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 오빠, 왜 그래요?”곤란한 듯한 임유환의 표정에 윤여진이 조심스레 묻자 임유환은 더 멋쩍게 웃어 보였다.“아니야...”“무슨 일 있죠!”그러자 작은 입술을 삐죽이며 눈을 매섭게 뜨고 뭐든 끝까지 물어볼 기세로 저를 바라보는 윤여진에 한숨을 한 번 내쉰 임유환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그 말을 듣던 윤여진은 처음에는 얼굴이 빨개지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임유환을 바라보았다.임유환이 이 일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 귀여워서 웃긴 했는데 다른 남자들도 3초의 남자로 오해받게 되면 기분 나쁘긴 매한가지일 것 같았다.연애 수첩에도 남자는 그런 쪽으로의 평가에는 극도로 민감하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그러자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윤여진이 임유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나는 알아요, 오빠가 그런 사람 아니란 거. 그래도 증명하고 싶으면... 오늘 밤에 한 번 해볼래요?”억울해하고 있던 임유환은 윤여진의 당돌한 말을 듣자마자 본인의 침에 사레가 들릴뻔했다.이제 좀 컸다고 자신에게까지 이런 장난을 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여진아, 그만해...”“그럼 오빠는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거예요?”피팅룸 안에서의 일이 있은 뒤 묘하게 더 대담해진 윤여진이 매혹적으로 웃으며 임유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쪼끄만 게, 그런 장난은 누구한테 배웠어.”하지만 임유환은 그녀의 말을 단순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손을 들어 윤여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정말 저를 15년 전 어린애처럼 대하는 임유환에 윤여진은 못마땅한지 볼에 바람을 잔뜩 넣고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나이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성장한 저는 안 보이는지 한결같은 임유환의 태도에 윤여진은 야속하기만 했다.그때 조명주와 최서우도 피팅룸에서 나오다가 마침 피팅룸 앞에 서 있던 임유환과 윤여진을 보며 반가움에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유환 씨랑 여진 씨도 여기 있었네요?”“아, 저도 마음에 드는 게 하나 있
“긴장이요? 제가요?”조명주의 말에 당황한 임유환이 시치미를 뗐지만 이미 이상한 걸 눈치챈 조명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요.”“설마 아까 그 소리, 유환 씨에요?”“당연히 아니죠! 그럴 리가 없잖아요.”“근데 난 아직 무슨 일인지도 말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당황해요?”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 임유환에 조명주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이런 건 조금만 말해도 알아챌 수 있는 거니까요.”“그리고 제가 아까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니까요. 만약 진짜 무슨 일이 있었으면 이렇게 빨리 끝날 리가 없잖아요.”“그렇긴 하죠.”눈꺼풀까지 떨며 말하는 임유환의 말이 조명주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정말 자극을 찾으려고 피팅룸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1분 만에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남녀의 대화가 오가는 소리가 들려서부터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다 합쳐봐도 1분 남짓한 시간이기에 일반 남자의 능력치보다는 많이 떨어지는 시간이라 조명주도 자연스레 그 가능성을 배제했고 그냥 본인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냥 커플이나 부부가 피팅룸 앞에서 얘기하는 소리일 수도 있으니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시대가 21세기이니만큼 남자친구나 남편이 여자와 함께 속옷매장에 들어오는 건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조명주가 다행히 속아 넘어가자 임유환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그것 봐요, 내가 잘못들은 걸 거라고 했죠. 아까 부부가 이 앞으로 지나가던데 그 소리를 들었나 봐요.”“네.”그때 한쪽에 선 윤여진이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열심히 본인의 결백을 밝히는 임유환에 윤여진은 입까지 틀어막고 웃어댔다.“왜 그래요?”그에 다시 의아해진 조명주는 자신이 뭘 놓친 게 있나 싶어 다시 아까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웃긴 일이 떠올라서요. 우리 얼른 밥 먹으러 가요. 나 배고파요.”더 말하면 임유환이 또 곤란해질
