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결과만은 빚어내지 않기를 바라며 임유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너무 오래 생각하지는 마요. 나중에 뭐 더 알아내면 내가 바로 연락할게요.”그런 임유환의 마음을 보아낸 윤여진이 그의 손을 잡아 오며 말했다.갑자기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하면서도 말랑한 촉감에 정신을 차린 임유환은 다정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여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알겠어, 생각 안 할게.”“그래요.”그에 윤여진도 예쁘게 웃으며 답했다.15년 만에 잡아보는 임유환의 손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임유환을 다시 만나고 나서 처음 하는 스킨십인지라 감동한 건지 윤여진의 눈가는 조금 촉촉해져 있었다.지금 이 순간 윤여진은 영원히 이렇게 임유환의 손을 잡고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여진아, 이제 내 걱정 안 해도 돼, 아까 내가 괜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아. 이쯤 되면 조 중령님과 서우 씨도 옷 다 갈아입었을 것 같은데 우리도 이만 내려가 볼까?”“네.”부드럽게 들려오는 임유환의 목소리에 생각을 멈춘 윤여진이 못내 아쉬운 듯 천천히 손을 떼며 말했다.“가자.”하지만 줄곧 윤여진을 동생으로 대하며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해본 적 없던 임유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만 있었다.임유환과 윤여진이 함께 계단을 내려가자 마침 조명주와 최서우도 방을 나서고 있었다.“옷 다 갈아입었어요?”임유환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 조명주와 최서우는 그 옆에 볼을 붉힌 채 서 있는 윤여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물론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눈치챌 수 없을 정도의 홍조이긴 하지만 아침을 먹을 때 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계단을 내려오는 걸 보니 위층에 있었던 것 같아 최서우는 떨리는 눈동자를 한 채 조명주에게 속삭였다.“명주야, 우리가 너무 눈치도 없이 나온 거야?”조명주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임유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조 중령님은 왜 또 날 그렇게 봐요, 그냥 여진이한테 위층 구경시켜준 것뿐이에요.”두 여자의 의심 가득한 눈빛에 임유환은
십분 뒤, 호숫가를 달리기로 한 넷이기에 임유환은 하얀색 벤틀리를 몰아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았다.드라이브를 하다가 내려서 풍경도 좀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시원한 공기를 마시다 보니 긴장돼있던 마음도 한껏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유환 씨, 나랑 서우 사진 좀 찍어줘요.”조명주는 최서우를 끌고 호숫가 앞에 있는 정자로 향하며 말했다.한평생을 작전 지역에 있다 보니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 푹 놓고 쉬여본 지도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았다.더욱이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인 최서우까지 옆에 있었으니 조명주는 이 기회에 제대로 힐링하며 사진도 많이 찍어갈 생각이었다.“좋아요.”임유환이 조명주와 최서우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걸 본 윤여진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임유환에게 말했다.“오빠, 우리도 같이 사진 찍어요!”“그래.”윤여진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임유환은 이내 윤여진과 함께 나무 아래에 가서 햇빛이 비친 호수를 등지고 섰다.임유환과 이렇게 가까이 선 건 오랜만인 윤여진은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그의 남성스러운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햇빛을 온종일 쬔 풀마냥 싱그러운 냄새와 햇빛의 그 따가움이 어우러져 나는 향기였다.그 향기에 윤여진이 예쁘게 웃어 보일 때 조명주는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그러자 윤여진은 빠르게 조금 더 친밀해 보이는 자세로 바꾸며 임유환의 팔을 꼭 안은 채 하얀 구두를 신은 발은 바깥쪽으로 보내며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포즈를 취했다.갑자기 제 팔에 닿아오는 그것의 말캉한 촉감에 임유환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진정하고는 신사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리고 조명주는 그들을 위해 햇빛이 아름답게 비치는 사진을 남겨주었다.“다 찍었어요.”“저 보여주세요!”다 찍었다는 조명주의 말에 윤여진은 잔뜩 흥분해서 사진들부터 살펴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렇게 한참을 풍경을 감상하던 그들은 민박집을 찾아 대충 점심을 해결한 뒤 쇼핑몰이나 들어가서 차 한잔하면서 온종일 걷느라 고생한 발도 좀 쉬게 해 주려고 했다.
