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환은 깊게 한숨 들이쉬었다.그는 윤서린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파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나서야 그녀의 치마에 있는 지퍼를 천천히 내렸다. 이런 일을 처음으로 하다 보니 임유환의 손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그의 서투른 손놀림 때문에 지퍼를 내리는 과정에서 그의 손가락은 부주의로 윤서린의 등에 닿았다.그때마다 윤서린의 몸은 거문고의 현처럼 팽팽해졌다.두 사람은 모두 숨죽이고 있었다.드디어 임유환은 지퍼를 맨 밑까지 내렸다.지퍼가 다 열리자, 윤서린이 입고 있던 치마는 저절로 허리춤까지 흘러내렸다.순간, 등에 있던 몇 줄기의 멍은 임유환의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임유환은 눈시울을 붉히며 안쓰러움을 금치 못했다.“그 유환 씨...빨리...”이때 윤서린은 작은 목소리로 재촉했다.그녀의 목소리는 어찌 수줍던지 마치 물을 짜낼 수 있는 스펀지 같았다.임유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윤서린의 반쯤 드러난 몸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처음으로 이성 앞에서 몸을 보여서인지 그녀의 몸에는 옅은 홍조가 한층 띠어져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귓뿌리는 이미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알겠어!”임유환은 얼른 대답하고 나서 침대 끝에 있던 담요를 잡아 윤서린의 몸에 덮어줬다.그제야 윤서린의 심박수는 방금 전보다 조금 낮아졌고 마음속에는 일말의 담담한 안전감이 솟아올랐다.“이제부터 약을 바를 거야.”임유환은 가볍게 한마디 귀띔했다.“네.”윤서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임유환은 연고를 들어 손끝에 조금 바른 후 윤서연의 상처에 조심스럽게 발랐다.손가락이 피부를 스쳤다.또 등이 좀 민감한 곳이다 보니 윤서린은 순간 감전된 듯 몸이 바짝 굳어졌다.윤서린의 반응을 눈치챈 임유환은 동작을 더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들이 맺혀있었다.약을 바른 시간은 단지 1분밖에 안 되었다.그러나 이 1분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마치 한참이나 지난 것만 같았다.“휴...다 됐어!”약을 다 바르자 임유환은 순간
“유환 씨, 왜 그래요?”갑자기 넋 놓고 있는 임유환을 보고 윤서린은 손을 들어 임유환의 눈앞에서 가볍게 흔들어 댔다.임유환은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윤서린을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아니... 그냥 갑자기 이런저런 일들이 생각났어.”“무슨 일이 생각났는데요?”윤서린은 호기심이 가득 찬 눈길로 임유환을 바라보았다.‘방금 넋 놓고 있던 유환 씨는 설마 서인아 아가씨의 일을 떠올린 건 아니겠지?’“어... 별거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생각이 난 거야.”임유환은 마음에 찔려 말했다.“이것저것이요?”윤서린은 갑자기 심문하는 눈빛으로 임유환을 자세히 쳐다봤다.“설마 내 생각이 맞는 건 아니죠?”“무슨 생각?”임유환은 가슴이 떨렸다.“유환 씨 설마 서인아 아가씨의 일을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죠?”윤서린이 입을 열었다.‘안 그래도 방금 내가 유환 씨와 이 일에 관해 얘기를 꺼냈었으니까.’“서인아 일을 생각했냐고?”임유환은 선명하게 멈칫했다.그러고 나서 애틋하게 윤서린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서린아, 너 설마 질투하는 거야?”“아니... 아니거든요.”윤서린은 중얼거리며 볼을 빵빵하게 불어넣고는 삐진 얼굴로 임유환을 쳐다봤다.임유환은 그저 이런 윤서린이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져 웃으면서 말했다.“나 서인아를 생각한 게 아니야.”“그럼 뭘 생각했는데요?”윤서린은 더욱 궁금해졌다.“하하하. 아주 비밀스러운 일이야!”임유환은 하하하 웃어 댔다. “비밀스러운 일이 뭐예요?”그러나 이럴수록 윤서린은 더욱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누설해서는 안 되는 천하 기밀이지.”임유환은 신비롭게 말했다.‘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이건 진짜 말해서는 안 돼...’“유환 씨,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줘요~”윤서린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그녀는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하하하. 다음에 알려줄게!”임유환은 대충 넘어가려 했다.“싫어요!”그러나 윤서린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나한테 말해주세요, 유환 씨~”“알았어. 알았
