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치고 이서는 일어났다.그런데 지환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버림받은 아이처럼 눈에는 온통 긴장과 불안이었다. 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지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수건 좀 가져올 게요. 자기 등이 다 젖었어.”지환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서의 손을 놓아주었다.이서는 욕실에 들어가 마른 수건을 가지고 나와 지환의 몸을 닦아주었다.지환은 자신의 가슴을 누르고 있는 이서의 손을 잡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할게.”이서는 그러라고 했다.“네, 그럼 난 하나와 상언 씨한테 다녀올 게요. 이따가 함께 아침 먹으러 가요.”“응.”이서가 임하나와 이상언을 깨웠다.어젯밤 두 사람은, 한 방 한 침대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다만 밤새 귀를 쫑긋 세우고 상대방의 동정을 살피느라 둘 다 모두 불면의 밤을 보냈다.임하나는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3개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다행히도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서와 가볍게 아침 인사했다.“이서야. 잘 잤어?”기운 없는 임하나의 모습에 이서가 웃으며 물었다.“어젯밤에 잠 못 잤어?” 임하나는 즉시 말했다.“야리꾸리한 생각 금지!”“나 아무 얘기도 안 했거든.”“…….”“알았어, 안 놀릴게, 상언 씨는 일어났어?”“몰라.”“그럼 가서 깨워, 이따가 아침 먹으러 가자, 먹고 와서 다시 자.”“아냐, 나도 같이 촬영 현장 갈 거야. 쿡이 직접 촬영하러 왔다고 들었어. 천상계 포트그래퍼잖아. 내가 살아 언제 또 쿡 씨를 만나겠어…….”이서가 활짝 웃었다.네 사람은 식당에 모였다.호텔의 식당 음식은 모두 특식들이었다. 게다가 모두 ML국 특색 음식이었다.식자재도 귀한 것들이었다.그러나 네 사람은 첫 입을 뜨자마자 김치 맛이 그리워하기 시작했다.식사를 마친 그들은 호텔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설산 기슭에 도착했다.오늘 선택한 촬영지는 ML국에서 가장 높은 설산이었다.차가 멈추자마자, 이서는 직원에게 끌려가
이서는 느릿느릿 메이크업 실에서 나갔다.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산기슭에 위치한 민박집이었는데 밖에는 이미 작은 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미 적지 않은 스텝들이 민박집 홀에서 대기중이었다.이쪽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분분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비디오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 굳었다.여기 스텝들은 오랜 기간 쿡과 함께 작업하면서, 연예인이며 유명인사들을 많이 봐왔었다. 그러나 처음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이렇게…….한참 동안 궁리해서야 마땅한 단어가 생각났다.‘우아한 신부는…….’마치 인간 세상에 잘못 내려온 공주 같았다.티 없이 맑고 깨끗했다.사람들의 눈빛에 이서는 더욱 긴장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수많은 얼굴 중에서 지환의 모습을 찾았다.곧 그녀는 지환을 보았다.이서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라이트 블루색 양복을 갈아입은 지환은, 마치 다른 사람이 변신한 것 같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고상하고 분위기 넘치는 것이 ‘만찢남’이 따로 없었다.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멋스러운 것이 전혀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었다.그녀를 쳐다보는 눈매에 부드러움이 가득했다.모든 여자들은 어렸을 때, 자기만의 백마왕자를 상상해 적이 있다.이 순간, 이서 꿈속의 백마 왕자의 형상이 완성되었다.바로 지환이었다!지환도 이서를 보고 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지만, 눈동자는 점차 커져갔다.힘차게 뛰던 그의 심장이 다시 뒤죽박죽이 되었다.악몽 뒤의 두려움이 아니라, 예쁜 꿈을 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자기야, 너무 예쁘다…….”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이서로 향했다.그의 눈에 비친 놀란 모습을 보고서야, 이서도 마침내 긴장을 풀었다.“당신도, 오늘 너무 멋있어요.”“그럼 설마 평소에는 못 났다는 뜻인가?”지환은 손을 뻗어 이서의 턱을 매만지며 옅은 웃음을 띠었다.가벼운 한마디에, 이서는 순식간에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지환의 손을 잡았다.“우리 빨리 촬영가요. 다들 우리 기다리고 있
