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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청풍야운
last update Last Updated: 2025-01-06 13:17:03
진성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중, 따뜻한 손길이 그의 손을 가볍게 감쌌다.

고개를 돌리자, 다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성 씨, 속이 불편한 거예요? 따뜻한 국이라도 마실래요?”

진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채은은 부경석에게 인사를 마친 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의자를 당겨 앉았는데,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부경석이 냉소 섞인 코웃음을 내뱉었다.

부씨 가문에서 식사 시간은 늘 엄격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식사 중에는 말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었다.

채은은 별로 식욕이 없었지만, 부경석과 맞춰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나고, 부경석이 채은을 불렀다.

“채은아, 진성이랑 있었던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우리 부씨 가문은 너 하나만 며느리로 인정할 테니까.”

부경석은 옆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다희와 진성을 힐끔 보며 비꼬듯 말했다.

“만약 부씨 가문에서 나갈 사람이 있다면, 남의 가정을 망친 불륜녀와 책임이라는 걸 모르는 쓰레기 같은 자식뿐일 거야!”

채은은 살짝 당황했다.

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이 어두워졌고, 다희는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울먹거리며 연약하고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부경석은 두 사람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탁자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네 아버지와 친구였을 때, 진성이가 너와 결혼한다고 해서 아주 기뻤단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씨 가문을 떠나겠다니... 내가 네 아버지를 무슨 면목으로 보겠니?”

진성은 답답한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할아버지, 채은이한테는 최대한 보상할 생각이에요.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억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 말에 부경석은 즉각 화를 냈다.

“억지? 내가 보기엔 네 눈이 멀어버린 거야! 대체 어떤 여자들을 보고 다녔길래 그래?!”

“할아버지...”

부경석과 부진성이 본격적으로 말싸움을 시작하려는 순간, 채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가로막았다.

“할아버지, 제가 원한 일이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거실은 순간적으로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채은은 조용히 부경석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전혀 억울하지 않으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한 모든 선택은 제가 끌리는 대로 한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제가 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제가 더 이상 진성 씨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요.”

채은의 표정은 마치 오랜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평온했다. 하지만 표정에는 고요하면서도 단호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진성은 전등 아래로 비치는 그녀의 아름다운 옆모습에 잠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졌다.

부경석은 오랜 침묵 끝에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 미안한 일이 참 많구나.”

채은은 잠시 멈칫했지만,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부경석의 마음이 차츰 가라앉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미 밤이 깊어졌기에, 부경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는 채은이 떠나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혼잣말로 말했다.

“오히려 잘된 일이야, 저 녀석이랑 사는 것보단 이혼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

부경석은 한숨을 쉬고는 곁에 있던 진성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서재로 올라갔다.

남겨진 부진성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다희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성 씨, 올라가서 할아버지를 위로해 드리세요. 할아버지께서는 채은 씨를 정말 아끼셨던 탓에 아주 속상하실 거예요.”

다희는 평소와 같이 사려 깊은 모습이었다.

진성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부터 데려다줄게.”

다희를 데려다준 뒤, 진성은 서재로 올라가 부경석을 찾았다.

그는 여전히 차를 우려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 다희는 제 아내가 될 사람이에요.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조금은 잘 대해 주세요.”

부경석은 냉소하며 대꾸했다.

“허, 너는 예전에 채은이가 시집왔을 때도 똑같이 말했단다. 네 아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잘 대해줘야 한다고. 그런데 넌 어떻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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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30화

