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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 차, 부진성의 첫사랑이 돌아왔다. 같은 날, 서채은은 누구보다 사랑하던 남편에게서 이혼 서류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가정 법원 앞. 오랜만에 재회한 첫사랑에게 부진성은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여자를 건드린 적 없었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너였으니까.” 그 순간, 채은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3년간의 결혼 생활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다니...’ 그러나 채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잠시 미뤄 두었던 본업에 복귀해 자신의 인생을 최고점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버려진 줄로만 알았던 ‘부진성 대표의 아내’가 사실은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완벽한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3개월 뒤, 어느 늦은 밤. 술에 취한 부진성은 떨리는 손끝으로 서채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채은아...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나른한 여자의 목소리뿐. [건하 씨, 누구예요?] 채은을 품에 안고 있던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글쎄... 그냥 다단계나 하는 녀석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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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서명해.”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서채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이혼협의서가 눈앞에 놓이는 순간, 채은은 순간적으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저 침묵 속에서 고개를 들어 씁쓸한 미소로 부진성을 바라봤다.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오늘 아침에 평소와 다르게 전화를 걸어선 오늘 밤에 돌아와서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하루 종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건만, 듣게 된 말이 고작 이거라니...’ 3년간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채은은 아무 말 없이 이혼협의서를 받아들었다. 손이 살짝 떨렸지만,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꼭 이래야만 해요?” 부진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시선을 훑었다. 서채은은 지난 3년간 부진성의 아내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마 방을 정리하던 참인지, 채은의 새하얀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피곤함과 멍한 기운이 역력했고, 수수한 얼굴에는 두꺼운 안경이 걸쳐져 있었다. 온화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재미없어 보이는 여자.그런 평범하고 둔해 보이는 서채은이 지난 3년간 부진성의 아내로 살았다. 진성은 서서히 시선을 거두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는 차분하면서도 거절할 수 없는 단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서명해. 그 사람이 돌아왔어.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 채은은 순간 멈칫했고, 혀끝이 쓰리는 듯했다.그녀는 진성이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고다희, 그녀는 부진성의 첫사랑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형식적인 관계에 불과했다. 부진성은 3년 내내 고다희를 위해 순결마저 끔찍이 지켰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채은이 동의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일까, 진성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어쨌든 우린 협의이혼인 거잖아. 네 학력이 높지 않은 걸 감안해서... 이혼 후에는 벨루스 가든에 있는 집 몇 채와 차를 너한테 줄 생각이야. 배상으로 160억도 얹어 줄게.”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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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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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순
업뎃 빨리해주세요 ~~
2025-01-06 18:06:18
0
30 챕터
제1화
“서명해.”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서채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이혼협의서가 눈앞에 놓이는 순간, 채은은 순간적으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저 침묵 속에서 고개를 들어 씁쓸한 미소로 부진성을 바라봤다.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오늘 아침에 평소와 다르게 전화를 걸어선 오늘 밤에 돌아와서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하루 종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건만, 듣게 된 말이 고작 이거라니...’ 3년간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채은은 아무 말 없이 이혼협의서를 받아들었다. 손이 살짝 떨렸지만,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꼭 이래야만 해요?” 부진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시선을 훑었다. 서채은은 지난 3년간 부진성의 아내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마 방을 정리하던 참인지, 채은의 새하얀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피곤함과 멍한 기운이 역력했고, 수수한 얼굴에는 두꺼운 안경이 걸쳐져 있었다. 온화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재미없어 보이는 여자.