“역시 윤여진이라니까.”엘리베이터를 타고 급히 올라가는 윤여진을 보며 고개를 젓던 임유환은 조명주와 최서우를 향해 말했다.“일단 차에 가서 기다릴까요?”그렇게 세 명이 함께 차가 주차되어있는 곳으로 향할 때 SUV 하나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들의 흰색 벤틀리 옆에 멈춰 섰다.차에 타고 있는 건 중년 여성이었는데 옆에 차가 있음에도 문을 힘껏 열어젖히다가 그들의 흰색 벤틀리에 부딪혀버렸다.그 세기가 약하진 않았던 터라 벤틀리의 조수석에 움푹 패여 들어갔고 선명한 스크래치도 나버렸다.하지만 중년 여성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 문을 잠그고 자리를 뜨려 했는데 그 장면을 하필 임유환이 봐버린 것이다.문이 차에 부딪히는 소리가 하도 커서 멀리서도 너무 잘 들려왔다.이건 온라인에서만 보던 “차 문 킬러”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교양이 있는 차주들은 옆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있다면 다들 문을 조심히 열어 다른 사람의 차를 파손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이었다.차 문은 생각보다 날카로워 세게 열어젖히면 옆에 있던 차에 스크래치가 생길 수 있어서 다들 조심하는 건데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은 내 차만 멀쩡하면 남의 차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차 문 킬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지금 눈앞의 이 중년 여성이 정확히 그런 사람이었다.여자가 차 문을 잠그고 자리를 뜨려 할 때 임유환이 그녀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저기요, 누가 차 문을 그렇게 열어요? 저희 차가 다 긁혀버렸잖아요.”벤틀리 조수석에 스크래치와 함께 엄지손가락만 한 홈이 생겨있는 걸 본 임유환이 따지듯 묻자 여자는 오히려 자신이 불쾌하다는 듯이 맞받아쳤다.“차를 내 옆에 댄 게 누군데, 그냥 차 문 연 것도 잘못이에요?”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당당한 태도로 임유환 탓을 하는 여자를 보며 임유환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제가 차를 그쪽 옆에 댔다고요? 그리고 문을 그렇게 세게 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진짜?”억지 부리는 사람은 많이 봐왔지만 이 정도
“돈을 뜯어요?”여전히 당당한 태도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줌마를 향해 임유환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말했다.“우선 이 차는 제가 아니라 제 친구 거고요.”“천만 원을 요구한 건 이번 기회에 잘 반성하고 앞으로는 차 문 조심해서 열라는 뜻이었어요.”“그리고 이 차가 지금 손해 본 가치만 해도 천만 원은 훌쩍 넘어요. 그러니까 보상금으로써는 엄청 적은 금액이란 소리죠.”특별제작한 이 벤틀리는 가격이 20억 가까이 되는데 수리를 하고 나면 적어도 1억 정도는 손해 보는 것이었다.비싼 차일수록 작은 스크래치에도 가격변동이 컸기에 임유환은 여자한테서 천만 원만 받고 나머지는 자신이 직접 윤여진한테 배상해줄 생각이었다.“어디서 거짓말이야!”하지만 여자는 임유환이 그냥 돈을 뜯어내는 거라고 확신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어디서 벤틀리야! 나는 그런 거 모르겠고 난 10만 원밖에 못 줘. 그게 적으면 한 푼도 안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여자의 말에 화가 난 임유환이 헛웃음을 터뜨렸고 조명주와 최서우도 다 같이 어이없어했다.그래서 조명주도 나서며 여자를 향해 한마디 했다.“아줌마, 차를 긁은 건 아줌만데 왜 이렇게 당당해요? 누가 보면 우리가 잘못한 줄 알겠어요.”“그리고 이건 원래 비싼 차거든요. 못 믿겠으면 보험사 불러서 배상 처리하시든가요.”“너도 얘랑 한패지? 아주 다들 내 돈 뜯어내려고 작정을 했네!”여자는 자신이 차를 잘 모른다고 어린 것들이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며 더욱더 화를 냈다.여자는 이딴 차 문 하나 수리하는데 천만 원이나 든다는 걸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아줌마, 못 믿겠으면 보험사 부르라니까요.”말도 안 통하는 여자와 계속 실랑이를 벌이기도 귀찮아진 조명주가 말하자 여자도 그 기세에 지지 않으려고 더 목을 빼 들며 소리쳤다.“보험사 부를 거야 당장! 그리고 너희들 사기죄로 경찰한테 다 신고할 거야!”조명주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여자를 상대해주지 않았다.여자는 곧바로 보험사와 경찰에게 연락을 돌렸고