    채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창 쪽으로 몸을 살짝 움직였다. 계속해서 채은의 행동을 주시하던 건하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눈치챘고, 미소를 머금은 채 살며시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채은이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익히 알았던 그는 곧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 대표님, 보떼로 가시나요?”운전기사는 백미러로 단정하고 단아한 옷차림의 채은이 건하와 자연스레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는 은근히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보떼는 건하가 손님을 접대할 때 이용하는 단골 호텔로, 그의 전용 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건하는 잠시 생각하더니 채은을 향해 물었다.“채은 씨,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나요?” 채은은 잠시 멈칫하다가 답했다.“대표님께서 자주 가는 곳으로 가시죠. 예전에 도와주신 일도 있고, 오늘은 하린이도 저를 많이 도와줬으니, 제가 감사의 뜻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채은은 분명히 건하에게 신세를 졌다. 비록 건하의 도움이 그의 여동생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채은은 하린의 치료를 돕기로 결심한 이상,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하도 채은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고, 운전기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할게요. 기사님, 출발하시죠.”보떼는 N시의 초호화 호텔로, 최고급 소비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수천만 원이 넘는 식사비는 물론이며, 출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유층이나 명망 높은 인사들이었으니 말이다. 검은색 카이엔이 보떼 입구에 천천히 멈춰 섰다. N시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건하의 카이엔은 검소한 차량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연속된 숫자 7이 새겨진 번호판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입구에 서 있던 직원이 재빠르게 달려와 차 문을 열었고, 곧이어 로비 매니저도 허겁지겁 달려왔다.“도... 도 대표님,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방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데, 이번에도 하린 아가씨와 두 분이신가요?” 건하는 차에서 내리며 채은을 흘깃 보았다. 채은은 스스로 차 문을 열고 내리고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9화

    채은은 입술을 깨물며 거절하려 했으나, 하린이 먼 곳을 향해 기쁘게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오빠!” 채은이 고개를 들자, 한 남자가 차 문을 열고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깔끔한 맞춤 정장 차림의 건하는 평소의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고, 깊고 어두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채은은 왠지 모르게 머리끝이 저릿해졌지만, 건하의 시선을 견디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건하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이렇게 또 뵙네요.” 한편, 교무처에서 나온 부윤아는 손에 들고 있던 처분서를 구기며 이를 악물었고, 빠르게 학교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훑으며 불쾌감과 억울함에 치를 떨었다. ‘서채은이 진짜 그 심리학과 선배라니!’ ‘감히 우리를 속여?!’윤아는 채은이 정말 심리학과의 전설적인 선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이를 숨기고 있던 그녀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다.‘그동안 잘도 숨겼겠다? 일부러 숨긴 게 분명해!’‘천박한 X, 오빠랑 이혼하고 벨루스 가든의 집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서, 곳곳에서 나한테 맞서면서 치욕을 안겨주고 있어! 이 처분서를 좀 보라고!!’‘우리한테 순종하던 서채은과 비교하면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아!’‘어림없지!’‘오빠한테 이 모든 걸 말해야겠어!”윤아는 복수의 결심을 굳히며 캠퍼스를 나서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채은과 건하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윤아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분노로 번져갔다. ‘서채은 저 X... 벌써 새로운 남자를 만난 거야?!’윤아는 채은 일행 쪽으로 다가가 보려 했으나 거리가 꽤 멀어, 남자의 얼굴은 똑똑히 보지 못했다. ‘어라? 실루엣이 낯설지 않은데?’윤아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채은 쪽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연신 사진을 찍은 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했다.‘오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이걸 오빠한테 보여주면 서채은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을 거야! 집도,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8화

    마치 채은의 감정을 알아차린 듯, 진도윤 교수가 그녀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리며 말했다.“돌아왔으니 됐어. 정말 잘했어.”고개를 들어 격려와 너그러움이 담긴 진도윤 교수의 눈길을 마주한 채은은 코끝이 찡해졌다. 진도윤 교수는 손을 거두며 주변의 흥분한 학생들과 충격에 빠진 윤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채은이는 확실히 내 학생이 맞네. 당시 심리학과가 채은이를 위해 무기한 휴학 허가서를 발급해 준 이유도, 이런 천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채은이는 재학 중 최단기간에 전공 학점을 이수했고, 경찰, 정신병원, 심리 상담 센터 등과 협력해 심리학 분야에 수많은 실질적 기여를 했어.”“채은이가 졸업까지 남은 건 아주 작은 걸음일 뿐인데, 우리 심리학과의 천재가 심리 상담 센터의 상담사를 맡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진도윤 교수의 말투에는 채은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가득했다.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모두 채은을 향해 강렬한 호기심과 존경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도윤 교수는 말을 끝낸 뒤, 단호한 표정으로 윤아를 쳐다보며 말했다.“그렇지 않아도 커뮤니티에서 학교 선생님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보고 오던 참이야. 학생으로서 공부와 탐구에 집중하지는 못할망정, 사적인 감정으로 복수하거나 질투로 남을 헐뜯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은 학교 규정에 따라 처리할 테니, 모두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도록!” 진도윤 교수는 이 말을 마친 후, 채은에게 한 번 더 격려하는 눈빛을 보내고는 자리를 떠났다.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윤아에게 쏠렸다.조금 전 식당에서 자신이 그 글을 썼다고 인정한 윤아는 진도윤 교수의 발언이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 나한테 하신 말씀일 거야.’‘서채은이 정말 그 심리학과의 전설로 불리던 선배님이었다니!’학생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윤아는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금세 새빨개졌고, 이내 황급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해프닝이 끝난 뒤, 학생들은 채은을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7화