그런 평범하고 둔해 보이는 서채은이 지난 3년간 부진성의 아내로 살았다. 진성은 서서히 시선을 거두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는 차분하면서도 거절할 수 없는 단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서명해. 그 사람이 돌아왔어.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 채은은 순간 멈칫했고, 혀끝이 쓰리는 듯했다.그녀는 진성이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고다희, 그녀는 부진성의 첫사랑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형식적인 관계에 불과했다. 부진성은 3년 내내 고다희를 위해 순결마저 끔찍이 지켰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채은이 동의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일까, 진성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어쨌든 우린 협의이혼인 거잖아. 네 학력이 높지 않은 걸 감안해서... 이혼 후에는 벨루스 가든에 있는 집 몇 채와 차를 너한테 줄 생각이야. 배상으로 160억도 얹어 줄게.”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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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서재 밖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으며, 채은은 고개를 숙였다. 부씨 가문에 시집온 몇 년 동안, 그녀는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다. 애초에 부윤아가 교통사고로 수술을 받았을 때도, 며칠 밤낮으로 병원에서 곁을 지킨 사람도 채은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시부모님에겐 더욱 공손하고 세심하게 대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부씨 가문 사람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잠시 후, 임지안이 피곤한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채은아, 정말 안 갈 거야? 예전에는 야생 동물 사냥을 가장 좋아했잖아. 스피드 레이싱도 엄청나게 좋아하고!]채은은 잠시 멍해졌다. 그 순간, 몇 가지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결혼하기 전, 채은은 정말로 야생 동물 사냥과 스피드 레이싱, 값비싼 술을 좋아했다.하지만 임씨 가문의 본가에서 부진성을 만나고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진성을 사랑하게 된 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진성이 좋아하는 여자가 온화하고 품격 있는 집안의 아가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채은은 좋아하던 것들을 서서히 끊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채은은 이제 자신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거의 잊어버렸다. 수화기 너머 지안은 여전히 계속 설득하고 있었다.[채은아, 부진성 몰래 가면 되잖아. 그 남자 때문에 네가 좋아하는 걸 다 포기할 필요는 없어. 게다가 부진성은...] “우리... 이혼했어.” 채은이 가볍게 지안의 말을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놀란 듯하더니 깊은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네가 마음을 바꾼 거야, 아니면 부진성이 미쳐버린 거야?] 채은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그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난 동의했을 뿐이야.” 지안은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자식, 정말 어리석다니까?’ ‘채은이 같은 사람을 아내로 맞은 것만으로도 하늘이 도운 일인데, 이혼이라니?’ [오히려 잘 됐어, 축하해.]지안의 목소리는 어쩐지 들뜬 기색이었다.[곧 데리러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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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윤아의 놀란 시선 속에서, 채은은 짐가방을 끌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걸어 나갔다. 부씨 가문의 대문을 나서자마자, 지안이 차창을 열고 머리를 내밀며 활짝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며 손키스를 날렸다.“자기야, 타! 이 언니가 끝내주게 모실게!” 축하하면서도, 지안은 채은이 막 이혼한 것을 알기에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으로 채은을 데려갔다. “또 고다희 그 여자야? 정말 어이가 없네. 부진성은 대체 그 여자의 어디가 좋대?” 채은이 커피를 저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나야 모르지...” 채은은 부진성의 첫사랑, 고다희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진성을 알게 된 것도 고다희가 외국으로 떠난 뒤의 일이었으니, 어쩌면 채은과 고다희의 인연은 애초부터 엇갈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채은은 고다희가 얼마나 온화하고 뛰어나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 탁월한 사람인지에 대해선 수없이 들어왔다. 진성이 고다희 때문에 부경석과 크게 다퉜던 그때, 결국 고다희가 직접 나서서 부경석을 설득한 덕분에 채은과 진성의 계약 결혼이 성사되었으니, 그 존재감은 만난 적 없는 채은의 삶에도 깊이 새겨져 있었다.채은이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느낀 지안이 턱을 괸 채 다른 화제를 꺼냈다.“그나저나, 부진성... 통이 정말 크네. 집과 차, 그리고 160억까지... 참 대단해.” 지안은 고개를 들어 채은을 한 번 바라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근데 넌 그런 거 필요 없잖아.”채은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로 회사 운영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회사는 사촌 서찬우에게 맡기고, 자신은 배당금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서씨 가문의 회사가 서찬우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진성과의 혼전 재산 협의까지 더해지면서, 서씨 가문의 사람들조차 채은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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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채은은 걸음을 멈추고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다희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 순간, 다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자 곁에 있던 진성이 낮은 목소리로 다희를 대신해 말을 꺼냈다.