“나보고... 남으라고?”임유환은 멈칫하며 물었다.“네.”윤서린은 머리를 살짝 끄덕이며 긴 속눈썹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그녀는 임유환을 보내기 아쉬워서 그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그래.”임유환은 동의했다.사실 임유환도 윤서린의 옆에 좀 더 있으면서 그녀를 보살피고 싶었다.아까는 그저 너무 어색해서 핑계를 대고 떠나려고 했다.“너무 잘 됐어요!”윤서린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순간 밝은 빛이 돌았다.“바보 같은 계집애.”윤서린의 방긋방긋한 표정을 보고 임유환은 부드럽게 웃었다.“유환 씨야말로 바보예요. 목이 말라도 물 마실 줄 몰랐잖아요.”윤서린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는데 그 모습마저 매우 예뻤다.“아까는 너무 집중하느라 그랬던 거지.”임유환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자, 여기 내 물 마셔요.”윤서린은 물컵을 임유환에게 건넸다.“하하. 그래.”임유환은 하하 웃으며 윤서린의 손에서 물컵을 건너 받고는 아무 생각 없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윤서린은 임유환의 꿀렁이는 목젖을 쳐다보다가 임유환의 입술이 닿은 컵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그곳은 윤서린이 아까 물 마실 때 입술이 닿았던 곳이었다.‘이러면 유환 씨와... 간접적으로 키스한 건가?’윤서린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똑똑똑.이때 문밖에서 갑자기 김선이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서린아, 유환 씨, 저녁 준비가 다 됐어. 너의 아버지도 곧 돌아올 거야!”윤서린은 깜짝 놀라 힘껏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네, 엄마. 알겠어요.”그렇게 답한 후, 윤서린은 임유환을 바라보며 그녀의 볼에는 아직 홍조가 남아있었다.“가요, 유환 씨. 우리 나가요.”“그래.”임유환은 물컵을 내려놓으며 윤서린의 얼굴에 나타난 수줍음을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그냥 방안이 조금 더워서 윤서린의 얼굴이 좀 빨개진 줄 알았다.저녁을 먹은 후 김선은 또 열정적으로 임유환더러 자고 가라고 했다.이번에 임유환은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서린이가 다쳤는데 내가 남아서 서린이
“유환 씨, 저기 봐요. 저기 큰 곰돌이 인형이 있어요!”사람이 제일 많은 공원 중심에 도착하자마자 풍선 터뜨리기 노점이 순간 윤서린의 시선을 끌어 잡았다.“갖고 싶어?”임유환은 이 시각 신난 윤서린을 바라보며 물었다.“네!”윤서린은 힘 있게 머리를 끄덕였다.“선남선녀들, 한번 해보시겠어요?”사장님은 손님들이 온 걸 보고 바로 인사를 건넸다.“사장님, 어떻게 노는 거예요?”임유환이 물었다.“잘생긴 친구, 이천 원에 총알 10발이고 9발 명중하면 저 일등상 상품을 가져갈 수 있어요.”사장님은 소개했다.“그럼, 다 명중하면요?”“그럼, 인형 한 개 더 드리죠!”사장님은 간사하게 웃더니 10발 모두 명중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을 거로 생각했다.왜냐면 이 소총에 특별히 손써뒀기에 퇴역한 특전사라고 해도 10발 중의 7발 명중하는 것도 이미 한계였다.그러나 젊은이들은 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여자 친구 앞에서 뽐내고 싶어 하기 마련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는 3커플의 남자들은 이미 이백만 원도 넘게 썼는데 아직 저 1등 상품을 따가지 못했다.번마다 많아서 4발 아니면 5발 명중이었다.“네, 사장님. 그럼, 이천 원어치 주세요.”임유환은 웃으면서 이천 원을 꺼내 사장님께 드렸다.“네.”사장님은 돈을 받고 바로 임유환에게 플라스틱 총알이 가득 든 소총을 가져다줬다.임유환은 소총을 들고 조금 적응한 후 풍선을 겨냥해 첫 발을 쐈다.탁.총알은 정확하게 명중해 풍선을 터뜨렸다.“젊은 친구, 잘하네!”사장님은 조금 놀라며 감탄했다.그러나 사장님은 그저 임유환의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필경 첫 발에 명중하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었으니까.’임유환은 풍선을 겨냥한 후 신속히 두 번째 총알을 쐈다.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총알까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쐈다.탁탁탁.5발 모두 정확하게 명중했다.사장님은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유환 씨, 너무 대단해요!”윤서린은 흥분되어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주변