윤서린이라면 설마 윤씨 집안에서 나간 그분인가.“윤서린 씨 알아?”“아니에요, 그냥 동명이인인 것 같아요.”윤여진의 놀라는 표정을 본 임유환이 묻자 괜히 그와 있는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던 윤여진이 대충 둘러댔다.“동명이인? 신기하네.”하나는 연경 윤씨 집안이고 또 하나는 S 시의 윤씨 집안이었기에 임유환은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윤서린이 연경 윤씨 집안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고 하니 별 상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이었다.“그러게요.”애초에 임유환 말고는 동명이인이든 윤씨 집안에서 나간 사람이든 윤여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들이기에 윤여진은 그냥 대충 대답하고 얘기를 끝냈다.카페에 앉아서 조금 쉬던 그들은 이제 다 쉬었는지 또 백화점 구경을 나섰다.그러다가 “고금”이라는 속옷매장을 발견한 조명주와 최서우가 임유환을 보며 말했다.“유환 씨, 나랑 서우는 여기서 속옷 좀 사서 갈게요.”갑자기 같이 살게 된 탓에 조명주와 최서우는 갈아입을 속옷이 한 세트밖에 없었는데 이왕 속옷매장을 지나치는 김에 몇 세트 더 사갈 생각이었다.“그래요, 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그에 임유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유환 오빠, 밖에 서 있으면 힘들잖아요. 우리도 같이 들어가요.”“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남정네가 여자 속옷 매장에 발을 들인다는 게 어색했던 임유환이 눈썹을 꿈틀거리자 윤여진은 매장 안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시대가 어느 땐데요 오빠, 지금은 남자들도 다 여자랑 같이 속옷 봐주고 그래요.”물론 윤여진은 이렇게 생각보다 보수적인 임유환이 더 좋긴 했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그를 더 잡아끌었다.“어... 그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나는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너도 명주 씨 서우 씨랑 같이 보고 와.”임유환의 계속되는 거절에도 윤여진은 애교를 부리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디.“같이 들어가요 오빠, 가서 나랑 얘기도 하고 그래요.”임유환이 윤여진의 애교에 못 당하는 것도 있지만
임유환도 물론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이를 갈아대는 남자들이 득실댄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각양각색의 속옷에 쑥스러워져 있어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임유환이 고개만 떨구고 있을 때 조명주가 직원을 향해 말했다.“저희끼리 먼저 보고 있을게요.”“네.”직원이 예의 바르게 웃고는 자리를 비켜주자 조명주와 최서우는 바로 속옷들을 들어보며 살피기 시작했다.“여진아, 그... 우린 일단 저기에 좀 앉아있을까?”얼굴을 붉힌 채 소파를 가리키며 말하는 임유환을 본 윤여진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오빠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어요?”“어...”여전히 어색해하는 임유환에게 윤여진이 격려하듯 말했다.“괜찮아요 오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요.”“여진아, 너 설마 나 격려해주는 거야?”“당연하죠.”임유환이 실소를 흘리며 말하자 윤여진은 초롱초롱한 눈을 임유환에게 고정시킨 채 부끄러워하는 임유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손님은 혹시 속옷 안 필요하세요? 몇 가지 추천해드릴까요?”“어떤 거 있어요?”그때 열정적으로 영업을 하는 직원에 윤여진은 대충 맞춰주며 물었다.사실 속옷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 그저 조명주와 최서우를 따라 들어온 건데 그래도 예쁜 게 있다면 살 의향은 있었다.“이게 이번에 새로 나온 것들인데, 혹시 마음에 드는 거 있으세요?”말을 하며 윤여진의 몸을 훑어보던 점원은 입을 살짝 벌리며 놀랐다.엉덩이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었음에도 굴욕 없는 몸매에 점원은 옆에 앉은 임유환을 복 받았다는 듯이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었다.그에 임유환의 입꼬리가 떨려왔다.자신이 윤여진 남자 친구도 아니고 같이 속옷 고르러 들어온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눈으로 보냐는 뜻이었지만 이 말들을 굳이 입 밖으로 뱉지는 않았다.윤여진도 점원의 안내에 따라 새로 나왔다는 속옷들을 몇 벌 봤지만 딱히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없어서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 좋은 시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요.
