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이서가 자신의 딸이 된다면 자연스레 지환 역시 자신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렇게 된다면 지환이 하이먼 스웨이 여사를 장모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다.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그러나, 하이먼 스웨이는 반드시 이서를 수양딸로 삼고 싶었다.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겠지.’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미소를 지으며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지환이 이서를 바라보았다.“여보, 작가님 말씀에 동의해?” 지환의 말을 들은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놀라 인상을 찌푸렸다. ‘매튜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을 줄 알다니.’ 이서는 붉은 입술을 살짝 오므린 채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한참 동안이나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보내는 기대의 눈빛을 받던 이서가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좋아요.”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웃기 시작했다.“바로 그거야, 이서야. 나의 예쁜 딸!”“어머니.”이서가 소리를 냈다. “어머니라니, 얼마나 어색해. 엄마라고 불러야지. 그렇지 않니, 지환아?” 지환은 주판을 탁탁 두드리는 하이먼 스웨이 여사를 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 역시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생각을 꺾을 수 없었다. “엄마.”“그래!”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기쁜 마음으로 용돈을 꺼내어 이서에게 건네주었다.“널 위해 준비한 거란다. 오늘, 내 소원을 이룬 셈이야.”“정말 겹경사가 따로 없구나.”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알 수 있었다.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말하는 겹경사라는 것이 이서가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딸이 되었다는 것과 이서와 결혼을 한 지환이 자연스레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이서는 알 수 없었기에 궁금해하며 물었다.“엄마, 다른 한 가지 경사는 뭐예요?”“당연히.”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일부러 소리를 길게 끌며 얼굴 근
지환의 도움으로 푸짐한 점심 한 끼가 완성되어 식탁 위에 올랐다. 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식탁에 가득 찬 음식에 약간 놀란 듯했다.“너희가 직접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못 믿었겠는걸?” ‘이 푸짐한 요리에 지환의 공도 있다니.’ ‘쯧쯧쯧, 지환이 가정적인 좋은 남자일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모두 집밥이에요. 드셔보세요.”이서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하이먼 스웨이 여사를 바라보았다. 요리 한 입 맛본 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너무 맛있다.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이야.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가 하신 요리 같기도 하구나.”“우리 어머니는 요리를 아주 맛있게 하시지.”“애석하게도 내가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괜찮아요, 마음에 드신다면 제가 앞으로 매일 만들어 드릴게요.” “그래, 그래, 그래. 최고의 딸이구나.”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의 시선이 갑자기 텔레비전의 보도로 향했다. 이서와 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서정이 죽었다고?”이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나도 이서정을 싫어하긴 했지만, 왜 이렇게 갑자기 죽은 거지?’ 텔레비전 속 여성 사회자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진 모양이구나.”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지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벌을 내린 셈이죠.”지환은 시종일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단지, 이서에게 반찬을 집어줄 때만 아낌없이 발휘되는 눈 밑의 부드러움만이 지환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치.” 이서가 코웃음을 쳤다.“여보.”지환이 이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별장으로 이사 갈까?”이서가 고개를 들고 지환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여기는 너무 좁아서 불편해?”“아니, 여보랑 같이 있는 곳이 나에게는 가장 편한 곳이지.”지환이 이서의 손을 꽉 잡았다. “그냥 안타까워서 그래. 여긴 회사랑 너무 멀잖아. 별장으로 이사 간다면 30분은 더 자고 일어나서 출근해도 될 텐데 말이야.”이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지환의 말이 맞았다.“그래, 그럼 우리 언제 이사 갈까? 내가 휴가 낼게.”“아니야.”지환이 기뻐하며 이서의 허리를 껴안았다.“당신이 고개만 끄덕이면 내일 바로 사람들 불러서 이사할 거야.”“그렇게 빨리?”“당연하지, 당신이 매일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걸 보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이서가 지환을 목을 껴안았다.“지환 씨, 어떡해. 너무 멋있어!”지환이 침을 삼켰다. “여보…….”“응?”지환이 이서의 머리를 젖혔다.“나 하고 싶어…….”이서가 깔깔거리며 웃었다.“아직 대낮이잖아.”“낮에도 밤일을 할 수는 있는 거잖아.”“안돼…….”이서가 지환의 옆으로 안겼다.머지않아, 이서의 몸부림 소리는 흐느끼는 신음 소리로 바뀌었다.