한복은 우아한 여성미를 과시하기 가장 좋은 의복이다.이서는 거울 속의 아리따운 자태를 보고 귓불이 빨개졌다.거울 속의 지환은 실눈을 뜨고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그의 코는 천천히 이서의 목에 이르렀고,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를 맡았다.이서는 점점 호흡이 가빠졌다.지환은 그걸 느꼈는지 한 손으로 이서의 허리를 안아 그녀를 화장대에 앉혔다.이서의 등은 화장대에 밀착했다.방안에는 따뜻한 히터 바람이 불고 있지만, 허리에서 느껴지는 냉 기운이 척추를 따라 천천히 올라왔다. 몇 분이 지나자, 차가운 기운은 사라지며 방안의 열기가 이서의 백옥같은 피부를 조금씩 물들였다. 온몸의 피부가 야릇한 핑크색으로 변하며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와 점점 분리되었다.마지막에 이르자, 이서는 눈이 희미해지면서 모든 것이 흐리멍덩해졌다.‘밖에, 정말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빙설 천지일까?’저녁에 이서는 쿡이 보낸 사진을 받았다.한 장밖에 없었다.아직 미처 보정작업이 끝나지 않았다.하지만 보정하지 않아도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겼다.잡지에 바로 탑재해도 될 정도의 A컷 화보 사진이었다.이서는 사진을 임하나에게 보내주었다.임하나는 보자마자 즉시 답장했다.[와우, 역시 쿡은 쿡이구만. 바로 사진 공모전에 내도 수상하겠다!][그리고, 이서야, 너 너무 예쁘다. 이목구비는 똑같은데 왠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모델이 훌륭한 건지 쿡의 촬영기술이 훌륭한 건지,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이서는 웃었다. 곧 답장하려는데, 갑자기 휴대폰에서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이서는 촬영 스텝이 보낸 메시지인 줄 알고 별 생각없이 클릭했다.그런데 메시지 내용이 이상했다.[저는 하지환의 아내입니다.]이서는 장난 문자인 줄 알고, 상대방을 차단하려는데 상대방이 또 메시지를 보냈다.[우선 차단하지 마세요. 우리 혼인 신고도 했어요.]이서는 동작이 멈칫했다.곧이어 상대방이 파일을 한 장 보내왔다. 혼인 신고서였다.물론 H국
사진 속에는 고작 18~19세 정도로 보이는 젊고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곱슬머리에 우아한 티아라를 쓰고, 유럽풍 궁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청순하고 아름다웠다.사진 속 또 다른 한 사람은 바로 지환이었다.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지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입술을 오므리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있는 그와 대조적으로 옆에 있는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꼭 집어 어디가 이상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다시 대화방으로 돌아왔을 때 사진은 이미 삭제되었다.상대방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제가 얘기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 몫입니다만, 부탁하 건데 제발 이 일을 당신 남편에게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그의 비밀을 알려준 걸 알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이서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이미 그녀를 차단했다.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고 친구추가도 되지 않았다.이서는 눈썹을 힘껏 찡그렸다.문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자기야.”지환의 얼굴이 문 뒤에서 나타났다.그녀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주었던 그 얼굴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서는 심란했다. 그 여자의 말을 100%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간과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자기 왜 그래?”지환이 긴장해서 들어왔다.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이서는 입술을 깨물고 지환의 터치를 피했다. “괜찮아요.”“오늘 촬영할 때 너무 추웠지? 어디 아파, 내가 약 사올까?”“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이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지환이 의심할까 봐, 또 다른 핑계를 댔다.“회사 쪽에 문제가 조금 생겼어요.”지환은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이서의 목을 쓰다듬었다. “너무 힘들면 회사 그만 둬. 내가 자기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어.”그가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걱정이라는 걸 이서는 알 수 있었다.그가 이럴수록 그녀는 호흡이 더욱 어려워졌다.“응.”