“유환 씨 아까 사격 솜씨가 너무 대단했어요. 사장님도 깜짝 놀랐어요!”공원을 걸어 다니는 길에 윤서린은 흥분해서 말했다.그녀는 아직도 임유환의 백발백중 사격 솜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하. 그런가.”임유환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서린이가 좋아한다면 우리 나중에 놀이공원 놀러 갈 때 내가 더 큰 곰돌이 인형을 따줄게.”“좋아요!”윤서린은 기쁘게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다음 사장님을 대신해서 3초 동안 묵념했다.“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임유환은 웃으며 말했다.임유환은 윤서린이 환호하면서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에는 사랑스러움과 다정함이 가득했다.“네!”윤서린은 힘 있게 머리를 끄덕이며 손에 든 인형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이건 유환 씨가 내게 준 첫 번째 선물이야!’“서린아, 우리 앞의 정자에 앉아서 좀 쉴까? 저기 경치가 좋아 보여.”임유환은 멀지 않은 곳의 정자를 보며 말했다.정자의 주변은 연못이었는데 연못 안에는 녹색 연잎이 가득 차 있었고 분홍색 꽃봉오리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좋아요.”윤서린은 무척 기뻤다.두 사람은 정자에 앉았다.윤서린은 몸의 힘을 풀고 불어오는 저녁 바람을 느끼며 말했다.“유환 씨, 만약 날마다 지금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롭다면 얼마나 좋을까요~”“그러게. 저녁 먹고 이렇게 산책하면서 바람 쐬니까 진짜 좋네.”임유환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런 여유로움은 임유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랬다.지난번은 임유환이 6살 때였다.그때 매일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어머니는 임유환의 손을 잡고 근처의 공원이나 길거리에 가서 산책했었다.임유환이 무슨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든 어머니는 다 사 주셨다.‘그때 진짜 행복했었는데...’“유환 씨 무슨 생각 해요?”이때 윤서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임유환의 귓가에서 은은하게 울렸다.“어릴 때가 생각났어.”임유환은 다정하게 웃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때의 유환 씨는 행복했겠죠?”윤서린은 부드럽게 물었다.그녀는 방금 임유환의
“날 따라 하지 마세요!”윤서린은 살짝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근데 그것도 내 꿈이긴 해.”임유환은 진지한 모습을 회복했다.그는 그저 윤서린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했다. 그래서 그녀를 도와 모든 것을 이뤄드리고 싶었다.윤서린은 가슴이 살짝 설렜다.지금 진지한 임유환의 모습을 보며 윤서린의 예쁜 얼굴은 조금 더 붉어졌다.“그럼... 그거 빼고는요?”윤서린은 눈시울을 파르르 떨며 화제를 돌리려고 시도했다.“음... 미래에 아마 s시를 잠시 떠나야 할 것 같아.”임유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어차피 언젠가는 윤서린에게 말해야 하는 일이라서 임유환은 이 기회를 빌려 그냥 말해주기로 했다.“s시를 떠난다고요?”윤서린은 임유환의 말을 듣고 삽시에 바짝 긴장해졌다.“응.”임유환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럼, 언제 돌아오는데요?”윤서린은 갑자기 긴장해졌다.“아마 제일 빨라도 1달 후가 될 거 같아.”임유환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임유환이 이번에 연경에 가는 건 정우빈과 서인아의 결혼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욱이는 그 당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서였다.강씨 집안에서 얻은 단서에 의하면 그 당시 임유환 어머니의 죽음은 연경의 8대 가문 중의 5대 가문과 상관이 있었다.그중에 바로 정씨 가문이 있었다!그래서 그는 조사의 첫 발을 정씨 가문으로 잡았다!정씨 가문부터 손을 대서 조사를 시작하면 아마도 덩굴줄기를 타고 더 많은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리고 임씨 집안은 두 번째였다!비록 다년간 흑제 어리신에게 조사를 맡겼지만, 아무런 이상한 낌새도 발견하지 못했다.하지만 그 당시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내연녀와 결혼한 일에 대해, 임유환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이번에 임유환은 가서 어머니를 위해 정의를 실현하려 했다!그리고 당시 그에게 독을 탄 사람을 꼭 찾아내야 했다!그 사람은 꼭 임씨 가문에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유환 씨... 임씨 가문의 일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윤서린은 긴장하며 임유환