마네킹 몸에 입혀져 있는 검은색 레이스의 속옷을 보던 윤여진은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밤에 저 속옷에 얇은 잠옷까지 입으면 임유환도 좋아할 것 같았다.연애 수첩에서도 남자는 특히 검은색 레이스로 된 속옷이나 슬립에 환장한다고 했으니 그게 임유환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오빠, 여기 잠깐만 앉아있어요. 나 맘에 드는 거 발견했어요.”“응.”윤여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임유환은 여전히 어색한지 뚝딱거리며 말했다.한편 윤여진은 바로 아까 그 점원에게로 향했다.“언니, 나 저거 좀 입어 봐도 돼요?”“이거 말씀하시는 거예요?”윤여진의 손끝을 따라가 본 점원이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발견하고는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물었다.“네.”“알겠습니다.”윤여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점원은 마네킹 몸에 입혀진 속옷의 사이즈를 보다가 다시 윤여진의 가슴 사이즈를 가늠하더니 곤란한 듯 말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이 디자인은 지금 D컵 사이즈 밖에 없는데 손님은 E컵이시죠?”“그래요?”살짝 실망한 듯한 윤여진의 목소리에 점원이 바로 한마디 덧붙였다.“근데 이 디자인이 다른 것들보다 좀 크게 나와서 괜찮으시다면 입어 보시겠어요?”“네, 그럴게요.”“피팅룸은 이쪽입니다.”윤여진이 눈을 반짝이자 점원이 매장 끝쪽에 있는 피팅룸을 가리키며 속옷을 벗겨냈다.“네, 감사합니다.”속옷을 받아들고 피팅룸으로 가는 길에 하필 임유환이 앉아있어서 그도 의도치 않게 윤여진의 손에 들린 속옷을 보게 되었는데 임유환은 그걸 보고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냥 보통 남자로서 여자가 저렇게 섹시한 속옷을 고른다는 것에 놀랐을 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임유환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보고 있었다.사실 여자 속옷매장에서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린다면 변태로 오해받기 십상이었기에 임유환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그리고 윤여진이 피팅룸에 들어간 사이 속옷을 다 고른 조명주와 최서우는 또 잠옷과 슬립을 둘러보며 다시 그것
“나 들어오라고?”여자피팅룸 앞에서 자신더러 들어오라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본인을 가리키며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윤여진까지 안에 있는 이 피팅룸에 멀쩡한 남자가 들어가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네.”그러자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을 한 윤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여진아, 너 왜 그래? 또 무슨 짓을 하려고?”당연히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임유환이 골이 당겨오는 것 같은 느낌에 무슨 상황인지 묻기 시작했다.“그게... 이게 사이즈가 좀 작아서 나 혼자서는 못 잠그겠어서... 도와달라고 부른 거예요.”부끄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윤여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물론 전에 임유환을 대할 때에는 누구보다 대담했던 윤여진이지만 그런 쪽으론 전혀 경험이 없었고 또 남자한테 속옷을 잠가 달라는 부탁은 처음 하는 그녀였기에 본인도 마음이 쑥스러웠다.“그게...”윤여진의 부탁을 들은 임유환도 눈을 파르르 떨며 놀랐다.“여진아, 그럼 좀 있다 서우 씨 나오면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어때?”“아직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냥 오빠가 해줘요.”보다 못한 임유환이 다른 방법을 제안해 봤지만 윤여진은 눈을 빛내며 딱 잘라 거절했다.그들과 친하지 않기도 했고 또 윤여진이 고른 게 검은색 레이스의 섹시한 속옷이라 그걸 입은 모습을 아무리 여자라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근데... 진짜 들어가도 돼?”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은 느낌에 임유환이 재차 물었지만 윤여진은 불쌍한 눈을 하고 애원했다.“유환 오빠, 나 한 번만 도와줘요.”빨개진 얼굴과 반달 모양의 눈으로 애원하는 윤여진은 누가 봐도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못 버틸 것 같았던 임유환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물었다.“여기 여성 속옷 매장인데 내가 들어가면 변태로 오해받을 것 같아.”“아니에요, 그리고 잠깐일 뿐이데요 뭐.”“알... 알겠어.”윤여진의 거듭되는 부탁에 임유환도 어쩔 수 없이 알겠다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이 안