눈치 빠른 이서는 바로 이해했다.“정말?”“응, 아까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봤는데, 매년 이맘때면 밤 10시에서 3시 사이에 오로라를 볼 수 있대.”“오우, 이런 이벤트가 있을 줄은 몰랐네.” 의서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임하나는 이서의 말 속에 담긴 다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밥 먹고 밖에 나가서 기다리자!”“그래요.” 기대에 찬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이서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옅은 웃음이 일었다. 고개를 돌리자, 사랑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다는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이서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의심은 깨끗이 씻겨졌다.‘왜 낯선 사람을 믿고 내 남편을 의심하는 거야?’“무슨 생각해?” 웃으며, 이서의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물었다.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저녁을 먹고 나니 9 시가 넘었다. 그들은 배불리 먹고 홀에서 서성거렸다.홀에 아직 적잖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오로라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10시가 지나자, 어두웠던 하늘에 마법이 일어났다. 초록색 띠가 나타나더니 그 띠가 곧이어 오색찬란한 불꽃처럼 피어오르며 다채로운 색으로 변했다.도시 전체를 뒤덮은 아우라는 후광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이서와 임하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주위 사람들도 모두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사진을 찍던 임하나가 고개를 돌려 이상언을 불렀다. “상언 씨.”그제야 그녀는 이상언이 곁에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그가 보이지 않자, 당황해서 몸을 돌려 살피려고 하는데, 마침 이상언이 아름다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호텔에서 나오는 걸 보았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면서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한 걸음 다가온 이상언을 본 임하나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이상언이 그녀 앞까지 왔을 때, 임하나는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아니…….”이상언은 미소를 지으며 임하나를 바라보았다. 지적이면서 차분한 이미지의 얼굴이 오로라 불빛 아래서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임하나는 핸드폰을 꽉
3개월 간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연인 관계로 확정하는 날, 하필 나연을 만나다니, 하나는 마음이 찝찝했다.하나의 표정을 살핀 이서가 나연에게 다가갔다. “나연아, 여기서 만나다니……, 밥은 먹었어? 내가 맛난 거 사줄까?”이서를 본 나연은 안색이 변했다. 입을 열려는 그녀를 이서가 강제로 한쪽으로 끌고 갔다.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환이 다시 이상언을 한 번 쳐다보았다.이상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환에게 음성 없이 입모양으로 고맙다고 말하고는, 바삐 임하나를 달래러 갔다.지환도 몸을 돌려 이서가 간 곳으로 따라갔다.이서는 나연을 식당으로 데려왔다. 이서의 손에서 벗어난 나연은 손목을 비비며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언니, 뭐하는 거예요? 아프잖아요…….”이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 나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방학이어서, 휴가 왔는데, 왜요? 뭔 문제라도 있나요?”이서는 나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게 나타날 리 없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녀도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이상언도 나연한테는 마음이 없는 걸 잘 알기에, 굳이 도둑처럼 그녀를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그럴 리가. 밥은 먹었어? 내가 맛난 거 사 줄게.”“아니, 필요 없어요.” 나연은 쏘아붙였다.“나도 돈 있거든요.”“너 혼자 온 거니?”“그럴 리가요?”나연이 입을 삐죽거렸다.“언니, 우리 고작 한 두 번 만난 사이인데, 내가 왜 굳이 언니한테 시시콜콜 설명해야죠?”이서는 빙그레 웃었다.“그렇긴 하지, 하지만 난 말이야, 친구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거든. 친구의 행복이 바로 내 행복이니까. 내 친구가 행복하지 않다면, 난 친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뿌리 뽑을 생각이거든.”“무슨 뜻이에요?”이서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가요.”문에 기대어 있던 지환은, 이서가 소녀를 훈계하는 것을 보고 시종 아무 말도 하지