같은 시각, 북성 시골의 별장에 있던 민호일 역시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이서정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뉴스에서는 이서정이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추락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그러나, 민호일은 일찍이 집사로부터 이하영의 계획을 전해 들은 바 있었다. 때문에, 이하영이 이서를 산에서 밀어버린 이후,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진 것처럼 조작하려 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던 터였다. 이서정의 죽음은 이하영은 계획과 완전히 일치했다. 민호일은 이서정의 죽음 역시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서정의 죽음이 조작된 것이라면 이서가 꾸민 것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이렇게 생각하니, 민호일의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바로 이때,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에 화
지환의 행동은 대단히 빨랐다.하루도 채 되지 않아 별장으로의 이사를 모두 끝마쳤으니 말이다. 퇴근 후, 별장에 도착한 이서는 가지런히 정리된 거실과 주방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사람을 몇 명이나 불렀길래 벌써 다 치운 거야?”껄껄 웃던 지환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이모님!”이서는 어안이 벙벙한 듯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는 한 여자를 한참이나 바라만 보았다. 앞치마를 두른 채 청소를 하는 듯한 그 여자는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누구셔?” 이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서경화 이모님이셔. 앞으로 우리 집의 의식주를 책임져 주실 거야. 당신은 고생할 필요 없어.”이서가 지환을 한쪽으로 끌어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한 달에 얼마나 드려야 해?”이서는 자신의 돈이 아니라 지환의 돈을 아까워하고 있었다. “한 달에 200만 원, 비싸지 않아. 나도 그 정도는 드릴 수 있어.”지환이 이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마누라만 힘들지 않으면 돼.” 이서의 볼이 약간 붉어지는 듯했다.“당신, 입에 꿀이라도 바른 거야?”“먹어볼래?”지환은 일부러 얇은 입술을 이서의 앞에 들이댔다. 이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했다.“그만해!”이서는 곁눈질로 웃고 있는 서경화를 보고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이모님. 윤 이서라고 합니다. 앞으로 이서라고 불러주세요.”서경화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제가 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사모님라고 부를게요.”사실, 서경화는 지환이 월 200만 원으로 모셔온 가사도우미가 아니었다.서경화는 지환이 특별히 외국에서 모셔온 전문 가정 관리사였다. 서경화는 매일 빨래와 밥을 하는 것 외에도 실내와 실외의 장식을 잘 꾸며 고용자가 시시각각 따뜻하고 화목한 환경에서 생활하여 심신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때문에, 서경화의 월 임금은 200만 원이 될 수 없었다. 적어도 월 600만 원은 필요로 할 것이었다.지환은 서경화가 이 모든 사실을 이서에게
“새롭게 바뀐 분위기 좀 봐봐.”지환이 이서를 밀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배치를 다시 바꿨다던 안방은 이전과 비교하여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그러나 전체적으로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편안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이서는 당장이라도 침대에 누워 편안한 밤을 제대로 누리고 싶었다. 이서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배치가 크게 바뀐 건 아니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네.”“침대 맡에 디퓨저를 놓아서 그런가? 아니면 여기 알록달록한 화초를 놓아서? 천장의 배치까지도 바꾸셨네…….” 지환이 천장을 가리켰다.이서가 고개를 들어 방을 훑어보고 나서야 천장뿐만 아니라 방 전체의 색상까지도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거, 언제부터 고친 거야?”“이렇게 큰 공사를 오늘 하루 안에 끝낸 건 아닐 거 아니야.”“얼마 전, 우리가 싸웠을 때부터.”지환이 뒤에서 이서를 끌어안았다.“다시 돌아올 당신에게 꼭 새로운 집을 보여주고 싶었어.”“우리 둘의 새로운 시작처럼.”“모든 것이 새로워진 집을 말이야.”이서는 지환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지환 씨는 어떻게 우리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자신 있을 수 있었던 거야?”“그때 우리가 화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잖아.”“그럴 리 없어!”지환이 단호하면서도 다급하게 이서의 말을 끊었다.“절대 그럴 수는 없어.”“그래서.”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쿡 씨에게 나한테 먼저 웨딩 사진을 보내지 말라고 했던 거야? 내가 웨딩 사진을 찢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지환의 눈빛이 순간 부자연스러워졌다.“아니거든…….”이서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하하하, 내가 웨딩사진을 찢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쿡 씨에게 나한테 먼저 웨딩 사진 보내지 말라고 했던 거 맞구나. 지환 씨, 내가 지환 씨랑 이혼할까 봐 얼마나 두려웠어?”지환은 자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채 까부는 이서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환이 이서의 코를 쥐었다.“나빠, 내가 이렇게 걱정하
