?”임유환이 다시 고통스러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던 윤여진이 넌지시 제안했지만 임유환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나 이제 괜찮아졌어.”“진짜요?”“응, 진짜야.”아직도 자신을 걱정하는 것 같은 윤여진에 임유환은 다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하려던 질문을 마저 했다.“근데 여진아, 아까 비밀조직이 다른 집안들을 불러 모아서 임씨 가문을 친 게 뭐 찾으려는 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지?”“네.”“그럼 원하던 건 찾은 것 같아 보였어?”윤여진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옥에도 등급이라는 게 있는데 그중 가장 낮은 등급의 옥은 보옥이었고 최고 등급의 옥은 통영주옥이었다.살아오면서 수많은 통영주옥을 만져본 윤여진이 느끼기에 통영주옥도 물론 영기를 담고 있긴 했지만 지금 손에 들린 옥에 비한다면 그 만분의 일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이 옥 팔찌는 마치 천지의 영기를 다 담은 듯한 느낌이었다.윤여진이 그렇게 놀랄 때마다 그녀의 가슴도 덩달아 아래 우로 움직이고 있었다.“여진아, 이 옥 팔찌가 특별하기라도 한 거야?”윤여진이 그렇게 놀라자 임유환도 긴장하며 물었다.“네, 엄청 특별한 옥이에요!”그에 윤여진은 잔뜩 흥분한 채로 대답했다.“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본 옥 중에서는 가장 특별한 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그럼 이게 단서가 될 수도 있을까?”윤씨 집안이라면 옥 공예품 쪽으론 워낙 이름이 있는 집안인지라 이 세상에서 윤여진만큼 옥을 잘 보는 사람은 아마 흔치 않을 것이기에 임유환은 기대를 안고 물었다.“아직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이 옥에 엄청난 영기가 담겨 있는 건 확실해요.”“나중에 제가 집에 가면 고적들 좀 뒤져볼게요. 이 옥에 대한 얘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그래.”윤여진의 진지한 표정에 임유환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전에는 그냥 영가 좀 있는 옥 팔찌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윤여진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리 단순한 팔찌 같지는 않았다.어쩌면 비밀조직이 찾고 있는 게 바로 이 옥 팔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했다.비밀조직이 만약 이 옥 팔찌를 노리고 온 게 맞다면 어머니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셨을 텐데 옥 팔찌를 임유환에게 전해줄 때도 그냥 미래의 아내에게 줘서 꼭 대대손손 남겨야 한다는 말만 하셨지 거대한 비극을 불러온 이 팔찌에 대해서 당부하신 건 없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비밀조직의 목표가 옥 팔찌였다면 이걸 대대손손 가보로 삼는 고 씨 집안을 먼저 쳐야 할 일이었다.하지만 고 씨 집안은 그날 일을 겪은 뒤에도
그런 결과만은 빚어내지 않기를 바라며 임유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너무 오래 생각하지는 마요. 나중에 뭐 더 알아내면 내가 바로 연락할게요.”그런 임유환의 마음을 보아낸 윤여진이 그의 손을 잡아 오며 말했다.갑자기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하면서도 말랑한 촉감에 정신을 차린 임유환은 다정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여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알겠어, 생각 안 할게.”“그래요.”그에 윤여진도 예쁘게 웃으며 답했다.15년 만에 잡아보는 임유환의 손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임유환을 다시 만나고 나서 처음 하는 스킨십인지라 감동한 건지 윤여진의 눈가는 조금 촉촉해져 있었다.지금 이 순간 윤여진은 영원히 이렇게 임유환의 손을 잡고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여진아, 이제 내 걱정 안 해도 돼, 아까 내가 괜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아. 