“아줌마, 인정할 건 인정해요 우리. 왜 이렇게 막무가내에요?”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장이화에 경찰들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선 이분의 차는 아줌마가 문을 너무 세게 열어서 손상된 게 맞고요.”“이건 백화점 CCTV에 아주 잘 찍혀있어요, 아줌마도 같이 봤잖아요.”“그리고 차량 손해배상금은 차량 회사와 보험사에서 제대로 책정해준 거예요. 제가 얼마라고 하면 얼마인 게 아니에요.”“그리고 이분의 차는 주차지정구역에 제대로 주차되어있고 아주머니한테 불편을 조성한 게 아니라서 차 문을 세게 연 아주머니가 모든 책임을 지셔야 하는 거예요.”“아니야! 말도 안 된다고요!”경찰의 자세한 설명에도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는 장이화에 경찰들도 경고하며 말했다.“저희들의 판결에 의견이 있으시면 서에 가셔서 신고하세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시면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 차를 끌고 갈 수밖에 없어요.”“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1억을 어떻게 줘요? 그렇게 비싼 차를 모는 사람들이 설마 수리할 돈이 없겠어요?”장이화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모든 책임을 임유환에게로 돌렸다.“다들 당신처럼 이렇게 비싼 차를 끌고 나오면 우리 같은 시민들이 살짝 긁기만 해도 전 재산을 다 날리는 거잖아.”그에 어이없어진 경찰이 나서서 말했다.“아주머니, 비싼 차를 끌고 나왔다고 해서 수리를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그리고 아주머니도 보험 있으시잖아요. 이런 건 어차피 보험사에서 해결해줄 텐데 왜 이러세요.”“그럼 다음 달부터 보험비 올라가잖아요!”목소리 크기로 승부를 보려 하는 장이화에 경찰은 고개를 젓더니 바로 최후통첩을 날렸다.“아주머니한테는 지금 두 개의 선택지가 있어요.”“1번은 교통경찰 팀에 가서 신고하는 거고요.”“2번은 바로 보험사에 연락해서 이 일을 해결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시면 지금 바로 차 견인할 겁니다.”“당신들이 판결을 이상하게 내린 거야! 내가 지금 밖에 가서 사람 불러서 이거 수리하면 10만 원이면
“그래!”장이화가 이토록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건 임유환이 20억씩이나 되는 차를 끌고 자신의 차를 긁지는 못할 거라 확신해서였다.그런데 예상외로 SUV 보닛 앞에까지 다가간 임유환에 장이화는 살짝 겁먹은 채로 물었다.“너 뭐 하자는 거야?”하지만 장이화는 이내 임유환의 주먹이 아무리 강해봤자 철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안심했는데 이어지는 상황은 그런 장이화의 예상과는 전혀 반대였다.장이화를 보는 임유환의 눈에 한기가 스쳐 지나가더니 그는 바로 주먹을 들어 보닛을 세게 내리쳤다.그 세기에 보닛은 안으로 움푹 패여 들어가 버렸다.그 모습에 다들 깜짝 놀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장이화도 잠시 벙쪄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찌그러진 자신의 소중한 차의 보닛을 보며 임유환을 향해 소리쳤다.“너 이 미친 새끼, 감히 내 차에 손을 대?!”“왜요? 아까는 차가 긁히거나 파손돼도 전혀 상관없다면서요?”“너... 너!”차가운 표정으로 저를 보며 말하는 임유환에 열이 잔뜩 오른 장이화는 경찰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이거 보셨죠? 이 자식이 제 차를 박살 내놨다고요! 저 돈 절대 못 물어줘요!”“봤어요.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죠. 아주머니는 아주머니가 배상하셔야 할 부분 배상하시고 이분도 따로 아주머니께 배상해 드리는 거예요.”“지금... 다 편먹고 나 괴롭히는 거죠!”법대로 말하는 경찰에 장이화는 몸을 부르르 떨며 화를 냈지만 임유환은 진작에 이런 결과일 걸 알고 있었기에 계속 장이화만을 바라봤다.임유환은 돈도 받아내고 화도 풀 생각이었다.장이화의 2천만 원쯤 되는 이 차는 보닛이 망가졌다 해도 백만 원쯤 배상하면 될 텐데 윤여진의 벤틀리는 1억의 배상금을 받아야 했다.“장 여사님, 저희는 법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아까 본인 입으로도 말씀하셨잖아요. 누가 본인의 차를 긁어도 상관없으시다면서요.”경찰들은 공무 집행 중이 아니었다면 임유환의 행동에 잘했다고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이렇게 이기적인 사람한테