    여학생의 눈에는 별빛이 가득했는데,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채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교수님들께서도 제가 졸업하기를 기다리실 줄은 몰랐네요.”채은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특히 심리학과 학생들은 더욱이 그랬다. 심리학과라면 누구나 알 법한 학생, 뛰어난 성적과 독보적인 업무 능력으로 심리학과의 천재라 불렸던 그녀가 바로 서채은이었다!졸업을 앞둔 채 뜻밖의 사고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채은을 위해, 지도 교수들과 학과장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학교 측에 특별 요청을 올려 전례 없는 ‘무기한 휴학 허가서’가 발급되었다!학과 전체가 채은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그 모든 기억이 떠오르자, 채은의 눈에 따뜻한 감정이 스쳐 갔다.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점점 더 흥분하며 채은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 선배님이라고? 세상에, 그 선배님의 논문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대박이었어!” “서채은 선생님이 정말 그 전설적인 선배님이라면, 단순히 대학 내 심리 상담사가 아니라, 전문 심리 상담사로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거잖아! 경찰과 협력해서 여러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와... 내 여신님이 우리 선생님이 되었다니. 교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시험지를 보면서 꼭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서채은 선생님이었어!”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는 분위기에 사람들은 채은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윤아가 이를 갈며 통통한 여학생을 향해 소리쳤다. “말도 안 돼! 대체 뭘 보고 떠들어 대는 거야? 서채은이 그 전설 속의 선배님이라는 증거 있어? 그냥 거짓말로 넘어가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윤아는 절대 믿을 수 없었다.‘서채은이 무슨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거야?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왜 우리 집안에서 몇 년 동안 참기만 했겠어?!’통통한 얼굴의 여학생이 억울한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6화

    하린이 고개를 돌리자, 놀란 척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윤아의 모습이 보였다. “커뮤니티에 다 나왔잖아. 서채은은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이고, 부정한 수단으로 우리 학교 심리 상담 센터의 상담사가 된 거라고! 우리보다 학력도 낮은 사람과 어울리다니, 창피하지 않아?” 윤아는 채은을 향해 거만한 태도로 쏘아붙였다. 하린은 화가 치밀어 올라 바로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채은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린을 뒤로하고 윤아의 앞으로 나섰다. 채은이 평온한 눈빛으로 윤아를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커뮤니티에 올라온 거, 네가 한 짓이지?” “내가 했으면 어쩔 건데?”윤아는 사실을 들킨 것에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한 태도로 비웃기 시작했다.“다 사실이잖아.” 윤아는 하린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채은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니 자신은 떳떳하다는 태도였다. 바로 이때, 하린이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그 게시글이 뜨거운 화제가 된 건 알고 있지? 아, 허위 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이 심각한 경우에는 범죄로 처벌될 수 있는 것도 알고 있으려나?” 하린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경고의 뜻이 서려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며 분위기가 점점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허, 명예훼손?”윤아가 냉소를 터뜨리며 비웃었다. “고졸이라는 게 명예훼손인 거야, 아니면 부정한 수단이 명예훼손인 거야?” “정말 본인 실력으로 우리 대학교의 심리 상담사가 된 거라면, 증명해서 보이면 되잖아!”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학 심리 상담 센터의 상담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채은이 정식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채은이 어떤 증거로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 의아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채은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나는 실력으로 채용된 게 맞아.”사람들이 깜짝 놀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5화