“수미, 서인아?”임유환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두 사람이 여기엔 웬일이지?’“서인아 씨랑 수미 비서님이네요!”윤서린도 따라서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이 두 사람이 여기에 갑자기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리고 이 두 사람은 딱 봐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아가씨, 저기 보세요. 임유환 씨입니다!”임유환과 윤서린이 놀랐을 때, 수미도 이쪽의 두 사람을 보고 바로 서인아에게 귀띔했다.서인아는 수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 임유환과 윤서린이 나란히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 품에 있는 곰 인형은 유달리 눈에 띄었다.‘두 사람 방금 데이트하러 갔었나 보네...’서인아의 마음속에는 갑자기 이름 모를 감정들이 떠올랐다.하지만 서인아는 빠르게 그 감정들을 억누르고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임유환과 윤서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두 분의 데이터를 방해했나 보네요.”“그런 거 아니에요. 인아 씨.”윤서린은 눈매가 살짝 떨렸다.강대한 카리스마를 가진 서인아를 상대하려니 윤서린은 조금 겁이 났다.하지만 임유환을 위해서 그녀는 다시 용기를 북돋아 물었다.“아까 제가 수미 비서님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는데 전화기가 꺼져있었어요. 혹시 서인아 씨는 유환 씨를 찾으러 온 건가요?”“네.”서인아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옆에 있던 수미의 눈빛은 살짝 흔들렸다.그제야 비행기에서 내린 후 너무 급한 나머지 쭉 핸드폰을 다신 켠다는 걸 깜빡한 사실이 떠올랐다.“강씨 집안 일 때문인가요?”윤서린은 계속해서 물었다.“맞아요.”서인아는 안색이 살짝 풀리며 대답했다.“서린 씨, 제가 유환이랑 확인할 게 몇 가지 있는데, 두 사람 시간을 몇 분 좀 방해해도 될까요? 확인만 하고 갈게요.”윤서린은 고개를 끄덕이었다.서인아는 눈길을 임유환에게 돌렸다.“무슨 일인데 여기서 얘기하면 안 돼?”임유환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서인아의 눈길에서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꼭 여기서 얘기해야겠어?”서인아는
“그래서 서인아, 내가 당신 마음속에서는 그저 사리 분별이 안 되는 그런 사람이야?”임유환은 냉소를 지었다.서인아는 그런 임유환을 보며, 임유환의 눈 속에 비친 자조의 모습을 보며 똑같이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 아팠다.서인아는 임유환이 자기 뜻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그것이 바로 서인아가 원하던 결과였다.서인아는 임유환에게 진실을 알려주면 안 되었다.입을 열어서 임유환이 더욱 물불 안 가리게 놔둘 수는 없었다.그래서 서인아는 자신을 더욱 쌀쌀맞게 보이게 할 수밖에 없었다.“당신도 이 결혼식이 나에게 있어서, s 그룹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더구나 이건 그저 우빈 씨의 자극 요법에 불과해.”“나도 정우빈의 자극 요법이란 걸 알아. 근데 그게 뭐 어때서?”임유환이 대답했다.임유환도 이건 일종의 음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에게는 정씨 가문을 부숴드릴 실력이 있었다.“당신도 참, 왜 자꾸 무리하는 거야!”하지만 서인아는 모르고 있었다. 임유환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고는 걱정이 되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내가 무리를 하든 안 하든 다 서인아씨랑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임유환은 아주 냉담하게 서인아를 바라보았다.“그래, 확실히 나랑 상관이 없지. 내가 오지랖을 피웠네. 당신의 생사나 신경 쓰고!”서인아는 화가 나서 말했다.“그러니 서인아 아가씨는 얼른 돌아가 봐. 어차피 우린 더 이상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임유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름 모를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임유환의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말에 서인아는 가슴이 크게 철렁이었다.서인아는 임유환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근데 그녀의 고통은 임유환에 비해 조금이라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서인아도 다른 선택이 없었다.“미안해...”서인아는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말했다.“내가 전에 당신에게 나랑 정우빈의 관계를 속이면 안 되었어. 하지만 s 그룹의 발전은 정씨 가문의 힘이 필요하니 나도 어쩔 수 없었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