이쯤 되면 조 중령님과 서우 씨도 옷 다 갈아입었을 것 같은데 우리도 이만 내려가 볼까?”“네.”부드럽게 들려오는 임유환의 목소리에 생각을 멈춘 윤여진이 못내 아쉬운 듯 천천히 손을 떼며 말했다.“가자.”하지만 줄곧 윤여진을 동생으로 대하며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해본 적 없던 임유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만 있었다.임유환과 윤여진이 함께 계단을 내려가자 마침 조명주와 최서우도 방을 나서고 있었다.“옷 다 갈아입었어요?”임유환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 조명주와 최서우는 그 옆에 볼을 붉힌 채 서 있는 윤여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물론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눈치챌 수 없을 정도의 홍조이긴 하지만 아침을 먹을 때 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계단을 내려오는 걸 보니 위층에 있었던 것 같아 최서우는 떨리는 눈동자를 한 채 조명주에게 속삭였다.“명주야, 우리가 너무 눈치도 없이 나온 거야?”조명주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임유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조 중령님은 왜 또 날 그렇게 봐요, 그냥 여진이한테 위층 구경시켜준 것뿐이에요.”두 여자의 의심 가득한 눈빛에 임유환은
십분 뒤, 호숫가를 달리기로 한 넷이기에 임유환은 하얀색 벤틀리를 몰아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았다.드라이브를 하다가 내려서 풍경도 좀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시원한 공기를 마시다 보니 긴장돼있던 마음도 한껏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유환 씨, 나랑 서우 사진 좀 찍어줘요.”조명주는 최서우를 끌고 호숫가 앞에 있는 정자로 향하며 말했다.한평생을 작전 지역에 있다 보니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 푹 놓고 쉬여본 지도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았다.더욱이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인 최서우까지 옆에 있었으니 조명주는 이 기회에 제대로 힐링하며 사진도 많이 찍어갈 생각이었다.“좋아요.”임유환이 조명주와 최서우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걸 본 윤여진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임유환에게 말했다.“오빠, 우리도 같이 사진 찍어요!”“그래.”윤여진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임유환은 이내 윤여진과 함께 나무 아래에 가서 햇빛이 비친 호수를 등지고 섰다.임유환과 이렇게 가까이 선 건 오랜만인 윤여진은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그의 남성스러운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햇빛을 온종일 쬔 풀마냥 싱그러운 냄새와 햇빛의 그 따가움이 어우러져 나는 향기였다.그 향기에 윤여진이 예쁘게 웃어 보일 때 조명주는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그러자 윤여진은 빠르게 조금 더 친밀해 보이는 자세로 바꾸며 임유환의 팔을 꼭 안은 채 하얀 구두를 신은 발은 바깥쪽으로 보내며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포즈를 취했다.갑자기 제 팔에 닿아오는 그것의 말캉한 촉감에 임유환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진정하고는 신사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리고 조명주는 그들을 위해 햇빛이 아름답게 비치는 사진을 남겨주었다.“다 찍었어요.”“저 보여주세요!”다 찍었다는 조명주의 말에 윤여진은 잔뜩 흥분해서 사진들부터 살펴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렇게 한참을 풍경을 감상하던 그들은 민박집을 찾아 대충 점심을 해결한 뒤 쇼핑몰이나 들어가서 차 한잔하면서 온종일 걷느라 고생한 발도 좀 쉬게 해 주려고 했다.