    ‘커뮤니티?’채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하린은 곧장 핸드폰을 열어 화제의 중심인 게시글을 보여주었다.“이거예요. 누군가 언니의 학력이 고졸에 불과한 데다가, 부정한 수단을 이용해 대학 내 심리 상담사 자리를 얻은 거라고 의문을 제기했어요.”하린은 입술을 깨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채은을 바라보았다.채은은 게시글을 흘깃 본 뒤, 오늘 사무실에서 느꼈던 이상한 시선들을 떠올렸다.‘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옆에 서 있던 하린은 채은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더 초조하고 불안한 듯 말했다.“언니, 이미 많은 사람이 이 게시글을 봤어요. 게다가... 심한 말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니는 학교에서 버티기 힘들 거예요.” 하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채은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그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그저 게시글일 뿐이잖아? 별거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점심부터 먹어야 한다는 거야.” 채은은 이 게시글이 분명 부윤아와 관련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여태 겪은 폭풍우에 비하면 이런 비방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 듯했다.채은의 시선은 차분했고, 미소에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었다. 게시글에 담긴 악의적인 말들은 채은에게 전혀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채은의 이런 태도에 마음이 놓인 하린도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향해 줄을 서려 했다.하지만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하린은 본래부터 도씨 가문의 아가씨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고, 채은 역시 학교에 발을 들이자마자 뜨거운 화젯거리가 된 ‘미녀 심리 상담사’였다.여기에 커뮤니티 사건까지 더해지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저기 봐, 서채은이랑 도하린 아니야? 왜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거지?” “그러게, 두 사람이 왜 같이 식당에 와서 밥을 먹는 걸까?” “뭐야? 대체 무슨 사이지?”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게시물을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4화

    희주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윤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어두워졌다. 이를 알아차린 희주가 급히 말을 바꾸며 아부하듯 말했다.“그래도 뭐 어쩌겠어? 딱 거기까지인걸. 코랑 쌍꺼풀을 보면 딱 성형한 것 같잖아! 윤아 너랑 비교하면 아직 한참 멀었지!”윤아는 채은이 성형했는지 안 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으나, 희주의 말은 그녀의 기분을 크게 풀어준 듯했다. 하지만 윤아는 표정이 한결 나아진 후에도 ‘심리 상담 센터의 예쁜 상담사 선생님’라는 말을 곱씹었다.‘심리 상담 센터? 예쁜 선생님? 서채은이?’ 윤아는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희주에게 손짓했다.“희주야, 부탁이 하나 있는데, 잘만 해주면 지난달에 오빠가 선물해 준 샤넬 가방 너 줄게.”...다음 날.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에 굵고 빨간 글씨로 눈길을 끄는 게시물이 올라왔다.[고졸 출신 신입 미녀 심리 상담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떠나주세요.]신입, 미녀, 심리 상담 선생님.제목만으로도 쉽게 채은을 떠올릴 수 있는 문구였다. 게다가 채은은 이미 학교 안에서 화제의 인물이었기에, 자극적인 제목은 많은 학생들을 유도하기에 적합했다. 궁금증에 못 이긴 사람들은 잇달아 게시물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게시글 작성자는 새로 만든 계정을 이용했으나, 올린 내용은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신입 미녀 심리 상담 선생님이 고졸인데도 대학교에 취업했습니다.][대체 어떻게 실습 자리를 얻은 걸까요?] 글과 함께 학교 공식 사이트에서 캡처한 졸업 명단과 채은의 입학 연도가 첨부되어 있었다. 명단을 보면 채은이 입학했으나, 졸업 또는 수료한 기록이 없었다. 즉, 대학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상태로 고졸 학력이라는 뜻이었다. [첨부된 자료를 보면 서채은 씨는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심리 상담 선생님이 되었지요. 우리 학교에는 특별 채용 사례가 없는 걸로 아는데, 이건 서채은 씨가 부정한 방법으로 우리 학교에 입사했다는 것을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3화