“할아버지께서 우리의 일을 아셨어.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하러 오라고 하시더라.”“네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내가 직접 데리러 온 거야.” “아... 네.”채은은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정말 꺼져 있었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핸드폰만 충전하고 금방 갈게요.”이 말은, 진성과 다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진성이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기다렸다가 같이...” 채은이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괜찮아요. 혼자 갈게요.” 진성이 침묵하자, 채은은 다희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그리고 내일 아침 9시에 시간이 된다면, 우리... 가정법원 가서 이혼 신청해요.” 진성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지?” 채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좀 급해서요.” 진성은 채은의 단호한 태도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 그는 다희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내딛던 찰나, 다희가 진성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더니 다시 뒤돌아섰다. 그녀는 채은에게 다가오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채은 씨, 정말 감사해요.” 채은이 약간 당황하며 물었다.“뭐가요?” 다희는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진성을 한 번 바라본 뒤, 귓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말투에는 추억에 잠긴 듯한 부드러움이 서려 있었다.“예전에 저와 진성 씨가 어쩔 수 없이 헤어졌을 때, 다시는 함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채은 씨가 저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 채은 씨가 진성 씨를 놓아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채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틀렸어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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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진성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중, 따뜻한 손길이 그의 손을 가볍게 감쌌다.고개를 돌리자, 다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진성 씨, 속이 불편한 거예요? 따뜻한 국이라도 마실래요?” 진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채은은 부경석에게 인사를 마친 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의자를 당겨 앉았는데,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부경석이 냉소 섞인 코웃음을 내뱉었다. 부씨 가문에서 식사 시간은 늘 엄격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식사 중에는 말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었다. 채은은 별로 식욕이 없었지만, 부경석과 맞춰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나고, 부경석이 채은을 불렀다.“채은아, 진성이랑 있었던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우리 부씨 가문은 너 하나만 며느리로 인정할 테니까.” 부경석은 옆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다희와 진성을 힐끔 보며 비꼬듯 말했다.“만약 부씨 가문에서 나갈 사람이 있다면, 남의 가정을 망친 불륜녀와 책임이라는 걸 모르는 쓰레기 같은 자식뿐일 거야!” 채은은 살짝 당황했다. 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이 어두워졌고, 다희는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울먹거리며 연약하고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부경석은 두 사람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탁자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내가 네 아버지와 친구였을 때, 진성이가 너와 결혼한다고 해서 아주 기뻤단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씨 가문을 떠나겠다니... 내가 네 아버지를 무슨 면목으로 보겠니?” 진성은 답답한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할아버지, 채은이한테는 최대한 보상할 생각이에요.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억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 말에 부경석은 즉각 화를 냈다.“억지? 내가 보기엔 네 눈이 멀어버린 거야! 대체 어떤 여자들을 보고 다녔길래 그래?!” “할아버지...”부경석과 부진성이 본격적으로 말싸움을 시작하려는 순간, 채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가로막았다.“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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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부경석은 무겁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빛은 깊고,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채은이가 시집왔을 때, 네 어머니가 얼마나 냉담하고 가혹하게 굴었는지 기억하지? 아플 때마다 의사를 부르는 것도, 네 동생 윤아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고 싶을 때마다 돈을 내는 것도 다 채은이 몫이었어.” “게다가 그 아이는 네가 늦게 돌아올 때마다 밥상을 차린 채 기다렸고, 네가 고다희 때문에 위장병에 걸렸던 해에도 너를 위해 국을 끓이다 손을 크게 다쳤지.” 부경석이 한숨을 내쉬었다.