“네, 나연이 날 좋아하는 거 눈 달린 사람은 다 안다고……, 근데 나랑 나연이……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요.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믿지 않아요.”그는 정말 억울했다.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딸기 농장에서 ‘질투 유발 작전’을 펼쳤던 자신을 한바탕 두들겨 패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수준 낮은 방법을 생각해 냈을까?’이서가 물었다.“하나는, 상언 씨가 나연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안 믿는 거예요, 아니면 나연이가 상언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안 믿는 거예요?”이상언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네? 뭔…… 차이가 있나요?”“물론 차이가 있죠.”이서가 진지하게 얘기했다.“상언 씨는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요. 나연이 상언 씨를 좋아한다면, 상언 씨가 나연에게 마음이 있든 없든, 하나는 계속 이 상황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둘이 함께 있는 모습도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하지만 그건…….”이서는 손을 흔들었다.“설령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할지라도 마음이 께름한 건 어쩔 수 없어요. 게다가 더 큰 함정은…….”“함정이요?”“나연이 상언 씨를 좋아한다는 거예요.”“…….”“게다가…….”이상언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또 있어요?”“네.”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나연, 하나 이름도 비슷한데다, 나연이 한참 어리고…….”“네? 이름이 완전 다른 데…….”이상언의 입술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여자는 그래요. 별 거 아닌 포인트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일 때 있거든요.”이상언의 당황한 표정을 본 이서가 말을 이었다.“상언 씨, 설마 여자친구 처음 사귀는 건 아니죠?”“그건 아닌데…….”전에도 여러 차례 연애를 했지만, 모두 가볍게 만난 사이였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오히려 여자 쪽이 이상언의 비위를 맞추려고 갖은 노력을 해 왔었다.임하나는 그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였다.“나 어떻게 해야 하죠?” 이상언은 속수무책이었다.그의
그 뒤 며칠 동안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 촬영이 끝나고, 지환이 쿡 팀을 초대에 쫑파티를 했다. 그 뒤 쿡을 포함한 촬영팀은 M 국으로 돌아갔다. “최종본은 우편으로 H 국으로 보내 예정입니다. 혹시 요구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메일로 알려주세요.”비행기에 오르기 전, 쿡이 미소를 지으며 이서에게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쿡 씨.”배웅을 마치고 지환과 이서는 공항에서 호텔로 돌아왔다.그들은 이상언 등 두 사람과 내일 스키 타러 가기로 약속했다.호텔 뒤에 바로 스키장이 있었다.요 며칠 동안, 나연이 여러 차례 이상언을 찾아왔었지만, 그는 여러 가지 구실로 거절했다.하지만 그녀는 참으로 끈질겼다.이상언이 톡을 차단하자, 레스토랑에서 기다리면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도했다.이상언이 나연에게 전혀 마음이 없다는 걸 임하나도 잘 알고 있지만, 본인보다 한참 어린 여자가 남자친구 앞에서 어슬렁거리니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그것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나연이 걔 완전 고수야. 첫사랑이고, 내숭녀고, 다 저리 가라야.” 다음날 같이 스키 타러 가서 임하나가 이서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차라리 공명정대하게 공세를 펼치면 따지기라도 할 텐데, 그냥 가끔 상언 씨에게 연락해서 이것저것 하자고 하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상언 씨에게 차단하라고 하고 싶어도 그랬다가 괜히 빌미를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오빠, 언니가 질투해요?’나연을 차단했을 때, 그녀가 이런 얘기하면서 이상언에게 접근할 게 뻔했다.하나도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남자친구를 만났었지만, 매번 상대방이 그녀에게 넘어오면 그녀는 가차없이 헤어졌다. 따라서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건 없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을 공략하는 데만 공을 들였다. “제기랄, 연애는 정말 귀찮아, 솔로가 편해.” 임하나가 눈살을 찌푸리고 삐딱선을 탔다.“그냥 헤어질까?” “고작 이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