    “너 수작이 정말 대단하구나?”윤아는 하린이 이렇게까지 채은을 감싸는 모습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채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부윤아, 네 오빠를 좋아했던 건 내가 눈이 멀어서 그랬던 거야.”“하지만 그때의 네 오빠가 왜 날 선택했는지는 너희 부씨 가문 사람들이 더 잘 알지 않나? 사실을 왜곡하고 남을 모함하려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 사실, 그 당시 진성이 채은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장진화과 부윤아는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부경석이 진심으로 채은을 좋아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장진화과 부윤아가 채은과 진성의 결혼을 빌미로 고다희의 귀국을 당겨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채은의 말이 자신의 과거를 꼬집는 것임을 깨닫자, 윤아는 도리어 소리를 높이며 욕설을 퍼부었다.“내가 널 모함한다고? 서채은, 네가 그렇게 깨끗하다면, 우리 집에서 받아 간 집도 전부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니야?!” “가질 거 다 가져가 놓고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어? 너 같은 건 그 집들의 값만큼의 가치도 없을 거라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나는 네 오빠 때문에 3년 동안 내 청춘을 허비하면서 너희 모녀의 시중을 들었어. 그러고도 첫사랑이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이혼당했지.”“내가 사기 결혼으로 네 오빠를 고소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히 여겨야 할걸? 혹시라도 날 빈손으로 내보내려 했다면, 꿈 깨는 게 좋을 거야.” 채은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아는 채은의 단호한 태도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아는 서채은이 맞다고?’‘한때 오빠를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던 서채은이 어떻게 저렇게 냉담해진 거지?’ ‘분명 서채은한테는 오빠가 약점이었는데?’손목시계를 확인한 채은은 더 이상 윤아를 신경 쓰지 않고, 하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이만 가요. 수업에 늦으면 안 되잖아요.” 하린은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며 채은의 팔을 붙잡았다.“네,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2화

    “이게 진짜!”윤아는 채은의 말에 분노가 폭발했다. ‘왜 예전에는 서채은의 말재주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을까?’‘흥, 이때까지 우리 부씨 가문에서 보여준 현모양처 같은 모습은 다 연기였구나?’ “두고 봐! 내가 우리 오빠한테 일러서 널 꼭 쫓아내고 말 테니까!”“나한테 대드는 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보여줄 거야!!” 어차피 청소부 따위라면 해고는 한 마디면 되는 일이었다. “채은 언니가 그쪽을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난다는 거죠?” 두 사람이 대치하는 모습을 보던 학생들 사이에서 맑고 청아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린이 사람들 틈을 헤치고 걸어 나온 것이었는데, 채은과 대치하고 있는 사람이 윤아인 것을 확인한 순간, 하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씨 가문은 비록 최상위 재벌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N시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가문이었다.윤아는 그런 부씨 가문의 이름을 등에 업고 학교에서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전에 하린과 마주쳤을 때는 항상 온순한 태도를 보였기에, 하린은 윤아를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던 참이었다.‘부윤아가 우리 채은 언니를 건드린 거야?’비록 채은과 딱 한 번 만난 사이였지만, 하린은 첫 만남부터 마음속 깊이 ‘채은 언니’를 좋아하게 되었다.그래서 하린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나선 것이었다. 윤아는 하린이 나타난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채은 언니?’ 하린은 도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A대학교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윤아는 계속 하린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하린은 항상 차갑게 굴며 곁을 내주지 않았다.‘도하린이 서채은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지?’ “너 정말 대단하다, 서채은! 권력에 빌붙는 네 능력에 감탄밖에 안 나온다니까?” 윤아는 하린을 건드릴 수 없어서 다시 채은에게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하린이 윤아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부윤아, 다시 말해봐. 채은 언니가 왜 권력에 빌붙는다는 건데?” 하린이 채은을 노골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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