“채은이는 생전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던 아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임씨 가문에 머물던 시절에도 그런 일은 해 본 적이 없었지.” “그런 아이가 널 위해 모든 걸 바쳤어.”“하지만 고다희는 너한테 겨우 국 한 그릇을 떠줬을 뿐이야. 그게 그렇게 감동적이고 따뜻하든?”진성은 침묵한 채 손을 꽉 쥐었다. 그의 눈빛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마음속에는 먹구름이 일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 채은은 이들의 대화를 알지 못한 채 깊이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8시 30분, 그녀는 진성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신고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부진성 씨, 혹시 괜찮으시면 9시에 가정법원으로 와줄 수 있을까요? 저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진성은 핸드폰을 쥐고 담담히 대답했다.[곧 회의가 있어서 지금은 안 돼. 며칠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그는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채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어제 자신이 분명히 진성에게 시간을 상기시켰던 것을 떠올렸다. ‘아니야, 바쁜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지, 뭐. 며칠 뒤에 다시 약속을 잡아야겠어.’그녀는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았다.채은은 어제 지안이 언급한 오지민 교수가 떠올랐다.그녀는 오지민 교수를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전화를 걸어 방문을 요청했다. 오지민 교수의 자택에 다다른 채은은 가정부의 안내를 받아 서재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기 전, 그녀는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엿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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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채은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그 당시, 부진성과의 미래를 꿈꾸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심리학자가 되었을 것이었다.‘그때로부터 이미 몇 년이 지났어. 물론 내가 심리학 지식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오지민 교수가 채은의 마음속 망설임을 읽은 듯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급히 결정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네가 의향이 있다면, 나는 언제든 널 돕고 싶단다.” “교수님, 감사합니다.”채은의 가슴이 따뜻해졌다. 지난 몇 년간 바쁜 일상에 치여 오지민 교수를 찾아뵐 기회도 없었는데, 그는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며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채은은 오지민 교수의 건강 상태에 관해 물으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오지민 교수는 심지어 그녀를 식사에 초대하며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했다.채은은 오후가 되어서야 오지민 교수의 자택을 나섰다. 다음 날 있을 사냥해 대비해, 그녀는 준비해 둔 옷과 도구를 챙겼다. 다음 날 아침, 지안은 차를 몰고 채은을 데리러 왔다.두 사람은 명동산에 도착했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몇몇 낯선 얼굴들만 보일 뿐이었다. 이번 사냥은 도씨 가문에서 주최한 행사로, 참석자들의 배경은 각양각색이었다.채은은 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마음이 없어서 곧장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사냥총을 골랐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성 형님, 다희 누님, 두 분이 여긴 웬일이세요? 두 분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다희가 여기 분위기가 좋다길래, 겸사겸사 나왔어.” 채은은 잠시 멈춰 섰다. 이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니, 진성의 친구가 두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진성과 대화하고 있는 남자가 채은을 보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형수님은... 왜 여기 계세요?” 그는 진성을 의식하며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채은은 머리를 단정히 묶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다. 사냥용 위장복 차림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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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채은은 사냥총을 받으며 속으로 감탄했다.‘진짜 잘생겼다!’ 건하가 옷을 갈아입고 모든 준비를 마치자, 사냥꾼들이 현장 교관의 지시에 따라 하나둘 사냥터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사냥보다는 건하를 보기 위해 온 것이었기에, 사냥에 서툰 이들은 캠프에 남아 구경하는 데에 만족했다. 그중에는 진성과 다희도 있었다. 도씨 가문은 망원경과 다양한 주류, 간식을 준비해 두었고, 주변에는 길들인 작은 사슴들을 배치해 두었다.캠프에서 머무는 사람들 또한 심심함을 느끼지 말라는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사냥터의 상황을 더 흥미롭게 여겼고, 망원경을 들고 사냥터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진성도 채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망원경을 들었다. 넓게 펼쳐진 초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잔잔히 불었고, 채은은 말을 탄 채 그 초원 위를 달리고 있었다.바람 소리가 귀를 스치자, 채은은 알 수 없는 흥분감을 느꼈다. 마치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듯, 그녀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과거의 자유롭고 당당한 채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망원경을 내려놓은 진성은 얼굴을 굳힌 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알던 서채은, 그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던 여자가 저렇게 매력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초원을 달릴 수 있다니... 