윤서린이라면 설마 윤씨 집안에서 나간 그분인가.“윤서린 씨 알아?”“아니에요, 그냥 동명이인인 것 같아요.”윤여진의 놀라는 표정을 본 임유환이 묻자 괜히 그와 있는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던 윤여진이 대충 둘러댔다.“동명이인? 신기하네.”하나는 연경 윤씨 집안이고 또 하나는 S 시의 윤씨 집안이었기에 임유환은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윤서린이 연경 윤씨 집안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고 하니 별 상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이었다.“그러게요.”애초에 임유환 말고는 동명이인이든 윤씨 집안에서 나간 사람이든 윤여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들이기에 윤여진은 그냥 대충 대답하고 얘기를 끝냈다.카페에 앉아서 조금 쉬던 그들은 이제 다 쉬었는지 또 백화점 구경을 나섰다.그러다가 “고금”이라는 속옷매장을 발견한 조명주와 최서우가 임유환을 보며 말했다.“유환 씨, 나랑 서우는 여기서 속옷 좀 사서 갈게요.”갑자기 같이 살게 된 탓에 조명주와 최서우는 갈아입을 속옷이 한 세트밖에 없었는데 이왕 속옷매장을 지나치는 김에 몇 세트 더 사갈 생각이었다.“그래요, 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그에 임유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유환 오빠, 밖에 서 있으면 힘들잖아요. 우리도 같이 들어가요.”“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남정네가 여자 속옷 매장에 발을 들인다는 게 어색했던 임유환이 눈썹을 꿈틀거리자 윤여진은 매장 안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시대가 어느 땐데요 오빠, 지금은 남자들도 다 여자랑 같이 속옷 봐주고 그래요.”물론 윤여진은 이렇게 생각보다 보수적인 임유환이 더 좋긴 했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그를 더 잡아끌었다.“어... 그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나는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너도 명주 씨 서우 씨랑 같이 보고 와.”임유환의 계속되는 거절에도 윤여진은 애교를 부리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디.“같이 들어가요 오빠, 가서 나랑 얘기도 하고 그래요.”임유환이 윤여진의 애교에 못 당하는 것도 있지만
임유환도 물론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이를 갈아대는 남자들이 득실댄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각양각색의 속옷에 쑥스러워져 있어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임유환이 고개만 떨구고 있을 때 조명주가 직원을 향해 말했다.“저희끼리 먼저 보고 있을게요.”“네.”직원이 예의 바르게 웃고는 자리를 비켜주자 조명주와 최서우는 바로 속옷들을 들어보며 살피기 시작했다.“여진아, 그... 우린 일단 저기에 좀 앉아있을까?”얼굴을 붉힌 채 소파를 가리키며 말하는 임유환을 본 윤여진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오빠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어요?”“어...”여전히 어색해하는 임유환에게 윤여진이 격려하듯 말했다.“괜찮아요 오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요.”“여진아, 너 설마 나 격려해주는 거야?”“당연하죠.”임유환이 실소를 흘리며 말하자 윤여진은 초롱초롱한 눈을 임유환에게 고정시킨 채 부끄러워하는 임유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손님은 혹시 속옷 안 필요하세요? 몇 가지 추천해드릴까요?”“어떤 거 있어요?”그때 열정적으로 영업을 하는 직원에 윤여진은 대충 맞춰주며 물었다.사실 속옷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 그저 조명주와 최서우를 따라 들어온 건데 그래도 예쁜 게 있다면 살 의향은 있었다.“이게 이번에 새로 나온 것들인데, 혹시 마음에 드는 거 있으세요?”말을 하며 윤여진의 몸을 훑어보던 점원은 입을 살짝 벌리며 놀랐다.엉덩이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었음에도 굴욕 없는 몸매에 점원은 옆에 앉은 임유환을 복 받았다는 듯이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었다.그에 임유환의 입꼬리가 떨려왔다.자신이 윤여진 남자 친구도 아니고 같이 속옷 고르러 들어온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눈으로 보냐는 뜻이었지만 이 말들을 굳이 입 밖으로 뱉지는 않았다.윤여진도 점원의 안내에 따라 새로 나왔다는 속옷들을 몇 벌 봤지만 딱히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없어서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 좋은 시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요.