정신이 아득해진 임유환은 다급하게 시선을 돌리며 그 윤곽을 눈에 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하지만 피팅룸의 공간이 커봤자 거기서 거기인지라 아무리 시선을 피해도 임유환 눈에 보이는 건 윤여진의 하얀 등이 아니면 봉긋 솟은 그 윤곽이었다.두 사람의 몸도 딱 달라붙어 버린 이 공간에선 숨쉬기조차 버거웠던 임유환은 빨리할 일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여진아, 뒤에 잠가 달라고 그러는 거지?”“네.”말을 더듬으며 묻는 임유환에 윤여진도 부끄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온 게 그나마 편한 임유환이라 해도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였다.“그럼... 그 끈 좀 뒤로 해볼래? 내가 잠가줄게.”“네.”임유환이 침을 삼키며 마른 목을 달래자 윤여진도 긴 속눈썹을 아래로 드리우며 조심스레 검은색 속옷의 끈을 뒤로 보내주었다.연신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진정하려 애쓰던 임유환이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인지라 손이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그렇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참이나 사투를 벌인 끝에 임유환은 간신히 속옷 제일 바깥쪽에 고리를 맞춰 넣을 수 있었다.겨우겨우 입긴 했지만 그래도 속옷의 효과는 아주 좋았다.가슴이 아주 제대로 올라온 것을 본 윤여진은 임유환도 좋아할 것 같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한편 윤여진의 그런 생각을 알 리 없는 임유환은 겨우 임무를 마쳤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피팅을 끝낸 윤여진도 이제 피팅룸에서 나가려고 했는데 순간 발을 잘못 디딘 탓에 몸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는데 하도 작은 피팅룸인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난 것뿐인데도 윤여진의 몸이 임유환의 가슴팍에 닿아버렸다.여자 피부의 특유의 매끈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느껴지자 임유환은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아버렸다.“미안해요 오빠, 중심을 잘 못 잡아서...”“괜... 괜찮아.”부끄러운 듯한 목소리로 사과를 해오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벌렁거려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본능을 열심히 잠재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1번 피팅룸으로 향했고 모두들 침을 꿀꺽 삼키며 곧 벌어질 아름다운 행동을 기대하며 남다른 소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순간 피팅룸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마에 식은땀이 잔뜩 배어있는 임유환이 한숨을 쉬며 피팅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아까 그런 소리가 났을 때는 정말 식겁했었다.누가 들어도 오해하기 딱 좋은 소리였기에 옆 피팅룸에 있던 사람이 들었으면 어쩌지 싶다가도 어차피 이 속옷매장만 나서면 임유환을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에 임유환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아까의 그 대담한 행보 때문인지 임유환은 잠깐 사이에 꽤 개방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셔츠의 가슴 부분에는 아까 윤여진과 닿았던 탓에 그녀의 잔향이 남아있었다.그때의 떨리는 마음을 다시 되뇌어보던 임유환은 저를 미친 새끼라고 욕하며 다시 소파로 돌아가 앉으려 했는데 한 걸음 내딛자마자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에 임유환은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소파 쪽에 앉아있던 남자들이 조롱 섞인 이상한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임유환이 눈썹을 꿈틀거리니 휴게 코너 끝쪽에서 한 남자가 중얼거리고 있었다.“진짜 다 합쳐서 3초밖에 안 되는 거야?”“아 씨, 나는 영화 한 편 보나 했는데.”“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3초짜리 남자를 좋아하는 거지?”“그러니까, 차라리 그 기회를 나한테 줬으면 적어도 3분은 버텼다.”“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우리 와이프한테 저런 몸매를 줬으면 난 매일 밤 힘들어 죽어도 좋아.”“몸은 건장해 보였는데, 이렇게까지 비실비실할 줄은...”다들 임유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정말 코앞에 차려준 밥상을 제 손으로 엎어버린 것 같은 상황에 남자들은 제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몸매도 좋고 성격도 이리 개방적인 여자친구를 뒀으면 잘 좀 할 것이지, 고작 3초 만에 끝난 임유환을 보며 남자들은 윤여진을 대신해 아쉬워하고 있었다.남자들의 울분 섞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