하씨 가문은 이서가 하씨 가문에 새로운 생명과 젊은 힘을 불어넣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것이 바로, 서경화가 그토록 열심히 아가방을 꾸몄던 이유였다.‘물론 대표님께서 당장 이 방을 원래대로 바꿔놓으라고 하신다면 되돌려 놓아야 하겠지만, 장난…… 하시는 건가?’ ‘이 방은 당장 지금이 아닐지라도 분명 쓰게 될 텐데.’ “사장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당장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라니까요!”지환의 표정이 몹시 좋지 않았다.정신을 차린 이서가 지환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되돌려 놓을 필요 없어. 이모님, 이거 이모님께서 하신 거죠?”“네, 맞습니다.”서경화는 지환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순순히 이서의 질문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 마음에 안 드세요?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지환의 고함소리에 놀란 서경화는 방금 이서가 자신에게 한 말을 잊어버린 듯했다.“아니에요, 저는 마음에 들어요.”이서가 서경화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내, 이서가 다시 고개를 돌려 지환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나는 정말 마음에 들어. 거짓말 아니야.”지환의 볼의 팽팽한 핏줄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먼저 내려가 계세요.”서경화는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으나, 지환의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인 후, 아래층을 향해 내려갔다. 서경화가 자리를 떠나자, 지환이 마음이 아프다는 듯 이서를 껴안았다.“내일 중개소에 가서 다른 이모님 알아볼게.”“그러지 마.”지환의 품에 안긴 이서가 말했다. “이모님은 내 결심을 모르시잖아. 좋은 마음으로 하신 일이야. 너무 이모님을 탓하지는 마.” “그리고…….”이서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비밀 하나 말해줄게. 나는 스웨이 작가님에게서 종종 진실하지 못한 모성애를 느껴.”“스웨이 작가님께서 나에게 투사하신 건지, 아니면 작가님께서 정말 나를 친딸로 여기셔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아무튼, 작가님과
‘진짜 해외 암시장에서 지환의 사진을 찾다니, 그것도 얼굴까지 선명한 걸로!’하경철은 사진을 받아서 확인한 후 지체없이 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걸 들이밀면 이서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겠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니까 변명도 못할 거고.’이서는 두통 때문에 아려 오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연신 문질렀다.[할아버지, 저 오늘 회사로 출근 안 했어요.]하경철은 순간 당황했다. “회사로 출근 안 했다고? 그럼 지금 어딘데?”[집에 있어요. 혹시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거예요?]긴장했던 하경철의 말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오, 하하하, 급한 일은 아니다. 그냥 너 보고 싶어서 그러지. 아니면 있다가 내가 너희 집에 잠깐 들르마.”[네, 오세요.]이서는 하경철에게 자기 집 주소를 전했다.하경철은 이 말을 듣고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여기는 너희 부모님이 사시는 그 동네가 아니냐? 너도 거기 사니?”윤재하 성지영 부부의 집은 하경철이 과거에 사준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그 집이 어느 동네에 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그가 알기로는 그 동네의 집은 결코 가격이 싸지 않았다.‘이서는 줄곧 자기 남편이 회사 평사원일 뿐이라고 말했는데, 일개 평사원이 이 정도 가격의 대저택을 살 정도의 돈이 있다고? 이서가 사는 것도 불가능한데.’하경철은 이서의 경제 상황도 파악하고 있었다.현재 윤씨 일가의 모든 돈은 윤재하 부부의 수중에 있다.‘이서한테는 그 정도 큰 돈이 없지. 생일 선물은커녕 살기도 꽤나 팍팍할 텐데.’GM 그룹을 인수하고 나서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서야 이서에게 비로소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이런 대저택을 구입하는 것은 이서 능력으로는 힘들 테고, 그게 아니면 이서 남편이 살 수밖에 없을 텐데.’하경철은 계속 드는 의심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수화기 너머의 이서는 하경철의 속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상냥했다.[네, 할아버지, 언제쯤 도착하세요? 미리 준비하고 있으려고요.]하경철
한 시간 여 후에 하경철이 이서가 사는 전원주택 입구에 나타났다.이서가 직접 문 앞까지 가서 하경철을 맞이했다.“할아버지, 어서 오세요.”“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아니지?” 하경철은 주변을 여기저기 살피며 무심한 듯 질문했다.“네 남편은 지금 집에 있니?”“그이요…… 출근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할아버지. 모처럼 시간 내셔서 식사하러 오셨는데……. 여태 일정조정을 했는데도 결국 시간을 못 냈어요.”이서는 하경철 앞에서 난처해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최근 이서는 하이만 스웨이의 일을 돕느라 바빠서 할아버지와 지환이 함께 만나 식사할 일정을 마련하지 못했다.“괜찮다, 밥은 언제든 먹으면 되지. 젊은 사람들이 바쁘게 지내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 아니냐? 그래도 너 사는 거 보고 싶어서 오늘 특별히 시간 내서 왔다. 사실 네 남편은 안 봐도 돼. 네가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할아버지는 그걸로 된다.”하경철은 이렇게 말하면서 이서의 집으로 걸어갔다.“빨리 이 할애비랑 지금 너 어찌 사는지 보러 가자.”“네.”이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갔다.그들이 모두 눈치채지 못한 곳에서 분노에 가득 찬 한 쌍의 눈이 집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집 안에 들어서자 하경철은 이 집이 비록 하씨 집안의 저택만큼 호화롭지는 않지만, 곳곳에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하마터면 이서를 손자 며느리로 삼겠다는 수년간의 집념을 포기할 뻔했다.“오늘 보니 아주 행복하게 결혼생활하고 있는 것 같구나.”‘사실 집을 보면 결혼생활이 어떤 지 가장 확실히 알 수 있지.’‘항상 싸우는 부부의 집이 달콤하고 따스할 리 없고, 행복하고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의 집이 지저분할 리가 없지.’이서는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배어 났다.“그렇죠? 저희가 가끔 티격태격하지만 다행히 매번 순조롭게 해결방법을 찾는 편이예요.”‘결혼의 본질은 바로 이거지. 서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