마네킹 몸에 입혀져 있는 검은색 레이스의 속옷을 보던 윤여진은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밤에 저 속옷에 얇은 잠옷까지 입으면 임유환도 좋아할 것 같았다.연애 수첩에서도 남자는 특히 검은색 레이스로 된 속옷이나 슬립에 환장한다고 했으니 그게 임유환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오빠, 여기 잠깐만 앉아있어요. 나 맘에 드는 거 발견했어요.”“응.”윤여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임유환은 여전히 어색한지 뚝딱거리며 말했다.한편 윤여진은 바로 아까 그 점원에게로 향했다.“언니, 나 저거 좀 입어 봐도 돼요?”“이거 말씀하시는 거예요?”윤여진의 손끝을 따라가 본 점원이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발견하고는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물었다.“네.”“알겠습니다.”윤여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점원은 마네킹 몸에 입혀진 속옷의 사이즈를 보다가 다시 윤여진의 가슴 사이즈를 가늠하더니 곤란한 듯 말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이 디자인은 지금 D컵 사이즈 밖에 없는데 손님은 E컵이시죠?”“그래요?”살짝 실망한 듯한 윤여진의 목소리에 점원이 바로 한마디 덧붙였다.“근데 이 디자인이 다른 것들보다 좀 크게 나와서 괜찮으시다면 입어 보시겠어요?”“네, 그럴게요.”“피팅룸은 이쪽입니다.”윤여진이 눈을 반짝이자 점원이 매장 끝쪽에 있는 피팅룸을 가리키며 속옷을 벗겨냈다.“네, 감사합니다.”속옷을 받아들고 피팅룸으로 가는 길에 하필 임유환이 앉아있어서 그도 의도치 않게 윤여진의 손에 들린 속옷을 보게 되었는데 임유환은 그걸 보고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냥 보통 남자로서 여자가 저렇게 섹시한 속옷을 고른다는 것에 놀랐을 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임유환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보고 있었다.사실 여자 속옷매장에서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린다면 변태로 오해받기 십상이었기에 임유환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그리고 윤여진이 피팅룸에 들어간 사이 속옷을 다 고른 조명주와 최서우는 또 잠옷과 슬립을 둘러보며 다시 그것
“나 들어오라고?”여자피팅룸 앞에서 자신더러 들어오라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본인을 가리키며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윤여진까지 안에 있는 이 피팅룸에 멀쩡한 남자가 들어가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네.”그러자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을 한 윤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여진아, 너 왜 그래? 또 무슨 짓을 하려고?”당연히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임유환이 골이 당겨오는 것 같은 느낌에 무슨 상황인지 묻기 시작했다.“그게... 이게 사이즈가 좀 작아서 나 혼자서는 못 잠그겠어서... 도와달라고 부른 거예요.”부끄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윤여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물론 전에 임유환을 대할 때에는 누구보다 대담했던 윤여진이지만 그런 쪽으론 전혀 경험이 없었고 또 남자한테 속옷을 잠가 달라는 부탁은 처음 하는 그녀였기에 본인도 마음이 쑥스러웠다.“그게...”윤여진의 부탁을 들은 임유환도 눈을 파르르 떨며 놀랐다.“여진아, 그럼 좀 있다 서우 씨 나오면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어때?”“아직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냥 오빠가 해줘요.”보다 못한 임유환이 다른 방법을 제안해 봤지만 윤여진은 눈을 빛내며 딱 잘라 거절했다.그들과 친하지 않기도 했고 또 윤여진이 고른 게 검은색 레이스의 섹시한 속옷이라 그걸 입은 모습을 아무리 여자라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근데... 진짜 들어가도 돼?”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은 느낌에 임유환이 재차 물었지만 윤여진은 불쌍한 눈을 하고 애원했다.“유환 오빠, 나 한 번만 도와줘요.”빨개진 얼굴과 반달 모양의 눈으로 애원하는 윤여진은 누가 봐도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못 버틸 것 같았던 임유환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물었다.“여기 여성 속옷 매장인데 내가 들어가면 변태로 오해받을 것 같아.”“아니에요, 그리고 잠깐일 뿐이데요 뭐.”“알... 알겠어.”윤여진의 거듭되는 부탁에 임유환도 어쩔 수 없이 알겠다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이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