충격인데?’ 지안은 말을 타지 못했기에 사냥개를 데리고 채은을 기다렸다. 채은이 몸을 돌려 말에서 내려오자, 지안은 고개를 들어 건하가 채은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순간, 건하의 눈빛에 묘한 흥미가 스쳤고, 지안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과연 건하가 곁에 있던 스태프에게 몇 마디 지시하자, 곧 스태프가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 “서채은 씨, 그리고 임지안 씨, 도건하 대표님께서 오늘 사냥에서 가장 많은 동물을 포획한 분께 원하는 사냥감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길들인 조랑말이나 작은 사슴도 포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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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채은이 고개를 들자, 한 쌍의 매력적인 눈동자가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풍류가 넘치고 온화한 외모를 가졌지만, 웃을 때는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매력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채은은 기억 속에서 그를 떠올릴 수 없었고, 옆에 있던 지안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가 사냥당한 검은 기러기를 내려놓으며 자신을 소개했다.“조재준이라고 합니다. 도건하 대표님의 요리사이죠.”“서채은 씨께서 잡으신 검은 기러기인데, 대표님께서 요리를 부탁하셔서 가져왔습니다. 맛 좀 보시죠.” ‘요리사?’채은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살폈다. ‘몇억짜리 시계를 찬 요리사가 어디 있어?’지안이 바로 입을 열었다.“저기요, 도 대표님의 요리사들은 다 그렇게 돈이 많은가요?” 재준은 기러기를 손질한 후, 두 사람에게 내어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그야 저희 대표님께서 돈이 많으니까요.” 지안과 채은은 그의 유쾌함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캠프에 울리자, 진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의 시선에서 보이는 채은은 은색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에 넣으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멋진 남자가 무언가를 말했고, 채은은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 순간, 입 안의 고기가 무미건조해졌다. 지난 3년간 채은과 함께하면서, 진성은 그녀가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기 있고 활기찬 모습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종이 위에 생생히 그려진 그림처럼 생동감을 지닌 모습이었다. “진성 씨, 채은 씨와 함께 있는 남자 말이에요, 채은 씨의 친구인가요?”곁에 있던 다희가 진성의 시선을 따라가며 무심코 물었다. 진성과 다희와 함께 있던 친구가 그 말을 듣고 채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닐걸요? 형수... 아니, 채은 씨가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채은 씨가 저 남자를 꽤 좋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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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바비큐 파티는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중간중간 사람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고, 분위기는 푸근하고 흥겨웠다. 파티 도중, 채은은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사냥 전리품을 선택하러 갔다. 건하의 규칙에 따라, 그녀는 마음에 드는 조랑말이나 다른 사육 동물을 한 마리 데려갈 수 있었다. 채은은 사실 그 귀여운 말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결국 작은 사슴을 선택했다. ‘말은 애완동물로 적합하지 않을 거야.’전리품을 고르고 밖으로 나오자, 한 보디가드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서채은 씨, 도 대표님께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도 대표님’이라 불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도건하였다. 채은은 보디가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창가 쪽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건하가 보였고, 옆에서는 재준이 열심히 칵테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랏빛 칵테일 잔 속에 얼음이 녹아들며 반짝이는 모습이 묘하게 매혹적이었다. 채은을 본 재준이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어머, 채은 씨!”“혹시 저희 형님과 뭔가 있는 겁니까? 저희 형님은 술을 마실 때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으시거든요.” 이의 말은 다소 모호하고 경박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채은은 그 말을 듣고 멍하니 멈춰 섰고, 눈앞의 남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그녀는 건하처럼 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건하가 입을 열었을 때, 채은은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층에는 채은과 건하 단둘만 남아 있었다. 건하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고,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서채은 씨, 저 좀 도와주시죠.”30분 후.채은이 2층에서 내려왔을 때, 파티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고 있었다. 지안은 의자에 앉아 채은을 기다리다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채은아, 누가 널 찾았던 거야?” 채은은 방금 전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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