큰 파열음 소리와 함께 여자가 바닥에 내팽개쳐졌고 임유환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부서진 게 자신의 차였으면 참았겠지만 윤여진의 차이기도 했고 화를 풀려고 일부러 남의 차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여자의 인성에 단단히 화가 난 임유환은 참을 이유도 없었고 참고 싶지도 않았다.“아이고!”그때 땅에 엉덩방아를 찧은 장이화는 일부러 더 큰소리를 내며 고통을 호소했다.“여기 누가 사람을 때려요! 사람을 때린다고요!”“도덕도 없고 법도 없는 사람이에요! 순경님, 이거 보고만 있으실 거예요?”장이화는 바닥에서 발을 구르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난 못 봤어요.”“저도요.”하지만 장이화를 아니꼬워했던 경찰들은 이렇게 맞은 것도 다 인과응보라며 하나같이 모른 척을 했다.“어디서 사람을 때려요? 왜 나는 안 보이죠?”다른 사람의 차를 긁어놓고 오히려 배상을 못 한다고 떼를 쓰는 여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다른 구경꾼들도 입을 모아 모르쇠를 하기 시작했다.당사자가 아닌 그들도 당장이라도 달려가 장이화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다들 속으로는 통쾌해하고 있었다.“이봐요!”하나같이 모른 척을 해대는 사람들에 열 받은 장이화가 소리를 질렀지만 경찰은 그녀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여사님, 고집 그만 부리시고 얼른 일어나서 일부터 처리하세요.”“순경님, 이놈이 아까 저를 때려서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서 검사부터 해야겠어요. 그리고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받을 거예요.”“이분이 때렸는지 안 때렸는지는 저희도 모르겠고요, 여사님은 방금 난폭운전을 하셨어요. 그 장면은 저희의 기록 카메라에 정확히 찍혀있으니까 지금 저희와 함께 서로 가셔서 조사받으셔야 해요.”“내가 난폭운전이라고요? 정말 웃기는 양반들이네!”경찰의 단호한 말을 들은 장이화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저놈이 사람을 때린 건 다 같이 묵인하면서 나는 그깟 운전 좀 했다고 지금 경찰서로 끌고 가겠다는 거예요?”“이 차의 스크래치가 나 때문에 생긴 건지 아닌지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가 사람들 틈으로 걸어 나왔다.“이분은... 윤씨 집안 아가씨잖아!”사람들은 한눈에 윤여진을 알아보고 입을 틀어막았다.“진짜 윤씨 집안 윤여진 아가씨네!”“아까 저 차가 아가씨 차라고 하신 거 맞지?”“진짜면... 저 여자 큰일 났는데.”얼굴을 굳히고 자신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윤여진에 장이화는 심장이 벌렁거려 두려운 눈으로 눈앞의 윤여진을 올려다봤다.“윤... 윤여진 아가씨!”연경에서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집안들이 있었는데 윤씨 집안이 그중 하나였다.“당신이 일부러 내 차를 이렇게 만든 건가요?”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묻는 윤여진에 장이화는 떨리는 손으로 임유환을 가리키며 말했다.“아가씨... 아가씨 차 였어요? 저놈 차가 아니라요?”“저긴 내 친구고요.”“이 차 주인은 접니다.”윤여진의 말에 장이화는 침을 꿀꺽 삼켰고 다리를 덜덜 떨었다.“여진아, 미안해. 네 차가...”새 차가 볼품없이 망가진 모습을 보며 임유환이 난감한 듯 말했지만 윤여진은 미소로 화답하였다.“유환 오빠, 사람만 안 다치면 됐죠 뭐. 그리고 이건 오빠 잘못도 아니잖아요.”윤여진은 차는 한 대가 아니라 열대, 백 대가 망가진다 해도 상관없었지만 감히 임유환을 모욕하고 기분 좋았던 하루의 마무리를 망친 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아가씨, 이 차가 아가씨 소유이신 가요?”연경에서 윤여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경찰들도 바로 공손하게 다가오며 물었다.“네.”“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아시겠죠?”“네, 아가씨!”그에 윤여진이 다시 차가운 말투로 대꾸하자 경찰들도 심장이 철렁하여 바로 대답을 하고는 장이화를 보며 말했다.“장 여사님은 난폭운전 혐의로 지금 당장 저희와 함께 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경찰들의 말투에 장이화는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이대로 경찰서에 가게 된다면 죄목이 성립되는 것이기에 구류나 징역은 절대 피할 수가 없었다.그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